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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찾아 계속 헤맬 거예요

  • 작성일 2026-09-01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찾아 계속 헤맬 거예요


이승은


  수연은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다른 공부를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되었다. 월급이 높은 편도 아니었고 학원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본 적 없었지만, 수연은 아이들과 지내면서 학원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한 손에 샤프를 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지우개 똥을 굴리며 수학은 왜 배워야 하는 거예요? AI가 있잖아요. 이제 수학은 필요 없는 거 아니에요? 투덜거리다가도 방긋 웃으며 떡볶이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이 귀여웠다. 작은 규모의 학원은 번화가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요즘 아이들 같지 않고 순한 편이라고 다른 과목 선생님들도 입을 모아 말했다. 

  학원에서 일하는 삼 년 동안 수연은 무탈하게 지냈다. 월급이 밀리지도 않았고, 선생님들과 의견도 잘 맞았다. 크게 아프지도 않았고 사소한 말다툼을 빼고는 우재와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지냈다. 출근하면서 아이들에게 들려줄 재미난 퀴즈를 생각했고 퇴근하면서는 그날 볼 OTT를 고르고 냉장고에 남은 식재료와 장 볼 것들을 체크했다. 수연은 아이들이 수포자가 되지 않도록 일차함수와 연립방정식을 쉽게 이해할 방법을 고민했다. 주말에는 가성비 좋은 맛집을 찾아두었다. 우재와 외식을 하고 집에서 OTT를 보는 것 말고 다른 걸 해 보고 싶기는 한데 뭘 해야 할지, 우재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고민이었다. 그해 여름 폭우가 쏟아지고 나서 이런 고민은 사라졌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내리고 며칠 후에 천장에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집주인이 옥상에 방수포를 깔아주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정 불편하면 나가라고 한 이후로 수연은 하루 종일 집과 돈을 생각했다. 부동산 앱을 다섯 개 깔고 대출 조건을 알아보면서 진짜 고민이 시작되었다. 늘 아끼면서 지냈지만 모아 놓은 돈은 없었고 집값은 훌쩍 뛰어있었다. 대출 조건은 까다로웠고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매달 빠져나갈 이자를 생각하면 망설여졌다. 이사를 해야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사실은 막막한 게 아니라 뻔했다. 수연이 갈 수 있는 집은 반지하 아니면 또 다른 재개발 지역이었다. 수연은 자신의 상황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파악하고 싶었다. 그래야 느닷없이 찾아온 이 난제를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빗물에 얼룩진 천장과 벽지를 보며 누워있던 어느 날 수연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삶을 그려보았다. 이 동네에 지낼만한 집이 없다면 살던 동네를 떠날 수도 있었다. 이번 기회에 서울을 벗어나 지방에서 학원 일을 할 수도 있고 학원 일이 아닌 다른 일을 새롭게 시작할 수도 있었다. 다양한 선택지가 펼쳐지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수연은 오랜만에 설레었다. 하지만 우재의 생각은 달랐다. 

  네가? 아무 연고도 없는데 혼자서? 지방에서 일자리 구하기 쉽지 않을 텐데. 

  우재의 말에 수연의 설레던 마음은 사라졌다. 

  우재야. 

  응?

  그냥 잘될 거라고 말해주면 안 돼?

  너 차도 없고 운전도 못 하잖아. 

  우재의 말은 모두 맞았다. 그래서 수연은 짜증이 났고 화도 났다. 그동안 우재와 다투었을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그래도 말만이라도. 잘할 수 있다고 잘될 거라고 말해주면 안 돼?

  논리적이고 직설적인 게 장점이 될 때가 있지만 단점이기도 하다고, 그걸 좀 고쳐보라고 수연은 쏘아붙였다. 그러자 우재는 진짜 직설적으로 말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수연이라고 반박했다. 

  내가 돈을 좀 구해볼게. 

  누가 돈 구해달래? 내가 너한테 돈을 부탁했어? 나는 그냥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거야. 지금이랑은 다르게. 

  그러니까 다르게 어떻게 살고 싶다는 건데? 

  우재의 물음에 수연은 말문이 막혔고 풀리지 않는 방정식에 갇힌 것 같았다. 


  어쩌면 재개발 예정 지역에서 사 년째 살고 있는 수연에게 이런 상황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사람이 나이 드는 것처럼 집도 늙을 테니까. 관리하지 않고 방치한 구옥의 천장과 외벽 틈으로 물이 스며들어 고이고, 썩은 나무가 장마철 빗물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는 일은 당연했다. 재개발의 호재를 기대하고 집을 산 주인이 수리비로 돈을 쓰지 않으려는 것도 당연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당연한 일들이었다. 이렇게 뻔한 일을 두고 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을까. 당연히 투잡을 뛰고 당연히 재테크를 하고 당연히 이직을 준비해야 했는데 참 태평하게도 지내왔다며 수연은 후회했다.

  장마철이 지나도 비는 왔고 비가 오는 날이면 우재가 임시방편으로 때워 준 천장에서 물이 또 떨어질까 전전긍긍했다. 천장을 들여다보느라, 스마트폰으로 부동산 앱을 들여다보느라 밤잠을 설치는 동안 우재와는 연락이 될 때도 있고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따금 만날 때면 우재는 눈에 띄게 살이 쪄있거나 빠져 있었다. 도무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 우재는 자신의 상태가 괜찮을 때 만나자고 했다.

  어떤 상태가 괜찮은 거야? 

  수연의 물음에 우재가 어떤 단어를 말했지만, 수연은 기억하지 못했고 그렇게 한주 두주가 지났다. 

  잠 못 이루는 나날이 이어지면서 수연의 인상과 말투는 달라졌다. 원래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은 편은 아니었는데, 어느새 그렇게 되어 있었다.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부정적인 말로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대로 끝은 아니겠지? 수연은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다. 앞날에 무언가 더 있을 거라고 수연은 여전히 믿었지만, 자신만 그 무언가를 찾지 못한 것 같아서 그것이 정확히 뭔지도 모른 채 수연은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때 그 단어가 왔다. 


  맨 앞자리에 앉은 재원이 지우개로 문제 풀이를 지우다 말고 수연을 불렀다. 

  선생님, 저 학원 옮길지도 몰라요. 

  재원은 옆 동네로 이사를 갈 것 같다고 전학도 가고 학원도 옮기게 될 것 같다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중3이 되기 전에 비교적 학군이 나은 옆 동네로 이사하며 몇 년 동안 잘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엄마가 여기 선생님들은 그저 그렇대요. 다 아마추어래요.

  재원이 그 말을 했을 때 수연은 그래? 하며 빙그레 웃었다. 재원은 들은 말을 옮긴 것뿐이었다. 수연은 재원의 엄마와 상담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상냥하면서도 온화한 목소리의 아이 엄마는 아이가 이 말을 옮길 줄 몰랐겠지. 

