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인터뷰] 강영숙 소설가, 나약한 한 명의 인물을 떠올리며

  • 작성일 2025-12-25

나약한 한 명의 인물을 떠올리며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강영숙 소설가(인터뷰어 : 안세진 평론가)

 

강영숙은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장편소설 리나(랜덤하우스코리아, 2006/문학동네, 2011), 라이팅 클럽(자음과모음, 2010/민음사, 2020),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문학과지성사, 2013), 부림지구 벙커X(창비, 2020), 분지의 두 여자(은행나무, 2023), 소설집 흔들리다(문학동네, 2002), 날마다 축제(창비, 2004),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문학동네, 2009), 아령 하는 밤(창비, 2011), 회색문헌(문학과지성사, 2016), 두고 온 것(문학동네, 2021)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왔다. 장르와 문체를 자유자재로 바꾸어가며 매 소설 변모해온 강영숙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재난그리고 여성이라는 두 가지 단어일지도 모른다. 지진으로 파괴된 가상의 공간 부림지구에 남아있는 생존자들의 모습을 그려낸 부림지구 벙커X2022년 가톨릭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이외에도 한국일보문학상, 백신애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새로운 장편소설의 출간을 앞두고 있는 그와 서면으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상반기에는 계간지 문학과 사회여름호에 단편소설 중회를 발표했습니다. 한동안 단편소설 청탁이 없어서 감각을 잃었던 것 같기도 해요. 마음만큼 표현이 잘되지 않아 어렵게 썼던 것 같습니다. 더운 여름에 몇 주간 집중해서 장편소설 초고를 쓰고 나서 조금 쉬었고요. 9월부터 다시 소설을 수정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15만 자 정도를 썼는데 10월 말까지 끝내려던 저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매일 조금씩 써나가고 있습니다.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누구나 그렇지만 소설을 쓸 때는 대부분 혼자 쓰고 혼자 읽고 더러는 혼잣말도 하면서, 온전히 혼자서 작업합니다. 제가 소설을 쓰는지 아무도 모르고요. 그래서 쉽게 게을러질 때가 있는데 그래도 펠로우십에 선정되었기 때문에 게을러질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또 창작의 측면에서는 그동안 써보고 싶다고 상상만 했던 작품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거라서 그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 있어요. 써봤기 때문에 작품이 실패한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을 산업화 이전(1850~1900) 대비 1.5˚C로 제한하자고 했었지만, 2024년 평균기온 상승폭은 1.55˚C로 그 저지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지구가 펄펄 끓게 된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고 앞으로 일어날 변화도 두렵지만, 뭘 어떻게 해야 되돌릴 수 있는지 개인 차원에서는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다는 게 심각한 지점인 듯해요. 저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과 그로 인해 발생할 자연 재해와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한 혼란의 와중에 놓인 나약한 한 명의 인물을 떠올리면서 써나갈 방향을 모색하곤 합니다. 그 인물은 저와 가깝기도 하고 여성에 가깝기도 하고 쓸데없이 온갖 걸 다 걱정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 누군가와 가깝기도 합니다.

 

초기작부터 재난이라는 테마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갖고 창작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25회 한국가톨릭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장편소설 부림지구 벙커X(창비, 2020)에서는 그와 같은 탐구가 생태적 시각과 접합되어 장편의 스케일로 펼쳐지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기도 했고요. 최근에 발표하신 단편소설 중회(문학과 사회2025년 여름호)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작은 지진들로 인해 증발된 인간들이 모여 사는 은닉처가 되어버린 중회라는 공간이 등장합니다. ‘재난이라는 주제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더불어, 집필을 이어나가는 도중 이와 같은 주제를 바라보는 시선에 어떤 변화가 생기기도 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재난에 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작품에 반영하기 시작한 건 2002년경부터라고 생각됩니다. 단편소설 해안 없는 바다가 그런 배경을 한 본격적인 작품이었고요.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편으로 확장되었는데 쓸수록 어려운 소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초기와 달리 변화된 지점이 있다면 독자들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런 면에서 변화가 느껴지고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장르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기는 어렵겠다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좁디좁은 제 한계 안에서 그저 탐구해 나갈 뿐입니다.

