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night Coffee Club
- 작성일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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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night Coffee Club
나일선
광학적 미디어의 역사는 사라짐의 역사이고 그것이 이제 내게도 사라질 자유를 주고 있다.
- 프리드리히 키틀러, 『광학적 미디어: 1999년 베를린 강의』
찾는 사람에겐 보여, 목소리, 믿고 있기 때문에 들려, 쓰는 일보다 더 하고 싶었던 건 얘기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는 일이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써야 했고 자신이 만들어낸 목소리와 대화하는 것, 그런 걸 소설이라 불렀지. 목소리가 선명해질수록 현실과는 점점 멀어져 어느 순간 사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 사람과 만날수록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할수록 아무도 만날 수 없는 건 그 갈망이 오랫동안 나를 지켜주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너무 열심히 찾았기에 서로를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건지도, 찾아낼 수 있다고 해도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도 길었기에 함께 지내는 법을 몰랐던 것 같아. 미친 사람처럼 자기 안의 모든 것을 다 말해야만 하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자신의 전부가 되어주길 바라거나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된 것 같아. 그게 우리가 시간을 견디는 방식이었으니까. 서로를 알아본다는 것과 같이 있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지만 우리가 만나기 위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라고 말하는 순간 다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더 이상 살지 않아도 괜찮아, 아무도 만날 수 없다고 해도 괜찮아, 이제 네가 내 앞에 있었고 우린 함께 있으니까, 모두가 포기한 질문들 앞에서 목소리는 내게 말했지. 더는 아무것도 찾지 않아서 들려, 더는 믿지 않기에 보여, 모든 감정이 다 지나가고 난 자리에 언제나 내가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잃어버릴수록 무언가를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고, 어디서든 혼자일 수 있었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연결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생기는 것 같아, 듣는 방법을 몰랐기에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가 내게 말해주었지. 오랫동안 서로를 생각한다는 건 연결을 뛰어넘어 하나가 되어가는 또 다른 방식이다.
RB의 소설에서 이런 부분은 꼭 나를 위한 것 같다. 읽고 있으면 항상 그와 커피를 마시거나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꼭 RB가 아니라 다른 누구에게라도. 그에겐 소설이 있었고 나에겐 무엇이 있나? 나중에 보니 노이도 나와 같은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고 세 번째인가, 네 번째쯤 봤을 때 노이는 패밀리 레스토랑 윙키스에서 RB의 소설을 읽고 있는 나를, 극장에서 청소를 하는 나를, 주크박스를 차에 싣는 나를, 묘지 근처를 산책하는 나를, Noodle Express에서 팟타이를 포장하는 나를 봤다고 했다. 그중 어디까지가 나였을까, 나도 모르는 내가 노이의 기억 속에는 있었고 그런 게 좋았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내가 어쩌면 더 살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전에 담배를 피우며 책을 읽는 노이를 본 적이 있고 그때는 이름도 몰랐지만 이상하게도 언젠가 노이와 대화를 하게 될 날이 올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었지 그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노이는 RB의 소설이 좋은 이유에 대해, 그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극도의 인간혐오에 대해, 그것이 그를 고립시켰지만 그렇기에 그걸 읽는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것 같다고, 그것을 나눌 수만 있다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같다고, 심지어 죽은 자들과도 아니 죽은 자들하고만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친구가 없는 것 같다고, 그렇다면 죽음은 곧 친구가 되기 위한 가장 좋은 방식일까? 인간혐오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그의 소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게 없고 그건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런 사람은 살아있어도 언제나 반 정도는 죽은 채로 사는 것 같다고 그는 죽은 채로 살아가는 방법을 알았던 것 같다, 우리에게도 그것이 필요해. 그는 아주 적은 수의 글만 발표했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출간된 세 권의 책 중 두 권이 국내에 번역되어있는데 노이는 대중적으로 외면 받았으며 그렇다고 비평적으로 중요한 상을 받은 적도 없는 그의 책이 어떻게 번역되어 출간될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고, 그 과정을 알 수만 있다면 자기가 살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고, 잊히길 원하는 작가만이 읽힐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모든 종류의 확신이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다수에 속하고 싶다는 감각이, 다수라는 개념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내가 아니더라도 이 소외감을 누군가는 느끼게 된다는 것이 싫고 그래선 안 되는 것 같다고, 소속감만큼 끔찍한 건 없으니까, 끝까지 혼자이기 위해 뭐든 하겠다는 마음이 필요해, RB가 글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나는 그가 버텼을 시간들을 생각할수록 그가 좋아졌다. 노이는 그에 대해 생각할수록 그를 이해할 수 있다기보다는 구체적인 장면들이 떠오른다고, 텅 빈 거실에서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는 그를, 정원을 가꾸며 꽃 이름을 중얼거리는 그를, 이른 새벽 검은 개를 데리고 호숫가 근처를 산책하는 그를, 뒤뜰에 불을 피우고 원고 더미를 던져 넣는 그의 뒷모습 그런 걸 느낄 수 있고 가끔은 너무 지나치게 구체적이라 내가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그것이 곧 이해일까? (그중 어디까지가 RB일까?) 어쩌면 소멸만이 이해에 가장 가까운 행위일까? 봤지만 쓰지 못할 것들과 보지 않고도 쓸 수 있는 것들 사이에 너무 오래 머물고 있는 것 같다고, 진한 이탈리안 블렌드 커피 두 잔과 버터가 올라간 팬케이크를 먹으며 새벽의 윙키스에서 우린 많은 얘기를 했다. 아무튼 그에게는 뭔가가 있어, 그런데 그 뭔가가 그를 평생 주목받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노이는 말했고 나는 동의했다. 