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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호

  • 작성일 2026-10-01

 [10월호를 열며]

저는 대체로 한 글자로 된 단어를 좋아하고, 그 다음으로는 두 글자로 된 단어들을 좋아합니다. 밤새 적어내려갈 수도 있으나 바로 떠오르는 것들을 열거해보자면 어제, 후회, 체념, 고민, 결정, 눈물, 가을, 백미, 수면, 선물, 사랑, 쿠키, 인사, 이별, 사람, 저녁, 소설, 세계, 그리고 불화가 있겠습니다. 실제로 후회라든지 이별이라든지 불화不和라는 단어들이 지칭하는 상태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 단어들을 좋아하는 겁니다. 이 단어들이 세계와 불화하던 저를 살게 해주었기 때문인데요, 저로서는 세계世界라는 단어가 좀 거창하게 여겨지지만, 돌아보면 그때의 제게는 그 세계만이, 세계,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모르던 세계는 문학 안에 있었습니다. 아는 것이 아니라 안다고 ‘생각’했기에 궁금해한 적 없는 시간과 사람들, 감정과 이야기들이 다른 얼굴을 하고서, 그곳에 있었던 것이지요. 내가 모르던 세계는 사실 알고 있었으나 잊고 있었던, 어쩌다 잠깐 놓치고 말았던 그때 그거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저는 안도하는 동시에 불편하였는데, 놀랍게도 약간의 단차를 두고 나타난 두 현상을 오가는 일은, 그것들이 뒤섞였던 순간들을 되짚는 일은 쓸모가 있고 즐거웠습니다. 안전감과 위험함의 경계가, 누군가 작은 이야기를 쓰게 해주었다는 걸 짐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 기획에서는 박인성 문학평론가의 사회로 위수정 소설가와 이미상 소설가와 함께「안다무(安穩-多情-無害) 시대와 위험한 소설들」이라는 주제의 좌담을 마련하였습니다. 세 분의 이야기를 통해 소설적 미학과 구체적 방법론에 대해, 소설이라는 장르의 맨얼굴에 대해, 내 안의 그 무엇과 세계가 불화하던 소설적 순간들에 대해 환기해보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라며, 늘 문장웹진과 함께해주시는 독자들과 필자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ㅡ 이주란 소설가 외 문장웹진 편집위원 일동




2026년 10월호 <안온하고, 다정하고, 무해한 세상 밖에서> ⓒ 윤연우



10월호 표지 그림 작가의 말

“내 집에는 안온하고, 다정하고, 무해한 것들이 가득 채워져 있어.
그래도 난 그 바깥에 있는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고 싶어.”


문장웹진 2026년 10월호 목차

구분

작가

제목

시

공도이

  옮긴이의 말

  Perfect Day

김유자

  신의 휘파람

  미완성

김이듬

  덩굴성 문장

  발굴한 감정

김지숙

  공원의 빛

  중성미자

박정대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진부, 겨울의 뭐랄까
  봄의 그런 거 있잖아

우은주

  사랑 전의 일들

  미미

장현

  레시피

  케이크

단편소설

박선우

  암순응

손호영

  보트 아래

윤해서

  베일

이서수

  공유자의 기록

장편소설

강대호

  그림자 신을 탐구하는 순례자를 위한 안내서(2회)

박세회

  아직 여기 있습니까(2회)

신다다

  백 퍼센트 소년(2회)

양수빈

  해로(2회)

이상하

  터치 니치 미치(2회)

이서영

  빙(憑)(2회)

이한슬

  퍼레이드가 끝나면(2회)

평론

최선교

  (연재) 여자에게 말하게 하라 (2)

김건형

  상속 포기 : 남성적 돌봄의 주권을 반송하는 소설적 방법들

윤재민

  제6공화국 문학 선언
― 사변적/편집증적 한국문학 시론 ―

기획

문장웹진 다시읽기

정의정

  (연재) 돌고 도는 ‘남성성-코어’
― 최가은, 「과잉 남성 사회―장류진 소설의 남성-청년」 (2020년 7월호 수록)

편집위원 기획

박인성, 위수정, 이미상

  [문장웹진 특집좌담(소설)]
안다무(安穩-多情-無害) 시대와 위험한 소설들

모색

문학의 곁

하림

  <하림의 문학책장> 책장지기의 기록
― 문학이 동사가 되는 시간

레지던시

일기

권희진

  506호에서 기다린 것들

도재경

  명동 산책

문장웹진 10월호 살펴보기

제6공화국 문학 선언

제6공화국 문학 선언1) ― 사변적/편집증적 한국문학 시론 ― 윤재민 1. 한국 문학사라는 유령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싶다. 아주 진부한 대목으로 운을 띄우며 글을 시작할 테니까. 심지어 다음과 같이 약간의 패러디까지 가미해서. 하나의 유령이 한국 문학계를 떠돌고 있다. 한국 문학사라는 유령이. 지금부터 관철하고자 하는 사안을 유령론만큼 적확하게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는 내가 문학과 관계하는 진부하면서도 일견 특수한 위치에서 나타난 ‘문학사적 충동’의 발로이다. 그것은 기존 문학사 서술에 대한 모종의 불만에 기인하는데, 그렇다고 문학사를 다시 쓰겠다는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기존 문학사와 전혀 다른 시간성에 한국문학을 내던지고 싶다는 충동에 가깝다. 내가 이런 독단적인 문학(론)을 욕망하게 된 계기는 아래의 대목에 사로잡히고 나서부터다. 한국 문학사가 개별 문학이라는 의미는 한국 문학사의 기준이 한국사 총체 속에 있다는 사실의 소박한 인식을 뜻하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볼 때 이러한 진술은 편협한 지방성, 파행성의 노출로 오해되기 쉬우며 심지어는 배타적 독선적 쇼비니즘 내지는 문화의 보편성을 압살하는 사고방식으로 간주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체 민족의 행복에 감성적으로 작용하지 않는 문화 파악력은 역사의 추진력이 될 수 없을 것이다.2) 김윤식·김현 『한국문학사』(1973)의 한 대목이다. 두 사람의 문학사 시도는 임화 이래 이식문학론의 성취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민족 공동체의 근대적 주체성을 한국문학 성립의 당위로 삼은 ‘총체적 민족 문학사’의 한 전범으로 남았다. 근대 맹아론으로 간편하게 정리되기도 하는 『한국문학사』의 총체적 관점은 이 시대에는 설명력의 한계가 뚜렷하다. 이식문학론이든 근대 맹아론이든 간에, 더 이상 한국문학에 대한 총체적 서술이 불가능하다는 건 이미 상식이다. 내가 『한국문학사』에서 매혹된 사안은 『한국문학사』의 서술 방법이 아니다. 문학사 서술의 당위를 ‘주체 민족의 행복에 감성적으로 작용하는 문화 파악력’에서 구한다는 대목이다. 이것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 공동체의 행복과 역사 운동의 작동이 양립할 수 있는가. 위 인용문에 표명된 ‘행복’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두 사람은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 모호한 대목에 사로잡혀, 그 의미를 내 식대로 번역해본다. 『미니마 모랄리아』에서 아도르노는 행복을 현실에서 온전히 실현할 수 없는 가치로 본다. 폭력과 모순으로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가 억압되고 핍박받을(말 그대로 행복을 박탈당할) 잠재성이 상존하는 가운데, ‘현세의 행복’이란 이를 망각케 하는 허위이자 기만이라는 것이다.3) 그러나 아도르노 같은 현자가 아니라면 누가 ‘현세의 행복’을 쉬이 포기하겠는가. 그 양태가 허위이든 기만이든, 우리는 각자의 행복을 추구한다. 나의 행복이 누군가

