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
- 작성일 2023-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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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를 머리에 쓴 여인
최미래
눈꺼풀 위로 햇살이 드리웠다. 나는 감은 눈 안에서 눈동자를 굴렸다. 요즘에는 낮이고 밤이고 쉽게 졸았다. 하지만 막상 작정하고 자려고 하면 깊은 수면에 들어가지도 꿈을 꾸지도 못했다. 얕고 미지근한 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아 내가 잠 속으로 향하는 어딘가에 머물고 있구나. 완전히 잠에 빠져들기까지의 시간은 참 길고 아득해. 둘러볼 풍경도 없고. 하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가만히 기다리는 기분이야. 기다린다는 건 무언가 내 앞에 당도할 때까지 버티는 것.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와 믿음을 유지하는 것. 나는 나조차도 뭔지 모르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기다림이라는 걸 하고 있다는 데서 안도한다. 걱정을 내리누르는 적당한 어둠. 좋다. 영원히 헤매도 괜찮을 만큼. 그런 생각을 멈추지 못하면서 졸음 그 자체를 누렸다. 시간을 확인하니 알람이 울리기까지 20분이 남아 있었다. 나는 이불을 만지작거리며 오후 5시라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퇴근을 앞둔 직장인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 은근슬쩍 가방을 챙기거나 퇴근 시간까지 업무를 끝내기 위해 바빠지기도 할 것이다. 몇 개월 전의 나였다면 하루의 두 번째 아침을 맞이한 사람처럼 뭐라도 하기 위해 조급해질 시간이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고 또 다른 일을 해치우기 위해 간단히 끼니를 때우고 있었을지도.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토록 아름답게 늘어지는 저녁 해를 그때는 누리지 못했고, 오후 5시는 이제 내게 서라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일 뿐이었다.
이불을 침대에 잘 개어 놓고 방과 거실을 오가면서 간단한 정리 정돈을 했다. 서라가 아침에 벗어 놓은 잠옷은 세탁 바구니에, 머리띠나 인형 같은 건 작은방에 대충 집어넣었다. 방 두 개가 딸린 아담한 집이었다. 나는 언제나 이 정도 평수의 집에서 혼자 살기를 원했다. 오후에 느지막이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시간에 쫓기지 않는 일상. 어떻게 보면 반의반 정도는 이루어진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희망사항에서 더욱 멀어졌다고도 볼 수 있었다. 이 집은 거실, 침실 할 것 없이 아기 냄새가 진동했다. 아이가 있는 집 특유의 포근하고 찌뿌둥한 냄새는 이상한 자책감을 일으켰다. 나는 완전히 깨어나기 위해 슬슬 걸으며 차가운 보리차를 꺼내 마시고 머리를 묶었다.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으는 동안 냉장고에 붙어 있는 사진 속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서라와 얼굴을 맞댄 이 여자는 아마 서라의 엄마일 것이다. 모녀는 선한 눈매와 작은 입술이 꼭 닮아 있었다. 내가 당신의 아이를 돌보고 있어요. 나는 당신 없는 이 집에서 돈을 개꿀로 벌고 있어요. 당신은 어디 있어요? 여자는 미소만 지어 보일 뿐 답이 없었다.
서라야. 안녕히 가세요, 소리 내어 말하면서 배꼽 인사 할까?
유치원 선생님은 서라를 가뿐하게 안아 버스에서 내려 주었다. 서라는 두 손을 공손하게 배 위에 얹고 허리를 숙인 뒤 내 옆에 섰다.
이모님 보셨죠? 서라가 아직도 말을 잘 안 해요.
비밀을 공유하듯 소곤거리는 선생님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아무리 봐도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얼굴로 이모님, 하며 애쓰는 게 조금 웃겼다. 선생님은 원래 별말 없이 서라를 내려 주고 돌아갔는데 몇 개월 넘도록 내가 서라를 픽업해 가자 보호자로 인식한 듯했다. 서라가 어떠한 물음에 대답하고 어떠한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는지 유심히 관찰한 뒤 알려 주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날에는 아동 발달 과정을 설명하며 평소보다 길게 떠들다가 기사님의 재촉에 겨우 말을 끊었다. 선생님과 달리 나는 서라의 침묵을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서라는 말이 적은 것이지 없는 건 아니었다. 원하는 걸 요구할 때는 정확하게 말했다. 배가 고프다거나, 특별히 보고 싶은 애니메이션이 있다거나. 또래에 비해 말이 너무 없긴 했지만. 내가 지금까지 봐 온 6, 7세 아이들은 라디오처럼 떠들었다. 물어 보지 않은 의견, 유치원에서 있었던 사소한 일화, 어제 있었던 일부터 재작년에 있었던 일, 벌레와 똥, 거울에 묻은 얼룩까지. 그에 비해 서라의 말에는 불필요한 부분이 없었다. 무엇이 필요하다는 등의 의사전달로 이루어져 단순하고 깔끔했다. 상대하기 쉬운 어린이였고 모시기 좋은 고객이었다.
서라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파 위에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익숙하게 리모컨을 조절해 유튜브를 틀었다. 인기 초등학생 유튜버가 매운 볶음 라면 먹기에 도전하고 있었다. 너도 저거 먹어 보고 싶으면 말해. 만들어 줄 수 있어. 서라는 솔깃했는지 나를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텔레비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대답은 없었다. 이 집에서 일한 지 3개월이 다 되어 가고 있었으나 서라의 반응은 우리가 처음 만난 날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처음에는 낯을 가린다고 생각했다. 안쓰러운 마음에 시키지도 않은 것들을 하며 서라의 관심을 끌었다. 7세용 퍼즐을 사오고 핫케이크를 만들었다. 유행한다는 아이돌 노래를 틀고 에어로빅도 했다. 팔다리를 어설프게 흔들면서 쉬우니 같이 추자고,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웃었지만 먹히지 않았다. 서라는 내가 춤추는 동안 같이 몸을 흔들지도 소파에 앉지도 않고 서 있었다. 생각해 보면 뭘 같이하자고 했을 때 싫다고 한 적은 없었다. 핫케이크를 그냥저냥 세 입 정도 먹고, 퍼즐을 하는 둥 마는 둥 몇 조각 맞추다가 그만두었을 뿐. 얘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일자리에 금방 적응했다. 내가 해야 하는 일과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구별하고, 서라의 침묵에 익숙해졌다. 서라는 많은 시간 텔레비전을 보았다. 행동이 차분하니 얌전한 고양이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너무 안 움직이니까 봉제 인형 같고. 배가 고프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낑낑거리듯 슬픈 얼굴을 하고 나를 부르니 강아지 같았다. 이 집에서는 귀찮은 일도, 신경에 거슬리는 일도 없었다. 나는 쉽게 돈을 벌고 그 사실에 아주 만족했다.
