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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같은 이름을 지어 주면 오래 산다

  • 작성일 2026-09-01

  사람 같은 이름을 지어 주면 오래 산다


임아라


  그가 돌을 키우자고 했을 때 나는 딸기를 먹고 있었다. 케이크에 얹은 것치고 과즙이 실해서 턱이 저릿했다. 나는 테이블 매트에 포크를 내려놓고 오른뺨을 어루만졌다. 입안에 머금은 걸 삼켰는데도 신맛이 가시질 않았다. 어금니에 들붙은 씨가 거슬려서 자꾸 혀끝으로 더듬댔다.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긴, 돌을 키우자는 거지.

  문득 씨가 아니라는 게 떠올랐다. 딸기의 겉에 박힌 점들 말이다. 그게 열매고, 그 속에 더 작은 씨가 있다는데, 그렇다고 그걸 달리 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가까스로 골라낸 씨를 검지에 뱉었다. 침과 뒤엉켜서인지 꽤 부푼 것 같았다.

  자기한테 도움이 될지도 몰라.

  나한테?

  그래, 우리한테.

  그의 윗입술에 묻은 생크림이 바르르했다. 나는 그것을 닦아 주려다가 관두고 나이프를 집었다.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사면 으레 주는 플라스틱이었다. 초는 몇 개 드릴까요, 직원이 물었을 텐데. 그가 뭐라고 답했을지 궁금했다. 어쨌든 초는 없고, 나이프에서 달그락 소리가 났다. 손잡이에 달린 마개를 열었더니 성냥 두 개비가 쏟아졌다.

  돌을 키우기도 해?

  응, 돌도 키울 수 있대.

  그는 컵을 움켜쥐고 이리저리 살폈다. 또 커피를 흘린 모양이었다. 그 컵은 가장자리가 겉쪽으로 휘어져 있어서 물이 넘치기 일쑤였다. 게다가 서랍에 들어박힌 처지길래 버리려고 했는데, 그가 발끈하는 바람에 그러지를 못했다. 너무 말짱하다는 게 그의 항변이었다. 이후 그의 커피는 그 컵에만 내줬다. 똑같은 컵이 있었는데 이미 버렸다는 건 굳이 밝히지 않았다.

  왜 돌이야?

  손이 가는 건 싫다며. 그렇다면 돌 만한 게 없지.

  그가 살며시 컵을 기울이며 커피를 홀짝였다. 나는 슬쩍슬쩍 드러나는 둥근 밑면을 바라보면서 유난히 까맣다고 생각했다. 테이블에 닿을 때마다 닳았을 테니까 그리 이상할 건 없었다. 하지만 하얀 컵과 대비되어서 생경하게 다가왔다. 그 너머에 있는 그의 눈동자도 마찬가지였다. 흰자위를 바삐 오가는 걸 보아하니 뭔가 숨기고 있었다.

  실은 주문했어.

  나는 잼이 덕지덕지한 접시를 토닥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몫의 케이크는 모로 누운 채로 사이사이가 벌어져 있었다. 겹겹인 시트에서 반쪽짜리 딸기들을 빼낸 흔적이었다. 언제부턴가 버터에서 여물의 향을 맡았다. 내가 투덜댔더니, 그는 여물의 근처라도 가본 적이 있느냐며 놀렸다. 그때도 나는 고개를 끄덕인 것 같았다. 고개를 가로저어야 했는데, 어째서 끄덕였는지 의문이었다.

  미리 이름을 지어 주자.

  그가 반절 남은 케이크를 상자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그새 눅눅해진 받침대가 흔들려서 잠시 애를 먹었다. 나는 식탁에 흐트러진 빵 부스러기를 그러모으다가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검지에 뱉은 씨앗이 온데간데없었다. 어딘가로 옮았을 텐데, 전연 기억나지 않았다.



*


  김이 피어오를 정도로 따끈한 물줄기를 쏘였더니 순식간에 케이크가 일그러졌다. 폭우를 맞은 모래성처럼 쉬이 뭉그러졌다. 자잘한 건더기는 배수구를 향해 미끄러지고, 은색 싱크대에 남은 건 무른 딸기뿐이었다. 나흘이나 지났는데도 알맹이는 뽀얬다. 맨손으로 으깨자 은은한 풋내가 났다. 이렇게 버려질 게 빤한데, 그가 케이크를 준비한 건 아빠를 기리기 위해서였다. 내가 여태껏 제를 지내지 않았고, 영원히 그럴 거라고 단언했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내가 명색이 사위인데, 기일 좀 알려줄래? 그가 말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예사롭게 여겼다. 갓 동거한 터라 사위라고 자칭한 그가 귀여웠다. 평생 사위라고 불러줄 어른이 없다는 게 미안하기도 했다. 이런 낌새를 알아챈 그가 서재에서 달력과 볼펜을 가지고 왔다. 기일은 음력으로 쇠는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맞장구를 치면서도 정작 날을 셈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를 배려하는 일과 나를 내려놓는 일은 엄연한 별개였다.

  내년엔 챙기지 마. 아빤 케이크 좋아하지도 않았어.

  내 딴에는 생신 분위기라도 내려고 그랬지.

  생일상이면? 죽은 사람이 먹어?

  나는 수채통에 낀 거름망을 끄집어내서 보란 듯이 쳐들었다. 한때 케이크였던 찌꺼기에서 구정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가 말끝을 흐린 채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거름망을 가로채서 고대로 먹깨비에 내리부었다. 우리는 음식물 처리기를 먹깨비로 명했다. 공기청정기는 윈디, 텔레비전은 지니, 로봇청소기는 샤샤였다. 버벅대는 지니와 배회하는 샤샤를 보살피다 보면, 그것들이 생물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제안은 일리가 있었다. 어쩌면 돌도 쓸모가 있을지 몰랐다.

  팔이, 어때?

  파리?

  이름 지어 주자며, 돌, 팔이!

  아무리 그래도.

  그가 도로 말끝을 흐렸다. 숨을 들이쉬더니 곧장 먹깨비를 터치했다. 안녕하세요. 음식물 처리를 시작합니다. 낭랑한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정말 돌이야? 곤충 같은 거면 가만 안 둬.

  아냐. 저런 거야.

