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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소연 시인, 아름답고 징그럽게

  • 작성일 2025-12-19

아름답고 징그럽게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 김소연 시인(인터뷰어 : 최다영 평론가)

 

 

나 잠깐만 죽을게/삼각형처럼 () 나 잠깐만 죽을게/단정한 선분처럼”(수학자의 아침) 1993년부터 시를 발표해온 김소연은 우리에게 눈물의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6년 첫 시집 극에 달하다를 시작으로 수학자의 아침(2013) 외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을 발간하였다. 2010년 노작문학상, 2012년 현대문학상, 2015년 이육사시문학상, 2020년 현대시작품상, 2024년 청마문학상을 수상한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대표 시인 중 한 명이다. 그런가 하면 직접 설립한 어린이도서관 웃는책의 관장을 역임하며 많은 어린이들과 학부모를 위한 문화공간 마련에 주력하기도 했다. 2008마음사전으로 시작된 그의 사전시리즈 또한 큰 사랑을 받았다. 최근의 주목할 활동으로는 2023년 일본에서 수학자의 아침번역 시집이 출간된 일과 독일에서 ‘Lyrik X Kunst X Musik!’ 낭독회에 참여한 일을 들 수 있겠다. 2025년에는 그가 소속된 텍스트-사운드 퍼포먼스 팀 메아리조각의 앤솔로지 시집 그 밖에를 발간하였고, 문학주간 협력 프로그램 장르의 경계를 넘어에 패널로 참여하였다. 내년에는 베를린에서 시 낭독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다. 이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에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김소연 시인과 문지살롱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시인보다는 시를 매개하는 자로 자신을 소개하고 그림책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드러내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읻다 출판사와 뮌헨에 있는 박솔 시인의 공동초대로 20246월에는 뮌헨 레지던시에 다녀왔습니다. 2025년에 유독 독자를 만나기 위한 행사를 열심히 했고,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은 건 광명의 소하 서점에서 극에 달하다, 제 첫 시집으로 대담을 해본 경험입니다. 그 시집을 유난히 좋아한다고 저한테 말한 적이 있었던 임솔아 시인이 대담을 아끌어주셨습니다. 이 시집으로 독자를 만나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30여 년 전에 출간된 시집이라 준비를 하면서 많은 기억을 복원해야 했는데, 그 시간이 제게 소중했습니다. 그리고 메아리조각의 이름으로 공동시집 출간을 하게 된 것 또한 제겐 재미있는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내가 지금 무슨 꿈을 더 꾸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한참 하고 있을 시기였습니다. 어떤 꿈은 너무 욕심 같고 어떤 꿈은 좀 절제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신작시를 새롭게 쓰는 일 외엔 별다른 큰 관심이 없었는데, 펠로우십에 선정되면서 용기를 좀더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도전들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해보라는 제안처럼 느껴졌달까요. 내년에도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이렇게 저렇게 촉수를 뻗고 있는 중입니다.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세 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우선, ‘메아리조각으로부터 시작된 낭독 공연을 여러 창작자들과 협업하여 계속해나갈 예정입니다. 다른 언어권으로 적극적으로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두 번째로는, ‘시인이 사랑한 단어들이라는 제목으로 중앙일보에 칼럼을 연재했는데, 이것을 보완하고 완성해서 산문집을 출간할 예정입니다. 저는 시를 매개하는 일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세 번째는 새 시집을 출간하게 되겠지요. 천천히 꼼꼼히 원하는 세계로 닿아가고 있습니다.

 

낭독 공연 때 다양한 언어로 다가갈 예정이라고 하셨는데 혹시 어떤 언어들을 생각하고 계실까요?

내년에 일본과 베를린에서의 낭독공연을 기획 중에 있습니다.

 

- 최근 몇 년간의 작품을 돌아볼 때, 작가님이 스스로 인식하는 창작의 변화 혹은 전환점은 무엇인가요?

