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영희(김아직) 아동청소년문학가, 동화의 독자는 전 연령
- 작성일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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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독자는 전 연령
아르코 문학 작가 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최영희(김아직) 아동청소년문학가 (인터뷰어 : 최다영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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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직’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최영희 작가의 ‘부캐’다. 바리공주나 이계 여행담, 하면 이 작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최영희로도, 김아직으로도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2013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주요 수상 경력으로엄 2013년 푸른문학상, 2014년 한낙원과학소설상과 창비청소년문학상, 2016년 SF어워드 단편부문 우수상, 2017년 교보스토리공모전 장편소설부문 우수상, 2019년 황금가지 ZA문학상 우수작, 2023년 보슬비SF 동화부문 추천작, 2022년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 우수작, 2023년 황금드래곤문학상을 들 수 있다. 또한 대표작 '써드'(2020)와 '이끼밭의 가이아'(2023)가 문학나눔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이력이 있다. 2025년에는 6월에 소홀도서관에서 ‘써드1' 최영희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문학 강연을 진행했으며 최근에는 '지옥으로 반지를 배달합니다'(2025)라는 이계 판타지물을 출간했다.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자료 조사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 수밖에 없게 된다. 이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에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김아직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24년 상반기부터 비교문학자이자 옛이야기 연구가인 김환희 선생님과 바리공주 신화를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바리공주 신화를 SF판타지로 재해석한 장편소설 <공주님이 부르시니>를 브릿G에 연재했고, 그 작품을 원전으로 하는 스핀오프 장편동화 <지옥으로 반지를 배달합니다>를 25년 10월에 출간했습니다.
<지옥으로 반지를 배달합니다>는 10대 청소년인 배리안이 새엄마의 세 번째 새엄마였던 망자 김성인 할머니에게 연꽃반지를 전하러 지옥으로 향하는 이계여행담입니다. 전체적으로 바리공주 신화를 오마주한 작품으로 바리공주 신화의 혁명성을 이어받고자 했습니다. 바리공주가 염라대왕의 목전에서 지옥의 철벽을 무너뜨리고 죄인들을 구제하는 혁명을 감행했듯이 배리안도 혈통의 한계를 벗어난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염라대왕 앞에서 증명해 보임으로써 지옥에서 무자귀신, 가족 없는 망자들이 받던 차별이 사라지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한편으로는 바리공주 신화에서 다소 아쉬웠던 여행의 ‘당사자성’을 배리안의 이야기에서는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바리공주가 자신이 아닌 부모를 위한 여행을 떠났다면 배리안은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도 서로 사랑할 수 있는지, 자신을 위한 답을 찾기 위해 지옥으로 떠납니다.
바리공주는 친부모에게 버려진 뒤 태양서촌의 비리공덕 할미 할아비 손에 자란 입양아였습니다. 그래서 바리공주 신화가 재혼이나 입양을 통한 확장된 가족의 의미를 되묻기에 좋은 원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옥으로 반지를 배달합니다>가 바리공주 신화를 독자님들께 더 친근하게 전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창작지원금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전까지 창작지원금 신청에 공을 들이지 않았던 건 작가로서 출간 기회를 충분히 누리는 편인 데다 부수입도 있었기 때문에, 나보다 더 필요한 작가님들께 기회가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전업작가가 되면서 몇 년 동안 전업의 어려움을 실감하며 지내왔습니다.
