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중일 시인, 다른 겹의 세계에서 만난 나
- 작성일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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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겹의 세계에서 만난 나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김중일 시인(인터뷰어 : 최다영 평론가)
『가슴에서 사슴까지』(2018) 이후 우리에게 ‘애도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중일 시인은 2002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첫 시집인 『국경꽃집』(2007) 외 다수의 시집을 출간하고 여러 앤솔로지에 참여해왔다. 가장 최근에 발간한 시집은 여섯 번째 시집인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2022)으로, 이전 시집들에서처럼 영원회귀에 대한 사유와 생사의 너머를 직시하는 투명한 시선이 특징적이다. 2012년 신동엽문학상, 2013년 김구용시문학상, 2019년 지훈문학상, 2022년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했으며 2025년에는 지역 문화 강연에 참여하며 활발히 독자들을 만나왔다. 이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에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시인 김중일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 문예창작과 학생들과 시창작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수업 외 업무를 포함해서 꽉 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 시집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3~4년간 모인 시들을 이제부터 취합하고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늘 부족하지만 최근에는 청탁받은 원고는 재차 퇴고가 필요치 않았으면 해서 부쩍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다음에 출간될 작품은 전작 시집(『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과 연작 형태로 처음부터 구상했습니다. 물론 독자들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전작에 이어 다음에 출간할 작품집의 주요 테마라면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작은 현실에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생면부지의 사람들(나와 너)이 ‘시’라는 가상 공간 속에서 ‘다시 살기’를 함께 하면서 회복해 가는 에피소드들이었습니다. 다음 시집은 그 후속편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전작과 연속적이고, 선명히 다른 점이라면 ‘어린이’들을 메타포로 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동행’한다는 느낌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입니다. 이번 인터뷰도 같은 층위로 볼 수 있고요. 단지 재정적 지원이 아닌 지속적으로 저의 작품 활동 및 성과에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은, 저같이 활동 연차도 어느 정도 쌓인 게으른 창작자에게는 창작 과정에서의 긴장감을 주고 실제로 한 편의 작품이라도 더 쓸 수 있는 분명한 동인이 된다는 걸 느낍니다.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 세계에서 어린이들이 왜 자꾸 사라져 가는가. 제가 최근 천착하는 질문입니다. 현재 쓰고 있고 다음 시집에 수록될 다수 시편들이 이 질문에서 파생된 상상력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이 질문은 사실 꽤 오래된 것입니다. 「마중 왔던 아이들」(『가슴에서 사슴까지』)을 쓰던 시절, 개인적으로는 첫째 아이가 출생했던 시절부터 가졌던 질문입니다. 펠로우십 지원 기간 동안도 국내외에서 어린이들이 희생되는 무수히 많은 사례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여전히 지속되는 이국의 전쟁에서도 가장 큰 희생자입니다. 국내에서도 지속적으로 갖은 형태의 아동 학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지향하던 언어로 그런 현안들을 시 속에 기록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의 언어나 시적 형식이 적절한 그릇이 될지 늘 고민합니다. 이런 일련의 시작 과정들을 올해 펠로우십 기간 동안, 다음 시집 출간을 앞두고 어느 해보다 밀도 높게 임했던 것 같습니다.
- 최근 몇 년간의 작품을 돌아볼 때, 작가님이 스스로 인식하는 창작의 변화 혹은 전환점은 무엇인가요?