연기학원 시간제 강사 일은 월급을 쥐똥만큼 주었다. 나는 돈을 더 벌기 위해 지역별 맘카페에 가입해 연기과 입시 과외 게시글을 올렸다. 지역이 달라도 카페의 맘들이 원하는 건 두 종류로 같았다. 영어 과외 선생님과 베이비시터. 입시든 취미든 성인이든 아동 대상이든 영어 과외는 인기가 좋았다. 정확히 ‘영어’만 붙으면 되는 것에 가까웠다. 영어 구연동화, 영어 체육, 영어 쿠킹. 영어로 대화하기만 하면 뭘 해도 괜찮은 걸까. 그래, 괜찮겠네. 내가 생각해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취미로 할 거 영어까지 배우면 일석이조니까. 나는 영어를 못 했고 사실 취미도 없었다. 영어를 배우면서 취미도 가질 수 있는 아이들은 어떤 애들일까. 소비자에 대한 조사 없이 카페에 가입했구나. 나름 머리를 굴려 잘사는 지역 맘카페로만 골라 가입한 나 자신이 우스웠다. 그래도 수요가 있긴 했다. 과외는 아니고 놀이 시터 제안이었다. 닉네임 ‘로건맘’은 아이가 하도 소심해서 자신감이 붙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정성스럽게 답변했다. 그럼요 어머니, 아이의 자신감을 길러 주는 1대1 발성 연습이 제 전문입니다^^. 그렇게 만난 로건이는 전혀 소심한 아이가 아니었고 50평이 넘는 집구석을 샅샅이 뛰어다녔으며 내게 악당 연기를 시켰다. 나는 2시간 동안 레고를 맞으면서 아이가 제 에너지를 소진할 때까지 놀아 주었다. 그렇게 영혼을 다 털어서 2시간의 시급을 벌었다. 몇 번의 놀이 시터 경험이 쌓였을 때 시급이 아닌 월급으로 시터 문의가 들어왔다. 놀이 시터가 아니라 베이비시터를 구하기에 거절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다음날, 또다시 답장이 와 있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많이 틀린 장문의 편지에는 나를 구하는 게 맞다는 내용을 포함하여 구구절절한 사연이 쓰여 있었다.
면접 겸 처음 방문한 서라네 집은 지저분하고 불쾌한 냄새가 났다. 서라는 내복 차림으로 아침 식사 대신 과자를 먹었다. 낯선 사람이 왔는데도 소파 구석 자리에 앉아 힐긋 쳐다보기만 했다. 할머니 뒤에 숨거나 방으로 들어가기는커녕 당황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서라의 할머니는 아침부터 불러서 미안하다며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어서 와요. 지금 정신이 없어서, 아가씨가 애기 옷 입는 것만 도와줘요. 도와달라는 말만 붙었을 뿐 자연스레 잡일을 시키는 솜씨가 노련했다. 나는 침과 과자 부스러기로 범벅된 서라의 손을 닦아 주고, 세수시키고, 옷 갈아입히고, 머리카락을 빗겨 주었다. 내가 등원 준비를 담당하는 동안 할머니는 엎드려서 물걸레로 바닥을 훔쳤다. 종종 나와 서라를 훔쳐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면접 겸 실습인가. 실전 면접인가. 얼떨결에 서라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할머니는 얼음 띄운 보리차를 따라 주며 자신은 거실 바닥에 앉고, 내게 소파 자리를 권했다. 합격이구나.
내게 주어진 일은 놀이 시터와 베이비시터 그 중간 즈음에 위치해 있었다. 일은 간단했다. 오후 5시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온 후, 아이가 잠들 때까지 함께 있어 주는 것. 오후 10시에 다시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와 바통 터치를 하면 퇴근이었다. 가사일 없이 오로지 아이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돈을 벌 수 있다니. 할머니는 처음 며칠은 나와 서라와 몇 시간 정도 집에 같이 있었다. 내가 아이와 놀아 줄 동안 청소를 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내게 전화로 연락을 취하다가 이제는 연락도 잘 하지 않았다. 사람을 믿는 속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닌가. 혹은 아무나 쉽게 믿을 정도로 지쳐 있거나. 시터 문의를 위해 보내온 편지에는 서라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엄마는 없고 아빠는 외국 출장 중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집안일은 자기가 와서 할 수 있는데, 애가 도통 말이 없어서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육아와 관절염의 고달픔을 토로했다. 서라 엄마에 대해서는 한 달 정도 일했을 때 조금 더 들을 수 있었다. 시집 올 때부터 어쩌고 저쩌고 길게 이어진 이야기는 바람나서 제 자식 버리고 집 나간 여자로 요약되었다. 나는 뻔하고 충격적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편으로는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모르는 여자의 삶에 대해 떠올리다가 말았다. 할머니는 좋은 고용주였다. 서라가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지 모두 내게 일임했다. 서라는 씻긴 후에 소파에 앉혀 놓으면 몇 시간이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들었다.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돈이 생기고 시간 여유도 얻으니 숨통이 트였다. 집 안은 조용하고 누구 하나 불만이 없고 오후의 햇살은 평화로웠다.
서라네 집 시터 일은 내가 원했던 아르바이트에 딱 맞았다. 많은 액수를 받는 건 아니지만 몸도 마음도 편했다.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없었고 무엇보다 시간이 남아돌았다. 서라를 데리러 가기 전, 그리고 일을 하는 와중에도 나는 캐스팅 자리를 알아보고 구인구직 사이트를 상시 확인했다. 하릴없이 인터넷을 떠돌다가 한 배우의 인터뷰를 보기도 했다. 그 배우는 자신에게 배역이 주어지지 않자 직접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자신을 배우로 캐스팅해 연기했다. 일리 있는 방법이었다. 배역이 없으면 만들어서 나한테 주면 되지. 나는 그날부터 구인구직 사이트 뒤지던 걸 멈추고 아동극에 쓰일 이야기를 쥐어짜 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스토리 공모전에 떡하니 붙어서 상금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배우고 뭐고 인생의 다른 길이 열릴 수도. 땅속에서 숟가락으로 흙을 파내 길을 만들어 가다가 갑자기 눈앞에 스르륵 자동문처럼 통로가 뚫리며, 이 길이 네 길이로다,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기를. 나는 잘 팔리는 아동극을 검색해 줄거리를 살펴보았다. 비슷한 느낌으로 이야기를 지어내 조금 끄적이다가 전부 삭제했다. 속이 허하면 달콤한 빵을 사 먹고 서라를 데리러 갔다.
알림장에는 내일 미술 활동에 쓸 준비물을 챙겨 달라고 적혀 있었다. 나뭇가지, 낙엽, 돌멩이 등등. 이런 걸로 뭘 하려나. 나는 유튜브 방송에 정신이 팔려 있는 서라 옆에 앉았다. 거의 다 풀리다시피 한 머리카락을 정리해 다시 묶어 주었다. 준비물을 주울 겸 놀이터에 다녀와야지. 요즘 들어 서라와 함께 외출하는 일이 적어졌다. 나가지 않아야겠다고 작정한 건 아니고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서라는 오자마자 텔레비전을 켜고 나는 부엌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했다. 오후 8시가 되면 잠들어버린 서라를 깨워 씻기고 잠옷으로 갈아입힌 뒤 침대에 눕혔다. 잠든 서라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내일은 잠깐이라도 데리고 나가야지, 놀아 줘야지 생각했다. 생각만 하고 다음날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었다. 서라는 내가 머리를 묶어 줄 때부터 들떴는지 허리를 곧게 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말로 한 적은 없지만 놀이터에 다녀올 때마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한다는 걸 알았다.