전업이 된 후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단발 계약과 마감에 급급해서 연구와 창작이라는 장기 플랜을 세우기 힘들다는 점이었습니다. 내가 정말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 몰입하고 공부하고 장편소설로 완성한다고 해서 꼭 출간으로 이어지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작가 펠로우십은 그런 두려움에 맞서 장기 플랜을 세우고 몰입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바리공주 신화를 연구한 건 작년부터이지만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본격 창작에 들어간 건 아르코 작가펠로우십에 선정된 이후입니다. 논문 DB를 드나들고, 헌책방을 돌며 품절 도서를 사 모으고, 관련 강의들을 찾아 들으며 바리공주를 모티브로 한 장편소설 1편, 장편동화 1편, 단편소설 2편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바리공주를 연구하고, 다양한 이야기로 변주하면서 작가로서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장편소설 <공주님이 부르시니>는 브릿G 편집부 추천작이자 제8회 황금드래곤 예심작으로 선정되었고, 장편동화 <지옥으로 반지를 배달합니다>는 10월에 출간되어 독자님들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바리공주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추리단편 2편도 장르문학 출판사와 앤솔러지 계약을 맺은 상태입니다. 작가 펠로우십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도전이며 결과들입니다.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펠로우십 신청 당시 제출했던 기획안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그중 하나가 앞서 말씀드린 바리공주 신화 관련 창작물들이었고 두 번째 기획안은 SF단편동화집이었습니다. 기존에 웹진 <비유>와 <벙커>에 발표했던 두 작품으로 창비교육 출판사와 계약을 했고, 작가 펠로우십 선정이 된 뒤에 4편의 신작 단편을 써서 여름에 원고를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일러스트가 들어가는 어린이책의 특성상 연내 출간이 어려워서 26년 1-2월로 출간이 미루어졌습니다. 자연스레 SF단편동화집과 관련한 프로젝트도 내년으로 미루어졌고요.
26년 상반기에 SF단편동화집이 출간되면 작품집 창작과 SF창작 일반에 관한 신인작가 무료 강연 투어를 계획 중입니다. 이번 펠로우십 지원작가 선정에 수상이력이 상당부분 반영되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신인작가보다는 기성작가들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지원작가로 선정된 뒤, 어떤 식으로라도 이 혜택을 신인작가님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역별로 신인작가 혹은 작가지망생 4-6명 정도 엮어서 사전에 시놉시스를 받은 뒤, 강연 당일 1부는 창작강연, 2부는 시놉시스 합평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런 식으로 서울 경기권, 충청권, 전라도, 경상도를 돌며 5회 내외로 전국투어를 할 계획에 있습니다.
작가 개인으로는 SF창작을 활발히 이어갈 예정입니다. 26년 1월에 출간 예정인 SF단편집이 비인간 소재 단편집이어서, 단편집 이후로도 비인간이 주인공인 SF장편동화를 창작, 출간할 계획입니다. 현재 트리트먼트를 완성하고 1/3 정도 원고를 진행했기 때문에 연말까지 마감을 하면 내년 하반기에는 출간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 최근 몇 년간의 작품을 돌아볼 때, 작가님이 스스로 인식하는 창작의 변화 혹은 전환점은 무엇인가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동화와 청소년소설 창작에 집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린이나 청소년의 정서나 이해도에 맞지 않아서 작품이 되지 못한 시놉시스가 쌓였습니다. 그 시놉시스들 또한 작가인 저의 일부인데 그냥 방치되다 버려지는 게 속상했습니다. 작가로서 저의 일부가 파괴되는 느낌도 들고요. 그래서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에 아동 청소년물로 살리지 못했던 시놉시스들을 꺼내어 단편부터 하나씩 완성해서, 황금가지 장르문학 플랫폼 브릿G에 올렸습니다. 그때 처음 올렸던 단편 [김문조의 스케치]가 편집부 추천작으로 선정되었고, 그 작품을 비롯하여 전체 열두 편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집 <낙석동 소시민 탐구일지>를 전자책으로 출간하기로 황금가지출판사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김아직이란 필명을 사용했습니다. 내게는 아직도 쓰고 싶은 글들이 많이 남았고, 작가로서 내 최고의 날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의미를 담은 필명이었습니다. 