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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호

  • 작성일 2025-12-01

문장웹진 12월호를 열며

   2025년의 마지막 달을 목전에 두고 있네요. 올해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일들을 찬찬히 더듬어보려 하는데 이상하게도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올해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당최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충격적이고 비통한 사건과 함께 시작된 탓일까요. 되돌아보니 어느 정도는 그런 듯도 합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닐 텐데, 라는 찝찝한 기분에 작년 12월에서 올해로 넘어오던 시점을 회상하다가 번뜩 깨달았습니다. 바로 지난 연말연시에 올해의 목표를 설정하지도 소원을 빌지도 않았기 때문이더라고요.

   저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간에 항상 지난 12개월을 반성하고 새로운 목표를 세우며 마음을 다잡아왔습니다. 딱히 대단한 목표나 소원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말이죠. 어쩌다 보니 몇십 년 동안 이어오던 연례행사를 건너뛰고 올해를 다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개인적인 목표를 생각할 겨를없이, 지난 연말연시를 진심으로 분노하고 슬퍼하며 때때로 거리에서 보낸 탓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이대로 사라져선 안 된다는 염원이 컸습니다. 어쨌든 개인적인 반성과 목표 없이 시작된 한 해가 이렇게 끝나가네요. 여러분의 2025년은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이번 연말연시에는 지난번에 못 했던 반성도 하고 새해 목표도 세워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년 몫까지 두 배로요. 이런 개인적인 야심(?)을 담아, 2025년 마지막 기획으로 <21세기 문학이란 무엇이었나>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21세기 문학’은 이미 상당한 시대적 지층을 형성한 과거이자 현재요, 이보다 훨씬 긴 시간 우리가 숙고해야 할 미래 지평입니다. 이번 호에 실린 풍성한 시·소설·비평을 각자의 자리에서 음미해가며 ‘21세기 문학’의 향방을 상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 문장웹진 편집위원 윤재민 평론가 외 편집위원 일동




[기획] 문장웹진 REWIND

문장웹진 20주년을 기념하여, 역대 편집위원들이 직접 선정한 대표 작품들을 다시 읽습니다.
시간을 넘어 되살아난 문학의 순간들과 함께,
그 의미와 감상을 새롭게 나누며 문장웹진의 아카이브를 확장합니다.

“우리 아파트는요. 그런 일이 없어요. 그 아가씨가 그냥 원래 그랬던 거라니까 그러네.”

문장웹진 > 기획 > 삶은 곡선이다 게시글로 이동

- 글래스카이만(glasscaiman) 작가, 김경욱 「스프레이」, 김미월 「RE 한없이 축축한 이야기」를 읽고

글래스카이만

북디자인, 그래픽디자이너, 책이라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문장웹진 12월호 살펴보기

가르치는 문학, 배우는 문학, 자라나는 문학

[문장서포터즈] 가르치는 문학, 배우는 문학, 자라나는 문학 (인터뷰이: 조인혜, 고등학교 국어교사) 문장서포터즈 2기 김성호 문학은 단순히 독자와 작가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독자와 작가가 되기 위한 그 과정, 여로를 봐야 한다. 그 여로엔 다양한 존재가 있지만, 나는 그중 학교 현장에서의 교사와 학생 간의 공간에 주목했다. 2025년 10월 23일, 합정역의 한 카페에서 조인혜 선생님을 만났다. 9년 전 모교의 국어 교사였던 조인혜 선생님은 인터뷰 내내 진지하고 활기차게, 자신의 독서론과 더불어 서포터즈 질문에 답해 주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조인혜입니다. 배우는 경험을 좋아합니다. (사진1. 조인혜 선생님의 오브제인 뉴욕도서관 에코백) Q. 평소에 문학을 즐겨 접하시나요? 특히 즐기시는 장르나 분야가 있다면요? - 음, 소설을 제일 많이 읽어요. 제일 좋아하는 장르이고요. 책 대화 모임을 4년째 하고 있기도 합니다. 잡지 독서평설과 출판사 사계절 콘텐츠에서 청소년 소설을 읽고 소개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문학을 접하고 읽고 소개하고 가르친다는 건, 일적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에요. 물론 시도 좋아해요(웃음). 쉽지 않지만 시창작 모임을 동료 교사들과 함께 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시 창작 활동을 같이 하기 전에 먼저 저 스스로 배우고 체득하려고 그래요. 그래서 소소하게 문집도 내고요. 시가 어렵지만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희곡은 상대적으로 적게 읽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SF 소설을 많이 읽었고요. 딱히 가리는 건 없고, 그때마다 빠지는 장르나 분야가 있어요. 무엇보다 학생들과 함께 읽으면 아무래도 좋은 작품을 더 좋아합니다. Q. 최근에 그런 작품이 있었는지요? - 박지리 작가의 작품입니다. 다만 어두워서 아이들에게 쉽게 풀어서 얘기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최진영, 김애란 작가의 작품도 좋았어요. Q. 국어교사로서 문학작품을 접할 때와 개인 독자로서 접할 때의 다른 점이 있나요? - 정체성을 나누고 있진 않습니다. 불쑥불쑥 나와요. 그런 게 혼재되어 있죠. Q.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어떻게 문학적인 활동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작품을 다 읽고 대화하게 하려고 합니다. 어떤 활동을 하든 반드시 하도록 했던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책 대화’와 ‘글쓰기’입니다. 같은 소설을 원하는 아이들끼리 묶은 다음, 질문하고 대화하는 활동을 해요. 그 이후 개인 서평을 쓰게 하고요. 사회적 독서인데(정의가 모호하긴 하지만 같이 공유하면서 읽기가 필요합니다. 먼저 선생님들과 경험해보니 그렇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게 참 중요하다고 여러 번 느껴요. 그런 활동을 하고 나면, 혼자 개인적으로 읽었을 때와 사회적 독서 활동 후의 감상의 결과 차이가 커요. 일단 혼자 읽을 때 몰랐던 점들을 알게 돼서 좋은 점이 있고, 내가 잘 몰랐던 같은 반 아이가 저런 생각을 가지고

  • 김성호
  • 2025-12-29
[인터뷰] 강영숙 소설가, 나약한 한 명의 인물을 떠올리며

나약한 한 명의 인물을 떠올리며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 강영숙 소설가(인터뷰어 : 안세진 평론가) 강영숙은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장편소설 『리나』(랜덤하우스코리아, 2006/문학동네, 2011), 『라이팅 클럽』(자음과모음, 2010/민음사, 2020),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문학과지성사, 2013), 『부림지구 벙커X』(창비, 2020), 『분지의 두 여자』(은행나무, 2023), 소설집 『흔들리다』(문학동네, 2002), 『날마다 축제』(창비, 2004),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문학동네, 2009), 『아령 하는 밤』(창비, 2011), 『회색문헌』(문학과지성사, 2016), 『두고 온 것』(문학동네, 2021)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왔다. 장르와 문체를 자유자재로 바꾸어가며 매 소설 변모해온 강영숙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재난’ 그리고 ‘여성’이라는 두 가지 단어일지도 모른다. 지진으로 파괴된 가상의 공간 ‘부림지구’에 남아있는 생존자들의 모습을 그려낸 『부림지구 벙커X』로 2022년 가톨릭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이외에도 한국일보문학상, 백신애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새로운 장편소설의 출간을 앞두고 있는 그와 서면으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상반기에는 계간지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 단편소설 「중회」를 발표했습니다. 한동안 단편소설 청탁이 없어서 감각을 잃었던 것 같기도 해요. 마음만큼 표현이 잘되지 않아 어렵게 썼던 것 같습니다. 더운 여름에 몇 주간 집중해서 장편소설 초고를 쓰고 나서 조금 쉬었고요. 9월부터 다시 소설을 수정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15만 자 정도를 썼는데 10월 말까지 끝내려던 저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매일 조금씩 써나가고 있습니다.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누구나 그렇지만 소설을 쓸 때는 대부분 혼자 쓰고 혼자 읽고 더러는 혼잣말도 하면서, 온전히 혼자서 작업합니다. 제가 소설을 쓰는지 아무도 모르고요. 그래서 쉽게 게을러질 때가 있는데 그래도 펠로우십에 선정되었기 때문에 게을러질 때마다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또 창작의 측면에서는 그동안 써보고 싶다고 상상만 했던 작품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거라서 그것이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 있어요. 써봤기 때문에 작품이 실패한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을 산업화 이전(1850년~1900년) 대비 1.5˚C로 제한하자고 했었지만, 2024년 평균기온 상승폭은 1.55˚C로 그 저지선을 넘고 말았습니다. 지구가 펄펄 끓게 된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고 앞으로 일어날 변화도 두렵지만,

  • 2025-12-25
[인터뷰] 성해나 소설가, 무해한 아픔과 평평한 왜곡을 넘어, 한 사람의 우주로

무해한 아픔과 평평한 왜곡을 넘어, 한 사람의 우주로 아르코 문학 작가 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성해나 소설가(인터뷰어 : 성현아 평론가) 소설가 성해나는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오즈」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오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다루는 소설이지만, 더 정확히는 나이도 상처의 모양도 다른 두 여성 ‘오즈’와 ‘하라’가 서로를 보듬어 안는 이야기이다. 2022년에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을 펴냈고, 2023년에는 첫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을 출간하였다. 2025년에 발간한 작품집 『혼모노』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24·2025 젊은작가상, 2024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2025 신동엽 문학상 등을 연이어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았고, 예스24 ‘2024 한국 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온라인 투표에서 1위에 오르는 등 대중의 사랑과 지지도 함께 얻었다. 배제되고 소외되는 인물들에 오래 품을 내어주는 성해나 작가는 현재 자신의 모교인 서울예술대학교에서 소설 창작을 가르치며 다음 세대 문학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내면에 드리운 그림자를 집요하게 탐사하는 일을 놓치지 않는, 성실하게 세심하고 치열하게 다정한 성해나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펠로우십에 선정된 이후 『혼모노』라는 작품집을 발간했습니다. 작품집이 발간된 후 부쩍 바빠진 것 같지만, 집필은 부지런히 하려 합니다. 근래에는 「아무것도 기념하지 않는」이라는 단편을 썼어요. 의존에 관한 가족 서사입니다. - 성해나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다음 행보에 관한 고민이 컸던 시기에 펠로우십에 선정되었어요. 어찌 보면 예술가에게 지원사업이란 마찰을 덜어 생계와 창작 사이의 톱니를 더 부드럽게 맞물리게 하는 윤활제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 사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 작품을 써나갈 토대를 만들어주었죠.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시각장애인을 위한 듣는 소설집과 친일 문제, 청년 소외, AI사회의 노동 등을 한데 엮은 기담집을 발간할 예정입니다. 기담집의 경우는 ‘어제-오늘-내일’이라는 테마로 엮을 생각이고요. 내년 발간을 목표로 둔 터라 두 작품 모두 충실히 써나가고 있습니다. - 작품 「인비인人非人」에서는 일제 731부대의 생체 실험을,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에서는 고문에 활용된 건축물 남영동 대공분실을, 등단작 「오즈」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셨습니다. 피해자가 실존하는 역사적 비극을 작품 속에 담아내는 일은 독자 입장에서는 매우 귀한 작업이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자료를 연구하고 따로 공부해야 할 뿐 아니라 재현의 윤리까지

  • 2025-12-19
[인터뷰] 선우은실 평론가, 더 자유로운 비평을 향해

더 자유로운 비평을 향해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 선우은실 평론가(인터뷰어 : 안세진 평론가) 선우은실은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페미니즘, 문학장(場)/문학제도, 저자성/독자성과 같은 동시대의 담론적 섹터를 종횡무진 가로질러온 그의 작업은 그야말로 ‘자립할 수 있는 비평’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적극적 실천에 다름 아니었다. ‘보이는 비평’ 내지는 ‘대화 가능한 비평’이라는 화두로부터 비롯된 최근의 작업에서 선우은실은 ‘비평’이라는 텍스트가 생산되고 소비되어온 관습적 사이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그에 대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이에 대해 그와 서면으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문학 평론을 쓰는 선우은실입니다. 비평집 『시대의 마음』(문학동네, 2023)과 생활비평산문집 『웃기지 않아서 웃지 않음』(읻다, 2024)을 썼습니다. 여성, 청년, 제도, 문학의 구조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두어왔습니다. 비평집과 산문집에서도 이와 같은 주제를 비평의 언어로, 또 생활 비평의 감각으로 다루어 내고자 했습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번 펠로우십에서는 제도 안에서 생산되는 비평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제가 지금껏 체험해온 비평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의미를 생산하는 비평, 작품과 유기적 관계를 맺는 비평, 그리고 이 모든 게 혼자의 작업이 아닌 타인과 공유되는 경험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비평이란 작업은 해석을 통해 대화적이거나 구성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또 창작의 과정에서 또한 이미 비평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되, 그걸 ‘비평문’과는 조금 다른 문법으로 풀어나가고 싶었습니다. 비평의 독자를 직접 확인하고 ‘다른 문법’으로 풀어나간다는 점이 최근의 저에게는 중요한 문제인데요. 비평을 어떻게 ‘행위’로 소환할 수 있을지, 그것을 어떻게 타인과 교류하는 형식으로 제안하고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지가 늘 고민이었기 때문에요.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라는 제목의 비평 전시 프로젝트를 구상했습니다. ‘텍스트는 어떻게 전시되는가? 우리는 전시된 것으로부터 무엇을 읽는가?’라는 부제를 달아서요. 단적으로 말해서 저는 이 전시의 주인공을 ‘비평’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비평이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창작자를 포함한) 모든 참여자가 비평 행위를 인지할 수 있을까? 비인지적일지라도 일련의 비평 행위를 따라가면서 작품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에 대해 대화할 수 있을까? 그런 점들을 내

  • 2025-12-19
[인터뷰] 김소연 시인, 아름답고 징그럽게

아름답고 징그럽게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 김소연 시인(인터뷰어 : 최다영 평론가) “나 잠깐만 죽을게/삼각형처럼 (…) 나 잠깐만 죽을게/단정한 선분처럼”(「수학자의 아침」) 1993년부터 시를 발표해온 김소연은 우리에게 ‘눈물의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6년 첫 시집 『극에 달하다』를 시작으로 『수학자의 아침』(2013) 외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을 발간하였다. 2010년 노작문학상, 2012년 현대문학상, 2015년 이육사시문학상, 2020년 현대시작품상, 2024년 청마문학상을 수상한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대표 시인 중 한 명이다. 그런가 하면 직접 설립한 어린이도서관 ‘웃는책’의 관장을 역임하며 많은 어린이들과 학부모를 위한 문화공간 마련에 주력하기도 했다. 2008년 『마음사전』으로 시작된 그의 ‘사전’ 시리즈 또한 큰 사랑을 받았다. 최근의 주목할 활동으로는 2023년 일본에서 『수학자의 아침』 번역 시집이 출간된 일과 독일에서 ‘Lyrik X Kunst X Musik!’ 낭독회에 참여한 일을 들 수 있겠다. 2025년에는 그가 소속된 텍스트-사운드 퍼포먼스 팀 ‘메아리조각’의 앤솔로지 시집 『그 밖에』를 발간하였고, 문학주간 협력 프로그램 ‘장르의 경계를 넘어’에 패널로 참여하였다. 내년에는 베를린에서 시 낭독 퍼포먼스가 예정되어 있다. 이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에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김소연 시인과 문지살롱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시인보다는 ‘시를 매개하는 자’로 자신을 소개하고 그림책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드러내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읻다 출판사와 뮌헨에 있는 박솔 시인의 공동초대로 2024년 6월에는 뮌헨 레지던시에 다녀왔습니다. 2025년에 유독 독자를 만나기 위한 행사를 열심히 했고,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은 건 광명의 소하 서점에서 『극에 달하다』, 제 첫 시집으로 대담을 해본 경험입니다. 그 시집을 유난히 좋아한다고 저한테 말한 적이 있었던 임솔아 시인이 대담을 아끌어주셨습니다. 이 시집으로 독자를 만나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30여 년 전에 출간된 시집이라 준비를 하면서 많은 기억을 복원해야 했는데, 그 시간이 제게 소중했습니다. 그리고 ‘메아리조각’의 이름으로 공동시집 출간을 하게 된 것 또한 제겐 재미있는 사건 중의 하나입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내가 지금 무슨 꿈을 더 꾸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한참 하고 있을 시기였습니다. 어떤 꿈은 너무 욕심 같고 어떤 꿈은 좀 절제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신작시를 새롭게 쓰는 일 외엔 별다른 큰 관심이 없었는데, 펠로우십에 선정되면서 용기를 좀더 얻게