근데 바로 그것 때문에 좋은 거라고, 내가 말했고 노이는 동의했다.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지만 나가기 전 노이는 에스프레소를 한 잔 더 시켜서 단숨에 들이켰다. 이건 밤을 대신해서야, 노이는 말했다. 잠을 대신해서인지 밤을 대신해서인지 잘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를 견디는 사람들은 결국 만나게 된다는 말. 그날 노이가 해주었던 그 말이 내겐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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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 사고가 나는 날 이 일을 그만두리라. 다짐 같은 걸 했고 그 전에 먼저 극장이 없어지지 않을까, 당장 다음 달에 문을 닫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사람이 없고 나는 주 3일, 가끔은 4일을 카페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다 7시 반까지 극장에 출근해 전달사항 확인, 영사 기사님이 퇴근하면 영사실 청소, 배송받은 외장하드를 영사실 컴퓨터에 연결해 파일을 옮기고 화면과 사운드 체크 후 시간표 짜기, 빠르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일들을 마치고 그 후엔 책을 읽으며 상영되는 영화를 확인하거나 가끔 무전이 오면 내려가서 상영관 퇴출을 대신하기도 했다. 중간에 10시쯤 Noodle Express에서 직원들의 야식을 시켜주는데 근처에 24시간 영업하며 배달을 하는 곳은 거기뿐이니까, 영사실에 서서 작은 창으로 상영 중인 영화를 틈틈이 들여다보며 누들박스에 담긴 팟타이를 먹고 마지막 상영이 끝나면 새벽 3시나 4시쯤 관객이 아무도 없는 날엔 1시쯤 끝나기도 하는데 요즘 들어 일찍 끝나는 날이 많다. 없어질 것 같은 기운, 그런 걸 잘 느끼는 편이랄까, 느끼지 않을 수가 없고 전에 일했던 곳에서도 자주 가던 카페에서도 그랬고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르겠구나, 싶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김없이 사라졌지, 이번엔 내가 먼저 사라지리라. 상영을 시작하고 20분쯤 지나서 무전이 왔다. 심야 상영을 보러온 사람은 없었고 텅 빈 상영관을 확인한 후 사무실에서 근무일지를 작성했다. 극장을 정리하고 모두가 퇴근한 뒤 가장 마지막으로 나간다. 나 말고는 경비원 고우 씨가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끄고 내려가는 길에 고우 씨와 인사한다. 고우 씨는 불 꺼진 건물에서 아침 7시까지 근무한다. 이 시간까지 깨어있다는 건 죽어있는 거나 마찬가지 같다고, 자긴 너무 깨어있었고 그래서 너무 오래 죽어있었던 것 같다고, 고우 씨는 불면증 때문에 주로 야간 업무를 했고, 전에는 야간 배송을 하기도 했다고, 근데 이젠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고, 야간 근무는 사실 아무것도 할 게 없다고, 밤을 들여다보는 게 내 일이지, 고우 씨는 말했다. 일찍 끝난 날엔 습관처럼 윙키스에 간다. 새벽의 윙키스에서 매번 같은 자리에 앉아 혼자 온 손님들이 하염없이 창밖을 쳐다보고 있거나 각자 무언가에 몰두해 있는 모습을 보며 이 시간이 만들어내는 소음을 듣는 것이 좋고 그들도 나와 고우 씨처럼 각자의 불면을 보내고 있을까? 사람들에겐 몰두할 무언가가 필요하고 그걸 찾지 못한 이들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일까, 생생함에 대한 혐오가 우리를 혼자이게 만드는 것일까, 그 희미함이 우리를 지켜주는 것일까, 나는 얼마나 희미해졌을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예전에도 나였고 지금도 똑같은 나인 채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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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볼래? 하면 듣기도 했었지. 새벽의 윙키스에서 노이는 일하며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과 읽었던 책들, 극장에서 본 영화들, 이제는 사라진 장소와 마음들에 대해 언제까지고 얘기할 수 있었고 새벽의 청계천 근처를 하염없이 걸을 수도 있었지, 얘길 하다 보면 나가서 걷고 싶어지고 할 말을 찾지 못해서라기보다 말들이 알아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것만 같아, 어떤 말들은 걸으면서만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걷지 않으면 못 할 말들이 있어, 잠을 잘 수 없거나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도 걸을 수는 있으니까, 한참을 걸었지만 노이는 전혀 피곤하지 않아 보였고 어차피 자기는 잘 수 없다고 잠들지 못한지 벌써 일 년 정도 되었다고, 언젠가 자신이 꾸었던 꿈에 대해, 그건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는 편지를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어느 순간 목소리가 말했지, 우리가 만나기로 한 것을 잊었냐고, 너무 오래 기다려서 스스로도 자신을 알아볼 수가 없고 아무도 자신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기다림만이 내게 말해주었지, 이젠 약속들이 자신을 죽이고 있다고, 믿고 있었던 만큼 기다림은 더욱 끔찍해져, 날 원망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내가 얼마나 망가진 채 살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고 있었구나, 끔찍할 정도로 무관심했구나, 널 잊지 않았어, 내가 널 꼭 찾을게, 널 만나러 갈게, 말하며 이 목소리를 기억해야지, 이 목소리를 잊어버리는 순간 나도 사라지고 말 거야, 반드시 기억해야만 해, 그러다 눈을 떴어,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생각하다 그건 누구라기보다 어쩌면 나를 이루고 있지만 이제는 감정조차 되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기억들의 메아리 같고 소리는 언제나 기억보다 오래 살아남으니까, 그런데 난 정말로 잊고 있는 게 아닐까? 무얼 잊었는지조차 모른 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가 버린 건 아닐까? 어딘가에서 계속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더 이상 잠들 수 없었지만 특별히 피곤하다거나 졸음이 느껴지지 않았고 어쩌면 더 이상 잠이 필요하지 않은 몸이 되어버렸는지도, 나를 기다리는 그 목소리를 찾아야 다시 잠들 수 있는 건지도 몰라, 아니면 아직도 잠이 계속되고 있거나, 한동안 밤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 고민하기도 했었지, 갑자기 너무 많은 시간이 생겨버렸으니까, 지금처럼 새벽의 청계천을 걷거나 밤새 운영하는 카페를 찾다가 윙키스를 발견했고 아침이 올 때까지 쓰지 않던 일기를 쓰거나 그동안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미뤄뒀던 책들을 읽었고 두꺼울수록 좋았지 밤은 길었으니까, RB의 소설도 그렇게 읽게 되었다고, 잠들 수 있었다면 읽지 못했을 이야기들, 듣지 못했을 말들이 있고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불면이 우리를 만나게 해줬으니까, 궁금해하기도 했었지,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그들은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어쩌면 모두가 한 번쯤 겪는 일이지만 어떻게 얘기하면 좋을지 몰라 아무도 얘기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물어보기도 했었지, RB에게도 이런 시간이 있었을까? 