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희경 시인, 고독을 기다리는 겨울 시인
- 작성일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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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기다리는 겨울 시인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답변지 - 유희경 시인(인터뷰어 : 최다영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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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많은 시가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겨울의 시인’이라는 수식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시인은 단연 유희경일 것이다. 2008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유희경은 『오늘 아침 단어』(2011) 외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을 출간하고 여러 앤솔로지에 활발히 참여해왔다. 그중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2020)과 『겨울밤 토끼 걱정(2024)』이 문학나눔도서보급에 선정되었다. 2024년 겨울에는 그의 시 「대화」의 한 구절, “오늘은 볕이 좋다/아직/네가 여기 있는 기분”이 광화문글판에 선정되어 시민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2018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0년 현대문학상, 2023년 오늘의젊은예술가상을 들 수 있다. 2025년에는 『천천히 와』, 청소년시선 앤솔로지 『도넛을 나누는 기분』을 발간하였으며 문학주간 프로그램 '기형도 플레이'에 패널로 참여하였다. 현재는 문화일보에 ‘유희경의 시:선(詩:選)’을 연재하고 있다. 또 유희경은 ‘서점지기’이기도 한데, 2016년부터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을 운영 중이다. 국내에서 출간되는 대부분의 시집과 번역시집들을 만나볼 수 있는 위트앤시니컬은 많은 시인과 시 독자들의 자부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을 기념하여 혜화 위트앤시니컬에서 유희경 시인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책은 혼자가 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 말하는 그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보자.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제 기획들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시인-작가 일반은, 저 역시 그렇습니다만, 계약 순서에 따라 집필을 진행하고 책을 펴내지요. 그러다 보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어떻게 작업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게 됩니다. 어느 순간 문득 되짚을 뿐이지요. 이번 펠로우십 지원서를 준비하면서, 제가 하는 일, 제가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저의 작업이 가는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리를 하게 된 셈이지요. 그러다 보니 펠로우십이란 다년간의 사업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굳어지기도 했습니다. 지원 규모와 상관없이 말예요, 오랜 기간 함께하다 보면 작업의 일관성이 마련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지원의 방법과 규모가 보다 합리적으로 변경되겠지요.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기왕 시집이 번역된 만큼, 저 너머의 시인 독자 들과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이중언어낭독회라는 타이틀로 국내외 독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꽤 재미난 일이었습니다. 배우는 것도 많았고요. 이런 일들을 더 늘리려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음 시집 준비를 잘 준비해야겠다 싶기도 합니다. 등등 저는 욕심이 많은 편이고 저지르는 습성이 있어서 크고 작은 다양한 일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를 방향성의 측면에서 말씀드리자면, ‘수렴하는 방식보다 확산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테면 그림책출간 준비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장막희곡 등등의 집필 준비도 마찬가지입니다.
- 최근 몇 년간의 작품을 돌아볼 때, 작가님이 스스로 인식하는 창작의 변화 혹은 전환점은 무엇인가요?
결국 사후적 평가가 될 텐데 ‘자기 문학에 대한 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개인의 작업 –사유나 실천 모두에서- 에 대한 것이며 동시에 문학장 전체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되짚고 더 밀어붙이고 수정하고 지우고 덧붙이고 드러내고 들어내고, 하는 창작의 결과물이 쌓일 적마다 뒤따르는 반성은 저-문학-문학장 전체 스스로를 갱신하게 합니다. 반성의 반성의 반성이라고 할까요. 그러니 전환점은 매번 달라지고 새로워지는 셈입니다. 전제는 스스로에 대한 관심이겠죠. 새롭지 않으면 안 되는 문학의 숙명은 이에 있다고 생각해요.
- 창작을 지속해 오면서 ‘쓰는 이유’나 ‘문학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고지식하달까, 완강하달까. 하여간 제게 ‘문학의 역할’이란 고정되어 있습니다. 임무일 수도 있고 사명일 수도 있는데, 문학의 자리이자 역할은 ‘맨앞’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형식적 전위로 받아들여진다면 곤란합니다. (웃음) 철저히 본래적인 부분에 있어 맨앞이란 뜻이니까요. 맨앞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이외의 것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도 믿습니다. 여기서의 희생의 한 예는 상업적 유의미한 결과입니다. 한편 이 자리, “맨앞”을 고수할 수 있으려면 문학 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 되어야 하지요. 이렇게 생각을 해야 ‘지속적인 쓰기’가 가능할 뿐더러 ‘그만 쓰기’라는 용기도 가능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
‧ 그럼 시 쓰기를 시작한 초기부터 그런 사명 의식을 가지셨나요?