첫 시작부터 현재까지, 제가 가진 상상력의 작동이나 그것을 언어로 구현하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그런 점은 제가 태생적으로 가진 바뀌지 않은 성향같은 것입니다. 예를 하나 들자면, 산소(O)에 어떤 물질이 덧붙느냐에 따라 이산화탄소(CO2)도 물(H2O)도 되듯이 당시 제가 천착하는 ‘질문’에 따라 조금은 다른 색깔로 작품들이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최근에는 ‘어린이’라는 존재 자체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어린이’는 단지 지구상에 몇 년 살지 않은 체구가 성숙하지 않고 작은 인간이 아닙니다. 어른과 다른 종이자, 인간 이전과 인간(어른) 사이의 경계인인 것 같습니다. 마치 태초의 그리고 미래의 전령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존재인 어린이가 이 현실 세계에서 무방비로 감내해야 하는 폭력, 고통과 희생은 안타깝게도 오래된 차가운 현안들입니다. 제게 있어 ‘창작의 변화 혹은 전환점’을 꼭 특정해야 한다면, 세월호 이후부터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세 번째 시집에 수록된 절반 분량 정도의 시를 쓸 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저 호기심 많은 방랑자 같았다고 돌이켜보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세 번째 시집(『내가 살아갈 사람』)은 제게 과도기적 시집이자, 단독자이던 시적 주체인 ‘나’가 타자들을 본격적으로 감각하기 시작한 또다른 ‘나’와 만나는 순간의 기록입니다. 사실을 덧붙이자면, 두 번째 시집 이후 세 번째 시집의 수록작을 쓸 때 내심 저는 한 권의 연시집을 생각했습니다. 오래 사숙하던 시인 이성복의 세 번째 시집(『그 여름의 끝』)처럼 말입니다. 제 세 번째 시집의 1부에서 그런 경향의 시편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가 침몰하는 일이 생기면서 저도차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제 시에 대한 그런 시적 전환은 제가 사전에 기획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 디지털 플랫폼 시대, 독서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오늘날 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독자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독서 환경은 늘 변하고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점점 변화가 가속되는 경향은 선명합니다. 인터넷과 한글 프로세스가 나왔던 1990년대만 생각해도 격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인터넷 서점이 처음 등장했고, 미니홈피, 네이버, 다음 등의 대형 포털의 카페, 블로그를 통해 시인들의 시편들이 읽혔습니다. 저작권의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지만 꼭 시집을 통해서 시가 읽힌 건 아닙니다. 최근에는 알다시피 AI가 빠르게 고도화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얼마간 시일이 흐른 후 독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명히 알 수 있겠으나, 제 능력으로는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기술 발달 속도로 봤을 때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앞서 언급한 테크놀로지의 점프업과 연계된 두 번의 전환기에 주목할 점은 오히려 창작가의 창작 환경이라고 생각됩니다. 시 창작의 경우에 비해 인터넷, 한글 프로세스가 특히 소설가의 작업이 미친 효율은 정말 컸다고 예상됩니다만 제가 첨예하게 진단할 부분은 아닌 듯 합니다. 다만 AI는 모든 글 쓰기에 공히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충분히 예상됩니다. AI 시인·소설가가 나오느냐의 문제는 ‘삶과 죽음’의 문제로 수렴되는 순수 문학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크게 주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가령 웹소설이나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콘텐츠 제작 등 상업 자본이 깊이 개입된 장르라면 좀 이야기가 다르겠지만요. 대신 AI는 인터넷과 한글 프로세스보다도 훨씬 더 시인, 작가들의 글 쓰기 효율을 엄청나게 높여줄 텐데, 그 정도가 인간의 창작 과정의 ‘소멸’로 수렴되지 않을지가 걱정이라면 걱정입니다. 한 편의 시의 초고, 소설의 ‘초고’가 탄생하기까지 고투의 과정이 사실상 창작 과정의 90% 이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으로 그 과정을 만약에라도 AI로 손쉽게 대체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그저 노멀이 된다면―마치 90년대를 경유하며 한글 프로세스조차 사용하지 않는(못하는) 당대 작가들이 고루하다고 여겨지듯―, 분명히 독자들이 인간 시인들, 인간 소설가들의 작품을 대하고 읽는 스탠스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저만해도 80년대까지의 소설들 특히 대하 장편 소설들을 보면 그 창작과정에서 예상되는 작가들의 고투가 경이로울 정도니까요. 그런 작품들에서 제가 가졌던 독자로서의 마음, 그에 상응하는 독자들의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그 ‘가치’를 향후에는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보완될 수 있을지가 숙제입니다. 제가 답을 제시할 수 없지만, 창작자와 독자 사이에 AI라는 테크놀로지 프로세스가 개입될 수 있는 적정한 상호 공감대가 향후에는 어디쯤에서 형성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물론 독자가 AI가 전적으로 개입한 ‘시’보다는 시인 고유의 사유과 손길이 더 많이 묻은 시집을 선택할 거라는 희망을 전제로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그럴 거라고 믿는 편입니다.