그 시간이 그를 쓰게 만들었을까? 불면의 말을 받아 적는 것 그게 그의 소설이었을까? RB의 소설을 읽을수록 불면의 시간에 대해 알려주려 하는 것만 같아, 잘은 모르겠지만 나는 RB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어쩌면 불면이 우리를 찾아낸 건 아닐까, RB를 찾아낸 것처럼 이젠 우리가 무언가를 발견해야 할 차례가 아닐까? 그래서 일기를 쓰는 것 같다고, 전에는 꿈에 대해 쓰기도 했는데 더는 꿀 수 없으니 삶에 대해 쓰게 되는 것 같다고, 듣는 사람을 따분하게 만들뿐인 꿈 얘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네,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 스스로를 잊을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해, 자신을 제대로 잊어버린 사람만이 무언가를 발견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노이는 말했다. 나는 일기도 쓰지 않았고 어떤 꿈을 꾸었기에 잠들 수 없게 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심야 영화를 보러 다니다가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 생각났고 표정이 없는 직원은 영화가 끝나고 단 한 명의 관객인 나를 위해 문을 열어주고 내가 나갈 때까지 기다리곤 했는데 어느 순간 어쩌면 내가 이 일을 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고 일 년이 넘었나? 왠지 아주 오래전부터 이 일을 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어, 잠들지 못해서 더 길게 느껴지는 걸까? 뭔가를 느끼려고 할수록 나란 존재는 사라지는 것만 같고 그러니 더욱 느끼고 싶어 내가 사라질 수 있도록. 어쩌면 노이가 꿈에서 읽은 편지는 내가 쓴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잠들지 못하게 된 새벽에 딱 한 번 편지를 쓴 적이 있었는데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고 버렸지만 그건 꿈으로 보내는 편지였으니까, 문득 쓴다는 건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라기보단 없애버리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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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키스에서 노이는 홀로 앉아 책을 읽는 손님과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아는 사람이냐고 물으니 카페 친구라고 했다. 새벽에 이곳에 자주 오는 손님들은 근처 토요코인에 묵는 장기투숙객이거나 나처럼 근처에서 야간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노이는 나와 달리 자주 보는 손님에겐 인사를 하고 말을 걸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카페 친구라는 것은 아주 좋은 것 같고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손님과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지만 이름도 직업도 모르고 더 자세한 것에 대해 알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며 커피가 나오면 다시 각자 할 일을 하고 서로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언제든 카페에 가면 만날 수 있고 밖에서의 그들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지만, 우리는 이곳에 함께 있고 오지 않는 날이 있어도 다시 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가끔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 서로가 생각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한동안 보지 못하면 비어있는 자리를 바라보며 소식을 궁금해 하다가 또 오랜만에 나타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도 있다. 아무런 인사도 작별의 예감도 없이 언젠가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될 날이 오더라도, 어쩌면 그보다 먼저 카페가 문을 닫거나 자리를 옮겨서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되어도 그 사실이 슬프고 아쉽다고 해서 억지로 그 만남의 끈을 연장하거나 그 이상 가까워지는 일은 없을 거야, 언젠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커피를 마시다 눈이 마주치면 서로를 알아볼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 게 바로 카페 친구, 노이도 나에게 그런 존재일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우연과 만남의 책』이라는 제목의 책을 써보면 좋지 않을까? 노이는 한동안 그런 걸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쓰지 않았다고, 말 그대로 자신이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우연한 만남들을 책이라는 형태로 모아서 만나게 해주는 것인데 만약 쓰게 된다면 루이스 부뉴엘의 자서전에 나오는 장 콕토와의 에피소드로 시작하고 싶다고, 장 콕토는 1954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루이스 부뉴엘은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았다. 장 콕토는 부뉴엘과 따로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고 오후 시간에 조용한 칼튼호텔 바에서 보기로 했다. 부뉴엘은 약속 시간에 맞춰 그곳에 갔지만 장 콕토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나중에 다시 만난 장 콕토는 부뉴엘에게 왜 약속 장소에 오지 않았는지 물었고 그는 그날 정확한 시간에 그곳에 갔으며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바를 나갔다고 대답했다. 장 콕토는 자기도 같은 시간에 똑같은 행동을 했다고, 그곳은 서로 엇갈리기엔 테이블도 몇 개밖에 없는 크지 않는 곳이었고 그들은 얘기를 나눌수록 서로가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필요한 검증을 다 해보았지만 그들은 그날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앙드레 바쟁의 『오손 웰즈의 영화미학』에 실려 있는 장 콕토의 오손 웰즈 소묘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파리에 있을 때 웰즈와 나는 항상 엇갈리며 빗겨갔다. 그렇듯 서로 만나지지 않았다니 마치 마술에라도 걸린 듯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그와 나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그가 음식점에 들어가면 주인은 내가 방금 자리를 떴다고 그에게 알려준다. 혹은 그 반대 경우이다. 늘 이런 식이다. 그는 전화를 몹시 싫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만나져야 할 경우에만 만나게 된다. 일종의 기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은 필요할 때면 반드시 일어난다."1)
