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모양을 보면
- 작성일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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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은 모양을 보면
정미래
여상길 씨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 새가 그냥 새인 줄로만 알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참새라거나, 아니면 그냥 어떤 새. 그런데 여상길 씨가 대뜸 직박구리네요, 했다.
“네? 직박구리요?”
“작년 봄인가. 웬 새 한 마리가 요 안으로 휙 들어오더니 안 나가고 버티더라고요.”
여상길 씨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 마우스를 딸깍거리기 시작했다. 무심코 그의 모니터를 보았는데, 바탕화면에 무언가 빠르게 불어나고 있었다. 그가 기계적으로 새 폴더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가마우지, 오목눈이, 동고비… 내 시선은 아랑곳없이 그는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한 번 더 누르고 ‘새 폴더(N)’를 클릭했다. 공교롭게도 직박구리라는 이름의 폴더가 툭 튀어나왔다.
나는 두 가지 생각에 잠겼다. 이 황량한 오피스 빌딩 안에서 그 텃새가 대체 뭘 먹고 1년 넘게 연명했나. 그리고 여상길 씨는 어떻게 그게 직박구리라는 걸 알았나. 조류학자도 아니면서. 설마 매일 저렇게 새 폴더를 만드는 것도 다 조류의 학명을 외우기 위한 학습 활동의 일환이었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그 새가 어느 층 타일 위에 배를 깔고 퍼져 있는 걸 목격했다. 영락없이 죽은 것 같았지.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명복을 빈다, 직박구리. 속으로 삼가 조의를 표하려던 찰나 녀석이 꽁지깃을 살그머니 털었다.
✹
몇 해 전, 내가 맡고 있던 슈팅 게임의 한 맵에서 뜻밖의 해프닝이 벌어진 적이 있다. 공들여 설계된 전장, 그 살풍경을 평화로이 가로지르던 비둘기. 그 사이에서 누군가 찾아낸 것이다. 지면에 내려앉은 비둘기를 밟으면 새가 공중으로 날아오른다는 사실을. 제 몸집의 몇 배나 되는 유저의 캐릭터를 등에 태우고—
버그였다. 하지만 유저들은 그걸 전략으로 삼았다. 새를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가 시야를 확보했다. 멀리 있는 적들을 탕! 탕! 신나게 쏴 죽였다. 버그가 패치된 날, 개발팀에선 그 폐허에 ‘새를 밟지 마시오!’라는 벽보를 곳곳에 붙였다. 누구에겐 빤하게 잘못된 오류가 또 누구에게 가서는 더없이 괜찮은 전술이 되었던 순간. 나는 그때 세상일이란 게 참 모호하고, 또 그래서 이상하게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경한 감각에 휩싸였더랬다.
나는 새삼스럽게 ‘오픈캠프’를 휘— 둘러보았다. 아무 일 없이 주 40시간을 버티는 것. 그것이 이곳, 오픈캠프의 최종 퀘스트였다. 열린 야영지라니. 듣기에는 그럴듯했다.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 같기도 한 게. 하지만 사실은 권고사직이 난무하는, 구조조정과 생존 사이의 막간 스테이지일 따름이었고…
오픈캠프로 발령이 난 넉 달 전에.
인사팀의 안내에 따라 변경된 자리를 향해 걸어가는 동안 가장 먼저 보인 건 누군가의 휑한 정수리였다. 포니테일로 묶인 머리카락이 그의 고갯짓에 따라 애처롭게 달랑거렸다. 보아하니 사내 네임드 여상길 씨였다. 이미 한 번 오픈캠프로 떨어졌다가 살아 돌아온 전적이 있다. 그것도 QA팀에서 게임사업1팀으로. 버그나 잡던 말단이 하루아침에 브레인이 된 셈이었으니 거슬릴 수밖에.
그가 다시 또 이리 굴러떨어지자 이런저런 뒷말이 횡행했다.
필시 지난번에 게임사업1팀장이 뒤를 봐줬을 거라 수군거렸다. 누군가는 뒷거래가 있었을 거라고 의심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비아냥거렸다. 뒷거래는 무슨. 뒷구멍이었겠지.
그런 소문에 불을 지핀 건 여상길 씨의 성별을 누구도 확실하게 단정 짓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의견은 늘 분분했다. ‘목소리는 천생 남자 아냐?’, ‘왜, 지난번에 치마 입고 왔잖아.’, ‘그래? 남자 화장실 가던데?’, ‘그럼 치마는 스칸트 패션이었나 보지.’ 소문들은 마치 비공식 패치처럼 제멋대로 덧입혀졌다.
그에 비하면 내 캐릭터는 지극히 단출한 편이었다. 8년의 회사 생활 끝에 직속 상사가 권력 다툼에서 밀려났고, 얼렁뚱땅 거기 세트로 묶여 팽을 당한 구태한 케이스. 일상이란 게 참 묘해서 그게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와장창 깨지기 전까지는. 그리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 풍경 속에서 희한하게 달라진 것들만 눈에 들었다. 내가 앉아 있는 위치 그리고 옆자리에 있는 사람. 나는 최대한 의연하게 행동하려 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의연한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애써 책상을 정리하는 척하다가, 어색한 손짓으로 마우스를 움직이다가 결국 그냥 가만히 있었다.
“지영 님이라고 했지요?” 내 이름이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몸이 굳어 꼼짝할 수 없었다. 여상길 씨가 다시 한 번 스턴을 풀듯 나지막이 말했다. “지이이여어엉님.”
