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회관, 봄을 아카이빙합니다
- 작성일 2026-04-01
- 댓글수 0
[문학의 곁]
신춘회관, 봄을 아카이빙합니다
― 신춘문예를 사랑하는 모두를 위한, 신춘회관(@Sinchun.co.kr)
김휴일
1.
2024년 10월의 마지막 주. 퇴근길의 지하철은 언제나처럼 붐볐다. 3호선의 고질적인 문제인 스크린도어 고장으로 출발은 한참이나 지연되었다. 출발 즈음에는 서로의 몸으로 잔뜩 끼어 버려 손잡이를 잡을 필요조차 없었다. 불특정한 사람들의 불쾌한 체취를 참아 내며, 나는 이 시간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어야지. 침대에 누워 영화나 보아야지. 바라기엔 너무나 소박하고 초라한 소망들만 떠올랐다. ‘신춘문예’는 그 답답한 열차 내에서 불현듯 떠오른 단어였다.
2015년. 국어를 전공했지만 글을 쓰지 않고, 시집 한 권 제대로 읽어 본 적 없이 대학교 3학년이 되었다. 내가 대학교 3학년이라니. 뭘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느새 선배였고, 대학교는 언제나 1, 2학년을 위한 공간이었다. 익숙해진 모든 것들로부터 조금 치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인생에 노인이 있듯이 고등학교에는 고3이 있는 법이었고, 대학교에는 3, 4학년이 있는 법이었다. 내년이면 내가 졸업반이 되는구나. 그렇게 취업전선에 뛰어들겠구나. 나는 무슨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했다. 몹시 두렵고 조급했다. 좀 알 만하면 떠나야 하는 게 대학 생활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3학년의 봄은 그렇게 왔다.
‘시창작특강’을 수강 신청한 이유는 정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들을 수업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텐데, 첫 강의를 들은 날부터 시에 매료되어 졸업에 이르기까지 내 대학 생활의 포커스는 오로지 시 쓰기가 되었다. 교수님의 권유로 학과 내 문학 창작 동아리에 뒤늦게 들었고, 시를 읽고 쓰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세상을 시로 보고, 시를 통해 세상을 보니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눈이 생긴 기분이었다. 시를 진지하게 써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새로운 눈 하나를 얻는 일이라는 것을.
길을 걸으며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시로 보였다. 비유의 세상에서 모든 것은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 타이어와 사랑을 연결하는 것도 가능했고, 낙지젓갈과 미래를 연결하는 것도 가능했다. 전혀 관련 없는 것들을 연결하고, 일상의 사건 사이 낯선 감정들을 구태여 파고들면서, 모든 생각을 시로 재구성하던 그 시절은 정말 행복했다.
졸업 후의 삶도 나름대로 다채롭고 재미있었지만, 먹고살 걱정을 하면서 시와는 자연스레 멀어졌다. 더 이상 읽지도, 쓰지도 않는 삶이었다. 오며 가며 만나는 아저씨들이 “국문과 나왔다고? 나도 한때 작가의 꿈을 꿨었는데.” 하는 말들에 헛구역질을 하던 나는 어느새 ‘한 때 시인이 꿈이었다’고 말하는 30대가 되어 있었다. 영원히 낭만적일 거라 호언장담했던 그 시절의 나를 가볍게 배신하고, 시의 세계에서 도망쳤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러웠다. 교수님께는 제대로 연락을 드리지도 못했다.
나름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생계를 이어 갈 직업을 찾게 되었는데, 그건 기획을 하는 일이었다. 서비스 기획자라니 이름부터 근사했다. 일상 속 다양한 문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하며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라 생각했고, 그건 어쩌면 시인의 삶과도 닮아 있다고 억지로 믿었다.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 쓰기와 서비스 기획은 근본적으로 다른 일이었다. ‘무엇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만 비슷할 뿐 세부는 전혀 딴판이었다. 시는 혼자 쓰지만, 서비스는 다 같이 만들어야 한다. 시는 나의 언어로 쓰지만, 회사에서는 각자의 언어로 말한다. 시는 내가 쓰고 싶은 걸 쓰지만, 기획은 고객이(사실은 임원이) 원하는 걸 만들어야 한다. 시는 구태여 설득할 필요가 없지만, 기획은 끝없는 설득과 조율의 과정이다. 시를 쓰는 일은 아무리 길어져도 야근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직장인은 출근 즉시 야근의 기분을 느낀다.
“너는 전혀 스윙하고 있지 않아.”
유튜브에서 보았던 어느 재즈 거장의 말처럼 나는 전혀 기획하고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고, 나조차도 이해되지 않는 업무를 야근까지 하면서 해내고 있었다. 그마저도 남들보다 못했다. 군복무 중에도 느껴 보지 못한, 관심병사가 된 기분이었다. 재미없는 것을 하면서 못하기까지 하니 출근길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머리가 쭈뼛 섰다.