  • 2025-12-19
[인터뷰] 민병일 수필가, 사물의 숨결을 따라, 방랑과 사유의 길로

사물의 숨결을 따라, 방랑과 사유의 길로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민병일 수필가 민병일 작가는 시인이자 수필가, 사진작가, 그림작가로 활동하며 인문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창작 활동을 보여주는 예술가이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 국립조형예술대학 시각예술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았다.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산문집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아우라, 2011),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문학판, 2016), 『창의 숨결, 시간의 울림』(나남출판, 2021), 『행복의 속도』(문학판, 2021), 『담장의 말』(열림원, 2023), 『나무 새 꽃, 느림의 미학』(열림원, 2025)과 사진집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열림원, 2009) 등을 펴냈다. 또한 철학 메르헨 『바오밥나무와 방랑자』(문학과지성사, 2020), 『바오밥나무와 달팽이』(문학과지성사, 2023)와 번역서 『붉은 소파』(중앙일보 중앙북스, 2010)을 출간하였다. 소설가 박완서와 함께 작업한 티베트·네팔 기행 산문집 『모독』(열림원, 2014)에는 그의 사진 150컷이 수록되어 있다. 문학적 성취 역시 높이 평가받아 제7회 전숙희문학상(2017), 제32회 성호문학상 대상(2021), 제1회 신격호 샤롯데문학상 대상(2024) 등을 수상하였다. 문학이 여러 장르의 예술과 어떻게 만나고 확장될 수 있는지를 꾸준히 보여주며, 사유 깊은 산문의 가치를 탐구해 온 민병일 작가와 서면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최근, 산문집 『나무 새 꽃, 느림의 미학-숲에는 천 개의 아르고스 눈이 있다』(496쪽, 양장본)를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은 제가 10여 년간 매일 오후 2시면 숲을 산책하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쓴 산문집입니다. 오랜 세월 나무 새 꽃 바위 곤충을 만나며 숲을 인문학적·예술적 대상으로 사유하고자 한 책입니다. 아래 글이 이 책을 가늠할 수 있는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숲길을 걸으며 진정 소망한 것은 풍경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숲길에 은폐된 ‘숲’ 혹은 ‘나무’에 대한 이중적 의미(Zweideutigkeit), 즉 눈이라는 거울에 비친 숲길의 이면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사랑하는 숲길은 풍경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사유의 풍경이 그려지는 공간이다. 숲길에서 나무 새 꽃을 통해 만나고 싶었던 것은 존재와 인간 본질에 대한 사색이었으며, 숲길을 걸으며 ‘존재물음에로(Zur Seinsfrage)’ 나아가는 것이었다. 나무 새 꽃은 어쩌면 인간의 또 다른 삶을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나무의 아름다움은 ‘사물로 하여금 자신의 사물 존재 속에 스스로 고요히 머무르도록 놓아두는(das Ding in seinem Dingsein auf sich beruhen l

  • 2025-12-19
[인터뷰] 안미란 아동문학가, 어리다고 모르지 않아요

어리다고 모르지 않아요 아르코 문학 작가 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 안미란 아동문학가(인터뷰어 : 안세진 평론가) 안미란은 1996년부터 약 30년 간 동화 작가로 활동을 이어왔다. 그의 동화는 언제나 노동, 인종, 장애, 자연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다룬다. 소수자와 다양성에 대한 사려 깊은 문제의식과 사회 문제에 대한 소신 있는 목소리를 토대로 안미란은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2024년에는 작품 『그냥 씨의 동물 직업 상담소』(창비, 2023)가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 ‘아너리스트’ 후보로 선정되어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세계총회에 작품이 소개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어느덧 활동 30년차를 맞는 그의 소회는 어떨까. 서면으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달에 『이건 진짜 비밀인데』(길벗어린이, 2025)라는 앤솔로지 작품집이 나왔어요. 제가 쓴 것은 「이상한 생일잔치」(길벗어린이, 2025.11.)라고 사육 돼지의 이야기예요. 개인 창작집은 『다랑이 마을에 어서와!』(사계절, 2025.06)을 냈는데 멧돼지와 너구리 이야기예요. 최근 쓰는 이야기에 동물 등장인물이 많이 나오는데요, 지금 붙잡고 계속 고민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도시로 넘어오는 야생동물과의 공존이라든지, 사역 동물이 은퇴한 후의 생존권 같은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물은 문학 작품 속에서 어린이의 대리자 역할을 하고 어린이의 욕망을 대변하기 좋아요.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어린이 문학에서 동물 등장인물이 사랑받는 이유기도 하고요. 『다랑이 마을에 어서와!』 속 킁킁이와 두드리처럼 어린이들이 자연 속에서 마음껏 행복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습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최초 등단이 1996년 1월에 동쪽나라아동문학상에 동시 부문 수상자가 된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문학상이 없어졌고, 등단 증빙도 여의치 않아 공식적으로는 2000년 출판사 공모에 당선된 것을 이력으로 삼는데요, 어찌 되었든 창작 이력이 30여 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것 같지만, 펠로우십 작가라는 명패로 응원과 격려를 주시니 힘이 나긴 합니다. 작년 이맘때쯤 펠로우십 지원 서류를 쓰면서 문학을 기반으로 한 저의 활동 전체를 총 점검하고 정리하는 계기기 되었습니다. 누군가 소감을 물었다면 ‘비록 재주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멈추지는 않았군. 나 정말 수고했어, 진짜 열심히 달렸네.’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그러니 선정된 게 순전히 ‘로또 당첨’이라는 식의 농담은 하지 말아주세요. 속상해요.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초고를 넘기긴 했습니다. 모 출판사와 동물원의 변화와 미래를

  • 2025-12-19
[인터뷰] 최상희 아동청소년문학가,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

세상은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최상희 아동청소년문학가(인터뷰어 : 최다영 평론가) 최상희 작가는 『옥탑방 슈퍼스타』(2011)를 시작으로 『늪지의 렌』(2025)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아동청소년문학을 집필해왔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2011년 블루픽션상, 2014년 사계절문학상 대상, 2016년 SF어워드 중단편 부문 우수상 등이 있다. 또 『닷다의 목격』(202동1)과 앤솔로지 『나를 초월한 기분』(2025)가 문학나눔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이력이 있다. 2025년에는 문학주간 협력스테이지 프로그램인 ‘어린이-청소년 문학으로 닿기’에 패널로 참여하였다. 이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에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최상희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때로는 청소년 소설가로, 때로는 여행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상희 작가를 만나보자.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지난여름에 <늪지의 렌>이라는 청소년 소설을 출간하고 학교와 도서관에서 강연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유전자 조작 시술이 의무화된 미래의 세계를 무대로 합니다. 시술을 받은 아이들이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발작을 일으키자 정부가 소집령을 내려 강제 구금하고 이 폭력적인 상황에서 살아남고자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의 연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쓴다는 건 고독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읽어주고 있으리라는 희미한 희망을 품고 깊고 어두운 밤을 견딥니다. 펠로우십 선정은 그 희미한 소망이 닿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선가 내 글을 읽어주고 있구나, 잘 해내고 있구나, 그러니 더 써보라는 응원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물론 무척 기뻤습니다.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두 권의 소설집과 일러스트 북 출간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한 권은 출간했고 나머지 두 권은 작업 중입니다. 강연이나 북토크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습니다. 작가란 답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가 던진 질문에 독자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답을 찾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응답을 들어볼 기회를 늘 갈망하죠. 지난가을 ‘문학주간 2025’ 대담에서 다양한 독자들을 만난 경험은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책을 통해 우리는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 최근 몇 년간의 작품을 돌아볼 때, 작가님이 스스로 인식하는 창작의 변화 혹은 전환점은 무엇인가요? 2019년에 출간한 <닷다의 목격> 이후로 SF 혹은 판타지 소설이라고 분류되는 이야기를 많이 썼습니다. 2016년에 ‘제3회 SF어워드’에서 중단편 부문 우수상 수상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수상작 ‘그래도 될까’가 SF라는 걸 상을 받

  • 2025-12-19
[인터뷰] 김영찬 평론가, 우울에서 사랑으로

우울에서 사랑으로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김영찬 작가(인터뷰어 : 최다영 평론가) 2003년 경향신문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한 김영찬은 첫 비평집 『비평극장의 유령들』(2006)에서부터 가장 최근의 『사랑의 혁명』(2025)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국문학 연구와 리타 펠스키 번역에서의 공헌도 빼놓을 수 없다. 또 그는 2005년 현대문학상, 2007년 대산문학상, 2011년 팔봉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평론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증상-유령들의 목소리를 따라 읽는 것으로 비평을 정의하는 김영찬 작가와 이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을 기념하여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최근 네 번째 비평집 『사랑의 혁명』(문학과지성사, 2025)을 출간했습니다. 2024년에 출간한 『언어와 혁명—혁명 이후의 한국문학』(강, 2024)이 1960년대 문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폈다면, 이번 비평집은 주로 2017년 이후 읽은 한국소설에 대한 비평을 실었습니다. 이 시기에 내가 읽은 한국소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회적 재난의 트라우마를 힘겹게 헤쳐나가고 있었고, 나름의 언어와 형식으로 시대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 소설의 글쓰기를 떠받치고 있는 동력이 다름 아닌 ‘사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소설에서 사랑은 오지 않는 미래에 대한 기다림의 고통이자 동시에 역으로 고통스러운 삶의 재건축을 열망하는 기저의 동력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비평집은 ‘사랑의 혁명’이라는 타이틀 아래 그 사랑의 언어를 헤아리고 받아 적으려고 한 나름의 비평적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와 더불어, 식민지 시대부터 1960~70년대, 1990년대를 아우르며 기억해야 할 한국소설의 흐름과 맥점을 짚어보는 글들도 함께 묶었습니다. 이제는 멀어져간 그 근대문학의 유령들의 목소리를 하나하나 헤아리는 것 또한 저로서는 오늘의 한국문학과 더불어 살아가는 동시대적 실천으로 읽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첫 평론집 『비평극장의 유령들』(2006)의 서문에서 “비평이 할 일 중 하나는 밑바닥에서 웅성거리는 그 유령의 목소리들을 세심히 따라 읽고 그에 의미와 맥락을 부여하며 그것의 공과를 따져 헤아리는 것이다. (…) 그것을 통해 나 안의 증상과 대화하는 작업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청년 김영찬의 비평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그 시절 선생님께서는 비평을 통해 선생님 안의 어떤 증상과 대화하셨는지,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비평을 무엇이라 정의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오래전 했던 말을 이렇게 새삼 소환해주시니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저는 비평이란 문학이 앓고 있는 증상을 읽어내는 일종의 정신분석적 임상 치료와도 흡사한 것이라 생각

  • 2025-12-19
[인터뷰] 김준현 아동청소년문학가, 세대 초월해 사람 마음 비슷해… ‘나라면?’ 되물을 뿐

세대 초월해 사람 마음 비슷해… ‘나라면?’ 되물을 뿐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김준현 아동청소년문학가(인터뷰어 : 허 희 평론가) “어디부터가 어른이고 어디부터가 어린이인가 싶게 맞아떨어지는 경계선이라는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2017년 첫 동시집 『나는 법』으로 제5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기존 동시의 문법을 넘어서는 유쾌한 실험을 선보인 김준현 시인은 동시와 청소년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자와 만나왔다. 2022년 발간된 두 번째 동시집 『토마토 기준』과 첫 청소년시집 『세상이 연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어』는 각각 어린이와 청소년이라는 서로 다른 독자층을 향하면서도 그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응시하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공통으로 머무는 지점이다. 어린이의 발랄한 상상력부터 청소년의 불안한 내면까지 아우르는 그의 폭넓은 스펙트럼은 세대와 성별을 초월한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올해 초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에 당선되며 소설가로서의 새로운 행보를 시작한 그가 2025년도 아르코 펠로우십에 선정되었다. 펠로우십 선정을 계기로 동시와 소설, 평론을 넘나들며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는 시인의 현재와 미래를 묻고 답을 들었다. 세대 초월해 사람 마음 비슷해… ‘나라면?’ 되물을 뿐 — 어린이의 마음을 오롯이 담아낸 동시집 『토마토 기준』과 청소년의 불안을 섬세하게 어루만진 청소년시집 『세상이 연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어』를 연이어 펴내셨습니다. 이처럼 각기 다른 연령대의 독자를 동시에 만나게 된 특별한 경험이 있으셨는지요? 두 세계를 아우르며 작업하시는 동안 발견하신 어린이와 청소년의 ‘마음’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점과 결정적인 차이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2017년에 첫 동시집인 『나는 법』을 출간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 전까지는 특별히 실재하는 어린이들을 만날 일은 없었고, 저 스스로의 유년을 발굴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어린이라도 이런 감정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동시를 써왔는데요. 그건 제가 그때까지 별다른 사회경험이 없이 읽고 쓰기만 하는 생활에 익숙한 20대후반의 청년이어서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다만 첫 동시집을 낸 이후로 다양한 어린이들을 만나고 어린이들의 삶과 언어에 좀더 밀접해지면서 동시에서도 자연스럽게 변화의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두 번째 동시집인 『토마토 기준』에는 그런 지점들이 자연스럽게 반영되었고요.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우리 아이가 독자’라는 감각이 더 선연해졌습니다. 소위 말하는 ‘당사자성’이라고 할까요. 청소년독자들을 만난 건 시기 상으로는 좀더 이전인데요. 20대에는 학원의 입시 강의를 통해 만났습니다. 대구창의융합교육원의 산하 기관인 문예창작영재교육원에서 4년째 문학을 사랑하는 청소년들을

  • 2025-12-19
[인터뷰] 손택수 시인, 소리의 질서에 귀를 기울이면

소리의 질서에 귀를 기울이면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 손택수 시인(인터뷰어 : 최다영 평론가) * 1998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시인 손택수는 『호랑이 발자국』(2003)부터 『눈물이 움직인다』(2025)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시집을 발간하고 여러 동시 앤솔로지에 참여하였다. 청년기에는 실천문학의 주간을 거쳐 대표직을 맡기도 했으며 현재 노작홍사용문학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1 임화문학예술상, 2020년 조태일 문학상, 2023년 오장환 문학상과 고산문학 대상, 2025 풀꽃문학상이 주요 수상 경력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에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사랑은 우리를 늘 새로운 이해로 이끌어가는 것”이라 말하는 손택수 시인을 만나보자.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집 『눈물이 움직인다』(창비, 2025)를 출간하면서 독자들과의 만남이 부쩍 늘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대선 주간에 출간이 겹치면서 노출도 되질 않고 어지러운 시국에 태평하게 책 홍보하는 것도 면구스럽고 해서 안팎으로 좀 시무룩해 있었는데, 찾아 읽는 독자들이 조금씩 있는 것 같아요. 산후우울증 기간이 끝나가는지 자연스럽게 새로운 작업도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대학 민주화 운동을 하시다 작고하신 문학평론가 고현철 선생 10주기 백서에 산문을 실었고, 해남 땅끝문학관에서 송기원 선생 1주기 추모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 거기 도록에도 작가론을 붙였습니다. 선배 문인들의 생애와 작품을 갈무리하면서 저의 문학 행로도 돌아보는 경험들을 하고 있습니다. 독자들과의 만남 중에는 학생들을 만나는 게 즐거운 일인데, 최근엔 십 수년 전에 담양한빛고등학교에서 만났던 학생이 작가가 되어 재회를 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올해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은 함윤이 소설가가 그 주인공이죠(웃음)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연속과 단절의 시간을 동시에 경험하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도의 지원을 받았으니 의식적으로 좀더 초점화된 작업들을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이런저런 궁리와 모색들이 산만하게 흩어져 떠돌다가 돋보기 속으로 모여서 발화를 준비하고 있다고나 할까, 일상 가운데 휘발되기 쉬운 에너지들이 모이고 있다고 할까, 동분서주하던 생계 활동들이 절제되면서 모처럼 등단을 준비하던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여간 저로선 순도 높은 일종의 몰입의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죠. 여기서 하나의 매듭이 지어지면서 후반기 작업을 향한 새 가지들이 뻗어나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새 시집을 출간한 뒤 침묵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표면적으론 붓이 멈춘거죠. 그런데 이 시간은 사실 완공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건축물의 비계와도 같아서 작가들에겐 다음 단계를 위해 꼭 필요한 안거의 시간이기도 하죠. 현재로선