   아마추어. 처음에 수연은 이 단어가 재밌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좀 지나서는 감탄했다. 이렇게 나를 잘 표현한 단어가 또 있을까. 집과 대출과 구직을 알아보면서 자신이 사회인으로서 얼마나 서툰지,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고 제대로 해놓은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가던 중이었으니까. 그래서 수연은 그 단어를 꿀꺽 삼켰고, 목구멍을 통과한 단어는 수연의 내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더니 수십 개의 알을 낳았다. 그때부터 수연은 아마추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누구에게나 그 말을 갖다 붙였다. 장아찌를 만들어 보낸 엄마에게도 엄마, 이건 짜도 너무 짜네. 엄마가 음식을 평생 하긴 했지만 전문 요리사는 아니지. 아마추어지. 글을 쓰는 친구에게도 디자인하는 친구에게도 빵을 굽는 친구에게도 넌 아마추어잖아.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헤어지면서 살아남자, 잘 버티다가 만나자. 이런 말을 주고받는 친구들에게도 버텨봤자 어차피 우린 다 아마추어인걸. 학원 탕비실에서 선생님들에게도 우린 아마추어잖아요, 라고 했다. 가을에 이사하면서도 부동산 중개사와 이삿짐센터 직원과 수도를 고치러 온 아저씨 뒤에서 저 사람들 다 아마추어야, 하고 수연은 혼자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우재에게 연락이 왔을 때도 그랬다. 우재는 돈을 보내주었다. 수연은 돈을 돌려주고 메시지를 보냈다.

  - 나는 아마추어야. 연애도 아마추어. 그래서 너를 만났나 보다.

  그동안 돈을 구하느라 우재는 연락하지 않는 것일까, 돈을 어디서 어떻게 구한 걸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런 말은 쓰지 않고 정말 우재에게 돈을 바라는 마음이 없었나 자문하면서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다. 

  - 내가 너한테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야. 우린 이렇게 끝나는 거야.


  이사한 집은 지하철역에서 도보로는 25분, 마을버스로는 10분이 걸렸다. 집 바로 뒤에는 산이 있었다. 마을버스 정류장보다도 산이 더 가까웠다. 학원을 중심에 두고 동서남북으로 여러 채 집을 보러 다닌 끝에 구한 집이었다. 전에는 학원과 집이 가까워서 화창한 날에는 걸어 다녔는데 이제는 마을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타는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왕복 두 시간을 출퇴근으로 쓰며 전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이사 후에 수연은 조금 외로워졌다. 우재와는 그렇게 끝이었고 몇몇 친구와는 어색해지다가 연락이 뜸해졌고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와도 거리가 멀어져 전처럼 자주 보기는 어려웠다. 학원 선생님들과도 서먹해졌다. 이렇게 혼자가 되어가는 건가, 생각할 즈음 메시지를 받았다. 

  - 선생님, 여기 학원 개 구려요. 애들도 별로고 떡볶이도 맛없어요. 

  재원의 연락이었다. 재원은 수연이 이사하기 몇 주 전 학원을 그만두었다.  

  - 거기 떡볶이 맛집이라던데? 먹다 보면 거기가 더 맛있을걸.

  이렇게 답을 보냈지만 재원에게 묻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재원은 함수에 약해서 그래프 그리는 연습을 계속해야 했다. 학원을 그만두기 전에 꼭 해야 할 과제를 몇 가지 내주었는데 한두 번이라도 해 보았을까. 수학 성적보다 궁금한 건 재원이 학교와 학원에 잘 적응했는지였다. 전학을 가본 적 없는 수연은 집과 학교, 학원이 한꺼번에 바뀌는 것이 어떤 경험일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수연은 재원이 마음 맞는 새 친구를 사귀었는지, 외로운 건 아닌지 궁금했다. 그래서 이런 메시지를 이어서 보냈다. 

  - 새로운 환경이 처음에는 마음에 안 들 수 있지만 익숙지 않아서 그런 거야. 사실은 그렇지 않아. 마음먹기에 달린 거야! 

  수연은 정말 그렇게 믿고 싶었다.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라고,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좋은 날을 보낼 수 있다고. 한밤중에 깨어나서 천장을 보면서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수연은 천장에서 물이 새지 않는데도 물끄러미 천장을 올려다보았고, 그렇게 있다 보면 목뒤 근육이 땅겨왔다. 천장은 얼룩 하나 없이 깨끗했다. 대신에 바람이 부는 날에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항이 가까워서 비행기 소리가 들릴 거라고 중개사한테 들었는데 비행기 소리는 아니었다. 무언가 불규칙적으로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수연의 집 위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옥상이었다.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수연은 회색 우레탄 방수 도료가 들뜬 곳 없이 두껍게 발려있는 옥상에 반했다. 빗물이 샐 염려가 없어 보였다. 한밤중에 옥상에 다시 올라가서는 그때 보지 못한 것들을 발견했다. 옥상엔 수십 개의 희고 검은 선들이 있었다. 외벽을 타고 내려가 각 층의 베란다나 에어컨 실외기 연결 구멍을 통과해 공유기에 연결되는 인터넷 선들이었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면 그 선들이 베란다 천장을 두드려 거실 천장을 울렸다. 그런 날이면 수연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했고 가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수연은 키가 줄고 손과 발도 작아졌다. 매일 그렇게 조금씩 작아져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져서, 가족들도 친구들도 학원 선생님도 아이들도 수연을 알아보지 못했다. 다른 날 다른 꿈에서 수연은 오징어였다. 바다를 헤엄치는 오징어가 아니라 가스불 위에 올려진 바짝 마른오징어. 가스불 위에서 수연의 몸은 오그라들고 또 오그라들었다. 

  가을 끝 무렵에는 창밖으로 보이는 뒷산이 불타는 꿈을 꾸었다. 뒷산에 정말 작은 불씨가 살아있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생생한 꿈이었다. 수연은 그날 밤 산에 갔다. 밤의 산은 시커멨다. 불씨 같은 건 없었다. 수연은 산 입구의 쉼터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데크 길을 걸었다. 숲은 칠흑처럼 어두웠지만 쉼터에는 가로등이 켜있고 데크 길 바닥에는 조명이 있었다. 바닥의 작은 조명에서 나오는 희미한 빛에 의지해 어둠을 뚫고 헤쳐 나가는 기분은 묘했다. 용감하고도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수연은 밤에 종종 쉼터에 갔다. 쉼터 벤치에 앉아 있다가 쉼터 옆 원형 트랙을 따라 걷거나 뛰었다. 밤 산책을 하며 수연은 고양이와 벌레와 개와 사람을 만났다. 밤에도 쉼터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과 말 한마디 섞지 않았지만, 모두가 은밀하게 자신을 지지해 주는 것 같아서 수연은 밤의 산책이 무섭다거나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느 가을밤. 찬 바람을 쐬며 수연은 상상했다. 상상 속에서 재원의 엄마는 수연을 찾아온다. 상냥하면서도 온화한 목소리로 재원 엄마는 두 달이나 지났는데도 아이가 예전 학원을 그리워한다고 한다. 아이가 그 학원 선생님을 좋아하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는데 학원을 옮기게 되어 안타깝다면서 그동안 아이에게 잘해주었는데 그런 말을 듣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수연은 처음에는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다가 재원 엄마가 계속 사과를 받아달라고 하면 나중에는 아이를 위한 게 뭔지 고민이 되셨겠다고 하면서 그래도 아이 앞에서 그런 말은 조심해야 한다고 공손하게 말한다. 그러면 재원 엄마는 그럼요,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하면서 아이한테 잘 설명하겠다고 한다. 수연은 이런 상상을 아주 천천히 여러 번 했다. 원하는 표정을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토씨 하나까지 수정하면서 마음에 들 때까지 촬영하는 까다로운 영화감독처럼. 

