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
- 작성일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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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
임승훈
심심함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심심한 적이 별로 없었으니까. 그래서 누군가가 "심심해서 집안을 싹 바꿔봤어."라든지, "심심해서 머리핀을 또다시 찾아봤어."라고 하면, 나는 그들이 말하는 심심함이란 일종의 수사라고 생각했다. 진짜 이유는 있는데 말하기 귀찮거나, 말하지 못할 무언가가 있다고. 대체 그 심심함이라는 게 무엇이길래 그만한 에너지를 들여서 굳이 무언가를 저지르냔 말이다.
하지만 이 년 전 급작스럽게 아내인 진서가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심심함에 시달렸다. 사실 위의 말들은 주로 진서가 한 거였다. 그녀는 '심심해서 뭐뭐 했어'란 말을 습관적으로 했다. 나는 때로는 재치 있고 수사적인 그녀의 화법이 귀여웠고, 때로는 완곡적인 그녀의 태도가 우스웠고, 때로는 자기 마음에 시달리다 지쳐버린 그녀가 답답해 종종 짜증이 났었다. 왜 그녀는 본심을 밝히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심심.
진서는 왜 심심했던 걸까?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건 진서와 나의 기질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시도 때도 없이 농담을 하는 사람이었다. 뭐 대단한 농담도 아니다. 대화하다가 내가 무심코 '지금'이라고 말하면, 그녀는 잽싸게 내 말을 자르고 '이 순간-'이라고 흥얼거리는 식이었다. 그러면 나는 재빠르게 눈치를 채고 '바로 오늘'이라고 대꾸해주곤 했다.
섹스할 때도 그 버릇은 어디 가지 않았다. 그녀는 침대 위에 벌거벗은 채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비장한 표정으로, "어디, 오늘 자네 실력 좀 확인해 보겠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진서 언니, 그럼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곤 옷을 훌렁 벗었다. 그 무렵 우린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빠져 있었다. 어느 날 진서와 광명 본가에서 아버지가 내놓은 책 박스를 뒤적이게 되었다. 진서와 나는 그 속에서 <임꺽정>을 꺼내 들고 "우리도 이거 보자, 보자."라며 집에 가져왔다. 그 소설에서 무시무시한 사내들이 임꺽정에게 이렇게 말했다. 꺽정이 언니, 이 우라질 놈의 목을 뎅강 자를깝쇼?
진서는 또한 예민하고 침울한 사람이기도 했다.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툭 내뱉고는(주로 꿈에서 내가 자기가 키우던 양을 잡아먹었느니, 섬세한 사람에겐 섬세한 날이 있다느니 했다), 긴 침묵에 빠지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면 모스 부호처럼 짤막하고 건조한 말을 하긴 했으니 완벽한 침묵은 아니고, 침묵의 근사치에 이르는 그런 상태가 되었다. 짧으면 반나절, 길면 이틀 정도. 그러다가 그 침묵(의 근사치)에서 벗어나서 문득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였다. "심심해서 LA갈비를 만들어봤어."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렇지만 내 사랑은 진서의 사랑과 조금 달랐던 걸까? 확실히 나의 사랑엔 고통이 없었다. 친구의 후배였던 진서를 처음 보자마자 호감을 느꼈다. 까맣고 가느다랗고 풍성한 단발머리,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 그녀는 왠지 어떤 정물 같았다. 그런 그녀를 나는 힐끔힐끔 쳐다봤는데, 그때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 후, 한 달 뒤에 우린 연애를 시작했고, 2년 뒤엔 결혼을 했다.
비록 진서는 감정 기복이 심했지만, 공격적이지 않았다. 기본적으론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녀와 함께하는 삶은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상쾌한 구석이 있었다. 그녀가 종종 울적해 하긴 했어도, 난 그저 그게 자전거길이 잠시 끊어져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1분 남짓 지나는 정도의, 충분히 있을 법한 심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총체적으론 꽤 괜찮았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깊지 않은, 비교적 균질하다고 할 수 있는 안정적 양태. 나는 그런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진서는 나와 관점이 달랐던 것 같다. 뭐가 다르냐면 사랑에 대한 관점이 달랐고, 더 나아가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것도 달랐다. 그녀는 종종 내게 말했다.
