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영란 시조인, “우리 가슴에 영원히 피어나는 꽃”
- 작성일 2025-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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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슴에 영원히 피어나는 꽃
아르코 문학 작가 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_김영란 시조인(인터뷰어 : 성현아 평론가)
김영란 작가는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더불어 4·3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4·3 조사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에 첫 시조집 ‘꽃들의 수사修辭’를 발간하며 생활 속에 묻혀 잊힌 본원적 가치를 새로이 길어 올렸고, 2019년 출간된 현대시조 시집 ‘몸 파는 여자’에서는 ‘구원의 시학’을 담은 현대시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어 시집 ‘누군가 나를 열고 들여다볼 것 같은’을 출간하며, 역사가 참혹하게 짓밟은 이들 곁에 머무르면서 그 어떠한 폭력도 허용하지 않는 단호한 자세를 드러낸 바 있다. 제주 4·3 77주년인 2025년 4월 3일에 시조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를 출간하여 평단의 주목과 독자의 지지를 받았다. 우리 민족만의 문학 장르인 시조를 현대화하여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일에 힘쓰고 있는 김영란 시조 시인과 그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2011년도 등단 후 발표했던 4·3 관련 작품을 모아서 ‘동백 졌다 하지 마라’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묶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작품들을 모아서 정리를 해야 새로운 4·3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대부분 청탁에 의한 작품이었는데 4·3조사연구원 활동을 현재도 하고 있어서 앞으로는 제대로 계획해서 기록문학으로의 4·3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제주토박이가 낸 최초의 4·3 시조집이라는 평가를 받고 보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7년 7개월 동안의 4·3항쟁이 올해로 77주년이 되는 해인데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숫자가 주는 이미지가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면서 여러 가지 행운도 있었습니다. 작정한 4·3시집이어서 발간일도 4월 3일에 맞췄는데 이런 의미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제주문학관 주최로 북토크도 진행하였습니다. 심리치료사가 운영하는 책방에 초청되어 이번 시집을 매개로 4·3 위령시 쓰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주시조시인협회 주최로 ‘내 시조를 말하다’ 시간에는 ‘동백 졌다 하지 마라’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등단한 지 15년이 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펠로우십 선정이 문학 활동에 있어서 확실한 전환점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올해 4월에 지금까지의 4·3작품을 정리해서 시집을 발간했고, 새로운 4·3작품을 다양한 장르로 접근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평소보다 자긍심이 높아졌으며 작가로서의 전투력이 생긴 것 같아 스스로도 앞으로의 행보에 가슴이 설렙니다.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2013년도부터 4·3 수형인들과 유족들을 대상으로 구술 채록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4·3 재심 재판이 이뤄졌고 공소기각이나 무죄판결을 받은 4·3 희생자들과 기쁨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경험한 이야기들을 논픽션이나 시나리오로 써보고 싶습니다.
올해 발간한 시집으로는 북토크를 활용한 활동 외로 제주도 내외 4·3 유적지를 순례하면서 관련 작품을 낭독하고 그 의미를 사건 현장에서 독자들과 함께 공감하는 시간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최근 몇 년간의 작품을 돌아볼 때, 작가님이 스스로 인식하는 창작의 변화 혹은 전환점은 무엇인가요?
다소 부족하더라도 나다운 작품, 변별력이 있는 작품을 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발표작 중에 시집으로 묶지 않은 작품들이 시집 한 권 이상의 분량이 되지만 선뜻 묶을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꼭 내야만 하는 시집일까, 이 시집의 의미는 뭘까 하고 생각을 하다 보니 당위성이 없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시집을 낸 것은 4·3시집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작품을 통해 확실한 목소리를 내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나 전환점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나 자신만 만족하는 그런 글쓰기는 매력이 없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품 ‘헛꽃의 존재론’으로 제11회 가람시조문학 신인상을 수상하셨어요. 가람 이병기 선생님 역시 시조의 현대화에 힘쓰셨는데요. 2020년대에 시조는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을지 고민이 많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현대적인 의미에서 시조는 어떻게 계승될 수 있을지 여쭙습니다.