  • 윤재민
  • 2026-10-01
상속 포기 : 남성적 돌봄의 주권을 반송하는 소설적 방법들

상속 포기 : 남성적 돌봄의 주권을 반송하는 소설적 방법들 김건형 최근 소설장에는 가부장이 남긴 재산과 권력, 그리고 그에 딸린 ‘돌봄’의 형태를 상속할 것인가를 두고 머뭇거리거나 항의하는 소설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가령, 성해나의 「스무드」1)는 광장의 ‘아스팔트 극우’ 노인들과 낯선 조우를 통해 한국 사회 고유의 가부장적 희생과 돌봄이 어색한 형상으로 되돌아온 경위를 되살펴 보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독자와 평론의 주목을 받았다. 직접적으로 동시대의 광장을 경유하지 않더라도, 한국 사회가 구축해 온 고유의 남성적 돌봄과 그 유산을 손에 쥐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후속 세대의 곤혹과 고민을 다루는 소설들이 연작에 가깝게 제출되고 있다. 이에 대해 지난 계절의 소설에서 “남성의 몸이 시들시들한 수동으로 묘사되”는 “허약한 남성성”이 자주 탐구되고 있으나, 그것은 “서사적 분출구 없이 사실적이기만 한 재현”이었다는 날카로운 진단이 한 입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2) 어쩌면 그 수동적이고 허약한 남성들이 서사에서조차 분출구를 찾을 수 없는 것 자체가 동시대의 젠더·정치적 풍경에 대한 적확한 발견일지도 모른다. 다만, 굳이 남성(성)의 분출구를 대신 찾아주는 것보다는, 그토록 서사적 분출, 즉 ‘건강한’ 해법을 찾을 수 없는데도 자주 발견되는 남성(성) 재현이라는 패턴에 주목하는 것이 증상적인 독해가 될 것 같다. 할아버지의 유산, 역사를 다시 마주하는 오싹함 서장원의 「뱀이 있는 곳」3)과 김지연의 「무덤을 보살피다」4)는 모두 사촌지간인 손자, 손녀들이 죄 많은 할아버지의 무덤과 적폐를 ‘파묘’하는 이야기다. 이 소설의 화자들은 모두 할아버지의 유산이 과연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실체적인 힘이 있는 것인지를 반신반의하면서도, 실은 그저 자신이 과민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면서도, 끝내 각자의 집안이 숨겨왔던 비밀의 핵심에 다가가서 그것을 기꺼이 파괴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끝내 지연된다. 「뱀이 있는 곳」은 할아버지의 유산이 있는 ‘솔잎산장’으로 가는 길 내내 “하진에게 잘못한 사람들”(183쪽)에 대한 생각을 하며 시작한다. 성폭력 무고죄로 고발당한 하진은 자신을 도와줄 직장 동료들의 증언을 기대하지만, 사람들은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하면서 하진을 외면하고 있다. 이를 전해 듣는 정인은 “그런 비겁한 선택들이 세상을 망친다고 생각”(184쪽)하며 부아가 치민다. 명백한 성추행 혐의를 고발해도 이를 상업화하는 법조계 자본의 힘에 의해, 깔끔하게 무죄판결이 나고 마는 세계인 것이다. 그런데 잘못한 사람들과 비겁한 선택들을 회상해 보면 그뿐만은 아니다. 사소하게는 대책 없이 낭만적이고 무능한 부모들도,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과 잘 어울려야 하는 기숙형 재수학원에서 만났던 사람들

  • 김건형
  • 2026-10-01
여자에게 말하게 하라 (2)

최선교 문학평론가의 기획 비평은 2026년 9월부터 11월까지 로 3회 연재됩니다. 여자에게 말하게 하라 (2) 최선교 김혜순이 말하는 여성성과 그 의의를 이해하기 위해 1990년대 여성적 글쓰기 담론을 경유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에 들어서며 민족민중문학의 하위 범주로 여성문학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문화』(이하 『또문』)은 1985년부터 2003년까지 총 17호에 걸쳐 발간된 여성문학 무크지이다. ‘또문’은 여성운동이 가시화되던 1980년대에 유학파이면서 사회과학 분야에 있던 여성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이지만, 동인의 구성원으로서 주부와 대학생까지 포함하면서 불평등한 성 문화를 타개하기 위한 대안 문화를 실천하고자 한 단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또문』의 초기 호에서는 가사노동이나 육아 등 ‘여성’의 재생산 노동의 전면적인 재사유를 촉구하는 기획이 돋보인다. 『또문』이 추진했던 여성적 글쓰기 담론의 의미와 한계를 살펴볼 때 김혜순 시론의 여성성 개념이 갖는 특이점이 드러난다. 1980년대 여성문학이 민족민중문학 진영의 하위 범주로 인식되었던 것과 달리, 1990년대에 들어서 여성문학 진영의 관심사는 젠더와 섹슈얼리티, 계급, 민족을 포함하여 정체성의 복합적 성격을 탐색하는 지점으로 나아간다. 특히 『또문』이 여성적 글쓰기에 보인 관심은 남성중심적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문화적 실천 대안의 일종이었다. 1992년 발간된 『또문』 9호는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를 특집 주제로 내걸며 다음과 같이 적는다. “우리는 이 책에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말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남성의 말과 전쟁을 벌이려고 남성의 말에 맞추는 것, 그 말로 많은 것을 말할수록 자신의 언어를 더욱 잃게 되는 그 자가당착에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우리를 가두어 두고 싶지 않다. (...) 프랑스에서는 언어와 정신분석학을 연결하는 매우 이론적인 논의로 ‘몸으로 글쓰기’의 단어가 최근에 크게 부각되어 왔다. ‘몸으로 글쓰기’라는 것은 결국 기존의 언어가 여성의 체험을 풀어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자 하는 여성들이 해온, ‘머리’만도 아니고 ‘가슴’만으로도 아닌 온몸으로 쓰는 모반 행위라 할 수 있다.”1) 이 글은 여성이 부당한 억압을 향하여 억울하다는 외치는 주장을 잠시 멈추고, 근본적으로 여성이 사용하는 말 자체를 재사유해보자고 주장한다. 여성이 남성중심적 권력에 대항하여 자신의 경험을 재현하기 위해 ‘주체적으로’ 사용한다고 여겨지던 말들은 이미 남성중심적 의미 체계에 의해 오염된 것이므로, “말 자체를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

  • 최선교
  • 2026-10-01
[문장웹진 특집좌담(소설)] 안다무(安穩-多情-無害) 시대와 위험한 소설들

[문장웹진 특집좌담(소설)] 안다무(安穩-多情-無害) 시대와 위험한 소설들 진행 : 박인성 평론가 패널 : 이미상 소설가, 위수정 소설가 기획 : 이주란 편집위원, 박인성 평론가 박인성 문장웹진 기획좌담 10월호에 게재될 소설 파트 좌담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회 겸 토론 참여자로 이번 좌담회에 참여하게 된 문학평론가 박인성입니다. 좌담의 주제는 ‘안다무 시대와 위험한 소설들’입니다. 위수정, 이미상 두 분 소설가를 모시고 함께 이야기 나눠볼 텐데요.두 분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고 최근 근황도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수정 안녕하세요. 2017년부터 소설을 발표하고 쓰고 있는 위수정이라고 합니다.개인적으로 좀 힘든 일이 있어서 최근에는 소설을 잘 못 쓰고 있는데 이제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소설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인성 최근에 이상문학상 수상이라는 경사도 있었기 때문에. (웃음) 위수정 그 상 덕분에 제가 평소에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제안들을 받아서 즐겁게 하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확실히 소설 쓰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어요.제가 사소한 일에도 에너지를 많이 쓰고, 또 멀티가 잘 되는 사람은 아니라서, 어려운 점도 있지만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상 저는 소설을 쓰는 이미상입니다. 근황은 소설은 열심히 쓰지만 쓴 것을 내보내기는 싫은 상태입니다. (웃음) 그냥 집에 계속 쌓아놓고만 싶습니다. 박인성 그것은 개인적인 만족도의 문제일까요? 이미상 만족도도 그렇고 그냥 헤매는 거죠. 늘 그렇듯 엄청 헤매고 있습니다. 박인성 알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두 분 모두 열심히 쓰고 있으나 뜻처럼 원활하지는 않다는 말씀이네요. 이미상 그렇죠. (웃음) 셋 다 마찬가지죠. 박인성 저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분을 이렇게 모시게 된 건 두 분이 이번 주제에 잘 어울리는 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찾아보니까 두 분이 《문학과사회》 2022년 여름호에 실린 기획에 나란히 산문을 발표하신 적이 있으시더라고요.이미상 작가는 실험을 "스스로 자극을 고안해 주입하고, 그로부터 파생된 효과를 관찰하고, 창작물에 적용하는 것"()으로 다시 정의해 "사적이고 만만한 것"으로 끌어내리셨고, 위수정 작가는 "그때도 지금도 '전위적'이라는 수식을 동일하게 붙이는 것은 전혀 전위적이지 않다."()고 쓰셨습니다.두 글 모두 이제 새로움이라는 요구 자체에서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는 글이었다고 읽었는데요.그 글이 쓰인 후 다소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각자에게 갱신이나 새로움이라는 말의 무게가 어떻게 남아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또 두 분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로 문학 장이나 문학의 풍경은 좀 어떻게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미상 저때 정의를 잘해놨군요. 지금의 저보다 낫네요. (웃음) 새로움에 대해 부정적이었다기보다는 어떻게 새로움을 소설에 집어넣을 수 있을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소설을 저대로 쓰고 싶었던 기억이 납니다.