노이는 장 콕토와 부뉴엘이 만나지 못한 이유에 대해, 그들이 우연을 너무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우연이라는 것엔 힘이 있는데 그 힘을 위해서는 모든 의도를 버려야 하고, 그들은 의도라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기에 약속이라는 형태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한 것이 아니었을까? 의도적인 만남을 거부함으로써 그들은 스스로 작은 기적을 만들어내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그날 부뉴엘도 장 콕토도 칼튼 호텔 바에 가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게 그들이 생각하는 만남이었을까? 부재로서의 만남. 아니면 그 시간은 공간이 꾸던 꿈이었거나. 잘은 모르겠지만 그날 칼튼 호텔의 바에 있어야만 했던 사람은 바로 나였어야만 해, 앉아서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고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우연과 만남의 책』을 써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 노이와 요나스 메카스의 『영화작가들과의 대화』에 등장하는 흥미로운 만남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홀리스 프램프턴의 꿈 얘기이긴 하지만 꿈은 곧 만남이니까, 홀리스 프램프턴은 그 꿈을 1970년 초 5월 혹은 6월쯤 꾸었고 그는 뉴욕의 워커 스트리트에 살았는데 마이클 스노우는 캐널 가 모퉁이에 있는 곳에서 「파장」을 촬영했다. 그들은 근처의 데이브 코너라 불리는 곳에서 자주 만나 커피나 계란 크림 같은 것을 먹었는데 꿈에서 그는 마이클 스노우에게 주려고 높이 1미터 너비 3피트에 문양이 찍힌 주석으로 된 선물을 만들었고 거기엔 공간, 이라는 단어가 대문자로 양각되어 있었다. 뒤집으면 크림색 바닥에 빵 상자 같은 녹색으로 같은 단어가 거꾸로 그려져 있었는데 그는 그걸 갈색 종이로 감싸고 두 번 끈으로 묶었다. 모퉁이를 돌아 이걸 마이클에게 가져가야지 생각하며 데이브 코너가 있는 캐널과 브로드웨이 교차로에서 길을 건너 위를 올려다보던 차에 마이클 스노우가 길을 건너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끈으로 묶인 갈색 종이 꾸러미를 들고 있었다. 여기서 뭐해? 그가 묻자 마이클은 대답했다. 널 보러 왔어, 재밌네, 나도 널 보러 가던 참인데, 선물 가져왔어, 그들은 길가 연석에 앉아 자연스럽게 선물을 뜯어보았다. 마이클이 가져온 선물은 텅 빈 액자였는데 아주 우아했고 그 안에는 시간, 이라고 쓰인 흰색 네온이 1초에 한 번씩 깜빡이고 있었다.2)
나는 왠지 이 꿈 이야기가 아주 좋고 만날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이 선물이라는 형태로 만나기 때문인 것 같다고, 그들은 그 이후에도 만나서 데이브 코너에 앉아 커피와 계란 크림을 먹으며 꿈 얘기를 했을까? 알 수 없지만 노이와 함께 그 모습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왠지 뿌듯해졌고 그들이 꿈에서 각자 친구를 위해 만든 선물인 시간과 공간이 구체적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노이는 전부터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특별한 건 아니고 카페에서 그저 자신이 오늘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헤어지는 거지 그게 전부야, 그날의 가장 인상적이거나 마음에 드는 꿈 얘기를 들려주는 사람에겐 커피를 살수도 있고, 그렇지만 사실 가장 좋은 건 꿈에 대해 말하고 나면 그 꿈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고 같이 있던 사람도 사라지고 밖으로 나왔을 때 함께 있던 카페도 사라져버리는 거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꿈만이 그 자리에 선명하게 남게 되겠지, 장소의 감촉으로만 존재하던 꿈이 그곳에 머무는 누군가에 의해 감각될 때 그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의 꿈이 되는 거야, 그렇게 내가 꾸었던 꿈이 사실 누군가가 남겨 놓았던 꿈이라면 나의 꿈이 누군가의 꿈이 된다면, 어쩌면 그 전달만을 위해 내가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우연과 만남의 책』이 아닐까? 노이가 말했다. 꿈을 나눌 수 없는 사람들은 이제 뭘 나눌 수 있지? 노이는 마시고 있던 커피잔을 들어 보였다. 굳이 뭔가 얘기하지 않아도 이렇게 함께 커피를 마실 수 있지,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Midnight Coffee Club. 우린 거기서 만나게 될 거야. 위스키도 있으면 좋겠다, 커피는 진할수록 좋겠지 밤은 계속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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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사라지는 사람들.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면 그들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분명 들어오긴 했지만 나가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얼마 전 심야 상영 중에 상영관에 아무도 없다고 무전이 왔다. 분명 관객이 들어가는 걸 봤는데 상영관엔 아무도 없었고 중간에 나간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야간 경비를 하며 고우 씨도 가끔 그런 경우가 있었다고, 그는 가끔 순찰을 하다 주운 분실물을 전해주기도 했는데 그날은 유리로 되어있는 손바닥만 한 주사위를 가져다주었다. 살펴보니 숫자 대신 알 수 없는 기호가 표시되어 있었고 생각보다 묵직해서 문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포스트잇에 날짜를 적어 영사실 구석의 분실물들을 보관하는 사물함을 열고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물건들을 잠시 바라보았다. 털장갑 한 짝, 이어플러그와 안대, 파란색 접이식 우산, 일회용 필름 카메라, 검은색 BOSE 헤드폰, 갈색 가죽 카드지갑, 펭귄이 그려진 보온병, 새것처럼 보이는 핸드크림, 포켓용 성경, 주크박스 모양의 오르골, 핸드폰 충전기 같은 것들, 날짜가 적혀있지 않아서 언제부터 있었던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과 도무지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도 있었다. 나는 사물함을 닫고 주머니 속에 유리 문진을 넣었고 윙키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도 그것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노이는 잠시 조용해지고 싶을 때 책을 본다고 사람들은 조용해지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아, 침묵을 모르는 사람들, 죽음을 모르는 사람들, 절망을 모르는 사람들, 자기가 뭘 모르는지도 모르는 사람들, 좋은 게 뭔지도 모르면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문제가 되고 그런 사람들의 목소리를 견뎌야 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고,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말은 나에게 너무 멀리 있어, 그래서 글을 써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아, 스스로를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뭐가 될 수 있지? 질문들은 언제나 전방위적이었고 그래서일까 네 질문이 공간을 자꾸 넓히는 것만 같아, 듣다 보면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지는 것만 같아, 그게 네가 질문을 활용하는 방식일까? 