그렇진 않았을 거예요. 시작할 때는 문학의 다양한 면모에 대한 바람과 욕심이 컸겠죠. 다시 말해 팔리고도 싶고 널리 읽히고도 싶었습니다. 인정을 받고 싶고 명예를 얻고 싶기도 했죠. 책을 펴낼수록 나의 일이 불특정 다수에게 가닿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의 막막함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꺾이고 버리고 난 다음 남은 최후의 단어가 ‘첨단’(“맨앞”)이었어요. ‘사명’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쓸 수 있을 때, 써야 할 때 써야 하는 것이 글이고 제겐 문학인 것이죠.
- 최근 사회나 세계의 변화 속에서 작가님이 특히 문학으로 응답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요즘은 개인성의 회복에 관심이 많습니다. 잘못된 응집의 결과값을 체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선 개인을 회복해야 한다고 믿어요. 우주 속의 나, 윤리와 도덕의 측면에서의 나, 존엄과 의무를 지닌 존재로서의 나, 그러니까 문학으로서의 나를 의미합니다. 너덜너덜해진 개인성의 회복은 타자성에 대한 회복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윤리와 도덕 재확립 기회가 되기도 할 테지요.
- 디지털 플랫폼 시대, 독서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오늘날 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독자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플랫폼의 변화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아니, 부정적이죠. 디지털 플랫폼이 텍스트 친화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접근 방식 자체가 아주 다르니까요. 자칫 낙관론으로 빠질 수 있어 경계하긴 하지만, 독서는 그 자체로 유지되다가, 플랫폼과 무관하게 멸절될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디지털 환경이 관심을 쏟는 쪽은 아카이브가 아닌가 합니다. 그 말이 그 말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아카이브된 무언가를 살필 수 있는 곳이 플랫폼이니까요. 하지만 ‘독서’라는 행위는 저장된 정보를 살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지 아주 오래되었지요. 오래된 것이 어처구니없도록 쉽게 사라지는 것을 우리는 수차례 목도했습니다만, 아주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적어도 제가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건 확실하죠. 그래서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제가 할 일을 수행하는 중입니다.
- 지금의 젊은 작가 세대―후배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세대 간의 교류의 의미가 이미 희미해진 이상, “젋은 작가 세대-후배들”의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건 자연한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네고 싶은 말도 제겐 없습니다. 어쩌면 남아 있지 않은 것인데, 무엇이 있었는지 이젠 잘 모르겠습니다.
- 독자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작가님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해 주었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없다고 해도 되겠지요. 앞서 말씀드린 바대로 제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개인성의 회복이라는 큰 그림 안에서 보았을 때 독서라는 행위를 통한 수용에 유효한 바람은 기도뿐입니다. 저의 기도 내용이라면, 부디 부정적인 것이 생겨나지 않기를, 있더라도 그저 오해이기를,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 최근 첫 시집 『오늘 아침 단어』가 영미권에 번역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번역가 안수연님과의 일화가 소개되는데요, “나중에 영역판 해설을 보는데 ‘이 친구한테 이해받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언급이 인상 깊게 다가왔습니다. 번역이 이루어지는 과정도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해받는다는 기분은 어떤 것인가요? 시가 이해받는 것과 시인이 이해받는 건 어떻게 같고 또 다를까요?