그 후로 브릿G에서도 활동하고, 김아직이라는 필명으로 장르소설들을 발표하면서, 어린이 청소년소설가 최영희와 장르소설과 김아직의 삶을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로서 제2라운드에 들어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 세계는 서로 대립되거나 철저히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바리공주 신화에 푹 빠진 뒤로 김아직이라는 이름으로는 20대 영어덜트 독자를 타깃층으로 한 <공주님이 부르시니>라는 장편을 소화했고, 최영희로서는 <지옥으로 반지를 배달합니다>라는 초등 고학년 대상 장편동화를 출간했으니까요. 요즘은 동물권을 깊이 두드리고 있는데 바리공주 신화와 마찬가지로 두 세계를 오가며 동물권에 관한 SF단편집과 SF장편동화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 창작을 지속해 오면서 ‘쓰는 이유’나 ‘문학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몇 년 동안 개인적으로 여러 일들을 겪었습니다. 멀고 가까운 죽음들을 보았고요. 그 시기를 거치며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 아프고 고장이 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건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정상성의 견고한 기준으로 삼는 누군가가 있다면 주변인들을 숨 막히게 만들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요. 결국 중요한 건 누가 얼마만큼 자신의 고장난 부위와 증상을 잘 컨트롤하느냐 아니냐인 것 같습니다. 제게 글을 쓴다는 건 그 환부들을 드러내어 건드리고, 깊이 헤집고, 때로 위로하는 작업입니다. 결국 창작이란 작가 스스로, 나아가 독자들을 환부와 마주보게 하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소설가들은 ‘낯설게 하기’라는 기법으로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그렇게 제시된 새로운 관점과 시각을 거쳐 결국은 우리의 환부에 도달하게 하는 작업이 문학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처음 창작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기승전-재미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문학의 유희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던 시기였죠. 지금도 그 생각에서 아주 벗어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재미 끝에는 환부와 마주보게 하는 단계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누군가를 위한 용비어천가를 지을 수 없습니다. 작가들은 높은 확률로 아프고 고장난 것들에게 끌리거나 혹은 정상이라 칭송되는 존재들에게서 곪은 부위를 찾아내는 존재들입니다. 평범한 작가1인 저 역시 그 환부의 핵심을 파고들고자 오늘도 부족한 문장들로 노트북 화면의 여백을 채워나가고 있습니다.
- 최근 사회나 세계의 변화 속에서 작가님이 특히 문학으로 응답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욕망’과 싸우는 중입니다. 정확히는 욕망이란 단어에 환멸을 느끼고 있습니다. 시놉시스를 쓰면 ‘그래서 주인공의 욕망은 무엇이냐? 주인공의 욕망은 어떻게 좌초되는가?’라는 질문이 따라옵니다. 저 스스로도 질문하고 편집자님께 질문을 받기도 하고요. 이게 규명되지 않으면 그 세계로 입장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듯이 말이지요.
민중의 욕망이 좌절당하던 시대나 청소년의 욕망이 억압당하던 시대에는 ‘욕망이 무엇이냐?’가 우선적인 질문으로서 가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욕망 과잉의 시대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현실의 지구는 6차 대멸종의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인간 세상은 ‘너의 욕망을 성취하라’라는 자본주의적 도그마에 빠져 빅히스토리의 맥락을 놓치고 있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제 작품에서 인간의 욕망을 덜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비인간 주인공을 더 많이 등장시키려고 하고요. 대상화된 비인간, 결국에는 인간의 성장에 기여하는 비인간 말고, 온전히 그들의 목소리로 서사를 주도하는 글, 인간의 욕망보다는 대멸종 시대 지구의 환부를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26년도 상반기에 출간될 SF단편동화집도 비인간 주인공들의 서사로 채워졌습니다. 올해 작업하여 내년 하반기나 27년 상반기에 출간될 단편집(김아직)도 멸종동물을 포함한 여러 종의 동물 주인공들이 끌어가는 서사입니다.
- 디지털 플랫폼 시대, 독서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오늘날 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독자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결국 나와 결이 맞는 독자들을 찾아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최영희 이름으로 발표하는 책들은 어린이청소년 독자가 많다 보니 여전히 종이책 선호도가 높습니다. 동화 같은 경우는 베드타임 스토리로 활용되는지 오디오북 수요가 있고요. 반면 김아직 이름으로 발표되는 장르소설들은 밀리의 서재 같은 구독형 독서 플랫폼 독자들이 훨씬 많습니다. 나와 결이 맞는 독자들이 있는 곳이 책마다 다른 셈이지요.