 

한 가지 잃고 싶지 않은 축이 제겐 늘 있습니다. 현실에 응전력 있는 관점과 태도여야 한다는 것. 그게 시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 현실은 언제나 변화무쌍하므로 어디에 붙박여 있지 않아야 한다는 고집이 있습니다. 다소 무방비한 마음으로 새로운 접촉면에 나를 데려다놓고 싶습니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회적 국면 앞에 나를 내놓고 지내야 한다고 늘 저를 재촉하는 편입니다. 거기서 제가 느끼는 부대낌과 모순이 시의 토양이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어디 잘 가지도 않고 누구를 잘 만나지도 않아서이기도 하고, 살면서 얻은 경험이 기억이라는 물질로 신체화되어 있는데, 이 기억은 당연히 가지런하지 않아서 엉켜 있고 서로 다른 링크를 생성하기도 하고 발효도 되면서 기억이 다른 형질로 변신하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시간과 기억이 협력해서 만든 매끄럽지 않은 질감과 혼재 들을 오솔길 삼아 탐색하는 과정이 시가 되는 중입니다. 시간이 스스로 빚어내는 혼선에 대해 숙고하다보니 살아보지 않은 경험도 시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 점이 새로운 전환점이라면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 최근 사회나 세계의 변화 속에서 작가님이 특히 문학으로 응답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것은 윤리라는 키워드입니다. 이미 많은 창작자들이 윤리를 더 정치하고 세밀하게 인식하면서 윤리의 틈새를 벌리고 있기도 하지만, 저도 더 균열을 내고 싶다 생각합니다. 문학이라는 텍스트가 윤리를 재구성하거나 새롭게 발명할 단서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독서를 할 때 가장 큰 기쁨이 저자가 발명한 윤리를 음미하는 것인데, 어떤 틈새를 어떤 식으로 균열을 냈는지를 보는 기쁨. 비평에 대해서는 좀 아쉬운 면이 있습니다. 비평가 스스로가 새로운 윤리를 윤리의 틈새에서 더 자주 발명해주길 늘상 바랍니다.

 

- 디지털 플랫폼 시대, 독서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오늘날 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독자와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언제나 문학 내부의 가장 중요한 담론 중 하나였고, 그것에 대해 예견하는 것은 재미 삼아 할 수는 있지만. 유의미하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저는 시인이니까, 시는 마이너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해 어느 시대에나 예외였던 것 같습니다.

 

- 지금의 젊은 작가 세대후배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출판사와 문예지, 서점과 도서관, 문학문화 관련 기관들이 손을 내밀어 제안을 해오는 순간을 기다리고 반가워하는 것 외에도 주도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스스로 많이 발명해 나갔으면 좋겠어요. SNS가 있고 웹이 있으니까. 얼마든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소개할 수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건강한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부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독자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작가님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해 주었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국지적인 것만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들 때가 더러 있습니다. 제 시의 일인칭들을 내가 차지하는 때도 있지만 타인들에게 내어주는 방식의 일인칭을 자주 사용합니다. 눈물이라는 뼈때부터 쓰기 시작했거든요.

일인칭과 이인칭과 3인칭이 서로 다르게 작동될 때를 자주 상상합니다. 그걸 시에 시도해보고 싶은 것입니다. 시쓰기에 열중하다 보면 내 자신을 초월한다는 느낌이 착란처럼 찾아오기도 하는데, 내 자신이 아주 작은 벌레가 되어서 나뭇잎 뒤에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오키나와 북쪽 숲속을 여행을 할 때였는데, 비가 왔고 비를 안 맞으려고 같은 종의 벌레들이 나뭇잎 뒤에 와글와글 딱 붙어 있는 걸 보았습니다. 나뭇잎 한 장이 아파트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자그마해지는 느낌일 때도 있고 유령처럼 천장에 떠서 조감도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주어의 자리를 제가 점점 더 얼마나 적극적으로 타자에게 내어주게 되었는지 왜 그렇게 하게 되었는지 선명하게 읽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유의미함이 있다고 해석되기 이전에 읽어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시인님께서는 누군가의 글을 평해야 할 때 생애나 전기적인 정보를 다 알고 쓰는 게 좋으세요, 아니면 모른 채 텍스트에 먼저 접근하는 게 좋으세요? 어떤 걸 선호하시나요?

 