  • 2026-10-01
명동 산책

[레지던시 일기 – 서울프린스호텔] 명동 산책 도재경 몇 해 전 소설 창작 수업을 수강하던 한 학생에게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근사한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학생에게 허풍을 늘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솔직하게 답변한다는 게 고작 맥주를 마시며 놀 궁리를 한다는 거였다. 대답하고 나니 어쩐지 궁색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니까 맥주를 마시며 노는 게 아니라 궁리를 하는 거라고……. 궁리를 한다고? 꼴에 선생이라고 자못 젠체한 듯해서 뒤통수가 가렵다. 추리닝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어슬렁거리거나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펼쳐 놓고 글을 끄적거릴 때면 나도 모르게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져 종국엔 멍한 상태가 되고 만다. 그러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대체 온종일 뭘 했나 자책감이 들면서도 그러한 상태야말로 창작자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자세라고 합리화하곤 한다. 지난여름 명동에 자리한 서울프린스호텔의 ‘소설가의방’에 입주한 기간에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침구류는 새것처럼 빳빳해져 있었고, 물기 하나 없는 욕실에는 보송보송한 수건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허기질 일도 없었다. 늦잠을 자느라 곧잘 조식을 거르곤 했지만 호텔의 ‘이층서가’나 인근 식당에서 언제든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라운지에는 쿠키나 주스 등 간식도 가득했다. 그랬다. 분에 겨울 정도로 호사스러운 일상에서 부끄럽게도 불철주야 온갖 공상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중 하나는 전기밥솥에 관한 거였고, 또 다른 하나는 돌멩이에 관한 거였다. 전자는 탈고를 앞둔 장편소설의 소재였고, 후자는 곧 쓰게 될 단편소설의 글감이었다. 퍽 다행스럽게도 호텔에서의 일상은 밋밋하기 이를 데 없었다. 친구와의 만남은 집필을 핑계로 죄다 퇴실 이후로 미루었고, 무더운 한여름에 호텔에서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대부분을 객실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슬그머니 좀이 쑤실 때면 산책 삼아 호텔 주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호텔에서 남산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골목 초입에는 밤낮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이 찾아와 사진을 찍었는데 눈을 씻고 둘러봐도 특별할 게 없는 풍경이라 도리어 생경했다. 말없이 멍만 때리다 보면 입안이 퍼석퍼석해지기 마련인데 다행히 몇몇 동료 작가들이 입주해 있었다. 함께 식사하고선 소화를 시킬 겸 당구를 치며 각자의 공간에서 생존해 있다는 사실에 서로 위로 삼곤 했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어쩐지 반(半)백수의 삶과 다를 바 없는 듯해서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회적 활동(?)이란 걸 하긴 했다. 7월 초에는 장흥에 계시는 한 원로작가님을 뵙고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7월 말에는 세종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그밖에는 딱히 이벤트랄 게 없었다. 어찌 됐든 소설을 쓰기 위해 입주했으니 모쪼록 심심한 날들만 이어지길 바랐다. 비가 그친 어느 날 오전이었다. 객실 창밖에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연두색 사마귀 한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안

  • 도재경
  • 2026-10-01
506호에서 기다린 것들

[레지던시 일기 - 서울프린스호텔] 506호에서 기다린 것들 권희진 호텔 앞에서 어떤 외국인을 보았다. 중요한 약속이 있는 듯 옷을 차려입었다. 옆에는 커다란 트렁크도 있었다. 누구를 만나려는 걸까. 연인? 친구? 아니면 오래전에 한국 여행을 왔다가 우연히 만났던 누군가? 나는 여러 상황을 상상했다. 산책하기 위해 나왔을 때 그 사람은 여전히 호텔 앞에 서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상대는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사람이군, 하면서 그 사람 곁을 지나쳤다. 저녁을 먹으러 나왔을 때도, 밤 산책을 위해 나왔을 때도 그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서 있었다. 그때부터는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공항에 가려고 차를 기다리는 걸까, 아니면 숙소를 잡지 못한 걸까.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먹고 산책을 나왔는데 그 사람을 다시 마주쳤다. 호텔 앞에서 밤을 지낸 모양이었다. 새벽에 조금 쌀쌀했는지 트렁크에서 얇은 겉옷 하나를 꺼내 입고 눈을 감고 있었다. 선 채로 졸고 있는 그 사람을 보니 어쩐지 조금 쓸쓸해졌다. 점심쯤에는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을 잊지 않으려고 그림을 그렸다. 작은 메모지에 연필로 슥슥 소리를 내면서. 모종의 이유로 그 그림은 공개할 수 없다. 절대 못 그려서는 아니다. 지금도 이렇게 글로 그 사람을 남기고 있는 걸 보면 꽤 인상 깊은 이미지였던 것 같다. 호텔을 나온 후에도 종종 그 사람이 생각났다. 왜일까. 프린스호텔에서 내가 주로 한 일도 기다리기였다. 무언가 생각나기를 기다리고, 좋은 문장을 기다리고, 흔히 말하는 영감이라는 걸 기다렸다. 기다리는 일이 지루해지면 나는 썼다. 결국 다 지울 문장들이었지만 그럼에도 썼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조금 이상한 일이다. 문장이 오길 기다리면서도 계속 썼으니까. 내가 머문 506호는 트윈룸이었다. 침대 두 개를 하루씩 번갈아 썼다. 하나만 쓰면 괜히 아까운 느낌이 들어서 두 개를 다 사용했다. 그런데 갑자기 침대 얘길 왜 하느냐고? 침대만큼 뭔가를 기다리기에 적합한 곳도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물론 침대에서는 생각도, 사랑도, 꿈꾸는 일도 전부 가능하다. 다만 나는 침대에서 무언가를 먹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시트를 더럽히면 다음 일이 골치 아파진다. 아무튼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냥 잠만 잤다는 얘기는 아니다. 침대에 앉아서 소설도 쓰고 책도 읽었다. 정말이다. 잠깐 빨래 얘기를 해보자. 호텔에 머물면서 총 여섯 번의 세탁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이니까 아마도 맞을 것이다. 로비 구석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는데, 세탁과 건조가 진행되는 약 80분 동안 나는 로비의 테이블에 앉아 소설을 썼다. 정확히 말하면 뭐라도 떠오르길 기다렸다. 로비는 기다림에 어울리는 곳이니까. 프런트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직원들, 택시를 기다리는 관광객, 내 세탁이 끝나길 기다리는 투숙객, 그리고 주인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는 많은 트렁크들과 함께 기다렸다. 그래도 빨래는 80분이면 끝이 났다. 그러면 나도 손을 멈췄다. 그리고

  • 권희진
  • 2026-10-01
돌고 도는 ‘남성성-코어’