“신춘문예”가 계시처럼 떠올랐던 2024년 10월의 어느 날, 시 쓰기가 아니라 ‘신춘회관’이라는 사이트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급하게 어설픈 시를 써서 신춘문예에 낸다는 것은, 시에 전부를 바치고 있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한편, 아무것도 기획하지 못하고 있는 기획자로서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 세상에 내어놓고 싶었다. 기왕이면 내가 잘 아는 쪽에서 적지만 세상에 분명하게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렇게 며칠 만에 링크를 모으고, 사이트를 개설해서 배포하게 되었다. ‘신춘회관’은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나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다. 문학도로서의 꿈과, 기획자로서의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는 해방구였던 것 같다.
2.
신춘회관은 만들기만 하면 사용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매년 신춘문예에 진지한 마음으로 응모하는 사람이 3만 명은 될 것인데, 연도별/신문사별로 신춘문예 당선작을 정리해 둔 사이트가 하나도 없었다. 대학 시절에도 인터넷으로 당선작을 찾아보기가 힘들어, 그냥 날 잡고 도서관에서 단행본을 읽던 기억이 떠올랐다. 흩어져 있는 링크를 모아 테이블 형식으로 찾아보기 편하게 만들면, 기쁜 마음으로 사용할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서비스 기획자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간단한 웹사이트를 만들어 배포하는 일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앞서 ‘며칠 만에 링크를 모으고 사이트를 개설했다’고 간단하게 적어 두긴 했지만, 사실 그 과정이 말처럼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데이터가 생각보다 들쑥날쑥이었다. 신문사마다 발표하는 날짜가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기사 검색 방식이 그렇게 다채로울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제목이 일정하지 않아서 링크 수집을 자동화할 수가 없었다. 신문사마다 다른 것은 그렇다 쳐도, 같은 신문사 내에서도 매년 제목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00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이랬다가, 어느 해에는 “00일보 신춘문예 당선시”랬다가, “00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시 부문”이라고 하는 식이었다. 어느 신문사에서는 “단편소설”이라 하고, 또 다른 신문사에선 “소설 당선작”이라고 했다. 같은 신문사의 같은 해 당선작인데, 장르마다 제목 형식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찾기가 어려웠다는 얘기다. 1년에 한 번뿐인 업무이고, 담당자도 계속 달라졌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다.
링크를 수집하는 일은 몹시 지루했지만, 십몇 년 치의 링크를 수집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재미있는 사실들도 많았다.
이를테면, 201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이 해의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작은 「여기서 먼가요?」라는 작품이다. 하지만 당선 발표에 당선자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대신 이 기사는 ‘희곡 부문 당선자를 찾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한국일보는 이 발표문에서 당선자를 찾게 된 경위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심사 위원들은 「여기서 먼가요?」가 의심의 여지없이 최고의 작품이라는 데에 합의하였으나, 원고에 이름은 물론 그 어떤 개인 정보도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정작 당선자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공고에 따르면 원고에 개인 신상을 기재하여야 하였으므로 원칙적으로는 탈락을 시키는 것이 맞으나, 그러기엔 월등히 우수한 작품이었다. 응모자가 원고가 아닌 봉투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을 수도 있는데 담당자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등의 사유를 포함하여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여러 경로로 응모자를 수소문해 보기도 했으나 찾을 수 없었고, 부득이하게 지면으로 알리게 되었다고, 당선자에게 연락을 달라는 말로 마무리되었다.
사건의 발생부터 고민의 과정까지, 이후 당선자를 찾으면 지면으로 알려드리겠다는 후속 조치까지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당사자들에게는 몹시 심각한 상황이었을 텐데, 한참 뒤에 찾아보는 나로서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한국일보는 1월 4일의 기사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 확인된 김나정씨”를 통해 당선자를 찾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당선자는 원고를 급하게 수정한 뒤 응모하는 과정에서 연락처와 이름 쓰는 것을 잊었다고.
여하튼 며칠 만에 나는 스무 곳 이상의 신문사의 2010년부터 2024년까지의 14년 치 링크를 수집할 수 있었다. 도메인을 구매하고, 이런저런 툴을 연결해 웹사이트를 배포했다.