  벤치에서 일어나 트랙을 한 바퀴 돌면서 사과를 받고 싶다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수연은 생각했다. 한 바퀴 더 돌고 난 후에도 수연의 상상은 끝나지 않았다. 다른 얼굴들이 보였다. 수연이 좋아하는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트랙을 더 돌고 난 후에 수연은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과를 받고 싶다면 사과를 해야한다고. 사과를 받아야 할 사람들에게, 더 늦기 전에. 


  수연은 사과를 시작했다. 혼자 바닥에 있는 것 같아서 모두를 바닥으로 끌어 내리고 싶었다고. 그렇게 하면 곁에 둘 수 있는 것처럼 굴었다고. 누군가 달아준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달고 다니다가 남에게 그 꼬리표를 붙였다고. 수연은 가족과 친구와 학원 선생님들에게 사과했다. 사과하는 내내 부끄럽고 괴로웠고 때로는 안도했다. 사과 후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성향에 따라 되돌아오는 말과 표정은 모두 달랐다. 수연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는지 그랬어? 뭘 그걸 신경 써, 하며 기억을 못 하는 경우도 있었고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엄마는 정말 괜찮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서운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영어 선생님은 속이 상했는데 사과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수연이 그 말을 했을 때 빤히 쳐다보았던 국어 선생님은 굳은 얼굴로 그때 왜 그랬어요? 묻고는 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먼저 일어났다. 그래, 그거 나 뭔지 알아. 그럴 때가 있지, 하며 손을 잡아주는 친구도 있었고 수연아, 그때 그건 좀 그랬어. 솔직히 기분 나빴어, 하는 친구도 있었다. 이렇게 얘기해 주는 친구들과는 다시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겨울이 찾아왔다. 창밖으로 눈이 내리는 밤에 수연은 지난여름을,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기 전의 여름을 떠올렸고, 스케치북을 꺼냈다. 친구와 함께 들었던 드로잉 수업에서 썼던 스케치북이었다.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미술 클래스였는데 도형이나 그래프 말고 그림을 그려본 것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처음이었다. 스케치북을 보면 6주 동안 매주 토요일 그림을 그리며 좋았던 기억보다 지우고 싶은 그날의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한창 집을 알아보던 시기에 수연은 우연히 드로잉 수업 선생님을 만났다. 당황한 기색을 숨기려던 선생님의 눈빛을 보고도 수연은 그냥 나왔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 짓던 선생님을 모르는 척하고 화장실 거울에 스치듯 비친 자신의 얼굴도 못 본 척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눈물, 콧물을 쏟으며 뜨겁고도 매운 음식 2인분을 해치우고 빙수 아이스크림도 두 개 먹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설사를 하고 나서 책장에 꽂혀 있던 스케치북을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 반년이 지나고 코가 시린 겨울이 되어서야 그 스케치북을 다시 꺼낸 것이었다. 

  수연은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리고 지난여름에 가장 좋아했던 음악을 틀었다.


*


  책방의 초여름은 한가로웠다. 한가로움이 주인에게는 달갑지 않겠지만 책방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행운이었다. 햇빛을 피해 책으로 둘러싸인 시원한 공간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행운. 상희도 책방의 한가로움을 좋아했다. 책방 주인이자 친구인 경진을 손님에게 뺏기지 않고 붙잡아 둘 수 있으니까. 상희는 책방의 분위기도 좋아했다. 문을 밀고 들어설 때 나는 종소리와 갈색 책장에 빼곡히 꽂힌 책들과 책이 진열된 나무 선반과 너무 밝지도 너무 어둡지도 않은 조명에서 경진의 취향이 묻어났다. 오른편 책장을 지나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경진과 상희가 그린 그림이 하나씩 걸려 있었다. 그림을 지나 계단을 다 오르면 다른 분위기의 공간이 나타났다. 천장이 낮아 다락방이나 아지트처럼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었다. 창가 쪽으로 가까이 가면 비스듬히 기운 천장에 머리가 닿았고 더 가까이 가면 어깨가 닿았다. 이곳에서 모임이나 작은 행사가 열렸다. 

  날씨가 제법 더워졌지? 

  종소리를 내며 상희가 들어서자, 카운터에 있던 경진이 상희를 맞았다. 

  경진이 시간 날 때 한번 들르라고 해서 무슨 일일까 상희는 궁금했다. 그런데 그걸 묻기 전에 다른 얘기를 먼저 하게 되었다. 일주일 전 이사한 상희는 짐 정리를 하고 구석구석을 살피며 새집에 적응하는 중이었다. 이사한 집에는 사소한 문제들이 있었다. 싱크대 배수관이나 전기 콘센트 문제였다. 

  아직 물이 조금씩 새어 나와서 냄새가 좀 나. 그게 해결이 되어야 집들이를 하든지 말든지 하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상희는 시끌벅적한 집들이 같은 건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커튼은 달았어? 

  방은 암막으로 하고 거실은 시폰이 낫겠지? 내가 무타공 커튼을 설치할 수 있을까? 그런데 커튼이 꼭 필요할까?  

  이러다 내년 여름에 커튼 달겠네, 하며 경진은 웃었고 그럴지도? 하며 상희도 따라 웃었다. 

  그래도 커튼은 하는 게 좋을걸. 더 더워지기 전에. 

  경진의 말에 상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이사하며 이리저리 치인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그때 종소리가 났다. 

  경진이 손님을 응대하는 동안 상희는 카운터에 놓인 꽃을 바라보다가 벽에 붙은 노란 포스터를 보았다. 책방의 6월 모임인 햇살관찰클럽 모집 공고였다. 동네를 다니며 햇살을 촬영하고 소리를 넣어보는 모임이었다. 해가 뜨거운 때를 피하려다 보니 시간이 애매해져서 모집이 잘 안 된다며 5월 내내 경진은 걱정했었다.  

  이 모임은 잘 돼가? 

  손님이 나간 후에 상희가 물었다.

  이번 참여자 중에 수연 씨라고 있는데. 수연 씨 기억나?

  지난주 모임이 끝난 후에 참여자 중 한 명이 경진에게 구상희 작가님 아시죠? 하고 물어왔다. 

  네 수업을 들었다던데.

  수연 씨가 이 모임을 신청했어? 

  물론 상희는 수연을 기억했다. 

  상희는 지난여름 경진의 소개로 다른 지역의 드로잉 수업을 맡았고 수강생 일곱 명을 모두 기억했다. 이후로 다른 수업을 한 적도 없으니 헷갈리지도 않았다.