예전에는 독서가 책과 나, 개인적인 조우였다면 지금은 철저히 연대의 시대인 것 같습니다. 독자들은 자신과 같은 책을 읽은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자 합니다. 댓글을 주고받고, 리트윗을 하고, 굿즈를 소비하면서요. 같은 뮤지컬 작품을 N차 관람하는 뮤덕들처럼 문학 독자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N차 소비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연대가 우리 문학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봅니다. 독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시대에, 그 연대의 힘으로 문학이 버텨내는 것이지요.
작가들 입장에선 무엇보다 독자들이 즐겁게 연대할 만한 작품들을 써내는 게 중요할 것이고요. 이어서는 독자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극내향 작가여서 외부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앞으로는 독자들과의 스킨십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아르코 인터뷰도 너무 소중한 기회이고요.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 뮤직비디오로 치면 비하인드신(BTS)을 독자과 나누며, 작가인 저도 그 연대의 일부가 되고자 합니다.
- 지금의 젊은 작가 세대-후배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젊은’이란 수식어보다 ‘이제 막 작가의 길에 들어선’이라는 수식어가 나을 것 같아요. 창작의 길에서 나이는 어떤 기준도 되지 못합니다. 중년의 나이에 창작의 길에 들어선 작가들도 신인의 패기가 있고, 몹시도 풋풋한 작품들을 써내거든요. 반대로 이제 삼십대 초중반이어도 오래 글을 쓴 작가들에겐 중견의 무게나 매너리즘이 있고요.
이제 막 작가의 길에 들어선 분들께 건네고 싶은 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공부를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작가는 지식책을 많이 읽어야 날것의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얻는 영감은 이미 누군가의 필터를 거친 것이어서 순도가 떨어집니다. 그래서 작가는 소설보다 두 배, 세 배의 지식책을 읽어야 합니다. 어떤 글감에 꽂혔을 때 기존 출간작이나 영화, 웹툰 등으로 레퍼런스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관련 지식책을 파고들기를 권합니다. 그러면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흥미로운 글감이 생기면 어떤 식으로든 작품화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무언가에 흥미를 느낀다는 건 나의 인생이 그 소재에 반응했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 글감을 그냥 지나치면 언젠가 큰 상처가 되어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나의 일부를 외면하고 지나쳤으니까요. 당장 건드리기에 너무 벅찬 글감이라면 뒤로 미룰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원칙은 어떻게든 작품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작가는 스스로 만든 징검돌을 디디고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내놓든 아니든 우리가 쓴 작품만이 우리의 징검돌이 될 수 있습니다.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글감은 작품이 되어야 합니다.
신인작가님들 모두 응원합니다.
- 독자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작가님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해 주었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서 5번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지구의 생태환경에 대해 그리 낙관적이지 못한 견해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개별인간보다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과 다른 생물종 전체의 환부를 들여다보는 작품들을 많이 쓰려고 합니다. 앞으로 출간될 작품에 담길 비인간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아동문학을 쓰는 일은 어떤 특별한 기쁨을 경험하게 하나요? 작가님께 아동문학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어린이청소년 문학에 입문하기 전에도 십대가 주인공인 작품을 좋아했습니다. <헝거게임>, <메이즈 러너>, <퍼시 잭슨>, <해리 포터> 시리즈의 팬이었어요. 사회적 포지션이 정해지지 않은 십대의 눈으로 세상의 곪은 구석을 목격하고 투쟁하는 서사는 모든 연령의 독자들에게서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십대 시절을 거쳐왔으니까요.