서라는 비닐봉지에 온갖 것들을 주워 담았다. 놀이터와 멀리 떨어진 나무까지 뛰어가고, 벤치 아래에 기어 들어가면서. 나는 여기저기 바쁘게 쏘다니는 서라를 그네에 앉아 지켜보았다. 저녁 바람이 시원했고 아이스크림이 달았다. 이런 일상이라면 아이 엄마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얼마 전 학원 강사 일을 그만두었다. 시터 일과 스케줄이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부질없이 적은 돈을 벌며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캐스팅 기회를 기다리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같은 과 동기들은 대부분 전공과 무관한 일을 했다. 나는 그 애들의 SNS를 자주 훔쳐보았다. 스쿠버다이빙, 골프, 여행 등등. 내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나는 왜 못 했을까. 저렇게 재밌어 보이는 걸 왜 안 해봤을까. 돈이 없어서? 아무래도 그렇지. 아쉬워라. 취미도 커리어도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이 나이가 되어버렸다. 나도 진즉에 헛된 희망을 버리고 현실적인 감각을 가졌더라면 멋진 취미 한 개쯤은 가지고 있었을까. 가본 적 있는 나라의 수가 두어 개쯤 늘어났을까.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 보았다. 연기 왜 안 그만뒀니. 글쎄. 그렇게 물어 보니 할 말이 없네. 느끼긴 뭔가 느꼈어. 재밌었어. 그런데 뭐라고 할 말이 없네. 사실은 내가 연기를 하면서 무언가를 느낀다고, 그렇게 믿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이 헛것이 되어버린다고. 시간과 경험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아. 그러면 나라는 사람도 내가 살아온 시간마냥 나이만 든 헛것일까. 아마도. 발을 아무리 굴러도 그네는 일정한 높이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은 너무 달았고 금방 녹아 흘러내렸다. 나는 그네를 탄 채로 남은 아이스크림을 던져버리고 시럽이 묻은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비닐봉지에는 낙엽, 풀, 나뭇가지, 도토리, 죽은 매미 따위가 잔뜩 들어 있었다. 나는 봉지를 뒤적이던 손을 급히 빼내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새로 생긴 과일가게에 들렀다. 가게 사장님은 한 송이에 2만 원짜리 샤인머스캣을 권유했다. 애기 엄마, 2천 원 깎아 줄게. 달어 아주. 내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자 사장님은 타깃을 바꾸었다. 아가야 맛있겠지? 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먹어 볼래? 서라는 고개를 저었다. 사장님이 싫다는 서라에게 시식용 샤인머스캣 한 알을 떼어 주는 동안 핸드폰이 울렸다. 서라의 할머니였다.
아가씨, 내일 애기 아빠 올 거야.
네?
서라 아빠가 돌아온다고.
네?
할머니는 무어라 더 말했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서라의 울음소리 때문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니 서라의 손에는 커다랗고 반짝이는 샤인머스캣 한 알이 거의 얹어진 모양새로 들려 있었다. 과일가게 사장님은 당황한 얼굴로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주웠다. 비닐봉지와 그 안에 있던 지저분한 것들이 뒤엎어진 사과 바구니 위에 쏟아져 있었다. 사장님이 미처 보지 못한 사과 한 알이 차도 쪽으로 천천히 굴러갔다.
다음날, 나는 픽업 시간 20분 전 서라네 집 앞에 도착했다. 집 안에 들어가지 않고 하원 버스가 서는 도로까지 미리 나와 있었다.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 담배를 피우려다가 그만두었다. 어쩌면 서라 아빠가 집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평소 같으면 서라네 집에서 낮잠을 자다 깨어날 시간이었다. 나는 근무 시간이 시작되는 5시보다 서너 시간 전에 미리 도착해 아무도 없는 서라네 집을 누렸다. 자취방과 달리 이 집에 있으면 안정적이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내 집인 것처럼 커피를 내리고 파스타를 해 먹고, 어느 날에는 샤워 후 발가벗은 채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았다. 속이 울렁거릴 정도로 낯설었던 서라네 집 특유의 아기 냄새는 이제 나를 나른하게 만들었다. 거실 소파, 작은방 바닥, 안방 침대 할 것 없이 아무데나 누워 있으면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이제 서라 아빠가 왔으니 이 집을 마음대로 쓰던 것도 끝이었다. 서라에게 한글도 가르치고 그림도 그리면서 재미있게 놀아 주겠다고 할머니에게 약속했는데 지켜진 게 거의 없었다. 사실상 같은 공간에만 있었지 서라를 방치한 것과 다름없지 않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서라 아빠는 한 번에 눈치 챌지도 몰랐다. 여태껏 말도 잘 안 하던 서라가 아빠를 보고 뛰어가 울기라도 한다면. 서라 아빠는 어떤 사람일까. 바람나서 제 자식 버리고 집 나간 여자의 남편은.
놀이터에 다녀오고, 사과와 미트볼을 먹을 동안에도 서라 아빠는 오지 않았다. 얼마나 뛰어놀았던지 서라는 씻자마자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잠들어버렸다. 나는 서라를 침실에 눕힌 다음 방과 거실을 깨끗하게 정리했다. 원래는 하지 않았던 설거지마저 끝냈다. 서라 아빠는 밤 10시 반에 들어왔다. 멀끔한 정장 차림으로 죄송하다며 쇼핑백을 건넸다.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홍차 브랜드 로고가 박혀 있었다. 서라 아빠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꽤 괜찮았다. 나를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었으며 결혼 유무 등 개인적인 질문은 일절 하지 않았다. 가사일보다는 아이와 잘 놀아 줄 수 있는 분으로 찾았는데 잘 안 구해지더라고요. 한참 고민했는데 다행히 선생님이 오셔서 한시름 놓았어요. 정말 감사해요. 서라 아빠는 불편하거나 힘든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스스럼없이 자신의 신용 카드를 건네주었다. 영수증 안 주셔도 돼요. 금액 신경 쓰지 마시고 서라 간식이나 준비물 등 필요한 거 있을 때 이걸로 결제하세요. 선생님 커피랑 간식도 사 드시고요. 나는 군말 없이 카드를 받았다. 안 그래도 어제 과일 가게에서 엎어진 사과 한 바구니를 내 돈으로 산 뒤, 할머니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그냥 입 다물고 있던 차였다. 서라 아빠는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주셨던 것과 똑같이 해주면 된다고 했다. 들어 보니 할머니가 해왔던 걸 서라 아빠가 하게 된 것 외에 정말로 바뀐 게 없었다. 나는 내 고용주가 바뀐 것이 만족스러웠다. 옷차림과 말투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서라 아빠는 상식적이고 철저했다. 유치원 전달사항을 논의하고, 근무 시간과 급여일을 정확하게 지킬 것 같았다. 서라 아빠는 퇴근 시간보다 늦게까지 붙잡고 있었다며 오만 원 권을 꺼냈다. 나는 택시에 탄 후 시간을 확인했다. 겨우 1시간이 지나 있었다. 야간 근무, 추가 근무, 교통비를 다 따져 보아도 훨씬 이득이었다.