[문장웹진 다시 읽기] 돌고 도는 ‘남성성-코어’ ― 최가은, 「과잉 남성 사회―장류진 소설의 남성-청년」 (2020년 7월호 수록) 정의정 패션 산업은 빠른 속도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낸다. 발레코어, 고프코어, 놈코어… 아직 이것들도 다 알지 못하는데 또 포엣코어로 유행이 바뀌었다고 한다. 유행의 빠른 전환은 상품 소비를 부추기는 시장 전략이다. 그런데 무언가 사고팔지 않는, 시장의 대척점에 있을 법한 문학장에도 유행은 있다. 2025년 넷플릭스 시리즈 1)이 인셀2)의 정동을 다루면서 화제가 된 후, 그해 가을 계간지 『문학과사회 하이픈』은 ‘젠더-플레이’ 특집을 기획하며 청년 남성의 극우화 양상을 중심으로 하는 남성성 논의를 본격화했다.3) 올해 『문학동네』 또한 ‘남성성의 재구성’이라는 키워드 아래 기획된 여러 편의 비평·에세이를 발행했다.4) 대다수의 필진들은 이러한 특집호가 구성된 배경으로 12·3 계엄과 탄핵 이후 정국을 통과하며 테러, 집회에서 포착된 한국사회의 극우-인셀 정동과 그에 감응하는 근래의 문학 텍스트들을 짚는다.5) 지금 문학/비평장의 트렌드는 ‘남성성-코어’라고나 할까…?6) 그런데 동시대 지식장의 담론적 화두를 유행이라고 말해도 될까. ‘남성성’에 ‘-코어(core)’라는 말을 붙이니 진지하게 논의되는 남성성 담론을 가볍게 치부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우려스럽다. 그러나 내게 이 명명은 단순히 현상을 조롱하는 말이 아니라 동시대 현안을 발 빠르게 조사·수집하고 관련 서적과 글을 남독(濫讀)하고 그것에 비판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서둘러 표명해야만 하는 현장비평(가)의 생리와 한계를 통찰하는 언어로서 적실해 보인다. 물론 지금 한창 논의되는 ‘남성성’이란 이성애자-청년-남성 젠더의 극우적 멘탈리티에 주로 한한다. 이는 식민지 남성성이나 가부장 권력 비판에 비하면 지극히 동시대적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일베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2010년대 초반부터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백래시 국면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남성성은 언제나 문제가 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논의는 그때의 연속선에 위치하기보다 지금-여기에만 초점을 맞추어 과열되는 양상을 띤다. 이러한 담론적 단절은 이전의 남성성 논의가 정치성을 담지하지 못할 만큼 미진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언제나 ‘지금’을 가장 위태로운 시기로 지목하여 사태의 심각성을 극대화하고 독자의 주목을 요청하는 현장비평의 관습으로 읽힌다. 이런 식의 비평이 반복되면 결국 담론은 축적되지도 사태의 근원지로 진입하지도 못한 채 한때의 유행으로 떠돌게 되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이전 시기의 글을 지금의 관점으로 다시 읽는 작업은 중요하다. 이는 후속 연구로서 선행 연구를 참조하는

  • 정의정
  • 2026-10-01
<하림의 사계절 문학책장> 책장지기의 기록

[문학의 곁] 책장지기의 기록 ― 문학이 동사가 되는 시간 하림 올해 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일 년 동안 문학 행사를 함께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라는 이름의 행사였다. 노래와 이야기가 어우러진 문학 행사라는 설명과 함께 진행을 부탁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문학 관계자도 아닌 내가, 북플루언서도 아닌 내가 이런 자리를 맡아도 될까 싶었지만, 노래라면 나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매 계절 나주로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3회차까지 마치고 처음으로 쫑파티를 제안했다. 요즘은 공연이 끝나도 쫑파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 이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회식 자체를 권하는 일이 괜히 민폐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탓도 있는 것 같다. 우려와 달리 모처럼 모인 자리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동안 별다른 문제도 없었고, 무엇보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관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작은 성공이 누구의 공인지 서로에게 돌리며 웃고 떠들다가, 그 자리에서 이 원고를 청탁받았다. 맥주 한 잔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흔쾌히 쓰겠다고 했다. 제안받은 글의 주제는 ‘문학의 곁’. 하지만 나는 문학의 ‘곁’에 있기보다는 문학의 ‘주변인’에 가깝다. 주변에 작가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학을 향한 나의 애정도 친구들에 비하면 늘 부족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최근에는 꽤 많은 양의 책을 좋은 곳에 입양 보냈다. 작업실과 집 구석구석을 차지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던 책더미를 바라보다가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모처럼 생긴 책장의 빈 공간 덕분에 읽고 싶은 책을 부담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전자책도 많이 산다. 전자책은 공간에 대한 죄책감 없이 마음껏 살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전자책은 특유의 손맛이 없어 정이 가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도움이 될 팁을 하나 건네자면 서점에 들러 실물 책을 조금 만져보고 물성을 느끼고 나면 조금 나아진다. 어쨌든 언젠가는 내 스마트폰의 e북 앱이 SNS를 누르고 스크린 타임 1위에 오르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책들을 대거 정리하고 달라진 점이 또 있다. 마치 편의점에 맥주 사러 가듯 도서관을 드나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건강을 위해 종종 오전 러닝을 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동선에 구립 도서관이 포함되어 있다. 의미 없는 찬사와 자기과시로 점철된 술자리를 보낸 다음 날, 털려버린 영혼을 다시 채우고 전날의 죄의식을 씻어내 주는 곳은 천천히 달리는 하천가 산책로와 도서관이다. 땀에 젖은 운동복 차림으로 들어서는 것이 조금 쑥스럽고 미안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얼른 들어와 책장 사이를 가만히 걷다 보면 어느새 땀이 마르고 마음이 차분해진다. 아늑한 골목 같은 서가에서 책등을 훑으며 거닐다 눈에 걸린 책 한 권을 들고 나온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책이 마음에 들면 ‘득템’한 기분이 든다. 나에게는 조금 이상한 독서 습관이 있는

  • 하림
  • 2026-10-01
케이크

케이크 장현 식사 중에 아내에게 삶의 목적을 물어봤을 때 아내는 내 귀를 개처럼 쓰다듬으며 물을 챙기고 양말을 신고 산책을 나갔지 우리가 케이크에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보다 케이크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가 중요하다 홀로 산책을 즐기다가 하얀 눈 위에서 죽은 개를 벤치 근처에서 발견하면 아내는 내 엉덩이를 긁어주고 재산은 필요하지만 재산 축적 자체가 내 목을 조를 때 아내는 나를 개처럼 훈육했다 술잔을 씻어주고 안주를 채워줄 때 술잔이 낭자할 때 서로의 배를 베고 깔고 누워 해방된 개처럼 달콤한 꿈을 꿀 때 아내는 내 단벌을 지루해하지 않는다 술이 깨면 산책을 나가자고 한다 종종 내가 남긴 물건은 키우기 힘든 개처럼 아내 곁을 어슬렁거릴 것이다

  • 장현
  • 2026-10-01
레시피

레시피 장현 이거 놓으세요 어차피 아무도 살아서 못 나가는 단테의 지옥에서 아내는 이미 먹고 있는데 어제까지 적은 레시피 깡통에 넣어 버리고 난 달콤한 것을 내려다보며 아직도 생각하는 사람 아내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달콤함을 누릴 자격 아내를 당당하게 만드는 것 아내가 피하지 않으면 좋겠다 삼키지 말고 초콜릿을 보는 순간 중심을 잃고 초콜릿에 파묻힐 것 같은데 초콜릿을 이미 먹었다고 다 먹어버렸다고 생각할 것 내가 내려다보며 심각해지면 아내가 밥알을 다 삼키며 놓으세요, 달콤한 걸 드세요, 그러면 살아서 나갈 수 있을지도 몰라요 레시피를 위한 심판을 연다 손을 묶고 입을 벌린다 입을 벌리세요 손이 묶인 내 앞에서 아내는 이미 먹고 있는데 아내를 명랑하게 만드는 것 난 아내의 손가락까지 먹으면 이 지옥에서 나갈 수 있을지 생각하는 사람 놓으세요 이거 놓으면 입이 벌어져요 아내가 웃는다

  • 장현
  • 2026-10-01
미미

미미 우은주 너무 뜨거워서 일어났어. 벤치에 앉아 땀에 젖은 네 털을 빗긴다. 보드라운 털 사이로 전해지는 열기. 네가 좋아하는 계절을 사려고. 농장 게임을 시작했다. 다시 살아난 양의 고기를 얻고 달걀을 거두며 점수를 쌓는다. 가끔 벼와 콩을 수확하는 일이 휴대폰 너머에서 진짜처럼 느껴진다. 새끼를 낳지 않은 염소에게서 젖을 얻는 일이 이상하지만. 정교하고도 허술한 이 세계는 내 이해를 구하지 않고도 흘러간다. 구매한 부스터를 한꺼번에 열어놓는다. 경험치를 높여 다음 레벨까지 쉼 없이 달린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생각할 틈이 없다. 배를 타고 나가 물고기를 잡고 돌아와 열매를 거둔다. 파이를 굽는 마음이 현실과 다르지 않다. 내 손끝이 뜨겁다. 고요한 세계. 아이템을 얻을 때까지 코인을 번다. 여름잠에서 깨어날 곰은 없어. 잠을 자기 위해 잠을 잘 수 없다. 너에게 ‘완벽한 계절’을 주려고. 오늘도 농장에 출근한다. 지금이 무사하길 기다린다.