‘신춘문예’라는 경쟁도 낮은 키워드에서는 신춘회관이 금세 상위 노출될 것만 같았는데, 첫 한 달 동안은 구글과 네이버에 사이트가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검색엔진 최적화를 고려하여 만든 것인데도 그랬다.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웹사이트더라도,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생각보다 노출이 되지 않으니 괜히 섭섭해서 자꾸만 들여다보았다. 사이트 오픈 이후로 신춘회관 검색 순위를 확인하는 것이 나에게는 하나의 취미가 되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신춘문예’라든가, ‘신춘문예 당선작’이라든가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같은 키워드를 구글에 검색하면서 사이트의 위치를 확인하곤 했다.
사이트를 알려 보자는 용도로 인스타그램 계정도 만들었다. 약간의 돈을 들여 광고를 돌려 보기도 하고, 매일매일 한 편의 시를 골라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데일리 신춘문예라는 이름으로 매일 한 편씩 신춘문예 당선작을 소개하게 된 작업은 그 이후로 거의 1년 넘게 지속하게 되었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이제 구글에 ‘신춘문예’라고만 쳐도 신춘회관이 1~2페이지에 노출되는 것 같다. 신춘회관을 만드는 과정도 재미있었지만, 내가 만든 것을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SNS나 블로그에서 언급하기도 하는 걸 보면 뿌듯함도 못지않게 크다. 때로는 DM으로 따뜻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럴 땐 뭉클하다.
무엇보다, 신춘회관과 관련된 무엇인가를 할 때의 자유로운 감각이 좋다.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것,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공들여 가꿀 대상이 있다는 것은 일상에서도 괜한 활력이 된다. 돈을 벌기는커녕 내 돈이 줄줄 새는 활동이지만 무용한 것을 할 때야말로 진정 나다워지는 것 같다. 베란다에 두고 분재를 가꾸는 마음으로 신춘회관을 운영하고 있다.

신춘문예 작품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채널 ‘신춘회관(@Sinchun.co.kr)’
3.
신춘문예만 생각하면 왜 가슴이 뛸까. 어쩐지 첫사랑 같은 느낌이 있다. 소수에게는 아름다운 과정과 결실이 주어지지만, 대부분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미완의 아름다움으로, 혹은 선망으로, 슬픔으로 남는다. 누군가에게는 좌절과 절망으로 기억되겠으나, 대부분은 그 시간마저도 소중한 추억으로 떠올리게 된다.
성인 60% 이상이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어느 면에서는 참 문학적이다. 새해의 시작을 신인 작가의 글로 여는 나라가 또 있을까. 봄이라는 이름으로 신인 작가의 탄생을 알린다는 생각을 누가 처음 했는지. 생각할수록 낭만적이다.
일상에서 봄은 젊은이를 지칭하는 단어로 널리 사용된다. 젊음을 표상하는 '청춘(淸春)'이라는 단어부터가 그렇다. 말 그대로 푸른 봄이지 않나. 그러나 신춘문예의 세계에서만큼은 봄을 젊음이 독점하게 두지 않는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글이라는 정신적 산출물로 새로운 봄들을 가려낸다. 실제로 당선자들의 상당수가 40-50대이고, 오히려 어린 작가들의 당선이 낯설게 주목을 받는다. 나는 이러한 신춘문예식 계산법이 마음에 든다. 나이와 무관하게 글쓰기에 있어서는 푸릇푸릇한 봄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희망.
AI가 세상을 빠르게 점령하고 있는 지금, 앞으로의 문학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AI 작가가 출현하여 스스로 쓴 작품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작가들이 AI의 보조를 받아 글을 쓰는 세상은 분명히 올 것이다.
그러나 AGI 혁명이 당장 일어난다 해도 AI 작가가 신춘문예에 당선된다거나, 위대한 작가로 이름을 남기는 일은 수십 년 이내에는 없을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AI가 꽤 재미있는 소설이나 괜찮은 시를 쓸 수는 있겠지만, 박완서 같은 작가의 수준에 가기는 영영 어려울 것이다. 드릴로 땅을 파고 들어가는 것처럼 어느 경지를 넘어가는 일은 컴퓨터를 한없이 돌린다고 해도 아득히 어려워질 것이기에.
신춘문예도 어쩌면 변할 것이다. 두세 명의 심사 위원이 짧은 시간 내에 평가를 진행하는 심사 방식이나, 우편으로만 접수하는 응모 방식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신춘문예는 삶을 쪼개어 글을 쓰는 신인 작가들과 신문이 존재하는 한, 생각보다 오래 살아남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신춘회관 운영자로서 신춘문예의 종말이 오는 날까지 이 신의 근처에서 기웃거리고 싶다. 자신의 글을 쓰고야 말겠다는 사람들과 느슨하게 연대하며, 가능한 도움을 베풀면서,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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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곁〉은 창작자뿐 아니라 문학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하고 확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책이 독자에게 닿기까지 그 과정에 머무는 사람들, 문학과 독자 사이 어딘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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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석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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