*
가을이 되니 놀이터에 나오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서라는 아빠가 온 후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원체 말이 없던 애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온통 아빠와 관련된 얘기였다. 시답지 않은 장난에 소리 내어 웃고 놀이터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색칠공부 책과 한글공부 교재를 사왔다. 되도록 텔레비전을 보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무얼 했느냐고 서라 아빠가 직접 물어 온 적은 없었지만, 내가 이렇게 일을 잘하고 있다는 걸 은근하게 티내고 싶었다. 시큰둥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서라는 내가 하자는 대로 잘 따라 주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내 손을 가져다 자기 뺨 위에 올렸다. 볼이 너무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서라가 고작 유치원생에 지나지 않는 아이라는 게 피부로 와 닿았다. 이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서라는 아빠와 내게 어른의 도움을 받고, 나는 받는 돈에 걸맞은 일을 하고. 모든 게 좋은 쪽으로 흘러갔다. 가끔 서라의 아빠와 가볍게 맥주를 먹을 때도 있었다. 서라 아빠는 생각했던 것보다 유쾌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서라가 유치원에서 저녁도 먹고 오니까 할 게 별로 없을 것 같았는데 빨래를 널다가 소파에서 곯아떨어진 얘기, 아침에 등원시키고 출근하면 정신이 없어서 커피를 꼭 먹어야 한다는 얘기, 그래도 일상에 적응해 가는 이야기.
등원할 때 보니까 애들이 머리를 다 예쁘게 묶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검색해서 어찌 따라 해봤는데 서라가 갑자기 우는 거예요. 제가 너무 세게 잡아서 아팠나 봐요. 다 묶고 앞모습을 보니까 눈매가 바짝 당겨 올라가 있더라고요. 쉬워 보였는데 직접 하니 영 어렵네요.
결국 머리끈 대신 머리띠를 잔뜩 샀다면서 서라 아빠는 머쓱하게 웃었다. 긴장이 풀리고 마음의 벽이 조금 허물어진 사람의 진짜 미소였다. 열심히 애를 쓰며 살고 있구나. 나는 서라의 변화된 모습, 유치원 선생님에게 들은 말 따위를 열심히 전했다. 육아에 진정으로 참여하는 기분이 들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던데, 게다가 나는 돈 받고 일하는 거니까 서라에게 더 신경을 써주어야지. 어쩌면 내 언행이 서라의 인생에 많은 부분 영향을 끼칠지도 몰랐다. 그런 생각을 하니까 취기와 함께 왠지 모를 책임감이 올라왔다. 서라의 아빠는 내 모든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두 눈에 총기가 돌았고 적당한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지막 한 모금 남은 맥주를 마시기 위해 목을 뒤로 젖힐 때 냉장고에 붙어 있는 사진 속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마다 나도 모르게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서라 아버님도 나도 당신이 두고 간 서라를 열성적으로 돌보고 있답니다. 단단하고 다정한 가족이에요. 본인 인생이지만요, 아이도 있는데 외도는 좀 그렇죠. 내가 속으로 뭐라고 떠들든 여자는 은근한 미소뿐이었다.
어느 날에는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서라 아빠가 초저녁에 퇴근한 날이었다. 장을 보았는지 양손에 마트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서라 아빠가 카레를 만들 동안 나는 서라를 씻겼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고 손발이 척척 맞았다. 집을 나서는 내게 서라 아빠는 별건 아니라며 작은 쇼핑백을 건넸다. 버스에 올라 뜯어 본 쇼핑백 안에는 검은색 머리띠와 함께 작은 쪽지가 들어 있었다. 항상 감사합니다. 오래도록 함께해 주세요.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머리띠를 착용했다. 나의 노고를, 내가 이 집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인정받은 것 같았다. 나 또한 쪽지의 내용과 같은 생각이었다. 오래도록 서라의 집에서 오후의 시간을 누리며 일하고 싶었다.
술집에 도착하니 이미 비워진 도쿠리가 테이블 위에 줄줄이 늘어져 있었다. 축제 때 즉흥 연기하다가 대사를 저는 바람에 개망신당했다는 이야기가 오가는 걸 보니 3번 트랙이 한창이었다. 누가 청첩장을 꺼내거나 뜻밖의 이슈를 내보이지 않는 이상 술자리 레퍼토리는 항상 똑같았다. 트랙 1. 연기과 내 군기 문화가 얼마나 역겨웠는지, 2. 연기과 내 연애사가 얼마나 복잡했는지, 3. 축제와 비리, 4. 직업 한탄과 자산 비교를 통한 현실 자각 타임.
친구들은 서로를 보며 자기 자신을 위로했다. 이렇게 엉망으로 사는 애도 있으니까 나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야. 그런 눈빛으로 서로의 지치고 서글픈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고, 술의 힘을 빌려 장난처럼 그 말을 내뱉기도 했다. 누가 누가 더 못났는지 겨루다가 그래도 쟤보다는 내가 낫다는 식이었다. 얘들은 나이를 먹어도 왜 이렇게 재밌고 못났고 웃기고 징그러운데 사랑스러울까. 술자리가 끝나면 다음번엔 나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나는 매번 이 술자리에 끼었다. 내가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사는지 자랑할 수 있는 자리는 여기밖에 없었다. 다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열심히 살고 있구나. 걱정도 많고 불만족스러운 채로. 다들 그런 거구나.
친구들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많은 양의 술을 급하게 집어넣으니 몸에 힘이 풀리고 주변 소리가 흐리멍덩하게 들려왔다. 대학생 때 얘기에서 양동이를 빼면 안 되지. 맞지. 양동이는 별 같잖은 선배들이 기강을 잡겠다며 1학년들에게 강제로 씌웠던 거였다. 친구들은 양동이 얘기를 하며 각종 욕설을 남발했다. 나도 그 양동이를 기억했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손으로 직접 양동이를 가져와 머리에 썼다. 발음 연습을 위해서였다. 양동이를 뒤집어쓴 채로 말하면 자기 목소리가 잘 들려서 발음을 고칠 수 있어. 하지만 선배들의 말과 달리 양동이 안은 목소리가 울려서 발음이 잘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양동이 안에 고인 목소리가 그대로 귓속에 들어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도 나는 양동이를 벗지 않았다. 선배들한테 잘 보여서 좋은 배역을 따내고 싶었다. 이것도 노력에 포함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 가라앉으며 오히려 조금 편해진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양동이를 벗지 않을 수 있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열심히 양동이를 뒤집어쓴 채 발음 연습을 하고, 대사도 치고,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그렇게 오래도록 쓰고 있던 양동이를 벗었을 때,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나였다.
야 야, 얘 요새 돈 좀 버네. 페레가모 머리띠 뭐야.
4번 트랙이 무르익어 갈 시점이었다. 순식간에 내 머리띠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친구들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닌데 왜 오바야. 아니 원래 이런 거 안 하던 애가 하니까 요새 팔자가 좀 나아졌나 싶은 거지. 너 사귀는 사람 생겼어? 드디어 다른 데 취직한 거야? 너 뭐 어디 캐스팅 됐구나? 나는 쏟아지는 질문 속에서 머리띠를 슬쩍 만져 보았다. 왜일까. 시터 일을 한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이제 연기 쪽은 쳐다보지 않기로 마음먹었고, 강사 일은 그만두고 새로운 적성을 찾으며 아르바이트를 한다고만 했다. 친구들은 내가 연기를 그만둔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우리는 몰라도 너는 계속할 줄 알았어. 네가 우리 학번에서 제일 연기를 좋아했으니까. 좋아해. 좋아해서 빛이 바랜 걸 버리지도 못하고 이렇게 살고 있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내가 무슨 역할들을 지나왔는지, 얼마나 지쳤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친구들이 연기과를 졸업한 후 각자의 업을 찾을 때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내가 모르는 것처럼. 술자리는 언제나와 같이 돈벌이를 한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다들 나같이 사는 애도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는 것 같았다.