  • 우은주
  • 2026-10-01
사랑 전의 일들

사랑 전의 일들 우은주 개를 쓰다듬고 나면 잊은 것이 생각난다. 웅크리고 앉아 사랑을 기다려본 일. 털의 감촉을 기억해.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쳐다본 정원에서. 목련의 봉오리를 발견한다. 아직 겨울인데. 이제 산책은 그만하자. 말랑한 연어 스틱의 포장지를 만지작거리면. 주머니 속에서는 미지근하고 물컹한 것들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과거에서 찾아온 것을 늘어놓으며. 없던 것이 신발장 위에 모인다. 햇살 한 움큼 마룻바닥을 굴러다니는 사이. 덜덜거리며 작동하는 세탁기 안에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연어 떼가 돌아다니고. 나는 소파에 앉아 그 소리를 오래 듣는다. 흘러가는 동안 여러 모양의 순간이 부서진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일. 아무런 의심 없이 쳐다보며 웃던 일이 기억나서 윤기 나는 등을 만져본다. 그만 가볼게. 의젓한 것을 앞에 두고. 기억의 보푸라기를 떼고 또 떼며. 안간힘을 밀어 올린다. 울고 싶으면 울어. 잠깐 슬퍼하는 의식을 치르자. 집에는 너무 많은 영혼이 살지만. 그 사실을 잊고. 개를 쓰다듬은 손으로 손잡이를 돌린다. 저기서 무엇이 오고 있는지 모른 채. 그것은 언제나 문밖의 일이라고 믿는다.

  • 우은주
  • 2026-10-01
진부, 겨울의 뭐랄까 봄의 그런 거 있잖아

진부, 겨울의 뭐랄까 봄의 그런 거 있잖아 박정대 말하지 않은 모든 것은 어디로 가나? 우선 담배 연기처럼 혹은 그대 한숨처럼 허공을 떠돌다 새벽녘 검은 유리창에 당도하기도 하고 떨어지는 빗방울에 젖어 풀잎의 귀에 당도할 수도 있겠지 침묵이 말없음과 손잡고 걸어가는 진부 진부라는 밤의 초원에서 너는 무슨 말을 타고 그리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는가? 외로움이 고독과 어깨동무하고 찾아들던 밥집 우리가 삼키던 밥알과 국물들 한 잔의 술이 피워 올리던 수많은 불꽃들은 또 어느 허공으로 공허로 사라져 버렸는가? 진부라는 곳에 가면 아니 진부라는 곳에 오면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만 내리는 함박눈 을 지나, 눈 그친 진부 거리를 거닐며 오고 가는 까마귀에게 너의 안부를 묻는다, 묻지 않는다

  • 박정대
  • 2026-10-01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박정대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자꾸만 목포를 향해 나아갔다 새들이 날아가 죽는 곳 새들도 세상을 뜨는 곳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등불처럼 타오르는 말을 타고 밤을 건너 자꾸만 사랑과 혁명의 시 쪽으로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겨울의 뭐랄까, 봄의 그런 거 있잖아(1)를 보았다 (1) 어떤 드라마의 제목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2)를 보았다 (2) 역시 어떤 드라마의 제목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내가 싸우듯이(3), 모든 것은 영원했다(4)를 읽었다 (3), (4) 정지돈의 소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영원 같은 건 관뒀다 영원은 단지 영원이라는 말 속에서만 영원할 뿐이어서 영원을 유랑하는 말 속에서 끝내 너를 찾아 헤맬 뿐 우리는 싸우지 않으므로 모든 것과 싸우고 영원하지 않으므로 영원과도 같은 시간 속에서 여전히 시를 쓰리라는 걸 안다 그러니 우리가 찾는 건 겨울의 뭐랄까, 첫눈의 그런 거 있잖아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유랑하는 말처럼 당도한 겨울을 보았다 포크레인이 우리의 달걀을 먹어 치우고 상한 구름들은 비행접시처럼 허공에 얼룩으로 남아 있었다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어항 앞에 앉아 하루 종일 낚시질을 했다 세상의 모든 이미지를 깨부수고 오롯이 침묵을 향해 질주할 것 옛 애인 같은 건 옛날에 남겨둘 것 다락방은 창백하고 푸른 먼지로 가득할지니 여전히 먼지를 헤치며 먼 지방으로 산골로 바닷가로 나아가는 생은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가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상습적 고독의 만찬 기후우울증 그러니 담배 한 대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회신 지연(5), 회신 불가 (5) 나하늘의 시 그러니 담배 두 대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어떡할래, 이에야스(6)를 보았다 (6) 역시 어떤 드라마의 제목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그런데 에도 막부 무사들아 머리 모양이 그게 뭐니? 그래갖고 무사할 수 있겠니? 웃으며 물어봤을 뿐 우리는 단지 심장의 파편 같은 이 세상을 애도하느니 우리가 끝내 찾아 헤맨 것은 세상의 모든 드라마로도 꿈꿀 수 없는 겨울의 뭐랄까, 첫눈의 감정의 무한 같은 거 추울수록 찬란해지는 고독 같은 거 고독이 피워 올리는 불꽃 같은 거 어쩌면 사랑과 혁명의 시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7)를 읽었다 (7) 황지우 시인의 시집, 목포에서 인문학 토크를 하는 그를 보았다 더 이상 시를 안 쓰시는가? 저렇게 안색이 좋아지다니! 생각하면서 리스본, 파리, 이스탄불에서 우리는 기침도 그만하고 세상에 침도 뱉지 말자

  • 박정대
  • 2026-10-01
중성미자

중성미자* 김지숙 버스가 정류소에 정차한다. 몇몇 사람들이 버스에 오르고 또 내린다. 차창 밖으로 한 사내가 우두커니 서 있다. 사내 얼굴에는 호수 아래 검은 돌멩이 하나가 표정처럼 얹혀 있다. 구겨진 셔츠 사이로 언뜻 보이는 오른쪽 팔뚝에는 김미자라는 이름이 붉은 장미와 함께 새겨져 있다. 사랑하는 이의 이름일까, 아무것도 지닐 수 없는 죄수가 눈으로 마음으로 사방 벽에 새긴 이름처럼 저 사내는 저 이름의 주인과 영원을 꿈꾸었을까, 김미자는 아직 살아 있고 사내가 기다리는 버스는 김미자를 향한 것일까, 혹여 영영 헤어져 다시는 볼 수 없대도 생의 마지막 석 달만은 함께 보내자 약속했을까, 흔적 없이 몸과 시간을 통과하는 영혼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허적허적 걸어 다니는 우리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통과하고, 오래된 기억의 벽도, 죽음의 벽도, 사랑이 세운 벽도 통과하는 것일까, 김미자라는 이름도 그렇게 한 사람의 몸을 떠나 저 사내의 몸과 마음을 오가고 있을까. 어떤 사내는 먼 이국의 사원 담벼락 돌 틈, 물결마저 숨죽인 초록 호수 아래 이름 하나를 묻었다. 버스에 오른 사람들은 잠시 환한 얼굴로 서성이고 내린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걸어간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듯한 사람들의 뒷모습은 투명하다. 버스가 사내를 통과하는 동안 사내는 다음 버스가 오는 쪽만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멋진 삶의 풍경마다 드리워진 모든 지나간 것들의 파수꾼처럼, 어떤 버스는 영영 도착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것처럼, * 전하를 띠지 않고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는 입자. 태양에서 날아온 수많은 중성미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몸과 지구를 흔적 없이 통과하고 있다.

