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호
- 작성일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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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호
장희원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공기가 차고 맑은 곳. 다른 곳보다 해가 빨리 뜨고 지는. 다른 누군가의 인기척이라고는 없는. 희재에게서 그가 지내고 있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우듬지 너머로 뜨는 어슴푸레한 새벽 동이나 찹찹한 분위기,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같은 임야를 떠올렸다.
“죽어버렸으면.”
희재는 허공 속의 한 점을 보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그곳에서 죽어버렸으면. 희재는 어머니가 복수가 찬 채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도 같은 말을 했다. 분명히 그때와는 다른 뉘앙스가 있다고 느꼈는데,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이른 아침부터 희재와 나는 서둘렀다. 찬물로 세수를 하고, 입을 헹구고, 어제 벗어두었던 청바지를 주섬주섬 입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희재는 작게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양손으로 손잡이를 쥔 채 창문으로 머리를 기댔다. 저기 뭐가 죽은 것 같아. 아니다, 다시 보니까 없어. 진짜 아무것도 없어. 희재는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혼자 말하고 답했다. 한참 후 주위가 고요해진 것 같아 옆을 보니 희재가 입을 벌린 채 잠들어 있었다.
우리는 휴게소에서 백반과 우동을 나누어 먹었다. 밥을 다 먹고도 시간이 남아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통유리창 너머로 구름 한 점 없이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하늘과 휴게소 뒤편으로 펼쳐진 강줄기를 바라보았다.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휴가철이 지나서인지 대체로 가는 곳마다 사람이 없었다. 그럴 필요까지 없었는데 왜 그렇게 서둘렀냐고 묻자 희재는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희재의 아버지 얼굴을 보고 안부를 확인한 다음,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그는 삼 년 전 아내가 간경화로 죽고 난 후 홀로 지내다 언제부턴가 야산에서 지내고 있었다. 양산에 있던 그가 어떻게 산천에 있는 그곳으로 들어가 살게 됐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는 미처 주변을 정리하지도 않았다. 아직도 그가 살던 집 냉장고에는 그가 먹다 남긴 반찬들이 썩어가고 있을 터였다. 희재의 어머니가 살아있을 적부터 기르던 식물들, 호야 나무, 산세비에리아, 스투키가 말라비틀어진 채 죽어 있을 것이다. 나는 먼지가 가득한 집을 떠올렸다. 어렸을 적부터 희재와 희재의 가족이 살았던 집. 희재와 나는 명절이면 그곳에 가서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 돌아오곤 했다. 간간이 희재와 희재의 어머니, 내가 웃을 때면 그는 크고 검은 눈으로 이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런 사람이니까.”
그가 왜 그런 곳까지 가게 되었을까 하고 묻자 희재가 대답했다. 자신도 우연히 그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뿐 더는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뭐든 다 자기 멋대로인 사람.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에 다른 사람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그냥 그런 사람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죽어버렸으면.
나는 희재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본 그는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말이 없고 등이 조금 굽은 왜소한 노인. 그는 묵묵히 아내가 투병 생활을 하는 동안 밥을 먹이고 대소변을 치웠었다.
“네가 뭘 알아.”
언젠가 내가 너무 그러지 말라고 하자 희재는 높낮이가 없는 어조로 말했다. 네가 뭘 알아. 네가 뭔데. 대체…… 뭘 아는데. 그 말을 끝으로 희재는 작게 숨을 내쉬며 오랫동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예상보다 넓었다. 자갈이 깔린 포장된 길 때문에 차가 지나다니기에는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대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길이 곳곳에 끊어져 있어 온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우리는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내 다른 길이 보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조금 심각해졌다. 이대로 간다면 곧장 산을 내려가는 길로 이어질 터였다. 희재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더는 그와 직접적으로 연락이 닿지 않아 지인이나 친척에게 거는 듯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조금 더 올라간 끝에 오른편으로 진입 금지 표시판이 보였다. 나는 희재가 알려준 대로 그곳으로 차를 틀었다. 창문에 검고 마른 나뭇가지들이 무서운 속도로 투둑투둑 달라붙었다. 거대한 고사리처럼 똬리를 틀거나 날카로운 잎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잠시 후 편평한 곳을 찾아 차를 세운 후 우리는 조금 더 우거진 곳으로 깊이 들어갔다. 근처 밤나무가 있는지 밤송이들이 많았다. 희재와 내가 바싹 마른 껍질을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잠시 후 비닐하우스를 발견했다. 근처 뜬장 안에 있던 개가 힘없이 늘어져 있다가 이쪽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아빠.”