저는 삶과 작품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압도적인 우위에 두는 사람들의 삶을 우선 의심하게 됩니다. 서정주 같은 시인을 언급할 때에 꼭 그렇게 하니까요. 텍스트 중심주의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의 쓰임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더 정치적인 접근을 할 때에 삶을 챙겨 함께 언급을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스테레오타입인 면이 적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몇 해 전에 비비언 고닉의 글에서 빈센트 밀레이에 대한 부분을 읽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녀가 모범적이고 건강한 시민으로 살지는 않았다 볼 수 있는데, 그 삶에서 정치성을 읽어낼 수 있고 부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다루지는 않더라구요. 에밀리 디킨슨이나 앤 섹스턴 같은 시인도 마찬가지고요. 최승자 시인이 특히 그렇고요. 말씀하신 그 두 선택지 모두 보다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시선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 김소연 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첫 시집 극에 달하다(1996)에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서시 버리고 돌아오다에는 를 버린 뒤의 개운함과 홀가분함이 담겨 있습니다. 행복하여에서도 허전하여 경망스러워진 청춘을/일회용 용기에 남은 짜장면처럼/대문 바깥에 내다놓고 돌아서니, 행복해서 눈물이 쏟아진다라는 문장이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기억의 비워냄과 그 과정에서 경험하는 몸의 가벼움30여 년 이상 김소연 시에서 중요하게 그려져온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시집에 수록된 고통을 발명하다에는 기억을 비워내기 위해/심장을 꺼내어 말리, “슬픔을 비워내기 위해/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헹구는 여자가 그려집니다. “늙어가는 몸 때문이 아니라/나이만큼 무한 증식하는 추억 때문에/여자의 심장이 비만증에 걸리게 된 것인데요, 이처럼 기억과 감정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렵게 불어남에 따라 차라리 살을 찢고 꺼내버리고 싶은 충동은 김소연 시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입니다. 온갖 기억과 감정들로 점철된 한 시절을 비워낸다는 것, 그러나 비워냈다고 믿는것밖에 안 되는 것, “텅 빈 육체등은 김소연 시인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나요?

 

사실 버리고 돌아오다고통을 발명하다20대 때 쓴 시와 40대 때 쓴 시로, 시간적으로 꽤 간격이 있습니다. 저는 지나친 묵직함과 너무 깊은 상실과 갈등 앞에서는 오히려 비움과 가벼움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분노한다고나 할까요. 우선, 이 두 시를 나란히 언급해 주시는 것이 저는 반갑습니다. 이 두 시의 일인칭은 정확히 저였거든요. 2개가 주인공이 정확히 저예요. 고통을 발명하다라는 시에는 일인칭을 괴롭히는 시를 쓰고 싶었습니다. 괴롭힘은 내가 나한테만 해도 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한 편의 시는 호통이지만 시집 속의 흐름상으로는 통과의례처럼 읽히도록 시를 배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순적인 정서가 팽팽하게 혼재돼 있을 때에 저는 안 꺼내고 싶은 말을 꺼내려는 충동이 있습니다. 일부러 편중된 입장에 섭니다. 하지만, 시 전체의 문체나 태도로는 안 꺼낸 것에 치우치려고 애를 씁니다. 이런 방식으로 건사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두 시에서 유독 그런 식으로 균형을 잡으려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학살의 일부라는 연작 제목은 어떻게 지어졌나요? 갓 시를 발표하기 시작한 젊은 시인에게 학살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으는 일은 왜 필요했을까요?

 

90년대는 대하소설이 한 걸음 물러나고 개인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한 시대였어요. 이전에 비하면 우리 사회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잠깐 믿기 시작한 시대였기도 합니다. 저는 평화가 안 찾아온 것 같은 불길함 속에 계속 놓여 있었고 학살의 시대가 종식된 듯 보이지만 공기 입자처럼 분산돼 있어서 안 보이는 느낌을 자주 마주쳤습니다. 거기서 생긴 제목입니다. 처음엔 이 연작을 첫 시집의 제목으로 정하려고 했습니다.

 

- 마음사전의 작가 소개에 따르면 김소연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며칠 잠을 잊어버리기도 하는 사람입니다. 또 가장 최근에 출간한 시집 촉진하는 밤에 수록된 푸른 얼음에는 수많은 이 감각적인 모습을 입고 등장합니다. “과즙처럼 끈적끈적한 다짐들이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밤등이 그러하지요. 그렇다면 김소연 시인에게 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밤은 저한테는 에너지가 많아지고 의욕이 솟고 아이디어도 많아지고 그런 시간이에요. 밤은 인간이 활동을 쉬는 시간이니까 그 의욕으로 저는 혼자서 밤을 독대하고 만지죠. 검은 베일을 쓰다듬는 기분 같달까요. 베일을 어떻게 벗길 수 있을까. 수수께끼를 푸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밤은 시간이 아니에요. 공간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물성을 지닌 물질처럼도 와닿습니다.