다만 일반 성장소설과 청소년문학은 조금 다릅니다. 일반 성장소설은 작품이 누군가의 후일담, 회고담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청소년문학은 당장 내일 일조차 알지 못하는 주인공의 현재진행형 서사입니다. 그 불안과 긴박함이 주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작가로서 그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는 건 좋은 무기를 쥐고 전쟁에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린드그렌의 <삐삐 롱스타킹>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전연령의 사랑을 받는 작품입니다. 저는 그게 어린이문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동화작가들은 일차적으로 어린이들을 위해 글을 쓰지만 실은 전연령을 향해 열려 있는 글을 쓰는 직업군입니다. 제게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쓰는 의미와 기쁨은 바로 독자입니다. 또래 청년, 또래 장년, 여성으로 국한되지 않고 모두를 향한 글.
제가 생각하는 어린이 청소년문학의 독자를 표현하기 위해 언젠가 쓴 <현아의 장풍>이라는 작품의 작가의 말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나는 늘 영어덜트소설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쓴다.
영어덜트소설 독자가 단순히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의 독자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유년의 벌판을 가슴에 담아두고서 가끔씩 꺼내보는 당신, 불의한 장벽을 두고 보지 않는 당신, 가끔씩은 혼자 펑펑 울다가 컵라면에 물을 받는 당신, 우회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무작정 부딪치고 직진하는 당신. 그 모두가 영어덜트소설의 독자이며 나 역시도 그들 중 하나다.
그대도 바람 부는 벌판에서 왔나요?
그렇다면 그대를 할퀴고 간 바람을 기억해 두세요.
그 아릿한 통증은 곧 장풍이 될 테니……”
- SF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는 '구달'(2017)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중 달이는 MS미스터리협회의 신입 요원으로 입사한 뒤 생체실험의 배후를 조사하게 됩니다. 달이가 안쓰러우면서도 감동과 여운이 오래 남는 작품이었어요. 이 소설뿐만 아니라 작가님의 여러 소설에서 SF 스릴러가 그려집니다. 작가님께 SF는 무엇인가요?
SF가 지니는 확장성을 좋아합니다. 소재의 확장성, 서사의 확장성, 시공의 확장성. SF가 아니면 우리가 어떻게 여러 은하 문명들이 충돌하는 스페이스오페라를 쓸 수 있겠습니까. 그 낯선 세계가 주는 경이감에 독자로서 또 작가로서 늘 가슴이 뜁니다.
제가 판타지보다 SF를 선호하는 이유는 평범한 인간도 그 현실에 맞서서 무언가를 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마어마한 흑마법사가 내가 사는 도시를 점령해 버렸다면 마법사가 아닌 인물들은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퍼지거나, 외계인이 침공했다면 백신이라도 찾아보고, 쇠방망이를 들고서라도 외계인과 한 번 싸워볼 여지가 있습니다. SF도 넓게는 환상문학에 속하지만 그래도 판타지와 달리 한 발은 땅에 붙이고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편의 SF를 썼지만 그중에서도 <인간만 골라골라 풀>, <칡>, <구달>, <써드> 등은 재난극으로도 보이는 서사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국지적 혹은 전지구적 재난에 맞선 주인공의 허술하면서도 집요한 투쟁을 담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에 대한 은유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우리는 내가 초래하지 않은 재난에 휘말릴 때가 있습니다. 그때 숨거나 달아나는 방법도 있겠지만 누군가는 구달처럼 재난을 직시하고 싸우고자 할 것입니다. 최종적인 승리를 쟁취하지는 못하더라도 하는 데까지 해보는 인물들의 이야기, 저의 SF는 그들을 위한 헌사입니다.
- 미스터리 스릴러를 주로 집필하는 ‘김아직’으로 활동하고 계시기도 합니다. 활발히 다작을 이어나가는 에너지가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지는데요, ‘최영희’일 때와 ‘김아직’일 때 어떠한 구분을 두고자 노력하시나요?
