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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선우은실 평론가, 더 자유로운 비평을 향해

  • 작성일 2025-12-19

더 자유로운 비평을 향해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 선우은실 평론가(인터뷰어 : 안세진 평론가)

 

선우은실은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페미니즘, 문학장()/문학제도, 저자성/독자성과 같은 동시대의 담론적 섹터를 종횡무진 가로질러온 그의 작업은 그야말로 자립할 수 있는 비평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적극적 실천에 다름 아니었다. ‘보이는 비평내지는 대화 가능한 비평이라는 화두로부터 비롯된 최근의 작업에서 선우은실은 비평이라는 텍스트가 생산되고 소비되어온 관습적 사이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그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와 서면으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문학 평론을 쓰는 선우은실입니다. 비평집 시대의 마음(문학동네, 2023)과 생활비평산문집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읻다, 2024)을 썼습니다. 여성, 청년, 제도, 문학의 구조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두어왔습니다. 비평집과 산문집에서도 이와 같은 주제를 비평의 언어로, 또 생활 비평의 감각으로 다루어 내고자 했습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번 펠로우십에서는 제도 안에서 생산되는 비평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제가 지금껏 체험해온 비평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의미를 생산하는 비평, 작품과 유기적 관계를 맺는 비평, 그리고 이 모든 게 혼자의 작업이 아닌 타인과 공유되는 경험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비평이란 작업은 해석을 통해 대화적이거나 구성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또 창작의 과정에서 또한 이미 비평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되, 그걸 비평문과는 조금 다른 문법으로 풀어나가고 싶었습니다. 비평의 독자를 직접 확인하고 다른 문법으로 풀어나간다는 점이 최근의 저에게는 중요한 문제인데요. 비평을 어떻게 행위로 소환할 수 있을지, 그것을 어떻게 타인과 교류하는 형식으로 제안하고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지가 늘 고민이었기 때문에요.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TEXT>라는 제목의 비평 전시 프로젝트를 구상했습니다. ‘텍스트는 어떻게 전시되는가? 우리는 전시된 것으로부터 무엇을 읽는가?’라는 부제를 달아서요. 단적으로 말해서 저는 이 전시의 주인공을 비평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비평이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창작자를 포함한) 모든 참여자가 비평 행위를 인지할 수 있을까? 비인지적일지라도 일련의 비평 행위를 따라가면서 작품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에 대해 대화할 수 있을까? 그런 점들을 내어놓고 이야기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자니 기존의 문학 비평의 문법비평문을 써서 전문가 중심의 비평장에 제출하고 그에 대해 안팎으로 반응을 듣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평이 행위라면, 비평을 심문하는, 비평 그 자체를 지향하는 행위를 고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비평이 대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정작 문학 비평장 안에서 그것을 확인하는 게 어렵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보이는 비평, 대화가 가능한 비평의 실험적 형태를 고안했고, ‘전시라는 형태를 택했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실험합니다. 하나는 한 작품에 다른 수준의 정보가 주어져있을 때, 과연 그 작품이 같게 혹은 다르게 읽히느냐는 것입니다. 시각예술가 손승범의 작품을 여러 번 병렬하고, 그 사이에 공백, 해석1, 해석2를 집어넣었어요. 텍스트의 난이도, 문법, 길이 등의 차이가 발생하도록요. 이때 작품은 과연 작품 자체로 의미화될 것인지, 혹은 텍스트의 변별에 따라 다르게 의미화될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비평이라는 해석과, ‘비평에 대한 창작의 측면을 실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시각예술가 김푸르나에게 작품을 의뢰했어요. 제가 쓴 해설에 대해 창작을 해달라고요. 그 해설은 윤지양의 기대 없는 토요일(민음사, 2024)에 수록된 것인데요. 저는 이 해설에서 제 비평적 관점을 많이 녹여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해설이 작품의 보조적 수단으로만 기능한다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보통 우리는 한 작품을 다른 방식의 작품으로 변환할 때제 프로젝트에 기대어 말하자면 시를 시각예술로 바꿀 때보통 그것을 변환하는 작가의 역량에 완전히 기대어 온 것 같아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사이에 가로놓인 해석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저는 창작의 재료는 작품 그 자체가 아닌 작품에 대한 해석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과연 가능한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해설의 토대가 되는 또한 참조가 되겠지만, 이때 시가 과연 시각 작품에 대한 구심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을지도 궁금했고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조금 더 자유로운 비평을 상상해보고 싶었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 2016년 등단 이후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최근에는 평론집 시대의 마음과 생활 비평집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을 연달아 출간하시기도 하셨죠. 한 시절을 갈무리하는 두 편의 책을 엮으며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어느덧 활동 10년차를 앞두고 계신 상황에서 간단한 소회를 여쭙습니다.

 

정말 그렇더라고요. 2016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니 2025년은 제게 딱 10년 차가 되는 해인데요. 처음에 등단했을 때는 5년 버티는 걸 목표로 했는데 어쩌다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갔다는 게, 그만큼 비평이 제게 허락되었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문학 비평에 대해서라면 아직 나누고 싶은 이야기도 많이 있는지라, 동료 문학가들과 더 자주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그게 지면의 형태이든 사담이든지간에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0년의 활동에 이르면서 나름대로의 애로사항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저는 역시 문학을 하는 것, 그리고 비평을 하는 것이 좋다는 감각 속에 있어요. 그것들은 사실 삶에 대한 괴로운 통찰을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얼마간 제게 자유를 부여하기도 하니까요. 뭔가에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 비평을 하자는 다짐을 하면서 10년째를 보내고 있습니다.

 

 

- 지난 10년간 평단의 최전선에서 다양한 담론에 개입해 오셨습니다. 돌아보았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의제 혹은 주제는 무엇이었나요? 이에 대한 이야기를 청해 듣고 싶습니다.