사방이 고요했다. 아빠. 희재가 한 번 더 그를 불렀다. 어떻게 해야 하나. 희재와 내가 망설이는 사이 천막을 덧댄 문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이내 문을 열고 그가 나왔다. 내 예상과 달리 그는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 그는 곧바로 우리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선 채 희재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희재와 나는 평상에 나란히 붙어 앉았다. 그가 틀어준 온풍기를 마주하고 있어 살짝 땀이 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닐하우스 같아 보였지만, 나름 개조를 한 탓에 방도 있었고, 전기도 들어오는 듯했다. 합판을 덧댄 벽에서 검은 물이 죽죽 흘러내리고 있었다.
“춥다.”
선선한 날씨였는데도 그는 온풍기의 온도를 조절했다. 사방이 고요한 집 안에서 털털거리는 소리만이 들렸다. 그는 우리가 찾아온 것이 별로 놀랍지 않은 듯했다. 막상 희재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를 대하고, 심상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희재는 언제부터 그가 여기에서 지낸 것인지 물었다. 그는 “글쎄……”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다 “올해 봄쯤”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런 곳에서 무덥고 습했던 올여름을 보냈다는 게 가능한가 싶었다.
“종우야.”
그가 뜬금없이 나를 불렀다. 그는 계속해서 온풍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춥지 않냐? 나는 묘하게 그가 희재나 나의 시선을 피한다고 생각했다. 아니요. 생각보다 퉁명스러운 내 목소리에 놀랐다. 나는 황급히 그를 향해 다시 손을 저었다. 괜찮아요. 하지만 그는 못 들은 척 계속해서 온풍기를 만지작거리다 다른 말을 꺼냈다.
“다 주웠어.”
“……”
“이것도.”
“……”
“그리고 저것도.”
희재도, 나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폐품 같아 보이는 물건들을 하나하나 짚었다. 처음 가져온 짐이 옷 세 벌밖에 없다고 했지만, 집 안 여기저기에 물건이 많았다. 여기에는 버린 것들이 많고, 나는 그것을 줍는다. 그는 자신이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말했다. 그가 입고 있는 잔뜩 헤진 남방이 눈에 들어왔다. 희재는 한참 동안 이런저런 그의 설명을 듣다 언제쯤 돌아갈 거냐고 물었다. 글쎄…….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모르겠다.”
그는 멍한 눈을 한 채 중얼거렸다.
“……모르겠어.”
희재는 무표정한 얼굴로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컹. 희미하게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순간부터 크게, 점점 더 무섭게 짖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자 뜬장 안에 있던 개가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왜 그래?”
희재가 개를 가리키며 물었다.
“배가 고프니까.”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뜬장 아래 오래된 배설물들이 굳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코를 찌르는 냄새가 진동했다. 컹. 개는 자신의 굳은 배설물을 밟고, 또 밟았다. 컹. 나는 어딘가 망가진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이 모습을 보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뭘 좀 줘요.”
희재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
“응?”
“……”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굳은 얼굴로 지그시 개를 볼 뿐이었다. 컹. 개가 다시 짖었다. 개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다 짧은 목줄에 엉켜 다시 엉거주춤 뒤로 물러섰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고통스러운 듯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익숙해 보였다. 매번 숨이 틀어막힌 채 누군가를 향해 다가가고, 또다시 다가가는. 우리는 개가 검은 발바닥으로 아슬아슬하게 창살을 밟고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느 순간부터 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개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다리를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 제자리걸음을 했다. 간절하게 그리고 또 간절하게. 목줄이 조금씩, 조금씩 더 팽팽하게 당겨졌다. 희재는 불안한 듯 보였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그를 말리거나 어딘가에 있을 사료를 찾지도 않았다. 희재는 체념하고 있었다. 어차피. 어차피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어떤 경험들을 통해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입을 다물고 있는 여자와 노년의 남자. 그들은 모두 잠자코 개를 지켜보았다. 우리는 쇠 목줄이 여기저기 끌리는 모습을, 개가 켁 하고 숨이 멎는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는데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조금씩 초조하고 불안했다. ……컹. 한참 후에야 그가 철문을 열고 지저분한 그릇에 사료와 물을 채워주었다. 개는 기다렸다는 듯 주둥이를 박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개가 그릇에 있는 사료를 다 비울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그가 일부러 그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렇게 개를 지켜보는 게 그의 일과 중 하나라는 것도.