  그가 턱짓했다. 지니의 왼편에 그레빌리아 한 그루가 있었다. 어찌나 가느다란지 샤샤가 화분을 스치는 내내 가지들이 바들바들했다. 바싹 마른 흙에 얄따란 명찰이 박혀있고, 그늘이 서린 언저리에 검푸른 조약돌이 있었다. 보호색을 쓴 벌레가 옴츠린 듯 가여웠다.

  저걸 키우면 되잖아?

  에이, 다르지.

  그는 돌연 찬장을 여닫다가 불연성 마대와 종량제 봉투를 찾아냈다. 이사한 후에는 사용한 적이 없는 대용량이었다. 양쪽 끄나풀을 잡고 펄럭대자 쿰쿰한 냄새가 났다. 위잉, 윈디가 저절로 수위를 높였다.

  이제 보내주자.

  그는 시멘트 화분을 통째로 들어서 마대에 담았다. 그레빌리아의 밑동을 붙들고 쑥 뽑아서 봉투로 날랐다. 보잘것없는 뿌리가 나달나달했다. 튀어나온 줄기를 부러뜨리기 직전에는 언뜻 머뭇거렸다. 내가 거들려고 하자 그가 물러서라고 하더니 조약돌을 건넸다. 

  뭐가 다른데?

  나는 조약돌이 올려진 손바닥을 내밀며 생긋거렸다. 그는 봉투를 매듭지으면서 힐금댔다.

  걔도 보내줄까?

  그가 마대의 매듭을 푸는 체했다. 나는 얼른 조약돌을 내 등 뒤로 감췄다. 딱히 아까워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가 바라는 반응이라서 그랬다. 그런 건 그냥 알 수 있었다.



*


  우리가 한집에서 살기 전, 그러니까 자취하던 시절에는 틈만 나면 나들이했다. 각자 원룸에서 살았기에 오롯이 단둘일 수 있는데도 득달같이 나돌아다녔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내던져진 아이들처럼 호기심이 왕성했다. 무작정 거리를 걷고, 그럴듯한 곳에 들르고, 그럴듯하지 않은 곳인데도 그럴듯하다고 동감하다 보니, 어느덧 동거인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가 어른이라는 걸 뒤늦게 깨우친 편이었다. 그래서 일순간에 결연해졌는지도. 연애한 지 고작 열 달 만에 결혼식은 생략하고 아이는 갖지 않기로 맹세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공원에서 프러포즈한 날에도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마도 남자인 그에게 프러포즈할 기회를 주지 그랬냐는 푸념이었을 터였다. 아니면 꽃이나 반지 없이 거저 때우는 상황에 당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푸드 트럭에서 산 먹거리를 돗자리에 늘어놓으며 다그쳤다. 예스라는 거지? 그렇지?

  그날 우리가 제일 맛있게 먹은 건 샌드위치였다. 무난한 햄에그인데 편의점보다 세 배 비쌌다. 그 이유에 대해서 조곤조곤 논쟁한 결괏값은 용기였다. 스무 평 남짓한 전셋집도 얻기 힘든 서울에서 안정적인 취업을 마다하고 창업한 용기, 네모난 통인데 모서리는 원만하고 내용물을 지지할 만큼 도톰하며 친환경적인 종이 용기. 그는 전자는 가질 수 없지만 후자는 가질 수 있다면서, 그 용기를 따로 가방에 넣었다. 그걸 간직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서 책장 맨 아래 칸에 둔 용기를 내려다봤다. 동그란 스티커 자국과 연노란 겨자소스 얼룩이 졸아붙어 있었다. 그의 주장을 본뜨자면 ‘우리의 추억이 담겨있어’서 그렇지, 내 눈엔 여전히 분리수거될 대상이었다. 그는 특별한 날의 영수증을 모으는 용기로 쓰겠다며 사정했다. 내겐 영수증마저 휴지였지만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산다는 건, 그런 거였다.

  그런데 이 용기였다. 내가 버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 볼품없는 용기. 여기에 지푸라기 같은 완충제를 깔고, 그 위에 달걀만 한 돌멩이를 누이면, 일명 ‘반려돌’이었다. 또는 ‘애완돌’인데, 아무튼 나는 당혹스러웠다.

  내가 네이버 스토어에서 처음 본 반려돌은 농부였다. 밀짚모자를 쓴 돌멩이는 앙증맞긴 했다. 눈, 코, 입은 옴폭 파였고, 입가에 볼 터치를 한 듯 연붉은빛이 감돌았다. 그렇지만 생명체는 아니니까, 나는 상세 페이지를 모조리 정독했다. 가령 내가 놓친 내막이 있길 바랐다. 돌에 내장된 칩이 있다든지, 그로 인해 미니어처 호미를 휘두른다든지, 하다못해 풍년을 기원한다는 의미라도 있길 바랐다. 단순 변심에 의한 교환 및 환불은 불가합니다. 최하단에 기재된 주의 사항까지, 세 번 읽고서야 나는 인정했다.

  그가 결제한 건 그저 돌이었다. 조만간 돌이 도착할 거였다.



*


  덩이를 소개할게요! 유튜버의 얼굴이 사라지고, 내부가 훤히 노출된 이층집 모형이 등장했다. 나도 어릴 적에 가지고 놀았던 바비 인형의 집이었다. 진한 분홍색 현관을 밀면 다이닝 룸이 있고, 탁자와 의자를 지나치면 냉장고와 오븐이 있었다. 굴뚝으로 이어지는 벽난로도 있는데, 아치에서 대롱거리는 줄을 잡아당기면 숯이 빨개졌다. 그 광경이 아늑해서 조명을 켰다가 끄기를 반복하게 됐다. 기어이 전지가 소모됐고 줄도 끊어졌던 순간이 생생했다.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몹시 비탈졌다. 차라리 사다리에 매달리는 시늉을 하는 게 나았다. 바닥재는 부실해서 실제로 바비네가 거주한다면 층간소음에 시달릴 거였다. 폴짝 뛰기라도 한다면 대번에 무너졌을지도. 그래도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어서 욕실엔 욕조와 변기가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었다. 물구멍 없는 샤워기는 반투명한 고리에 끼여서 떼는 게 쉽지 않았다. 타일에 하트 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그중 하나는 누르면 말랑말랑했다.