  • 김지숙
  • 2026-10-01
공원의 빛

공원의 빛 김지숙 두 사람이 공원의 밤을 걷고 있네 부드러운 발걸음과 달리 성난 영혼은 일찌감치 사냥개들의 양식이 되었네 푸른 밤공기 속에서 사냥개들은 천천히 식사를 시작하고 주변으로 검은 뼈들이 쌓이는 걸 두 사람은 묵묵히 지켜보네 우리는 우리 안에 너무 많은 사람을 데리고 살고 있구나 사냥꾼은 보이지 않지만, 언제든 총을 겨눌 그에게 가져본 적 없는 부모나 형제의 친근함을 느끼기도 하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걷네 약하고 덧없는 것들이 부서지는 풍경 속에서도 어린 풀잎처럼 영원을 만져 볼 수 있기를 내가 너의 흔적이고 네가 나의 미래이기를 뜨거운 반역의 계절 한가운데서 그늘도 초록이었을 두 사람이 밤의 공원을 걷고 있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묘지를 돌보는 사람들처럼 잔풀이 머금은 물기에 발목을 적시며 그 집 앞에는 두 그루의 아름다운 나무가 있었지 나무는 싱그러운 잎을 가지고 있고 꽃은 향기로웠지 손에 닿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어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빛처럼 스며들고 달빛에 그을린 풀잎들이 끝없이 흔들리고 있네

  • 김지숙
  • 2026-10-01
발굴한 감정

발굴한 감정 김이듬 계속 출토되는 유물 때문에 나의 무덤이 열려 있다 누가 파헤친 건 아니다 오늘 나온 건 깨지지 않은 청동거울 나는 평생 셀 수 없이 거울을 보았지만 죽는 날까지 거울의 재질과 크기는커녕 거울 뒷면에 용과 소나무 전각무늬가 새겨진 줄 몰랐다 이보다 놀라운 건 영면에 든 지 사백 년 넘은 화가의 진경산수가 발견되었다는 것 집 뒷마당 정리하다가 천 년 전 보물을 찾은 것만큼 너의 무덤에서 백자 달항아리가 발굴된 것만큼 믿기지 않는 일 미심쩍어 버지니아 울프의 경우 이미 샅샅이 긁어모아 발간한 거 아니었나 그녀가 120년 전에 썼다는 미공개 소설이 올해 또 나왔다 나머지 암갈색 토기 조각을 찾지 못해서 바닥 부근 깨진 채로 수장고에 전시된 곧은 입 작은 단지 세상에나 난 직언한 적 없어요 후회할 일이 많아서 제대로 살다 죽은 것 같을 때 새날이 밝지 않은 적 없다 나는 약간의 지겨움을 느끼며 새로이 태어난다 그렇다고 새것처럼 되돌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표면을 세척하며 약간의 얼룩과 오물을 남긴다 입지름 2.3 센티미터 전체 높이 170.5 센티미터 가역성 기억 접착제는 나의 복원에 도움이 된다

  • 김이듬
  • 2026-10-01
덩굴성 문장

덩굴성 문장 김이듬 벽에 푸른 문자가 어른거린다 손가락으로 담쟁이덩굴을 걷어본다 어디서 본 구절이 적혀 있다 누군가 연미산고개길 낮은 한옥 담벼락에 흰 페인트를 칠하고 그 위에 파란색으로 널리 알려진 시 한 편을 옮겨적어 놓았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지 저 아래 빵 가게 외벽 전체가 화사한 꽃과 새 그림으로 꾸며져 있다 나는 몇 발짝 물러나 늦여름의 벽을 쳐다본다 벽에 달라붙어 자라는 담쟁이는 시가 좋아서 초록색 하트를 촘촘히 붙여놓은 것도 아니고 시가 부끄러워서 덩굴손 뻗어 문장을 가린 것도 아니겠지만 머잖아 담쟁이의 생명력이 벽을 점령할 것이다 시가 적힌 담벼락을 뒤덮을 것이다 한없이 사랑으로 번져 갔던가 내가 심은 담쟁이는 쩍쩍 흡반으로 울타리를 타고 올라갔다 나는 뿌리만큼 암흑에 살았으므로 정말 내 몸이 어둡기만 했나 반음지였다는 게 시를 향해 손을 뻗는 솔직한 잎새 나의 담쟁이가 내 육체라는 구조물의 구멍과 아치형 창문을 덮고 처마를 뒤덮었을 때 나는 환희했다 벽은 소멸하는 문장을 사랑하여 담쟁이가 자신을 삼키기를 기다렸다 아아 푹썩 주저앉으리 내 문장의 잎새는 벽에 틈새를 만들고 줄기는 배관에 균열을 내어 터뜨렸으며 구조물을 부식시켰다 사랑이여 입에 담지 못할 뿌리여 네가 나를 이겨라 너는 반양지에서 나를 차지하고 빠르고 날카롭게 번진다

  • 김이듬
  • 2026-10-01
미완성

미완성 김유자 빛이 나뭇잎들을 검게 그릴 때 움찔움찔하는 벽 나는 손을 들어 벽에 개를 만든다 개가 입 벌리자 내가 짖는다 토끼를 만든다 귀가 쫑긋거린다 새를 만든다 날개를 펴고, 새는 날아가고 온몸을 더듬어 빛은 나를 그린다 발밑으로 흘러내리는 빛의 생각 빛의 우울 빛의 넘침 검은 물감을 빛은 얼마만큼 풀어놓았나 개 개구리 코끼리들의 우리 같은 눈 코 입 없이 일렁이는 근육덩어리 같은 주름살투성이 같기도 한 점점 커지는 물체를 바라본다 사람에게서 벗어난 둥근 부분에 몇 가닥 파닥이는 게 있다

  • 김유자
  • 2026-10-01
신의 휘파람

신의 휘파람 김유자 오므린 입술 내밀며, 키스할 것처럼 산맥의 한 부분이 튿어졌다 무너진 흙더미에 깔린 심장들 아우성치는 영혼들 혀를 살짝 말고 그 위로, 숨을 내보내는 하늘의 검은 배를 갈라 쏟아진 붉고 흰 빛들 기어가는 빙하가 녹아 뒤덮은 마을은 사람과 일상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한 소절이 끝났다는 듯 사라진 사람에게 가려 붙든 손에 힘줄서는 소리 입안 가득 품었던 소리를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감정을 공중에 적는 소리 휘이익, 꿈이 당신에게서 나오려 두개골 두드리는 소리 멈춰 서서 돌아보아야 하나요? 이 세계를 떠나며 부르는 노래 듣고 있는 건가요?

  • 김유자
  • 2026-10-01
Perfect Day

Perfect Day* 공도이 손을 잡고 걸었어 계단이 사라지고 육교도 사라졌어 벽화가 사라지고 원추리가 사라지고 구내식당이 사라지고 주민들도 사라졌어 운동이 사라진 운동장에서 놀이가 사라진 놀이터에서 하염없이 하염없이 손을 잡고 걸었어 우리 같이 걷는 동안 사라지는 게 산책인 줄 알았어 슬그머니 사라지면서도 사라지는 줄 몰랐어 너는 걸었어 내가 사라진 뒤에도 혼자 걸었어 * Lou Reed는 곡을 만들 당시 약물 중독에 빠져 있었다. ‘You made me forget myself’ 같은 가사로 인해 마약에 관한 노래라는 비판을 받자 루는 2000년 인터뷰에서 직접 해명했다. “어떤 해석을 하든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진실이 아니에요. 공원에서 샹그리아를 마시고 집에 가는 얘기예요. 한 여자에 관한 노래죠. 단순해요. 말한 그대로를 의미해요.”