“두 번 밥을 준다.”
하루에 두 번. 그는 태연하게 다른 이야기를 하며 검지와 중지를 들어 보였다.
희재는 말이 없었다. 화가 나 보이기도, 슬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보니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였다.
“차라리 죽여버리지.”
잠시 후 희재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
“죽여버리지.”
사방이 고요한 탓에 희재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희재의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계속해서 개를 보고 있었는데, 개가 아닌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죽은 개도 있다.”
그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개가 두 마리였다며 다시 검지와 중지를 들어 보였다. 석 달 전쯤 이른 새벽에 나가보니 목줄에 묶인 채 뜬장 밖으로 떨어져 죽어 있었다고 했다. 전날 바람이 많이 불어 문이 열렸고, 개가 열린 문으로 탈출을 시도했다. 개는 멀리 가지 못하고 목줄에 목이 매여 죽었다. 굳은 배설물 위로 까맣고 작은 개가 둥둥 떠 있었다. 그는 그 후로 이 흰 개의 목줄을 더 짧게 묶어 두었다고 했다. 이게 낫다. 두 번 다시 나가지 않도록, 나갈 마음조차 먹지 않도록. 차라리 이편이 훨씬 더 낫고, 안전하다는 뜻 같았는데, 나는 오히려 더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되풀이되는 형벌 같다고도 생각했다. 반복 그리고 반복. 개는 혀를 내밀고 같은 자리를 조금 서성이다 힘없이 드러누웠다.
“들어가자.”
문득 나는 그가 그 죽은 개를 어떻게 했을지 궁금했다.
만약 그때 내가 희재를 대신해 적극적으로 그를 말렸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희재는 무엇이 달라졌겠냐고 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냐고 물을 수도 있었다. 내가 뭘……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무엇을…… 그렇게…… 그가 크고 검은 눈으로 물어올까 섬뜩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희재는 “그게 무서워?” 하고 물었다. 나는 “조금”이라고 대답했다. 희재는 자신은 이제 그런 그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다. 진짜야. 이제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아. 조금도. 희재의 눈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자신은 그게…… 더 무서운 것 같다고 했다. 체념. 포기. 무감함. 어떤 일에도 더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 희재와 희재의 아버지.
희재는 종잡을 수 없었다. 충동적이기도 했다. 두서없이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다가도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겨있을 때가 많았다. 그 무렵 8년 동안 다니던 제지 사무실도 이유 없이 그만두었다. 한동안 저녁을 먹은 후 늘 나가던 밤 산책도 지루하다며 더는 나가지 않았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희재는 저녁도 먹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희재야. ……응. 희재야. ……응. 희재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 꼬박꼬박 대답하면서도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희재는 돌아누워서 아무 표정 없이 내 쪽을 보았다. 껍데기. 어느 순간부터 나는 껍데기를 생각했다. 희재는 여기에 없고, 그 어디에도 없다.
희재는 죽은 개도, 개도, 아버지도 더는 궁금한 것 같지 않았다.
반복 그리고 반복.
희재는 지쳐 보였다.