노이는 보도 옆의 공중전화부스를 가리키며 갑자기 전화번호부에 대해 그건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멋진 책 같다고 전에 이런 비슷한 얘길 한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구였지? 앤디 워홀이었나? 잘 모르겠지만 앤디 워홀 같은 인간이 할 법한 얘기인 것 같고 분명 그랬을 것이다, 거기엔 온갖 업체의 이름과 번호만이 가득하고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아서 전화를 걸어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고, 아무하고도 연결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두툼한 전화번호부를 손에 쥐어 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세계의 일부를 쥐고 있는 것 같은 충만함을 느낄 수도 있고, 그건 연결을 넘어서는 감각이야, 그러니 이보다 멋진 책은 또 없을 거라고, 노이는 옛날 영화에서 인물들이 전화번호부를 뒤적거리는 장면이 좋다고, 탐정이 나오는 영화에서 사건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하다 아무데서도 정보를 얻지 못하자 그 모습을 보던 탐정 사무소의 직원이 무심하게 말한다, 전화번호부를 찾아봐요, 그렇게 쉬울 리가 없잖아, 하며 펼친 전화번호부에서 그가 찾던 사람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발견한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기다렸다는 듯 그가 찾던 목소리가 묻는다, 누구시죠? 전화번호부, 그 안엔 모든 것이 들어있고 무언가를 찾을 때는 가장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야 한다. 어느새 우리는 Noodle Express 앞에 있었고 이걸 먹을 때마다 마치 잠복근무 중인 형사가 된 기분이야, 자극적이면서도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이 맛이 가끔 너무 생각날 때가 있어, 그만큼 내가 비어있기 때문일까? 함께 볶음면을 먹으며 노이는 말했지, 너무 많은 개연성들의 낭비, 그건 살인보다도 나쁜 것 같다고, 그걸 위해 우리가 무엇을 희생시켰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만드니까, 우리가 희생시킨 것들이 결국 마지막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얼굴이라고, 만약 우리에게도 끝이라는 게 있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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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와 재개봉한 「밀레니엄 맘보」를 오랜만에 극장에서 다시 보며 들었던 생각은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 속 기차가 나오는 장면을 모아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연연풍진」과 「남국재견」에서 터널을 통과하는 기차의 오프닝, 「카페 뤼미에르의」 첫 장면에서 스크린을 가로지르는 모노레일과 기차 소리를 녹음하러 다니는 주인공 하지메, 「밀레니엄 맘보」에서는 기차가 나오진 않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비키가 머무는 도쿄의 호텔 창문을 통해 기차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처음엔 왜 하필 이런 숙소였어야 했을까, 싶었는데 다시 보니 그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비키를 도쿄로 불렀던 잭은 어디로 갔을까?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에 자주 나오는 배우 잭 카오는 「남국재견」의 첫 장면에서 기차가 터널을 통과할 때 전화 통화를 하며 등장한다. 잘 안 들려, 나는 지금 기차에 있어, 기차 안에 있다고, 기차를 통해 자신의 영화를, 비키와 잭의 시간을 교차시키고 싶었을까? 잭은 찾으러 간 비키는 어떻게 되었을까? 문득 얼마 전에 보았던 알랭 타네의 영화 「2000년에 25살이 되는 조나」에서 전직 기관사였던 남자가 교사인 마르코에게 해준 얘기가 생각나기도 했고 기차여행과 기차 운전은 전혀 딴판이야, 철로 때문이지, 기차를 타봤으니 알겠지만 뭐가 보이나? 풍경이 스쳐 지나가지, 영화처럼, 이젠 극장에 가지 않지만 기관석에서는 풍경이 지나가는 게 아냐, 들어가는 거지 그 풍경 속으로 마치 음악처럼, 곧장 앞만 보고 가는 거야, 철로가 합쳐지는 곳으로 근데 아무리 가도 합쳐지지가 않아, 「밀레니엄 맘보」는 2001년에서 이미 십 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때를 회상하는 비키의 목소리로 시작하고 「2000년에 25살이 되는 조나」에서는 20세기에 있는 주인공이 2000년이 되면 25살이 될 자신의 아들 조나를 생각하며 끝난다. 20세기를 향하는 목소리와 21세기를 향하는 목소리, 겹쳐지지 않는 풍경, 그런 것을 겹쳐보고 싶었고 노이는 비키에 대해 생각하다가 자기는 기관사가 되어야만 할 것 같다고 그래야만 내가 찾던 것이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 말은 풍경을 겹쳐보고 싶다는 말이었을까? 아니면 풍경은 이미 하나의 이야기라는 뜻이었을까? 노이는 나중에 비키가 또 등장하는 영화가 나오면 좋을 것 같다고 겹쳐지지 않는 시간, 그걸 겹치게 할 수 있는 건 결국 이야기뿐이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노이는 시간이 걸리는 것들을 믿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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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노이가 말한 대로였고 전시 공간 같기도 하고 연구실 같기도 했는데 처음 봤을 때 왠지 나는 스크린을 떠올렸다. KOLDSLEEP이라고 쓰인 큰 유리창을 통해 온통 하얀색의 방이 들여다보였고 흰색 침대에는 동면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잠들어있었는데 낯선 사람의 무방비한 모습을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거기엔 내 시선을 강하게 끄는 것이 있었고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잠들어 있는 사람은 노이였다. 자세히 볼수록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고 이게 바로 불면의 이유였을까, 노이는 SNS에서 불면에 대해 찾아보다가 KOLDSLEEP을 알게 되었고 사진을 보자마자 누군가 이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여긴 꿈을 연구하는 곳이고 불면을 위한 곳이고 바로 나를 위한 곳이야. 버스를 타고 무작정 KOLDSLEEP에 도착했을 때, 노이는 지금의 나처럼 창을 통해 침대에 누워 잠들어있는 사람을 보았고 그게 자신임을 알았다. 공간의 주파수가 나를 여기로 오게 한 것일까, 노이는 서서 한참 동안 잠든 자신을 지켜보았지만 밝은 조명 아래서도 그저 평온하게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노이는 자신이 이곳을 떠나면 뭔가를 잃어버리게 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지만 다음 날에도 거의 똑같은 자세로 잠들어 있는 자신을 보았고 그다음 날엔 나를 데리고 왔다. 