시에 대한 질문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시에 대한 ‘정답’은 그 자체로 비밀스럽고 수용자(독자)의 체계 내에서 다양하게 해결되어야 하는 무언가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번역 과정에서는 위와 같은 통념이 허용되지 않더군요.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고 저 역시 답변할 생각이 없었던 질문들, 그것을 통해 번역이란 사건이 일어나야 하는 것이었어요. 단어마다 문장마다 선택을 해야 되는 거니까요. 그 무수한 질문은 에둘러, 더러는 곧장 제게로 향했습니다. 이를테면 제가 첫 시집을 낼 때 저를 둘러싼 환경이나 저의 내적 풍경, 저희 관계를 마주 다 끄집어내야 했고 스틴, 그러니까 수연 씨는 이를 들어야만 하는 입장에 놓인 거지요. 그렇게 번역이라는 과정을 수행을 했어요. 책이 나오고 해설을 보니 그냥 듣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걸 두고 치열한 분투를 했더군요. 저와 관련된 온갖 리뷰나 비평이나 해설 같은 것들, 신문 기사 같은 것들도 놓치지 않고 번역을 해서 스스로 그걸 읽고 나름대로 소화를 하려 했던 거죠. 상호 이해에는 알려진 바대로 대단히 다층 다면적인 면모가 있어요. 과거의 유희경과 현재의 유희경, 미래의 유희경에 대한 기대, 그러니까 유희경이라는 사회문화인류학적 맥락을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다른 언어를 통해 품으려 노력하는 번역이란 과정에는 이 피곤하고 어려운 일이 무조건 수행되어야 하더군요. 이토록 분주하게 또 열심히 누군가가 나를 아니 내 시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을까. 없는 것 같아요. 두 번 또 경험할 수 있는 일일까 싶기도 하고요. 아무튼 스틴 안, 안수연이라는 사람의 어떤 집요함과 재능이 섞여서 만들어진 근사한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러게요, 그 집요함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네요. 그럼 최근 번역시집을 가지고 이중 낭독을 하셨는데 그건 어떤 경험으로 다가왔는지 궁금합니다.
떨었습니다. 첫 낭독회 할 때의 떨림이 거기에 있더라고요. 첫 낭독회는 강제 철거를 앞두고 이를 막아서고자 하는 자리였어요. 거기서 제가 처음으로 남들 앞에서 시를 읽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라는 흥분과 부끄러움이 혼재되어 심장이 터질 듯했지요. 그런 기분을 이중언어 낭독회에서 느꼈어요. 한편 부러운 열기도 느꼈습니다. 정말 코어 독자들만 남아 있는 세계가 뿜는 묘한, 뜨겁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더군요. 정말 그들은 이곳의 시를 알고 싶어 했어요. 동시에 한국시가 얼마나 좋은 풍토 내에서 자생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깨닫기도 한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자족적이라는 생각은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현재 미국에서 시를 쓰고 있는 친구들의 시를 우리가 번역하려고 하는가, 번역해서 읽어보려고 하는가. 최소한의 관심이라도 있는가. 의문이 들었고, 이는 또 결국 어떤 기획에 대한 아이디어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웃음) 이 경험을 보다 나은 시 읽기 환경을 만드는 데 써보려고 해요.
- ‘작란’ 동인은 어떻게 결성되었으며 동인 활동은 시인 유희경에게 어떤 경험으로 기억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동료들과 함께 시를 읽고 쓰는 일, 시를 통해 연결되는 일은 삶에 어떤 특별함을 안겨주었나요?
실질적으로 동인은 서로에게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주곤 하죠. 외력을 견디게 해주기도 하고, 힘이 필요할 때 기댈 어깨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취향의 공동체가 되기도 하죠. 좋음, 좋지 않음을 판단할 때 그 준거 마련에 있어 동인들의 의견은 귀한 참고 자료가 됩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 어떤 의견이나 현상을 받아들일 때 ‘우리(동인)’라는 관념은 훌륭한 나침반으로 변신합니다. 신기하게도 그 시효가 다된 다음에도 그러니까, 각자가 한 사람 몫의 시인으로 자라 나름의 경험을 통해서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되어 예전만큼의 결집력이 없게 된 다음에도 ‘우리’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지 않고 저 깊은 곳에 남아 있습니다. 형제애 같다고 할까요. 평소 연락도 하지 않고 살지만, 중요하고 긴급한 일이 있을 땐 기꺼이 연락을 주고받고 금방 관계를 회복하게 되는 사이 말예요. 작란은 저에게 그런 장소, 존재입니다. 존경하고 존중하는 저의 동료-형제들이 거기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읽고 이해하는 것은 시가 아니라 세계입니다. 그들은 저와 함께 쓰지 않지만 기꺼이 저의 시를 읽어주고 받아들입니다. 이는 ‘연결’보다 더 단단한 무엇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저와 함께 숨쉬고 있고 아마도 우린 헤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행갈이가 없는 산문시를 주로 쓰시는데 이러한 형식은 유희경의 시 세계에서 어떤 필요에 의해 정착되었을까요?