나는 내 몫으로 주어진 흙덩어리를 의미 없이 주무르며 옆자리 가족을 몰래 쳐다보았다. 엄마로 보이는 여자는 샐러드 그릇을 만들기 위해 밑판을 큼직하게 깔고 찰흙 테두리를 깔끔하게 오려냈다. 그러면서도 아이를 살뜰히 챙겼다. 하트 모양으로 만들겠다는 아이의 말에 웃음을 지어 보이고, 직접 밑판을 하트 모양으로 만들어 주었다. 아이를 향한 레이더가 따로 달린 것처럼 작은 요소조차 놓치지 않았다. 저렇게 하는 거구나. 나는 서라의 옷소매를 걷어 주고 흙덩이를 밀대로 슥슥 밀어 그릇 밑판을 만들어 주었다. 교육을 위해 서라에게 직접 밀어 보라는 권유도 잊지 않았다. 서라는 즐거워 보였다. 가래떡처럼 길게 흙가래를 만들어 밑판 둘레에 쌓아올렸다. 나는 내 그릇을 만들면서 서라에게 주의를 기울였다. 서라가 올린 흙가래가 무너지지 않도록 중간중간 매만져 주었다. 흙가래를 보고 지렁이 같다니, 똥 같다니 할 때마다 서라가 자지러지듯 웃으며 내게 몸을 기댔다. 제법 모녀 같았다. 엄마가 너무 잘하셔서 제가 할 게 없네요. 도예 선생님이 지나갈 때마다 서라 아빠는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이 정도면 밉보였던 게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옹기마을에 굳이 함께 온 건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원래 약속한 것과 다른 근무이니 오늘 일한 급여를 톡톡히 쳐주겠다는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내 행동에 대한 만회가 필요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다시 오후 시간대 서라의 집을 누렸다. 점심을 먹고 일찍 가서 마치 내 집인 듯 쉬었다. 커피를 내려 먹고 누워 있으면 잠에 들 듯 말 듯 노곤한 기분이 몰려왔다. 친구들과 만난 이후 괜히 사람들의 시선이 의식되고 머리가 복잡해져 어딜 가도 마음이 불편했다. 직장이 없어 보이려나 싶어 오피스룩을 여러 벌 사 입었다. 직장을 일찍 마치고 아이를 데리러 오는 젊은 엄마 같아 보이지 않을까. 안방 침대에 널브러져 있을 때 도어 록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급히 일어났지만 안방 문턱에서 서라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다른 일 하시다가 픽업 시간에 딱 맞춰서 오시는 줄 알았어요. 선생님, 미리 들어와 있는 건 괜찮은데 거실에 계셔 주세요. 서라 아빠는 놀라지 않은 척 담담하게 말했다. 얼굴에는 이게 무슨 황당한 일인가 싶은 냉소가 서려 있었다.
마지막 이유는 서라 아빠의 눈물 때문이었다. 며칠 전, 이미 술에 취한 상태로 들어온 서라 아빠는 내가 보여준 유치원 가정통신문을 보고 눈물을 보였다. 가정의 체험학습 기회 제공을 위하여 가을방학을 운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자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는 원아 등 가정 사정으로 유치원에 등원을 희망하는 분은 아래 희망서를 작성하시어 유치원으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위탁 희망서를 펼칠 때는 이미 눈물을 두 방울 떨어뜨린 뒤였다. 나는 얼른 휴지를 가져다 서라 아빠에게 건넸다. 죄송해요. 제가 서라한테 미안해서 그래요. 잘해 보려고 하는데 힘드네요.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술 처먹고 감정이 차올랐다고 여기기에는 몇 가지 이슈가 있긴 했다. 서라 아빠는 서라의 긴 머리카락이 감당할 수 없이 엉키자, 서라의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서라는 이틀 동안 울었다. 치과에서 서라의 유치가 온통 썩었다고 검진을 받은 바로 다음날이었다. 집 또한 하루가 다르게 지저분해졌다. 서라 아빠는 소리 내지 않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 제때 다듬지 못한 머리카락이 안쓰럽게 뻗쳐 있었다.
애기 엄마가 죽은 게 아직도 실감 안 날 때가 있어요.
네?
서라 아빠의 말에 따르면 서라 엄마는 바람나서 집을 나간 게 아니라 안방에서 잠을 자다가 죽었다. 서라네 집 곳곳에 남아 있는 몇 벌의 여성복과 여성용 스킨케어가 떠올랐다. 세수를 한 뒤 몇 번 몰래 사용한 적도 있었다. 나는 서라 아빠의 말과 할머니 말 중에 무얼 믿어야 할지 모르겠고, 사실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눈가를 매만지며 육아와 살림에 대해 더듬더듬 말하는 서라 아빠는 굉장히 지쳐 보였다. 잠을 자다가 하룻밤 만에 갑자기 죽어버린 여자의 딱한 남편이 내 앞에서 울고 있었다.
다 만들어진 작품은 굽고 말리는 과정을 지나 한 달 후에 배송 받을 수 있었다. 나는 밥그릇을 만들었다. 내 밥그릇은 내가 잘 챙기고 살자, 굶고 다니지 말자는 다짐과 포부였다. 서라 아빠는 작은 접시를 만들었다. 높이가 낮고 묵직한 것이 재떨이 외에는 쓸모가 없어 보였다. 서라는 몇 번이나 뭉개고 다시 만들기를 반복하더니 작고 오목한 간장 종지 같은 걸 만들었다. 뭐냐는 물음에 서라는 마을이라고 답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뭐가 있긴 했다. 인간인지 동물인지 알아볼 수는 없었다. 새끼손톱만 한 찰흙 덩어리 몇 개가 서라의 마을에 애매하게 놓여 있었다. 도예 선생님은 이런 장식 같은 건 굽고 배송되는 과정에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몇 번이나 말했으나, 나는 그냥 이대로 해달라고 했다. 마을이라는데 누가 살긴 살아야죠.
옹기 마을에서 나는 어딜 가도 애기 엄마였다. 서라 아빠는 내가 잘못된 호칭으로 불려도 정정하지 않고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오늘따라 서라는 내게 어리광을 부리며 몸을 밀착했다. 옹기 체험을 할 때도, 간식을 먹을 때도 옆에 딱 붙어 허리를 껴안거나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렸다. 오랜만에 놀러 나와 즐거운 것 같았다. 나는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서라가 내게 마음의 문을 더 열었나 보다 하고 들뜨거나 두근거렸을 텐데. 이 상황이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건 우리가 가짜 가족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돈을 받고 가짜 엄마 역할을 수행하러 왔다는 걸 잊지 않아야 했다. 나는 지금 놀면서 돈을 벌고 있다. 단막극에서조차 주연을 맡아 본 적 없는데, 여기서는 누구보다 중요한 역할을 맡아서 돈을 개꿀로 벌고 있다. 다짐을 몇 번 되새기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항아리에 재워 숙성시켰다는 양념 갈비 맛이 좋았다. 서라 아빠는 양념이 타지 않도록 고기를 잘 구웠다. 서라는 작은 손으로 쌈을 싸서 아빠 입에 한 번, 내 입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넣어 주었다. 진짜 엄마가 살아 있었을 때도 서라는 쌈을 싸서 엄마의 입안에 넣어 준 적이 있을까. 서라는 왜 엄마 이야기를 내게 단 한 번도 먼저 꺼내지 않는 걸까. 나한테 몸을 기대고 부비는 서라는 그제야 제 나이에 맞는 아이 같았다. 주변에 관심이 하나도 없어 보였는데 오늘은 날아가는 새, 굴러가는 쓰레기마저 골똘히 바라보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어쩌면 서라는 그동안 자신이 만든 쌈을 먹어 줄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몰랐다. 이제 내가 겨우 그러한 사람에 가까워졌고, 정말 서라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느껴질 때마다 나는 거북했다.