중회는 제 어린 시절 얘기를 쓰고 싶어서 시작한 소설입니다. 제가 14살 때 서울로 전학을 왔는데 2022년에 영업을 종료한 남산 힐튼호텔 옆에 살았어요. 처음에는 호텔이 없었지만, 몇 년 후에 호텔이 생겼는데 우리 가족들은 그 호텔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 호텔을 건축한 김종성 건축가의 회고 글 힐튼과 김종성을 읽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생산된 대리석으로 만든 로비 중정에 대한 회고담이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어요. 자발적인 실종으로 보이는 언니의 실종과 돌아가신 부모님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중회를 설정했어요. 그리고 화자를 비롯한 이들은 모두 그토록 들어가 보고 싶었던 힐튼호텔 로비 중정에 함께 갑니다. 이 소설에서 중회라는 허구적 공간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장면이었을 겁니다.

전과 다르게 제 소설 속 인물들도 자발적으로 치유를 향해 나아간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한편 최근에 발표하신 장편소설 분지의 두 여자(은행나무, 2023)대리모라는 시의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계관의 측면에서는 이전 소설에서 보여주신 생태적인 문제의식과 연결되면서도, 구체적인 소설의 관심사는 여성 혹은 아이의 서사로 집중된 느낌이 들었는데요. 작가님의 관심사가 어떻게 변화하여 이어졌는지 궁금합니다.

 

세계는 놀랍도록 발전했지만, 출산과 생식과 관련된 부분은 큰 변화가 없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성에게 더 큰 책임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쓰면서 1970년에 출간된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책 성의 변증법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인공 자궁 같은 혁신적인 시스템이 나오지 않는다면 여성해방은 어렵다고 주장하는 책인데요. 요즘 인공 자궁을 탑재한 휴머노이드 개발에 관한 기사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식과 출산을 외주화하면 여성은 행복할까요? 지금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시사점을 주는 변화의 와중에 와 있는 듯해요.

분지의 두 여자에는 두 명의 대리모가 나옵니다. 한 명은 생계 때문에 대리모가 된 샤오, 또 다른 한 명은 사고로 딸을 잃은 고통 때문에 대리모가 된 진영, 두 사람입니다. 저는 너무나 극단적인 설정을 한 것 같아 이 소설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어느새 대리모 이야기도 왠지 새로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만큼 세계는 매우 빨리 변화하고 있습니다.

 