  • 공도이
  • 2026-10-01
옮긴이의 말

옮긴이의 말 공도이 너와 내가 찻잔의 둘레를 따라 걸을 때 그는 테이블에 놓인 찻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찻잔을. 테두리를. 싱싱한 꽃과 시들어가는 꽃이 한 줄기에 매달려 있는 장면을. 보았고. 안경 너머에서 보는 중이었고. 원반 형태로 뭉친 찻잎을 부술 때. 찻잔의 둘레를 따라. 찻잔만큼의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너와 나. 사이로. 찻잎이 날아오고. 찻잎이 쌓여가고. 찻잎 쌓인 길은 바스락대는 소리를 내고. 저기 좀 봐. 찻잔 너머로 날아가는 새를 가리키던 손……. 내가 새라면. 차라리 새였다면. 아마도 부드러울 너의 손을 낚아채 주머니 속으로 끌고 가버릴 수도 있겠지만. 찻잎이 우러나고. 방 안에 퍼져나가는 차의 향기를 맡으며. 그는 떠내려가고 있었다. 떠내려가면서 보았다. 화면 속에서 조금씩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검은 머리가 씻겨나가는 것을. 웃고 있는 백발의 노인. 줄지어 꽃다발을 안겨주던 손과 손. 꽃으로 뒤덮인 얼굴이 보이지 않고. 거기서 영상이 멈추었고. 고별 강연에서 마신 커피는 종이 맛이 났다. 서재에 넘쳐나는 종이들처럼. 불어나는 찻잎처럼. 그의 머릿속에는 왜 알고 있는지 모를 사실들이 가득했다. 어디서 읽었는지 기억나지도 않는. 알아서 어디에 쓰나 싶은 사실들. 찻잔 속에서 검은 찻잎의 영혼이 되살아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는 문득 깨달았다.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수십 년을 가르쳐놓고 알게 된 그 사실로부터 무엇을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안경에 서린 김이 눈동자를 가렸기 때문에 표정이 지워진 얼굴로 그는 차를 마신다. 너와 나 사이로. 꽃잎이. 깃털이. 날아오기도 하고. 파쇄된 종이조각이 흩날리기도 하는. 찻잔의 둘레를 따라서. 찻잔이 그린 원을 돌면서. 우리는 어느새 거대한 찻잔 속에 앉아 있었다. 빙그르르 돌아가는 찻잔의 회전 속에서. 찻잔과 찻잔의 부딪침 속에서. 나의 체온과 너의 체온이 찰랑이는 찻물과 섞이며 흔들렸기 때문에. 찰나의 회전이 멈출 때까지 우리는 얼마간 같은 온도 안에 있었다. 여기까지는 화자의 말을 옮긴 것이다. 여기서 끝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지켜보는 동안에만 화자가 발생한다는 관점에서 잠시 벗어나 조금 더 말해보기로 한다. 나는 사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실들을 많이 알고 있다. 이를테면 카멜리아 시네신스가 차 나무의 학명이라는 사실. 9년 동안 잠을 자지 않고 면벽수행 하던 승려가 자꾸 내려앉는 눈꺼풀을 뜰에 던졌는데 거기서 향기가 감도는 나무가 자랐다는 이야기. 나는 이 시를 씀으로써 염소를 만나게 되기를 기대했지만 결국 만날 수 없었다. 나는 시력이 몹시 나빠 안경을 벗으면 이 글씨들조차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만일 염소가 나타난다면 이 시가 출력될 종이를 먹어 치우도록 내버려두겠지만 이 시는 아직 화면 속에 있다. 나는 가끔 내 시의 화자들이 자기들끼리 만나기도 하는지 알고 싶다.

  • 공도이
  • 2026-10-01
공유자의 기록

공유자의 기록 이서수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가 나를 데려간 곳은 엉뚱하게도 낡은 정자 앞이었다. 아버지는 육모정이 있는 그 땅을 세 조각으로 잘라 친구들과 나누어 가졌던 사실을 내게 처음 알려주었다. 사다리꼴 모양의 땅 둘레에 소나무와 중국 단풍나무, 벚나무가 띄엄띄엄 심겨 있었다. 파란 셔츠를 입은 아이가 정자 마루 끄트머리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며 발끝으로 축구공을 굴렸다. 그 모습이 무척 편안해 보여 부근에 사는 아이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세 사람이 삼분의 일씩 갖고 있어. 그러니까 이 땅의 삼분의 일이 네 몫이라고. 아버지에게 땅이 있었는지도 몰랐기에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내게 증여할 생각이라는 말이 더욱 놀라웠다. 아버지가 다른 가정을 만들면서 우리의 관계는 소원해진 지 오래였다. 한편으론 번듯한 건물이 아니라 낡은 정자가 지어진 땅을 물려받게 된 사실이 약간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자 앞은 너른 공터였고 지도 앱을 통해 확인한 주변엔 초등학교와 파출소, 보습학원과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정자를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지으면 가치가 얼마나 오를지 궁금했다. 정자는 저대로 내버려 둬. 그건 지켜. 아버지가 내 속내를 읽은 듯이 말했다. 나는 미약하게 항의했다. 땅을 이렇게 놀리는 사람이 어딨어? 놀리는 게 아니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잠시 말이 없던 아버지가 입을 뗐다. 올해 우리가 자식들에게 땅을 증여하기로 다 같이 합의를 봤어. 왜 그런 결심들을 하셨는데? 그냥 때가 된 거지. 상념에 잠긴 표정을 짓던 아버지는 퍼뜩 정신을 차린 듯하더니 갑자기 일이 생겨 빨리 돌아가 봐야 한다고 말했다. 땅에 대한 설명이나 해명이 더는 없었다. 나는 의구심을 삼키고 정자와 나무를 한 프레임 안에 담아 사진을 찍었다. 그러곤 어색함을 적당히 감추며 아버지와 정자 앞에서 헤어졌다. 해마다 한두 번씩 오가던 안부 연락마저 뜸해지던 때였기에 서울로 함께 돌아갈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생전에 재산을 미리 처분하려는 아버지의 태도가 못내 마음에 걸렸던 나는 결국 한 통의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 혹시 어디 아파? ―건강해.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분명 건강했던 것 같고, 나는 언젠가 그 땅에 대해 아버지와 길게 얘기할 기회가 다시 있을 줄 알았다. 3년이 훌쩍 흐르고 겨울 산행을 나선 아버지가 실족사로 세상을 뜰 줄은 까맣게 모르고서. * 부고장엔 그들이 아버지의 자식으로 되어 있었다. 내 이름이 없는 온라인 부고장을 들여다보다 장례식에 가지 않을 결심을 세웠다. 그러곤 동네 성당으로 가 나름의 작별 인사를 했다. 자식에게 지은 죄가 있긴 하지만 좋은 곳으로 가시게 해달라고 두 손 모아 빌었다.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의 안식을 위해 켜둔 초를 바라보다 아버지의 봉헌초도 마련해 불을 밝혀 두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친족의 도리로 그 정도는 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새 초가 보이지 않아 나는 스스로 초가 되어 아버지 생의 일면을 조용히 밝혔다

