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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문진영 소설가, 서로를 넘나들며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소설의 세계

  • 작성일 2025-12-18

서로를 넘나들며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소설의 세계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문진영 소설가(인터뷰어 : 성현아 평론가)

 

문진영 작가는 2009, 소설 '담배 한 개비의 시간'으로 제3회 창비 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소설집 '눈 속의 겨울'(실천문학사, 2020), '최소한의 최선'(문학동네, 2023)과 중편소설 '딩'(현대문학, 2023) 등을 출간하며 인간관계 속 미묘한 균열과 그로 인한 내면의 상처를 섬세하게 그려왔다. 2021년에는 두 개의 방이 김승옥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문학적 역량을 폭넓게 인정받았다. 경장편소설 '미래의 자리'(창비, 2024)를 출간하여 비극의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점차 미래를 기대할 힘을 잃게 된 이들에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전하기도 했다. 독자와 평단 모두에게 사랑받는 문진영 작가는 현재 박정은 그림작가와 함께 계절책방 낮과밤을 운영하고 있다. 소설 창작 또한 활발히 이어가고 있는 문진영 작가와 그의 문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올여름, 여름을 배경으로 한 세 편의 단편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작가정신에서 향과 색을 주제로 엮은 앤솔로지 소설집 '초록 땀'에 수록되었어요. 지난해 가을부터 지금까지 저는 책방을 운영하고, 창작 수업을 진행하고, 신인상 심사에도 참여해 보고, 해외 번역 계약을 맺는 등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일들이 많았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트러스트 폴(Trust Fall)’이라는 친목 도모 게임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양팔을 가슴에 모은 채 눈을 감고 뒤로 넘어지면, 뒤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게 받아주는 게임이지요. 단순한 놀이지만, 믿음이 없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습니다.
올해 저는 뒤로 한 번 마음껏 넘어져 본 기분이었습니다. 펠로우십에 선정되지 않았다면 글쓰기 외의 다른 일, 생계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활동들을 마음 편히 시도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글이 잘 써지든 그렇지 않든,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하기보다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감과 안전감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이 안전망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이 감각을 기억하며 저만의 리듬과 속도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올해가 가기 전에 출간을 약속했던 산문집 작업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편집자님께 양해를 구하고 이런 저를 조금만 인내해주십사 부탁드린 참이에요. 남은 기간 동안에는 그간 구상을 계속해왔던 장편 작업에 본격적으로 몰입하려고 합니다. 명명할 단어가 없는 유일한 관계에 관해 써 보고자 합니다.

 

2009년 창비 장편소설상으로 등단하셨어요. 오래 창작을 지속해 오면서 소설을 쓰는 이유도 시기마다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지금, 작가님께 가장 강력한 창작 동기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소설을 쓰는 이유를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쓰고 싶어서, 쓰지 않고 견딜 수 없어서 썼던 시기도 있었고, 쓰고 싶지 않은데 그만둘 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지요. 소설이 무엇인지 새롭게 발견하는 시기도 있었고요. 감사하게도 평생 경험해볼 수 없을 것 같던, 오직 마감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시기도 잠시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시 왜 쓰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는 시기입니다.
계속하게한다기보다 그만두지 않게하는 힘은 결국 읽고 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읽고 쓰기의 세계는 나와 타자가 공명하며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과정 그 자체이고, 저는 그 과정에 어떻게든 참여하고 싶어 기웃거리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 기웃거림이 제게는 동력이 되는 듯 합니다.

 

박정은 그림 작가님과 함께 책방 '낮과 밤'을 운영하고 계시잖아요. 여름에 방문했었는데, 공간도 그곳에 있는 책과 그림도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책방을 꾸려나가는 일이 작품 집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궁금해요.

 

지난 몇 년간 글쓰기에 집중하느라 두문불출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스스로 밀실이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고, ‘작은 구멍을 뚫어야겠다는 생각이 책방 운영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오픈했거든요. 함께 할 수 있는 든든한 친구가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고요.

손님들의 웃는 얼굴을 마주할 때면 공기가 통하는 것을 느낍니다. 제 소설을 읽었다며 수줍게 감상을 전해주시는 독자분들도 계시고, 소중한 친구들이 오며 가며 들러 수다를 떨기도 하고요. 창문을 모두 활짝 열고 빗자루질을 하거나 식물에 물을 줄 때, 책을 만지고 쌓고 흐트러뜨릴 때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책방에서의 날들이 제 소설에 바람이 드나들게 하는 바람길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인터뷰에서 쉽게 읽히지만, 쉽게 휘발되지 않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았어요. 문진영 작가님의 소설이 그런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왜 '쉽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셨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요즘도 그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신가요? 혹은 좋은 소설의 기준에 변화가 생기셨을까요?

 

쉽게 읽히는 소설이 곧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백 명의 작가가 있다면 백 가지 방식이 있을 것이고, 그 하나하나가 모두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장마다 돌부리처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소설도, 미로처럼 더듬더듬 나아갔는데 출구가 없는 소설도, 뒷덜미를 잡아챌 듯 따라오는 소설도 있겠지요.

좋은 소설이란 각자의 고유한 시선과 방식으로 이 복잡하고 모순된 삶의 운동을 포착하고 재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저의 소설이 쉽게 읽히기를바라는 이유는, 쉬운 문장으로 쉽지 않은 것을 담아내는 방식이 제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발표하신 마지막 여름의 마지막이라는 작품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곱창집에 있는 개에게 한 손님이 고기 대신 상추를 건네자, 개가 그것을 입에 물었다가 도로 퉤 뱉는 장면이 있지요. 이를 보던 사람들이 왁, 하고 웃는 대목에서 서늘한 위계 같은 것을 느꼈어요. 얻어먹기 전공으로 불리는 가 그 개에게서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확인할 때 역시 쓸쓸해졌고요. 고달픈 청년들의 초상을 너무 가련하지 않게 담담히 그려주시는 것 같아요. 이런 주제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신 계기가 있을까요?

 

삶이 아름답고 또 어려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마음에 자주 마음이 갑니다. 저도 여전히 그러하고요. 나이로는 더는 청년에 속하지 않지만, 경제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여전히 안정되지 못한 몸만 늙은 청년(?)이니까요.

청년 세대는 이 사회의 잘못된 제도와 구조 사이사이에 놓인 깊은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기댈 안전망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청년 세대 안에서도 빈부, 젠더, , 노동 등 여러 프리즘을 통과하면 균열이 더욱 촘촘하게 드러나고요.

일터에서, 축제에서, 혹은 고립된 채 방 안에서 목숨을 잃는 청년들을 방관하면서 미래를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로 느껴집니다. 살아주기를, 아무도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쓸 때가 많습니다. 아주 무딘 걸음이라도 삶 쪽으로 한 발짝 내딛게 하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더불어 좀 더 뾰족한 문제의식과 유효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후배 작가들, 혹은 동료 작가들에게 건네고 싶은,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운동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햇볕을 많이 쬐고, 잠을 푹 주무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하는 당부 같네요.

 

독자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작가님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해 주었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문학의 소리 공개방송에서 윤성희 소설가께서 하신 말씀처럼, 저도 제 삶과 글을, 이 세계를 깊은 호기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보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같은 마음으로 지켜봐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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