최영희는 일차적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글을 쓰는 작가입니다. 그래서 치열하게 자기 삶을 관통해가는 10대들의 이야기나, 10대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소재들을 주로 씁니다. 물론 동화의 독자는 전연령이기 때문에 독자가 인생의 어느 시기에 읽어도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현재 최영희는 환경재앙에 맞서는 십대들의 이야기를 담은 SF와 로맨스 성장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반면 김아직은 독자보다는 이야기 자체에 집중하는 장르소설가입니다. 어린이들이 보기에 잔인하지 않을까, 어렵지 않을까 하는 고민들을 내려놓고 내가 흥미를 느낀 소재나 철학 자체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현재 김아직은 서양중세를 배경으로 한 기담집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기담집, 평행우주론을 바탕으로 한 비인간 소재 단편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요즘 읽고 계신 책이나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독자분들께 어떤 책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현호정 작가님의 <한 방울의 내가>를 추천합니다. 작품집의 모든 작품들이 훌륭하지만 그중에서도 표제작인 [한 방울의 내가]는 다들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의 전작 <고고의 구멍>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한 방울의 내가]를 보고는 또 한 명의, 마음을 의지할 작가를 찾은 느낌이었습니다. 구병모, 조예은 작가님에 이어 현호정 작가님을 최애로 영입하는 순간이었어요.
[한 방울의 내가]는 누군가의 눈물이었던 내가 물의 순환이라는 흐름과 인생을 거쳐 그 눈물의 주인공을 다시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입니다. 어느 날 아침 독서로 이 작품을 읽고 너무 좋아서 그 자리에서 소리 내어 한 번 더 읽었습니다. 문장도 좋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바람이 드나드는 쉼들도 좋습니다. 그래서 꼭 연극무대에서 1인 낭독극으로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염혜란 배우님을 캐스팅하고 싶습니다. 원래 최애작가들 작품에는 이렇게 오지랖을 부려보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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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문학의 곁]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 원고를 읽고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북디자이너(@yj.archive) 권예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파주로 향한다. 꼬박 40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하는 곳은 유난히 나무가 빽빽하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파주출판도시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 이 일을 해온 지도 벌써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평 남짓한 서재 책장 한편에는 유난히 가벼운 책이 있었다. 아버지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미국 페이퍼백이었는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눅눅하고 낯선 냄새가 났다. 그 옆으로는 규칙적으로 꽂힌 만화책들, 어린 손으로는 한 번에 들기도 버거운 역사책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종이 두께와 제본 방식의 차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어떤 책은 손에 착 감기고, 어떤 책은 자꾸 손에서 미끄러진다는 감각만 있었을 뿐이다. 중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친구와 경쟁적으로 소설을 빌려 읽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만큼이나 표지의 질감이나 판형이 주는 무게감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무지갯빛이 반사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까슬까슬 사포 같은 질감의 책도 있었다. 그렇게 직접 손끝으로 짚어보며,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낯설고 매력적인 감각을 좋아하는 취향이 생겨났다.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내 안의 두 다른 감각이 우연히 겹친 순간부터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며 텍스트를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늘 디자인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국어 시간과 미술 시간에만 눈을 반짝거리는 학생이었는데, 그 편식이 성인까지 쭉 이어질 줄이야.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마음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두 감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마침내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일 가슴이 뛰었다. 문학출판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내 디자이너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단편적인 이력만 보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막내 디자이너였던 내게 주어진 일은 멋진 프로젝트가 아닌 중쇄 진행과 광고 작업이었고, 자리에는 전원을 켜면 ‘윙-’ 하고 사무실이 떠나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형 맥이 놓여 있었다. 중쇄 작업을 하려면 어김없이 그 요란한 전원을 켜야 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괜히 동료들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버튼을 누르곤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나 집에서는 틈만 나면 단축키와 툴 사용법을 독학해야 했다. 정말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 내 퇴근 후 일상은 낯선 용어와 디자인 프로그램 튜토리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정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