  우리 사진을 봤나 봐. 

  주민센터에서 모집 공고를 본 수연은 책방 인스타 피드에서 상희를 발견했다. 

  책방 오픈 기념사진 말이야. 

  오픈 기념이라면 이 년 전에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었다. 그때는 경진과 상희가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 시끌벅적한 파티를 했었다. 

  수연 씨가 사과하기 프로젝트를 하는 중이래. 너한테도 사과하고 싶대. 

  사과하기 프로젝트? 

  수연 씨가 이걸 줬어. 

  경진이 꾸러미를 내밀었다. 꾸러미 안에는 엽서와 스케치북이 들어있었다. 둘은 스케치북을 한장 한장 넘겨보았다. 마커펜과 색연필로 그린 각양각색의 무늬가 스케치북 페이지마다 빼곡히 채워져 있고 페이지 끝에는 곡명이 적혀있었다. 

  수연 씨 정말 대단하다. 

  이 무늬들 정말 예쁘다.

  둘은 감탄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무늬를 그려보세요. 멜로디를 따라 선을 긋고 리듬을 타며 점을 찍어보세요. 빗금, 물결, 격자무늬, 지그재그도 좋아요. 소리무늬 그리기는 상희가 했던 드로잉 수업의 첫 번째 활동이었다. 그리기가 익숙지 않은 성인들이 흰 도화지에 낙서하듯 어떤 모양이든 마음껏 그려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수업에서 했던 첫 페이지에 이어서 소리무늬로 나머지 페이지를, 스케치북 한 권을 수연이 채운 것이었다. 

  그런데 수연 씨가 너한테 뭘 잘못 했어? 

  경진의 물음에 상희는 잘못하긴…… 그런 거 아니야, 했다가 너도 아는 얘기야, 하며 작년 이맘때의 일이라고 했다. 경진은 금방 기억해 내지 못했고, 상희는 포스터로 눈을 돌리며 촬영은 잘했어? 참여자들은 어때? 하고 물었다. 

  다양해. 취향도 연령대도. 

  경진이 지난 모임에서 놀이터로 촬영하러 갔을 때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어디에나 햇살이 있는데 뭘 찍어야 하느냐고 도대체 뭘 하라는 거냐고 답답해하는 참여자들이 있었다. 

  처음 해 보는 걸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있고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상희의 말에 경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림자 찾기를 했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참여자들에게 경진은 그림자를 찍어보자고 했다. 그림자를 찍으면 햇살도 함께 담길 거라고. 그러자 대부분 더 묻지 않고 놀이터 구석구석을 다니며 스마트폰 촬영을 시작했다. 

  수연 씨는 어때?

  열정적이야. 엄청 열심히야.  

  그래? 

  상희의 드로잉 수업에서 수연은 조금 어려워하는 쪽이었다. 나중에는 재미를 붙였지만, 마지막 수업에서도 차분한 인상이었다. 목소리는 낮고 느린 톤이었다. 그런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해서 상희는 당황했었다. 

  지난여름 상희는 오랜만에 그룹전에 참여했다. 그 전시가 열리는 건물 화장실에서 수연과 마주쳤다. 그 건물은 복합문화공간으로 1층에 갤러리와 카페가 있고 2층부터 4층은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었다. 화장실은 깨끗했지만, 세면대에서 오줌 누는 소리도 생리대 포장지를 벗기는 소리도 잘 들릴 만큼 좁았다. 그날 수연은 드로잉 수업을 함께 들었던 친구와 영화를 보고 화장실에 들렀다. 둘은 세면대에서 손을 닦으며 방금 본 영화 얘기를 하다가 상희 얘기를 했다.

  1층 갤러리에서 구상희 선생님 전시해. 포스터 봤어. 

  정말? 좀 일찍 와서 볼걸. 

  그러게. 아쉽네.

  할 수 없지. 어차피 뭐, 아마추어들이잖아.

  상희는 이런 대화를 화장실 두 번째 칸 안에서 들었다. 

  엽서에 뭐라고 써 있어? 

  상희는 손에 들고 있던 수연의 엽서를 경진에게 건넸다. 엽서에 쓰인 동글동글한 손 글씨를 보고 나서 경진은 지난여름 밤을 기억해 냈다. 

  아, 기억나. 그게 벌써 일 년 전이야? 

  그날 상희는 영업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연락도 없이 책방에 들렀다. 경진이 재고 정리와 매출 정산을 하느라 늦게까지 책방에 남아 있을 때였다. 

  너 그때 짜증 많이 냈지. 수연 씨한테 사과는 내가 받아야겠네. 

  경진의 말에 상희는 잠시 눈을 흘기며 입을 삐죽이다가 물었다.  

  그때 네가 뭐라고 한 줄 알아?

  뭐라고 했는데?

  처음에 경진은 그 말이 잔인하다고 했다. 그랬다가 말을 바꾸었다. 그 말 나쁜 말 아니야. 영원하다는 뜻이야. 익숙해지지 않아서 계속 새롭고 그래서 영원한 거지. 나중에는 타오르는 불씨라고 했다. 햇빛보다 밝고 빗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불씨. 그날 밤을 되새기자, 경진이 자신을 달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그 말들이 뻔하다는 걸 알면서도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떠올랐다. 그 밤도 아주 먼 과거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져서 상희는 슬퍼졌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그런 말을 했어? 

  영원하다거나 꺼지지 않는 불씨라는 말, 그날 상희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경진은 기억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상희가 계속 눈물 흘리던 것만 기억했다. 경진은 상희를 앉히고 휴지 박스를 건넸다.

  수연 씨도 그 말을 누구한테 들은 걸까? 

  경진이 상희에게 엽서를 돌려주었다. 

  그런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눈물을 닦으며 상희는 생각했다. 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 그날 화장실에서 한 말은 의미 없는 말이었어요. 그 단어가 견딜 수 없이 싫어서 저한테서 떨어뜨리고 싶었어요. 선생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에요. 이제라도 꼭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돌이켜보면 상희는 화장실 변기 옆에서 숨죽인 채 들었던 그 말보다 그다음 순간이 마음에 남았다. 어쩌면 수연은 다음에 봬요, 선생님, 대신에 하고 싶었던 말을 엽서에 쓴 건지도 몰랐다. 

  두 번째 칸 안에 있던 상희는 두 사람이 나간 것을 문틈으로 확인하고 칸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금방 수연이 다시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상희는 수연과 세면대 앞에 마주 서게 되었다. 수연은 조금 전 친구와의 대화는 없던 일인 것처럼 어머 선생님, 영화 보러 오셨어요? 물었다가 수연아, 없어? 밖에서 친구가 부르는 소리에 있어, 찾았어, 외치며 세면대 위에 두고 간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상희에게는 다음에 봬요, 선생님, 하며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수연 씨는 뭘 찍었어? 

  상희가 엽서를 만지작거리다가 물었다. 

  엄나무 쉼터.

  정말? 거기를? 