회사는 수평 문화를 강조한다며 사원, 전임, 선임, 책임까지 모두 이름 뒤에 ‘님’을 붙여 호명하라 했지만 정작 본부장 이상은 예외였다. 본부장님, 이사님, 대표님—그러니까 누군가는 여전히 높고, 그래서 유난히 공을 들여야 할 사람이란 걸 아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나는 게슴츠레 눈을 맞췄다. 상대의 얼굴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다. 뭐야! 이 사람? 당황했는지 내 심경과는 다르게 입꼬리가 바짝 위로 당겨졌다.
“너무 건조하지 않아요?”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가 엉뚱한 말을 꺼냈다. “여기 층은 다른 층과 달리 공조 시스템이 좋지 않아서 겨울엔 습도가 30% 이하로 떨어져요.”
나도 모르게 입술을 문질렀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궁리할 틈도 없이 다음 질문이 이어졌다.
“기초 뭐 쓰세요?”
기초? 나는 이번에도 얼른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기초 BM? 기초 리소스 관리? 어조로 보아 그런 종류의 ‘기초’는 아닌 것 같았고…
“그냥 대충…”
내가 얼버무리자 그의 눈빛이 돌변했다.
“대충? 아, 안 돼요.” 그의 목소리는 거의 절망에 가까웠다. 그는 서랍을 뒤적여 ‘히알루론산 7중 보습 레이어링’이라고 적힌 작은 크림 샘플을 내밀었다. “이거 바르세요. 아침저녁으로.” 나의 조심스러운 거절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호했다. “아니요. 안 괜찮아요.”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힐러인가, 또라이인가. 정체를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얌전히 앉아 있지 않고 뻑하면 의자 위에 올라서던 NPC와, 툭하면 그 NPC를 끌고 와 조롱하던 유저들. 그리고 여상길 씨가 그 둘을 어떻게 녹아웃시켰는지.
당시는 게임사업1팀이 막 ‘에르시아’를 론칭한 참이었다. 개발팀이 숨만 쉬어도 버그가 불어나던 암흑기. 치명적인 버그만 쳐내기만도 바빴다. 저런 하찮은 버그까지 손볼 여력은 없는데, 흐린 눈을 하기엔 또 너무 눈에 띄고. 그런 틈에 여상길 씨가 쨘, 나타났다. 버그에다 냅다 사연을 입혀 버렸다.
그는 NPC가 서 있는 자리 바로 위층에 닭 요리 식당이 있다고 운을 뗐다. 거기 주인이 요리도 요린데 노래도 기깔나게 잘 부른다더라. 무릇 농익은 노래란 한 번 들으면 자꾸 듣고 싶어지는 법 아니더냐. 그러더니 거의 NPC에 빙의해 버렸다. 우습게도 그 뒤로는 아무도 그 NPC를 버그라고 부르지 않았다. 여상길 씨의 게시글 아래에는 벽을 건너온 피아노 연주나 환승 통로의 버스킹 같은, 저마다의 경험들이 왁자하게 이어졌다. 마치 모두가 그 세계의 주민이라도 된 것처럼. 버그를 버그 아닌 걸로 둔갑시켜 버리는 그 기세. 그러니까 그런 재주가 윗선 눈에 들었으리란 짐작을, 아주 못 할 것도 없었다.
결국 나는 크림을 받아 들었다. 괜찮다고 해도 괜찮지 않다는 것. 그게 오픈캠프 첫날, 내가 얻은 가장 확실한 정보였다. 자리에서 일어설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여상길 씨의 정수리에 눈이 갔다. 휑한 가운데에 작은 흉터가 언뜻 보였다.
그들이라고 어디 이러고 싶었겠는가마는 인사팀의 행보는 퍽 괴팍스러웠다. 물론 초장부터 비정하게 굴었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제법 싹싹했다. 여기 남아서 불확실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우리는 당신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그런 얼굴로 조건을 제시했다. 퇴사하면 몇 개월 치 월급을 주겠다며 구슬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물렁하지 않았다. 되레 점점 비장해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짜 오픈캠프가 시작됐다.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몇 자리가 비어 있었다. 어제까지 분명히 거기 누가 있었는데. 어디 갔지? 안 보이는데. 묻지 않는 게 여기서는 예의인 것처럼 느껴졌다. 정예 멤버만 남았을 때, 그러니까 어디 하나 빠질 데가 없는, 더 이상 빠지지 않는 사람들만 남았을 때, 인사팀은 아예 오픈캠프를 옮겨 버렸다. 10층 사무실 가장자리. 행사 때 쓰고 남은 홍보용품들이 쌓여 있는 자리로. 학교 앞 분식점에서나 보았을 법한 조야한 나무 책상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그런 데서 무얼 하는지는 모르지만 다들 무언가를 했다. 누가 본다면 뭘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 물어볼 만큼 다들 아주 진지한 얼굴이었다. 간혹 영 맹탕인 사람들도 있어서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요? 하고 묻기도 했다. 그런 걸 뭣하러 생각해요.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답했다. 버틸 수 있는 데까지. 그것만이 답이었다. 어느 팀에서고 누군가 업어갈 때까지. 그냥 존나 버티는 사람만 살아남는 거야. 그런 거야.
벽면 디스플레이에선 보여주기용 브이로그가 소리 없이 흘렀다. 임직원 가족 초청 행사를 위해 공들여 찍었다는, 말끔하게 보정된 얼굴들. 환한 조명 아래서 누군가 입을 달싹였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입니다’라는 자막이 떴다. 나는 내 맘대로 바꿔 읽었다. 자유도 창의도 없는 전장입니다. 화면 속 누군가는 계속해서 입만 움직였다. ‘동료들과 함께 협력할 수 있어서 좋아요.’ 정말 좋아요. 너무 좋아서 미치겠어요.