  가장 화려한 장소는 침실이었다. 네 기둥을 레이스로 덮은 침대, 은실로 꿰맨 솜이불과 베개, 그곳에 누우면 마름모꼴 통창으로 세상을 내다볼 수 있었다. 물론 바비는 인형이고, 인형은 세상을 내다볼 수 없다. 하지만 어린 나는 온 세상을 내다볼 것처럼 열중했었다.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유튜버도 중고 거래로 얻은 바비의 집에 푹 빠져 있다고 했다. 정확히 따지자면, 덩이의 집이라며 깔깔거렸다. 수면 안대를 찬 덩이를 클로즈업하면서 영상이 종료됐다.

  내가 검색한 키워드는 ‘돌 키우기’였다. 일단 돌을 사고파는 건 알겠는데, 도대체 어떻게 키운다는 건지 감이 잡히질 않아서였다. 그러나 단 한 편의 콘텐츠로 깨달을 수 있었다. 돌을 키우기보다는 돌로 놀이하는 셈인데, 이러나저러나 공들일 가치가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그 와중에 조회 수가 어마어마한 걸 보니 공들일 가치가 있긴 했다. 덩이를 키우는 유튜버는 구독을 독려하며 이리 강조했다. 다음 주 실버버튼 언박싱을 기대해 주세요! 나는 무심코 댓글 창을 스크롤하다가 멈췄다. 반려돌 세계관도 빈부격차 심각하네^^

  산타 차림의 자갈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어린이, 짱돌을 실은 튜브를 대얏물에 띄우는 청년, 손수 뜨개질한 머플러로 바윗돌을 감싸는 노인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근사한 집을 장만해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라탄 둥우리나 모조 조개껍질에 장식하면 그나마 예쁘장했다. 대체로 쿠키용 틴 케이스, 일회용 도시락통, 사무용 정리함을 재활용하는데,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화 토이 스토리에서 포키가 깜찍한 건, 움직이는 그림이기 때문이었다. 진짜 포크에 접착제를 바르고 눈알과 털실을 붙이면, 조악할 뿐이었다.

  나는 갑작스레 걱정됐다. 자기야, 돌 어디서 샀어? 링크 보내 줘. 그에게 메시지를 발송한 후 PC 버전에서 로그아웃했다. 일분일초가 소중한 점심시간에 누군가가 내 메신저를 뒤지진 않겠지만, 직장에선 조심해서 나쁠 게 없었다. SNS를 하면서 두리번대는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이게 내 업무인데도 혹여나 문제로 불거지진 않을까 상상했다. 클라이언트가 돌을 팔라고 하진 않았을 텐데? 상사가 지적하더라도 구실은 정해져 있었다. 플롯 분석 중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매번 메뉴를 고심하는 신세였다. 오늘은 비위를 맞출 겸 돈가스를 추천하려는 찰나, 폰이 진동했다.

  직구라서 취소 못 해. 사랑해!



*


  잘만 가르치면 웬만한 대화는 할 수 있어.

  파마머리를 한 사장님이 목걸이에 달린 열쇠로 자물통을 풀었다. 철창이 열리자마자 앵무새가 종종걸음을 쳤다. 그네에서 내려와 밧줄을 타더니 이윽고 문가에 다다랐다. 그런데 더는 나서지 않고, 발가락으로 철봉을 휘어잡았다. 꼼지락대는 발톱이 제법 날카로웠다.

  일전에 입양한 고객이 그러는데, 글쎄 사랑한다고 그랬대. 웬만한 자식보다 낫지.

  사장님이 앞치마의 주머니에 꽂혀있던 막대기를 꺼내서 새장 쪽을 짚었다. 그가 바통을 넘겨받아서 들이대자, 앵무새가 사뿐히 걸터앉았다. 푸른 날개에 부리를 박고 깃털을 고르는 모습이 기특했다. 막대기에서 옆걸음질할 때마다 야들야들한 꽁지깃이 달싹거렸다.

  얘 이름이 뭐예요?

  이름은 키우는 사람이 지어줘야지. 품종은 코뉴어야. 그린칙 코뉴어.

  코코야. 안녕?

  어머, 벌써? 이름 지었으니까 데려가야겠네!

  사장님은 허허댔지만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앵무새는 어느새 그의 어깨를 거닐고 있었다. 그는 경직된 몸짓으로 앵무새의 동선을 헤아리려고 애썼다. 그 눈길에 희망이 그득했다.

  배변 훈련은 안 했나 봐요?

  내가 엄히 끼어들자,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새장 안은 배설물 범벅이었다. 주로 횃대와 자그마한 바구니에 몰려 있었다.

  어려서 그래요. 하긴, 십 분 간격으로 싸니까 패드를 자주 갈죠.

  냉기를 감지한 사장님이 존댓말로 바꿨다. 이어서 국수처럼 생긴 간식을 내젓자, 앵무새가 파드닥 날아갔다.

  핸들링이 어렵진 않네요. 영리한 것 같아요.

  그러게, 데려가지. 나는 데려간 뒤에도 상담해 주는데.

  사장님이 나를 곁눈질하며 국수 가락을 그에게 넘겨줬다. 국수 가락은 이내 앵무새의 차지가 되었고, 조금씩 짧아지더니 끄트머리만 남았다.

  먹성이 좋네요.

  내가 칭찬하자 그가 설레발을 쳤다.

  베란다에서 키우면 되려나? 아무래도 춥겠지? 열대 우림 출신이긴 해도 여름엔 덥겠지?

  나는 대꾸하지 않고 매대를 둘러봤다. 가로는 세 뼘 반, 높이는 다섯 뼘 이상이어야 앵무새가 지내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더불어 구색을 갖추려면 몇 가지가 필요한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새를 위한 텐트를 포치라고 하는데, 필수품인지 새장마다 장착되어 있었다. 톱밥과 비슷한 건 베딩이라고 하는데, 프리미엄 등급은 품절이었다. 모이통엔 마땅히 모이를 줘야 하고, 간혹 곡물이나 영양제도 보충해야 했다. 이 외에도 발목에 채우는 링과 연장하는 끈, 미용가위와 장난감 따위를 더하면, 얼추 월급에 맞먹을 터였다.

  내가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는 사이, 그도 어느 매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무엇에 꽂혔나, 시선을 따라갔더니 가격이 적힌 라벨이었다.