  상희가 경진의 말을 듣고 놀란 이유는 경진과 그 쉼터에 갔을 때가 떠올라서였다. 

  쉼터 옆이 3동이잖아. 수연 씨가 3동에 산대. 

  수연이 찍어온 엄나무 쉼터 영상에는 매미 울음소리가 시끄러웠다. 그 영상을 보고 경진도 상희와 쉼터에 갔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봄이었다. 봄날의 엄나무 쉼터에는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었다. 엄나무는 없었다. 예전에는 두 팔로 안을 수 없을 만큼 큰 엄나무 아래 그늘이 시원했다는데 몇 해 전에 잘려 나가고 이름만 남아 있었다. 


  봄에 둘은 비둘기 공원에서 만나 걷다가 엄나무 쉼터까지 갔다. 

  경진은 상희를 보자마자 물었다. 

  어젯밤에 뭘 했어? 뭘 먹은 거야? 운 거야? 

  상희의 두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전날 밤 상희는 서랍과 상자 안의 잡동사니들을 다 꺼내 보다가 밤새 울고 말았다. 친구들에게 받은 편지와 엽서, 키링 같은 작은 액세서리들, 폴라로이드와 스티커 사진, 네잎클로버와 마른 꽃잎들, 조개껍데기와 돌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상희는 얼마 전 스케치와 아이디어 노트를 전부 버렸지만, 친구들에게 받은 것들은 가지고 있었다. 경진이 준 것도 있었다. 

  나 아현동에 다녀왔어. 

  쉼터에 다다라서 상희가 말했다. 상희가 그날 경진을 부른 건 아현동 얘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같이 가자고 할까, 하다가 혼자 다녀왔어. 

  연락하지 그랬어. 

  경진이 볼멘소리를 했다. 경진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아현동은 경진에게도 특별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그 동네에서 둘은 많은 추억을 쌓았다. 언덕길 초입의 그 집은 재개발 지역의 오래된 주택이라 집값에 비해 넓고 조용해서 두 사람이 함께 쓸 작업실로 적당했다. 누군가 버린 커다란 장롱을 길에서 주워서 문짝을 떼고 작품 보관함으로 썼다. 여기에 차곡차곡 작품을 쌓자, 하면서 구 년을 그 집에서 지냈다. 

  그 집 아직 있어? 

  경진은 그 집이 허물렸는지 빈집으로 남아 있는지 궁금했다. 

  아직 있어. 누군가 살고 있어. 

  상희의 말에 경진은 마음이 놓이는 것 같았다. 무너져 있거나 아파트를 짓는 중이 아니라 아직 세상에 그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좋았다.

  언젠간 없어지겠지. 

  응. 곧 그럴 것 같아.

  상희가 아현동 소식을 전해주었다. 담벼락 곳곳에 이주 개시 공고가 붙어있고 작업실 바로 앞의 동네 마트는 그대로지만 골목 끝 과일 가게는 없어졌다. 과일 대신 속옷과 양말, 잠옷을 잔뜩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둘은 자주 가던 빵집과 분식집 얘기를 했다. 그리고 밤늦도록 캔버스 앞에 앉아 있던 날들도 떠올렸다. 상희와 경진은 맥주를 자주 마셨다. 맥주를 마시며 나눈 얘기 중에 절반은 세상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었고 절반은 돈 걱정이었다. 돈도 없고 재능도 없는데 이걸 계속해야 할까, 한 사람이 물으면 다른 한 사람이 재능이 없진 않지, 대답했고 재능이 있긴 한데 깊이가 없어. 얇아. 종잇장처럼 얇아, 누군가 말하면 함께 피식 웃었다. 늘 마지막엔 그래도 계속해야지, 하는 말로 끝냈다. 

  쉼터 벤치에 앉아서 연두색 나뭇잎과 개나리를 보며 둘은 그런 얘기를 했다. 봄바람이 살랑 불고 나서 경진은 쉼터 옆 트랙을 가볍게 달렸다. 한 바퀴 돌고 나서 상희에게 손을 흔들며 쉼터 가까이 다가왔다가 다시 멀어졌다. 

  무리하지 마.

  달리는 경진을 지켜보다가 상희는 외쳤다. 

  아현동 작업실 정리는 경진이 원한 것이었다. 경진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상희도 따랐다. 그 작업실을 상희 혼자 유지할 수는 없었다. 경진이 먼저 아현동에서 서울의 서쪽으로 이사하고 얼마 뒤 상희도 그 동네에서 작업실 겸 집으로 쓸 주택을 구했다. 공항이 가까워서 비행기 소리가 시끄럽지만 구름 사이를 지나는 비행기를 자주 가까이 볼 수 있는 동네였다. 경진은 지인의 책방을 인수하고 두 해 동안 활기차게 책방을 꾸렸다. 서점 지원사업 정보를 찾고 SNS로 책방을 홍보하고 다양한 모임을 열었다. 그동안 상희는 방황했고 침잠했다. 경진을 제외하고는 가족과도 친구와도 연락하는 횟수가 줄었다. 어느 날 오빠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 상희는 자신이 마침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오빠는 늘 그렇듯 다정했다. 하나만 부탁하자. 아버지도 어머니도 점점 기력이 없으신데 걱정 안 하시게 연락 좀 드려. 상희는 한껏 목소리를 높여 통화했다. 알았어. 걱정 마, 오빠. 언니는 잘 지내지? 솔이한테 고모가 많이 많이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줘. 오빠가 전화를 끊으면서 그래도 너를 응원해, 하고 덧붙인 말에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오빠는 아는 것 같아서, 자신을 두고 가족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것 같아서 상희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그림을 그린 상희는 예고와 미대를 졸업하고 몇 번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졌다. 창작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생활비는 프리랜서로 컴퓨터 그래픽 일을 해서 벌었다. 얼마 전부터 들어오는 일의 양이 턱없이 줄어서 다른 일을 알아보았지만 할만한 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상희는 더 이상 젊지 않았다. 상희의 그림이 팔리는 일도 드물었다. 그러므로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했다. 가족들에게 또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지난여름의 전시를 준비하며 상희는 포스터에 인쇄된 자신의 이름 위에 중도하차라는 스티커가 붙는 꿈을 꾸었고, 이 전시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고 차라리 병에 걸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목숨이 위험한 정도는 아닌 일상생활이 가능한 병. 작업을 그만둘 핑계가 되어 주고, 다른 일을 시작할 계기를 마련해주고, 그 일의 발판이 될 보험금을 지급해 줄 어떤 병. 상희는 이런 생각을 한 자신에게, 자신의 비겁함에 놀랐다. 이 놀라움을 잊지 말자고 겨울 내내 생각했다. 집 계약이 만료되던 봄에 상희는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작업실로 쓸 큰방이 있는 집이 아니라 월세를 최대한 줄여 작은 원룸을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자 아현동에 가고 싶어졌다. 