- 권예진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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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 시드니·멜버른 도서관 탐방기 - 김성하(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담당자)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로 선정되어 7박 9일간의 호주 국외연수에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번 연수는 오랜 시간 도서관을 일터이자 삶의 공간으로 삼아온 사서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도서관과 문학, 문학과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살펴보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10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 상공에서 마주한 붉은 여명은 긴 비행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도착해서 처음 만난 생명체는 현지에서 흔히 ‘쓰레기새'라 부르며 홀대한다는 호주흰따오기, ‘아이비스(Ibis)’였다. 노천카페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남긴 빵 조각을 가로채는 녀석들의 모습은 낮선 도시의 첫인상을 도리어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어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를 마주하니, 비로소 이번 연수가 실감났다. 1. 시드니(Sydney):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도서관 문화의 현장 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가 한창 열리던 5월 21일,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을 찾았다. 1826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주 전체 도서관 서비스 개시 200주년을 맞이한 곳이다. 정문의 웅장한 사암 돌기둥이 인상적인 이곳은 1942년에 완공된 고풍스럽고 웅장한 구관 '미첼 빌딩'과 호주 이주 200주년을 기념해 1988년에 지어진 후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신관'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도서를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거대한 박물관이자 미술관의 역할의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웅장한 열람실은 벽면 전체를 채운 고서들과 클래식한 목재 책상, 아치형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지적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높은 곳의 책을 꺼낼 수 있도록 연결된 2층 구조의 난간과 계단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어린이도서관은 천장에 책들이 마치 새처럼 날아다니는 듯이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고, 독창적인 도서 소개 사인물은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서관의 자료는 관내열람만 가능하다. 법정 납본 제도에 따라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출판되는 모든 도서의 원본과 역사적 기록물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주립도서관의 핵심 임무이기 때문이다. 분실 위험이 있는 관외대출을 금하고 오직 관내 열람과 연구만을 허용하여 아카이브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었다. 도서관이 운영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Fellowship Program)'은 역사학자와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1,000AUD에서 최대 120,000AUD에 이르는 파격적인 창작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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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만난 호주[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30년 만에 만난 호주 김중석(시옷책방 상주작가) “호주라니!”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기대했던 해외연수의 행선지가 호주라는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전 해에는 유럽으로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호주라니. 하지만 연수를 하는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지금까지도 호주가 너무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여정에 많은 문화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고 새로운 창작을 향한 에너지와 영감을 듬뿍 채운 시간이었다. 사실 호주는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몇 팀의 신혼부부들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딘가에 내리고 밥을 먹고 멋있는 자연을 보며 감탄했지만, 자세한 것은 모두 다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기억에 선명한데 또 어디를 갔더라? 캥거루를 만나서 먹이를 주기는 했는데 이제는 어느 동물원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나의 호주는 아주 오래전 앨범을 뒤져야만 나오는 추억 속의 나라였다. 호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는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 코알라 그리고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멋진 공원들 그리고 원주민들의 미술이었다. 그때의 호주와 지금의 호주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맑고 청명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였다는데 다행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 ‘날씨요정’이 있었는지 여정 내내 좋은 날씨 덕분에 즐거운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오니 그때의 호주가 조금씩 떠올랐다. 커다란 나무들, 온통 영어로 만들어진 간판들(아주 당연하지만) 익숙함이 밀려왔다. 며칠의 여정 동안 인상 깊었던 몇 개의 장면들을 기억해 본다. 1. 라이온 킹 뮤지컬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우리 일정에는 뮤지컬 ‘라이온 킹’이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창작자로서 부끄럽지만 뮤지컬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공짜 티켓이 생겨서 다녀온 게 전부였다.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영화로는 보았던 것이니 대충의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다. (아! 영어의 벽. 이럴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해둘걸, 이라는 후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놀라웠던 모습은 극장의 분위기였다. 판매원이 돌아다니며 맥주와 음료와 음식을 팔고 옆 사람과 떠들고 인사하며 사진을 찍고 객석에서 바로 보이는 무대 옆쪽 매점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공연 전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집중적으로 본 것은 무대 미술과 의상이었다. 한정된 무대에서 공간을 변화무쌍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로 이루어졌을까? 무대의 일정 부분은 회전판을 사용하고 어떤 부분은
- 김중석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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