희재는 바닥에 누워 두 팔을 벌린 채 낮잠을 잤다. 땀을 흘리는 것 같아 온풍기를 꺼주었다. 그와 나는 희재에게서 멀리 떨어진 채 평상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나는 금연을 실천하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피우는 담배 탓에 느긋해지고 긴장이 풀리는 느낌이 좋았다. 그는 희재와 나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나는 희재가 일을 그만두었다는 소식과 내가 새로 시작한 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달 전쯤 희재와 내가 헤어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희재와 나는 잠들기 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그날 밤 희재와 나는 그날에 있었던 일과 먹었던 점심, 알고 지내던 동창이 파산한 이야기와 다음 휴가 때 가보고 싶은 곳, 맛이 옅어져 가는 원두를 그냥 버릴 것인가에 대해 말을 나누다 오래전 죽은 아기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었었다. 어땠더라. 그때 우리가 어땠지. 우리는 두서없이 더듬더듬 그때의 날씨나 풍경들을 주제로 말을 나누었다. 희재나 나나 더는 아무렇지 않았다. 아기는 태어나지도 못했고 그것에 그렇게 마음을 쏟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우리 둘 다 다행이라고 여기는 구석도 있었다. 그 일이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한참 후 희재와 나는 뜬금없이 진지하게 헤어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시간 후 우리는 본격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 등만 켠 채 식탁에 앉아 전세금과 가구들, 책과 음반들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의논했다. 희재는 울먹거리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게 뭐. 그게 어떻다고. 희재의 아무렇지 않은 태도 덕분에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한편으로 편안하기까지 했다. 그래, 이게 뭐라고. 정말 뭐라고. 희재는 특유의 나른한 어투로 서로의 가족과 친구에게 언제쯤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눈 후 피곤하다며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그 후 희재와 나는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있었다. 함께 일어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다시 일어났다. 그가 잠든 희재 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모르겠다.”
그는 깊게 한 번 더 연기를 빨아들였다. ……모르겠어. 나는 그에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희재는 희재. 그러니까 이따금 그런 때가 있을 뿐. 희재는 변덕스러우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괜찮아지고, 아무렇지 않게 굴 것이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는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네가 그렇다면. 그는 내 어깨 위로 손을 잠깐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마치…… 나를 믿고 있다는 뜻 같았다.
나는 찬찬히 그의 옆모습을 살펴보았다. 얼핏 희재와 닮아 보이는 것 같기도,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대체로 입을 다문 모습이 비슷했다. 하지만 그런 인상을 받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문득 희재가 들려주었던 그에 대한 예전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희재가 어릴 적 아무 이유 없이 오랫동안 집은 비우거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았던 일,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며칠이고 입을 다문 채 먹지도 마시지도 않던 성정. 한번은 희재의 어머니와 다툰 후 한밤중에 자고 있던 희재를 저수지로 데려간 적도 있었다고 했다. 들어가. 그는 희재의 뒤에 서서 말했다. 검은 물이 계속해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가 성큼 한 걸음 더 내디뎠다. 들어가.
어둠 속에서 나는 희재에게 그가 “정말 그랬을까?” 하고 물었다. 응. 희재는 망설이지 않고 “그랬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한참 후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모르겠어.”
희재는 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희재의 눈이 아득해졌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정말…… 모르겠어.
어쩐지 기시감이 들었다. 조금…… 지겹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 물 좀.”
희재가 부스스 일어나 이쪽으로 손을 뻗었다. 한참을 잤는지 벌겋게 부은 얼굴이었다. 땀을 흘려 곱슬곱슬한 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나 목말라. 물 좀. 희재는 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팔을 내밀었다. 희재는 내가 가져다준 보리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늦가을이지만 해가 길었다. 희재는 주변을 둘러보고 싶어 했다. 그가 앞장서서 걸었다. 우리는 물을 길어 올 겸 약수통도 챙겼다. 나는 양손에 약수통을 들고 그들을 따라갔다. 어느 순간부터 희재와 희재의 아버지가 나란히 걷고 있었다. 둘은 키가 똑같았고, 어깨가 비슷했다. 체격이 비슷해 부녀라기보다는 남매처럼 보였다. 야산이라고 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 밟고 밟아 다져진 낙엽 위를 천천히 따라 걸었다.
“단풍놀이 온 것 같아.”