- 지금의 젊은 작가 세대―후배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출생 연도에 따른 ‘젊음’은 무색할 때가 많습니다. 문예창작과 학생들과 함께 최근 작품을 읽어가는 과정에서 저는 2010~2020년대 등단한 제2의 백석, 윤동주, 이성복, 기형도, 허수경, 최승자 등을 발견합니다. 시적 정서에서 강한 기시감이 느껴질 정도로요. 한 시인으로 내면을 형성해 온, 결코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시대적 배경을 달리해도 말입니다. 즉 결국 세상에 탄생한 한 시인은 발달하는 테크놀로지는 물론이고 시간마저 초월해 자신이 쓸 수 있는 것을 쓰게 된다고 봅니다. 그것은 심지어 AI가 향후 어떤 식으로 창작에 깊이 개입할지 와도 무관합니다. 지금 왕성하게, 여전히 쓰고 있다면 ‘젊은 작가’라는 점은 우리 시인, 소설가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저도 제가 쓸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무엇보다 꾸준히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배 후배 구분 없이 다 같이 노력하면 좋지 않을까요.
- 독자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작가님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해 주었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약자가 희생되어 온 유구한 인간의 역사는 아마도 인간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어쩌면 상식적인 인식은 순전한 페시미즘이라기보다는 제 시적 상상력의 원점입니다. 여기서 시작된 질문입니다.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회복하려는 대신 어떻게 모두와 유의미하게 나누고 섞을 수 있는가. 그것이 혹시 ‘시’라는 시공간에서나마 충분히 가능할 수 있지 않을까. 저의 이전 시집들도, 이번 펠로우십을 통해 다음에 출간될 시집도 한 편 한 편이 그런 나름의 시도들이라고 인식하고 읽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 1980년대 구로공단을 “내면이 형성된 시공간”이라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첫 시집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장면들이기도 할 것입니다. “개나리빛깔” 유년 속 지금 가장 떠오르는 기억은 무엇인가요?
제가 유년을 보냈던 그 시절 공장지대는 마치 봄날처럼 따뜻했습니다. 가난한 골목에 늘 따뜻한 사람들의 온기로 가득했습니다. 노동자들이던 그들의 현실적인 고통은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제가 성년이 되어 여러 자료를 통해 소급해서 인지한 것입니다. 저는 그 시절을 마치 ‘개나리빛깔’을 조명으로 하는 동극의 한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다만 모든 꽃은 환하게 피었다가 핏빛으로 떨어집니다. 여태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라면 친구 아버지가 공장에서 한쪽 손목이 절단된 일입니다. 그는 유쾌한 분이셨고, 두 손으로 하는 그림자 놀이로 저를 비롯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신 분이었습니다. 백열전구 아래서 평상에 앉아 두 손으로 늑대, 꽃게, 토끼, 새 등을 척척 만들어내었습니다. 아이들의 반응에 신이나 새로운 그림자 동물을 개발하는 것도 열심이셨습니다. 그런 그가 한쪽 손을 잃었습니다. 아울러 그가 만든 늑대, 꽃게, 토끼, 새 등도 잃었습니다. 저는 그의 손이 새가 되어 새의 나라로 돌아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손을 잃고 직장을 잃고 웃음을 읽고 결국 가정이라는 둥지 밖으로 뛰어내린 것을 돌이킬 수 없지만, 다음의 이야기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제게는 고작 ‘시’였고, 물론 제 ‘시’는 유년의 친구와 친구의 아버지에게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 첫 시집 『국경꽃집』(2007)의 서시는 「공룡」입니다. 