제가 이와 같이 평가된다는 걸 몰랐습니다. 질문을 받고 펴낸 모든 시집을 꺼내 훑어보았습니다. 제 눈에는 아닌 것 같긴 한던데.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문시가 많게 된 까닭에는 제 방식으로 수용한 오규원의 시론 영향이 클 거라고 짐작합니다. 하나의 국면으로서의 시 쓰기. 제 시에 마침표가 붙지 않는 것도 이와 관계가 있습니다. 시 자체를 정면으로 겨냥을 하는 게 아니라 에두르는 방식으로 시적인 것에 대한 탐색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와 같은 쓰기로부터 좀 멀어졌는데, 세 번째 시집까지는 기억과 국면에 의거하는 쓰기,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상상한 것을 쓰기를 유지했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원형성에 더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형식으로도 차이가 생겨납니다. 같은 산문시여도 다른 산문시인 셈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보다 본격적인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 아침달 1번 시집으로 「당신의 자리―나무로 자라는 방법」(2017)이 출간되었습니다. 아침달 출판사의 첫 번째 시집인 만큼 시집을 출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집니다. 이 시집에서 나무 연작을 쓰시게 된 연유도 듣고 싶습니다.
이 시집은 2013년 전시를 위해, 대림미술관의 제안으로 펴냈습니다. 제 나이만큼의 나무 의자를 두고 각각의 자리에 시를 한편씩 올려두었죠. 한 편 한 편의 시를 나이테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연히 나무 연작이 되어버렸죠. 성황리에 전시를 마쳤고 마련한 500권의 시집은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이를 디자인 회사인 ‘디자인수다’ 손문경 대표가 안타까워했어요. 훗날 출판사를 시작하게 되면 이 시집을 다시 펴내게 해달라고 요청했죠. 2017년에 정말로 출판사를 시작했는데, 그게 아침달입니다. 첫 단행본으로 이 시집을 선택하더라고요. 더 이상 전시에 복무하지 않는 시집이므로 그에 맞게 대폭 수정을 했습니다. 1년 뒤에 아침달 시인선이 시작되었고, 자연스럽게 –실은 조금도 자연스럽지 않은 일이죠- 제가 1번 타이틀을 갖게 되었습니다. 손문경 대표의 배려와 아침달 큐레이터들의 용인 덕분일 겁니다. 아무튼, 그때에는 또 시리즈에 맞게 약간 손을 보았습니다. 이 시집은 증쇄할 때마다 제 나이만큼의 시를 보태는 방식으로 기획되어 있어요. 그래서 쇄마다 시의 수가 늘어나죠. 운이 좋아 제법 많은 시들을 보탰는데, 최근 1, 2년 간은 증쇄를 하지 못했네요. (웃음) 첫 시집 무렵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제 시 스타일의 변천사를 구경할 수 있는 시집이에요.
- 시집만큼이나 많은 에세이집을 내기도 하셨습니다. 그중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2021)은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을 운영하며 겪은 일화들을 묶은 것이라 할 수 있겠죠. 낭독회가 끝난 뒤 모두가 떠난 자리에 혼자 앉아 있을 때 “나의 돌멩이는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면 그 소리는 참 나를 닮아 있다”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았어요. 그때의 기분은 어떠한가요? 그 시간은 시인 유희경에게 왜 필요하며 어떤 특별한 충만함을 안겨주나요?
비단 낭독회뿐은 아니에요. 매일매일 영업을 마친 뒤 아무도 없는 서점에 오도카니 남아 있는 상태를 좋아합니다. 실은, 저는 사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러니, “충만함”은 “혼자”와 연결되어 있는 감정이 아닐까 합니다. 비로소 혼자로 돌아왔다는 사실. 제겐 하루를 잘 보냈다는 뜻과 같습니다. 이를 일종에 회복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서점의 분주함은, 서점주 유희경에게 좋은 일이지만, 시인 유희경에게는 해로운 일이 아닐까, 라는 극단적인 상상도 해보곤 합니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거예요. 상응하는 관계겠죠. 이것도 운명 아닐까 싶어요.
- 2022년 이병국, 박혜진 선생님과의 특별좌담에서 당시 한국시에서 도드라지는 현상으로 ‘환상성’, ‘여름 이미지’에 주목하신 바 있습니다. “두근거리며 아름답고 반짝이는 청춘의 계절을 다른 방식으로 복원하고 있는 것”이라 진단하면서요. 그렇다면 2025년 가을인 지금 한국시에서 눈에 띄는 현상은 어떤 것인가요?