마을을 돌며 평생 볼 항아리는 다 본 것 같았다. 서라 아빠는 항아리를 위로 높이 쌓아 만든 조형물 앞에 서라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동안 항아리에 대한 설명이 적힌 안내문을 읽었다. ‘전통 항아리는 도자기와 달리 아름다움으로 인한 소장 가치가 없습니다. 음식 보존 및 발효가 목적이기 때문이죠. 숨구멍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도자기처럼 높은 온도에서 굽지 않아요. 그래서 쉽게 부서지고 낡아 균열이 생기며,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옛날에 만들어진 항아리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여 수명이 다 된 낡은 항아리를 구입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항아리는 사람이랑 비슷한 것 같았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점도 그렇고 사용기한이 있다는 점도 그랬다. 효력이 끝나버린 지도 모르고 옥이야 금이야 아끼면 쓸모없는 게 되어버리는구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에는 효력이 끝나고 장식으로 쓰이는 항아리가 여기저기 깔려 있었다. 서라 아빠는 신기하게 생긴 항아리마다 서라한테 옆에 서 보라고 했다. 왜인지 이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여기저기 구멍이 숭숭 뚫린 거대한 항아리 앞에서 서라와 함께 사진이 찍혔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서라는 칭얼거리다가 내 품안에서 잠들었다. 나는 무거운 쌀 포대를 몇 시간 내내 안고 있는 것 같았다. 팔다리가 저릴 때마다 조금씩 몸을 뒤틀어 자세를 바꿨다. 어린아이는 잠들면 몸이 더 뜨거워지는 걸까. 서라와 밀착하고 있던 부위에 열과 땀이 올랐다. 창밖으로 익숙한 동네가 보였다. 소변을 누고 싶었고 미지근한 물로 샤워한 뒤 팔다리를 주무르고 싶었다. 벨소리가 울리자 서라 아빠는 서라가 깨지 않도록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 반말을 하는 걸로 보아 친구인 듯했다. 룸미러를 통해 몇 번이나 서라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서라 아빠는 잠든 서라를 안고, 나는 가방과 서라의 겉옷을 들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어떻게 거절의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했다. 적당한 핑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예전에 맥주 먹으며 대화하던 중 내가 혼자 자취를 한다는 것을 밝힌 적이 있었다. 그러니 외박을 금지하는 부모도, 집에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는 걸 서라 아빠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서라 아빠는 급한 일이 생겼는데 혹시 오늘 집에서 자고 가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나는 네? 하고 되물었을 뿐 의사를 밝히지 못했다. 서라 아빠가 서라를 침대에 눕히고 집을 나서기 전까지 자고 갈 수는 없다고 확실히 말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왜 이 제안을 꺼리는 걸까. 위험해서? 상식적이지 않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걸로 돈을 벌 수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하룻밤 정도야 서라네 집에서 자는 게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미 오랜 시간 아무도 없는 서라네를 마치 내 집처럼 누려 왔지 않나. 이것도 일에 포함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 가라앉으며 오히려 조금 편해진 기분도 들었다.
선생님, 아무거나 다 마음대로 쓰셔도 돼요. 댁이라고 생각하시고 편하게 쉬세요. 아무리 잠들었다고 해도 애를 혼자 두고 나갈 수는 없었는데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서라 아빠의 말과 달리 나는 이 집을 정말 내 집인 것처럼 생각할 수도, 편히 쉴 수도 없었다.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씻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상태로 서라 옆에 누웠다. 고소하고 포근한 아기의 땀 냄새. 그리고 이불 침구에 배어 있는 서라네 집 특유의 냄새가 났다. 상황이 달라져서일까, 어정쩡한 차림으로 누웠기 때문일까. 불편하고 낯설었다. 침실이 아니라 부엌, 작은방 등 어디에 가도 그랬다. 나는 뜨거운 커피를 내린 뒤 조명등을 전부 끄고 소파에 앉았다. 집 안은 어둠에 잠겼지만 창으로 들어오는 가로등의 불빛 때문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새까맣지는 않았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씩 입에 머금고 있다가 천천히 삼켰다. 내 안에서 무언가 새어 나오고 있고, 나는 그 사실을 바꾸거나 돌이킬 수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뭘까. 불쾌함? 슬픔? 잘못되어 가는 조짐? 정확하게 짚이는 것이 없었다. 비슷한 기분을 느껴 본 적이 있긴 했다.
아동극을 하던 시절 나는 두꺼비였다. 콩쥐가 팥쥐 엄마에게 구박받는 동안 나는 밑 빠진 독을 등으로 막았다. 펠트지로 만든 항아리 아래쪽에 웅크린 채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그런 채로 기다리다 보면, 눈에 띄지 않아도 혼자 열심히 기다림을 실천하다 보면, 나는 내 인생에 뚫린 구멍을 막고 두꺼비가 아니라 다른 배역도 맡을 수 있겠지. 밑 빠진 독에서 물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막는 일은 어깨와 등이 뻐근했지만 할 만했다. 애써서 무언가를 해내고 있는 내 모습이 기특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오래도록 막고 있던 항아리에서 엉덩이를 떼었을 때, 무언가 쏟아지는 일은 없었다. 두꺼비 역할을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살다가 갑자기 그 사절의 내가 떠올랐다. 좋다고, 나중에 도움이 될 거라고 노력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취해 나는 내가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막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날 이후 나는 서라네서 살다시피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등원 준비를 해주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그런 날에는 서라를 버스에 태워 보낸 후 빵집에 들러서 갓 나온 식빵을 사왔다. 소파에 누워 빵을 찢어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낮잠에 들었다가 픽업 시간에 맞추어 서라를 데리러 나갔다. 설거지, 정리 정돈, 청소기 돌리기 정도의 간단한 가사일도 도맡았다. 돈을 더 준다면야 나는 좋았다. 서라 아빠는 점점 더 자주 늦게 들어왔다. 퇴근 시간인 밤 10시를 넘기는 건 십상이었다. 자정을 한참 지나 새벽 2, 3시에 들어올 때도 있었다. 야간 수당에 택시비를 받으니 나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늦은 시간까지 있으면서 새로 발견한 것은 서라의 수면 습관이었다. 서라는 깊은 잠에 들었다가도 불시에 울면서 깨어났다. 얼마나 처절하게 우는지 가쁜 호흡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괜찮아 언니 여기 있어. 그럴 때마다 침실의 어둠 속에서 서라를 안아 들고 거실로 나왔다. 서라는 부신 눈을 애써 뜨고 내 얼굴을 확인했다. 잠을 자다 일어난 몸은 뜨거웠고 머리카락이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서라네서 밤을 보냈던 날이 최고 기록이었다. 서라는 그날 총 4번 잠에서 깨어나 울었다. 울면서 내 목을 껴안은 채 가지 말라고 했다. 엄마나 아빠 등 부르는 대상은 없었다. 몇 번이고 가지 말라고만 했다.
