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허은실 시인, “문서가 누락한 이름들, 시가 불러줘야”
- 작성일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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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가 누락한 이름들, 시가 불러줘야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 허은실 시인(인터뷰어 : 허 희 평론가)
“시인들은 가장 섬세하고 예민한 촉수를 갖고 태어난 족속입니다. 그게 바로 시인들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2017년 첫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로 개인의 내밀한 설움을 섬세하게 길어 올렸던 허은실 시인은, 5년 만의 두 번째 시집 『회복기』(2022)에서 세월호 참사, 5·18 민주화운동, 제주 4·3 등 공동체의 상처를 보듬는 확장된 시선으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제주로 이주한 뒤, 4·3의 상처를 다룬 『기억의 목소리』 작업에 참여하는 등 역사의 아픔을 기록하는 일에 천착해 온 그가 2025년도 아르코 펠로우십에 선정되었다. 펠로우십 선정을 계기로, 개인의 슬픔에서 우리의 회복으로 나아가고 있는 시인의 현재와 미래를 묻고 답을 들었다.
문서가 누락한 이름들, 시가 불러줘야
—『회복기』에서 시선이 ‘나’의 설움을 넘어 세월호 참사, 5·18 등 ‘우리’의 아픔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개인의 내면에서 공동체의 상처로 시선을 옮겨가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이 있으셨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가 해야만 하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시는 모든 예술 중에서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섬세한 도구입니다. 그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내면이 시의 언어로 정확하게 형상화되었을 때 시인은 지고의 기쁨을, 독자는 공감과 위로를 얻지요. 그러나 우리가 개인의 내면에 천착하는 사이 세상은 더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날씨’에만 신경 쓰느라 타인의 고통을 먼바다의 풍랑주의보쯤으로 치부하기 때문이겠지요.
시인들은 가장 섬세하고 예민한 촉수를 갖고 태어난 족속입니다. 그게 바로 시인들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회복기』 ‘시인의 말’에서 울대 없는 새와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울림을 만들 성대가 없어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 자기 언어가 없어서, 자기 자리가 없어서 자기 발언을 못 하는 존재들이 있잖아요. 역사가 소거해 버린 희생자들일 수도 있고,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일 수도 있어요. 타고난 섬세한 감수성과 언어적 감각으로 개인적 내면을 표현하는 시인에 비해, 그런 사람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너무 작고 적기 때문에 ‘문서가 누락한 이름들’을 불러주는 것이 제 역할이자 시적 태도가 되어야겠다 생각합니다.
물론 타인의 고통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타인을 이해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언제나 실패나 미완으로밖에 끝날 수 없는 시도이지만, 세상에 고통이 있는 한 시인은 어떤 식으로든 그 고통에 응답하는 자기 언어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펠로우십 선정이 가지는 개인적, 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제주로 이주한 지 8년째인데요. ‘서울’에 살다 물리적으로 문화적으로도 가장 먼 섬에 와 살다 보니 아무래도 ‘혼자’가 강화되고, 이른바 중앙이라고 부르는 연결도 점점 더 흐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단체에 소속되거나 동아리를 짓는 일도 좋아하지 않다 보니 더욱!) 게다가 제주에 와서는 아무래도 제주의 역사와 문화, 제주적인 소재와 테마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경계인으로서 비주류적인 테마에 대해 쓰는 일이 조금은 외롭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내가 하는 작업이 의미 있는 일일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는 순간들을 맞기도 하지요. 그런 와중에 문학작가 펠로우십 선정은 정말 큰 응원이 되었어요. 쇼트트랙 계주의 엉덩이 밀어주기 아시지요, 쇼트트랙 경기에서 바통터치를 할 때, 뒤에서 달려오던 선수가 다음 선수의 엉덩이를 밀어주면 그 가속력이 다음 주자의 몸에 더해져서 앞으로 훅 밀고 나갈 추진력을 얻잖아요. 누군가 저를 그렇게 밀어준 느낌이었달까요. 응, 계속해도 돼! 지치지 말고 더 힘껏 (얼음판을) 지쳐보자! 하고요. 저에게 그런 지원이 주어진 것은 우리 문학의 생태계를 더욱 풍성하게 하라는 메시지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새내기 해녀, 제주 신화와 해녀의 삶을 시로
—제주 4·3을 다룬 『기억의 목소리』 작업에 참여하시는 등 역사의 상처에 천착해오셨습니다. 이번 펠로우십 기간에도 제주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작업을 구상하고 계신지요?
“기존에 해오던 대로 4.3사건을 시의 언어로 담아내는 작업은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해나갈 생각이고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오프닝은 제주의 산담(무덤)이나 당을 배경으로 하고 있잖아요. 또 헌터스의 계보에서 시조 격인 인물로 샤먼(무녀)을 상정하고 있지요. 저 또한 심방이라고 불리는 이들에 의해 살아 숨쉬고 있는 제주 신화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데요. 종교나 무속적인 의미를 넘어 그것이 타자의 고통에 다가가는 방식, 인간 아닌 존재와 생명들에 대한 존중과 교감이라는 면에서 영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시인이 이 시대에 할 역할이기도 하고요. 더구나 형식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무가’라는 가장 오래된 운문의 형식이 시인에게도 특별한 감흥을 주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10년 전쯤부터 구상해 온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해녀였던 시어머니의 개인사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서사시의 형식으로 표현해보는 시도인데, 이번 펠로우십 선정을 계기로 ‘비로소’ 마무리하는 중입니다. 유네스코 선정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인 제주 해녀와 해녀문화를 통해 제주가 지닌 고유의 문화적, 여성적, 인류학적, 생태적 가치가 인류세라고 하는 이 시대에 어떻게 대안적 테제가 될 수 있는지를 시의 언어로 형상화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시를 쓰는 중에, 오랫동안 품어왔던 해녀에의 꿈에도 실제 도전하게 되었는데요. 올해 해녀학교를 졸업하고 인턴 과정을 거쳤거든요, 지금 새내기 해녀로 서귀포 바당에서 열심히 물질을 하고 있기도 하답니다.”