근래 제 눈에 띄는 가장 도드라지는 현상은 ‘문학 소비’입니다. 그런데 이를 경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언제나 있었던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도드라져 보이는 데에는 까닭이 있을 거라 짐작합니다. ‘환상성’, ‘여름이미지’를 두고 생각해보죠. 이 두 키워드는 시대성을 반영하겠지요. 동세대 사이 통용되는 화폐와 같은 공통 감각 말예요. 동시에 이들은 ‘잘 팔리는 코드’로 쓰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공통 감각은 절대적 지지를 받기 마련이지요. 시간 선상에 놓고 선형적으로 생각해보면 공통 감각으로 시작해 상업적 코드로 흘러가는 건 일반적이지만, ‘환상성’과 ‘여름이미지’의 경우 그 변환이 너무도 빨랐던 데다가 덮어놓고 지지하는 특징까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원론적인 이야기입니다만, 반성에 반성을 잇는 문학, 첨단의 문학은 성찰의 겨를을 빼앗겨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좋은 시집과 많이 팔리는 시집은 같지 않고 심지어 무관합니다. 문학의 성취를 판매 부수로 판가름 짓기란 어불성설임을 아마 이 인터뷰를 읽는 사람이라면 모두 동의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식 건너편, 현실의 영역에서는 이와 같은 일들이 빈번하게 발설되고 자랑이 되니 이는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또다른 측면에서 문학은 말 그대로 고사枯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판매 부수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선택은 둘입니다. 온전히 거래 대상, 즉 상품으로 기능할 것인가, 이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인가. 극단적 상황 제시가 결코 아닙니다.
- 『겨울밤 토끼 걱정』(2023) 시집이 완성되는 기간 동안 유희경 시인에게 새롭게 생겨난 것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이 시집에서 가장 아끼는 시는 무엇인가요?
처음부터 세밀하게 기획된 시집이고 그래서 마음이 많이 갑니다. 일종의 시적 주장, 프로파간다라고 생각해주시면 기쁘겠습니다. 그래서 편편 모두에 역할을 부여해놓고 있고 한 편만 꼽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심지어 각 시의 제목도 기억이 나질 않네요. (웃음) 사실 모든 시의 제목이 부제 없이 ‘이야기’였습니다. 그럼에도 한 편을 꼽자면 「이야기-손바닥만 한 사진 한 장」입니다. 사적인 체험에 원형성을 부여하고 이를 아주 세밀하게 설계하여 텍스트화한 작업입니다. 이 시는 아까 제가 이야기했던 시적인 것에 대한 탐색의 범위를 국면 이상으로 확장을 시킨 예시입니다. 그래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하나의 장면으로 해소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로부터 소설의 서사와 시의 서사가 나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이야기를 원형성이라도 표현하는 데에도 무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집은 이에 대한 적극적 탐색입니다. 그러므로 한편으론 산문적 형식이 필연적입니다. 아까 유예했던, 세 번째 시집을 분기점으로 하여 나뉘어진 다른 산문시는 이와 같은 생각에 의한 분류입니다.
- 최근 청소년시선 『도넛을 나누는 기분』(2025)이 출간되었어요. 대상 독자가 청소년인 만큼 청소년시를 쓰면서 특별히 어떤 점에 유의하고자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청소년을 의식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청소년 시가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계단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청소년기 저를 떠올려보면 시는 모두 시였어요. 굳이 의식한 것이 있다면 ‘공통의 감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시를 써보자는 거였죠. 『도넛을 나누는 기분』은 두 종으로 출간되었는데, 하나는 청소년 시집선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판입니다. 저는 이렇게 나오는 것을 무척 반겼어요. 후자의 기획이라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었거든요.
- “나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시 쓰기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유희경의 시론에 대해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시론 집필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내년 미국에서 열리는 시 페스티벌에 참가할 예정인데, 그때 공개하려 합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라는 건 시 쓰기의 가장 기본 태도에 대한 언급입니다. 보지 못한 바, 듣지 못한 것, 생각해본 적 없는 무언가에 대해 말하려는 텍스트의 특성, 그에 의존하고 기대하려는 마음에 대한 경계이기도 합니다. 이를 포함한 다양한 태도들이 모여 하나의 시론을 이룬다고 가정했을 때, 이때의 시론이란 원칙 위에 세워진 변화무쌍한 무언가입니다. 그것은 시기에 따라 장소에 따라 몸을 바꾸죠. 그에는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 시인의 서로 다른 시집은 같은 맥락에 놓이지만,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지요. 지향하는 바도 다르고요. 이를 한 줄에 놓는 건 불가능하진 않더라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살펴보는 일이 그럴진대 표현하는 건 또 어떻겠어요. 그러니 시론을 작성한다는 건 조심스레 받아적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언급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 요즘 시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이 가을을 보내고 계신가요? 시인님의 눈에 담긴 이 계절의 아름다움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요즘 날씨를 보고 아름답다, 날씨 징후들을 보고 아름답다고 얘기하는 거에 너무 죄책감이 생겨서. 근데 겨울을 내 거라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라서, 겨울이 오고 있다는 조짐에서 설레고 있긴 합니다. 완전한 고립을 이번 겨울엔 이룩해내겠다,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 그러면서 시집을 팔아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습니다.
