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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은성 희곡작가, “작가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작성일 2025-12-18

작가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 김은성 희곡작가(인터뷰어 : 허 희 평론가)


 

연변엄마, 목란언니등 우리 사회의 경계에 선 인물들의 목소리를 무대 위에 세워온 극작가 김은성. 그는 99식 소총을 화자로 내세워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 최근작 빵야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트라우마와 소수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집요한 시선으로 우리 시대의 화자라 불려온 그가 2025년도 아르코 펠로우십에 선정되었다. 펠로우십 선정을 계기로 처절한 실패를 각오하고 감히 씁니다라고 고백하는 작가의 현재와 미래를 묻고 답을 들었다.

 

빨리 신작을 쓰고 싶어 마음이 급합니다

 

— 『연변엄마의 목소리부터 빵야의 독백에 이르기까지 그간 작품을 통해 인물과 시대를 증명해 왔습니다. 이번 펠로우십 기간 동안 새롭게 탐구하고 싶은 목소리가 있으신지요? 혹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작품의 소재나 인물 군상이 있다면 간략하게나마 소개 부탁드립니다.

 

“‘빵야발표 이후 여러 편의 신작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을 먼저 쓰게 될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물건에 애착이 많던 노인이 짐을 하나씩 정리하는 이야기, 도서관을 무대로 사서와 책과 관련한 이야기, 5.18 당시 광주 동물원에 살던 어린 원숭이의 이야기, 2077년을 무대로 서울 북한산에서 벌어지는 레지스탕스 이야기 등을 메모하며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빨리 신작을 쓰고 싶습니다. 마음이 급합니다.”

 

희곡은 모임을 좋아하는 텍스트

 

최근작 빵야에서는 99식 소총이라는 비인간 사물을 화자로 내세워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꿰뚫는 서사를 선보이셨습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의 시선을 통해 역사를 증언하게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는지요?

 

희곡은 연극 텍스트입니다. 공연 무대가 가진 특성,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스토리를 구상하다 보니 사물을 의인화하게 되었습니다. 연극 무대는 다른 문학과 극 장르에 비해 훨씬 마법이 잘 먹히는 공간이라 믿고 있습니다. 사물의 입장이 되어 사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경험이 신선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소총을 인물로 여기고 만나보니 전쟁과 폭력의 비극이 더욱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쟁은 인간을 도구로 만듭니다. 수단으로 만듭니다. 그것이 전쟁이 가진 가장 본질적인 아픔일 것입니다.

 

작가님의 희곡은 무대 언어인 동시에 바닐라와 같은 그림 희곡의 형태로 출간되는 등 문학 텍스트로서의 완결성 또한 중요하게 다루십니다. 작가님께서는 희곡의 정체성을 어떻게 사유하고 계신지요?

 

희곡은 작가와 독자의 만남, 그 너머를 희망하는 장르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모여, 함께 읽고, 함께 듣기를 원하는 바람을 간직하고 있는 텍스트입니다. 모임을 좋아하는 텍스트가 희곡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책상 앞에 둘러앉아 희곡을 읽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과대망상이지만) 인류의 희망을 봅니다. 어린아이들이 모여 앉아 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동네마다 희곡 읽기 모임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근래에는 근사한 극장에서 공연이 올라가는 경험을 하는 일보다 작은 모임에서 제 희곡이 낭독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더 반갑고 기쁩니다.“

 

처절한 실패를 각오하고 감히씁니다

 

역사적 트라우마와 소수자의 고통을 다루는 작업에는 필연적으로 작가적 윤리에 대한 고민이 수반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통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작가님께서 가장 경계하시는 지점은 무엇이며, 그들의 삶을 무대 위에 세우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내가 쓸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을 내가 진짜 사랑하고 있는지, 아파하고 있는지, 내가 울고 있는지, 정말 꼭 써야만 하는지, 진지하게 많이 고민합니다. 쓴다고 해서, 잘 써냈다고 해서, 제가 어떻게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아마 모를 겁니다. 모르기 때문에,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쓰고 싶다는 것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다른 말일지도 모릅니다. 혹시 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니? 그래서 나를 쓰고 싶게 만드는 거니? 스스로 착각하며 쓰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삶을 어찌 대상화하지 않고 온전한 주체로 무대에 세울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 점에서 저는 처절한 실패를 각오하고 씁니다. 감히 씁니다. 내 글의 성과가 목적이 아니야, 돈이 목적이 아니야, 명성이 목적이 아니야, 그냥 당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그러니까 들려주렴... 그렇게 그들에게 부탁합니다.”

 

 

우리 시대의 화자라는 평가를 받아오셨습니다. 작가로서 새롭게 꿈꾸는 작가상이 있으신지요? 작가님의 궁극적인 계획을 여쭙니다.

 

작가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형편없는 아들이고, 무책임한 동생이고, 실수 많은 선배이자 후배입니다. 돌아보면 부끄러운 삶을 살아왔습니다. 제 삶을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잘 다스리고 다듬어 나가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쓰고 싶은 작품이 생겨나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공동체에서 함께 더 잘 살 수 있는 문제를 고민하다 보면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까요? 계속 쓸 수만 있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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