  그린칙 코뉴어 360,000원, 십 퍼센트 할인가였다.



*


  값을 매긴다는 게 말이 돼?

  그는 격양된 목소리로 따졌다. 나는 내게 따지지 말라는 듯이 그를 흘겨봤다. 그가 내게 따지지 않은 걸 알면서도 그랬다.

  삼십육만 원? 코코가 그것밖에 안 된다고?

  그는 식식대며 내 손에서 에코 백을 빼앗았다. 원 플러스 원으로 득한 두부, 대통령의 한마디에 등락하는 대파 한 단이 다여서 가벼운데. 그는 내가 짐을 지는 걸 용납하는 법이 없었다.

  얼마여야 하는데?

  어?

  앵무새가 얼마여야 하냐고.

  그는 멍하니 땅만 보고 걸었다. 나는 급히 그와 팔짱을 끼고 건널목을 건넜다. 그가 넋을 놓았을 땐 내가 이끌어야 했다. 이런 게 부부라고, 나는 다짐하곤 했다.

  좋은 주인 만날 거야. 이왕이면 부잣집으로 가면 좋겠다.

  내가 종알대도 그는 침묵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천변으로 향했다. 이마트에서 장을 보고 우리네 아파트 단지 주변을 산책하는 건, 우리가 주말마다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가족을 만났으면 좋겠어.

  뭐?

  코코가 주인 말고, 가족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

  기왕이면 부자가 좋긴 하겠다.

  그는 나 몰래 꼬불쳐 둔 광고지를 내놓고 벤치에 펼쳤다. 나는 순순히 궁둥이를 붙이고, 풀 내음을 맡았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녹다가 만 채로 풀밭에 뭉개져 있었다. 맑은 냇물이 흐르고, 다채로운 식물이 자라는 길이라서, 우리는 이곳을 즐겨 찾았다. 봄이 오면 벚꽃이 만발하는데, 그 풍경에 반해서 이 동네를 임장했었다. 저 멀리 오밀조밀한 상점가 한가운데 공인 중개 사무소가 있었다. 그곳에서 전세 계약서에 도장을 찍던 그의 옆얼굴이 선했다. 그의 관자놀이에 흐르는 땀을 훔치던 내 손아귀에도 식은땀이 고여 있었다. 그날 우리가 이체한 건 두 영혼까지 끌어모은 전 재산이었다.

  냥구멍이 잠잠하네.

  그가 패딩의 안주머니에서 사료 봉지를 꺼내더니 살짝궁 내둘렀다. 빠스락대면 고양이가 나타날 수도 있었다. 목재 다리의 들머리에 개구멍이 있는데, 들락거리는 고양이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스티로폼 하우스에 담요가 들어있고 물그릇과 밥그릇이 가득했으므로 우리 말고도 돌봐주는 주민이 있는 구역이었다.

  요 며칠 한파가 심했잖아. 잘못된 건 아니겠지?

  괜찮을 거야.

  나는 그를 안심시키고 싶었다. 그래야 나도 안심할 수 있으므로.

  어쩜 가족을 만났을 수도 있어!

  나는 일부러 해맑게 굴었다. 그가 미소 짓자, 어디선가 아옹거리는 기척이 들렸다. 이만하면 평온한 한낮이었다.



*


  신혼집을 단장하는 데에 무려 두 달이나 걸렸었다. 그와 나의 세간살이는 합해봤자 일 톤 용달차에 실을 만치였다. 이삿짐을 나른 기사님이 가전과 가구는 없느냐고 했을 정도로 단출했다. 그렇다는 건 가전과 가구를 죄다 새로 들여야 한다는 뜻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가전과 가구가 배송됐다. 속히 설치할 수 있는 정수기부터 도면을 교류하며 설계한 드레스룸까지, 엔지니어들이 동시에 방문한 적도 있었다. 우리는 반차를 내거나 일정을 조율하며 집안을 꾸렸다.

  마침내 커튼을 달고, 햇살에 눈살을 찌푸리지 않으며 늦잠을 잤던 게 작년 말일이었다. 정오가 되어서야 일어난 우리는 킹사이즈 매트리스의 탄성을 극찬했고,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입맞춤하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오븐형 에어프라이어로 조리한 닭강정과 와인 셀러 모드로 보관한 캔맥주에 열광하며, 저녁 식사를 마친 직후 카펫에 드러누웠다. 마치 마법의 양탄자를 탄 듯 오붓하게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새해는 쏜살같이 흘렀다. 직장과의 거리가 멀어진 만큼, 출근에 삼십 분이 추가됐고, 퇴근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걸 체감했다. 어차피 러시아워를 피하느라 사무실에 머물러서였다. 이렇다 보니 도저히 요리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평일에는 외식하거나 배달 음식으로 해결했다. 금요일 밤에는 반주하며 토요일을 계획했고, 토요일 밤에도 반주하며 일요일로 미룬 계획을 도모했다. 일요일 밤에는 차마 반주할 수 없으므로, 식기세척기에 술잔이 그대로 있었다.

  술잔을 사지 않아도 된다는 건 간간이 집들이하면서 알게 됐다. 가족과 절친한 친구만 초대했는데, 대개 술과 잔을 선물했다. 그 술은 당일에 동났고, 잔은 켜켜이 쌓였다. 청주를 따르면 달그림자가 비치는 도기, 막걸리를 따르면 시원하게 유지하는 놋쇠, 위스키를 따르면 봉우리가 발광하는 글라스 등등, 갈수록 늘어나서 골치가 아팠다.

  나는 케케묵은 가재도구는 처분하고, 여유 공간을 확보하기로 했다. 양념장이 스며들어서 너저분한 반찬통, 그 통에 수집한 치킨 쿠폰과 미니 맛소금, 사은품으로 딸려 있었을 생맥주잔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기를 끌어냈을 때, 그가 허리를 껴안으며 얘기했다.

  이게 뭔 줄 알아? 식품 건조기야. 트레이에 채소나 과일 널어서 말리는 거.

  난 동남아 가도 말린 망고 안 먹어. 자기도 안 먹지 않아?

  아, 고구마말랭이 만들려고 샀어. 흰둥이 주려고.

  흰둥이는 옛날에 무지개다리 건넜잖아? 이거 당근으로 팔자.