이 시가 시인님께 각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시에서 시간을 불안으로 환치시키는 과정의 핵심 메타포로서 ‘공룡’을 선택했습니다. 우리는 ‘공룡’을 물리적 형상으로 선명히 인식합니다. 우리가 시간을 인식할 때와 다른 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상 ‘공룡’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다분히 관념적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당시 저는 그 두 가지 특징을 함께 가지고 있는 메타포로서 ‘공룡’을 통해, ‘일몰’로 분절되는 ‘하루’를 알레고리 방식으로 가능하면 길지 않고 짧고 강하게 형상화해 보고 싶었습니다. 「공룡」이 특별히 각별하기보다는 시집에 수록된 많은 시편들에 나타난 상상력의 기조를 집약적으로 담고 있다는 정도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국경꽃집』에서는 감각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들로 눈앞의 세계가 재구성되곤 합니다. 가령 「창문 한 접시가 놓인 식탁」의 경우 석양이 지는 창밖 풍경과 유리창에 비친 식사하는 자신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화자가 먹는 것은 “한 접시의 창문 가득 노랗게 햇볕을 뒤집어쓰고 튀겨진 한강 한 덩이”. “구름셔벗” 등이 됩니다. 「15층의 Y」에서는 한밤중 내리는 장대비가 “밤의 가발”에 비유되어 빗줄기 한 가닥 한 가닥은 검고 지저분한 머리카락처럼 묘사됩니다. 이처럼 신선하고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들을 보고 있자면 김중일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당시 청년 김중일에게 세계는 어떻게 감각되는 것이었나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제가 거창한 문학관이나 철학적 사유를 기반해서 창작하는 능력의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등단을 했으나 제게 ‘시’는 경제 활동도 아니었고, 명예를 좇는 일도 아니었으며, 내 작품을 읽어주는 독자의 존재도 감히 바랄 수 없었던 심지어 아버지는 반대하던 일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 학부 전공을 살려 친구들처럼 곧 졸업하면 제약회사에 취직하라고 조언하시면서 시 쓰기는 그냥 취미로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그런 조언을 이해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 시절 제게 ‘시’는 순전히 유희적 놀이였습니다. ‘시’라는 놀이터 안의 저는 당시 확고한 유희적 ‘믿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인식하는 ‘세계’와 잘해야 한 뼘 정도, 거의 붙어서 동행하는 ‘다른 겹의 세계’가 있을 것이라고요. 그것은 마치 외계인의 시공간을 믿는 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저도 지구 밖 누군가에게, 어쩌면 개나 고양이, 새나 곤충들에게는 외계인으로 인식되지 않을까 믿는 입장에서, 제 인식에서 외계인의 존재는 당연합니다. ‘지구’라는 물리적인 공간을 시간의 겹만 달리하면 여러 존재가 공히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창작방법론적으로 제가 현실에서 물리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세계와 ‘창문’ 한 장을 두고 붙어 있는 또 다른 가상 세계 사이의 길항은, 그 자체로 서로의 반영으로 무수한 시적 ‘비유’의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질문에서의 시편들과 앞서도 언급하신 「공룡」도 그런 상상을 수집한 내용들 그리고 표현들입니다. 농담을 곁들여 정리하자면 저는 그 시절의 제 시편들을 즐거운 뜬구름 잡기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현재 시에 담으려는 내용보다는 덜 고통스러운 것들이니까요.
- ‘불편’ 동인으로 활동하던 시절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동료들과 함께 시를 읽고 쓰는 일은 어떤 기쁨을 경험하게 하나요?
