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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하성란 소설가, 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 작성일 2025-12-19

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아르코 문학 작가 펠로우십 선정 작가 서면 인터뷰 하성란(인터뷰어 : 안세진 평론가)

 

하성란은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현대문학, 1998), 삿뽀로 여인숙(이룸, 2000), 내 영화의 주인공(작가정신, 2001), A(자음과모음, 2010), 중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현대문학, 2019), 소설집 루빈의 술잔(문학동네, 1997), 옆집 여자(창비, 1999),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창비, 2002), 웨하스(문학동네, 2006), 여름의 맛(문학과지성사, 2013)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해왔다. 이른바 마이크로 묘사”(김윤식)로 대표되는 특유의 스타일을 변주해가며 하성란은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수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거쳐 독보적인 궤적을 형성해왔다. 최근에는 2002년 출간된 소설집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의 리마스터판이 출간되어 젊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동일 저서의 영어 번역본이 미국 출판 전문지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뽑은 2020년 최고의 책 10권에 선정되기도 했다. 어느덧 등단 30년을 앞두고 있는 그와 서면으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국문학 하반기호에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2026년 발간을 목적으로 소설집을 탈고했습니다. 지금은 연재했던 장편소설을 수정 중에 있습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평소라면 목전의 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들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펠로우십 지원으로 여유가 생겼고 창작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작가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올 초 문화일보의 특집 소설-한국을 말하다에 글을 실을 일정이 생겨서 제가 맡은 소재인 챗gpt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을 했고요. 과학 발전에는 먼저 문학의 상상력이 있었죠. 제임스 밸러드가 쓴 1961년 작 스타스 가, 5번 스튜디오에 나오는 VT 세트가 지금의 미래를 예견했듯이요. 앞으로 몇 년 안에 AI대혁명이 있을 텐데요, 새로운 계급 형성과 VR 등으로 가지게 될 공동 경험 등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그때 문학이 할 일은 무엇일까,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등을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1999년 등단 이후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창작을 지속해 오면서 쓰는 이유문학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최근 몇 년간의 작품을 돌아볼 때, 작가님이 스스로 인식하는 창작의 변화 혹은 전환점을 말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이후 저는 말의 근간이 흔들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배에서 나왔다라는 말은 더 이상 탄생의 순간을 표현하는 데에만 쓰일 수 없게 되었죠. 이제 예전처럼 어떤 장면을 어떤 문장을 쉽게 쓸 수 없어졌습니다.

폴 오스터의 장편 브루클린 풍자극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주인공인 네이선은 급작스러운 발작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는 과정에서 신문에 부고 한 줄 실리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것, 그래서 기억하는 것. 앞으로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요. 저의 작업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려고 합니다. 누군가 그 한 사람을 기억해주기를 바라고요.

 

- 최근에는 2002년 출간된 소설집 푸른수염의 첫 번째 아내가 리마스터본으로 다시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기도 했죠. 영어 번역본인 Bluebeard’s First Wife가 미국 출판 전문지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뽑은 2020년 최고의 책 10권에 선정되기도 했고요. 작가님의 소설을 따라 읽고 있는 독자로서 해당 소식을 무척이나 기쁘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20년 만에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게 된 소감이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관련한 이야기를 간단히 청해 듣고 싶어요.

 

번역자인 재닛 홍의 힘이 컸습니다. 오래전 낡은 단어들은 그에 의해 시의성을 가진 단어들로 번역되었을 테니까요. 어쩌면 그때에 비교해 변하지 않은 사회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한국작품 번역을 공부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제 소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이 소설까지 번역하게 되었고요. 그러니까 그의 어머니가 건네준 책이 아니었다면 이 소설은 번역될 수 없었지요. 운이 좋았습니다. 그때와 달리 번역도 체계화되었습니다만, 아직도 모든 작가에게 기회가 가지는 못합니다. 좀 더 많은 통로를 통해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번역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좋은 작품들이 많으니까요.

 

- 소설집 푸른수염의 첫 번째 아내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저는 표제작 푸른수염의 첫 번째 아내를 다시 읽으며, 20년 전 발표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다루고 있는 문제의식이 상당히 시의적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했습니다. 여성주의와 퀴어 정치학의 문제가 교차하는 지점을 일찍이 날카롭게 짚어내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동시대적인 문제틀을 선취하고 있었던 작품이라는 소감도 들고요. 해당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고백하자면, 퀴어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도 그에 대한 이해가 크지는 못했습니다. 그때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을 스스로 구출하는 인물을 떠올렸지요. 자칫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소설을 통해 저 자신부터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소설의 화자가 남편과 그 연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먼저 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응원이 필요했을 테니까요. 개정작을 내면서 다행히 그 아쉬움을 담아 마지막 문장을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전과 후, 두 문장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뒤돌아보는 화자의 모습이 좀 더 본격적으로 드러나지요.

 

- 한편으로 푸른수염의 첫 번째 아내에는 1990년대 후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강하게 삼투되어 있기도 합니다. 대구 씨랜드 참사와 같은 사건이 직접적으로 다루어지기도 하고요(별 모양의 얼룩), IMF 직후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드리워져 있다는 인상도 들었습니다(와이셔츠, 고요한 밤). 그로부터 많은 것이 달라진 2025년의 지금이지만, 또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모순들도 여전하다는 감상이 듭니다. 최근 사회나 세계의 변화 속에서 작가님께서 (새롭게 혹은 꾸준히) 문학으로 응답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저의 이야기를, 저에게 영향을 주고 제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의 이야기를 씁니다. 세 자매 중의 장녀이고 아이들의 엄마이고 일하는 여성으로서요. 그들은 평화로운 일상을 바랍니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응원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저의 이야기를 씁니다.

질문하신 것처럼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참사에 관한 소설을 썼습니다. 그런데도 그 후에 참사는 반복되었지요. 분노하고 소설로 옮기면서도 계속되는 참사에 절망합니다. 그러나 다시 써야 한다고 믿습니다. 눈 돌리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 합니다.

 

-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작가님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해 주었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작가님의 신작을 기다리는 독자 분들을 위해, 현재 구상중인 작품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을 나누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연재를 하고 출간하지 못한 소설들이 많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시의성에서 빛바랜 옷감처럼 낡아버리고 말았지요. 그러나 그 중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것에 대해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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