"오빤, 오빠의 마음도 잘 몰라."
"무슨 말이야?"
"오빠는 말이야. 자기가 꽤나 도련님인 줄 알지?"
"그럼 아니야?"
사실 나는 꽤 표준적인 삶을 살았다. 중산층의 온화한 부모에게 태어나 오래된 플라타너스 나무가 주르륵 늘어서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자랐고, 서울의 적당한 대학을 졸업하고 적당한 중견 기업에 다니고 있는. 적당한 키에 적당한 외모, 적당한 눈치, 적당한 쾌활함, 적당한 진중함, 적당한 성실함. 나는 남들이 입학할 때 입학하고, 졸업할 때 졸업하고, 군대 갈 때 군대 가고, 때맞춰 결혼했다.
한 가지, 남들과 다른 게 있다면 부모님이 40대에 나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모님은 늦게 얻은 아들을 귀하게 여기되 떠받들진 않았다. 이를테면 아들이 10대일 때, 사춘기 특유의 불안한 섬세함엔 관심을 기울였지만, 신경질적인 과민함에는 대범하게 대처할 줄 알았다. 다른 부모보다 조금 나이가 많아서인지, 그들에겐 나이에서 비롯된 전형적인 현명함과 침착함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또한, 이런 표준 모델이 허상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적당한'이 두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종국에 몇십 개가 된다면, 그건 이제 '희귀한'이 된다. 그러므로 나는 전반적으로 운이 좋은 삶을 살았다고 자평했고, 이 운에 꽤 만족했다. 결국 이 희귀한 '적당한'의 누적 덕분에 나 역시 모나지 않은 사람이 된 게 아닌가.
진서는 계속 말했다.
"오빠 안에는 그보다 더 커다란 게 있는데, 오빠 자신은 모르고 있는 거야."
"그게 뭔데? 나쁜 거야?"
"모르지. 나쁜 건지 좋은 건지. 다만…"
"다만?"
"나는 그걸 봤고, 그게 좋지."
"왜 좋은 건데?"
"왜냐면 나는 오빠가 미친놈처럼 나를 사랑하는 걸 알거든."
"아닌데?"
"맞는데?"
우린 낄낄거렸다. 하지만, 그러고선 나는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왜 미친놈처럼 하는 사랑이어야만 하지? 왜 내 사랑을 사랑이 아닌 것처럼 취급하지? 우정도 사랑이다. 신의도 사랑이다. 이런 평온한 만족도 사랑이다. 나는 그저 이 사회적 약속이 안정적으로 굴러가게끔 하는 이 모든 걸 총괄해서 사랑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왜 부정당한 거 같지?
그럼에도 난 그녀가 내 규정을 부정하는 게 불쾌하지 않았다. 결국 결혼이란, 길고 긴 프로젝트가 아닌가. 언젠가는 내 사랑이 진실에 가깝다는 게 증명될 거 아닌가. 결국 사랑 역시 심심함처럼 수사에 가까운 거 아닌가. 내가 느끼는 이 실증적인 감각이 실재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이 증명은 이뤄지지 못했다. 진서는 멀리 떠나버렸으니까.
장례는 간소하게 치러졌다. 진서는 아홉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후 아버지와 둘이 살다가, 아버지가 일본 주재원으로 부임하면서 조부모에게 맡겨졌다. 그녀가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함께 귀국했다. 진서는 아버지의 집에 돌아갔지만, 이듬해 새어머니가 임신하면서 다시 조부모에게 갔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다시 아버지와 살았고, 대학 졸업 직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예 독립했다. 그 사이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이 흘러 삼십 대 초반에 나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처음 나는 진서의 인생사를 들으며 감탄했다. 그녀의 인생에는 '적당한'이 없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어쩐지 나와 동질의 인간처럼 느껴지는 게 묘했다. 나는 그 묘한 기분을 깊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무튼 이쯤 되면 진서와 나의 기질 차이는 어쩌면 삶의 차이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다.