당시 시동인의 구성원 중에는 미래파의 대표 주자들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울러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성향을 달리하는 시인들의 우연한 집합이라는 점은 상당한 시너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미래파가 주목받기 전까지 3~4년간은 사숙하던 선배 시인들의 시집들이 출간된 소위 메이저 시인선에 투고했다가 반려된 경험들, ‘이번 계절 청탁 없음’ 등의 경험을 통해 과연 우리도 첫 시집을 낼 수 있을까 걱정하던 젊은 시인들이란 점에서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이 위로였고 관심사였고, 문학적 자극이었고, 더 잘 써보고 싶다는 동인을 주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수록 지면이 없어도 격주로 한 편씩 신작시를 가져와 마치 학부 습작 시절 빈 강의실에 그랬던 것처럼 ‘진지하게’ 품평회를 진행했던 기억들은 지금도 저를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한 살이라도 막내였던 제가 모임의 ‘총무’ 역할을 줄곧 맡아와서인지 기억이 더 선명합니다.
- 두 번째 시집이자 제30회 신동엽문학상을 받은 『아무튼 씨 미안해요』(2012) 이후 김중일 시의 주체는 ‘불면’하는 존재로 언급되곤 했습니다. 그 당시 김중일 시인에게 ‘불면’이 중요하게 다뤄져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단히 말하자면, ‘불면’은 다른 겹의 시공으로 드나드는 관문입니다. 앞서 11번 질문에서 언급한 시적 상상력이 작동되기 위한 하나의 주요한 기제라고 해도 좋습니다. 잠든 시간 속의 나와 ‘불면’하는 나는 한 겹쯤 분리된 다른 존재입니다. 후자의 경우 중력의 자장 속에서 잠든 나에 비해 훨씬 자유롭게 몸과 의식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시 속에서만큼은 행동 반경이 무한대에 가깝다는 말입니다. ‘아무튼 씨’의 공간을 비롯해 어디든 의식이 닿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불면’에 그럴듯한 의미 부여도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창작방법론적인 소소한 전략의 층위로 읽어주시면 적당할 듯 합니다.
- 나주혁신도시에 대해 쓰신 에세이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나주혁신도시로 옮긴 후 글을 쓰는 방식에 환경의 변화가 끼친 영향이 있을까요?
일상 공간의 이동보다는, 현재 어린 아이들과 동행하고 있는 사실이 제 창작 환경에 상당한 영향을 끼칩니다. 최근 제가 ‘어린이’라는 메타포에 천착하고 있는 분명한 동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국내외 어린이 사상 소식을 눈동자에 핏줄이 설 때까지 재차 읽게 됩니다. 그런 변화가 제 시에 반영이 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 시 세계가 온전히 저의 선택을 통해서만 구성되고 컨트롤되지 않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느낌입니다. 이제 저와 제 시는 세계 속 누군가와 동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언급해주신 「내가 쓴 시는 누가 쓴 시일까」라는 에세이에서 이미 이야기했듯, 이제는 제 시가 그 ‘누군가’들에 의해 쓰여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 2022년에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이때 신철규 시인과 나눈 대담에서 취미로 드라마를 즐겨 보며 “시를 쓰게 되는 촉발점은 ‘원고 마감일’”이라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즘도 드라마를 즐겨 보시는지, 마감일에 가까워지면 “발산하듯 집중을 하”는 편이신지 궁금합니다.