  나는 플러그가 달린 본체를 뒤집어서 제조 연월을 확인했다. 하도 구형이라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콘센트에 꽂아봐야 했다.

  나중에 쓸 건데 두자.

  이걸 어디다 써?

  언젠가는 강아지를 키울 수도 있고.

  어차에 그가 말을 끊었다. 그가 끊지 않았다면 내가 끊었을 거였다.

  뒤치다꺼리하는 거 질색이야.

  나는 정색했다.

  우리가 동물을 키울 일은, 절대로 없어.

  그의 눈빛에 절망이 어렸다.



*


  나의 첫 동물은 고양이였다. 반려동물이라고 하지 않은 건, 방에 들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길고양이라고 하지 않은 건, 길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드넓은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당시에는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았고, 부엌의 후문으로 통하는 보일러실이 있었다. 거기엔 내 가슴 높이의 기름 탱크가 있었는데, 그 덕에 따뜻해서 곧잘 드나들었다. 천장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아끼는 양말을 널면 보송하게 마르는 게 참 좋았다. 지금도 우연히 기름내를 맡으면 어둑한 시멘트 벽돌이 떠오르곤 한다.

  배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건조한 열풍에 하늘거리는 스타킹, 소켓의 접촉이 불량해서 깜빡이는 전등알, 그 정경 속에 고양이가 나타난 건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이었다. 나는 공구함을 딛고 빨래집게로 교복을 집다가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넘어질 뻔했다. 슬리퍼가 벗겨지자마자 덤벼든 무언가, 그건 바로 고양이의 샛노란 눈이었다.

  나는 첫눈에 반하고 말았다. 얼룩덜룩한 털, 쫑긋한 귀, 유연한 꼬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고양이였으니까. 나는 하교한 후 고양이의 네 발을 조몰락대는 낙에 등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아주 친해지고서야 시도한 애정 표현이었다.

  하악질을 하던 고양이는 서서히 곁을 줬다. 짜서 먹이는 츄르를 주면 너그러웠기에 나는 용돈을 아껴야 했다. 필통에 필기도구 대신 츄르를 채우는 게 훨씬 기뻤다. 그만큼 고양이를 품는 시간이 길어졌으니까. 내게 안겨서 혀를 날름대는 고양이는 신기하게도 깔끔했다. 분명 여기저기 나다녔을 텐데, 발바닥이 복숭아 젤리처럼 말쑥했다.

  그랬으므로 한 번쯤은 고양이를 방에 들일만한데, 어찌 그러지 않았는지는 나도 의아하다. 부모님은 부동산을 운영하느라 바빴고, 소소한 부엌일을 하는 건 외동인 나뿐이었다. 생일과 같은 기념일은커녕 명절도 쇠지 않는 탓에 가스레인지에 거미줄이 쳐질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먼지만 쌓여가는 선물 세트를 뜯었다면, 그중에서 참치 통조림을 골라잡았다면, 그 비린내로 고양이가 문턱을 넘도록 꼬드겼다면,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냉정하게 걸쇠를 채웠다. 열대야인데도 반지하를 벗어나며 눈치를 봤다. 미련이 없는 건 오히려 고양이였다. 내가 가져다준 헝겊 쪼가리에 드러누워서 제 몸을 핥느라 정신이 없었다. 영역을 넓히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는 듯했다.

  어쩌면 고양이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도 몰랐다. 짐작건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혼자가 되었고, 뒤뜰을 헤매다가 기어든 곳에서 나를 간택한 거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간택도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므로 안전지대에 길들은 거였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닮았다고, 나는 넋두리하곤 했다. 한창 사춘기였기에 모두에게서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부모, 선생, 친구, 심지어 나조차도.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고양이라도, 내가 밀어낼 수 있는 존재여야 했다. 다행히도 고양이는 순했다. 발라당 누워서 배를 내보이며 나를 달가워했다.

  그랬던 고양이가 자취를 감춘 건 내가 수능을 치른 늦가을이었다. 나는 합격 부적을 꿰맨 방석을 옆구리에 끼고 창고를 샅샅이 뒤졌다. 통돌이 세탁기의 뚜껑을 열었다가 닫고, 소주병이 꽂힌 짝을 들었다가 놨다. 공병들이 술렁이는데도 고양이가 달려오지 않았다. 평소라면 수돗가에서 햇볕을 쬐다가도 한달음에 맞이했을 거였다.

  고양아!

  나는 있으나 마나 한 문짝을 밀면서 소리쳤다. 녹슨 경첩이 끼익하면서 메아리칠 뿐, 고양이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 동안 기다린 나는 방석을 내던졌다. 맨땅에 덩그러니 쓰러지는 꼴이 처량했다. 나는 서운한 마음을 누그러뜨리려고 심호흡했다. 비가 내리려는지 흙내가 진동했다.



*


  요번 방학엔 서울에 가 있어.

  어디? 외갓집?

  내가 캐물어도 엄마는 분주했다. 거울 앞에서 아이라인을 그리고 속눈썹에 마스카라를 발랐다. 그럴 때 짓는 표정이 우스꽝스러워서, 나는 흉내를 내며 골리곤 했다. 머잖아 나도 그러고는 피식피식했다.

  대학교는 개강일부터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예비 신입생인 나는 알 턱이 없었다. 그간 겪은 행사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로 진행된 입학식, 기껏해야 한 살 많은데 어른스러운 선배가 설명하는 수강 신청, 세계는 넓고 괴짜는 넘쳐난다는 걸 목격한 MT, 이 모임에 참가하려면 앞서 거처를 마련해야 했다. 기숙사에 지원할 예정이었지만 그전에 상경할 일이 적잖았다. 기숙사생으로 선정되면 교내 보건소에서 신체검사도 받아야 했다.

  넌 운 좋은 줄 알아! 나 같은 엄마가 어딨니?

  엄마가 파우치에 화장품을 쓸어 담으면서 생색냈다. 에센스, 파운데이션, 클렌징폼, 품명을 줄줄이 읊더니, 나름의 요령을 간단히 덧붙였다.

  잔소리하지 마. 샘플 주면서.

  기초는 비싼 걸로, 엄마네 가면 사 줄게. 미샤라고, 멋들어진 매장이 오픈했다더라.

  엄마네?

  외할머니는 내 엄마야. 너만 엄마 있는 줄 아니?