처음엔 1인 1PC라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거둬 걷어갔다. 그렇게 우리는 세 사람이 한 대의 컴퓨터를 같이 쓰게 됐다. 나는 왼쪽에 앉은 여상길 씨를 봤다. 그리고 오른쪽에 앉은 준아 씨를 봤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컴퓨터 한 대를 봤다. 나는 생각했다. 이 회사가 공유 경제를 아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혼돈! 파괴! 망가! 나는 속으로 지껄였다. 그런데—
준아 씨가 마치 들은 것처럼 말을 받았다.
“혼돈! 파괴! 망가아아아!”
오, 여기도 화석이 있었네. 나는 그제야 준아 씨를 다시 보았다. 그는 원래 영화 쪽 일을 하다 게임업계로 넘어온 늦깎이 신입이었다. 나이는 서른하나. 오픈캠프로 오기 직전 마지막 임무가 마케팅 업체 리스트업이었다나. 한 업체의 비고란에 ‘존나 잘함’이라고 코멘트를 단 그의 문서가 마케팅팀 내부에서 여전히 돌고 있으며, 뜻밖에 꽤 유용한 참고자료로 쓰이고 있단 말을 건너 건너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쨌든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오픈캠프행이라니. 운도 참 더럽게 없네. 나는 이번에도 속으로 말했다. 하지만—
여상길 씨는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부작사부작 가방에서 미니 가습기를 꺼내 책상 한 귀에 올려 두었다. 준아 씨는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빼고 재차 주변을 돌아보았다. 낡고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책상. 상판 여기저기에 붙어 있는 스티커에는 ‘2016년 캠페인’, ‘2019년 프로모션 키트’ 같이 지난 연도가 적혀 있는가 하면 또 한구석에는 인형 탈이 쓰러져 있었다. 반쯤 열린 커다란 박스 안에는 펜, 키링, 마스크 따위가 마치 좌표를 이탈한 오브젝트처럼 뒤엉켜 굴러다녔고.
그때였다. 여상길 씨가 박스 안을 뒤적이더니 어디서 많이 보았다 싶은 후드 집업을 꺼냈다. 검은색 원단에 가슴팍 로고가 박힌, 내 손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던 슈팅 게임의 경품이었다. 그는 철 지난 집업을 등 뒤로 걸치며 말했다.
“어차피 버릴 텐데요. 누구라도 쓰는 게 낫지 싶어서요.”
다음 순간, 준아 씨도 슬그머니 박스에 다가가 법랑 컵 두 개를 들고 왔다. 그중 하나를 들고는 컵 손잡이의 동그란 구멍을 통해 나와 여상길 씨를 번갈아 바라봤다.
“뭐 하시는 거예요?”
내가 묻자 준아 씨가 컵을 내리며 씩 웃었다.
“프레임 잡는 거예요. 이렇게 보니까 두 분 완전 비극의 주인공들 같고. 좋네요. 샷도 아주 칙칙하고.” 그러고는 그중 하나를 내밀며 물었다. “에르시아, 벌써 만렙 찍으셨더라고요?”
엉거주춤 컵을 받았다. 차가운 법랑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괜히 저 말에 무슨 저의가 있는 건 아닌가 의구심이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그 게임을 시작한 데는 속과 셈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게임사업1팀장한테서 연락이 왔더랬다. 아직 뭐 확정된 건 아니라고, 김칫국 마시지 말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긴 했지만.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팀장은 곧 있을 에르시아 유저 간담회에 나를 사회자로 세우려고 한다고 넌지시 운을 뗐다. 나는 그 가능성에 올라타기 위해 퇴근 후 에르시아의 세계로 꼬박꼬박 출근했다. 여전히 학연은 유효한 치트키였고, 나는 사발 가득 김칫국을 마시며 간담회 준비를 했다.
반면 여상길 씨는 순전한 재미로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세계에서도 그만의 속도로 움직였다. 포털 대신 늘 그리폰을 타는 것도 그랬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목적지에 닿을 수 있는 포털과 달리 후자는 이동 거리에 따라 실제로 수분이 걸렸다. 대체 왜 저럴까? 한번은 어물쩍 그에게 물었다. 포털을 쓰면 훨씬 빠르잖아요? 그는 나지막이 답했다.
그럼… 못 보잖아요.
0과 1로 만든 낭만. 그게 뭐라고, 그러면서도 몇 번은 그를 따라 잠자코 상공을 날았다. 높이 올라갈수록 발 아래 있는 것들이 작아 보였는데, 그 가상의 풍경이 뜻밖에 귀엽고 가상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줄도 모르고 흘려보낸 것들을 가만 상기시켜 주는 데 제법 재주가 있는지도 몰랐다.
오픈캠프 사람들이 슬금슬금 박스 곁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준아 씨가 준 노란색 법랑 컵을 내려다보았다. 컵에 그려진 캐릭터도, 손잡이에 박힌 로고도 정말이지 귀여웠다. 망한 게임의 유산이라는 걸 까맣게 잊게 할 만큼. 하지만 내 책상 위는 이미 정체 모를 텀블러와 머그컵 들로 포화 상태였다. 어차피 이것도 처치 곤란이 되겠지. 나는 그 귀여운 것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도로 박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어느새 옆에 와 있던 여상길 씨가 물었다.
“요새 봤어요?”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는 듯 갸웃거리는 나와 달리 준아 씨는 단번에 알아들은 얼굴이었다.
“아니요, 요즘 통 안 보이네요.” 준아 씨는 이곳저곳을 눈으로 훑으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길을 찾았는지도 모르죠.”