앞선 질문들과 이어지는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만, 최근 사회나 세계의 변화 속에서 작가님께서 특히 문학으로 응답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여전히 여성이기 때문에 맞닥뜨려야 하는 일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여성이어서 응당 감당해야 하는 일 속에 내재된 모순과 그 일을 대하는 여성 인물의 태도에 집중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작가님의 작품에서 특히 주목해 주었으면 하는 지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작가님의 신작을 기다리는 독자 분들을 위해, 현재 구상중인 작품에 대해서도 간단히 말씀 나누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늘 이전에 제가 썼던 작품과는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시도하고 추구하는 편입니다. , 이게 같은 사람이 쓴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그 스타일이 다르기를 원합니다. 내년에 출간될 아르코 문학 작가 펠로우십 선정 작품에도 그런 변화를 담아내고 싶습니다. 구상 중인 작품에 대해서는 간단히 소개하기는 좀 어려운데, 1910년대 미국의 한 시계 공장에 다녔던 여성들이 집단으로 라듐에 중독된 실제 사건이 있었는데, 이처럼 생활 속의 방사능 오염에 대한 얘기를 쓰고 있습니다.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모색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문학의 곁] 보이지 않는 마음에 물성을 입히는 일 ― 원고를 읽고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북디자이너(@yj.archive) 권예진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파주로 향한다. 꼬박 40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하는 곳은 유난히 나무가 빽빽하고,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파주출판도시다. 누군가의 손에 쥐어질 한 권의 책을 만드는 일. 이 일을 해온 지도 벌써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평 남짓한 서재 책장 한편에는 유난히 가벼운 책이 있었다. 아버지가 늘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미국 페이퍼백이었는데, 한 장씩 넘길 때마다 눅눅하고 낯선 냄새가 났다. 그 옆으로는 규칙적으로 꽂힌 만화책들, 어린 손으로는 한 번에 들기도 버거운 역사책이 나란히 있었는데, 그때는 그게 종이 두께와 제본 방식의 차이라는 걸 몰랐다. 그저 어떤 책은 손에 착 감기고, 어떤 책은 자꾸 손에서 미끄러진다는 감각만 있었을 뿐이다. 중학생 때는 도서관에서 친구와 경쟁적으로 소설을 빌려 읽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이야기만큼이나 표지의 질감이나 판형이 주는 무게감에 자꾸 눈길이 머물렀다. 무슨 마법을 부린 것인지 무지갯빛이 반사되는 책이 있는가 하면, 까슬까슬 사포 같은 질감의 책도 있었다. 그렇게 직접 손끝으로 짚어보며,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낯설고 매력적인 감각을 좋아하는 취향이 생겨났다.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건, 내 안의 두 다른 감각이 우연히 겹친 순간부터였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며 텍스트를 깊이 들여다보는 눈이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에 늘 디자인에 대한 깊은 갈증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국어 시간과 미술 시간에만 눈을 반짝거리는 학생이었는데, 그 편식이 성인까지 쭉 이어질 줄이야. 하지만 어느 쪽으로도 깊이 파고들지는 않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마음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서울북인스티튜트(SBI)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두 감각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마침내 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일 가슴이 뛰었다. 문학출판사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막내 디자이너에서 팀장이 되기까지, 수많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단편적인 이력만 보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어왔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막내 디자이너였던 내게 주어진 일은 멋진 프로젝트가 아닌 중쇄 진행과 광고 작업이었고, 자리에는 전원을 켜면 ‘윙-’ 하고 사무실이 떠나갈 듯 요란한 소리를 내는 구형 맥이 놓여 있었다. 중쇄 작업을 하려면 어김없이 그 요란한 전원을 켜야 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괜히 동료들 눈치가 보여 슬그머니 버튼을 누르곤 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나 집에서는 틈만 나면 단축키와 툴 사용법을 독학해야 했다. 정말이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 시절 내 퇴근 후 일상은 낯선 용어와 디자인 프로그램 튜토리얼을 붙잡고 씨름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정말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까?’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르스름

  • 권예진
  • 2026-09-01

문장웹진 모색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호주 도서관의 공간혁신과 문학 생태계를 살펴보다. - 시드니·멜버른 도서관 탐방기 - 김성하(인천광역시교육청중앙도서관 청소년문화공간 다누리 담당자) 2025년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로 선정되어 7박 9일간의 호주 국외연수에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이번 연수는 오랜 시간 도서관을 일터이자 삶의 공간으로 삼아온 사서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도서관과 문학, 문학과 지역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생생한 현장을 살펴보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5월 19일 저녁, 인천공항을 출발해 10시간 넘는 비행을 마치고 시드니에 도착했다. 시드니 상공에서 마주한 붉은 여명은 긴 비행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만들었다. 도착해서 처음 만난 생명체는 현지에서 흔히 ‘쓰레기새'라 부르며 홀대한다는 호주흰따오기, ‘아이비스(Ibis)’였다. 노천카페 주변을 서성이며 사람들이 남긴 빵 조각을 가로채는 녀석들의 모습은 낮선 도시의 첫인상을 도리어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어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하버 브릿지와 오페라 하우스를 마주하니, 비로소 이번 연수가 실감났다. 1. 시드니(Sydney):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도서관 문화의 현장 가.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State Library of New South Wales) 시드니 작가 축제(Sydney Writers' Festival)가 한창 열리던 5월 21일,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뉴사우스웨일스 주립 도서관을 찾았다. 1826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주 전체 도서관 서비스 개시 200주년을 맞이한 곳이다. 정문의 웅장한 사암 돌기둥이 인상적인 이곳은 1942년에 완공된 고풍스럽고 웅장한 구관 '미첼 빌딩'과 호주 이주 200주년을 기념해 1988년에 지어진 후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마친 '신관'이 매우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단순한 도서를 열람하는 공간을 넘어 거대한 박물관이자 미술관의 역할의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웅장한 열람실은 벽면 전체를 채운 고서들과 클래식한 목재 책상, 아치형 천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이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지적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높은 곳의 책을 꺼낼 수 있도록 연결된 2층 구조의 난간과 계단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어린이도서관은 천장에 책들이 마치 새처럼 날아다니는 듯이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고, 독창적인 도서 소개 사인물은 아이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도서관의 자료는 관내열람만 가능하다. 법정 납본 제도에 따라 뉴사우스웨일즈 주에서 출판되는 모든 도서의 원본과 역사적 기록물을 영구히 보존하는 것이 주립도서관의 핵심 임무이기 때문이다. 분실 위험이 있는 관외대출을 금하고 오직 관내 열람과 연구만을 허용하여 아카이브의 가치를 지켜내고 있었다. 도서관이 운영하는 '펠로우십 프로그램(Fellowship Program)'은 역사학자와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최소 1,000AUD에서 최대 120,000AUD에 이르는 파격적인 창작