장례식장에 진서의 친지는 고모뿐이었다. 늦가을의 차갑고 쓸쓸한 공기가 한산한 장례식장에 오랫동안 맴돌았고, 나는 문상객들과 절을 하고 밥을 먹고 쪼그려서 꾸벅꾸벅 졸다가 문득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면 잠에서 깨어 몸을 부르르 떨곤 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슬펐느냐고 한다면 슬펐다. 아니 고통스러웠다. 내 조부모들은 아직 살아 있었고, 나는 개는커녕 병아리는커녕 일본왕개미도 키워본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죽음이 얼마나 커다란 건지, 존재의 소멸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 미처 몰랐다. 나에겐 보편적인 감수성이 있었고 보편적인 지성이 있었으므로, 그래서 죽음을 적당히 가늠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맞닥뜨리니 내가 죽음에 대해 알던 건 모조리 송두리째 가짜였다. 그건 내가 알고 있던 그 무엇보다 컸다. 크다고 설명하는 것도 불충분한 어떤 미증유의 무엇. 무엇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무엇. 무엇의 무엇…
나는 장례 기간 중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눈물이 왜 안 나왔는진 모르겠지만, 온몸이 쪼개질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그리하여, 눈물 대신인 건지 집착적으로 거듭 '그날'을 생각했다. 그날. 진서가 떠난 그날.
그날.
우린 '그날'의 전날 밤 싸웠었다. 그 무렵 나는 회사에서 두 달째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매일 야근을 했다. 몸도 지쳤고 정신도 고갈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그 '전날' 밤, 퇴근해서 샤워를 하고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집안을 간단히 정리하고 있는데,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진서가 나를 불렀다.
"오빠, 바빠?"
"아니. 이제 자야지."
"기분 나쁜 거 있어?"
"기분?"
"응."
"회사에서?"
"어디서든."
"글쎄, 별로."
"나한테는?"
"너한테도."
"진짜야?"
"너한테 짜증난 거 있냐고 묻는 거 맞지?"
"짜증이든 뭐든, 오빠, 뭔가 있냐고?"
"없어. 왜 그래?"
"근데 왜 오늘 집에 들어와서 나를 투명인간 취급해?"
"어?"
그녀에 따르면 내가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면서도 그녀를 의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퇴근하고 인사했잖아."
"그거 말구, 나는 오빠가 마치 이 집에서 혼자 사는 사람처럼 보였어."
그땐 나도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참기 싫었다. 안 그래도 피곤한데, 왜 이런 걸로 신경 써야 하는가? 나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내가 들어왔을 때, 너는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고, 그런 너에게 내가 다가가서 잘 다녀왔다고 했고, 우린 수고했다고 포옹을 했고, 뽀뽀도 했고, 오늘 회사에선 어땠느냐 물었고, 밥은 먹었느냐고 물었잖아. 근데 내가 널 뭘 모른 척했다는 거야?"
"오빤, 그게 다였잖아."
"그럼 뭐가 더 있어야 하는 거야? 우린 어제도 이랬고 그제도 이랬는데 왜 오늘 그러는데?"
"아니라니까. 오늘 뭔가 달랐다고. 오빠가 나를 지나치는 게 아니라 나를 통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니까."
"뭐가 달랐는데?"
"뭐가 달랐다고 하면 오빠가 이해할 수 있어?"
"그 뭐가가 뭔지 알아야 이해하든 하지."
"말하기 싫어, 오빤 말해줘도 모를 거야."
"나를 비난할 거면 그게 뭔지 말해줘야 공정하지."