  • 2025-12-19
[인터뷰] 김중일 시인, 다른 겹의 세계에서 만난 나

다른 겹의 세계에서 만난 나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김중일 시인(인터뷰어 : 최다영 평론가) 『가슴에서 사슴까지』(2018) 이후 우리에게 ‘애도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중일 시인은 2002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첫 시집인 『국경꽃집』(2007) 외 다수의 시집을 출간하고 여러 앤솔로지에 참여해왔다. 가장 최근에 발간한 시집은 여섯 번째 시집인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2022)으로, 이전 시집들에서처럼 영원회귀에 대한 사유와 생사의 너머를 직시하는 투명한 시선이 특징적이다. 2012년 신동엽문학상, 2013년 김구용시문학상, 2019년 지훈문학상, 2022년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했으며 2025년에는 지역 문화 강연에 참여하며 활발히 독자들을 만나왔다. 이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에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시인 김중일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서 문예창작과 학생들과 시창작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수업 외 업무를 포함해서 꽉 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내년 상반기 시집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3~4년간 모인 시들을 이제부터 취합하고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시간이 늘 부족하지만 최근에는 청탁받은 원고는 재차 퇴고가 필요치 않았으면 해서 부쩍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다음에 출간될 작품은 전작 시집(『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과 연작 형태로 처음부터 구상했습니다. 물론 독자들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전작에 이어 다음에 출간할 작품집의 주요 테마라면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작은 현실에서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생면부지의 사람들(나와 너)이 ‘시’라는 가상 공간 속에서 ‘다시 살기’를 함께 하면서 회복해 가는 에피소드들이었습니다. 다음 시집은 그 후속편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전작과 연속적이고, 선명히 다른 점이라면 ‘어린이’들을 메타포로 한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동행’한다는 느낌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입니다. 이번 인터뷰도 같은 층위로 볼 수 있고요. 단지 재정적 지원이 아닌 지속적으로 저의 작품 활동 및 성과에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은, 저같이 활동 연차도 어느 정도 쌓인 게으른 창작자에게는 창작 과정에서의 긴장감을 주고 실제로 한 편의 작품이라도 더 쓸 수 있는 분명한 동인이 된다는 걸 느낍니다.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 세계에서 어린이들이 왜 자꾸 사라져 가는가. 제가 최근 천착하는 질문입니다. 현재 쓰고 있고 다음 시집에 수록될 다수 시편들이 이 질문에서 파생된 상상력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이 질문은 사실 꽤 오래된 것입니다. 「마중 왔던 아

  • 2025-12-19
[인터뷰] 손홍규 소설가, 소설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소설과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 손홍규 소설가(인터뷰어 : 안세진 평론가) 손홍규는 2001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랜덤하우스코리아, 2006), 『청년의사 장기려』(다산책방, 2008), 『이슬람 정육점』(문학과지성사, 2010), 『서울』(창비, 2014), 『파르티잔 극장』(문학동네, 2020), 『예언자와 보낸 마지막 하루』(문학사상, 2021), 소설집 『사람의 신화』(문학동네, 2005), 『봉섭이 가라사대』(창비, 2008), 『톰은 톰과 잤다』(문학과지성사, 2012), 『그 남자의 가출』(창비, 2015), 『당신은 지나갈 수 없다』(창비, 2020) 등을 꾸준히 발표하며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2018년에는 “꿈의 언어로 폭력의 기원을 더듬는 실험적인 서술”(권택영)이라는 심사평과 함께 중편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로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으며, 이외에도 황순원문학상, 현대문학상, 채만식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등단 25년차를 맞아 새로운 소설집을 준비 중인 그와 서면으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2024년 9월에 연작소설집 『너를 기억하는 풍경』(문학과지성사, 2024)을 출간하였고 새로운 소설집 출간을 준비 중입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소설을 쓰다 보면 스스로 창작의 고비를 넘어가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시기가 있습니다. 한 편의 장편소설을 탈고하여 출간하거나 그동안 발표했던 단편을 엮어 소설집을 출간할 때 그렇지요. 그럴 때마다 지난 몇 년에 걸친 작업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때문인 듯합니다. 이번 펠로우십은 새로운 소설집 출간을 앞둔 저에게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동안의 문학적 행보를 격려 받았다는 점과 더불어 새로운 소설 미학을 실현하려 애쓴 노력 역시 격려 받았다는 점입니다. 저는 책을 출간할 때마다 주목을 받거나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소설가는 아닙니다. 책을 출간할 때마다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기분보다는 오히려 해결하기 힘든 난제를 떠안았다는 기분이 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가는 소설가답게 지난 작품에 연연하지 않고 새 작품을 쓰는 용기를 발휘해야 하고 익숙한 길이 아닌 낯선 길로 여행을 떠날 수 있어야 하는데 펠로우십은 저에게 그런 용기를 주었습니다. 또한 펠로우십은 작가로서의 책임감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하며 어떤 방식이든 상관 없다는 자유를 누리는 만큼 이 세상에 선한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을요.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소설에서 실현하고 싶었던 건 단선적인 시간관념을 극복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 2025-12-19
[인터뷰] 유희경 시인, 고독을 기다리는 겨울 시인

고독을 기다리는 겨울 시인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답변지 - 유희경 시인(인터뷰어 : 최다영 평론가) * 그의 많은 시가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겨울의 시인’이라는 수식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시인은 단연 유희경일 것이다. 2008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유희경은 『오늘 아침 단어』(2011) 외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을 출간하고 여러 앤솔로지에 활발히 참여해왔다. 그중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2020)과 『겨울밤 토끼 걱정(2024)』이 문학나눔도서보급에 선정되었다. 2024년 겨울에는 그의 시 「대화」의 한 구절, “오늘은 볕이 좋다/아직/네가 여기 있는 기분”이 광화문글판에 선정되어 시민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2018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2020년 현대문학상, 2023년 오늘의젊은예술가상을 들 수 있다. 2025년에는 『천천히 와』, 청소년시선 앤솔로지 『도넛을 나누는 기분』을 발간하였으며 문학주간 프로그램 '기형도 플레이'에 패널로 참여하였다. 현재는 문화일보에 ‘유희경의 시:선(詩:選)’을 연재하고 있다. 또 유희경은 ‘서점지기’이기도 한데, 2016년부터 시집 전문 서점 위트앤시니컬을 운영 중이다. 국내에서 출간되는 대부분의 시집과 번역시집들을 만나볼 수 있는 위트앤시니컬은 많은 시인과 시 독자들의 자부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을 기념하여 혜화 위트앤시니컬에서 유희경 시인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책은 혼자가 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 말하는 그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보자.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제 기획들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시인-작가 일반은, 저 역시 그렇습니다만, 계약 순서에 따라 집필을 진행하고 책을 펴내지요. 그러다 보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어떻게 작업하고 있는지를 잘 모르게 됩니다. 어느 순간 문득 되짚을 뿐이지요. 이번 펠로우십 지원서를 준비하면서, 제가 하는 일, 제가 하고 싶은 일 그러니까 저의 작업이 가는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리를 하게 된 셈이지요. 그러다 보니 펠로우십이란 다년간의 사업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굳어지기도 했습니다. 지원 규모와 상관없이 말예요, 오랜 기간 함께하다 보면 작업의 일관성이 마련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지원의 방법과 규모가 보다 합리적으로 변경되겠지요.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기왕 시집이 번역된 만큼, 저 너머의 시인 독자 들과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얼마 전에는 이중언어낭독회라는 타이틀로 국내외 독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꽤 재미난 일이었습니다. 배우는 것도 많았고요. 이런 일들을 더 늘리려 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음 시집 준비를 잘 준비해야겠다 싶기도 합니다. 등등 저

  • 2025-12-19
[인터뷰] 최영희(김아직) 아동청소년문학가, 동화의 독자는 전 연령

동화의 독자는 전 연령 아르코 문학 작가 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최영희(김아직) 아동청소년문학가 (인터뷰어 : 최다영 평론가) * ‘김아직’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최영희 작가의 ‘부캐’다. 바리공주나 이계 여행담, 하면 이 작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최영희로도, 김아직으로도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2013년부터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주요 수상 경력으로엄 2013년 푸른문학상, 2014년 한낙원과학소설상과 창비청소년문학상, 2016년 SF어워드 단편부문 우수상, 2017년 교보스토리공모전 장편소설부문 우수상, 2019년 황금가지 ZA문학상 우수작, 2023년 보슬비SF 동화부문 추천작, 2022년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 우수작, 2023년 황금드래곤문학상을 들 수 있다. 또한 대표작 '써드'(2020)와 '이끼밭의 가이아'(2023)가 문학나눔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이력이 있다. 2025년에는 6월에 소홀도서관에서 ‘써드1' 최영희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문학 강연을 진행했으며 최근에는 '지옥으로 반지를 배달합니다'(2025)라는 이계 판타지물을 출간했다.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자료 조사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 수밖에 없게 된다. 이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에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김아직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24년 상반기부터 비교문학자이자 옛이야기 연구가인 김환희 선생님과 바리공주 신화를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바리공주 신화를 SF판타지로 재해석한 장편소설 <공주님이 부르시니>를 브릿G에 연재했고, 그 작품을 원전으로 하는 스핀오프 장편동화 <지옥으로 반지를 배달합니다>를 25년 10월에 출간했습니다. <지옥으로 반지를 배달합니다>는 10대 청소년인 배리안이 새엄마의 세 번째 새엄마였던 망자 김성인 할머니에게 연꽃반지를 전하러 지옥으로 향하는 이계여행담입니다. 전체적으로 바리공주 신화를 오마주한 작품으로 바리공주 신화의 혁명성을 이어받고자 했습니다. 바리공주가 염라대왕의 목전에서 지옥의 철벽을 무너뜨리고 죄인들을 구제하는 혁명을 감행했듯이 배리안도 혈통의 한계를 벗어난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염라대왕 앞에서 증명해 보임으로써 지옥에서 무자귀신, 가족 없는 망자들이 받던 차별이 사라지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한편으로는 바리공주 신화에서 다소 아쉬웠던 여행의 ‘당사자성’을 배리안의 이야기에서는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바리공주가 자신이 아닌 부모를 위한 여행을 떠났다면 배리안은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도 서로 사랑할 수 있는지, 자신을 위한 답을 찾기 위해 지옥으로 떠납니다. 바리공주는 친부모에게 버려진 뒤 태양서촌의 비리공덕 할미 할아비 손에 자란 입양아였습니다. 그래서 바리공주 신화가 재혼이나 입양을 통한 확장된 가족의 의미를 되묻기에 좋은 원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옥으로 반지를 배달합니다>

  • 2025-12-19
[인터뷰] 최치언 희곡작가, 공감의 힘으로 동시대성에 응답하며

공감의 힘으로 동시대성에 응답하며 아르코 문학 작가 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 최치언 희곡작가(인터뷰어 : 안세진 평론가) 최치언은 1999년부터 시, 소설, 희곡을 넘나들며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다방면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시집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랜덤하우스중앙, 2005), 『어떤 선물은 피를 요구한다』(문학과지성사, 2010), 『북에서 온 긴 코털의 사내』(걷는사람, 2018), 장편소설 『악의 쑈』(곰, 2013), 소설집 『색다른 이야기 읽기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낮과밤, 2025), 희곡집 『미친극』(평민사, 2012), 『숲속의 잠자는 옥희』(걷는사람, 2019), 『다른 여름』(낮과밤, 2023) 등을 발표했으며, 대한민국연극대상, 대산문학상, 서울연극제 희곡상 등을 수상했다. 2012년부터는 창작집단 ‘상상두목’을 이끌며 극작가 및 연출가로 「다른 여름」(2021), 「이상한 나라의, 사라」(2023), 「붉고 깊은, 파랑 – 머구리」(2025)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연말에 올릴 새로운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그와 서면으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갑신정변을 소재로 한 희곡 「붕괴의 대무대」 집필을 위해 관련 자료 조사 및 트리트먼트 작업을 수행하였습니다. 8월 말에는 춘천 봄내극장에서 강원다운 작품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붉고 깊은, 파랑 – 머구리」 작품을 쓰고 연출하였습니다. ‘머구리’는 사라져가는 직업군 중 하나로, 수심 30~40미터 해역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남자 잠수부를 뜻합니다. 희곡 「붉고 깊은, 파랑 – 머구리」는 지난 1년간의 자료 조사와 전·현직 머구리 종사자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집필하였습니다. 9월부터는 독일 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의 희곡 「황금용」을 직접 윤색하였고, 오는 12월 공연으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번 펠로우십은 안정된 환경에서 창작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사업이었습니다. 경제적 지원을 통해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자료 조사와 인터뷰 등 연구 과정을 꾸준하고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집필 과정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을 심화·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창작 과정 전반의 효율성이 향상되었고, 보다 생산적이고 지속 가능한 집필 체계를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갑신정변을 소재로 한 희곡 「붕괴의 대무대」의 트리트먼트 작업을 완료하고 초고 집필을 진행하였습니다. 올해는 장기적으로 「붕괴의 대무대」의 희곡 퇴고 과정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으며, 몇 달 전 집필 및 공연을 마친 희

  • 2025-12-19
[인터뷰] 하성란 소설가, 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변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아르코 문학 작가 펠로우십 선정 작가 서면 인터뷰 – 하성란(인터뷰어 : 안세진 평론가) 하성란은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장편소설 『식사의 즐거움』(현대문학, 1998), 『삿뽀로 여인숙』(이룸, 2000), 『내 영화의 주인공』(작가정신, 2001), 『A』(자음과모음, 2010), 중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현대문학, 2019), 소설집 『루빈의 술잔』(문학동네, 1997), 『옆집 여자』(창비, 1999),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창비, 2002), 『웨하스』(문학동네, 2006), 『여름의 맛』(문학과지성사, 2013)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해왔다. 이른바 “마이크로 묘사”(김윤식)로 대표되는 특유의 스타일을 변주해가며 하성란은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수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현대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거쳐 독보적인 궤적을 형성해왔다. 최근에는 2002년 출간된 소설집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의 리마스터판이 출간되어 젊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동일 저서의 영어 번역본이 미국 출판 전문지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뽑은 2020년 최고의 책 10권에 선정되기도 했다. 어느덧 등단 30년을 앞두고 있는 그와 서면으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국문학 하반기호에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2026년 발간을 목적으로 소설집을 탈고했습니다. 지금은 연재했던 장편소설을 수정 중에 있습니다. -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평소라면 목전의 수입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들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펠로우십 지원으로 여유가 생겼고 창작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작가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올 초 문화일보의 특집 ‘소설-한국을 말하다’에 글을 실을 일정이 생겨서 제가 맡은 소재인 챗gpt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을 했고요. 과학 발전에는 먼저 문학의 상상력이 있었죠. 제임스 밸러드가 쓴 1961년 작 「스타스 가, 5번 스튜디오」에 나오는 VT 세트가 지금의 미래를 예견했듯이요. 앞으로 몇 년 안에 AI대혁명이 있을 텐데요, 새로운 계급 형성과 VR 등으로 가지게 될 공동 경험 등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그때 문학이 할 일은 무엇일까,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등을 고민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1999년 등단 이후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창작을 지속해 오면서 ‘쓰는 이유’나 ‘문학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최근 몇 년간의 작품을 돌아볼 때, 작가

  • 2025-12-19
[인터뷰] 희 정 수필가, 매일 같은 일을, 같은 마음으로

매일 같은 일을, 같은 마음으로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 희정 수필가(인터뷰어 : 안세진 평론가) 스스로를 ‘기록 노동자’라고 소개하는 희정은 2010년 이화여대 청소노동자 투쟁 현장을 시작으로 지난 15년간 소외되고 잊혀진 노동의 현장을 기록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2011, 아카이브), 『노동자, 쓰러지다』(2014, 오월의봄), 『아름다운 한 생이다』(2016, 한내),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2019, 오월의봄), 『여기, 우리, 함께』(2020, 갈마바람),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2022, 오월의봄), 『일할 자격』(2023, 갈라파고스), 『베테랑의 몸』(2023, 한겨레출판), 『뒷자리』(2024, 포도밭) 등 수많은 작업을 발표해온 희정은 그 공로로 2022년 제 12회 구본주예술상을 수상했다. “2000년대 대한민국 정치사회사의 가장 힘겹고 아픈 현장마다 그가 있었다”는 선정의 변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희정의 작업은 상상할 수 없는 성실과 열의로 더 어둡고 깊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뻗어가고 있다. 오늘도 녹음기를 들고 노동의 현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그와 서면으로 짧은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기록을 바탕으로 글을 씁니다. 특히 제가 주목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은 ‘노동’의 영역입니다. 그곳은 노동하는 사람의 몸이기도, 일터이기도, 그리고 재/생산 노동이 뒤섞인 삶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올해 나온 두 권의 책도 ‘노동(하는 사람)’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는 장례 현장의 노동을 통해 죽음과 애도의 문제를 바라보는 『죽은 다음』(한겨레출판, 2025). 다른 하나는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을 통해 바라본 학교 현장을 그린 『돌보다, 고치다, 지키다』(북트리거, 2025)입니다.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글 쓰는 사람 모두 고단하겠지만, 기록이라는 글 작업은 시간과 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갑니다. 열의도 필요하고, 땀도 많이 흘려야 하고요. 긴 여름을 보내는 기분으로 작업을 합니다. 잠깐 가을이 와 수확을 하지만, 가을은 여름에 비해 참 짧고 수확량은 가늠할 수 없죠. 여러 방편으로 지원을 약속한 펠로우십은, 그런 측면에서 봄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름과 가을로만 이루어진 계절이었는데, 이따금 이런 봄이 와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펠로우십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작가의 수와 그 범위가 몹시 적다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소수의 창작자만이 혜택을 받아도 되는가. 그 기준은 과연 옳은가. 종종 고민하게 됩니다. 지금보다 더 고르고 넓게 창작지원이 이뤄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 펠로우십 기간 동안

  • 2025-12-19
[인터뷰] 문진영 소설가, 서로를 넘나들며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소설의 세계