침묵을 깨고 희재가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모두 희재를 따라 고개를 젖혔다. 예년보다 일조량이 많아 단풍이 빨리 든 탓에 남아있는 단풍이 얼마 없었다. 하지만 검은 나뭇가지와 얼마 되지 않은 잎들이 하늘을 완전히 가렸다. 좋다. 희재는 눈을 감았다. 이상했다. 분명히 희재는 좋다고 했는데.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천천히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는 희재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무표정했다. 화가 난 사람처럼 희재를 보다, 희재와 나를 내버려두고 성큼성큼 앞서 걸어갔다. 희재는 꼼짝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젖힌 채 서 있었다.
“여기다.”
멀리서 그가 한 곳을 가리켰다. 나무에 둘러싸여 있어 해를 가리지 않아 햇빛이 그대로 들어오는 곳이었다.
“여기 서 있어라.”
그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희재가 멍하니 그가 가리킨 곳을 보았다. 빨리. 그는 다시 한번 더 손짓했다. 희재는 그쪽으로 다가가 성큼성큼 그가 가리킨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두 팔을 벌린 채 아까처럼 고개를 젖혔다. 뜨겁고 붉은 햇빛이 희재의 감은 눈 위로 일렁거렸다. 희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희재의 가슴이 눈에 띄게 오르내렸다. 나는 희재가 가만히 숨을 내쉬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가자.”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희재는요?”
그는 자신의 발치만 보았다.
“희재는요?”
한 번 더 이야기해 보았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나는 마지못해 희재를 뒤로 한 채 그를 따라갔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았지만 희재는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가을볕이 좋아.”
그는 한참 올라가다 뜬금없이 말했다. 희재가 해바라기를 하게 내버려둬도 괜찮은 건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는 태연했다. 가을볕이 부드럽고 몸에 좋으니 한동안 쬐게 두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봄볕에는 며느리를, 가을볕에는 딸을 쬐게 하라는 말도 있으니까.”
나는 그런 말이 있냐고 물었지만, 그는 다시 입을 다문 채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여전히 희재가 걱정되었다. 조금 전 얼굴을 일그러뜨리던 희재, 어딘가를 멍하니 보던 희재, 웃지도 울지도 않는. 희재. 그래……, 희재가 누구지, 어쩌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나는 희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이 일렁였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도 있었다. 희재. 장희재. 좀처럼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괜찮다.”
그는 우리 앞에 있던 꺾인 나뭇가지를 주워 멀리 던졌다. 결국 올라올 곳은 한 곳밖에 없으니 희재는 길을 찾을 것이고 곧 우리와 만나게 될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참을 더 올라가다 아래쪽을 가리켰다. 길 아래 바위틈 사이로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길을 따라갈수록 물줄기는 점점 더 세졌다.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꺾어진 죽은 나무를 짚고 조심스럽게 그 아래로 내려갔다. 단차가 있는 편이라 잡아주려고 했지만 그는 내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으차. 그는 죽은 나뭇가지를 짚고 자신처럼 내려오라고 했다. 그가 내 손에 든 물통을 받았다. 나는 조금 전 그가 했던 대로 길을 내려왔다. 검은 흙이 부스스 무너졌다. 내려오니 바위와 흙 사이에서 묻혀있던 죽은 나무의 뿌리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생각보다 엉켜있는 뿌리가 길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그 뿌리를 잡고 다시 중심을 고쳐 잡았다. 순간 흙을 밟아 미끄러워 몸이 휘청거렸지만 이내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그가 순식간에 손을 내밀어 내 등을 받쳤다.
큰 바위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계곡에 가까이 다가가자 선선한 기운이 피부에 닿았다. 습하. 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공기 중에 습하고 썩는, 물비린내가 났다. 물 위로 검고 붉은 잎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계곡물이 짙어 보였다. 계곡물의 표면은 잔뜩 흐릴 뿐 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바위에 걸터앉아 약수통을 열고 물을 조금 떴다. 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목을 축이고는 머리 위로 물을 뿌렸다. 아, 시원하다. 그의 주변으로 물비린내가 조금 더 짙게 났다. 드러나 있는 작은 돌들 위로 이끼가 끼어있었다. 어쩐지 물이 흐르는 것보다 고여 있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이상했다. 이렇게 잔잔히 흐르고, 물소리가 들리는데. 사방에 아무것도 없다는, 살아있는 것들은 없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나도 그를 따라 손으로 물을 떴다. 손바닥 안으로 검은 물이 고였다.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가 왜 이곳에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고요하고 한적한 분위기에 마음이 가라앉긴 했지만 다른 누구도 없는 곳에서 혼자 있다는 것은 다른 일일 것 같았다. 그 집과 그 개에 대해, 그리고 왜 이곳에서 혼자서 고요히 살아가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그는 가져온 다른 물통에 물을 받았다. 검고 시커먼 물이 울컥울컥 통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 더러운 물을 마셔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썩은 것 같은 물, 살아있는 것들이 전혀 없는, 어쩌면 죽은 것들이 가득한 것들을 한가득 마시는데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명. 나는 이것은 그냥 연명이 아닐까, 생각했다.