- 시인으로서 단 하나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막막한 질문이에요. ‘쓸 수 있음에도 쓰지 않는 상태’인 듯합니다. 여기서의 ‘쓰기’라는 것은 안팎으로 올바름을 지향하는 마음일 것 같다고 생각해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저는 시인이에요. 시인이란, 시를 쓴다는 조건이 성립될 때에만 시인입니다. 그러니 저는 시인 되기를 끊임없이 시도해야 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시인 되기를 그치거나 중단하면 저의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가 죽어버리는 거지요. 물론 저 역시 쓰지 않은 시간이 있습니다. 저의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그러니까 『당신의 자리 나무로 자라는 방법』은 그 직후에 바로 나온 시집이니까 『당신의 자리 나무로 자라는 방법』과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사이 긴 휴지기는 스스로에게도 용서받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아무도 몰랐겠지만요.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은 제법 많은 사랑을 많은 시집이지만, 이 시집을 살펴볼 때면 부대끼곤 합니다.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고, 나태하게 보낸 시절 이후의 시집이기도 하지요.
- 요즘 읽고 계신 책이나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독자분들께 어떤 책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매년 읽기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요. 올해는 도스토옙스키 장편을 모두 읽었습니다. 재밌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실은 읽지 않았던 책들, 주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들인데, 따라 읽는 이유는 다른 책을 풍부하게 읽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그런 책들은 수많은 책들에 인용, 재인용이 되곤 하죠. 그럴 때 맥락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아요. 아무튼,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은 추천할 만합니다.
- 프로젝트는 혼자 하시나요, 아니면 같이 하시나요?
책을 떼로 읽을 수 있나요. 요즘 교환독서가 유행이던데, 그러면 그 책은 어디로 가는지 늘 궁금하답니다. 책은 혼자가 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지 않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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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문학의 곁]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 원고를 읽고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북디자이너(@yj.archive) 권예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파주로 향한다. 꼬박 40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하는 곳은 유난히 나무가 빽빽하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파주출판도시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 이 일을 해온 지도 벌써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평 남짓한 서재 책장 한편에는 유난히 가벼운 책이 있었다. 아버지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미국 페이퍼백이었는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눅눅하고 낯선 냄새가 났다. 그 옆으로는 규칙적으로 꽂힌 만화책들, 어린 손으로는 한 번에 들기도 버거운 역사책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종이 두께와 제본 방식의 차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어떤 책은 손에 착 감기고, 어떤 책은 자꾸 손에서 미끄러진다는 감각만 있었을 뿐이다. 중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친구와 경쟁적으로 소설을 빌려 읽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만큼이나 표지의 질감이나 판형이 주는 무게감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무지갯빛이 반사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까슬까슬 사포 같은 질감의 책도 있었다. 그렇게 직접 손끝으로 짚어보며,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낯설고 매력적인 감각을 좋아하는 취향이 생겨났다.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내 안의 두 다른 감각이 우연히 겹친 순간부터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며 텍스트를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늘 디자인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국어 시간과 미술 시간에만 눈을 반짝거리는 학생이었는데, 그 편식이 성인까지 쭉 이어질 줄이야.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마음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두 감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마침내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일 가슴이 뛰었다. 문학출판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내 디자이너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단편적인 이력만 보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막내 디자이너였던 내게 주어진 일은 멋진 프로젝트가 아닌 중쇄 진행과 광고 작업이었고, 자리에는 전원을 켜면 ‘윙-’ 하고 사무실이 떠나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형 맥이 놓여 있었다. 중쇄 작업을 하려면 어김없이 그 요란한 전원을 켜야 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괜히 동료들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버튼을 누르곤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나 집에서는 틈만 나면 단축키와 툴 사용법을 독학해야 했다. 정말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 내 퇴근 후 일상은 낯선 용어와 디자인 프로그램 튜토리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정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