  • 2026-09-01

문장웹진 모색

30년 만에 만난 호주

[문학상주작가 지원사업] 우수시설 국외연수 후기 30년 만에 만난 호주 김중석(시옷책방 상주작가) “호주라니!” 상주작가 우수시설에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과 함께 기대했던 해외연수의 행선지가 호주라는 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전 해에는 유럽으로 다녀왔다고 알고 있었던 터라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호주라니. 하지만 연수를 하는 내내 그리고 돌아와서 되돌아보는 지금까지도 호주가 너무 좋았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짧은 여정에 많은 문화공간과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웠고 새로운 창작을 향한 에너지와 영감을 듬뿍 채운 시간이었다. 사실 호주는 30년 전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곳이었다. 그때는 결혼식을 마치고 부랴부랴 비행기를 타고 여행사에서 안내하는 코스를 따라 몇 팀의 신혼부부들과 다녀오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딘가에 내리고 밥을 먹고 멋있는 자연을 보며 감탄했지만, 자세한 것은 모두 다 머릿속에서 지워진 상태였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기억에 선명한데 또 어디를 갔더라? 캥거루를 만나서 먹이를 주기는 했는데 이제는 어느 동물원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렇게 나의 호주는 아주 오래전 앨범을 뒤져야만 나오는 추억 속의 나라였다. 호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 개의 이미지는 오페라 하우스, 캥거루, 코알라 그리고 거대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멋진 공원들 그리고 원주민들의 미술이었다. 그때의 호주와 지금의 호주는 무엇이 달라져 있을까? 기대감을 잔뜩 안고 출발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맑고 청명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리고 우중충한 날씨였다는데 다행이었다. 우리 일행 중에 ‘날씨요정’이 있었는지 여정 내내 좋은 날씨 덕분에 즐거운 연수를 마칠 수 있었다.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오니 그때의 호주가 조금씩 떠올랐다. 커다란 나무들, 온통 영어로 만들어진 간판들(아주 당연하지만) 익숙함이 밀려왔다. 며칠의 여정 동안 인상 깊었던 몇 개의 장면들을 기억해 본다. 1. 라이온 킹 뮤지컬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우리 일정에는 뮤지컬 ‘라이온 킹’이 관람이 포함되어 있었다. 창작자로서 부끄럽지만 뮤지컬은 몇 번 본 적이 없다. 공짜 티켓이 생겨서 다녀온 게 전부였다. 영어 대사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미 영화로는 보았던 것이니 대충의 스토리는 이해가 되었다. (아! 영어의 벽. 이럴 때마다 영어 공부를 해둘걸, 이라는 후회) 공연이 시작되기 전 놀라웠던 모습은 극장의 분위기였다. 판매원이 돌아다니며 맥주와 음료와 음식을 팔고 옆 사람과 떠들고 인사하며 사진을 찍고 객석에서 바로 보이는 무대 옆쪽 매점에서 음식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공연 전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었다. 내가 집중적으로 본 것은 무대 미술과 의상이었다. 한정된 무대에서 공간을 변화무쌍하게 만드는 게 얼마나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로 이루어졌을까? 무대의 일정 부분은 회전판을 사용하고 어떤 부분은

  • 김중석
  • 2026-09-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세요.
  • 욕설, 비방, 혐오 표현 및 과도한 홍보성 내용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운영 정책에 위반되는 댓글은 사전 안내 없이 숨김 또는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