 

- 어린이도서관 웃는책의 관장으로서 김소연은 어떤 경험들을 누렸는지 듣고 싶습니다. 어린이도서관을 설립하게 된 계기를 비롯해 그곳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시인님의 삶에 어떠한 영향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어린이 도서관을 만든 건 IMF가 가장 큰 계기였어요.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 되지? 큰 걱정이 도래했는데. 너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냥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쪽으로 용감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덜컥 저지른 일이었는데 의외로 적성에 맞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사랑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약간의 억압도 주지 않는,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는 엉뚱한 그림책들 권하는 재미로 지냈습니다. 저의 화양연화였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 첫 시집을 다소 이르게 낸 것과 달리, 두 번째 시집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는 첫 시집 이후 10년 만에 나왔습니다. 마음시집(2008)에서 게으름과 꼼꼼함 덕분이라 언급하긴 하셨지만 구체적으로 그 10년은 어떠한 필요 위에서 보낸 시간이었는지, 무엇으로 채워지거나 비워진 시간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도서관을 운영했던 시간들하고 거의 겹쳐 있습니다. 시보다 더 좋은 것을 좋아하며 지냈습니다. 시인들보다 더 좋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지내느라 시를 잊어도 괜찮았습니다.

 

- 초기 시집들이라 할 수 있는 2000년대까지는 시에 가운데 정렬이 자주 사용됩니다. 가운데 정렬을 적용할 때만의 의도가 있을까요?

 

그때는 장난 같은 질문이 제게 있었습니다. 중앙정렬에는 왜 이유를 요구하는가. 왜 모두가 의심없이 좌정렬을 쓰는가. 중앙정렬의 가지런하지 않아보임이 더 어울릴 때에는 중앙정렬도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 마음을 이루는 낱말 하나하나를 시인의 눈으로 다시 정의하는 마음사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사전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로 저는 존경을 들고 싶습니다. “질투와 존경은 동기가 같지만, ‘자세하나로 전혀 다른 길은 간다. () 그만큼 깨끗하고 단정하다.” ‘마음사전에서 시인님이 가장 아끼는 단어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웃음. 마음사전에 수록을 못했어요. 써보았지만 재미있는 글이 아니어서 수록하지는 못했습니다. 언젠가 인터넷 서점에서 특별판을 만들 때 한 꼭지의 원고를 추가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웃음을 당연히 해야지 했습니다. 웃음을 공부하고 쓰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 세 번째 시집 눈물이라는 뼈(2009)에는 강렬한 파토스를 휘갈기는 여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녀였던 당신이었던/수많은 아이들”, 즉 자기 자신에게 밤마다 젖을 먹이다가 자기 젖을 빨며 잠에 드는 여자에게서는 자기를 돌볼 게 오로지 자신밖에 없는 외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돌봐야 할 이들에게 자리를 계속 내어주다 앉을 자리마저 없어지자 몸을 접고 접어 한 마리 쥐새끼가 됩니다.(그녀의 생몰 연도를 기록하는 밤) 몬순 팰리스에서는 사내를 욕망하는 관능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그려지지요. 경대와 창문에는 엄마의 죽기를 바라는 딸이, 공무도하가에는 자신의 살갗을 벗겨 뼛속 어린아이를 꺼내고, 기어이 그 아이에게 젖을 물리다가 다시 제 몸을 갈기갈기 찢고 붙이기를 반복하는 병신여자가 등장합니다. 이 시기 시인 김소연에게 이러한 여자들은 어떻게 찾아왔나요?

 

눈물이라는 뼈는 여성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옮겨다니는 실험을 해보자는 기획으로 쓴 시집입니다. 시집의 제목으로 그녀의 생몰 연도라고 혼자서 결정해두었기도 했고요. 제게 어떤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어떤 면을 제가 존경하기도 하고 닮고 싶기도 하지만 슬프게도 느끼는 면이 있었는데, 그분의 어떤 밤을 상상하며 썼습니다. 존경이 깨끗하고 말끔하지 않을 때의 상태를, 우정과 애정이 슬픔의 공동체이자 명랑한 광기일 수 있음을, 사랑과 연민이 지긋지긋하지만 문득 새로운 눈물겨움일 수 있음을 저는 어떤 식으로든 늘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 그간 정말 많은 에세이집을 출간하셨습니다. 특별히 나를 뺀 세상의 전부(2019)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의류수거함에서 데려온 새 친구곰인형이 아직 곁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 이사할 때 그 이삿짐센터 스텝이 너무 그 곰인형이 너무 커가지고 그거 하나만 옮겨야 하는 거예요. 덩치가 너무 크니까. 가벼워서. 그러면서 책 많다고 투덜거리시다가 그거 하나 옮기면서 조금 여유 있어 하면서 너무 예뻐하시길래. 우리 딸이 이런 거 되게 좋아해요 하시길래 가져가세요 그랬어요.