서로를 넘나들며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는 소설의 세계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문진영 소설가(인터뷰어 : 성현아 평론가) 문진영 작가는 2009년, 소설 '담배 한 개비의 시간'으로 제3회 창비 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소설집 '눈 속의 겨울'(실천문학사, 2020), '최소한의 최선'(문학동네, 2023)과 중편소설 '딩'(현대문학, 2023) 등을 출간하며 인간관계 속 미묘한 균열과 그로 인한 내면의 상처를 섬세하게 그려왔다. 2021년에는 「두 개의 방」이 김승옥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며 문학적 역량을 폭넓게 인정받았다. 경장편소설 '미래의 자리'(창비, 2024)를 출간하여 비극의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점차 미래를 기대할 힘을 잃게 된 이들에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전하기도 했다. 독자와 평단 모두에게 사랑받는 문진영 작가는 현재 박정은 그림작가와 함께 ‘계절책방 낮과밤’을 운영하고 있다. 소설 창작 또한 활발히 이어가고 있는 문진영 작가와 그의 문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올여름, 여름을 배경으로 한 세 편의 단편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작가정신에서 ‘향과 색’을 주제로 엮은 앤솔로지 소설집 '초록 땀'에 수록되었어요. 지난해 가을부터 지금까지 저는 책방을 운영하고, 창작 수업을 진행하고, 신인상 심사에도 참여해 보고, 해외 번역 계약을 맺는 등 태어나서 처음 해 보는 일들이 많았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한 해,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트러스트 폴(Trust Fall)’이라는 친목 도모 게임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양팔을 가슴에 모은 채 눈을 감고 뒤로 넘어지면, 뒤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게 받아주는 게임이지요. 단순한 놀이지만, 믿음이 없으면 크게 다칠 수도 있습니다. 올해 저는 뒤로 한 번 마음껏 넘어져 본 기분이었습니다. 펠로우십에 선정되지 않았다면 글쓰기 외의 다른 일, 생계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활동들을 마음 편히 시도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글이 잘 써지든 그렇지 않든,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하기보다 지금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감과 안전감도 가져볼 수 있었습니다. 이 안전망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이 감각을 기억하며 저만의 리듬과 속도를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올해가 가기 전에 출간을 약속했던 산문집 작업은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편집자님께 양해를 구하고 이런 저를 조금만 인내해주십사 부탁드린 참이에요. 남은 기간 동안에는 그간 구상을 계속해왔던 장편 작업에 본격적으로 몰입하려고 합니다. 명명할 단어가 없는 유일한 관계에 관해 써 보고자 합니다. 2009년 창비 장편소설상으로 등단하

  • 2025-12-18
[인터뷰] 함기석 시인, 존재에서 무한으로, 무한에서 무로

존재에서 무한으로, 무한에서 무로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함기석 시인(인터뷰어 : 성현아 평론가) * 함기석 작가는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한 이래, 독창적인 언어 실험가로서 한국 시단을 빛내왔다. 그는 수학적 사고와 기하학적 감각을 바탕으로 한 과감한 시적 실험을 감행해 온 시인이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계속해서 미지를 향해 야간행군을 강행할 것”이라고 스스로 포부를 밝혔던 것처럼, 그는 한국 현대시의 개척자로서 여전히 성실히 분투하고 있다. 함기석 작가는 제10회 박인환문학상, 제8회 이형기문학상, 제13회 이상시문학상을 수상하였고, 현재까지 '국어선생은 달팽이', '착란의 돌', '뽈랑 공원', '오렌지 기하학',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 '디자인하우스 센텐스', '음시', '모든 꽃은 예언이다', 그리고 올해 출간된 '개안수술집도록'까지 포함하여 총 9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비평 작업 역시 병행하여 시론집 '고독한 대화', 비평집 '21세기 한국시의 지형도'를 집필하기도 했으며 동시집과 동화집도 간행한 바 있다. 함기석 시인이 시도해 온 문학적 해부는 읽는 이들에게 생경함과 동시에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그런 그와 그의 문학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이제까지 9권의 시집을 출간하셨어요. 쉼 없이 창작을 이어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분야의 작업을 함께 진행해 주시기도 했고요. 굉장히 놀랍고 요즘도 바쁘시리라고 생각해요.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최근에 시집 '개안수술집도록'(민음사, 2025)을 출간했습니다. 시집 전체를 하나의 거대 병동으로 은유하여 각 부에 해당하는 다섯 개의 영역을 병동 k, 병동 o, 병동 r, 병동 e, 병동 a로 지칭했습니다. 시집 전체가 코리아(korea), 그러니까 이 땅의 참혹한 과거와 현재, 국가와 사회와 개인의 폭력적 권력관계, 아물지 않는 상처와 흉터, 그로 인해 태동하는 공포와 불안, 이 모두에 대한 시 쓰기의 악몽과 고뇌에 대한 의학적 언어해부도인 셈입니다. “시 쓰기의 악몽과 고뇌에 대한 의학적 언어해부도”라니 놀랍습니다. 이어 오셨던 작업을 계속 갱신하고 확장해 나가시는 점 또한 인상적입니다. 벌써 함기석 시인님의 다음 작업도 기대하게 됩니다. 시집 '개안수술집도록'의 ‘병동 e’ 파트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각적인 효과가 강렬했어요. “독창성과 실험성을 향한 시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이러한 기호학적이고 공학적인 시적 실험이 독자로부터 유리되거나 어설픈 낭만으로 귀결되어 오독될 위험도 있다고 박혜진 평론가가 해설에서 언급하셨습니다. 물론 함기석 시인님의 작품이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만, 독자와 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만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 고민이 많으셨으리라고 생각해요. 어려움도 있으셨을 것 같다고 감히 짐작해 보았는데요. 말씀을 청해봅니다.

  • 2025-12-18
[인터뷰] 김지연 소설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될 때까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될 때까지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 김지연 소설가(인터뷰어 : 성현아 평론가) 김지연 소설가는 2018년 단편소설 「작정기」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심사위원 일곱 명이 만장일치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첫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문학동네, 2022)가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2위에 뽑히며, 동료 문학인들에게 사랑과 지지를 받는 작가임을 입증하기도 했다. 다채롭게 고달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각각의 저력을 지닌 여성들의 삶을 세밀히 다루는 작가로 호평 받아온 김지연 소설가는 「사랑하는 일」로 2021 젊은작가상, 「공원에서」로 2022 젊은작가상, 「반려빚」으로 2025 젊은작가상을 연이어 수상했다. 2024년에는 두 번째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을 펴냈고, 지금-여기의 청년 세대가 느끼는 불안과 부담, 상처와 사랑을 세밀하게 그려낸 바 있다. 같은 해 7월 문장웹진에 발표한 단편소설 「좋아하는 마음 없이」가 제70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가족의 비밀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소설 「무덤을 보살피다」가 2025년 『소설보다 : 여름』에 수록되면서, 김지연이 앞으로 써나갈 의뭉스럽고 긴장감 있는 서사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김지연 작가와 그의 문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 김지연 작가님,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올해는 열심히 장편소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를 쓰고 있습니다. 여름부터 연재를 시작했고 내년 봄에 연재를 마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고향을 떠난 화자가 오래전 연락이 끊긴 친구의 소식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미 다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던 시간과 관계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를 반추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편소설 한 편을 마무리하여 올해가 가기 전에 발표하게 될 것 같고 짧은 소설집 원고도 마무리해 내년 출간을 목표로 준비 중입니다.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소설 쓰기에 온전히 집중할 시간을 갖고 차분히 무엇을 해나갈지에 대한 방향을 정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작업실 등의 도움도 구할 수 있어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기분도 힘이 되었습니다.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장편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에 집중할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조급한 마음을 조금 버리고 천천히 작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후에 쓸 몇 편의 장편을 새로 준비 중인데 이번에 장편소설을 쓰며 배운 것들이 다음 작품을 집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라고 하시니 무척 기대가 됩니다. 작가님께서는 데뷔 이후 꾸준히 ‘지금-여기에서 살아가는 청년 세대’에 관해 깊이 다루어 주셨어요. 이 세대를

  • 2025-12-18
[인터뷰] 정선임 소설가, “상실 끝의 다정함을 믿으며, 인간을 다시 쓰기”

상실 끝의 다정함을 믿으며, 인간을 다시 쓰기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_ 정선임 소설가(인터뷰어 : 성현아 평론가) 정선임 작가는 2018년 단편소설 「귓속말」이 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소설집 『고양이는 사라지지 않는다』(다산책방, 2022)의 원고로 2022년 대산창작기금을 수혜했다. 2023년에는 단편소설 「요카타」로 제 14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동료 문학인과 대중에게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성장동화 '그 아이가 절대 궁금하지 않아'(풀빛미디어, 2019)와 공저인 '여름기담 순한 맛'(읻다, 2023),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다람, 2025) '우리에게는 적당한 말이 없어'(해냄출판사, 2025) 등을 펴냈다. 상실과 실패를 빈번하게 경험하면서도 자기 존재의 가치를 잊지 않고 연대 정신을 잃지 않는 인물들을 그려내어 읽는 이들에게 다정한 온기를 전해주는 정선임 작가와 그의 문학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올해는 두 권의 앤솔로지를 내고 한 편의 단편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관련해서 라디오도 출연하고 국제도서전도 처음 가보고 문학 주간 행사도 참여하고 북토크도 했어요. 청소년들에게 소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쓰는 시간보다는 소설에 대해 얘기하는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이주혜, 김이설 작가님과 함께한 '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에는 「해변의 오리배」라는 작품을 실었는데 첫사랑의 장례식 때문에 딸과 함께 동행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시점을 다양화해서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어요. 「해저로월」과 「속삭이는 깃발들」은 믿음에 대한 이야기인데 요즘 작업 중인 두 번째 소설집에 수록됩니다. 며칠 전 삼교를 보냈고 작가의 말을 쓰는 중입니다. 아마도 11월 안에 책이 나올 것 같아요.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는 든든했어요.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어떤 지원군이 생긴 기분이었어요. 지금도 예술위에서 지원받은 작업실에서 인터뷰 답변을 쓰고 있고요. 이 자리를 빌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막막했던 시기를 잘 넘겼고요. 펠로우십 1회이기도 하고 이 사업이 잘 정착 되려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했고요. 많은 동료 선후배 작가님들이 지원했었다는 걸 알고 있어서 작품을 쓸 때도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생각만큼 결과를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약속한 원고도 빨리 마무리해야 하는데…….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프로젝트와 작업 방향을 정하기보다는 그날그날 주어진 대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거듭 죄송합니다) 오늘은 써야지, 라는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내일은 꼭 써야지, 로 다짐하며 하루가 끝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독자들을 만날 기

  • 2025-12-18
[인터뷰] 허은실 시인, “문서가 누락한 이름들, 시가 불러줘야”

문서가 누락한 이름들, 시가 불러줘야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 허은실 시인(인터뷰어 : 허 희 평론가) “시인들은 가장 섬세하고 예민한 촉수를 갖고 태어난 족속입니다. 그게 바로 시인들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2017년 첫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로 개인의 내밀한 설움을 섬세하게 길어 올렸던 허은실 시인은, 5년 만의 두 번째 시집 『회복기』(2022)에서 세월호 참사, 5·18 민주화운동, 제주 4·3 등 공동체의 상처를 보듬는 확장된 시선으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제주로 이주한 뒤, 4·3의 상처를 다룬 『기억의 목소리』 작업에 참여하는 등 역사의 아픔을 기록하는 일에 천착해 온 그가 2025년도 아르코 펠로우십에 선정되었다. 펠로우십 선정을 계기로, 개인의 슬픔에서 우리의 회복으로 나아가고 있는 시인의 현재와 미래를 묻고 답을 들었다. 문서가 누락한 이름들, 시가 불러줘야 —『회복기』에서 시선이 ‘나’의 설움을 넘어 세월호 참사, 5·18 등 ‘우리’의 아픔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개인의 내면에서 공동체의 상처로 시선을 옮겨가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이 있으셨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가 해야만 하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시는 모든 예술 중에서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섬세한 도구입니다. 그 복잡하고 알 수 없는 내면이 시의 언어로 정확하게 형상화되었을 때 시인은 지고의 기쁨을, 독자는 공감과 위로를 얻지요. 그러나 우리가 개인의 내면에 천착하는 사이 세상은 더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날씨’에만 신경 쓰느라 타인의 고통을 먼바다의 풍랑주의보쯤으로 치부하기 때문이겠지요. 시인들은 가장 섬세하고 예민한 촉수를 갖고 태어난 족속입니다. 그게 바로 시인들이 타인의 고통에 응답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했습니다. 『회복기』 ‘시인의 말’에서 울대 없는 새와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울림을 만들 성대가 없어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존재, 자기 언어가 없어서, 자기 자리가 없어서 자기 발언을 못 하는 존재들이 있잖아요. 역사가 소거해 버린 희생자들일 수도 있고,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일 수도 있어요. 타고난 섬세한 감수성과 언어적 감각으로 개인적 내면을 표현하는 시인에 비해, 그런 사람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너무 작고 적기 때문에 ‘문서가 누락한 이름들’을 불러주는 것이 제 역할이자 시적 태도가 되어야겠다 생각합니다. 물론 타인의 고통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것은 타인을 이해하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언제나 실패나 미완으로밖에 끝날 수 없는 시도이지만, 세상에 고통이 있는 한 시인은 어떤 식으로든 그 고통에 응답하는 자기 언어를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펠로우십 선정이

  • 2025-12-18
[인터뷰] 김은성 희곡작가, “작가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작가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 김은성 희곡작가(인터뷰어 : 허 희 평론가) 『연변엄마』, 『목란언니』 등 우리 사회의 경계에 선 인물들의 목소리를 무대 위에 세워온 극작가 김은성. 그는 99식 소총을 화자로 내세워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 최근작 『빵야』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트라우마와 소수자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집요한 시선으로 ‘우리 시대의 화자’라 불려온 그가 2025년도 아르코 펠로우십에 선정되었다. 펠로우십 선정을 계기로 처절한 실패를 각오하고 ‘감히 씁니다’라고 고백하는 작가의 현재와 미래를 묻고 답을 들었다. “빨리 신작을 쓰고 싶어 마음이 급합니다” — 『연변엄마』의 목소리부터 『빵야』의 독백에 이르기까지 그간 작품을 통해 인물과 시대를 증명해 왔습니다. 이번 펠로우십 기간 동안 새롭게 탐구하고 싶은 목소리가 있으신지요? 혹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작품의 소재나 인물 군상이 있다면 간략하게나마 소개 부탁드립니다. “‘빵야’ 발표 이후 여러 편의 신작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을 먼저 쓰게 될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물건에 애착이 많던 노인이 짐을 하나씩 정리하는 이야기, 도서관을 무대로 사서와 책과 관련한 이야기, 5.18 당시 광주 동물원에 살던 어린 원숭이의 이야기, 2077년을 무대로 서울 북한산에서 벌어지는 레지스탕스 이야기 등을 메모하며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빨리 신작을 쓰고 싶습니다. 마음이 급합니다.” “희곡은 모임을 좋아하는 텍스트” — 최근작 『빵야』에서는 99식 소총이라는 비인간 사물을 화자로 내세워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꿰뚫는 서사를 선보이셨습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의 시선을 통해 역사를 증언하게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는지요? “희곡은 연극 텍스트입니다. 공연 무대가 가진 특성,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스토리를 구상하다 보니 사물을 의인화하게 되었습니다. 연극 무대는 다른 문학과 극 장르에 비해 훨씬 마법이 잘 먹히는 공간이라 믿고 있습니다. 사물의 입장이 되어 사물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경험이 신선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소총을 인물로 여기고 만나보니 전쟁과 폭력의 비극이 더욱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쟁은 인간을 도구로 만듭니다. 수단으로 만듭니다. 그것이 전쟁이 가진 가장 본질적인 아픔일 것입니다. — 작가님의 희곡은 무대 언어인 동시에 『바닐라』와 같은 ‘그림 희곡’의 형태로 출간되는 등 문학 텍스트로서의 완결성 또한 중요하게 다루십니다. 작가님께서는 희곡의 정체성을 어떻게 사유하고 계신지요? ”희곡은 작가와 독자의 만남, 그 너머를 희망하는 장르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모여, 함께 읽고, 함께 듣기를 원하는 바람을 간직하고 있는 텍