인사팀은 어느 날엔 뜬금없이 독후감을 써내라고 하더니, 또 언제는 매시 무슨 업무를 했는지 일지를 써내라며 웹페이지 링크를 띡 던져줬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육하원칙에 따라 문장을 반죽 치대듯 조몰락거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여기서 왜 이런 걸 쓰고 앉았나, 하는 데까지 닿았다. 사람들은 버썩 말라갔다.
우리 셋도 한 대뿐인 컴퓨터 앞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누구의 손도 키보드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화면에는 ‘오픈캠프 시간대별 업무 현황’이라는 제목의 페이지가 열려 있었다. 가로는 시간, 세로는 셋의 이름. 빈칸은 그냥 빈칸이 아니었다. 빈칸은 칼자루가 될 터였다. 나는 숨을 골랐다.
“9시부터 10시는 준아 님, 경쟁사 동향 리서치. 10시부터 11시는 상길 님, 차기 프로젝트 레퍼런스 수집. 이런 식으로 적당히 돌아가며 컴퓨터를 썼다 치고, 컴퓨터를 못 쓴 시간엔 모바일 게임 하면서 업데이트나 이벤트를 분석했다고 쓰죠. 어차피 우리가 진짜 무얼 했는지는 모를 테니까요.”
내가 말을 하는 내내 준아 씨는 고개를 비스듬히 꺾고 있었다.
“그죠. 모르겠죠. 그런데 모르니까 알려줘야 하는 건 아닐까요?”
“흐음.”
“말해본 적 없잖아요, 한 번도.”
“그럼 그냥 일 없다고 쓸까요.”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
“그냥…”
“……”
“우리 지금 앉아 있잖아요.”
…여기에, 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너무도 가라앉아 있어서 나는 힘이 쪽 빠졌다. 그제야 준아 씨를 바라보았다. 먼눈으로 창밖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평소 좀 당겨져 있던 입꼬리가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그사이 여상길 씨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가습기를 닦고 물을 갈았다. 하지만 내가 그의 이름 옆에 ‘차기 프로젝트 레퍼런스 수집’이라는 글자를 막 완성했을 때,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마우스를 쥔 내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쳐 올렸다. 놀라기엔 너무나 느리고 덤덤한 움직임이었다. 그는 내 손을 밀어내지 않고, 그저 가만히 마우스를 쥐어 제 쪽으로 커서를 옮겼다. 내가 썼던 글자들이 삭제되고,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10:00-11:00 / 여상길] 10층 환풍구 주변 직박구리의 행동 반경 및 생존 환경 분석. (탈출 가능 경로 검토)
“상길 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내 목소리엔 바짝 날이 서 있었다. “이게 물로 보여요?”
준아 씨가 그 문장을 지우려는 듯 다급하게 키보드 쪽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여상길 씨는 준아 씨의 팔을 가볍게 붙잡아 저지했다. 정적이 흘렀다. 컴퓨터 팬이 윙, 하고 도는 소리. 멀리 사이렌 소리. 누군가 슬리퍼를 끄는 소리. 여보세요, 하는 희미한 응답. 우리의 운명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소리들이 공백을 메웠다. 이윽고 여상길 씨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딸깍.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오후쯤 메신저 알림이 울렸다. 오픈캠프TFT 공유사항. 업무일지 작성 시 업무와 무관한 내용 기재를 지양해 달라는 짧은 안내였다. 누구를 콕 집어 언급하진 않았지만 다들 누가 새가 됐는지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런 ‘새 됨’의 분위기는 며칠 뒤 업무일지에 ‘동료 평가’ 항목이 추가되면서 점차로 더 공고해졌다. 빤한 수였지만 빤하다고 안 걸려드는 것도 아니었다. 동료에게서 개선이 필요한 점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라는 공란 앞에서,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서로를 훔쳐보기 시작했다. 준아 씨는 그 틈에서 조용히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여상길 씨는 꾸준하게 새 폴더를 지었다. 따오기, 왜가리, 나무발발이… 새 이름이 바닥난 뒤에도 폴더는 계속 늘어났다. 구김새, 낌새, 틈새. 그리고 어느새—
‘저 분이 그분이죠?’, ‘그분?’, ‘정수리…’
여상길 씨가 왜 다시 이곳 오픈캠프로 굴러떨어졌는지에 대한 모양새도 다소 흉흉해져 있었다. 그 풍문은 여상길 씨를 자기 세계가 너무 강한, 그래서 유도리도 없고 조직 생활에도 영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굳혀갔다.
전모에 비해 발단은 시시했다. 검은 머리카락이 빽빽하게 들어찬 정수리 때문이었다. 여상길 씨는 사내 브이로그에 나온 자신의 정수리를 한참 들여다봤다. 그리고 복구를 요청했다. 보정된 부분을 원래대로 돌려달라고. 처음에는 메일로, 짧고 정중하게. 그 메일이 어디까지 전달됐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답장도 오지 않았다.
결국 가게 됐다, 영상팀으로 직접.
이거요. 원상복구 안 될까요?
편집자가 눈을 깜빡였다. 어떻게요?
머리카락을 없애 주세요. 원래대로. 비어 보이게.
그 말에 다른 편집자가 의자를 돌렸다.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아, 그게 요즘 정말 바빠서요. 행사 준비에다… 어딘가에선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저거 하나 고치면 다시 또 컨펌 받고 기안 올리고 해야 돼요. 누군가 헛기침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저 모습이… 말끝이 흐려졌다. 그때 영상팀 막내 직원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근데 백이사 님 턱 밑에 있는 점은 그대로 두라고 하셨잖아요? 그것도 일종의 개성이라고.