 

-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죽어라 반복하고 연습해서 얻은 것중 하나인 손가락 딱 소리 핑거스냅귀 움직이기를 보여주실 수 있나요?

(보여준다.)

(감탄한다.)

 

- 한 인터뷰에 따르면 중학교 시절 시인님께는 함께 책을 읽고 편지를 주고받았던 어느 선생님과의 추억이 있지요. 독후감을 곁들인 그 편지에 답장을 하고 싶어서, 또 누군가가 그 독후감을 읽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요즘도 편지를 종종 쓰시나요?

 

누군가랑 계속 이메일로 주고받는 걸 좋아합니다. 편지로 토론도 하고 덜 정리된 질문들을 주고받기도 합니다. 만나지 않고 말할 때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따로 존재하니까요. 많고. 펜팔처럼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들이 몇몇 있습니다.

 

- 2024년 성기완 시인과의 대담에서 몇몇 시들은 특히 제가 누군가로부터 바톤을 넘겨받아서 쓴 거라는 생각으로 썼다. () 내가 덩그러니 어딘가에 시인으로 있는 게 아니고 미립자처럼 혹은 말미잘처럼 함께 어딘가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럿이자 하나인 느낌으로 마치 다른 누군가의 연장선에서 쓰는 듯한 감각은 구체적으로 어떤 감각일까요?

 

촉진하는 밤올가미라는 시가 있습니다. 어떤 글을 읽고 그 다음을 쓰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글을 읽고 그렇게 끝내서는 안된다고 느낄 때에 끝을 붙잡고 상상을 하는 것이 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박서원 시인의 경우, 더 많은 시를 남겨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경우도 바통을 넘겨받는 느낌입니다.

 

- 시인으로서 단 하나 타협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단독자로 사는 거예요. 계속 선택을 해왔고 그 단독자의 삶에 방해가 되는 일이라면 계속해서 타협하고 싶지 않습니다.

 