"내가 열심히 설명해도 오빠가 이해 못 하는 걸 보면 나는 더 화가 날 거야."
"없는 거 아냐? 지금 너 혼자 뭔가 그냥 기분 나쁜 거 아니냐고."
"나 혼자도 아니고, 그냥도 아니고, 뭔가도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뭐야, 왜 말 그렇게 하는데? 있는 걸 있다고 하지 그럼 없는 걸 있다고 한다고, 내가? 오빤, 내가 설명 안 하면 그게 없는 거야? 그러면 당연하게 없어지는 거야?"
"그럼 내가 이해 못 하는 문제로 나한테 짜증 내는 건 당연하고? 너는 그게 뭔지 설명 못 하고 있지,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있지. 이런데도 내가 잘못했다고 할 수 있는 거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결국 안 하면, 못 하는 거야."
"안 하는 건 내 마음의 메타포야."
"못 하는 걸 얼버무리는 거겠지."
뭐 이런 식이었다. 이때부터 우리의 대화는 동어반복이었고, 분노는 점차 높아져 갔다. 그러다가 새벽 한 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잠들었다.
다음 날 나는 일찌감치 일어나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했다. 진서와 나는 보통 함께 집을 나와 손을 잡고 두 개의 횡단보도를 지나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그러고는 개찰구를 통과해 뽀뽀를 한 뒤 그녀는 지하철 위쪽 방향으로, 나는 아래쪽 방향으로 갈라져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므로 그녀는 평상시와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을 것이다. 8시 10분에.
사고 시간은 8시 19분. 두 번째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그녀에게 트럭이 덮쳤다.
내가 있었으면 달라졌을까?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트럭에 휩쓸리기 직전의 그녀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고, 횡단보도 가까이에 서 있었다. 평소라면 내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가로수나 신호등 뒤에 서 있을 거였다. 나는 걸으면서 이어폰을 끼거나, 핸드폰을 보지 않았다. 이건 내가 일상에서 지키는 몇 가지 습관 중 하나였다. 이를테면 나는 시외버스에서 무조건 안전벨트를 맸는데, 그건 중학생 때 강릉으로 수학여행 가던 중 불현듯 불안을 느낀 순간부터 시작된 거였다. 그 뒤로는 빠짐없이 실천했던 지난 세월이 억울하기도 하고, 그 습관이 참이 되지 못할까 봐 두려워, 친구들이 아무리 놀려도 꿋꿋하게 안전벨트를 매 왔다. 길에서 딴짓하지 말 것. 이것 역시 그런 유의 습관, 아니 강박이었다. 그러므로 만약 내가 진서의 곁에 있었다면, 그 커다란 트럭이 급작스럽게 차도에서 인도로 넘어올 때 즉각 알아챘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 그랬다면…
하지만 그날, 그 시간, 8시 19분에 나는 지하철에 있었다. 어젯밤의 그녀를 떠올리며,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잠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빤, 눈에 보이는 게 다야. 아니 다라고 믿어. 근데 말이야, 그건 기만이야. 오빠 자신에 대한 기만이야. 오빤 알지만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뿐이야. 나는 그게 정말 안쓰럽긴 해. 그런데 때때로 지쳐. 황량해."
그게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 침실 창문은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꽁꽁 싸매 있어서 방안은 그야말로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없을 무'의 세계인 것마냥 새까맸다. 게다가 우리 침대는 캘리포니아 라지 킹 사이즈였고, 진서와 나는 그 거대한 침대의 끝단과 끝단에 누워 있었으므로 서로의 온기도 실체감도 새까만 어둠의 입자들 속으로 빨려든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적요한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문득문득 들려왔다.