편집실에 잠깐 정적이 흘렀다. 정적이라기보다는, 누가 무슨 말을 해야 그 정적이 끝날지 모두가 알면서 아무도 하지 않는 그런 시간이었다. 모니터 한 대에서 팬이 윙, 돌았다. 누군가 마우스를 클릭했다. 클릭만 했다. 여상길 씨는 아무도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편집자들의 얼굴을 지나 편집된 화면 너머를 향해 있었다. 그 너머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 저는 못 보여드려요. 저 꼴을 어떻게 우리 엄마, 아버지한테 보여드려요.
그제야 딸각거림이 멈췄다.
✹
어느 날, 아니 대망의 간담회가 있었던 날의 퇴근길.
그날도 한 자리가 비었다. 아무도 누가 사라졌는지 묻지 않았다. 나는 준아 씨랑 여상길 씨랑 같이 회사를 나섰다. 말없이 같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서로의 걷는 속도를 대충 맞추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게 꼭 친밀함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말을 아꼈다. 누구 하나 먼저 걸음을 늦추거나 멈추지 않는 한, 이 거리는 계속 이어질 것 같기도 했다.
“으! 오늘은 바람이 좀 차네요.”
나는 분위기를 풀 겸 말했다. 준아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상길 씨도 짧게 그러게요,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불쑥, 우리 치킨 먹고 갈래요?를 시전했다.
셋 다 잠깐 걸음을 멈췄다.
“그래요. 가요.”
내가 그렇게 바로 대답할 줄은 몰랐다는 얼굴로 준아 씨가 나를 보더니, 오오! 하고 탄성을 질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먹자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치킨의 기름 냄새와 왁자한 소음, 맥주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옆 테이블에서 누가 잔을 쾅 내려놓으며 야, 그게 말이 되냐, 하고 소리쳤다. 나는 억지로 끌어올렸던 입꼬리를 그제야 내려놓았다. 광대 언저리가 뻐근했다.
그날 낮의 유저 간담회는 완전히 ‘나가리’였다. 오래 묵은 버그들에 대한 불만이 한꺼번에 터졌고, 사회자로 무대에 올랐던 나는 분위기를 다잡는 데만도 초주검이 됐다.
네, 그 부분은 개발팀에서—
말을 잇는 순간 객석에서 야유가 날아왔다. 또 그 소리! 누군가 혀를 찼고, 매크로 돌리세요? 다른 자리에서 비웃음이 받았다. 그게 신호라도 된 듯 여기저기서 생짜를 놓았다. QA 누구예요, QA. 사장 나오라 그래, 사장. 흡사 도떼기시장이었다.
끌어올린 입꼬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만일을 대비해,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사측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게끔, 오픈캠프 사람들이 유저인 척 객석에 섞여 앉아 있었다.
이제다. 나는 낯익은 얼굴들을 훑었다.
그때 여상길 씨가 일어섰다. 일어는 났지만 자기 자신도 왜 일어났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의 몸을 중심으로 객석의 소란이 잠깐 가라앉았다가, 곧 더 빠르게 다시 차올랐다. 뭐야. 여자야, 남자야.
저기, 죄송한데, 잠깐만요.
그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목소리였다. 그래서 절반쯤은 묻혔다. 앞줄 사람들은 들은 것 같았고, 뒤쪽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었고, 누군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빠져나갔다. 단상 옆에 서 있던 스태프가 마이크를 어디로 가져가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한 발짝, 또 한 발짝 떼다가 멈췄다.
먼저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저는 사실 이 회사 사람이에요.
그 말은 들렸다. 마이크가 없는데도 또렷하게 들렸다. 두어 줄 떨어진 자리에서 준아 씨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세 번째 줄 통로 쪽 눈에 익은 얼굴 하나가 거친 손길로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제가 드릴 말씀은, 회사를 대변하는 말이 아닐 거예요. 유저인 척이 아니라 유저로서 말할 거니까.
그다음 말들은 나도 아는 이야기였다. 몇 해 전 그 비둘기. 공들여 설계한 전장을 평화롭게 가로지르던, 그 작은 새. 여상길 씨는 마치 바닷가에서 주운 조개껍데기나 반질반질하게 닳은 씨글라스를 보여 주듯, 거기에 깃든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 놓았다.
그때 저 그 게임 담당QA였거든요. 알고 있었어요. 그런 버그가 있다는 거. 그런데 그냥 모른 척하고 싶더라고요. 아무래도 좀 그래서. 현실에선 밟혀도 찍소리도 못하는데, 그 작은 새가 가만 밟히지 않고 막, 막…
목소리가 좍좍 갈라졌다. 그는 그걸 숨기지 않았다. 갈라진 자리를 그대로 두고 다음 문장으로 계속, 계속 넘어갔다.
회사 입장에서는 잘못 만든 건데, 거기서는 그게 그냥 노는 방법이 되어버렸고 그러고 보면….
과연 저런 말이 씨알이나 먹힐까 싶었는데, 듣다 보니 묘하게 말려들었다.
어떤 건 버그고. 어떤 건 그냥 사람들이 좋아하게 된 거고. 어떤 건—
박수 소리에 뒷말이 묻혔다.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다. 내가 아니라 여상길 씨를 향해서.
그때의 잔광이라도 남은 양 눈이 부셨다. 나는 괜히 눈을 깜박였다. 여상길 씨는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다 후라이드 한 마리요, 하고 작게 말했다. 종업원이 못 들었는지 다시 물었고, 그는 같은 크기로 한 번 더 말했다. 준아 씨가 그 옆에서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이요, 하고 정확히 갈음했다.
맥주가 먼저 나왔다. 준아 씨가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생존을 위하여.”
나는 짠, 하고 잔을 들었고, 여상길 씨는 말없이 잔을 맞댔다.
“상길 님은 회식 안 좋아하시죠?”