옹기 체험 때 만들었던 그릇은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도착했다. 도예 선생님의 말처럼 구울 때 다 떨어진 모양인지 서라의 마을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없는 서라의 마을에 홍시, 떡, 초코파이 같은 간식을 담아 주었다. 서라는 한시도 내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놀이터에 가자거나 같이 그림을 그리자는 등 요구사항이 늘었다.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오른쪽 허벅지를 껴안고 가만히 서 있었다. 다른 일을 할 때도 졸졸 따라다니다가 결국 청소기에 부딪혀 넘어졌다. 서라는 아프지 않다며 웃었지만 무릎에는 멍이 들었다. 이제 정말 내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구나. 기쁘기보다는 안쓰러웠고 동시에 찝찝했다. 나는 언제까지고 시터로 살 수는 없었다. 며칠 전 친구에게 일자리 제안을 받았다. 공연 기획 보조 및 마케팅 업무였다. 저번 술자리에서 너도 딱하고 나도 딱하고 우리 모두 딱한 것으로 마무리된 줄 알았는데, 내가 제일 딱하긴 했던 모양이었다. 보조라는 걸 보니 유망한 직종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 일은 경력이 쌓이고 커리어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친구가 말한 회사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아야 했다. 나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다시 만들었다. 유튜브를 틀어 주었을 때서야 서라는 소파에 혼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냉장고에는 이전에 있던 사진이 사라지고 새로운 사진이 붙었다. 옹기 마을에서 서라와 내가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굳이 인화해서 냉장고에 붙여 놓은 이유는 뭘까. 별 상관은 없었지만 냉장고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사진 속 내 표정이 너무나 부자연스러워 헛웃음이 나왔다. 그전에 붙어 있던 사진 속 여자는 서라의 엄마가 아니었다. 아닐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 사실을 내 사진이 붙기 전 이미 알고 있었다. 서라를 재우고 새벽까지 서라 아빠를 기다리던 어느 날에 갑자기 냉장고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도. 그리고 사진 속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여자가 눈으로 말했다. 자기는 서라의 엄마가 아니라고. 아마도 내가 오기 전의 시터겠지. 그래요. 당신은 서라의 엄마가 아니네요. 그런데 왜 웃고 있어요. 당신 왜 웃어요. 어설프고 앳된 여자는 아무런 대답 없이 웃어 보이기만 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해가 빠르게 저물었다. 바람이 너무 차서 놀이터에 가는 것도 그만두었다. 서라는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조금 더 늘었고 사위가 금방 캄캄해지니 잠드는 시간이 더 앞당겨졌다. 서라가 잠들면 나와 서라 아빠는 늦은 저녁 겸 반주를 했다. 내가 담배 피우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괜찮다며 함께 피우자고 담배를 권하기도 했다. 나는 웬만하면 거절했지만 술을 많이 먹은 날에는 서라 아빠와 비좁은 베란다에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웠다. 옹기 체험 때 만든 서라 아빠의 그릇이 정말 재떨이로 사용되고 있었다. 서라도, 서라 아빠도 참 잘 쓰네. 나는 내가 만든 밥그릇을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겨울 음식과 술 담배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서라 아빠는 종종 어쩌면 꽤 자주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서라 엄마에 관련한 이야기를 할 때, 나의 꿈과 미래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 때, 서라의 성격 변화와 수면 습관. 정확히는 이 세 개의 포인트가 연결되는 지점에서 마른세수를 하며 괴로워하다가 눈물을 보였다. 내가 이 집을 떠날 거라고 은근한 의사를 비치면 자연스럽게 서라 엄마의 죽음과 그로 인해 서라에게 나타난 부정적인 흔적들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결말은 매번 같았다. 그래도 선생님 덕분에 밝은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서라 아빠는 자신을 잘 챙기지 못하는 티가 났다. 셔츠는 항상 구겨져 있었고, 처음 보았을 때보다 살이 많이 빠진 듯 눈가가 어두웠다. 안방에서 서라가 깨어나 우는 소리가 들리면 서라 아빠는 허겁지겁 달려가 서라를 안아서 달랬다. 나는 침실에서 들려오는 서라 아빠의 자장가를 들으며 맥주를 몇 모금 홀짝였다. 냉장고에 붙어 있는 사진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검은색 머리띠를 한 채로 웃고 있는 젊은 여자는 팔자 눈썹에 동그란 눈이 서라와 꼭 닮아 보였다.
자고 가달라는 부탁은 빠르다면 빠르게, 생각보다 늦다면 늦은 시점에 또다시 찾아왔다. 이럴 경우를 대비하여 미리 단호한 거절 대사를 준비해 놓았으나 소용없었다. 새벽 3시가 다 되어 갈 무렵 전화로 한 부탁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고 어쩌고 핑계를 늘어놓는 서라 아빠의 목소리에서 술기운이 전해졌다. 어차피 3시간 뒤면 해가 뜰 터였다. 하지만 밤새 집에 있어 달라는 건 이제 시간이나 돈과는 다른 문제였다. 고용할 때의 약속과 달리 나는 시터 일 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소모되었다. 함께 옹기 마을에 가고, 예고 없이 방문한 서라 아빠의 친구들에게 인사를 했다. 애기 엄마로 불리거나 한 식구처럼 보이는 건 시터 조건에 없었다. 선을 그어야 할 때를 한참 지나버렸다. 이 집에서 자고 가지 않는 건 내가 정한 마지노선이었다.
서라 아버님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요. 저한테도 서라한테도 너무하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서라 엄마도 아니고, 서라는 아직도 새벽에 깨서 아빠를 찾아요.
오늘도 서라가 깼나요?
아니요. 오늘은 아직 깨지 않았어요.
한동안 말이 없던 서라 아빠는 내게 정 어려우면 그냥 가시라고 했다. 자기가 1시간 이내로 들어갈 테니. 작은 일에도 감사하다며 몇 번이고 고개를 숙여 보이던 평소와 너무 달랐다. 빈정이 상한 건지 말투에서 짜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애를 혼자 집 안에 두고 갈 수는 없으니 오시면 가겠다는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서라 아빠는 전화를 끊었다. 곧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서라 요즘에 자다가 깨는 일 없어요. 그러니까 걱정 마시고 들어가세요. 선생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한데요, 제 딸인 거 아시죠?
서라 아빠는 1시간 뒤에도 도착하지 않았고 나는 잠든 서라를 내버려두고 그 집을 나오지 못했다. 서라가 혼자이게 할 수는 없었다. 울면서 방문을 열었을 때 아무도 없는 집 안을 보여줘서는 안 되었다. 나는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사실은 아주 예전부터 그랬다. 안쓰러워, 이건 내가 할 수 있으니 해주자. 그렇게 생각해 왔으나 나는 해주어야만 하는 입장에 지나지 않았다.