노이는 자신이 보고 있는 걸 나도 보고 있는지, 볼 수 있는지, 자신이 생각하는 걸 나도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전에도 종종 호텔 방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볼 때가 있었어, 누군가를 생각하지 않은 시간이 너무 길었구나, 갑자기 내가 찾고 있고 나를 찾으러 올 사람에 대해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엄청 많이 써서 그 사람 대한 마음이랄까 기대 같은 것을 아주 없애버릴 수 있을 만큼, 무엇보다 나 같은 걸 없애 버리고 싶고, 모두가 나를 잊을 수 있게 그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주기를, 내가 모르던 나에 대해 말해주기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어, 그렇게 잠들어서 꾸고 있는 꿈이 바로 여기 있는 나고 미래의 나는 지금도 호텔 방에 잠들어 있는 거야, 너무 오랫동안 생각한 건 꿈이라는 형태로만 전달될 수 있는 것 같다고, 그러니 그것이 전달될 수 있다면 진심으로 믿어야만 해. 노이가 말했다. 그렇다면 저기 잠들어 있는 게 바로 노이의 미래일까? 나는 잠들어 있는 노이를 깨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만약 지금 여기 있는 노이가 저기 잠들어 있는 노이가 꾸는 꿈이라면 잠든 노이가 깨어났을 때, 여기 있는 노이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전에 고우 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었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는 게 아니라 자신은 이미 어딘가에 잠들어있는데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 어둠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런 걸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극장에서 사라지던 사람들. 어쩌면 잠든 스스로를 깨우는 데 성공한 건지도 몰라, 아니 어쩌면 잠드는 것에 성공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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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그만두기 전에 극장이 먼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부터 예상하고 있었기에 별로 놀랍진 않았고 두 달 후면 이곳도 끝이라고 생각하니 변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왠지 평소보다 로비와 상영관이 더 적막하게 느껴졌다. 극장이 문을 닫아도 고우 씨는 야간 경비를 계속한다고 했지만 자기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새벽의 윙키스에서 버터가 올라간 팬케이크와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자주 보는 손님들과 가볍게 인사했고 토요코인의 장기투숙객, 나는 어떤 이유로 그가 장기투숙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한 번도 물어보진 않았지, 아마 앞으로도 물어보지 않으리라, 노이는 알고 있을까? 노이는 더는 윙키스에 오지 않았고 KOLDSLEEP에도 가 보았지만 이번엔 불이 다 꺼져있었고 전처럼 창을 통해 방 안을 들여다보니 침대는 잘 정리된 채 비어있었다. 노이는 잠든 자신을 깨웠기에 사라진 것일까, 혹시라도 누군가를 만나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KOLDSLEEP 근처를 기웃거리기도 했지만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노이와 함께 걷던 새벽의 청계천을 혼자 걸으며 잠들어 있던 노이를, Noodle Express에서 볶음면을 먹던 노이를, 윙키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기를 쓰던 노이를, RB의 소설에 대해 얘기하던 노이를, 새벽의 코인세탁소에서 탐정 소설을 읽던 노이를, 떠올리기도 했고 떠올릴 수 있었지. (그중 어디까지가 노이였을까?) 전에 이 길을 지나며 노이는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슬래커」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고 영화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끊임없이 걸으며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온갖 잡다한 얘기를 한참을 늘어놓기도 하고 그러다 누군가 사라져버리기도 했는데 카메라는 얘기를 하던 사람들을 따라가지도 그렇다고 특정 이야기를 따라가지도 않았는데 그럼에도 어디론가 계속 나아갔고 어쩌면 이건 버스에서 잠든 링클레이터가 꾸고 있는 꿈이 아닐까?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그는 택시 기사에게 자신의 꿈 얘기를 들려준다. 2년에 한 번 정도 꾸는 현실처럼 생생한 꿈에 대해 사실 그 생생함보다 더 기이하게 느껴지는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저 현실처럼 똑같이 TV를 보거나 책을 읽을 뿐이라고, 꿈에서 읽은 책은 자신이 쓴 것이었는데 우리가 내린 결정과 내리지 못한 결정들이 하나로 뭉쳐져 잘게 부서져서 각자의 현실이 될 가능성을 얻고 하지 않은 선택까지도 그저 떠올렸다는 이유만으로 현실이 되어버리게 된다는 내용으로 그러나 그걸 볼 수는 없을 거라고 우리는 현실에 갇혀있으니까, 링클레이터는 그걸 보기 위해서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영화 속 인물들이 왜 자꾸만 사라지고 그들을 둘러싼 장광설과 음모론만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지 정작 그들의 실종에는 왜 아무도 관심이 없는지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 영화는 수수께끼가 그들의 존재를 대체하길 바라고 있는 것 같고 심지어 영화의 실종까지도 대체할 수 있길 바라고 있는 것 같다고, 그들은 그저 자신이 꾸었던 꿈을 따라 현실 바깥으로 사라져버린 것인지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가능성은 바로 실종뿐인 걸까? 묻다가 꿈속의 사람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난 적이 있냐고, 갈수록 얼굴을 본다는 건 책임이 따르는 일 같아, 노이가 사라지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때 나눴던 대화였고 사라지기 위해선 많은 말들이 필요했던 건지도 몰라,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때 우리는 원하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까? 묻진 않았고 보도에 버려져 있는 침대와 베개를 보기도 했는데 저건 버려진 게 아니라 잠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 같아, 문득 슬래커의 이상했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는데 갑자기 차를 탄 청년들이 총을 겨누듯 카메라를 든 채 주변을 찍다가 화면이 바뀌면 자신들의 모습을 찍기 시작한다. 그들은 라디오를 들고 술을 마시며 즐거워하다 정신없이 산에 올라가더니 보란 듯이 자신들을 찍고 있던 카메라를 절벽 아래로 던져버린다, 그리고 추락하는 카메라의 시점 쇼트, 그들은 자신의 현실을 내던진 것일까, 아니 그들은 현실을 되찾은 거야, 노이는 말했지, 크레디트의 마지막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이 영화는 사실에 기반했다. 픽션과 닮아있다면 그것은 우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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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이 닫기 전 아마도 마지막이 될 심야 상영이 끝나고 상영관을 둘러보며 정리를 하고 있는데 뒤쪽 좌석에 누군가 잠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노이? 나는 잠들어 있는 노이를 깨웠다. 영화는 끝났어, 그동안 어디 있었던 거야? 