죽어버렸으면.
나는 희재의 말을 기억했다. 문득…… 그도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빠.”
멀리서 희재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여기 있다며 위를 향해 외쳤다. 잠시 후 희재가 고개를 내밀었다. 희재는 이쪽으로 내려가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나는 그가 가르쳐 준 대로 썩은 나무와 바위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잠시 후 희재가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희재의 얼굴이 붉었다. 얼핏 보니 눈 주위가 더 검고 깊어 보여 눈물 자국인가 싶었지만 가까이 다가오자 희재의 속눈썹 때문에 짙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희재는 자꾸만 “습, 습” 하고 입맛을 다셨다. 사방에서 나는 물비린내 때문에 숨을 쉬기 어렵다고 했다.
“더러워.”
희재는 들릴 듯 말 듯 작게 속삭였다. 희재는 물길을 따라 걷다 허리를 굽혀 작은 돌을 주웠다. 희재는 망설임 없이 계곡을 향해 던졌다. 풍덩. 검은 물 아래로 작은 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희재는 물 안을 보고 싶은지 고개를 좀 더 내밀었다. 썩은 잎들이 둥둥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보여.”
희재는 크고 편평한 돌 위로 뛰었다. 그리고 그곳에 쭈그려 앉은 채 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다른 물통을 꺼내 마저 물을 담기 시작했다. 썩은 잎이 빨려 들어가도 그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물을 다 담자, 불투명한 물통 안에 흙과 잎이 섞인 침전물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와 나는 물통을 하나씩 나누어 들었다. 제법 무거웠다.
“저기 봐,”
저거 봐봐. 희재가 어딘가를 가리켰다. 우리는 희재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싶어 자세히 보니 희재가 가리킨 곳으로 잎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조금 더 희재 쪽으로 다가가자 작은 돌과 돌 사이의 와류가 보였다. 다른 곳으로 흐르지 못한 채 물줄기가 같은 자리만 맴돌고 있었다. 희재는 검고 작은 소용돌이를 입을 벌린 채 바라보았다. 신기하다. 희재는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희재는 계속해서 고개를 숙였다. 귀 뒤로 꽂혀있던 머리칼이 드리워져 희재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려있어 금방이라도 물에 빠질 것만 같았다. 희재는 조금 더 고개를 숙였다. 나는 희재를 부르고 싶었다. 물살이 전보다 세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불안했다.
“아빠.”
잠시 후 희재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그를 불렀다.
“나…… 여기 들어갈까?”
“…….”
“그래볼까?”
희재는 심술궂게 자신의 발을 내밀어 보였다. 응? 어때? 그래볼까? 희재가 이쪽을 돌아봤다. 희재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희재는 발을 까딱거렸다. 금세 물살에 닿을 것 같았다. 검은 물살이 희재의 흰 발을 핥고 금방이라도 끌고 들어갈 것 같았지만, 희재는 조금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이게 뭐. 이게 뭐 어때서.
“그래.”
그는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들어가.”
들어가라. 그러고는 양손으로 물통을 쥐었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양손에 물통을 쥔 채 빤히 희재를 바라보았다. 마치 희재가 그곳에 뛰어들기를 기다리는 사람 같았다. 희재는 발만 까딱거릴 뿐 발을 집어넣지도, 허리를 숙이지도 않았다. 그와 나는 나란히 선 채 희재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희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어쩌면 희재는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가자.”