  • 2025-12-18
[인터뷰] 문경민 아동청소년문학가, 나는 돌보는 사람… 문장의 세계가 사람의 중심 잡아야

나는 돌보는 사람… 문장의 세계가 사람의 중심 잡아야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 문경민 소설가(인터뷰어 : 허 희 평론가) 2023년 한 해에만 SF의 미래(『엔서』), 특성화고의 현실(『나는 복어』), 한 교사의 존엄(『지켜야 할 세계』), 위태로운 아이들의 연대(『열세 살 우리는』)를 그리며 아동, 청소년, 성인 독자를 아우르는 놀라운 창작 에너지를 보여준 작가가 있다.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자 소설가인 문경민이다. 2016년 단편소설로 등단해 9년 차 작가가 된 그는 교실과 서재를 오가며 동화, 청소년 소설, 일반 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왔다. 특히 『훌훌』로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지켜야 할 세계』로 제13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하며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받았다. 2025년도 아르코 펠로우십에 선정된 그에게 여러 세계를 쉼 없이 빚어내는 작가의 현재와 미래를 묻고 답을 들었다. 나는 돌보는 사람… 문장의 세계가 사람의 중심 잡아야 — 최근 1~2년 사이 SF, 청소년 소설, 일반 소설 등 장르와 대상을 넘나드는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셨습니다. 이토록 다양한 인물과 세계를 아우를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는지, 여러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궁금합니다. “저는 단편소설로 등단했고 첫 책으로 동화를 냈습니다. 한동안 어린이 소설을 발표하며 살았습니다. 소설도 계속 썼죠. 처음부터 어린이, 청소년, 일반 소설 영역을 아우르는 작가가 되려던 건 아니었어요.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고 앞으로도 살아왔던 길을 이어 붙이게 될 겁니다. 올해로 9년 차 작가인데요, 소설의 원동력은 시기마다 달랐어요. 초반에는 살아남고 싶었고 중반에는 좀 더 잘 쓰고 싶었습니다. 요즘은 욕심을 내려놓고 내 할 일을 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씁니다. 저의 세계를 살아오면서 품게 된 생각과 마음이 결국 소설로 이어지더라고요. 세상이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기도 하고 나를 투영하는 소설을 쓰기도 합니다. 서사 자체가 좋은 소설을 쓰고자 애쓰기도 합니다. 메시지보다 인물과 사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소설에는 메시지가 담길 수밖에 없죠. 소설은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니까요. 제 소설들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있을 겁니다. 제가 그에 대해 설명을 하는 건 여러모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소설을 쓰면서 늘 던지는 질문이 있다는 점은 말씀드려도 될 것 같아요. 저는 등장인물의 구원은 무엇인가, 그 구원은 어디에 있는가, 구원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질문을 반복하며 씁니다. — 작가님의 소설에는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처럼 ‘지키는 삶’의 가치에 주목하시는 작가님만의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또한, 매일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세계를 지켜보는 경험이 작가님의 이러한 주제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 2025-12-18
[인터뷰] 조우리 아동청소년문학가, “앉아서만 쓰지 않겠다… 높이뛰기 선수 만나며 세계 확장”

“앉아서만 쓰지 않겠다… 높이뛰기 선수 만나며 세계 확장”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 조우리 아동청소년문학가(인터뷰어 : 허 희 평론가) “어쩌면 제 안의 철들지 않은 십 대가, 자라지 않은 청소년이 저를 대신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019년 비룡소 블루픽션상을 수상한 『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부터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오, 사랑』에 이르기까지, 조우리 작가는 위태로운 현실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상처와 성장을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왔다. 특히 최근작 소설집 『사과의 사생활』(2023)에서는 여성 청소년의 성적 욕망을 다루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2022)를 통해서는 상실의 슬픔을 통과하는 묵직한 위로를 건넸다. 청소년들의 가장 내밀한 목소리를 대변해 온 그가 2025년도 아르코 펠로우십에 선정되었다. 펠로우십 선정을 계기로 컴퓨터 앞을 떠나 더 넓은 세상 속으로 ‘취재’를 떠나기 시작한 작가의 현재와 미래를 묻고 답을 들었다. “여성 청소년의 욕망, ‘굳이 알 필요 없는 것’은 없다” 최근작인 소설집 『사과의 사생활』에서는 그간 청소년 문학에서 잘 이야기되지 않았던 여성 청소년의 성적 욕망을 다루며 청소년의 삶을 입체적으로 그려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작가의 말에 자세히 써두어 그 부분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표제작인 <사과의 사생활>은 여성 청소년의 성교육에 관련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 쓰게 됐다. 현재의 학교 성교육은 임신과 출산, 남성 청소년의 성욕과 해소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성 청소년들을 위한 성교육은 다음 두 가지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훗날 임신을 위한 기관로서의 신체를 소중히 해야 한다거나 원치 않는 임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피임 방법. 사실 이조차도 많이 발전한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이 정도의 성교육도 과하다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더 나아가 그들의 욕망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까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혈기왕성하게 성욕이 끓어오르는 건 십대 남자애들 뿐만이 아니다. 음지화된 호기심을 sns 상의 일탈계, 섹트 이런 것들로 해소하려고 하다가 범죄와 연결되고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기도 한다. 가끔 양육자들은 ‘굳이 알 필요 없는 것들’을 지금 알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당연하다. 지금 알아야 한다. 나중에 어떤 루트로 알게 될지 상상력을 발휘해 볼 수 있다면 지금, 여기서, 제대로 된 어른들이 알려주는 게 가장 낫다. 여성 청소년의 몸과 욕망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길 바란다.‘” “앉아서만 쓰지 않겠다… 높

  • 2025-12-18
[인터뷰] 김영란 시조인, “우리 가슴에 영원히 피어나는 꽃”

우리 가슴에 영원히 피어나는 꽃 아르코 문학 작가 펠로우십 선정 작가 인터뷰_김영란 시조인(인터뷰어 : 성현아 평론가) 김영란 작가는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더불어 4·3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4·3 조사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에 첫 시조집 ‘꽃들의 수사修辭’를 발간하며 생활 속에 묻혀 잊힌 본원적 가치를 새로이 길어 올렸고, 2019년 출간된 현대시조 시집 ‘몸 파는 여자’에서는 ‘구원의 시학’을 담은 현대시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어 시집 ‘누군가 나를 열고 들여다볼 것 같은’을 출간하며, 역사가 참혹하게 짓밟은 이들 곁에 머무르면서 그 어떠한 폭력도 허용하지 않는 단호한 자세를 드러낸 바 있다. 제주 4·3 77주년인 2025년 4월 3일에 시조집 ‘동백 졌다 하지 마라’를 출간하여 평단의 주목과 독자의 지지를 받았다. 우리 민족만의 문학 장르인 시조를 현대화하여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일에 힘쓰고 있는 김영란 시조 시인과 그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2011년도 등단 후 발표했던 4·3 관련 작품을 모아서 ‘동백 졌다 하지 마라’라는 제목으로 시집을 묶었습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작품들을 모아서 정리를 해야 새로운 4·3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대부분 청탁에 의한 작품이었는데 4·3조사연구원 활동을 현재도 하고 있어서 앞으로는 제대로 계획해서 기록문학으로의 4·3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제주토박이가 낸 최초의 4·3 시조집이라는 평가를 받고 보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7년 7개월 동안의 4·3항쟁이 올해로 77주년이 되는 해인데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숫자가 주는 이미지가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지면서 여러 가지 행운도 있었습니다. 작정한 4·3시집이어서 발간일도 4월 3일에 맞췄는데 이런 의미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제주문학관 주최로 북토크도 진행하였습니다. 심리치료사가 운영하는 책방에 초청되어 이번 시집을 매개로 4·3 위령시 쓰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주시조시인협회 주최로 ‘내 시조를 말하다’ 시간에는 ‘동백 졌다 하지 마라’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작가님께 이번 펠로우십이 가지는 개인적·창작적 의미는 무엇인가요? 등단한 지 15년이 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펠로우십 선정이 문학 활동에 있어서 확실한 전환점이 되어줄 것 같습니다. 올해 4월에 지금까지의 4·3작품을 정리해

  • 2025-12-18
[인터뷰] 김륭 아동문학가, 동심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동심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 김륭 아동문학가(인터뷰어 : 최다영 평론가) 2007년 신춘문예에 시와 동시가 모두 당선되면서부터 활동을 시작한 김륭 시인은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2009) 외 다수의 동시집과 청소년시집, 시집을 발간했다. 그중 엄마의 법칙(2014)은 제2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애인에게 줬다가 뺏은 시(2020)는 제5회 동주문학상 수상시집이기도 하다. 늘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아이들의 내면을 정직하게 포착하고자 하는 그의 시는 경계를 넘나드는 신선한 상상력 속에 깃든 슬픔의 무게를 맞닥뜨리게 하고 다시금 희망을 환기할 수 있도록 이끈다. 주요 수상 이력으로는 2005년 김달진지역문학상, CJ문학상, 2012년 박재삼사천문학상, 2014년 지리산문학상과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 2019년 경남아동문학상, 2020년 동주문학상, 2024년 선경문학상과 서귀포칠십리문학상을 들 수 있다. 2021년과 2024년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컨텐츠 제작 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2022년 나의 머랭 선생님으로 문학나눔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이력이 있으며 2025년에는 경기 평택시에서 ‘김륭 작가의 그림책(펭귄 오케스트라)’ 전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동시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믿음도 확고하다. 그는 동시는 상상하지 못했던 동심까지 발견해야 하며 마냥 쉽거나 교훈적이거나 유치한 발상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불편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동심이라는 문학적 공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책임감을 강조하는 한편 어른이 아이의 목소리를 빌려 자기연민하는 일을 경계한다. 동심을 막연히 아이의 마음으로 단정하거나 무작정 예찬되어야 할 것으로 여기면 아이들을 어른의 시선으로 대상화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세계와 어른의 세계를 분리하려는 편견이 없어져야 함은 물론, 아이들도 엄연히 슬픔을 느끼고 욕망을 가지며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고 삶과 죽음을 고민하는 한 인격 주체이므로 아이들을 문학 향유 능력을 동일하게 갖춘 독자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고민과 현 동시단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이 그의 동시평론집 고양이 수염에 붙은 시는 먹지 마세요(2021)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번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에 선정된 것을 기념하여 김륭 시인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누군가가 먼저 읽었던 세계와 언젠가 읽어야 할 세계의 재현이야말로 동시라는 장르가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 “시는 고백의 장르지만 그 형식은 미래의 것”이라 말하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최근의 활동이나 출간한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2025년은 창작에 집중한 해였습니다. 이미 계약이 완료된 청소년시집과 동시집 원고를 만지고 정리하는데 나름 최선을 다한 것 같습니다. 2019년 『사랑이 으르렁』(창비) 이후 거의 6년 만에 출간할 청소년시

  • 2025-12-08
[인터뷰] 김경미 시인, 두 세계의 화해

"두 세계의 화해" 아르코문학작가펠로우십 선정작가 인터뷰 – 김경미 시인(인터뷰어 : 허 희 평론가) “시인으로서나 일상인으로서나 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고 비껴나 있고 제외돼 있다는 자의식 속에서 삽니다.”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40여 년간 일상의 미세한 슬픔과 균열을 섬세한 언어로 포착해 온 김경미 시인. 그는 오랜 세월 KBS 클래식 FM의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매일 아침 청취자들의 감성을 어루만져왔다. 시인과 방송작가라는 두 개의 정체성 사이의 오랜 불화를 지나 그는 마침내 두 세계가 서로에게 “큰 자극과 혜택”이 될 수 있음을 받아들였다. 『카프카식 이별』(2020), 『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2019) 등 방송 원고를 바탕으로 한 산문집은 그 화해의 증표이다. 2024년, 오랜 방송작가 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업 시인으로 첫발을 내디딘 그가 2025년도 아르코 펠로우십에 선정되었다. 시인으로의 완전한 ‘독립’을 맞이한 작가의 현재와 미래를 묻고 답을 들었다. “두 세계의 화해” — 『너무 마음 바깥에 있었습니다』와 『카프카식 이별』은 오랜 방송 작가로서의 경험이 문학과 아름답게 결합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인이자 방송 작가라는 두 정체성이 어떤 영향을 주며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는지 궁금합니다. “말씀처럼 ‘아름답게 결합한 것’이었으면 좋았을텐데 시인으로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이 느껴져서 실은 제가 5년 계약이 끝나자마자 두 책 모두 출판 계약을 종료했습니다. 그런데도 얼마전에 들렀던 서점에는 『카프카식 이별』이 여전히 매대에 놓여있던데, 재고분이겠죠. 그 재고분까지 다 소진됐다 싶을 때쯤 (다 소진될지 모르겠지만) 두 책과 그 앞의 방송원고를 바탕으로 한 산문집까지 종합적으로 합치고 수정해서 새롭게 펴낼 생각입니다. 사실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초기에는 제가 방송일을 이렇게 오래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그때는 시인이 ‘대중적인 글쓰기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해 매문하듯 생각하거나 시적 능력이나 열정 같은 걸 의심하고 폄하하는 분위기가 컸기 때문에 그런 혐의에서 벗어나려고 곧 일을 그만둬야지, 강박관념이 심했었습니다. 글쓰기 자체도 라디오 원고는 철저하게 대중적인 소비글로, 시는 저만의 문학적인 글로 쓴다는 이분법이 확실했었죠. 그런데 현실 작업 시간은 라디오원고일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고, 속마음에는 시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우위다보니 그 간극에서 오는 갈등과 불화가 사실 항상 컸습니다. 그래서 그 무렵 어디 글을 쓰거나 문학잡지 인터뷰를 할 때면 방송일을 마치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을 마지 못해 하는 듯 얘기하기도 해서 방송국분 중에 불쾌해한 분도 있었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미안한 일입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을 넘어가도록 방송일을 계속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두 가지가 서로에

  • 2025-12-03
[인터뷰] 강 정 시인, 변화는 기획이 아닌, 흘러가는 것

변화는 기획이 아닌, 흘러가는 것 아르코 문학 작가 펠로우십 선정 작가 서면 인터뷰 – 강 정(인터뷰어 : 허 희 평론가) “시인은 시신(屍身)이 되었을 때라야 종국에 가서 언어의 진짜 시신(侍臣)으로 남게 됩니다.” 1992년 계간 『현대시세계』으로 등단한 이래, 30여 년간 언어의 최전선에서 자신만의 방식을 밀어붙여 온 강정 시인은 시인의 역할을 이처럼 역설적으로 정의했다. 1996년 펴낸 첫 시집 『처형극장』은 기존 시의 문법과 질서를 전복하는 파격적인 실험으로 90년대 ‘해체시’의 기수로 그를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후 『활』(2011) 등을 거쳐 2021년 펴낸 『커다란 하양으로』에 이르기까지 그는 언어의 파괴적인 에너지를 탐구하는 데서 나아가 모든 것이 지워진 '무(無)의 시학'을 탐색하며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해왔다. 최근 2024년 5월 『웃어라, 용!』을 펴낸 지 불과 1년 5개월 만인 지난 10월, 열 번째 시집 『기적』(달아실)을 발간하며 식지 않는 창작열을 증명한 그가 2025년도 아르코 펠로우십에 선정되었다. 펠로우십 선정을 계기로 30여 년간 언어의 경계와 싸워온 시인의 현재와 미래를 묻고 답을 들었다. 변화는 기획이 아닌, 흘러가는 것 — 첫 시집 『처형극장』이 언어를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파괴의 에너지로 가득했다면, 가장 최근의 시집 『커다란 하양으로』는 모든 것이 지워진 공간을 탐색하는 듯합니다.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스스로 인식하는 창작의 변화 혹은 전환점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전환점이라고 특정할 만한 지점은 없습니다. 시간이 오래 흘렀고, 그만큼 나 자신이 변화했고, 세상도 변했습니다. 제겐 시를 쓰는 일이 모종의 기획이나 구상 아래 진행되는 게 아닙니다. 흘러가고 다가오고 변화하는 것들 속에 뒤섞이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인식이나 세계관 등이 저절로 다른 질감, 다른 색조로 다가올 뿐입니다.” — 펠로우십 기간 동안 구체적으로 구상 중인 프로젝트나 작업 방향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난 10월 10일 달아실 출판사에서 열 번째 시집 『기적』을 발간했습니다. 2024년 5월 『웃어라, 용!』(문학동네)을 발간한 이후 1년 동안 쓴 시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열한 번째 시집을 머릿속으로 굴리고 있습니다. 그 외, 음악 활동도 차근차근 준비 중이고 몇 차례 공연도 했습니다.” —『커다란 하양으로』 이후 작가님의 언어는 어떤 세계를 향하고 있는지요. 이번 펠로우십 기간 동안 작업 방향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번에 발간한 시집 『기적』을 참조하시면 될 듯합니다. 현실의 숱한 이미지와 서사들 틈새로 비치는 세계의 더 은밀하고 치열한 이면에 대한 탐구가 지속될 것이고, 그로 인해 형성되는 세계 또는 인간의 새로운 모델에 대한 나름의 설계도를 짜보려 합니다.” 시 읽기는 온몸으로 딛는 별다른 몸