저는 처음부터 시쓰기 자체를 어떤 예술적 층위로 올려놓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한때나마 아버지의 조언대로 실제로 유희적 취미 정도로만 생각하기도 했으니까요. 솔직히 시집을 읽는 것만큼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는 것에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조금 미화하자면 저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제 시에 서사성이 강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학부 시절 시와 함께 단편 소설 습작도 했었고요. 저는 학부 시절 등단한 후 졸업까지 1년간을 제외하곤 줄곧 직장인으로 살았습니다. 책 한 줄 읽을 수 없는 육체적인 방전 상태를 드라마 속 이야기로 충전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많은 직장인들은 공감할 것입니다. 현재는 아이들과의 시간이 우선이므로 드라마 대신 ‘헬로 카봇’, ‘에그 박사’, ‘호기심 딱지’ 등을 평소에 더 많이 보는 편이지만, 꼭 보고 싶은 드라마 콘텐츠는 종영 후 하루 이틀에 몰아서 보는 편입니다. 다소 부끄럽지만 여전히 시 창작은 마감일에 맞춰 특정 날짜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 시인으로서 단 하나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돌이켜보면 저는 많은 보통의 독자들이 호응하기에는 다소 복잡하고 장황해 보일 수도 있는 시 세계를 구축해 왔을 수도 있습니다. 대신 제 시를 깊이 호응해 주는 극소수의 독자들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몇몇 분들을 우연히 실제로 만나 뵙기도 했고요. 세간의 눈에 잘 띄지 않더라도 저만의 첨예함으로 제가 쓸 수 있는 것들을 제가 쓰고 싶은 언어로 지금까지처럼 쓸 것입니다. 또한 저는, 인터뷰의 초반에 AI 등도 잠시 언급했듯 앞으로 창작 환경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상상 이상의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가령 AI가 저 자신을 비롯한 시인들의 시 쓰기 과정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지 모릅니다. 거의 확실한 건 개입하게 될 것이란 점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세간의 평균 허용치를 추종하기보다는 저는 저만의 적정선을 찾을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상대적인 생산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면 과감히 은퇴해도 좋겠지요. 시 쓰기에 굳이 은퇴라는 것이 적절할지 모르지만요. 조사 하나나 구두점 하나에도 인간 정서가 반영되는 것이 ‘시’라는 점에서 테크놀로지가 굳이 ‘시’에서 현재의 편의적 수준 이상으로는 개입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다소 고루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다만 소설 장르에서는 아마도 그 효율성과 편의성을 떨쳐내기가 어렵지 않을까요. 걱정 반 호기심 반입니다.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시’만은 온전히 제 힘으로만 창작하고 싶습니다. 대신 AI가 재밌게만 만들어준다면 드라마는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즐길 의사는 충분히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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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문학의 곁]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 원고를 읽고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북디자이너(@yj.archive) 권예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파주로 향한다. 꼬박 40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하는 곳은 유난히 나무가 빽빽하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파주출판도시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 이 일을 해온 지도 벌써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평 남짓한 서재 책장 한편에는 유난히 가벼운 책이 있었다. 아버지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미국 페이퍼백이었는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눅눅하고 낯선 냄새가 났다. 그 옆으로는 규칙적으로 꽂힌 만화책들, 어린 손으로는 한 번에 들기도 버거운 역사책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종이 두께와 제본 방식의 차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어떤 책은 손에 착 감기고, 어떤 책은 자꾸 손에서 미끄러진다는 감각만 있었을 뿐이다. 중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친구와 경쟁적으로 소설을 빌려 읽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만큼이나 표지의 질감이나 판형이 주는 무게감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무지갯빛이 반사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까슬까슬 사포 같은 질감의 책도 있었다. 그렇게 직접 손끝으로 짚어보며,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낯설고 매력적인 감각을 좋아하는 취향이 생겨났다.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내 안의 두 다른 감각이 우연히 겹친 순간부터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며 텍스트를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늘 디자인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국어 시간과 미술 시간에만 눈을 반짝거리는 학생이었는데, 그 편식이 성인까지 쭉 이어질 줄이야.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마음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두 감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마침내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일 가슴이 뛰었다. 문학출판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내 디자이너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단편적인 이력만 보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막내 디자이너였던 내게 주어진 일은 멋진 프로젝트가 아닌 중쇄 진행과 광고 작업이었고, 자리에는 전원을 켜면 ‘윙-’ 하고 사무실이 떠나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형 맥이 놓여 있었다. 중쇄 작업을 하려면 어김없이 그 요란한 전원을 켜야 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괜히 동료들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버튼을 누르곤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나 집에서는 틈만 나면 단축키와 툴 사용법을 독학해야 했다. 정말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 내 퇴근 후 일상은 낯선 용어와 디자인 프로그램 튜토리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정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