 

저는 페미니즘 비평, 그리고 문학의 형식이나 제도에 대한 것들을 주로 다뤄왔어요.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게 제게는 나름의 쟁점과 접점을 형성하는 것이지만 최근에는 독자-문학장이라는 구조와 제도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자 지향에 대해서 사실 문학 담론장 내에서는 다소 닫힌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가령 독자 지향이라는 게 문학의 수준을 좌우한다든가, 그럼에도 문학은 늘 독자를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든가 하는 대립되는 담론의 형식 같은 것들인데요. 이러한 담론을 지켜보면서 비평장 내적으로 생성되고 회전되는 독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있지만, 이것이 독자담론인 이상 결국 독자가 이 담론이 흥미롭다고 느낄 여지가 있는지, 애초에 독자가 이 담론의 존재 자체를 알고 있는지 그런 회의감이 생기기도 하더라고요. 독자에 대해 말하는데 정작 독자가 이 담론 자체를 접할 수 없다면 어떤 실천성에는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었고요. 제 생각에는 독자에 대해 묻고 싶다면 독자가 되거나 독자를 만나면 되는 일 같거든요. 이런 접점의 마련을 일련의 전통 속에서 맥락화된 문학 비평장에서 어떻게 해낼 것인가, 어떤 종류의 권위를 스스로 어떻게 다뤄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여기에 관여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현장성 있게,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이야기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 작가님께서 지속해 오신 비평적 작업의 중핵에는 언제나 문학 비평의 수행성에 대한 물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동시대적인 조건 속에서 비평이라는 글쓰기가 쓰이고(생산되고) 또 읽히는(소비되는) 방식에 대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해 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의 작가님께 비평이라는 단어가 어떠한 의미와 무게로 다가오는지 궁금합니다.

 

말씀 듣고 보니 정말로 비평의 생산과 소비가 제게 무척 중요한 문제였구나(여전히 그렇습니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비평가의 언어로 질문을 받는다는 건 이런 종류의 깨달음을 주는군요.

제 생각에 현재의 비평은 이미 1990년대에 시대적 조건이 달라지면서 시작된 형질 변화가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형성하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걸 인정하는 수순에 도달해 있다고 느껴져요. 간단히 말하면 1990년대의 조건 변화라는 게, 조금 더 일상화되고(당시에는 대중 영합적이라든지, 문학의 위기로 이야기되어 오던 것) 보편화되고 또 그만큼 문학 내에서 정치적 주체로서의 독자-개인이 부상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는 의미인데요. 문학은 그러한 시대의 변화를 일찍 감지했음에도 그것에 대해 스스로 어떤 형질 변화를 추구할 것인가 하는 방향성을 타진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문학 비평에 형질 변화가 필요하다, 그게 곧 비평의 권위를 내려놓는 것이다 하는 의견이 있었지요. 그런데 저는 그 또한 약간 시대성과 비껴있는 성찰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요. 비평내려놓는다기 보다는, 이미 존재감을 감출 수 없는 독자-주체의 부상으로 인해 내려놓아지고 있다는 쪽에 가깝지 않나 해서요. 이런 상황에서 비평이 일련의 전통적 명맥을 유지하면서도 시대와 호흡하기 위해 과연 어떤 내부적 점검을 필요로 하는지, 더 유연하게 생각하며 좋지 않을까요?

제게 현재의 비평은 조금 더 실험적인 텍스트로 여겨져요. 경계를 허무는 문학에 대해 말한다면 바로 그걸 실천적으로 시도해볼 수 있는 비평의 형식을 고안한다든지, 의미를 생산하는 비평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면 그걸 독자들과의 만남에서 메타적으로 수행해본다든지 하는 것으로요. ‘로서의 비평을 넘어서 비평적 지향을 직접 실천하는 것으로 비평이 조금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다소 원론적인 질문이지만, 최근 사회나 세계의 변화 속에서 작가님이 특히 문학(비평)을 통해 응답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근 몇 년간의 궤적을 돌아볼 때, 작가님께서 스스로 인식하는 변화 혹은 전환점을 간단히 말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인터뷰에 응답하면서 문학의 자유로움을 떠올렸습니다. 문학이 자유로움을 실천할 때, 문학이 늘 경계하고자 했던 어떤 종류의 위계 또한 스스로 기꺼이 해체할 수 있게 될 거란 생각도 들고요. 비평을 꼭 학제적 전통 위에서의 글로만 해석하지 않고, 의미를 생산하는 행위이자 체험의 일종으로 변환하고자 한 이번 펠로우십 작업 <TEXT>도 그런 방향의 한 부분을 실천한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을 자유롭게 실행할 때 보다 유연한 대화의 가능성이 열리고, 그렇게 하는 만큼 문학을 통한 사유의 유연함 같은 것이 간접적일지라도 세계와의 대화 가능성을 여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같고도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사실 전환점이라고는 해도 문학에 대한 저의 초기의 지향은 제법 일관되게 지속되어온 것 같습니다. 기초에 충실하고 문학의 문을 열어내는 정도의 위치에 제 비평이 있었으면 한다는 바람 같은 것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다만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이 약간 달라지고 또 확장되고 있다고는 느끼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 이어지게 될 작가님의 작업에서 독자분들이 특히 주목해 주었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비평의 독자를 만나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비평을 쓰는 비평가로서, 수업을 하는 비평가로서, 또 비평이라는 행위를 펼쳐내는 아주 다양한 형식을 소개하는 비평가로서 비평의 독자를 만나고 그들을 비평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비평은 대체로 어렵고 또 일부 담론 구성자의 언어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따라가다 보니 제법 흥미로워서 이끌리는 비평의 작업도 있다는 것이 여러 독자에게 어필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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