  • 2025-12-03
낯익고도 불친절한 미래에 대한 단상

낯익고도 불친절한 미래에 대한 단상 임지훈 세상의 속도를 점점 감당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 간다. 변화하는 속도에 편승하지 못하는 자는 자신이 이방인이 된 기분을 느낀다. 스팅의 노래 〈Englishman in New York〉의 화자는 자신을 “legal alien”, 합법적인 이방인이라고 말한다. ‘신사다움’이 철 지난 농담이 되어 버린 세계에서 여전히 “Manners maketh man”이라 말하고,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 ‘당신답게, 누가 뭐라고 하든’이라 말하는 사람. 그 노래 속에서, 이 합법적인 이방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Modesty, propriety Can lead to notoriety You could end up as the only one Gentleness, sobriety are rare in this society at night a candle’s brighter than the sun - Sting, 〈Englishman in New York〉 겸손과 예의범절이 악평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온화함과 침착함은 흔치 않은 감정이 된 세계.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이고, 우리는 그 속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이미 스스로를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자기 자신을 잃지 않았다’는 건 단지 착각에 불과하고. 그렇다면 어쩌면 그 또한 자신의 착각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미치광이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이건 아마 이중의 의미로 ‘그렇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가 정말 착각에 빠진 채로 살아가고 있는 거라는 의미에서도 그렇겠지만 모두가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그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 또한 미친 것이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겸손과 예의범절이 더 큰 이익을 위한 술책이 되고 온화함과 침착함은 철 지난 농담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그것들의 가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니까. 그런 세상 속에서 ‘매너가 사람을 만들고요, 당신은 당신답게 살아야 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분명 광인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종종 이방인으로 느낀다는 점에서 그와 같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그와 달리 우리는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를뿐더러, 현실 속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조차 헤아리지 못한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와 그는 전적으로 다른 존재처럼 보이는데, 기술적 환경의 변화에 휩쓸려 떠밀리듯 살아가는 우리와 달리, 그는 마치 좌표계의 원점에 선 것처럼 세계를 바라보며, 그 변화의 속도를 측정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

  • 임지훈
  • 2025-12-01
K-컬처의 그림자, 혐중이라는 문화정치

K-컬처의 그림자, 혐중이라는 문화정치 : 2020년대 한국 사회의 문화적 자부심은 어떻게 배타적 혐오가 되었나 허희 1. 정동적 역설의 면면 2020년대 한국 사회는 기묘한 정동적 역설 가운데 작동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K-팝‧K-드라마‧K-웹툰‧K-게임 산업까지 확장된, 이른바 K-컬처 복합체가 가시적 성취를 축적하면서 한국의 상징체계를 재편 중이다. 이것은 국가 정체성을 구성하는 정동적 보상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문화적 자부심은 경제 양극화를 포괄하는 저성장 국면‧불안정 노동‧청년 세대의 좌절과 같은 내부 불안을 상쇄하는 역할로 작용하였다. 그러한 면에서 K-컬처는 문화 산업만으로 간주하기 어렵다. 국가 정동을 생산‧관리하는 체제로서, 문화적 자부심은 일종의 집단 감정 자본으로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였다.1) 동시에 한국 사회는 ‘혐중(Sinophobia)’으로 대표되는 조직화된 집단 감정의 분출을 목도하고 있다. 이 글은 그것을 병렬적으로 공존하는 동시대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자부심이 혐오로 전이되는 정동 형성의 정치적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그러니까 혐중은 자부심의 어두운 파생물, 정동의 이동과 변조가 빚어낸 적대의 결과라는 논점이다. 여기에서 비판과 혐오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비판은 특정 행위나 정책, 제도적 불투명성이나 권력 작동 방식과 같은 대상을 향한다. 이는 사실 검증과 토론 가능성을 전제한다. 예컨대 중국 정부의 신장 위구르 지역 내 강제 수용 의혹, 홍콩 보안법의 인권 침해 문제, 동북공정의 역사 왜곡 등은 어떨까. 이상의 논란은 분석과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국제사회가 공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사안이다. 반면 혐오는 문제를 특정한 정치·사회 행위에서 찾지 않는다. 증오의 대상을 일반화하고 전체화함으로써 제거의 정동을 발생시킨다. 이때 중국(인)은 특정 행위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문명적으로 열등하고 비도덕적이며 반인권적인 타자로 폄하된다. 이 같은 혐오의 메커니즘은 정동의 순환—감정이 사회적으로 이동하며 타자를 구성하는 과정과 유사하게 작동한다. 더불어 그들을 향한 정서가 실체적 검증 없이 사실처럼 굳어지는 탈지성적 담론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0년대 한국 사회 내 반중—혐중 세력은 합리적 비판과 비합리적 망상의 경계가 붕괴된 상태에서 광적으로 결집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제재가 대증 요법에 그치지 않으려면 면밀한 분석이 요청된다. 오늘날 혐중은 SNS·커뮤니티·유튜브 생태계의 유통망에서 집단 감정의 양극화를 선동한다. 김치·한복 공정 논란처럼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문화 투쟁은 팩트에 근거한 학술 논쟁이나 국제문화 비교 연구의 영역이 아니라, 무분별한 감정 투쟁의 장으로 격화되었다. K-팝 아이돌에게 요구되는 이른바 사상 검증(중국 시장을 겨냥한 발언을 했는가, 홍콩·대만 문제에 침묵했는가)의 사례는 집단 감시된 순응주의가 디지털 민

  • 허희
  • 2025-12-01
[k-컬처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 2] 웹소설이라는 가능성

류수연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5년 11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으로 3회 연재됩니다. k-컬처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 2 -웹소설이라는 가능성 류수연 1. 지금은 웹소설의 시대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어 능력일까, 모국어 능력일까? 물론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는 요소지만 부득이 한 쪽을 골라야 한다면? 수년 전이라면 당연하게도 ‘외국어’라는 답변이 압도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성형 AI를 활용한 초벌 번역이 보편화된 오늘의 관점에서라면, 그 답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아주 결정적인 장면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바로 2022 한국문학 번역신인상에서 말이다. 웹툰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40대 일본인의 한국어 실력이 초급 수준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당선자는 AI를 활용해서 초벌 번역을 진행했고, 그 뒤 자신이 일본어 표현을 가다듬었다는 것이었다. 당락을 결정한 것은 만화적 표현과 리듬에 익숙한 당선자의 표현력이었겠지만 번역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언어능력 없이 AI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논란이 거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뒤로 채 2년도 되지 않아 생성형 AI가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었으니, 어쩌면 그 혼란은 이러한 기술 변화에 대한 예고였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웹 서사의 달라진 위상을 공공연하게 보여 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AI 번역만큼이나 문학번역의 부문에 웹툰이 있다는 점도 큰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다. 웹 콘텐츠에 부여되었던 수많은 평가절하를 떠올린다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웹-이라는 접두어를 붙인 여러 콘텐츠가 등장한 지 불과 20여 년, 그 확장된 영향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늘날 웹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선발 주자인 웹툰과 후발 주자인 웹소설 모두 대중문화의 절대적 강자로 부각되었다. 거기엔 이들 콘텐츠 자체의 매력도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들 콘텐츠가 다양한 미디어믹스 과정에서 원천IP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웹 기반 서사가 트랜스미디어의 확실한 강자로 부각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웹소설의 경우에는 선발 주자인 웹툰의 원천IP로도 활용되고 있으니, 웹 콘텐츠 전체의 근간을 이루는 기초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난 회차에 살펴보았던 케이팝 스토리텔링 역시 이러한 웹 콘텐츠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바, 오늘날 한국 대중문화를 이끄는 콘텐츠로서 웹 기반 서사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이라는 스토리텔링의 한 정점으로 다가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그 중심에는 또다시 이야기가 있다. 이 글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이야기들이 각축을 벌이는 웹 플랫폼이라는 가상공간, 그리고 그곳을 종횡무진하고 있는 웹소설의 의미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2. 취향의 타파스? 일반 문학과 함께 웹소설을 비평적 연구 대상으로 삼

  • 류수연
  • 2025-12-01
화이자와 셀트리온

[편집위원 기획 - 21세기 문학이란 무엇이었는가] 화이자와 셀트리온 — 김사과 혹은 21세기 한국-소설의 한 표정 윤재민 1. 비물질 도시공간 김화진의 소설 「새 이야기」는 오늘날 서울에 홀로 거주하는 도시적 존재의 일상과 욕망에 대한 낭만적인 우화이다. 소설의 일인칭 화자인 진아는 아직은 자리 잡지 못한 웹툰 작가다. 그녀는 어렵게 연재를 따내고 독자들의 실시간 반응을 살피면서 하루하루를 버텨 낸다. 매 순간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도 자신의 일상을 놓치지 않는, 이 고단한 일인가구 여성 창작자의 낙은 소소하다. 성수동이나 불광천같이 서울 시내 한강 북쪽의 정비된 수변 일대를 산책하거나 썸남 천희가 선물한 대파를 잘라 자취방에서 떡볶이나 닭발 같은 매운 음식을 해 먹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지루하고 불안정한 시간을 견뎌 내는 중이다. 어느 날 진아의 일상에 기이한 환상이 찾아온다. 그것은 갑자기 천희가 선물한 대파가 진아에게 말을 건네면서 시작된다. 대파는 대뜸 썸남 천희가 오래전부터 진아를 짝사랑해 온 청둥오리임을 폭로한다. 대학 시절의 진아를 보고 첫눈에 반한 청둥오리가 어렵사리 인간이 되어 그녀 곁을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진아는 살아남기 위한 지극히 ‘인간적인’ 시절을 통과하는 서울에서의 모든 순간이 맹목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한 시절이었음을 느끼며 잠시 위로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믿기 어려운 사적 환상을 웹툰의 소재로 사용하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도시인 진아의 환상 체험 그리고 이를 소재로 한 창작의 욕망은 흥미롭다. 도시에서의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익명적 존재의 삶의 양태와 그들에 의해 생성되는 도시의 비물질적(immaterial) 공간 양식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도시공간은 막강한 위정자나 위대한 건축가의 기획을 한참 초과한다. 인간적인 양태의 모든 것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각양각색의 과밀함으로 끓어오르는 공간이다. 그 안으로 수많은 익명적 존재들이 각자의 욕망과 꿈을 안고 모여든다. 그들의 비전은 실현되기 전까지 어느 정도 망상적 성격을 띨 터이다. 하나 실은 바로 그 망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이야말로 그들을 도시에 현전하게 하는 비물질적인 역량이다. 도시는 무차별적으로 이들을 일단 받아들이고 그들의 적합성을 매 순간 시험한다. 모두에게 365일/24시간이 ‘평등하게’ 주어지는 가운데, 각자가 점유하고 있는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요령껏 살아 내야 한다. 그렇게 극도의 혼잡과 과밀함 속에서 척도 없이 흘러가는 존재들이 그저 자신에게 귀속되는 욕망 혹은 망상과 관련된 공간을 스스로 창안하며 밀집한다. 「새 이야기」는 성수동이나 마포·은평구 일대 수변 지역을 불안하게 점유하며 살아가는 도시적 존재 양태를 비물질적 공간 양식과 결부시켜 포착해 낸다. 척도 없이 증식하는 인간적인 욕망을 담지한 비물질 공간은 20세기 후

  • 윤재민
  • 2025-12-01
텅 비어 있는 ‘나’들의 우주(적 연대)

[편집위원 기획 – 21세기 문학이란 무엇이었는가] 텅 비어 있는 ‘나’들의 우주(적 연대) 김수이 1. ‘자아의 무화’와 ‘무위의 주체’에 대한 열망 과거로 회귀하는 일은 늘 가능하다. 기억과 글 속에서는 더욱더. 십여 년 전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격한 열망을 뿜어내는 말들로 즐겁게 소란했다. 미친 듯이 질주하는 세상에서 피로와 불안에 찌들어 있었지만, 찌들어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1) 기획된 광고가 먼저였는지, 대중 사이에서 싹튼 유행어가 먼저였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2015년에 한 신용카드사가 내세운 이 문구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일상의 곳곳에서 이 말들은 가볍게, 그러나 강력하게 번져나가면서 아무 행동과 생각을 하지 않는 ‘나’에 대한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열망을 공론장에 풀어놓았다. 대중이 열광한 ‘아무것도 안 함’의 의사 표명은 ‘주체성의 반납/포기/해체의 의지’나 ‘무위(無爲)의 주체성’이라고 부를 만한 새로운 시대의 정신적 편향성의 사태를 한껏 부추겼다. 동시에, 경제와 사회 발전을 위협할 수 있는 ‘무위’의 사태를 광고와 유행어라는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인 언어 유통 장치를 통해 무마하는 이중의 역할을 했다.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개인이 자신을 착취하는 ‘성과 주체’로 광적으로 변신해 가는 비극을 파헤친 한병철의 명저 『피로사회』(문지, 2012)가 출간되어 널리 읽히던 무렵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나’에 대한 사회적 열망의 기원을 찾아 조금 더 회귀해 보자. “난 누구? 여긴 어디?” ‘멘(탈)붕(괴)’의 비명을 대신하는 이 말이 처음 유행한 것은 1990년대였다. 역시 유행어가 먼저였는지 히트곡이 먼저였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인기 힙합 듀오 ‘듀스’가 부른 「우리는」(1993년 발표)의 후렴에 유사한 문장이 들어 있다.2)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지금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고 있어./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이젠 우린 앞을 향해서만 나가겠어.” 정체성과 처소를 상실했으나 “누가 날 부르고 있”기에 “앞을 향해서만 나가겠”다는 외침은, 희망에 차 있으면서도 무모하게 다가온다. 앞으로만 무한히 질주하라는 파시즘적 자본주의의 명령을 따르겠다는 다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 곡의 제목이 ‘나’가 실종된 세상의 ‘우리는’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 &l

  • 김수이
  • 2025-12-01
조망

조망 손원평 도시는 언제나 빛났다. 낮이면 유리창마다 반사된 햇빛이 먼 산자락까지 닿았고, 밤이면 네온사인이 어둠을 밀어내며 깜박였다. 하나의 거대한 발광체처럼 도시는 스스로를 밝혔다. 여름의 열기와 겨울의 혹한 속에서도 사람들은 꿋꿋했다. 더위와 추위가 무자비하게 덮쳐도 그들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곳에 산다는 것은 무언가를 증명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성공하지 못할 거라 여긴 허허벌판에 세워진 도시. 도시의 이름은 명함이었고 긍지의 상징이었다. 도시 한복판의 호수는 절반은 자연, 절반은 인공의 산물이었다. 여름에는 해수욕장을 방불케 할 만큼 많은 인파가 몰려 태양을 즐기고, 겨울엔 얼어붙은 호수 위로 스케이트 날이 반짝였다. 애초에 이 분지는 물을 품도록 생긴 땅이었다. 오래된 지도를 펼쳐 보면 파란 선과 옅은 음영이 겹쳐져 있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 척했다. 하천 자리에 도로가 뚫리고, 논과 습지가 메워진 자리에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모두가 품은 희망도 높게 쌓여 갔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 도시는 단단한 땅이 아니라, 한때 분지였던 곳을 억지로 길들여 그 위에 세운 도시라는 걸. 그럼에도 사람들은 더 높이, 더 거대하게 쌓아 올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물 위에 도시를, 도시 위에 또 다른 미래를 약속하는 이름들을 붙여 가며. 도시로 향하는 길에는 경계가 하나 있었다. 도시로 들어가는 자와 빠져나가는 자를 가르는 협소한 목구멍 같은 톨게이트였다. 낮이면 끝없이 이어진 차량이 통로를 밀고 들어오다가 밤이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곳에 유리로 둘러싸인 작은 부스가 있었다. 작은 창문을 통해 하루 종일 팔이 뻗었다가 돌아왔다. 팔을 뻗고, 카드를 거두고, 결제한 카드를 다시 내민다. 끊임없이 그 과정을 반복하는 것. 그것이 수하의 일이었다. 차들이 일정한 리듬으로 브레이크를 밟는 동안 창문 너머로 무표정한 얼굴들이 흘러갔다. 남는 것은 팔의 무게와 몸을 짓누르는 피로뿐이었다. 수하의 하루는 새벽에서 낮까지, 낮에서 밤까지, 밤에서 다시 새벽까지 세 토막으로 이어졌다. 화려한 도시의 입구에 앉아 그녀는 빛을 향해 몰려드는 차들을 감정 없이 맞이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날카로운 배기음이 더 이상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도 오래였다. 그곳에서 수하는 여름의 열기와 겨울의 냉기를 고스란히 느꼈다. 몇 안 되던 근처 자리 동료들은 차츰 사라졌고, 먼 곳에서 근무하는 동료들과는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교대인과의 짧은 접촉, 오가는 차 안의 사람들 외에 사람을 대면할 일은 거의 없었다. 드물게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을 때, 텅 빈 차도에 사람이라곤 자기 혼자라는 걸 섬뜩하게 자각할 때조차도 수하는 자신이 유일하게 이곳에서 버텨 낸 사람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특별히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놀랍도록 단조로운 직업생활을 영위하는 게 전적으로 운의 작용이라고 누군가 말해 줬다면 수하는 누구보다 빨리 수긍할 수 있었을 것이다. 행운과

  • 손원평
  • 2025-12-01
한없이 축축한 이야기

한없이 축축한 이야기 - 김경욱 『스프레이』 (문장웹진 2011년 5월호 수록) 읽기 김미월(소설가,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2011년 5월 에 게재되었던 김경욱의 단편소설 「스프레이」는 709호에 사는 어느 남성 화자의 이야기이다. 그의 실수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의 강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화자가 실수로 다른 사람의 택배를 집에 가져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렇다. 처음에 그것은 단순한 실수였다. 그러나 문자 메시지 하나도 퇴고를 거듭해서 보낼 만큼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평소의 자신답지 않은 실수에 당혹감과 불쾌감을 느낀다. 그의 손이 곧 땀으로 축축해진다. 화자에게 ‘축축한 손’은 일종의 재앙과도 같다. 축축한 손으로 첫사랑의 손을 잡았다가 차인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화자는 실연보다 실수에 더 신경 쓰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첫사랑에게 차였다는 사실보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불상사를 겪지 않기 위해 타인과 실수로라도 손이 닿는 일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 한 번의 실수는 넘어갈 수 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는 명제가 더 중요하다. 물론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실수할 때가 있고 그때마다 긴장으로 손이 축축해진다. 그럴 때면 그는 늘 자신에게 고함치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넌 대체 뭐하는 놈이냐! 축축한 놈……. 왜 손이 축축해졌을까. 그는 원인을 하나씩 분석해본다. 손이 축축해진 것은 실수로 남의 집 택배를 들고 왔기 때문이다. 남의 집 택배를 들고 온 것은 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떨어진 것은 피로감 때문이다. 피로감은 밤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밤잠을 설친 것은 옆집 고양이의 울음소리 때문이다. 정리하면 옆집 고양이가 울었기 때문에 그의 손이 축축해진 것이다. 실수의 원인을 알았으니 실수를 반복할 확률도 줄어들 것이라며 그는 안도한다. 공교로운 상황들이 겹치면서 택배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화자는 별수 없이 집으로 다시 가져온 택배를 충동적으로 개봉한다. 묘한 쾌감과 해방감을 느끼는 가운데 잡다한 물건들 속 스프레이가 눈에 띈다. 그의 손을 땀으로 축축하게 만들었던 원흉인 택배의 정체가 알고 보니 땀 냄새 제거용 스프레이였다니. 그는 스프레이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버린다. 그날 이후 화자가 다른 사람의 택배를 집으로 가지고 오는 일이 반복된다. 실수라면 용납할 수 없지만 고의니까 괜찮다. 그에게는 행위 자체의 윤리성보다 그것이 실수인지 고의인지 의도 유무를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어느 날 마침내 옆집 여자의 택배를 집으로 가져오기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옆집 고양이의 울음소리, 그리고 자신의 항의를 번번이 묵살했던 무례한 옆집 여자에게 타격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상자를 연다. 이 대목이 이 소설의 미드 포인트이다. 상자 안에 든 것은 옆집 고양이의 사체였다.