  립스틱을 마저 칠하는 엄마의 뒤태에 설렘이 묻어났다. 아빠의 다정다감한 말투를 빗대자면 ‘촌놈에게 시집와서 고생하느라 고향에 가지 않은 지 수년’이므로 그럴 만했다.

  우리 엄만 좋겠네. 손주가 똑똑해서!

  엄마가 내 볼을 잡고 뽀뽀하더니 확 부둥켜안았다. 내 콧잔등에 엄마의 머리카락이 닿아서 간지러웠지만 잠자코 안겨있었다. 엄마의 목덜미에서 한약의 향기가 났다. 겨우 사십 대에 접어들었으면서, 인삼을 함유한 로션은 왜 발랐던 건지. 그 나이와 같아지고서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물며 스무 살의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투성이였다.

  그토록 고대하던 날, 엄마는 동행하지 못한다며 나만 택시에 태웠다. 홀로 터미널에 가서 승차권을 예매하고 고속버스를 탄 나는 배낭을 끌어안고 저주했다. 부동산이 망해서 엄마가 서울에 왔으면, 엄마가 서울에 와서 아빠도 따라왔으면, 아빠가 따라와서 서울에 부동산을 차렸으면. 우리 가족이 함께 살기를 꿈꾸며 단잠에 빠졌다. 얼마나 깊이 잤는지 휴게소에 들른다는 안내 방송도 어렴풋했다. 잠결에 눈을 가늘게 떴더니, 외할머니가 주먹으로 차창을 두들기고 있었다.

  설에는 온다니?

  외할머니는 특유의 사늘한 투로 물었다. 나를 반긴 건 잠깐이어서, 엄마의 엄마라는 사실을 상기했다.

  글쎄요.

  나는 번화한 도심에 홀려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드높은 빌딩 숲과 형형색색의 간판이 나를 들뜨게 했다. 외할머니가 한군데를 찍으라고 해서 냉큼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넌 운 좋은 줄 알아! 나 같은 할머니가 어딨니?

  메뉴판에서 스테이크를 고르던 외할머니가 우쭐댔다. 나는 빵에 스프레드를 바르다가 엄지척했다. 외할머니는 천에 돌돌 말린 양식기를 왼쪽으로 밀었다.

  우와! 할머니, 엄마랑 판박이예요!

  그러는 넌 아닌 줄 아니?

  전 아빠 닮았다면서요?

  내가 대들자, 외할머니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불현듯 집이 그리웠다. 엄마와 아빠가 있는, 설령 그 둘이 비우더라도, 아늑한 우리 집. 아울러 고양이가 보고 싶었다. 이름이라도 지어 줄 걸, 후회스러웠다.



*


  괜찮겠어?

  안 괜찮으면 어쩔 건데?

  내가 되묻자, 엄마의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까딱하면 눈물바다가 되던 시기였다. 나는 이를 악물고, 양옆으로 옷을 가름했다. 거의 입을 만한 옷이 아니라서, 헌 옷이 산더미로 쌓여갔다. 두 학기를 이수했을 뿐인데, 나의 스타일은 무척 달라져 있었다. 실컷 울어도 눈가가 번지지 않는, 방수 메이크업을 엄마에게 전수했을 정도였다.

  외가에서 지내라니까.

  그러는 엄마는?

  우리는 빈말을 주고받으며 잡동사니를 정돈했다. 신축 오피스텔답게 사방에서 새것의 포스를 풍겼다. 엄마가 시골집에서 가져온 물건들은 기죽은 시골 쥐처럼 겉돌았다. 특히 상패와 액자는 촌스러워서 몰래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미안해.

  남부럽지 않은 월세방을 구해줬으면서, 엄마는 사과했다. 내가 첫 번째 중간고사를 치르자마자 아빠와 이혼했다고 통보했을 때도, 캠퍼스를 관광하다가 외할머니와 대판 싸운 어버이날에도, 아빠가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시고 오랜만에 친가와 마주한 장례식장에서도, 의연했던 엄마였다. 그런데 심경의 변화가 있는 듯했다. 부쩍 주눅이 들어서 나의 안위를 챙겼다.

  시골집 팔면, 엄마는 어쩔 건데?

  나는 전공 서적에 청소년 잡지를 포개며 떠봤다. 다시 정기 구독하려면 엽서를 보내야 했다. 최신 호에 달린 신청서를 뜯어서 책상에 올려뒀다. 그러는 동안에도 엄마는 묵묵했다. 옵션인 인덕션 레인지와 드럼 세탁기를 만지작댔다.

  아! 새끼를 낳았더라?

  새끼?

  통돌이 부근에 있는 수건 뭉텅이 말이야. 거기에 고양이가 새끼들을 낳았더라고.

  새끼들?

  엉. 세 마리가 꼬물대는데, 눈이 막 파랗더라.

  어미는?

  없던데?

  없어? 어딜 가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아니?

  나는 꾹 참았던 설움을 뿜어냈다. 목이 찢어지도록 엄마를 원망했다. 엄마는 연애하면 티가 팍팍 나는 부류였다. 고양이의 안부를 전하면서도 손거울을 들여다봤다. 수시로 폰의 폴더를 들추면서 생글방글했다.

  엄마가 그래도 돼? 엄마면서, 그래도 되냐고!

  내가 비난하자, 엄마도 맞섰다. 어른이 되면 알 거라고, 엄마가 되면 알 거라고 응수했다. 나는 결코 그럴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른은 되었지만,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다.



*


  우리나라 유모차 부대가 다 모였나 봐!

  광장에 진입하자마자 그가 감탄했다. 그야말로 아웃렛은 신혼부부 천지였다. 동일한 브랜드의 재킷을 입은 커플, 그들의 로망이 깃든 신발을 신은 아이, 그 신발로 서기에는 연약한 아기, 그 아기를 싣고도 부드러이 밀리는 아기차, 이 모든 게 어우러지는 현대의 건축물. 방문객은 이곳을 ‘현아’라고 했다. 성씨는 지역에 따라서 송 혹은 김이었다. 우리는 송현아를 종종 찾았다. 송도는 우리가 목표로 하는 도시이기도 했다. 상급종합병원만 건립된다면 노후를 보내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요즘은 유모차라고 하면 안 된대.