준아 씨가 물었다.
여상길 씨는 거품을 입가에 묻힌 채 네—니요, 하고 대답했다.
“네, 그럼 이건 회식이 아닌 걸로.”
준아 씨가 웃으며 말했고, 나는 웃지 않았다.
역시 간담회 이야기가 나왔다. 준아 씨는 아까 상길 님이 일어섰을 때 진짜, 하며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딴청을 피웠다. 이 자리에서 고맙다는 말을 해도 되나. 자꾸 자리를 고르게 됐다.
“누가 일어날 줄은 몰랐어요.”
결국 그렇게만 말했다. 여상길 씨의 시선이 잠깐 내 쪽으로 와 있다가 다시 잔으로 돌아갔다.
“저도요.”
“저도라니요?”
“저도 제가 일어날 줄은 몰랐어요.”
준아 씨가 그 사이로 끼어들어 그게 더 멋있죠, 하고 말했다. 계획하고 일어선 게 아니라, 일어나고 나서 일어난 줄 안 거.
치킨이 나왔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에르시아로 흘러갔다. 정확히는 최근 업데이트된 신규 던전에서 100퍼센트 확률로 발생하는 버그 이야기였다. 파티를 맺고 입장한 다섯 명이 정해진 시간 동안 모두 살아남는 게 미션이었는데, 이상하게 성공을 했음에도 던전을 빠져나가는 순간 한 명이 뻗어버렸다.
“벌써 유저들이 ‘보내미안 랩소디’라고 별칭을 붙였더라고요. 하여간에…”
말을 하고 있는데, 준아 씨가 냅다 목소리를 높였다.
“남은 네 사람 마음은 어떨까.”
“그래서 ‘보내미안’이겠죠.”, “고치겠죠, 뭐.”
여상길 씨의 말과 내 말이 겹쳐 나왔다.
“어떻게요?”
“원래 기획대로요. 미션 깼으면 다 같이 무사히 빠져나오게.”
“그걸 버그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버그가 아님 뭐로 보는데요?”
여상길 씨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닭다리는 두 개뿐이었다. 그는 그중 하나를 준아 씨 접시에, 다른 하나를 내 접시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도 한참 뒤에야 입을 뗐다.
“세계요.” 내 눈을 보고 말했다. 처음 회사에서 마주쳤을 때처럼 너무, 가까이에서.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혼자 남는 사람들이 있는 세계.”
“버그는 버그예요.” 내 접시 위의 닭다리를 그의 접시 위로 다시 옮겼다. “유저들은 명확한 걸 원해요. 내가 잘하면 살고 못하면 죽는 것.”
“지영 님도 그걸 바래요?”
대답하지 않았다. 미루는 게 다 보인다는 걸 알면서도 미뤘다. 퍽퍽한 가슴살을 골라 들고 크게 베어 물었다. 씹는 동안 옆 테이블에서 누군가 야, 그게 말이 되냐!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처음 외친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현실에선 뭐 하나 까딱 잘못하면 한 방에 주님 곁으로 가니까. 그러니 다들 짜쳐지는 것도 이해는 돼요.” 준아 씨가 손을 번쩍 들었다. “사장님, 세 잔 더.” 그러고는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근데 게임에선 목숨이 여러 개잖아요. 하나쯤 남들 위해 써버려도 되지 않나? 어차피 또 살아나는데.”
픽, 웃는 준아 씨 옆에서 나는 마른 입을 다셨다.
“유저들이 그런 감상 때문에 전투력 손실을 감수할까요?” 입을 떼고 보니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다. “5인 파티가 4인보다 효율적인데요.”
“네, 전력엔 그게 낫죠.” 여상길 씨가 양념 소스 통을 집어 들었다. 접시 위 치킨에 소스를 듬뿍 뿌렸다. 지독하게 매울 것 같은데도 아무렇지 않게 베어 물었다. 소스가 번져 벌게진 입으로 덧붙였다. “그래도, 그런 세계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요?”
맥주가 왔다. 나는 ‘알쓰’라는 것도 잊고 단번에 털어 넣었다. 식도가 뜨끔했다.
“상길 님.”
“……”
“성선설 믿죠?”
여상길 씨가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나는 피식 웃었다.
“믿네, 믿어.”
내 귀에도 비아냥처럼 들렸는데, 여상길 씨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정적이 테이블 위에 차곡차곡 쌓였다. 준아 씨는 여상길 씨에게 냅킨을 건네며 입가를 닦으라는 듯 손짓했고, 나는 가장 큰 치킨 덩이를 골라 그의 접시에 올려놓았다.
“자, 큰 거 가요.”
준아 씨가 분위기를 띄우려는 건지 그냥 취한 건지 테이블을 쿵쿵 두드렸다. 여상길 씨는 입가를 꾹꾹 눌러 닦았다. 진동에 들썩이던 치킨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새 폴더를 계속, 계속 만들면 뭐라고 나올 거 같아요?”
대답을 바라는 말 같지 않아 나는 기다렸다. 준아 씨도 숨을 죽였다.
“그만해.”
“……”
“그만해1, 그만해2, 그만해3, 그만해4.”
“…….”
“그만해야 될까요?”
“…….”
“그만해지지가 않는데.”
그 말에 진심 같은 것이 훅 끼쳐 왔다. 내가 이미 상실한 것이 무엇인지 상기시키기보다,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는 무엇인가를 더듬게 하는 쪽이었다. 나는 못 들은 척하려다 늦게, 시들하게 웃었다. 웃고 보니 그것도 썩 적당한 반응은 아닌 것 같았지만.