마지못해 나는 그가 이끄는 대로 고개를 돌렸다. 가을 해가 머리 위로 일렁거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물가를 벗어나 조금이라도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었다. 우리가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생각했다. 순간 축포처럼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의 표면에 무거운 것이 부딪히는 소리. 총성 같기도 했다. 그와 내가 뒤를 돌아보자 희재가 물속에 빠져있었다. 검은 물 위로 희재의 머리칼이 둥둥 떠다녔다. 잠시 후 희재가 자리에서 우뚝 일어섰다. 파. 흐르는 물 탓에 희재는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했다. 계곡은 생각보다 얕고 심하게 더러웠다. 희재의 얼굴 위로 물에 젖은 머리칼이 이리저리 붙어 있었다. 희재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리고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입고 있는 옷이 젖어 몸의 윤곽이 드러났다. 두 눈으로 보기 힘들 만큼 볼썽사나웠다. 한없이 작고, 아무것도 아닌 희재. 한참 후 희재는 입을 다문 얼굴로 힘없이 이쪽을 보았다.
*
희재는 그가 준 옷을 입은 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바지가 긴 탓에 바짓단을 여러 번 접어 입어야 했다. 입고 온 옷들은 대충 바깥에 널어두었지만 언제 마를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희재의 머리가 검게 젖어 있었다. 수건으로 몸을 닦았지만 여전히 희재의 곁에는 알 수 없는 비린내가 났다. 희재는 태연한 얼굴로 버너에 끓인 물을 연거푸 마시고, 다른 옷을 담요 삼아 덮었다. 희재는 데운 물을 두 손에 쥐고 몸을 녹였다.
“좋아?”
나는 수건으로 희재의 머리를 닦으며 말했다. 희재의 정수리 위로 묘한 냄새가 났다. 희재는 “응.” 하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고는 다시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더는 들리지 않았다. 젖은 머리칼 아래로 텅 빈 눈이 보였다. 나는 춥지 않냐고 물었다. 희재는 멍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희재의 젖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소스라치게 차가웠다. 하지만 정작 희재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춥지도, 자신에게서 나는 냄새도 맡지 못한 채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았다. 껍데기. 나는 다시 껍데기를 생각했다. 희재의 안은 텅 비어 있다.
희재는 입고 왔던 옷을 입고 돌아가고 싶어 했다. 마른 옷이 낫지 않겠냐고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밖을 나가보니 그는 개의 밥을 챙겨주고는 뜬장에서 떨어진 자리에서 무언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희재와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의 발치에 꾸물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한 마리의 새였다. 정확히 말하면 새끼에 가까운 것이었다. 회색빛의 털이 얼마 없는 작은 새가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쉴 새 없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이게 뭐예요.”
그는 위를 가리켰다. 외벽 한 귀퉁이에 둥지가 보였다. 알에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기에서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희재가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고 한참 동안 검색했다. 딱새의 종류라고 나오기도, 멧비둘기의 종류라고 나오기도 했다. 으차. 그는 귀찮다는 듯이 새를 집어 들어 둥지 쪽으로 넣어주었다. 익숙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는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 배어 있었다.
“지겹다.”
그는 둥지를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언젠가 알이 떨어져 있어, 두 번 다시 새가 이곳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 둥지를 튼 이상 새들은 계속해서 온다고 했다.
“계속해서?”
희재가 그 말을 따라 하듯 물었다.
“그래.”
그는 그것이 본능이라고 했다. 한 번 알을 놓은 곳에 계속해서 다시 찾아오는. 저번에 이어 다시 온 탓에 부화 시기가 조금 늦어진 것 같다고 했다. 운이 좋으면 이번 새끼들은 깃털을 기르고 몸집을 키운 다음, 성체가 되어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그 새들이 찾아와서 다시 알을 낳고, 그 알에서 또 다른 새가 나오는. 그의 설명에서 어떤 리듬감이 느껴졌다. 반복 그리고 반복. 영원히 끝나지 않는 어떤…… 굴레처럼 여겨졌다.