  • 이서수
  • 2026-10-01
베일

베일 윤해서 ∴ 배달을 끊을 수 없다. 이번 달에만 12번째 같은 메뉴를 시켰다. 분리수거 배출일은 월요일이다. 월요일 18시부터 23시까지만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할 수 있다. 일주일치 쓰레기를 모아 월요일 밤에 내다 버린다. 조명을 환하게 밝힌 주차장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커다란 이케아 봉투 가득 플라스틱 용기를 들고 온 사람과 눈이 마주친다. 그 사람과 말없이 번갈아 비닐, 플라스틱, 종이, 캔을 분리 배출한다. 내가 이번 달에만 열두 개째 버리고 있는 똑같은 플라스틱 뚜껑 아래 색색의 플라스틱이 가득하다. ∴ 두 개의 점이 있다. 점을 번갈아 본다. 어떤 움직임이 점을 만들 때 점에 내려앉는 건 뭘까. 같은 크기의 점을 찍을 뿐인데. 무엇이 점과 점 사이에 차이를 만드나. ∴ 면허 갱신 안내 문자를 받았다. 최근 6개월 내 찍은 사진이 있어야 하고,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 증명사진을 찍는 일은 언제나 불편하고 어색하다. 어딘가 제출했을 최초의 증명사진을 앨범에서 발견했는데, 5살의 나는 입을 꼭 다물고 뭔가를 참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증명사진을 찍을 때마다 흑백사진 옆에 모아두었는데 조금씩 다른 사진 속 얼굴이 모두 흑백사진 속 얼굴과는 기묘하게 닮아 있다. 내가 사진관을 선택할 수 있게 된 후로는 계속 같은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었다. 몇 년 만인지 그 사이 사진관은 이사를 했다. 큰길가에서 골목 안쪽으로 이동한 것을 확인하고 찾아갔는데 이전 사진관 크기의 절반도 되지 않는 좁은 공간에 의자와 카메라가 놓여 있었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왼쪽으로 조금 갸우뚱. 이런 지시를 하던 사장님이 답답했는지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이리저리 조금씩 움직였다. 보정을 거친 사진 속 나는 거울로 매일 보던 나와 달랐다. ∴ 금을 넘는 데 몰입하던 때도 있었다. 충동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면서.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가거나 휴대전화를 없애고 오래 걷거나 새벽까지 놀이터에 앉아 있거나. 보고 싶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 토끼 머리 위에 쌓인 먼지를 털고, 알람이 울리는 것을 듣고만 있었다. 토끼는 세 마리. 접시 하나를 들자고 매끈한 토끼 셋이 두 손 모으고 있다. 예외는 있을 수 없어 사이좋게 나란히. 어떤 날 접시 위에 사과를 올리고 토끼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아래층 사람이 천장을 두드리기 시작해서 팔 아프겠다, 생각하다가. 아래층 천장 위에 웅크리고 깜빡 잠들었다. 해가 지려는지 집은 어둑하고 에어컨 바람이 서늘했다. 눈을 뜬 건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었기 때문. ∴ 통 속에 손을 집어넣는 기분. 통의 깊이를 알 수 없다. ∴ 큰 화분 2개와 작은 화분 2개가 있다. 작은 화분 중 하나에서 꽃대가 올라왔다. 이렇게 더운데. 꽃이 피었다. 역대 최대. 역대 최고. 이런 표현이 매일 반복되고 있다. 에어컨을 틀어 갇힌 공기를 식힌다. 2주 전에는 짧았던 꽃대가 일주일 만에 길어지더니 다섯 송이의 꽃이 피

  • 윤해서
  • 2026-10-01
보트 아래

보트 아래 손호영 한때 나는 얀의 말대로 집 앞을 비추는 보안카메라를 설치했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해 보곤 했다. 그가 사랑해 마지않던 햇빛, 무심히 우리 집을 침범하던 빛을 나도 결국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 도시에 뿌리내렸다면, 나의 세계는 바라던 만큼 넓어졌을까? 어쩌면 우리는 아기를 낳아 키웠거나, 혹은 결혼했을지도…… 이런 생각들은 물의 파동처럼 하나의 점으로부터 사방으로 원을 그리며 뻗어 나가곤 했다. 나는 그를 떠나며 가족 핑계를 댔다. 여기서는 영원히 가족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는 짐짓 놀라며,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나에게 너는 오래전부터 가족이었다고. 글쎄. 정말? 찰나였지만, 얀은 정말 상처받은 것처럼 보였고, 나는 승리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지난 일들을 여러 번 되감아 보면서 나는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이었는지 원점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 그의 견고한 세계에 작은 생채기라도 낼 수 있는 존재였는지를. * 암스테르담 출장에 김수오를 데려간 건 박 대표 부탁 때문이었다. 그곳에 살 때부터 눈여겨보았던 로컬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와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맺으려던 참이었다. 수 개월간 메일과 화상 회의로 대략의 조건 조율이 끝난 단계여서 큰 부담은 없었다. 현지 스튜디오와 쇼룸을 돌아보는 일정까지 포함해 4박 6일 출장 계획을 보고했는데, 박 대표가 그제야 김수오에게 시킬 만한 일을 고민해 보라고 말했다.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오 년을 살다 이 년 전쯤 귀국했다. 반년 넘게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던 내게 해외 바잉과 상품 기획을 총괄하는 차장 자리를 제안하며 손을 내밀어준 게 대학 선배인 박 대표여서, 나는 그의 지시라면 가급적 따르는 편이었다. 김수오는 박 대표 친구의 아들로 올해 스물일곱 살이었고 몇 달 전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그의 아버지는 치아 교정 전문의로 전국에 네트워크 병원이 30곳쯤 있는 치과 체인의 대표라고 했다. 잘은 몰라도 박 대표는 김수오의 아버지에게 얼마간 빚을 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불쑥 남의 사무실을 찾아와 맡겨둔 듯 자기 아들 일자리를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 그것도 정규직을, 의사라면 상식이 있는 사람일 텐데, 하고 직원들끼리 수군댔다. ─우리 아들이 올해 졸업하는데 패션을 하고 싶다네. 그러면서도 아주 당당하거나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박 대표에게 전해 들으니 그 집안은 대대로 의사였는데, 김수오가 삼수를 하고서도 의대 입시에 실패했다고 했다. 메디컬 편입을 하라고 생명공학부에 보내놨더니, 학점 관리는 뒷전에 갑자기 패션MD를 하겠다고 선언해 집안이 뒤집어졌다는 것이다. 경력직 뽑아달랬더니 낙하산 신입이 웬말이냐고 투덜대는 직원들에게 박 대표는 김수오가 비싸고 좋은 것들 많이 보고 자랐으니 감각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미감이니, 취향이니, 요즘 그런 거 없는 애들도 있어요? 내가 말했다. ─말하자면 그렇단 얘기지.

  • 손호영
  • 2026-10-01
암순응

암순응 박선우 스트레칭의 마지막 단계는 아기 자세다. 우선 바닥 매트에 두 무릎을 꿇고 발뒤꿈치에 엉덩이를 내려놓으며 앉는다. 상체를 숙이면서 두 손을 머리 위로 곧게 뻗는다. 그러면 어깨의 삼각근과 등허리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얕은 신음이 절로 나온다. 그대로 이마가 바닥에 닿을 때까지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고 또 내려가는 것. 그리하여 더는 내려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 자세를 갖춘 뒤에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속으로 하나, 둘…… 서른까지 세다 보면 몸의 뒤틀린 부위들이 바로잡히는 게 느껴진다.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에 끼워 맞춰지는 기분. 신체가 교정되는 감각은 정신 상태로도 이어진다. 머릿속이 한결 맑아지는 듯하다. 힘이 다하면 매트 위에 드러눕는다. 두 눈을 감은 채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뱉어낸다. 몸이 이완되는 감각에 집중한다. 그러면 호흡이 잦아들면서 주변의 모든 것이 서서히 멀어져감을 느낄 수 있다. 아득해지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도. 어느 순간에는 나 역시도. 스트레칭을 마친 후에는 몸을 일으켜 방문 앞으로 간다. 나는 번번이 문손잡이를 쥔 채 망설이다가 문을 열어젖힌다. 거실로 나가면 가죽 소파에 길게 누운 아버지가 보인다. 올해 일흔넷의 아버지는 한 손을 이마에 올려둔 채 나지막이 코를 골고 있다. 더는 염색을 할 수 없어 백발이 성성해진 머리카락과 고목 껍질처럼 버석하고 거무스름해진 얼굴, 움푹 파인 볼, 살집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앙상해진 팔다리로 맥없이 축 늘어져 있다. 매일 아침 나는 그 모습을 본다.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잃으며 쇠약해지는, 무시로 잠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어 헤어나질 못하는 아버지를 마주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더디게 흐르다 못해 한순간 뚝 멈춰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현실과 유리되면서 내가 아버지의 세계에, 그러니까 산 자들의 세계에서 죽어가는 자들의 세계에 휩쓸려 들어와버린 것만 같다. * “이대로면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사실 겁니다. 항암을 하시면 6개월에서 1년쯤이고요.” 혈액종양내과 허 교수는 아버지의 검사 결과를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말해주었다. 초진을 맡았던 소화기내과 전문의와 위암센터 외과의가 입에 지퍼라도 채운 양 말을 삼갔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나았고, 어쩐지 속 시원한 감정마저 들었다. 처음으로 상급종합병원 의사에게 신뢰감을 느낀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허 교수의 소견에서 새로운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전이성 위암 말기 환자의 여명’ 같은 키워드로 검색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느낀 속 시원함은 아버지가 시한부 환자임을 누군가 육성으로 선언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그동안 가족은 물론이고 지인들조차 쉬쉬해온,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그러니까 네 아버지는 얼마나 남은 거니?”―공식적으로 논할 수 있게 된 후련함 말이다. 그래, 내가 의사에게 원하던 게 바로 이런 거였어. 우리가 환자에게 도

  • 박선우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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