‘다시 이야기하기’로 타인의 고통에 응답
—첫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에서 두 번째 시집 『회복기』로 나아가며 시적 언어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회복기』의 시들에 대해 어떤 평론가께서 적극적인 ‘타자 되기’를 통해 재현이 아닌 ‘체현’을 해내는 시도라고 읽어주셨는데요. 실제 단순한 재현의 언어를 넘어서 시로써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고, 함께 회복으로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고요, 저 나름대로 그 시적 방법을 다양하게 시도하려 애쓰긴 했는데 그 애씀이 누군가의 눈에는 보였구나 싶어 위안이 되었습니다.
『향모를 땋으며』란 책을 읽으며 ‘회복’을 ‘다시 이야기하기’로 접근한 생태학자 개리 냅핸의 말을 만났어요. “우리는 ‘다시 이야기하기re-story-ation’ 없이는 ‘회복restoration’을, 의미 있는 치유를 해나갈 수 없다.”란 표현이었는데요. 의미있는 치유와 회복을 위한 ‘다시(re-)’ 이야기하기란 무얼까.
시에서는 그것이 단순한 ‘거듭’, ‘또’의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될 텐데요. 그러니 ‘어떻게 다시’ 이야기해야 할까?가 문제인 것이지요. 어떠한 사건을 정제된 문학적 언어로 재현하거나 재구성하는 것에 머문다면 그것은 진정한 다시 이야기하기가 아닐 테니까요.
제 경우, 좀더 적극적으로 타자의 목소리를 상상하는 과정 속에서 그 존재의 목소리를 빌려오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것은 전작 『기억의 목소리』에서 했던 시도의 연장인데요. 4.3사건 당시 유족들이 지니고 지켜온 사물들의 눈과 귀로 4.3사건을 이야기하는 시도였죠.
『회복기』에서도 제가 듣고 상상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때론 화물노동자의 독백일 때도 있고 개, 귤나무처럼 참사를 지켜본 자연물이나 다른 생명체의 목소리, 숲이나 대지가 내는 소리,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존재들의 구음, 죽은 이의 비언어적 언어일 때도 있죠. 시마다 다른 시적 화자의 고유한 목소리, 호흡과 리듬을 받아적는 일은 비인간의 비언어조차 저의 시를 통해 ‘다시’ 말하도록 하려는 노력이었죠.
또한 모든 각각의 시에는 각각의 형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하려는 목소리에 어울리는 옷을 갖추는 일 그러니까 시의 형식에 대해서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구조와 형태 자체도 담고자 하는 목소리를 구현하는 형식이면 좋겠지요. 그 형식 자체가 시에서는 언어에 포함되는 것이니까요.“
—시가 ‘쓰다듬는 혀’가 되기를 바라셨던 만큼, 이번 펠로우십을 통해 독자들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고 싶으신지요?
”얼마 전 ‘당신도 시 읽는 소리를 사랑하나요’라는 제목의 낭독회를 열기도 했었는데요. 그때 낭독회는 처음이었다는 독자분이 따로 제게 오셔서 말씀을 주셨어요. 낭독이 이런 매력이 있는 줄 몰랐다, 낭독을 통해 만나니 시가 다르게 느껴진다고요.
낭독이 가진 그런 힘을 알기에, 더구나 시는 음악성을 가졌기 때문에 반드시 소리를 입어야 완성되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시가 가진 언어적, 음성적 아름다움이 낭독을 통해 구현되고 울림을 통해 독자와 공명하는 낭독회, 시의 말들이 텍스트에서 나와서 공간을 유영하며 독자와 나 사이를 부드럽게 연결해주는 낭독회를 그래서 저는 정말 사랑하는데요.
펠로우십을 통해 그렇게 시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었고요, 기회가 된다면 더 새로운 방식의 낭독회를 기획하고도 싶습니다. 펠로우십 기간 제가 쓴 시 중에 제주 무가와 판소리 형식을 빌어 쓴 시들이 몇 편 있는데요, 실제, 소리꾼의 작창과 심방의 구음을 통해 공연 형식으로 구현하는 연말 낭독회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에 앞서 11월에는 무용과 협업하는 무대도 있는데요. 4.3사건의 상처를 딛고 치유와 회복으로 나아가는 서사를 몸의 노래인 춤을 통해 표현하고요, 한국춤의 용어를 빌리자면 저는 시로써 ‘맺고 어르고 푸는’ 자리입니다.
그 외에도 앞으로 출간과 북토크, 낭독 공연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분들을 만나서 시가 우리를 조금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게 하고, 나아가 낫게도 할 수 있다는 걸 함께 목격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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