  내가 수다를 떨며 토끼 조형물을 가리켰다. 보라색 장갑을 낀 아이가 토끼의 등에 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통통한 다리를 올리려는 자세가 깜찍했다. 그 장면을 놓칠세라 폰으로 사진을 찍는 남자의 곁에 아기차가 있었다. 가죽 핸들에 박힌 로고가 멋스러웠다.

  그럼, 뭐라고 하는데?

  아기차, 아님 유아차.

  맞네. 아기가 타니까 아기차. 근데 개모차는 뭐라고 하지?

  그가 손깍지를 하더니 정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달리 인파가 북적였는데, 그만큼 소란스러웠다. 잔디밭에서 뛰노는 강아지들이 앙칼지게 짖어댔다. 도중에 알림판이 있어서 훑다가 개모차를 뭐라고 하는지도 배웠다. 서비스 라운지에서 반려견 트롤리를 대여할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거기 말고 여기.

  그가 자리를 권했다. 순순히 앉고 보니, 역시나 시야가 탁월했다. 강아지 놀이터를 관망하기에 최적의 위치였다. 커다란 리본이 달린 스웨터를 입은 푸들이 포메라니안의 엉덩이를 킁킁댔다. 스피츠와 꽁지머리를 한 요크셔테리어가 뒹굴자, 기다란 털이 폴폴 날렸다. 그는 헤벌쭉거리면서 강아지들의 성격을 생중계했다. 이토록 동물을 좋아하는데, 키우지 않겠다고 못 박은 게 다소 겸연쩍었다.

  애기들을 좋아하나 봐요?

  귀걸이안경을 쓴 할아버지가 넌지시 말을 걸었다. 바퀴가 달린 수레에서 이동용 장을 떼어 냈는데, 그게 트롤리의 구조였다. 할아버지는 장을 화단의 턱에 놓고 디귿 형태인 지퍼를 내렸다. 그러자 가리개가 벌어지고 강아지의 대가리가 불쑥 솟았다. 귓가의 털이 풍성한 파피용이었다.

  와! 인사해도 돼요?

  그는 허락을 구하고는 천천히 손등을 내밀었다. 파피용은 우아하게 콧김을 내뿜더니 할아버지만 주시했다. 할아버지는 침이 마르도록 파피용을 자랑했다. 애초에 그러려고 우리와 합석한 것 같았다.

  수아야, 손!

  할아버지가 쪼그만 육포를 주자, 파피용이 개인기를 뽐냈다. 나는 앞발을 드는 파피용보다 호칭에 솔깃했다.

  이름이 수아예요?

  어허허, 사람 같은 이름을 지어 주면 오래 산대서.

  할아버지가 장에서 파피용을 들추어내더니 허벅지에 앉혔다. 파피용은 할아버지의 콧구멍을 우러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파피용의 흥미를 끌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나는 그만하라는 제스처로 그의 팔꿈치를 당겼다. 우리가 일어나자, 할아버지가 복 많이 받으라며 덕담했다. 파피용의 목줄에서 ‘수아’라는 각인이 번질거렸다.



*


  복도의 벽면에 ‘방수기구함’이라고 써진 궁서체가 돋보였다. 항상 있던 글자가 새삼스레 눈에 띈 건, 그 아래에 놓인 택배 상자가 낯설었기 때문이다. 송장 번호를 비롯한 정보가 에이포 용지에 인쇄되어 있었다. 두 장이 부착되어 있는데, 오른쪽은 세관신고서였다. 온통 알파벳이므로, 틀림없이 돌이었다. 타국에서의 긴 여정을 마치고 한국의 한 가정집에 당도한 돌. 나는 상당히 무겁다고 생각하며 상자를 주방으로 옮겼다. 드디어 돌을 영접하는 날이었다.

  뒤이어 귀가한 그는 의외로 덤덤했다. 애타게 기다린 줄 알았는데, 도리어 주문한 걸 까먹은 눈치였다. 연말연시에 맞물려서, 한 달이나 지났으므로 그럼직했다. 그나마 설날 연휴를 피해서 다행이었다. 국내에서도 파는데, 구태여 해외 상품을 택한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을 터였다.

  장모님이 프랑스에 계시잖아.

  그의 답변을 듣고,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엄마가 프랑스에 사는 것, 프랑스산 돌을 사는 것, 그 간극을 메우기란 쉽지 않았다. 우선 허기진 배를 채우기로 하고,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했다. 모처럼 기름진 중화요리가 당겼다. 그보다는 고량주가 당겨서 핑곗거리로 삼은 거였다.

  메이드 인 차이나일 걸?

  내가 약을 올리자, 그가 선반에 둔 커터 칼을 가져왔다. 테이프가 칭칭 감긴 탓에 상자를 끄르기가 번거로웠다. 더군다나 마트료시카처럼, 상자 속에서 상자가 나오고, 상자 속에서 에어캡이 나왔다. 결국 실체를 드러낸 건, 타원형의 회색 점토였다. 식물원을 관람하다가 흔히 볼 수 있는, 너무나도 평범해서 보이지도 않을, 조경용 돌에 나비 문양이 조각되어 있었다.

  프랑스인도 돌을 키워?

  아니, 원예 사이트에서 샀어.

  그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진발을 받고 말고 할 실물이 아닌데도, 기대치에 못 미친 모양이었다.

  이국적이네. 요렇게 세울 수도 있어. 짜잔!

  나는 홈이 패인 방면으로 돌을 세웠다. 나비가 위쪽에 있어서 머리핀을 꽂은 것 같기도 했다. 이따가 눈, 코, 입을 그려야 하는데, 어떤 펜이 단정할지 고민됐다.

  이름은 정했어?

  아직, 자기는?

  종보, 어때?

  종, 뭐?

  종, 보!

  종보? 어디서 들어봤는데.

  나는 킥킥거리면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세팅했다.

  장인어른 성함, 아니야?

  오오오, 기억력 좋은데?

  아무리 그래도.

  그가 절레절레하며 고량주와 술잔을 가지고 왔다. 나는 괜스레 인터폰의 액정을 쳐다봤다. 이제 배달의 민족만 오면, 상차림이 완성될 거였다.

  어! 비석 같은데?