  트랙을 돌고 쉼터로 돌아온 경진의 볼은 달아올라 보기 좋은 분홍빛이었다. 경진은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상희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경진의 얼굴도 젖어있었다. 이마와 코 밑에 땀이 맺혀 있었다. 상희도 경진의 땀을 닦아주고 싶었다. 목숨이 위험한 정도는 아닌 일상생활이 가능한 병에 걸린 것은 경진이었다. 여포성림프종을 판정받은 경진은 매일 약을 먹고 2~3개월에 한 번 주사를 맞으며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병을 발견하고 아현동을 떠나면서 경진은 언젠가 나이가 들면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책방 운영을 앞당겨서 하게 된 것이었다.


  상희야. 상영회 때 와. 영상도 보고 수연 씨도 만나고.

  경진은 나무 선반 위 먼지를 맨손으로 닦아냈다. 

  수연 씨가 영상에 무슨 소리를 넣었을 것 같아? 궁금하지 않아?

  햇살관찰클럽의 마무리는 햇살을 촬영한 영상에 어울리는 소리를 넣어 상영회를 하는 것이었다. 물방울 소리나 바람 소리를 넣을 수도 있고 파도 소리를 넣을 수도 있었다. 

  화가 덜 풀린 거야?

  대꾸 없는 상희에게 경진이 물었다. 

  여진이 전시회 때 기억 안 나? 내가 화가 나 보여? 

  상희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화가 난다면 수연에게가 아니라 자신에게일 것이다. 얼마 전 친구 전시 뒤풀이에서 울음을 터뜨려 축하 분위기를 망친 일은 생각만 해도 괴로웠다. 

  난 울음 참기 프로젝트를 해야겠지? 

  이렇게 말하면서도 눈물을 흘리는, 울음을 참지 못하는 자신을 어떻게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구는 약을 먹고 효과를 봤다던데 상희는 우울증 약을 바꿔가며 먹어봐도 효과가 없었다. 멍해지기만 했다.

  울어도 좋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와. 

  경진은 얼굴을 가린 상희의 손을 부드럽게 끌어내렸다. 경진만큼 상희가 우는 걸 많이 본 사람은 없었다. 상희가 울면 경진은 상희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고, 그날도 그랬다. 그동안 손님은 한 명도 없었고 비행기가 한 대 지나갔다. 비행기 소리가 잠시 책방을 가득 채웠다. 

  저 꽃 이름이 뭐야? 

  울 만큼 다 울고 나서 상희가 카운터에 놓인 꽃을 보며 물었다. 

  나도 꽃을 사야겠어. 집에 꽃을 두어야겠어. 

  상희는 코를 풀고 눈가를 닦았다. 


*


  상영회가 열리는 책방 2층에 햇살관찰클럽 참여자와 참여자들이 초대한 사람들이 모였다. 넓지 않은 공간에 열댓 명의 사람이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니, 무릎과 무릎이 닿았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면 다리가 저려와서 자세를 바꾸려다가 옆 사람의 어깨나 팔뚝을 툭 치고 말았다. 그때마다 어머, 죄송해요. 아니에요, 하며 자연스레 얼굴을 마주하고 담소를 나누었다. 참여자들은 닉네임으로 불렸다. ‘미로’ 옆의 ‘랄라’는 초등학생 아들을 데려왔고 ‘후후’는 와이프와 함께 왔다. 그들 사이에 상희도 앉아 있었다. 

  상희는 용기를 내어서 상영회에 왔다. 가방 안에는 수연에게 돌려줄 스케치북이 있었다. 수연을 보자마자 눈물흘림증 때문에 고생 중이라고, 갑자기 눈물이 날 수 있으니 너무 당황하거나 걱정하지 말라고 말할 작정이었다. 수연의 닉네임은 ‘수박’이었다. 계단을 올라 2층에 들어서자마자 수연을 찾았는데 수연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늦나보다 하는 동안 상영이 시작되었고 엄나무 쉼터 영상이 끝날 때까지도 수연이 오지 않아서 상희는 자꾸 계단 쪽을 보았다. 그 시간에 수연은 응급실에 있었다. 상영이 모두 끝나고 경진이 수연의 소식을 전했다. 상영회에 남자 친구와 같이 오려고 했는데 응급실로 향하게 되었다고 했다. 남자 친구와 들른 비건 빵집에서 스콘을 먹었는데 버터가 들어있었다.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수연의 피부는 붉게 부어오르고 호흡 곤란까지 왔다. 다행히 늦지 않게 응급실에 도착했고, 주사를 맞자마자 금방 괜찮아졌지만, 상영회는 올 수 없다고 전했다. 수연이 사는 3동은 책방에서 가깝고 상희 집에서도 가까우니 수연의 몸이 좋아진 후에 동네에서 만날 수 있을까. 수연이 걱정되고 또 아쉬워서 상희는 이런 생각으로 마음을 달랬다. 수연을 만나고 싶었고 하고 싶은 얘기도 많았다. 쉼터 나뭇잎 사이의 햇살을 담은 영상에서 수연의 목소리로 직접 녹음한 허밍 음이 들려왔는데 그 허밍 음의 멜로디가 스케치북 제일 첫 페이지에 적힌 곡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스무 장의 소리무늬와 스무 곡의 노래, 그리고 엽서. 수연이 건넨 것들이 상희에게 어떤 의미인지 얘기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수연의 안부를 묻고 싶었다. 그 단어가 수연에게서 떨어졌는지, 다시 들러붙지는 않았는지. 그런데 이런 걸 물어도 될까. 이런 얘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수연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어쩌면 다시 만나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상희가 이런 생각에 빠진 사이 참여자들의 소감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는 하늘의 해를 가리는 자신의 손을 촬영한 미로의 소감이었다. 

  재밌을까 해서 왔는데…… 공짜기도 하고요. 그런데 솔직히 많이 더웠고 이런 걸 왜 해야 하나 싶었어요. 요즘 잘 못 지내거든요. 미로에 빠진 것 같아요. 잘 못 지내지만 잘 지내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고,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면 좋겠는데…… 그런데 저는 왜 그런 걸 남에게 바라는 걸까요. 남이 말해준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닌데요. 해는 그냥 자기 할 일을 하던데요. 누가 뭐라든 매일 뜨고 매일 지고요. 

  미로가 이런 말을 웃으면서 했고 다른 사람들도 웃었다. 미로 다음으로는 담벼락을 촬영한 랄라가 말했다. 

  산에 가서 흰 나비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나요. 엄마가 날 보러 왔구나. 지난겨울에 엄마가 돌아가셨거든요. 구름이 움직이면서 햇살이 담벼락을 넘어올 때도 그랬어요. 엄마 같았어요. 이제는 내가 엄마한테 자장가를 불러주고 싶어서 자장가를 영상에 넣었어요. 

  놀이터 햇살을 담은 후후는 아들에게 영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아들이 독립을 하고 나서 연락이 없고 전화를 해도 안 받아서 하루는 무작정 찾아갔어요. 막무가내로 자취방에 들어가 봤는데…… 그때 알았어요. 아들은 집에서만 지내요. 자취방 밖으로 나오지를 않아요. 언젠가 아들한테 연락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들 전화벨 소리를 넣었어요. 