그때쯤엔 나는 잠들기 직전이었다. 대꾸는커녕 그녀의 문장을 끝까지 듣는 것도 간신히였다. 그리하여 그녀의 마지막 단어 '황량해'는 내 몽롱한 의식 속에서 윙윙 울려 퍼졌다. 마치 작은 동굴 안에 갇힌 비둘기, 가 푸드덕거릴 때마다 벽면과 벽면 사이를 맴도는 신경증적이고 애처로운 반사음처럼. 그러다가 나는 어둠 속으로 푹 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그땐 몇 시였을까? 그때 나는 몇 시간 뒤인 8시 19분을 짐작이라도 했을까? 모르겠다. 다만 그날 밤 나는 아주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면서도 고독하면서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또 기괴하도록 질감적인 꿈에 시달렸다.
*
진서는 결혼 전에 온갖 알바를 해봤다고 했다. 상투적인 호프집 서빙에서부터, 제약사의 생동성 알바까지. 하지만 그중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건 명동의 '중턱오케이'란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한 것인 듯했다. 그 무렵 그녀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게 마치 표면장력으로 볼록하게 부푼 물잔 위로 떨어진 최후의 한 방울이라도 된 것처럼, 그녀는 갑자기 넘치고 흘러 버렸다. 그렇게 무언가가 그녀 안에서 확 뒤집혔다. 그녀는 휴학을 하고 원룸에 처박혀 라면만 먹고 이불 속에서 뒹굴거리며 닌텐도 3DS 게임만 했다. 주로 <파이어 엠블렘 각성>이나 <신 세계수>의 미궁 같은 SRPG나 RPG였다(오빠, 알아? <파이어 엠블렘 이프>는 쓰레기야,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럼 나는, 그래, 그러하구나, 라고 했다). 그렇게 8개월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정신 차려 보니 7월 말이 되었다고 했다. 무더위가 절정이었다. 진서의 옥탑 원룸은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비유로서 찜통이 아니라 창문에 손을 대면 자기도 모르게 앗씨발뜨거라며 손을 뗄 정도로 그건 실체적 찜통(이라고 진서는 늘 말했다)이었다. 종일 에어컨이라도 틀 수 있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러기엔 통장이 메말라 있었다. 이젠 정말 이대로는 안 되는 거였다. 나가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다. 그녀는 우선 살림을 하나둘 중고나라에 내다 팔면서 일자리를 찾았다. 그때 '중턱오케이'의 구인 광고가 눈에 띄었다(아니, 중턱오케이라니. 그 웃기는 상호는 뭐야? 라고 내가 말했고, 진서가 두 손가락으로 턱을 짚으며, 그렇지, 그렇지,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광고의 어떤 문장이 진서의 뇌리에 박혔다. 그것은 바로, '숙식 제공'. 원룸 재계약이 일주일쯤 남았을 때였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중턱오케이'에 전화했다. 중턱오케이에 걸맞지 않은, 건조하고, 왠지 쓸쓸한 목소리의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중턱오케이'인가요?"
"맞습니다."
"알바 구하셨나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일하고 싶어서 전화했는데요."
"네, 그럼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네."
진서가 여기까지 말했을 때 오히려 내가 당황해서 물었다.
"그냥, '네'라고 했다고?"
"응."
"그러고는?"
"다음 날 트렁크 하나 들고 찾아갔지."
"왜?"
이해할 수 없었다. 중턱오케이 사장이 분명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는 얘긴, 진서 외에도 몇 명의 알바 후보들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 와중에 겨우 전화로만 서너 마디 나눈 진서를 왜 채용한 걸까? 오히려 이 상황에선 진서야말로 사장을 의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어서 나를 덥석 출근시키는 거지? 이렇게 생각해야 마땅하지 않나? 어떻게 보면 그 사장보다, 진서를 더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고 물으면, 심심했다고나 할까, 뭐지, 무지하게 심심했거든."
무지하게를 '무지이이이이하게'라고 길게 늘여서 말하곤 그녀는 씩 웃는 거였다.