  내가 돌을 향해 손가락질하자, 그가 내 검지를 잡고 찬찬히 내렸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식탁을 주목했다. 제사상을 차린 듯, 경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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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

심심 임승훈 심심함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심심한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가 "심심해서 집안을 싹 바꿔봤어."라든지, "심심해서 머리핀을 또다시 찾아봤어."라고 하면, 나는 그들이 말하는 심심함이란 일종의 수사라고 생각했다. 진짜 이유는 있는데 말하기 귀찮거나, 말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다고. 대체 그 심심함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그만한 에너지를 들여서 굳이 무언가를 저지르냔 말이다. 하지만 이 년 전 급작스럽게 아내인 진서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심심함에 시달렸다. 사실 위의 말들은 주로 진서가 한 거였다. 그녀는 '심심해서 뭐뭐 했어'란 말을 습관적으로 했다. 나는 때로는 재치 있고 수사적인 그녀의 화법이 귀여웠고, 때로는 완곡적인 그녀의 태도가 우스웠고, 때로는 자기 마음에 시달리다 지쳐버린 그녀가 답답해 종종 짜증이 났었다. 왜 그녀는 본심을 밝히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심심. 진서는 왜 심심했던 걸까?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건 진서와 나의 기질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농담을 하는 사람이었다. 뭐 대단한 농담도 아니다. 대화하다가 내가 무심코 '지금'이라고 말하면, 그녀는 잽싸게 내 말을 자르고 '이 순간-'이라고 흥얼거리는 식이었다. 그러면 나는 재빠르게 눈치를 채고 '바로 오늘'이라고 대꾸해주곤 했다. 섹스할 때도 그 버릇은 어디 가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 위에 벌거벗은 채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비장한 표정으로, "어디, 오늘 자네 실력 좀 확인해 보겠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진서 언니, 그럼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곤 옷을 훌렁 벗었다. 그 무렵 우린 홍명희의 소설 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진서와 광명 본가에서 아버지가 내놓은 책 박스를 뒤적이게 되었다. 진서와 나는 그 속에서 을 꺼내 들고 "우리도 이거 보자, 보자."라며 집에 가져왔다. 그 소설에서 무시무시한 사내들이 임꺽정에게 이렇게 말했다. 꺽정이 언니, 이 우라질 놈의 목을 뎅강 자를깝쇼? 진서는 또한 예민하고 침울한 사람이기도 했다.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툭 내뱉고는(주로 꿈에서 내가 자기가 키우던 양을 잡아먹었느니, 섬세한 사람에겐 섬세한 날이 있다느니 했다), 긴 침묵에 빠지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면 모스 부호처럼 짤막하고 건조한 말을 하긴 했으니 완벽한 침묵은 아니고, 침묵의 근사치에 이르는 그런 상태가 되었다. 짧으면 반나절, 길면 이틀 정도. 그러다가 그 침묵(의 근사치)에서 벗어나서 문득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였다. "심심해서 LA갈비를 만들어봤어."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렇지만 내 사랑은 진서의 사랑과 조금 달랐던 걸까? 확실히 나의 사랑엔 고통이 없었다. 친구의 후배였던 진서를 처음 보자마자 호감을 느꼈다. 까맣고 가느다랗고 풍성한 단발머리,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 그녀는 왠지 어떤 정물 같았다. 그런 그녀를 나는 힐끔힐끔 쳐다봤는데, 그때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 후, 한 달 뒤에 우린 연애를 시작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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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소설

자꾸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꾸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김효나 그는 얇은 회색 잠바를 입고 있었다. 아니다. 그의 시신은 얇은 회색 잠바를 걸치고 있었다. 아니다. 그의 얼어붙은 육체는 얇은 회색 잠바 속에 내동댕이쳐 있었다. 내가 모르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잠바였다. 아니다. 내가 모르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잠바였을 뿐 아니라 한 번도 본 적 없는 체크 남방, 한 번도 본 적 없는 추리닝이었다. 아니다. 내가 모르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잠바, 남방, 추리닝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모르는, 가장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은 얇은 회색 잠바였다. 그의 얼어붙은 육체가 내동댕이쳐진 잠바, 남방, 추리닝 사이에서 내가 가장 모르는, 가장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은 얇은 회색 잠바라고 썼지만 실은 가장 모르는, 가장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은 그였다. 아니다. 실은 가장 아는, 가장 여러 번 본 적 있는 것은 그였다. 아니다. 실은 가장 아는, 가장 무수히 본 적 있는 그였지만 이런 모습의 그는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를 알아볼 수 없었다. 알아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볼 수 없었다. 아니다.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다가갈 수 없었다. 아니다. 다가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차갑게 얼어붙은 그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흰 가운을 입은 직원은 가까이 와서 보시라고 말했다. 아니다. 흰 가운을 입은 직원은 가까이 와서 보고 확인해 주셔야 한다고 말했다. 아니다. 흰 가운을 입은 직원은 가까이 와서 확인해 주지 않으면 무연고자 처리가 될 거라고, 시신이 안치된 지 닷새가 지났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아니다. 나는 알았다는 식으로 입술을 웅얼거렸다. 아니다. 나는 다만 고개를 주억거리며 여전히 그에게서 멀리, 가능한 한 멀리 뒷걸음질 치고 있었고 흰 가운을 입은 직원 역시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이런 일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 즉, 이곳에서는 시신에게서 뒷걸음질 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다. 이곳에서는 시신에게서 옆걸음질 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 같았다. 아니다. 이곳에서는 시신에게서 뒷걸음질이나 옆걸음질 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그 사람들 모두 결국에는 시신 곁으로 바짝 다가가야 하는 것 같았다. 흰 가운을 입은 직원은 가까이 와서 보셔야 한다고 반복하여 말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아니다. 그렇게 하려고 했다. 아니다. 반만 그렇게 했다. 그러니까 반만 가까이 다가갔고, 반만 보았다. 아니다. 겨우 두 걸음 다가갔고, 눈의 초점을 흐리게 하여 그를 보았다. 아니다. 초점을 흐리게 하여 본 것은 그의 얼굴이었고, 얼굴을 제외한 나머지만 분명히 보았다. 아니다.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리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얼굴에 시선이 닿을 때마다 초점은 저절로 흐려졌다. 나는 내 눈이 자동 초점 기능을 가진 카메라 같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고장 난

  • 김효나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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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두더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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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9-02 14:19:17
    두더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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