- 권예진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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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 시드니·멜버른 도서관 탐방기 - 김성하(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담당자)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로 선정되어 7박 9일간의 호주 국외연수에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번 연수는 오랜 시간 도서관을 일터이자 삶의 공간으로 삼아온 사서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도서관과 문학, 문학과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살펴보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10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 상공에서 마주한 붉은 여명은 긴 비행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도착해서 처음 만난 생명체는 현지에서 흔히 ‘쓰레기새'라 부르며 홀대한다는 호주흰따오기, ‘아이비스(Ibis)’였다. 노천카페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남긴 빵 조각을 가로채는 녀석들의 모습은 낮선 도시의 첫인상을 도리어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어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를 마주하니, 비로소 이번 연수가 실감났다. 1. 시드니(Sydney):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도서관 문화의 현장 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가 한창 열리던 5월 21일,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을 찾았다. 1826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주 전체 도서관 서비스 개시 200주년을 맞이한 곳이다. 정문의 웅장한 사암 돌기둥이 인상적인 이곳은 1942년에 완공된 고풍스럽고 웅장한 구관 '미첼 빌딩'과 호주 이주 200주년을 기념해 1988년에 지어진 후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신관'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도서를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거대한 박물관이자 미술관의 역할의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웅장한 열람실은 벽면 전체를 채운 고서들과 클래식한 목재 책상, 아치형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지적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높은 곳의 책을 꺼낼 수 있도록 연결된 2층 구조의 난간과 계단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어린이도서관은 천장에 책들이 마치 새처럼 날아다니는 듯이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고, 독창적인 도서 소개 사인물은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서관의 자료는 관내열람만 가능하다. 법정 납본 제도에 따라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출판되는 모든 도서의 원본과 역사적 기록물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주립도서관의 핵심 임무이기 때문이다. 분실 위험이 있는 관외대출을 금하고 오직 관내 열람과 연구만을 허용하여 아카이브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었다. 도서관이 운영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Fellowship Program)'은 역사학자와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1,000AUD에서 최대 120,000AUD에 이르는 파격적인 창작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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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만난 호주[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30년 만에 만난 호주 김중석(시옷책방 상주작가) “호주라니!”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기대했던 해외연수의 행선지가 호주라는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전 해에는 유럽으로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호주라니. 하지만 연수를 하는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지금까지도 호주가 너무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여정에 많은 문화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고 새로운 창작을 향한 에너지와 영감을 듬뿍 채운 시간이었다. 사실 호주는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몇 팀의 신혼부부들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딘가에 내리고 밥을 먹고 멋있는 자연을 보며 감탄했지만, 자세한 것은 모두 다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기억에 선명한데 또 어디를 갔더라? 캥거루를 만나서 먹이를 주기는 했는데 이제는 어느 동물원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나의 호주는 아주 오래전 앨범을 뒤져야만 나오는 추억 속의 나라였다. 호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는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 코알라 그리고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멋진 공원들 그리고 원주민들의 미술이었다. 그때의 호주와 지금의 호주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맑고 청명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였다는데 다행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 ‘날씨요정’이 있었는지 여정 내내 좋은 날씨 덕분에 즐거운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오니 그때의 호주가 조금씩 떠올랐다. 커다란 나무들, 온통 영어로 만들어진 간판들(아주 당연하지만) 익숙함이 밀려왔다. 며칠의 여정 동안 인상 깊었던 몇 개의 장면들을 기억해 본다. 1. 라이온 킹 뮤지컬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우리 일정에는 뮤지컬 ‘라이온 킹’이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창작자로서 부끄럽지만 뮤지컬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공짜 티켓이 생겨서 다녀온 게 전부였다.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영화로는 보았던 것이니 대충의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다. (아! 영어의 벽. 이럴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해둘걸, 이라는 후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놀라웠던 모습은 극장의 분위기였다. 판매원이 돌아다니며 맥주와 음료와 음식을 팔고 옆 사람과 떠들고 인사하며 사진을 찍고 객석에서 바로 보이는 무대 옆쪽 매점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공연 전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집중적으로 본 것은 무대 미술과 의상이었다. 한정된 무대에서 공간을 변화무쌍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로 이루어졌을까? 무대의 일정 부분은 회전판을 사용하고 어떤 부분은
- 김중석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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