여상길 씨가 간담회에서 보여준 그 돌발행동이 나를 위한 선의였음을 모르지 않았다. 그 아수라장에서 그가 일어서지 않았다면 지금쯤 내 얼굴이 커뮤니티에 파다했으리란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간담회가 끝나기 무섭게 커뮤니티에는 후기 영상이 돌았다. 댓글도 빠르게 쌓이고 있었다. ‘이분 누구임 멋있다’, ‘회사 양심’ 그 아래에는 끝까지 의구심을 놓지 않는 댓글도 있었다. ‘근데 진짜 회사 사람 맞음?’
나는 그 밑에 믿는 구석이 있었겠지, 라고 달았다. 한껏 뒤틀린 심사였지만 상황은 그렇게 굴러가고 있었다. 어제까지 정수리 어쩌고 떠들던 사람들이 자꾸 여상길 씨 쪽을 힐끔거렸고. 게임사업1팀장이 친히 오픈캠프를 찾기도 했고. 한참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팀장은 결국 하는 수 없다는 듯 내게 다가왔다.
지영 님, 우리 팀은 말이야. 탱도 하고 딜도 넣고 힐도 좀 할 줄 아는, 그 뭐랄까, 전방위적 인재가 필요한데… 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세계잖아.
이리저리 속을 알 수 없는 말만 남기고 갔던 그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결국 알았다. 여차하면 유저의 허를 찌르지도, 혀에 감기지도 못한 채 한물간 사회자로 굳어질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그 미래 말고는, 아직 내가 볼 수 있는 장면이 별로 없다는 것도.
✹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고 출근했다. 실시간으로 나달나달해졌다. 점심에는 혼자 회사 근처 분식집엘 갔다. 떡볶이를 시켰고 매웠는데 꿀떡 삼키다 보니 다른 것도 같이 삼켜지는지 식당을 나설 즈음엔 에라, 하는 쪽으로 맘이 굳어졌다.
며칠 전의 일지를 다시 열었다. 이제는 사라진 게임들의 로고가 박힌 후드 집업과 에코백, 법랑 컵과 볼펜들.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들이 새로이 쓸모를 얻었던 순간. 그날의 일지였다. 박스 안을 뒤적이던 동료들의 얼굴에 오랜만에 활기가 감도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는 이게 아직도 있었어요? 하고 웃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원하는 것을 골라 집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전보다 조금은 부드러워졌다고, 나는 썼었다. 오타 두 개를 고쳤다. 빠진 마침표도 하나 찍었다. 그리고 한 줄을 더 보탰다.
여상길 님이 그 물품들을 나누어 갖는 것을 주도했다고.
회사는 그 물품들이 폐기 예정이 아니었으며 승인 없이 반출되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 행위가 엄연히 절도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동기는 묻지 않았다. 여상길 씨 외에도 준아 씨, 그리고 그날 박스에서 물건을 가져갔던 이들이 모두 불려 갔다. 후드 집업 한 벌, 에코백 하나, 컵과 볼펜 몇 자루. 그게 전부였지만 사측은 이력에 ‘회사 자산을 무단으로 유용했다’는 오명을 남기는 대신 조용히 퇴사를 하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 회유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에게는 선심 쓰듯 다른 팀으로의 발령을 내주었다. 나는 결국 게임사업1팀으로 가게 됐다.
발령 첫날 아침, 10층을 한 번 들렀다. 두고 온 게 있는 것 같아서였다. 막상 들어서니 휑뎅그렁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있던 자리에는 낡은 책상만 줄지어 있었고, 두고 온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서서히 흐려졌다. 멍하니 손만 놀리다 돌아서려는데 물품 박스 옆에 구겨진 종이들이 보였다. 이 빌딩의 층별 내부 구조도였다. 8층 창고 뒤, 9층 비상계단 천장. 누군가 빨간 색연필로 수많은 구석에 가위표를 쳐두었다. 꾹꾹 눌러쓴 글씨.
어딘가 있음. 그냥, 존나 있음.
한 장 한 장 거두어들였다. 어느 자리엔가는 동그라미가 두 번 그어져 있었다. 거기에 무엇이 있다고 준아 씨는 그렇게 확신했을까. 나는 그 종이들을 한참 들고 서 있었다.
사업팀에서의 시간은 대체로 단조로웠다. ‘보내미안 랩소디’ 버그의 조처를 논하는 회의는 기계적인 합의로 흘러갔다. 프로젝터 돌아가는 희미한 소음, 각자의 잔에서 피어오르는 허연 훈김. 팀장의 볼펜 끝이 지겹도록 규칙적으로 탁, 탁, 테이블을 두드렸다.
명확한 오류이니 당연히 수정해야 한다는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누며 테이블 위를 눈으로 훑었다. 누군가의 텀블러, 일회용 종이컵, 그리고 그 곁에 놓인 손잡이 달린 잔. 누군가 그 잔의 손잡이가 아닌 몸통을 움켜쥐고 들어 올렸다. 그 동그란 구멍이, 카메라를 놓친 것처럼 갑작스럽게 허공을 비췄다. 그렇게 우그러진 동그라미를 얼마간 보고 있었다.
“고치지 않는 건 어떨까요?”
단박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목이 바싹 말랐다.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혼자 남는 사람들이 있는 세계에 대해 말하지는 못했다. 대신 플레이어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들어보자는—서사를 부여하고, 혼자 남은 캐릭터가 차차 굳어가는 식의 이펙트를 입히고—건조한 말을 했다. 말하면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손바닥이 축축했다. 팀장의 볼펜 소리가 어느새 멈춰 있었다. 회의실이 잠깐 술렁거렸다. 팀장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그러라고 했다. 업데이트 이후 지표도 커뮤니티 반응도 좋았다. 여상길 씨가 믿었던 대로. 아니, 어쩌면 그냥 다행스럽게도.