- 요즘 읽고 계신 책이나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독자분들께 어떤 책을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김복희 시인의 보조 영혼과 윤은성 시인의 유리 광장에서가 가장 인상적이었고 저한테 큰 자극이 되었던 시집이었고 이실비 시인의 첫 시집도 아직 만져보진 못했지만 얼른 읽고 싶다 이렇게 적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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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문학의 곁]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 원고를 읽고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북디자이너(@yj.archive) 권예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파주로 향한다. 꼬박 40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하는 곳은 유난히 나무가 빽빽하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파주출판도시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 이 일을 해온 지도 벌써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평 남짓한 서재 책장 한편에는 유난히 가벼운 책이 있었다. 아버지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미국 페이퍼백이었는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눅눅하고 낯선 냄새가 났다. 그 옆으로는 규칙적으로 꽂힌 만화책들, 어린 손으로는 한 번에 들기도 버거운 역사책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종이 두께와 제본 방식의 차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어떤 책은 손에 착 감기고, 어떤 책은 자꾸 손에서 미끄러진다는 감각만 있었을 뿐이다. 중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친구와 경쟁적으로 소설을 빌려 읽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만큼이나 표지의 질감이나 판형이 주는 무게감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무지갯빛이 반사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까슬까슬 사포 같은 질감의 책도 있었다. 그렇게 직접 손끝으로 짚어보며,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낯설고 매력적인 감각을 좋아하는 취향이 생겨났다.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내 안의 두 다른 감각이 우연히 겹친 순간부터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며 텍스트를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늘 디자인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국어 시간과 미술 시간에만 눈을 반짝거리는 학생이었는데, 그 편식이 성인까지 쭉 이어질 줄이야.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마음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두 감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마침내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일 가슴이 뛰었다. 문학출판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내 디자이너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단편적인 이력만 보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막내 디자이너였던 내게 주어진 일은 멋진 프로젝트가 아닌 중쇄 진행과 광고 작업이었고, 자리에는 전원을 켜면 ‘윙-’ 하고 사무실이 떠나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형 맥이 놓여 있었다. 중쇄 작업을 하려면 어김없이 그 요란한 전원을 켜야 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괜히 동료들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버튼을 누르곤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나 집에서는 틈만 나면 단축키와 툴 사용법을 독학해야 했다. 정말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 내 퇴근 후 일상은 낯선 용어와 디자인 프로그램 튜토리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정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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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 시드니·멜버른 도서관 탐방기 - 김성하(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담당자)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로 선정되어 7박 9일간의 호주 국외연수에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번 연수는 오랜 시간 도서관을 일터이자 삶의 공간으로 삼아온 사서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도서관과 문학, 문학과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살펴보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10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 상공에서 마주한 붉은 여명은 긴 비행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도착해서 처음 만난 생명체는 현지에서 흔히 ‘쓰레기새'라 부르며 홀대한다는 호주흰따오기, ‘아이비스(Ibis)’였다. 노천카페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남긴 빵 조각을 가로채는 녀석들의 모습은 낮선 도시의 첫인상을 도리어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어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를 마주하니, 비로소 이번 연수가 실감났다. 1. 시드니(Sydney):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도서관 문화의 현장 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가 한창 열리던 5월 21일,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을 찾았다. 1826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주 전체 도서관 서비스 개시 200주년을 맞이한 곳이다. 정문의 웅장한 사암 돌기둥이 인상적인 이곳은 1942년에 완공된 고풍스럽고 웅장한 구관 '미첼 빌딩'과 호주 이주 200주년을 기념해 1988년에 지어진 후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신관'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도서를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거대한 박물관이자 미술관의 역할의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웅장한 열람실은 벽면 전체를 채운 고서들과 클래식한 목재 책상, 아치형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지적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높은 곳의 책을 꺼낼 수 있도록 연결된 2층 구조의 난간과 계단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어린이도서관은 천장에 책들이 마치 새처럼 날아다니는 듯이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고, 독창적인 도서 소개 사인물은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서관의 자료는 관내열람만 가능하다. 법정 납본 제도에 따라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출판되는 모든 도서의 원본과 역사적 기록물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주립도서관의 핵심 임무이기 때문이다. 분실 위험이 있는 관외대출을 금하고 오직 관내 열람과 연구만을 허용하여 아카이브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었다. 도서관이 운영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Fellowship Program)'은 역사학자와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1,000AUD에서 최대 120,000AUD에 이르는 파격적인 창작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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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만난 호주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30년 만에 만난 호주 김중석(시옷책방 상주작가) “호주라니!”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기대했던 해외연수의 행선지가 호주라는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전 해에는 유럽으로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호주라니. 하지만 연수를 하는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지금까지도 호주가 너무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여정에 많은 문화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고 새로운 창작을 향한 에너지와 영감을 듬뿍 채운 시간이었다. 사실 호주는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몇 팀의 신혼부부들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딘가에 내리고 밥을 먹고 멋있는 자연을 보며 감탄했지만, 자세한 것은 모두 다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기억에 선명한데 또 어디를 갔더라? 캥거루를 만나서 먹이를 주기는 했는데 이제는 어느 동물원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나의 호주는 아주 오래전 앨범을 뒤져야만 나오는 추억 속의 나라였다. 호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는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 코알라 그리고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멋진 공원들 그리고 원주민들의 미술이었다. 그때의 호주와 지금의 호주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맑고 청명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였다는데 다행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 ‘날씨요정’이 있었는지 여정 내내 좋은 날씨 덕분에 즐거운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오니 그때의 호주가 조금씩 떠올랐다. 커다란 나무들, 온통 영어로 만들어진 간판들(아주 당연하지만) 익숙함이 밀려왔다. 며칠의 여정 동안 인상 깊었던 몇 개의 장면들을 기억해 본다. 1. 라이온 킹 뮤지컬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우리 일정에는 뮤지컬 ‘라이온 킹’이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창작자로서 부끄럽지만 뮤지컬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공짜 티켓이 생겨서 다녀온 게 전부였다.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영화로는 보았던 것이니 대충의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다. (아! 영어의 벽. 이럴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해둘걸, 이라는 후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놀라웠던 모습은 극장의 분위기였다. 판매원이 돌아다니며 맥주와 음료와 음식을 팔고 옆 사람과 떠들고 인사하며 사진을 찍고 객석에서 바로 보이는 무대 옆쪽 매점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공연 전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집중적으로 본 것은 무대 미술과 의상이었다. 한정된 무대에서 공간을 변화무쌍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로 이루어졌을까? 무대의 일정 부분은 회전판을 사용하고 어떤 부분은

  • 김중석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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