“지겹다.”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가 챙겨주는 것들을 한사코 거절했다. 그는 내민 비닐봉지 안에는 밤과 말린 뿌리들, 수건들이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수건을 몇 장 꺼냈다. 마지못해 희재를 위해 받았지만 나머지는 희재가 거절할 것 같았다. 그는 알겠다는 듯 순순히 손을 내려놓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나는 희재를 찾았다. 희재는 방에도, 뜬장 근처에도,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희재가 화장실에 간 것 같다고 했다.
“가자.”
이곳은 해가 빨리 지니까. 조금이라도 내려가기 좋도록 먼저 길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와 나는 길을 내려가 어두워지려는 하산길을 보았다. 그는 손으로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나가기 좋은 쉬운 길과 집으로 가기 좋은 국도를 알려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설명을 듣고, 방향을 묻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길을 확인하고, 시간을 가늠했다.
그는 뒤돌아서 뒷짐을 짓고 걷다 어느 순간 우뚝 멈춰 섰다. 그가 한 곳을 우두커니 내려다보았다. 아주 작은…… 검고 붉은 자국이 있었다. 과육이 터진 것 같은 흔적이었다. 이게…… 뭐지. 나는 조금 더 허리를 숙여 살펴보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무얼 그렇게 보고 있냐는 물음에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살폈다. 그는 무표정했다. 담담해 보이기도 했다. 조금 떨어진 뜬장 안에 있던 개가 우리를 향해 컹, 하고 짖었다. 저 멀리서 희재가 젖은 옷으로 갈아입은 채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발을 비벼 빠르게 그 흔적을 지웠다. 길 위로 흙먼지가 부옇게 일었다. 입고 있던 바짓단이 더러워져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금세 흔적이 지워졌다. 곧이어 그는 그 흔적 위로 두 발을 딛고 섰다. 그리고 자리에 선 채 희재를 기다렸다, 가라, 얼른. 그는 쫓아내듯 희재와 나를 향해 말했다. 희재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해가 지자 주위가 빠르게 어두워졌다. 쭉 뻗은 도로가 희재와 나를 향해 점점 더 다가왔다. 조금은 무섭다 싶었는데 조금씩 착잡하게 마음이 가라앉았다. 고요한 분위기가 계속되자 차츰 익숙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희재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쯤 그곳은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고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 그곳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울 그를 생각했다. 그 집과 불안한 듯 같은 자리를 맴도는 그 개에 대해, 시커먼 계곡에 대해 이런저런 것들을 떠올리다 결국 나는 희재와 나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뒤죽박죽 섞였다. 희재는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괜찮아?”
“…….”
희재는 축축하고 냄새나는 옷을 입은 채 앞만 보고 있었다. 아무렴 어때. 모든 일에 심드렁해 보였다. 이제 모든 일에 더는 상관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참 후 익숙한 길이 보였다. 눈에 익은 곳들이 느리게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있잖아. 희재가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며 말했다.
“내가 그 새를 죽였어.”
희재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것을 밟고, 밟고 또 밟았어. 말캉하고 축축하고…… 뜨거웠어. 이상하다. 분명히 맨발이 아닌 신발을 신고 그것 위로 우뚝 섰는데 왈칵 하고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고 했다. 아직도 그게…… 생생하게 느껴져. 자신의 발 아래에 그 새가 있는 것 아닐까, 하고 희재는 어둑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분명히 이리저리 요동쳤는데. 나는 침묵했다. 터널이 다가오고 있었다. 소음과 함께 주황빛이 어지럽게 번져 보였다. 이제 그 새들은 두 번 다시 그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돌아온 어미와 아비가 그 검붉은 자국을 발견하고 그곳을 찾지 않길,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정말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둠 속에서 희재의 얼굴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한참 후 어두운 국도와 익숙한 가로등 빛이 들어왔다. 나는 희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희재의 얼굴 위로 검은 줄무늬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희재는 오히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말이든, 어떤…… 단 한 마디라도 해 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이렇게 희재와 마주 보는 것은 아주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웃어.”
“……”
“왜 그렇게 환하게 웃어,”
그 밤 희재는 일그러진 얼굴로 앞을 보다 속삭이듯 정말 자신이 웃고 있냐고 몇 번이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희재를 보기 위해 기꺼이 희재와 함께 오래도록 그 새를 밟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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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너무 좋아서 자꾸 다시 읽게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