  후후는 옆에 앉아 있는 와이프 쪽으로 고개를 잠깐 돌렸다가 이어서 말했다. 

  어쩌면 그동안 아이는 우리한테 신호를 보냈을 텐데 그걸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아서 후회가 돼요. 아이는 성인이 되어 우리 손을 벗어났고, 우리랑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고. 이제는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들한테 보여줬어요? 

  참여자 중 누군가 물었다. 

  카톡으로 보내긴 했어요.

  아무 반응이 없나요? 

  언젠가 보겠죠. 나중에 아들이 이런 모임에 나오면 좋겠어요. 

  후후의 말에 다른 참여자가 이런 모임을 다음에 또 하자고 했고, 경진은 지원서를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하고 씩씩하게 외쳤다. 햇살관찰클럽은 이렇게 끝나지만 다른 모임이 또 있을 것이고 책방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며 경진은 상영회를 마무리했다. 

  이 모임은 이렇게 끝인가요?

  창가 쪽에 앉은 은조가 물었다. 

  경진은 네,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아르바이트생이 퇴근해야 할 시간인데 손님이 1층 카운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상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석만 제자리에 놓고 가면 된다고 경진이 일러두었지만 몇몇은 방석을 반듯이 정리해 두고도 책방을 떠나지 않았다. 참여자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끝난 건가요? 

  은조가 또 물었다. 

  끝나서 아쉬우신가 봐요.

  미로가 말을 건넸다. 

  그게 아니고요. 

  은조는 조금 딱딱하게 말했고, 미로는 아, 네…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렸다. 

  은조는 아까 그 자리에, 머리가 닿을 듯한 천장 아래에 서 있었다. 은조의 이름은 은조였다. 은조는 닉네임을 쓰지 않았다. 상희의 눈에 은조는 화가 나 보였다. 돌 그림자를 촬영한 은조는 어떤 소감을 말했더라, 떠올려보면 은조는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다음 참여자에게로 순서를 넘겼다. 부끄러워서 그런 걸까, 했는데 아까부터 화가 났던 건지도 몰랐다. 

  전 후후 님처럼 보여주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요. 그럼 어떤 의미가 있나요?  

  두리번거리던 은조가 후후와 눈이 마주치자, 후후에게 물었다. 후후는 아무 대꾸 없이 빙그레 웃고는 랄라의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영상 편지를 쓰려고 모인 건 아니잖아요. 안 그래요? 

  조용히 숨을 고르다가 은조는 딱히 누구를 향해서가 아니라 허공에 시선을 두고 물었다. 모두에게 묻고 싶은 것처럼. 하지만 아무도 은조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햇살관찰클럽이라니요.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에요?

  조금 커진 은조의 목소리에 웃음이 섞여 비웃는 것처럼 들렸을 때도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하며 성을 내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잠시 은조를 돌아보았다가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선생님. 오셨네요. 

  손님을 보내고 경진이 돌아오자, 은조는 반색했다. 

  선생님이 뭘 찾을 수 있다고 했잖아요? 전 아무것도 못 찾았는데 이렇게 끝나버리면……

  은조 님, 어떤 걸 찾고 싶으셨어요? 어떤 걸 기대 하셨어요?

  경진의 차분한 목소리에 글쎄요. 제가 그걸 알면……하며 은조는 조금 누그러졌다가 꼭 뭘 찾아야 하나요. 못 찾으면 어때요, 하는 경진의 말에는 발끈했다. 

  그럼 전 시간 낭비만 한 거네요. 내가 얼마나 바쁜 시간을 쪼개서 왔는데요. 여길 오려고 반차를 내고 또 야근도 했는데요. 

  은조는 불만을 토로했고 뭐가 있어야 할까요. 뭘 찾아야 할까요, 경진이 건넨 말에는 어머, 선생님도 그걸 모르세요? 실망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때 은조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서 경진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이대로 끝은 아니잖아요? 우리 삶에 뭐가 더 있지 않아요?

  경진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두리번거리다가 눈이 마주친 상희에게 은조가 목소리 높여 물었다.

  상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은조가 상희 쪽으로 몇 걸음 다가왔다. 가까이서 본 은조의 눈동자는 짙은 갈색이었다. 갈색 눈동자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려는 듯 선명하게 빛났다. 몇 초 후에 그 눈동자는 상희의 두 눈 너머로 먼 곳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저길 봐요! 

  은조가 스크린 쪽을 가리켰다. 상영이 끝난 새하얀 스크린, 그 위에 희미한 노란빛이 보였다. 

  저게 뭐죠?

  누군가 물었다. 

  스크린 위에 노란빛은 춤추듯 움직이더니 스크린 밖으로 벗어나 작은 다락방을 돌아다녔다. 어디서 들어온 빛일까. 2층 안에 빛이라고는 천장과 벽에 붙은 등뿐이었다. 창밖 거리를 지나는 차의 전조등일까. 오토바이 불빛이 어딘가에 반사된 걸까. 모두의 시선이 그 빛을 쫓았다. 어른 주먹만 한 빛은 벽을 지났고 벽에 붙은 노란 포스터와 선반 위를 지났다. 커튼 위에서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더니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짧은 순간 머물렀던 빛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빛을 쫓던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모두의 시선이 거미줄처럼 엇갈리는 동안 2층은 고요했다.

  봤어요?

  봤어요.

  사라졌어요.

  그래도 분명히 있었어요. 분명히 봤어요. 

  짧은 고요를 깨고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비행기 불빛인가요? 

  비행기가 그렇게 움직이지는 않잖아요? 

  거울 놀이가 생각나요. 우리 어릴 때 맞은편 건물에서 거울에 반사된 빛을 보내며 놀았잖아요. 

  2층은 다시 소란스러워졌고 이런 와중에 손님이 와서 경진은 또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랄라의 아이가 비행기가 아니라면 UFO일지도 모른다고 했고 후후가 그럴 수도 있겠다고 했다. 미로가 초신성 얘기를 꺼냈고 후후의 와이프가 빛에 어울리는 이름을 짓자고 했다. 밤의 햇살이라고 부르자고 했다.

  제가 발견했어요. 

  은조가 어깨를 으쓱하며 끼어들었다. 은조는 조금 전과는 다른 사람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맞아요. 

  은조 님이 아니면 못 볼 뻔했어요. 

  사람들은 맞장구치며 기뻐했고 환한 미소를 짓는 은조의 모습은 나의 기쁨은 어디 있나요? 묻다가 드디어 찾았어요!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빛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들떠 있었고 은근한 흥분이 여전히 공기 중에 있었다. 

  상희는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 빛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UFO도 초신성도 아니고 밤의 햇살도 아니라고,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좋았던 것뿐이라고.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사람들도 다 알고 있으니까. 창밖에서 들어온 불빛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미지의 빛이라고 믿으며 그 순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니까. 수연도 이 자리에 있었다면 기뻐했을까. 어쩌면 수연은 이런 기쁨을 곁에 두려고 엽서를 쓰고 스케치북을 채운 건지도 몰랐다. 어쩌면 경진은 이런 순간을 보여주고 싶어서 상영회에 오라고 한 건지도 몰랐다.