작은방에 들어가 컴퓨터 전원을 켰다. 오래된 컴퓨터 본체가 요란하게 돌아갔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해가 뜰 거고, 이번 달에는 꽤 많았던 야간 근무 수당을 더해 많은 급여를 받을 거야. 자기 최면을 걸어 마음을 다독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서라 아빠는 내가 서라를 두고 가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다. 그동안 숱하게 해온 거절 연습은 자신이 점하고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아는 이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속 얘기를 꺼내고 눈물을 보이는 등 친구처럼 가까워지는 건 이 세계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걸 또 잊어버리다니.
기업 정보 플랫폼에 들어가 친구가 제안한 회사를 검색했다. 급여, 복지, 회사의 비전 등 모든 점수가 골고루 낮았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회사에 다녀 본 사람들이 적은 리뷰였다. 하나씩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다양한 리뷰들은 한 방향을 가리켰다. 사람을 부품처럼 쓰고 닳으면 갈아치우는 회사. 나는 그 구조를 잘 알았다. 단순 업무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업무량과 불만에 못 이긴 사원은 일 못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하나둘 그만두어도 회사는 건재했다. 또 다른 부품으로 빈자리를 빠르게 채워 나갔다. 들어올 사람은 많아. 그러니 회사는 바뀌지 않아. 누구는 잘 버티고 승진도 해. 10명 중에 한 명 즈음. 나는 버티고 버티다가 내 발로 그런 회사를 떠난 적이 있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버틴 이유는 하나였다. 나 자신이 누구나 다 하는 일조차 해내지 못하는 사람으로 느껴져서.
하지만 나는 쉽사리 리뷰 창을 끄지 못했다. 회사의 장점을 찾아내면서 출퇴근하는 나를 상상했다. 회사에 다닌다는 건 정규적인 일자리가 보장되는 것. 커리어가 쌓이고 가족한테 자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예전보다 나이도 들고 경험도 쌓였으니 이제는 잘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생각과 달리 적성에 딱 맞을 수도. 그렇게 관련 회사를 파도처럼 타고 또 타고 가는 도중에 모든 창이 꺼져 버렸다. 마우스 움직임이 버벅거렸다. 작동을 확인하기 위해 허공에 대고 클릭한 마우스 커서는 바탕화면의 폴더를 마구 열어댔다. 폴더 속의 폴더, 바탕화면에서 보이지 않던 폴더까지. 몇 초의 긴 시간 동안 야동 파일이 두어 개 열렸다. 길게 늘어진 파일 목록은 하나같이 제목에 가정부, 하녀 같은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마우스는 말을 듣지 않았고 나는 몇 분 동안 재생되는 동영상을 바라보다가 꽉 닫혀 있는 방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영상 속 신음소리에 섞여 서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작은방의 방문 너머 거실을 지나 침실에서부터. 아득한 암흑 속 서라가 깨어나 나를 찾고 있었다. 자신을 꺼내 줄 사람을 부르고 있었다. 곧 침실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서라는 아무도 없는 거실을 마주했을 것이다. 엄마를 찾고 아빠를 찾고 나를 찾다가 환한 거실의 조명에 눈이 익을 것이고, 혼자서 울음을 그쳐야 할 것이다. 나는 작은방에서 나가지 않고 마우스를 좌우로 흔들었다. 예상과 달리 서라는 내가 나갈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봄이 온다고 했다. 사람들은 아직 패딩 점퍼를 벗지 못했으면서 일찍부터 봄을 기다렸다. 봄은 희망찬 앞날이나 행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야. 그러니까 봄이 오면 같이 거하게 환영해 주자. 언젠가 친구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첫 직장에서 첫 월급을 받아 기분 좋게 술과 음식을 쐈던 날이었다. 유례없는 폭우가 쏟아져 벚꽃이 일주일 만에 져버린 해였다. 그 친구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봄을 환영해 주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나는 서라의 한글 실력 향상을 위해 인터넷으로 한글공부 교재를 새로 주문했다. 유치원 선생님에게 서라의 문장 구사력이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진다는 말을 들었다. 예전에 조금 하다가 어느 순간 거들떠보지 않게 된 한글공부가 떠올랐다. 그걸 계속했어야 했는데. 왜 그만두었지. 왜 나는 뭘 하든 쉽게 그만두는 걸까.
서라 아빠의 컴퓨터에서 야동을 본 날, 나는 컴퓨터를 끄고 거실로 나와 서라를 안았다. 서라의 등을 토닥이면서 베이비시터, 가사도우미, 가정부 따위의 단어에 대해 생각했다. 서라의 등을 두드리는 현재의 나, 40대의 나, 60대의 나. 나는 서라를 안은 채 급속도로 늙어 갔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내 안에서 무언가 새어 나왔다. 이런 건 뭐라고 불러야 되는 걸까. 불쾌함? 슬픔? 잘못되어 가는 조짐? 아 이거 그거네. 비참함. 그냥 슬픈 게 아니라 슬프고 또 참혹해. 나는 참혹해. 비참함이 꾸역꾸역 항아리를 터뜨릴 듯이 비어져 나오고 있어. 나는 밑 빠진 독을 등으로 막고 있는 두꺼비인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금이 간 사람에 불과했구나. 어디서부터 무엇을 주워 담아야 할까. 괜찮을 거라고 믿어 왔던 것들이 하나둘 내게 등을 돌리는 기분이 들었다. 진정이 되었는지 숨소리가 옅어진 서라가 말했다. 언니, 엄마라고 불러도 돼?
서라 아빠는 며칠 동안 나를 멋쩍게 대하다가 장문의 사과 문자를 보내 왔다. 내용으로 파악해 볼 때 내가 야동을 발견한 건 모르는 듯했다. 나는 평상시와 같이 서라네 집에 출퇴근했다. 픽업 시간보다 몇 시간 일찍 도착해서 안방 침실에 누웠다. 누운 채로 서라 아빠가 보낸 사과 문자를 읽었다. 소리 내어 읽다가 웃음이 터졌다. 수백 번 읽으니 보이는 게 있었다. 문자 내용은 사과라기보다 그만두지 말아 달라는 의사 전달에 가까웠다. 올해 봄부터는 시급을 더 올려 책정하고, 더 많은 일을 맡아 달라고 했다. 일은 가사 노동을 말하는 걸까. 서라의 엄마, 이모, 언니 이상의 더 많은 역할을 해달라는 걸까. 시급을 월급으로 계산해 보았다. 이 정도면 생활비는 물론 저축도 가능했다. 누군가 뒤에서 등을 밀어대듯이 근육이 뻐근해지면 478호흡법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4초간 입을 다문 채 코로 숨을 천천히 깊게 마시고, 7초간 숨을 참았다가 8초간 다시 코로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478호흡법은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픽업 시간까지 20분이 남아 있었다. 나는 거실로 나왔다. 아름답게 늘어지는 저녁 햇살이 온 집 안을 나른하게 뒤덮었다. 내가 만든 밥그릇을 찬장에서 꺼내 물로 한 번 헹군 후 밥을 덜었다. 다른 반찬 없이 김치를 얹어 크게 한 입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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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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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미래
- 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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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했습니다. 이야기 전개와 묘사와 대사가 적절히 배합되어서 좋았어요. 어려운 도시 여성의 삶이 느껴졌어요. 작가님의 작품을 더 찾아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