노이는 눈을 천천히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영화가 하도 끝나질 않아서 극장에서 잠이 들었다고, 아직 잠에 취한 듯 노이가 말했다. 영화를 보다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끝나질 않고 같은 장면이 반복되는 것 같아서 극장 밖으로 나왔는데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로비도 불이 꺼져있고 아무도 없었어, 영화가 아직 끝나지 않아서 그런가보다, 다시 상영관에 들어왔는데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전부 잠들어있고 깨어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어, 아까 내가 앉았던 E열 13번 자리를 가보니 이미 누군가가 잠들어있었는데 거기 있는 건 바로 나였어, 우선 잠들어있는 나를 깨워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영화가 끝날 것 같다는 생각에 어깨를 흔들었는데 아니 일어나야 할 건 바로 너야,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고 그러다 문득 깨달았어, 잠들어 있는 쪽과 깨어있는 쪽 어느 쪽도 내가 아냐, 나는 잠이 든 적도 없었으니까, 불면증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 지 오래되었으니까, 그렇게 밤마다 잠들지 못한 채 한참 동안 사물의 뒷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깨어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수 있었지, 노이의 목소리는 평소 알던 것과는 다르게 들렸고 일어나야 할 건 내가 아냐, 목소리는 노이에게서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목소리는 말했지, 이 목소리가 들린다면 당신은 잠들어 있는 것이고 이 목소리가 들린다면 당신은 깨어있는 것이다. 이 목소리가 들린다면 당신은 당신이 아닌 것이고 이 목소리는 목소리가 아닌 것이다. 듣는다는 건 목소리를 새롭게 배우는 일, 나는 어느새 노이의 꿈이 되어버린 걸까, 노이는 나의 밤이 되었을까, 아니면 노이는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잠들어있는 날 발견한 걸까, 어느새 꿈이 되어버린 목소리,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긴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다고, 아니 어쩌면 설명 같은 건 무의미할지도 몰라, 목소리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야기야, 노이는 말했다. 어둠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거야 그들이 곧 올 테니까, 목소리가 말했다. 그게 누군데? 물었을 때, 갑자기 상영관 불이 꺼졌고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부를 때까지. 누군가가 나를 깨워줄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불이 들어왔을 때 내 앞에는 노이 대신 KOLDSLEEP이 보였다. 여전히 아무도 없었지만 이번엔 조명이 켜져 있었다.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흰색 침대와 물컵이 놓인 작은 탁자가 있었고 창문에는 작은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빛은 그림자의 움직임을 따른다. 마치 주문처럼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았더니 닫혀 있던 문이 천천히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문은 열려있었다. 노크를 하고 천천히 방으로 들어가 보았다. 노이? 공간은 마치 모든 소리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내 목소리를 흡수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마치 시간조차 숨죽인 채 멈춰있는 것 같았다. 침대에 걸터앉아 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다가 탁자 위에 있는 유리로 만들어진 주사위 같은 문진을 보았다. 전에 고우 씨가 발견한 것과 똑같은 것이었고 손에 쥐어 보니 이 묵직함만이 이곳에 실감을 부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문진 밑에는 인쇄된 종이가 한 장 있었고 뒷장을 보니 거기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종이 한 페이지를 통째로 먹는 법
1. 증류된 물 한 컵과 그 페이지를 준비한다.
2. 한 손에는 물컵을, 다른 손에는 종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3. 그 다른 손으로는 친한 친구들과 이별하라.
그리고 원한다면, 이 세계와도 이별하라.
기예르모 카브레라 인판테
1970년 10월3)
마치 전시의 지침 같기도 했는데 방을 천천히 둘러보아도 전시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목이 말라서 탁자 위에 있는 물 한 컵을 다 마셨고 노이가 잠들었었던 침대와 베개를 살펴보았다. 베개는 사람의 온기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차가웠다. 이곳의 주인이 함부로 들어온 나를 보면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어쩌면 설명할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 이 공간의 주파수가 나에게 닿았고 나를 불렀으니까, 여긴 나를 위한 곳일지도 몰라, 오히려 어서 여기 있는 나를 발견해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다가 누군가 노크를 하는 소리를 들었다. 노이? 익숙한 목소리가 노이를 불렀고 마치 주문처럼 그걸 듣는 순간 그동안 잊고 있었던 잠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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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좋고 사실 한 잔의 커피보다 더 좋은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늦은 밤에 마시는 커피는 진할수록 좋지 그래야 밤이 짙어질 테니까, 버번을 넣은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노이는 말했지, Midnight Coffee Club과 불면증이 가져다준 생각의 시차에 대해, 눈을 뜨고 있어도 생각이 잠들어버린 채 사는 사람들에 대해, 불면이 위험한 것은 평소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누군가를 이해하게 만들기 때문인 것 같다고, 그 이해가 위험한 것은 결국 우리를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잠들지 못한 채 서로가 꾸는 꿈일지도 모르겠다고, Midnight Coffee Club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이 생각한 것들을 들려주려 노력했고 내가 알고 있는 걸 너도 알았으면 해서 그래서 말을 하는 거야, 할 수 있는 거고 말이 되는 거야, 말 이상의 무언가를 전달하려 했지만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듣지 못한다는 걸 알고 무언가를 쓰려고도 해보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더 이상 무언가를 전하려 노력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그저 조용히 각자의 커피를 마실 뿐이었다. 자신이 본 것을 아무에게도 전할 수 없을 때 유령이 되는 것 같다고 고우 씨는 말했지, 그래서 그는 유령이 되었을까? 