  • 김미월
  • 2025-12-01
달빛

달빛 현호정 너울로 나란히 더 갈 수 없는 데까지 아마도 내가 머무를 물가에 닿아 숨 쉬듯 우릴 어르고 달래 줄 땅 (이제) 영원할 이 이름이 기를 하얀 바깥이지 놓을 수 있어 볼 수 있었네 ‘땅에서 죽어 하늘로 내리는 이’ ‘이 땅에서 죽어 저 하늘로 내린 이’ 믿을 수 없는 신비로 가득한 믿어야 하는 앞길로 아득한 믿지 않아도 저절로 문득 환하던 ···별 ···별 ···별 달 빛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구름 속에서 들었다. 우리는 그리고 냄새였는데 푸른 우유의 냄새 같았다. 푸른 우유가 있다면, (여기) 푸른 염소가 있어 푸른 새끼를 낳는다면, 아니 (여기서는) 염소가 아니라 양이라도 상관없었다. 카라칼이나 바위너구리, 알을 낳는 새들까지 푸른빛을 가정할 수 있었고 새끼에게 원하는 걸 먹일 수 있었다. 새뽀얀 물.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필요했던 것. 향료가 되는 풀들처럼 자연의 법칙을 배반하면서, 그것은 마지막까지 싱싱하고 그 후에 더 생생하고, 푸르고 계속 풍부할 거고, 우리는 계속 올라가면서 하늘을 떠다니는 이 냄새였고 그게 아니라면 이 냄새와 함께 떠다니는 하늘이 바로 우리였다. 이제는 그런 게 우리였다. 이제는 그렇게 우리인 거였다. 나는 혼자서도 꽤 아래로 내려가 보았는데 여전히 붐볐고 공중이었다. 속삭임으로 가득 찬 구름들은 제각기 몇 군데 뜯어진 채로 자신의 깃털을 바람에 그냥 날려 보냈고, 그건 살짝 뭉치면 붙는 작은 문제였다. 하지만 우리는 고치고 치유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생각하건대 우리는 아주 많아.” 누군가 말했고 그는 어른이었다. 나는 어른이 아니어서 알 수 있었다. “아저씨, 제 발을 밟으셨어요.” 또 어른이 아닌 누군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발이 없는데···.” “전 있어요! 전 살아 있을 때 발이 없었거든요. 그러니 지금은 있어야지요.” “네 말이 맞다. 발을 밟아서 미안하구나.” 그때 나는 우리가 춤을 추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넓지만 둥글고 우리는 움직일 때 돌아야 했으므로. 그래서 우리는 마주칠 수 있었다. 그러면 아직은 우리 중 하나를 하나의 몸으로 만나 말할 수 있었다. 말하고 만지고 끌어안기. 그리고 싸우기. 그건 사는 일의 거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물론 우리는 싸움에 대해 생각했다. 심지어 지금도! 그러니까 아직도 그랬다. 만약 여기서도 뭔가 나빠진다면, 결국 우리는 전부 나쁘게 변해 버릴지 몰랐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게 세상 전체에 꼭 나쁜 일만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

  • 현호정
  • 2025-12-01
계절을 보내는 방법

[문장서포터즈] 계절을 보내는 방법 -무화과나무 한 그루와 오팔 라이트 문장서포터즈 2기 수현 올해 10월 초에 발매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신곡 〈Opallite〉는 다음과 같은 고백으로 시작된다. I had a bad habit of missing lovers past (나는 지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나쁜 습관을 가졌어) 이후 가사를 통해 테일러는 “사실 나는 망령 같은 추억 속에서 살았던” 것이라고 위 ‘습관’에 대해 덧붙인다. 망령과도 같은 추억. 너무 좋았거나 너무 좋지 못한 과거 중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무의식 한편을 둥둥 떠다니는 기억들. 아마 모두 공감할 이야기리라 생각한다. 어떠한 기억은 묻어 둬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매번 그러길 실패하니까. 어쩌면 내가 문학을 사랑하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일지 모른다. 내게 있어 문학은 보낼 수 없는, 애도 불가능한 기억의 반복이다. 테일러가 곡을 낸 시월은 올해의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이다. 나는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서 도서를 구매하며 새로운 계절을 맞이해 왔는데, 이번 가을은 독서와 더불어 테일러의 신곡과 함께하고 있다. 오늘은 〈Opallite〉와 덧붙여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 가을 2025》을 소개하려고 한다. 사진1. 문학과지성사 《소설 보다 : 가을 2025》 먼저, 《소설 보다》는 문지문학상 후보작을 세 편씩 묶어 낸 얇은 단행본 시리즈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맞춰 4권씩 해마다 출간되므로 젊고 개성 있는 한국 작품을 빠르게 접할 수 있는 도서이기도 하다. 사진1. 문학과지성사 《소설 보다》 시리즈 표지 올해 《소설 보다》의 표지는 해마다 다른 디자인을 선보인다. 이번 2025년에는 각 계절에 어울리는 과일나무를 콘셉트로 하고 있는데, 아직 덜 익어 푸릇한 딸기나무와 싱그러운 포도나무가 그려진 봄, 여름에 이어 가을에는 무화과나무가 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아무래도 각 시즌에 맞춰 출간되는 책이다 보니 다음 계절, 해의 표지 디자인을 기다리는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 《소설 보다》 시리즈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좋은 작가들의 글을 모아 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좋은 작가라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돌이켜 보니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은 모두 이 책에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각 소설 한 편을 마치면 문학 평론가와 작가의 인터뷰가 실린 페이지가 등장하는데, 그 속에는 글을 쓰는 동안 작가가 구상하고 골몰했던 내용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문학잡지보다 임팩트 있고 기성 작가에 대해 내밀하게 알 수 있는 위 시리즈에 더 손이 가는 것 같다. 이번 《소설 보다 : 가을 2025》에는 서장원의 「히데오」, 이유리의 「두정랜드」, 정기현의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가 있다. 먼저, 「두정랜드」는 지방 소도시의 놀이공원인 ‘두정랜드&

  • 수현
  • 2025-12-01
읽고 쓰는 일을 지속하기: 조시현 작가님과 함께

[문장서포터즈] 읽고 쓰는 일을 지속하기: 조시현 작가님과 함께 문장서포터즈 2기 김소리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을 지속하고 싶다. 몇 년 전부터 생각해 온 바람이다. 그 바람을 실천하기 위해 문학동인 ‘창문’을 만들고, 꾸준히 창작 스터디 활동을 해 오고 있다. 한 번쯤 모임을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무엇보다 사람을 모으는 일이 어렵고,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게 모임을 유지하는 일이다. 우선 ‘창문’이 반년 이상 별 탈 없이 이어지고 있음에 감사하다. 함께 읽고 쓰고자 하는 비슷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다행이라고 느낀다. 문학은 늘 혼자 쓰는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고독을 함께 감당할 사람이 있을 때 오래간다. 동인을 꾸리며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지속 가능한 문학의 장(場)’을 만드는 일이었다. 문학이 개인의 내면에서 비롯되더라도, 그것이 계속 숨을 쉬기 위해선 공유의 자리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학교를 졸업하면 사라지기 쉬운 문학적 대화의 공간을 스스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누군가는 글쓰기의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해, 또 누군가는 자신의 언어를 타인의 시선 속에서 단련하기 위해 이곳에 모인다. 동인 ‘창문’은 그런 의미에서 각자의 방을 열고 서로의 문장을 통하게 하는 하나의 창문이 되고자 한다. 대표로서 나는 ‘창문’이 단순한 합평 모임을 넘어, 지속성과 관계성을 실험하는 문학적 커뮤니티로 성장하길 바란다. 한때의 열정으로 모였다 흩어지는 동인이 아니라, 문학을 삶의 습관으로 만들어 가는 작은 공동체 말이다. 매달 작품을 나누고, 동시대 문예지와 신진 작가의 언어를 함께 읽으며, 동인 내부의 목소리를 세상 밖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 목표다. ‘창문’이 누군가에게는 창작의 첫 무대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문학을 붙잡게 하는 이유가 되기를 바란다. 문학동인으로서 활동하는 일의 의의는 결국 ‘함께 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작업이지만, 그 고독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문장은 더 멀리 닿는다. 타인의 언어에 귀 기울이고, 서로의 문장을 비춰보는 경험은 나에게 매번 새로운 자극을 준다. ‘창문’의 활동은 그런 의미에서 단순한 창작의 지속이 아니라, 동시대의 문학이 서로를 비추며 살아 있다는 증명이다. 그러나 어려움도 있다. 나름 ‘문학동인’이라고 만들어 놓았지만, 어떤 활동을 해야 할지 혹은 어떤 식으로 더 발전해 나갈 수 있을지···. 이런 고민들에 대한 조언을 얻고, 신춘문예 투고를 앞두고 작품에 대한 합평도 받고자 조시현 작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조시현 작가는 시와 소설 부문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문학 활동을 이어감과 동시에 문장서포터즈의 모더레이터로 함께하고 있다. 올해 소설 『크림의 무게를 재는 방법』과 시집 『시뮬레이션 제41

  • 김소리
  • 2025-12-01
푸른 소리가 울리는 교실

[문장서포터즈] 푸른 소리가 울리는 교실 -안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방문기 문장서포터즈 2기 카페라떼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하루에도 수십 편씩 올라오는 청소년 작품, 백일장에 참여하는 열정적인 친구들, 그중에는 문학을 진로로 삼고 싶은 학생들도 있죠. 그렇다면 이 친구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배우며 성장하고 있을까요? 이번 취재에서는 안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이하 안양예고 문창과)를 직접 찾아가 그 현장을 들여다봤습니다. 국내 예술고등학교 중 문예창작과가 있는 학교는 단 두 곳뿐이에요. 고양예술고등학교와 안양예술고등학교죠. 안양예고는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고이고, 연극영화과·음악과·미술과·무용과·문예창작과 총 다섯 학과가 있어요. 학교가 자리한 언덕은 ‘한라산보다 가파르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 사진1,2. 안양예술고등학교 본건물과 문예창작학과 실기실 문예창작과는 한 학년당 40명으로 구성돼 있어요(총 3반). 재작년부터 지원자 수가 늘기 시작해 올해 경쟁률이 2.98 대 1로 점점 문학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최근 몇 년 사이, 안양예고 문창과 학생들이 다양한 청소년 문학상에서 이름을 올리며 학교의 문학적 저력이 조금씩 알려지고 있어요. 그 덕분에 문예창작과에 관심을 두는 학생들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사진3. 올해 안양예고 학생들의 수상을 축하하는 현수막 문예창작학과라는 특성 덕분에 글쓰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곳이죠. 시 창작 실기, 소설 창작, 문학 이론 등 전공 수업 외에도 문학 감상이나 독서 토론 수업을 통해 사고력을 넓혀 갑니다. 작가 선생님 특강과 합평 수업이 활발히 이어지는, ‘문학의 공기’가 가득한 교실이에요. 예고의 장점인 학과 전시회, 안양예고 문창과는 ‘눈시울전’이라는 학생들의 작품 전시회를 매년 5월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2학년생들이 참여하며 가끔 3학년 학생들도 조금씩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로 안양아트센터 갤러리 미담에서 전체 전시 후, 서울 교보문고에서 지원하는 학생들 중 일부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요. 이런 공간에서 매일같이 글을 쓰는 학생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요?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습니다. 사진4,5. 안양예고 눈시울전 작품 사진(이현교, 최아원 학생 작품) 2학년 학생들의 이야기, 교실에서 들려오는 연필 소리 2학년 이현교(시 전공), 최아원(소설 전공) 학생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Q: 문창과에 진학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요? 처음 마음을 먹게 된 이유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이현교: 중학교 3학년 때, 학교 행사로 시를 써서 우수 작품으로 선정 받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경험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 같습니다. 최아원: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 왔는데요, 초등학교 4학년

  • 카페라떼
  • 2025-12-01
동도지

동도지 이혜미 아마도 불안의 힘을 믿던 겨울이라서 갖가지 꿈을 옮겨 다니며 살았습니다 봄잠에서 깨어나 여름 저녁의 먼동으로, 새벽안개를 팔아 복숭아나무 잎을 얻어 가며 환하고 독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도망침의 연속이더군요 숲길을 걸으면 줄지어 견디고 있을 나무들, 두려움이 우리의 신이란 걸 깨닫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지요 걸음 딛는 사이마다 잿더미였습니다 나무의 그림자를 밟으며 약속의 기한을 짐작했습니다 고독도 오래된 미신이라서 부를수록 제 몸집을 키워 갑니다 껍질 터진 고목을 껴안으면 떠난 자들의 정념이 몸속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빛과 바람은 갈라지지 않고 물줄기는 몸 없이 스미는데 인간의 욕심만이 끝없이 파묻힐 안온함을 찾는군요 신목에 깃든 혼백인들 가지 하나 붙들고 버티겠습니까 벽사(辟邪)도 축귀도 내내 머금은 기척은 건드리지 않는 법입니다 상처를 부적처럼 지니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재가 불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쇠락한 자리에 나앉으면 허기도 재앙도 다정한 내 편이었지요 대문에 뿌려 둔 붉은 술과 흰쌀밥으로 내내 배부를 수도 있겠지만 다녀간 자취에 자꾸 생각을 엮으니 훗날 껴묻거리로 삼을 어리석음입니다 겨울빛에 새로 돋은 가지 끝 남청 깃발로 융숭해집니다 작은 매듭으로 어려움을 다 묶어 둘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그저 나무의 방향을 벗 삼아 오랜 홀로를 여며 두는 잠시입니다

  • 이혜미
  • 2025-12-01
니트의 농담

니트의 농담 이혜미 아니 근데 오늘따라 더 멋지네 미치고 싶은 계절에는 옷을 잘 입었다 불빛처럼 젖은 사람도 있었고 밤마다 액정을 닦던 시간도 있었다 멀쩡한 얼굴로 인사하고 손톱만 깨물다 헤어졌어 기억으로 모습을 모아 둘 수 있다 안심했던 것 같아 남겨진 한때를 바라볼 시간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찍는 순간 잊어버리고 마는 장면들이었는데 지나간 사람들은 왜 다 웃고 있을까 보풀처럼 희미해진 얼굴들이 멀어서 더 예뻤다 아름답다는 말은 닿지 못해도 좋다는 뜻이래 근데 이거 혼자 들기엔 너무 무거운 마음인데 조금만 같이 들어 주면 어떨까 사실 미치기는 어렵지 않아 정확히 미치기가 어렵지 제정신이었다면 지금 여기 있겠어? 진작 결혼했겠지 좋았던 건 다 미쳤지 사라진 뒤에도 말을 걸어 멀리를 향해 춤을 추게 해 올 풀린 스웨터처럼 웃었다 제정신으로는 의미도 여기도 틈새의 춤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으니까