  어머, 우세요? 

  우시는 거예요? 

  누군가 상희의 눈물을 봤고, 누군가는 서둘러 가방에서 휴지를 꺼냈다. 

  무언가 마음이 뭉클한 거죠. 

  이럴 때가 있잖아요. 

  사람들이 상희 곁으로 와서 한두 마디씩 건네고 손에 휴지를 쥐여주었다. 상희는 눈물흘림증에 대해 설명했다. 건성안이 자극에 노출될 경우 반사적으로 눈물을 생성하는 증상이라고. 하지만 울음 섞인 상희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고 사람들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네, 그래요. 그럴 수 있죠. 울어요. 마음 놓고 우세요, 하며 어깨를 토닥였고 어느새 곁에 다가온 은조가 눈물을 참아보려고 입술을 깨무는 상희의 어깨를 감쌌다. 상희가 은조에게 살짝 기대자 은조가 아무 말 없이 상희의 등을 쓸어내렸다. 그다음 일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은조가 상희를 와락 끌어안았고, 상희는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엄마, 저 아줌마 왜 울어? 

  아이의 물음에 랄라는 눈물은 슬플 때도 나지만 너무 기쁠 때도 흘리는 거라고 대답했다. 랄라 옆의 미로는 사실은 나도 울컥했어요. 아까 그 빛이 내 옆을 스윽 지나가는데…… 하며 눈가를 훔쳤다. 어머, 당신도 울어요? 후후에게 묻는 후후의 와이프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이들을 보던 랄라가 갑자기 더위를 식히려는 것처럼 얼굴을 향해 양손으로 부채질했다. 엄마도 좋아서 울어? 아이의 물음에 랄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사람들은 울기 시작했고, 상희도 계속 울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눈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상희가 우는 이유는 마음이 뭉클해서도 아니고 기뻐서도 아니었다. 눈앞에 기쁨이 또렷이 보이는데도 자신은 느낄 수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서였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이 가여웠고, 자신을 가여워하는 자신에게서, 슬픔에 잠긴 채 시간을 낭비하는 자신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상희는 흐느꼈다. 눈물이 볼에서 턱으로 턱에서 목으로 흘러내렸고, 울음은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계속될 것만 같던 상희의 눈물은 곧 멈추었다. 은조가 상희보다 더 크게 울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은조의 울음이 상희의 귓가에 메아리치고 책방 2층의 좁고도 낮은 공간에 울렸다. 다른 사람의 눈물에 옷깃을 적셔 본 적이 있을까. 은조의 눈물이 상희의 귓불을 적시고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은조는 왜 우는 것일까. 눈물로 내 옷을 적시는 이 여자는 누구일까. 기쁜 것일까, 슬픈 것일까. 기쁨 속에서 슬픔을 발견한 것일까, 슬픔 속에서 기쁨을 발견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상희는 그날 은조를 처음 봤다. 모르는 사람인 은조가 자신의 품에 안긴 채 온 힘을 다해 울고 있었다. 상희는 은조의 흐느낌 속에서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자문했다. 나는 정말 은조를 처음 본 걸까. 은조는 정말 모르는 사람인 걸까. 이대로 끝은 아니잖아요? 우리 삶에 뭐가 더 있지 않아요? 은조가 물었을 때 상희의 가슴 한구석은 아려왔다. 은조가 자신과 닮은 것 같아서, 자신의 한 부분을 떼어 놓은 것 같아서. 상희는 은조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속삭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은조의 귓가에 대고 상희는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가 무얼 찾는 건, 계속 찾으려고 하는 건 낭비가 아닐 거예요. 

  은조가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은조의 울음은 폭발하듯 커졌고 어쩌면 자신의 속삭임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상희는 나머지 말을 이었다.

  그것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나타났다가 또 사라질 거에요. 

  은조의 등을 쓸어내리며 상희는 속삭였다. 

  은조가 빛을 발견했다며 좋아했을 때 떠오른 말이었다. 더 그럴듯한 말을 하고 싶었지만, 생각이 나지 않아서 상희는 쉽게 떠오르는 말, 뻔한 말을 한 번 더 속삭였다.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찾아 계속 헤맬 거예요. 

  상희가 그 말을 하는 동안 가슴에 압박을 느낄 만큼 은조가 상희를 세게 끌어안았다. 상희의 등에 닿은 은조의 두 손은 뜨거워졌고 그 뜨거운 열기가 두 사람을 휘감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은조가 자신의 말을 믿는 것 같았고 은조가 믿는다면 그 말은 진짜인 것 같았다. 그래서 상희의 가슴 한구석은 다시 아려왔다.  

  무슨 일 있었어요? 

  1층 손님을 응대하고 돌아온 경진이 부둥켜안고 있는 상희와 은조를 보고, 상희가 아니라 은조가 울고 있는 걸 보고 어리둥절해 물었다. 경진의 물음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른 채 사람들은 은조와 상희 곁에 서 있었다. 

  상희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가에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낮은 천장 아래 모두는 은조의 흐느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희는 경진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냈다. 두 눈을 꼭 감았다가 뜨며 눈가에 고인 눈물을 흘려보내고 은조에게 다음 말을 속삭였다. 


                              

  * 소설의 ‘햇살관찰클럽’은 공항동 ‘다시서점’의 ‘햇살관찰클럽’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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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은
  •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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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은
  • 201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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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은
  • 201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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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건

  • 일요
    감동했어요

    작가님 글 잘 읽고 가요. '아마추어'라는 단어가 낚시바늘처럼 저도 휙 낚아채네요. 이루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뒤쫓지만 세상의 기준에 한참 모자란 저도 아마추어. 아마, 어쩌면 평생 아마추어. 작가님 글을 읽으며, 마지막 날까지 햇살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아마추어로 살고 싶다는 제 바람을 알아차렸어요. 거기에 더해 책을 사랑하는 속 깊은 이웃들, 같이 햇살을 기록할 사람들을 가까이 두고 싶은 욕심까지 많은 아마추어 1인입니다. 사과하기 프로젝트, 눈물참기 프로젝트...도 우리 같이 해볼까요? ^^

    • 2026-09-03 09:48:38
    일요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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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은

      @일요 일요님! 네, 우리 같이 해 봐요^^ 마지막까지 옆사람과 햇살을 함께 쬐는 아마추어로 살아남는 욕심을 부려보아요 !! ^^ 남겨 주신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감사드려요.

      • 2026-09-05 11:04:13
      이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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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유정
    감동했어요

    '이대로 끝은 아니잖아요. 우리 삶에 뭐가 더 있지 않아요?' 라고 묻는 은조에게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찾아 계속 헤맬 거예요.'라 답한 상희의 대답 속에서 존재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어요. 실패 한 것 같지만 사실 이 세상엔 실패란 게 없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누군가 했던 말이 떠 오르네요.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찾아 계속 헤매겠지요? 감동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 2026-09-05 00:32:04
    안유정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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