치킨집 회동이 있던 그 밤, 우리는 편의점에서 산 캔맥주를 들고 하천을 걸었다. 준아 씨가 먼저 가고 단둘이었다. 요새는 보기 드물어진 귤색 불빛의 가등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한참을 말없이 걸었다. 가등과 가등 사이의 어두운 구간을 지날 때마다 여상길 씨의 정수리가 잠깐씩 어둠 속으로 잠겼다가, 다음 가등 아래에서 다시 환해지곤 했다.
초등학교 때였어요.
여상길 씨가 불쑥 말을 꺼냈더랬다. 나는 옆얼굴만 흘끗 보고 별다른 대꾸 없이 걸었다. 그가 무언가를 시작할 때는 받아치는 것보다 그대로 두는 편이 나았다.
좋아하던 애가 있었거든요. 반장 선거에 나왔는데. 어린 마음에 투표용지를 두 장 챙겨서 둘 다 그 애 이름을 적었어요.
캔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미지근해진 맥주가 목구멍을 천천히 넘어갔다.
당연히 금방 들통이 났죠.
여상길 씨는 거기서 말을 한참 멈췄다. 가등 하나를 지나고, 두 개를 지나도록 말이 없었다. 나도 묻지 않았다. 하천 쪽에서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갔고, 그 소리가 멀어졌다. 곧 종례가 끝난 교실에 둘만 남겨졌던 이야기로 이어졌다.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걸 알아챈 그 남자아이가 연필로 그의 정수리를 찔렀다고.
또 한참을 걸었다. 나는 그가 말을 이어주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잠시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천에 비친 가등의 그림자가 잔물결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 자리엔 다시 머리가 안 나더라고요.
그러고는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이제는 이렇게 누구한테 말할 수도 있게 됐네요.
여상길 씨는 후후 웃었다. 그 웃음에는 쓸쓸함도 후회도 무심한 자조도 없었다. 다만 지나간 시간에 대한 조용한 수긍 같은 것만이 있었을 뿐. 헤어질 때까지도 나는 끝내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여상길 씨는 손을 들어 보이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가등 아래에서 한 번, 그 사이의 어둠 속에서 한 번, 그렇게 멀어졌다.
사내 디스플레이 화면에는 여전히 여상길 씨가 나왔다.
그 별 볼 일 없는, 훤한 정수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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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01
문장웹진 소설
내 마음이야내 마음이야 이갑수 퇴근하고 싶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신나는 음악을 듣는다. 눈을 감고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린다. 졸업, 제대, 여행, 생일파티, 800만 원 복권 당첨, 첫 키스…… 아니 첫 키스는 빼자. 그리고 명상을 한다. 생각을 비우고 차분하게. 절대 조금이라도 우울해선 안 된다. 어제도 제시간에 퇴근하는 데 실패했다. 우리 회사가 정부의 근로자 지원프로그램 시범 기업 중 하나로 선정되면서 지난달부터 퇴근하기 전에 우울증 지수를 체크 한다. 보건복지부가 대학 연구소와 산학협력으로 개발했다는 ‘뉴진’이라는 우울증 측정기는 헬스장의 인바디 측정기처럼 생겼다. 악력기처럼 생긴 손잡이를 잡고 발판 위에 올라서면 우울증 지수가 100분위로 표시되는데, 우울증 지수가 50이 넘는 사람은 상담을 받으러 가야 한다. 어떤 원리로 우울증을 측정하는 건지는 모른다. 아무리 사람의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몸을 측정해서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몸을 통하지 않고는 마음을 알 방법이 없으니 둘 사이의 어떤 메커니즘을 알면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시범 사업이 끝나고 일반에 공개가 되면 측정 원리도 밝혀질 테니 기다리면 곧 알게 될 일이다. - 80.00 오늘도 실패다. 점점 더 올라가고 있었다. 첫날에는 51이었고, 그날 상담은 5분 만에 끝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신기한 체험을 하는 기분이었다. 정신과 상담을 받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 요즘 기분은 어때요? 강 박사의 첫 질문은 항상 똑같다. -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그냥 괜찮습니다. 처음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 무감각한 것도 우울증세일 수 있어요. 일단 지켜봅시다. 강 박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가 지난 한 달간 나를 지켜본 결과는 부정적일 게 분명하다. 내가 상담을 받으며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수치가 올라가고 있으니까. 정시에 퇴근하는 직원들을 부러워하며 상담실로 올라갔다. 내 앞에 대기자는 일곱 명, 네 명은 자주 보는 얼굴이고, 세 명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우울증 지수가 높아서 상담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니 당연한 거겠지만, 다들 정말 우울해 보였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내 표정이 어떨지 알 것 같았다. 상담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사이로 강 박사의 얼굴이 보였다. 이 지원프로그램은 경력형 일자리 사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은퇴한 의사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으니까. 정부 입장에서는 두 가지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좋은 정책이었다. 강 박사도 대학병원에서 정년 퇴임한 정신과 전문의다. 강 박사는 슬램덩크에 나오는 안 감독님을 닮았다. KFC의 샌더스 할아버지를 닮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흰 양복 대신 흰 가운을 입고 있다는 것 빼면 정말 똑같았다. 강 박사를 보면 치킨이 먹고 싶었다. - 요즘 기분은 어때요? 자리에 앉자마자 강 박사가 모니터의 차트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전에 없이
- 이갑수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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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버그는 세계. 우리 모두 여상길을 알거나 기억하거나 혹은 여상길이었거나.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버그를 꼭 고쳐야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야기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해본 분들이라면 한 번쯤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잘 풀어낸 작품인 것 같아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