  • 이혜미
  • 2025-12-01
수북이 쌓인 바닥

수북이 쌓인 바닥 심지아 나의 말과 멀어지려고 생겨나는 거리에서 단어 그림자 보행자 너의 남은 것 이해가 떨어져 나간 발치에서 흐려지는 발 입이 흘리고 다니는 음절의 분절들 가만한 바람 그것이 나의 근력 단어를 따라 정지한다 거기 와 있고 도착하지 않고

  • 심지아
  • 2025-12-01
근대 고르는 법

근대 고르는 법 심지아 Wet floor - Safety Cone 젖은 바닥 주의해야 할 표면 머핀 틀, 빈 머핀 틀 정오에는 그런 것들이 보였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고 풀 한 포기 없는 텍스트가 내게는 없다 흐르는 물에 그것을 씻었다 쥐고 있는 것을 나는 몇 가지 이유를 듣게 될 것이다

  • 심지아
  • 2025-12-01
봄비는 힘이 든다

봄비는 힘이 든다 최호일 고기를 구워 먹다가 밖에 내어 놓으니 푸시시 푸시시 비에 젖는다

  • 최호일
  • 2025-12-01
첫눈 내린 거리

첫눈 내린 거리 최호일 눈이 사십 대 여자처럼 내린다 이미자 씨의 첫눈 내린 거리라는 슬픈 노래도 있지만 그것보다 약간 더 슬프게 내린다 약국의 간판 위에도 쓰레기통 위에도 어떤 눈은 나뭇가지의 제일 높은 곳에 올라 있다가 누군가의 손처럼 떨어지기를 반복하는데 그것을 십 분 동안 바라보는 개도 있다 사랑에 실패하는 일이야 누구나 흔한 일이지만 첫눈을 맞으며 개를 바라보는 것은 드문 일이다 시간을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 첫눈이다 그냥 놔두면 녹을 것 같다 기억의 여왕들이 그녀의 어깨 위에 가슴과 허리와 종아리와 이데올로기와 통증을 지나 눈으로 만든 입술처럼 걸어 다닌다 첫눈은 내리고 저 여자가 거리에서 멀어지기 시작한다 전 국민이 바라보는 앞에서

  • 최호일
  • 2025-12-01
고백

고백 강이현 내 안의 창문은 전부 닫혀 있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이라는 옷을 입고 다녔다. 옷은 무거웠다. 괜찮고 괜찮지 않은 날에. 미안하고 미안하지 않은 날에. 너는 자주 물었다. 내가 한 질문을 나에게 돌려주었다. 물음 하나쯤은 지울 수 있다고 믿었지만 어떤 말은 하지 않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방 안 어딘가에 눌어붙어 있음을 나중에 깨닫는다. 누군가를 떠올리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다. 내일도 그와 함께 밤을 견디고 싶다.

  • 강이현
  • 2025-12-01
열매

열매 강이현 이 호텔엔 과일이 없었다. 당신이 들어온 이후로 나는 매일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너무 익으면 검은 점이 생기고 먹을 수 없게 된다고 하지만 모든 상처는 문장이다. 나는 방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무언가의 침입을 준비하는 상태로. 룸서비스는 감정을 배달한다. 얼음과 따뜻한 수건. 그리고 보이지 않는 열매 한 알. 내가 과일이 될 수 있을까. 나의 얼굴을 가늠하다 말고 벗어 놓은 신발을 보고 기억을 더듬는다. 언제부터 이곳에 와 있었지. 하루가 더 지나면 색이 변하고 말 것이다. 예정보다 이른 퇴실을 망설인다.

  • 강이현
  • 2025-12-01
여우의 빛

여우의 빛 권기덕 나는 악역 배우다. 한때는 유명한 서부극 주인공이었다. 지금은 추락하는 중이다. 방금도 TV 시리즈 촬영장에서 총을 맞고 쓰러졌다. 쓰러진 것은 그래도 쓰여지는 것, 쓸모 있는 시절은 언제나 나 자신보다 빠르다. 나로부터 악마를 꺼내 어린이 앞에 마주하게 한다. 악마 또한 배우의 실감 나는 죽음을 기대한다. 배우는 삶에서 끊임없이 배우는 자다. 어느 날엔 세트장에 이상한 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빛은 호텔 기둥에 매달린 밧줄에 한동안 머무르다 술통 위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술통은 스스로 굴러 가기 시작했다. 술통에서는 어떤 여행자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울부짖는 짐승의 거친 포효가 들리기도 했다. 술통은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 올라갔다. 술통은 새가 되어 골목 너머로 사라졌다. 나는 어떤 빛에 대해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다 그곳에서 길을 잃었다. 빛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불안했다가 섬세해졌다. 빛을 향해 대사를 던지니 그림자가 걸어왔다. 사라진 빛은 자유로웠고 나는 끊임없이 솟구치는 분노가 이 세트장을 불태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불타는 세트장에서 대역 스턴트맨이 나 대신 죽고 영화는 완성될 것이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나는 그제서야 이곳이 어린 여우와 대화를 나눴던 트루디 프레이저* 의자 앞이라는 걸 깨달았다. 빗속에서 빛이 다시 보였다. 빛을 따라 다시 걸었다. 개가 뿔 달린 인간의 다리를 물어뜯고 있었고 총에 맞은 히피족들은 머리가 없었다. 살인 영화를 보며 자란 살인자는 공중에 칼을 휘두르다 빛에 눈동자를 잃는다. 빛은 누군가에겐 빚이 되어 공공의 적이 되기도 했고 누군가를 위해 추억이 되기도 했다. 나는 그저 빛의 동작을 흉내 냈다. 가끔 빛이 내 안에 머물다 빠져나갔다. 그해 배우의 수영장에는 이웃에 사는 여우들이 밤새 술을 마시며 빛과 함께 놀곤 했다. * 영화 〈원스 어 폰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등장하는 소녀.

  • 권기덕
  • 2025-12-01
시계

시계 권기덕 영상을 촬영했다 시계를 톱으로 잘랐다 말복이었다 너는 졸업작품전에 내 행위가 담긴 영상을 발표한다고 했었다 여치 울음소리가 들렸다 타조가 죽은 타조를 찾아 도롯가를 뛰어가는 내일 뉴스가 오늘 흘러나왔다 비가 내렸다 해가 쨍쨍했다 해가 배구공처럼 탱탱했다 나는 배구공을 톱으로 잘랐다 너는 공산품을 자르는 내 얼굴이 시계 같다고 했다 배구공 같다고 했다 영상은 되감기의 방식으로 재생된다고 했다 내가 톱에 잘렸다 시계가 완성되고 배구공이 탱탱해지고 죽은 네가 돌아왔다 가창 백숙집에 갔다 예전에 집단 총살 희생이 있었던 곳이 멀지 않다고 했다 닭을 잘랐다 7월이었다 검은 구름이 몰려왔다 까마귀 떼였다 영상 속에서 바다제비를 봤다 버려진 생명에 눈을 맞추다 보면 눈에서 멀어진 사람이 울었다 눈물은 금지였다 시를 발표했다

  • 권기덕
  • 2025-12-01
내일의 국화

내일의 국화 임솔아 씨발년이었나, 썅년이었나. 그때도 화가 나지는 않았다. 마냥 당황스러웠다. 잠시 후에는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기억을 되짚어 봤다. 그러고는 그랬구나 했다. 국화가 처음으로 전한 진심이었다. 몇 번인가 궁금한 적은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를 씨발년이나 썅년 같은 거라고 여겨 온 것은. 비로소 진심을 전하기로 한 계기가 뭐였을까.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내게 정말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지금 나는 왜 굳이 국화를 만나러 가는가. 오후 두 시에 기차에서 내렸다. 약속은 내일 오후 세 시였다. 내가 기차를 타고 여기까지 오는 게 덜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국화만을 위해 이 먼 거리를 이동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이것이 여행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겸사겸사 국화도 만나는 것이어야 했다. 기차역을 빠져나오자 막상 갈 곳이 마땅히 없었다. 이 도시에서 유명한 건 빵집뿐이었다. 이 도시는 볼 것 없고 놀 것 없는 곳으로 유명했다. 어린 시절에 살았던 주공아파트나 지금은 없는 개와 함께 산책을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 삥을 뜯기는 것으로 유명했던 팬시용품점 뒷골목 같은 장소를 다시 찾아가기는 싫었다. 이미 다 가 봤으니까. 이 도시를 떠난 지 십 년째가 되었던 일월 일일이었다. 내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분주히 존재하던 나의 동네가 실재하는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기억을 가볍게 만들고서 다시 기차를 타고 내 원룸으로 돌아오고 싶었다. 그래야지만 앞으로 조금이라도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굣길마다 찾아갔던 비닐 천막 떡볶이집이 거기 계속 있다는 것과 조금도 변하지 않은 아주머니가 여전히 떡볶이를 푸짐하게 퍼서 접시에 담고 있었다는 것에 나는 반가워했다. 그러나 내부에 들어섰을 때 한눈에도 위생 상태가 처참해 보였다는 것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천막 안에 기름 쩐 내가 떠다녔다. 떡볶이 맛도 형편없었다. 씹자마자 어떤 냄새가 코끝을 쏘았다. 옆에서 아이들이 컵떡볶이를 냠냠 먹고 있었다. 남아 있는 국물을 먹기 위해 종이컵 속에 혓바닥을 밀어 넣고 있었다. 이토록 맛이 없는 떡볶이를 그토록 맛있게 먹었던 건지, 시간이 지나 떡볶이의 맛이 변해 버린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입안에 있는 것만 삼키고 천막을 나왔다. 간판이 유난히 깨끗한 국숫집이 눈에 띄었다. 개업을 축하하는 화분들이 가게 입구에 쪼르륵 놓여 있었다. 어느 동네에나 있는 프랜차이즈였다. 그 국숫집에서 국수를 먹는 동안 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방 카운터에 앉아 있는 주인 할머니, 주방 안쪽에서 식재료를 다듬고 있는 젊은 여자, 그리고 카운터와 주방을 오가며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드는 아이. 창가에 다육이를 놓는 건 어때. 깔끔한 게 낫지 않니. 할머니 나 이 다육이가 뭔지 알아. 같은 말이 오갔다. 어른들의 대화는 아이 때문에 자주 끊겼다. 질문과 대답 사이에 아이의 말이 끼어들면 어른들은 대꾸를 하느라 대화가 띄엄띄엄 흘러갔다. 그 점이 나는 편안했다. 국수를 거의 다 먹었을 즈음 주방에 있던 여자가 나왔다. 내

  • 임솔아
  • 2025-12-01
우리는

우리는 심윤경 “남양주에 가셨다고요?” 전화기 속에서 딸이 물었다. “아버지 내가 정말! (딸깍딸깍) 오늘 영하로 떨어진다고 하는데, 못 들으셨어요? (딸깍딸깍) 환절기에 가장 많이 쓰러지는데 (딸깍딸깍) 하라는 것도 아니고. 제가 지금 (딸깍딸깍) 하는 거예요?” 전화가 걸려 오고 있다는 신호음이 겹쳐 딸의 목소리는 자꾸 뚝뚝 끊어졌다. 마음이 급해지면 종종 그러듯 눈앞이 하얗게 아득해졌다. 친구들이 전화하고 있을 것이다. 딸이 전화를 끊어야 걸려 오는 전화를 받을 텐데, 딸은 거센 잔소리를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래, 알았어. 일찍 들어갈 거야. 조심할게. 걱정 말아라.”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딸의 전화를 끊어 버렸다.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딸의 전화를 중간에 끊어 버린 것은, 그의 기억에는 한 번도 없었다. 딸이 마음 상하지 않고 이해해 주기를 바랐다. 친구들이 도착할 시간이었다. 하나하나 무사히 모여서 택시를 타야 한다. 이전에 와 본 적이 없는 낯선 곳에서 여기저기 부실한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조급해질 것이다. 구십 세가 되는 것이 어떤 기분이냐고, 구순 생일에 찾아온 조카들이 물었다. 딸이 예약해 놓은 한정식집은 유명세가 있는 곳이었지만 시장바닥처럼 번잡하고 시끄러웠다. 오래 담아 놓은 나물 윗부분이 말라 가고 있었다. 그의 자식들은 예약했던 것과 메뉴가 다르고 방도 원하던 곳이 아니었다고 한정식집에 항의했다. 자식들의 밝지 않은 얼굴을 보다가 마음이 무거워져서, 그는 여태까지 살아도 알 수가 없는 게 인생이라고 답하고 말았다. 모두 모인 자리에서 더 화창하게 대답을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딸이 화를 내고 있지만 (큰소리로 “제발 자식 말 좀 들으세요!”라고 했다) 하필 모이기로 한 날의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내려갈 줄을 미처 몰랐을 뿐이었다. 옥희는 골반이 아팠고 신성이는 방향감각이 깜빡깜빡했다. 옥희보다는 신성이가 좀 더 걱정이라서, 딸의 전화를 끊고 신성이의 전화를 받았을 때 드디어 안도했다. 신성이는 오십 대 남자의 도움을 받아 나타났고 옥희는 누구의 도움 없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옥희와 신성이는 지팡이를 짚었고 성훈은 아직 두 발로 다닐 만했다. 세 친구 모두 한 대뿐인 엘리베이터를 잘 찾아 고생 없이 나타났으니, 일단 모험의 첫 단계는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지하철로 오니까 참 쉽다. 여기까지 지하철이 닿는구나.” 요새는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지하철이 닿았다. 지하철 4호선이 진접역까지 닿는 걸 알았을 때 그는 만세를 외치고 싶었다. 안양, 용인, 일산에 사는 구십 대의 세 친구가 누구 도움 없이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남양주 은혜와 평화 요양원에 찾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요양원에서 가장 가까운 역은 사릉역이었지만 친구들이 경춘선을 갈아타기는 힘들 것 같았다. 멀어도 익숙한 지하철이 좋았다. 어차피 택시를 탈

  • 심윤경
  • 2025-12-01
현재의 작은 증명

현재의 작은 증명 강지이 나의 편리, 안온, 양식(糧食)과 취향은 어디서 오나. 세련됨을 사랑하는 게 언제나, 너무나 부끄럽다. 다만 살아가는 것, 인간인 나의 역겨움을 알고 부끄러워하며 견디는 것. 공간이 있어 소리가 나타나듯 공간이 있어 나는 아직 있다.

  • 강지이
  • 2025-12-01
물오리, 샬레, 전자음악

물오리, 샬레, 전자음악 강지이 여기 샬레가 있다. 샬레의 은빛 테두리, 물오리들 전자음악에 맞춰 미끄러지듯 떠다닌다. 하우스?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리믹스, 리믹스! 무한한 은색 철골 쏟아진다. 너희들이 미끄러지는 건 빛의 연주, 수성이 숨겨 둔 윤기 나는 날개가 되어, 비를 가로지르는 번개. 동그란 눈에 가득 찬 섬광, 샬레에 퍼진 성단. 이 미끄러지고 계속되는 삶에서 어떻게 잘 들으셨을까요? 당신 손바닥 위 자라나는 나무에 우리의 성단을 부어 보세요.

  • 강지이
  • 2025-12-01
빗소리

빗소리 김현서 지붕에서 후드득 빗소리가 새어 들어온다 통증처럼 온몸으로 퍼진다 소리는 침묵을 잃고 집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난다 열다섯 평 계약서에 적혀 있지 않는 이 빗소리 셋돈 내는 날이면 바람을 동반한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밤새 빗물은 빗소리를 내뱉고 집은 빗소리를 받아 삼킨다 저도 나도 살아 본 적 없는 생을 힘껏 퍼붓고 나면 집은 구석부터 괴사되어 간다 너무 아프지 않게 살아가야지 작디작은 이곳, 어디부터 절단해야 할까 제 몸에 맞지 않는 집에 몸을 끼워 넣는 이 빗소리 두 개 세 개 네 개의 머리로 버티던 춥고 배고픈 소리 방음이 잘되도록 방수가 잘되도록 천막을 치고 빗물에 젖지 않으려는 이불을 만지작거린다 또 한 계절을 무사히 건너기 위해 빗물은 얼마나 더 퍼부을까 빗소리는 얼마나 더 제 살을 베어 내야 할까

  • 김현서
  • 2025-12-01
이웃의 이 옷

이웃의 이 옷 김현서 헌 옷 수거함에 라벨 태그를 떼지 않은 오리털 패딩이 버려져 있다 버리는 건 버려진다는 건 우리가 늘 해 오던 일 서로가 서로를 꾹꾹 누르며 깃털에 묻은 햇살을 짜내는 일 인연이 닿기도 전에 인연이 다한 것처럼 이미 버려질 것을 직감한 이웃의 이 옷 꽉꽉 꽥꽥 울어도 보고 꽉꽉 꽥꽥 웃어도 보고 수거해 가지 않은 저녁은 폐허처럼 저물어 간다 추위를 뒤집어쓴 채 우린 어디로 수거될지 간절했던 시간은 다시 정신이 들고 이 옷의 이웃 잡풀들은 일찍 늙어 버리고 밀매된 결말은 번번이 엇나가고 속 시끄러운 수거함에 밤이 되면 중고매장으로 나가는 한 생이 버려져 있다

  • 김현서
  • 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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