고우 씨는 너무 오랫동안 깨어있어서 스스로가 누군지도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난 너무 오랫동안 여기 있었어, 내가 누군지 잊어버릴 수 있을 때까지, 그래서 누군가가 될 수 있을 때까지,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 내게 말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올 때까지, 모두가 나를 잊을 수 있을 때까지,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을 기다리다 보니 지금까지 여기 있는 것 같다고, 낮과 밤의 연결, 불면은 그걸 가르쳐주고 낮과 밤을 연결할 수 있다면 우린 다른 것도 연결할 수 있다고,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정도가 우리가 보게 될 화질을 결정하게 된다고, 이런 연결이 더 많았다면 우리 삶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목소리는 물었지. 어둠에 익숙해져야 할 거야, 그래야 그들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스스로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 그런 이들만 이곳에 오니까.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을 때, 나는 기차 안에 있었다. 터널을 통과했다고 목소리가 말했다. 내 무릎 위에는 RB의 책이 펼쳐져 있었고 RB의 소설을 읽다가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어디까지 온 거지? 아직 멀었어, 한참 더 가야 해, 노이가 말했다. 나는 그 목소리가 나를 깨워주길 기다렸지.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나를, 기차 안에서 검표원이 돌아다니며 티켓을 확인하고 있었다. 검표원이 나에게 왔을 때 그가 고우 씨라는 것을 알았다. 고우 씨는 나를 보며 손바닥을 펼쳤고 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주머니 속에 있던 주사위 같은 유리 문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들을 기억하시나요? 아니면 기억들을 잃어버리셨나요? 목소리는 물었고 그 말은 나에게 이렇게 들렸다. 너는 나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가끔 내가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가 있었고, 스크린에 내가 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고, 어차피 다 죽었으니까 우린 죽은 자들의 부스러기고 그게 영화고 문학이다. 기차가 다시 터널 안으로 들어가자 주변은 어두워졌다. 이번에 눈을 뜨면 나는 어디에 있을까? 이 목소리가 나를 깨워줄 수 있을까? 어쩌면 잠들어있는 건 내가 아니라 너일지도 몰라, 이 목소리가 너를 깨워줄 수 있을까? 우리는 마치 기다림이 만들어낸 이야기 같고, 우리는 분명 만난 적이 있었지, 더 이상 기억하진 못하지만, 노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알아볼 수 있냐고, 그럼 우리는 같은 곳에서 많은 얘기를 했었지, 오랜만이야 내 카페 친구, 은은한 커피 향이 나는 걸 보면 나는 불 꺼진 카페에서 어둠 같은 커피를 마시고 있는지도 몰라, 불이 꺼지기 전 내가 어디 있었는지 더 이상 기억나지 않고 나는 아직 어두운 극장에 서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는 같이 끝나지 않는 영화 속으로 들어갔을지도, 공간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가 알던 공간들은 이미 기억이 되었을까, 어디로 가는 거지? 21세기로 가는 건가? 나는 어디에도 도착하고 싶지 않은데, 걱정 마, 아무데도 도착하지 않을 테니까 이야기가 되지 못한 목소리가 말했지. 그런 건 어떤 이야기로도 설명할 수 없고 목소리가 이미 하나의 이야기니까, 그리고 이것이 그 목소리다.
1) 앙드레 바쟁, 『오손 웰즈의 영화미학』, 성미숙 옮김, 현대미학사, 1996, p. 52.
2) 요나스 메카스, 『영화작가들과의 대화』, 이여로 옮김, 미디어버스, 2023, p. 242.
3) 리타 기버트, 『7개의 목소리』, 신정환 옮김, 그책, 2019, p.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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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새해늦은 새해 주나영 우기 막바지인 3월 아침, 조식당에 안까지 빗소리가 크게 들렸다. 직원은 사다리에 올라 창에 붙은 검은 시트지를 문질렀다. 들뜬 가장자리를 손바닥으로 몇 번이고 눌렀지만 쉽게 붙지 않았다. 저렇게까지 해서 창을 가려야 하나 싶었다. 어젯밤 체크인할 때 받은 안내문 상단에는 영어로 ‘침묵의 날(녜삐 데이)’이라는 낯선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루 동안 발리의 불빛과 소음을 줄이며, 투숙객의 호텔 외부 출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안내문을 건네던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우리는 새해 첫날을 아주 조용하게 보내는 풍습이 있거든요.” 나는 커피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호텔 직원들은 목소리를 낮췄고, 손님들도 주변을 살피며 말을 줄이는 듯했다. 사다리 위의 직원은 테이프를 한 조각 더 잘라 시트지 가장자리에 붙였다. 그래도 한쪽이 다시 들뜨자 시트지 한 장을 떼어 사다리 아래로 내려보냈다. 창의 절반쯤이 드러났고, 유리 바깥 면을 따라 빗물이 흘러내렸다. 남편은 케이지-프리 에그 화이트 오믈렛을 주문했다. 쉰을 넘긴 뒤부터 식단과 운동에 부쩍 엄격해졌다. 디종 머스터드 병을 열어 숟가락으로 접시 귀퉁이에 덜어 놓은 뒤, 오믈렛을 잘라 찍어 먹었다. 면도를 공들여 한 듯 턱끝이 말끔했다. 맞은편에 앉은 혜리는 빵 바구니에서 올리브 치아바타를 집어 들더니 박혀 있는 올리브만 손끝으로 빼 먹었다. 덜 마른 머리카락이 어깨에 들러붙어 있었다. 머리를 귀 뒤로 넘길 때마다 손가락에 물기가 묻었다. 나는 냅킨 상자를 혜리 쪽으로 밀었다가 멈추었다. 혜리는 이미 옆에 놓인 냅킨으로 손끝의 물기를 닦고 있었다. 커피는 식어 있었다. 혜리는 남편과 전처 사이의 딸이다. 남편은 나보다 열다섯 살 많고, 혜리는 나보다 열다섯 살 어리다. 혜리가 초등학생 때 엄마와 함께 호주로 건너간 뒤, 남편은 일 년에 한두 번 혜리를 만났다. 생일과 크리스마스에는 빠짐없이 선물을 보냈다. 남편이 서재에서 혜리와 영상 통화를 하는 날이면 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 소리를 조금 줄였다. 주방에 갔다가 웃음소리가 들리면 물병만 꺼내 돌아왔다. 통화가 길어지는 날에는 먼저 씻고 침실로 들어갔다. 남편은 통화를 마친 뒤 혜리의 학교생활과 새로 키우기 시작한 동물에 대해 말해 주었다. 나는 그가 보여 준 사진을 몇 장 넘겨본 뒤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혜리는 빵에서 올리브를 하나 더 빼 입에 넣었다. 남편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접시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는 혼인신고를 했지만 결혼식은 혜리가 성인이 될 때까지 미뤄 왔다. 결혼식은 석 달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사흘 정도 쉬고 오자고 한 것도, 한국과 호주의 중간쯤인 발리에서 혜리를 만나자고 한 것도 남편이었다. 출발 전날 밤, 남편은 서재에서 청첩장이 든 봉투를 가져왔다. 구겨지지 않도록 얇은 파일 사이에 끼워 여행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혜리는 아보카도 스프레드를 빵 위에 고르게 펴 발랐다. 한입 베어 물자 빵 껍질이 바스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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