- 권예진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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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 시드니·멜버른 도서관 탐방기 - 김성하(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담당자)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로 선정되어 7박 9일간의 호주 국외연수에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번 연수는 오랜 시간 도서관을 일터이자 삶의 공간으로 삼아온 사서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도서관과 문학, 문학과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살펴보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10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 상공에서 마주한 붉은 여명은 긴 비행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도착해서 처음 만난 생명체는 현지에서 흔히 ‘쓰레기새'라 부르며 홀대한다는 호주흰따오기, ‘아이비스(Ibis)’였다. 노천카페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남긴 빵 조각을 가로채는 녀석들의 모습은 낮선 도시의 첫인상을 도리어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어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를 마주하니, 비로소 이번 연수가 실감났다. 1. 시드니(Sydney):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도서관 문화의 현장 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가 한창 열리던 5월 21일,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을 찾았다. 1826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주 전체 도서관 서비스 개시 200주년을 맞이한 곳이다. 정문의 웅장한 사암 돌기둥이 인상적인 이곳은 1942년에 완공된 고풍스럽고 웅장한 구관 '미첼 빌딩'과 호주 이주 200주년을 기념해 1988년에 지어진 후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신관'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도서를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거대한 박물관이자 미술관의 역할의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웅장한 열람실은 벽면 전체를 채운 고서들과 클래식한 목재 책상, 아치형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지적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높은 곳의 책을 꺼낼 수 있도록 연결된 2층 구조의 난간과 계단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어린이도서관은 천장에 책들이 마치 새처럼 날아다니는 듯이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고, 독창적인 도서 소개 사인물은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서관의 자료는 관내열람만 가능하다. 법정 납본 제도에 따라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출판되는 모든 도서의 원본과 역사적 기록물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주립도서관의 핵심 임무이기 때문이다. 분실 위험이 있는 관외대출을 금하고 오직 관내 열람과 연구만을 허용하여 아카이브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었다. 도서관이 운영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Fellowship Program)'은 역사학자와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1,000AUD에서 최대 120,000AUD에 이르는 파격적인 창작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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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만난 호주[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30년 만에 만난 호주 김중석(시옷책방 상주작가) “호주라니!”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기대했던 해외연수의 행선지가 호주라는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전 해에는 유럽으로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호주라니. 하지만 연수를 하는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지금까지도 호주가 너무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여정에 많은 문화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고 새로운 창작을 향한 에너지와 영감을 듬뿍 채운 시간이었다. 사실 호주는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몇 팀의 신혼부부들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딘가에 내리고 밥을 먹고 멋있는 자연을 보며 감탄했지만, 자세한 것은 모두 다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기억에 선명한데 또 어디를 갔더라? 캥거루를 만나서 먹이를 주기는 했는데 이제는 어느 동물원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나의 호주는 아주 오래전 앨범을 뒤져야만 나오는 추억 속의 나라였다. 호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는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 코알라 그리고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멋진 공원들 그리고 원주민들의 미술이었다. 그때의 호주와 지금의 호주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맑고 청명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였다는데 다행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 ‘날씨요정’이 있었는지 여정 내내 좋은 날씨 덕분에 즐거운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오니 그때의 호주가 조금씩 떠올랐다. 커다란 나무들, 온통 영어로 만들어진 간판들(아주 당연하지만) 익숙함이 밀려왔다. 며칠의 여정 동안 인상 깊었던 몇 개의 장면들을 기억해 본다. 1. 라이온 킹 뮤지컬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우리 일정에는 뮤지컬 ‘라이온 킹’이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창작자로서 부끄럽지만 뮤지컬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공짜 티켓이 생겨서 다녀온 게 전부였다.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영화로는 보았던 것이니 대충의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다. (아! 영어의 벽. 이럴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해둘걸, 이라는 후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놀라웠던 모습은 극장의 분위기였다. 판매원이 돌아다니며 맥주와 음료와 음식을 팔고 옆 사람과 떠들고 인사하며 사진을 찍고 객석에서 바로 보이는 무대 옆쪽 매점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공연 전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집중적으로 본 것은 무대 미술과 의상이었다. 한정된 무대에서 공간을 변화무쌍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로 이루어졌을까? 무대의 일정 부분은 회전판을 사용하고 어떤 부분은
- 김중석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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