시조라는 장르를 고시조로 국한해 생각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시조의 정형은 3·4 3·4/ 3·4 3·4 /3·5 4·3 의 음수율만 지키면 되는 장르로 생각하시는 분도 상당히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창작과정에서 답답하고 힘들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4음보씩 3장(초장, 중장, 종장)으로 시조 한 수가 완성됩니다. 음보의 개념은 민요 가락이 대부분 3음보 4음보여서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시조의 정형에 대해 더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는 게 아쉽지만 현대시조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보시면 가람 선생의 말씀처럼 ‘시조는 정형(定型)이 아니라 정형(整形)’을 따르는 문학이라는 것에 공감하게 되실 겁니다. 한복의 품이 바람이 넘나들며 펄럭이면서 아름다운 실루엣을 연출하듯 시조 역시 음수율에 갇힌 구조가 아닌 음보율에 따른, 형식을 갖춘 우리 민족만의 문학 장르인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한복이 다양한 디자인과 실용성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는 것처럼 시조 역시 현대사회에 맞는 다양한 내용을 담아내되 배행 방식 등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시의 이미지도 살리면서 현대인의 요구를 반영한다면 한복과 더불어 한국인의 정체성을 잘 담아내며 계승되리라 생각합니다.
제주 4·3 77주년인 올해, 시조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를 출간하셨습니다. 제주 4·3을 기억하는 이 시조집에 실린 “탄압이면 항쟁이다”와 같은 구절들이 2024년 겨울의 계엄령을 생각나게 하기도 했어요. 이 시조집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4·3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탄압에 맞선 항쟁이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항쟁의 기간이 7년 7개월로 길어지다 보니 군인과 경찰, 서북청년단 등의 토벌대란 이름의 국가권력은 제주 민중을 참혹하게 짓밟았습니다. 친일파 경찰이 다시 득세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집안사람들이 오히려 다시 잡혀가서 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멸족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민중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성향을 숨기기 시작했고 그런 세태가 만들어낸 ‘게매마심’이란 제주말은 지금도 제주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선뜻 말하지 않는 세태로 이어진 것만 같기도 합니다. ‘글쎄요…….’하고 말입니다.
제주 4·3의 상징이 동백꽃이 된 것은 4·3 50주년 때 강요배 화백의 ‘동백지다’라는 전시회 화보집 출간에서 비롯되었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주 4·3의 아픔을 기억하겠다는 다짐과 피맺힌 한을 함께 풀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가슴에 동백 배지를 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2·3 내란 사태 때 탄핵소추안 가결을 알리며 의사봉을 내리치던 우원식 의장의 가슴에도 동백 배지가 부착되어 있었습니다. 제주 사람이라면, 4·3유족이라면 그 순간의 동백 배지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저 역시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4·3항쟁은 패배의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탄압했기에 항쟁할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동백들이 무참하게 떨어져 국가라는 거대권력에 짓밟혔지만, 그 뜻은 지금도 우리 가슴에 영원히 피어있다,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시집에서 제주 4·3뿐 아니라 세월호 참사와 베트남 전쟁과 같은 역사적 비극에 대해서도 깊이 다루어 주신 바 있습니다. 여전히 참사와 재난,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현시대에 문학이 해야 하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작가는 시대를 앞서가는 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말은 시대의 아픔에 누구보다 먼저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거나 주변 상황 더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촉각을 세우고 들여다볼 일입니다. 전쟁 등으로 인한 야만적인 폭력성이나 인권유린에 대해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 등 비인간적인 것과 세상의 부조리에 눈 돌리지 말고 당당하게 글로 맞서야 하는 게 작가의 책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의 젊은 작가 세대 후배 시인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는 작가가 되셨으면 합니다. 작가는 글로 말하는 것이라지만 행동이 필요할 땐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세상 돌아가는 것에 귀 기울이고 눈 부릅떠서 늘 깨어 있으려고 노력해야겠죠.
자기 색깔을 지닌 작가가 되셨으면 합니다. 문학작품은 작가의 영혼이 담긴 글이기에 자신의 일상과 글이 어느 정도는 발맞춰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문학적인 기량은 뛰어나다 할지라도 영혼 없는 글이라면 결코 독자들에게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입니다.
독자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작가님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해 주었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대정신을 살리며 작가로서의 소명감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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