아무튼 진서는 사장과 통화한 다음 날 명동역 3번 출구에서 내려 빨간색 트렁크(우리 신혼여행에서 이 트렁크 바퀴가 망가졌고 진서는 질질 울었다. 안녕, 고마웠어, 카미유. 트렁크에 이름을 붙였어? 응, 그게 왜?)를 질질 끌고 남산 자락을 따라 한참 올라갔다. 가파른 언덕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부슬비가 운무처럼 희뿌옇게 흩날렸다. 그러면서 덥기는 또 얼마나 더운지 언덕길을 올라 올라 중턱오케이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쯤엔 티셔츠가 물에 젖은 창호지처럼 몸에 들러붙어 있었다.
중턱오케이의 1층은 카운터 겸 카페였다. 진서가 들어섰을 때 키가 휘청 큰 단발머리 여자가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그 건조하고 쓸쓸한 목소리였다. 마침 우중충한 날씨라서 그런지 그 목소리는 전날보다 더 건조했고 더 음울해서, 마치 모더니즘 시대의 흑백 고딕 영화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라고 멋대로 상상한 건 나이고, 진서는, 뭐랄까, 고르고13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라고 했다). 그제야 진서는 자신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이상한 사람이 있는 곳에 덜렁덜렁 트렁크만 들고 온 걸까, 라는 상식적인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되었다. 그녀는 주눅이 들어 웅얼거렸다.
"저… 알바…"
"알바요? 우리 구했어요."
"그게… 저라서…"
그러자 여자가 진서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어제 통화한?"
"네."
진서는 그때 어떤 위화감을 느꼈는데, 곧 그게 여자의 왼쪽 눈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 왼쪽 눈은 무기질적으로 번들거렸고 생물적인 움직임이 없었던 것이다. 진서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여자가 말했다.
"이거 가짜 눈이에요."
"가짜 눈이라고 하면?"
"의안이요. 지금 여기서 빼서 보여줄 순 없지만."
이후, 그러니까 진서가 그곳에서 일한 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여자는 사정을 말해줬다. 그녀는 원래 사격선수였다고 했다. 어느 날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는데 바닥에 나뒹굴다가 운 나쁘게도 왼쪽 눈을 나뭇가지에 푹 찔렸단다. 그 이후 사격계에서 은퇴했다. 여자는 왼쪽 눈꺼풀을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원래 나는 왼쪽 눈을 감고 오른쪽 눈으로 조준했어요. 그런데 왼쪽 눈을 잃고 나니 오른쪽으로 보이던 세계에서도 원근감이 감쪽같이 사라졌지 뭐예요."
원근감이 사라진 여자, 그녀의 총구가 향한 저 멀리는 멀리가 아니고 미래는 미래가 아니게 된 어느 날
아무튼 그 첫날로 다시 돌아가 보자면, 진서는 그 여자가 '중턱오케이' 사장이라는 걸 알아봤다. 여자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였는데,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왼쪽 눈을 제외하면 상당한 미인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눈 덕분에 그녀는 왠지 고즈넉한 동토 벌판에 덩그러니 놓인 자작나무 숲 같은 느낌을 풍겼다(라는 건 역시 내 상상이고, 진서는 쓸쓸하고 차가운 동토에 서 있는 고르고13 같다고 했다). 진서는 물었다.
"저 여기서 일해요?"
"원한다면요."
묘한 말이었다. 알바 지원자에게 선택권을 넘기다니. 그럼 원하지 않으면 돌아가라는 말인가? 아니, 그건 맞지. 어디 조폭 조직도 아닌데 원치 않는 사람을 붙잡을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여자의 답변엔 묘한 구석이 있었다.
"원하긴 하는데… 혹시 여기 뭐 하는 데예요?"
"어머."
저런 고르고13적인 건조한 말투로 '어머'라니, 라고 진서는 생각했고.
사장은 덧붙였다.
"우리 뭐 하는지 안 찾아보고 지원한 거예요?"
이에 진서는 잔뜩 긴장해서 더듬거렸다.
"죄, 죄송합니다."
사장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돌연 빙긋 웃었다. 참 이상했다. 사장이 웃으니 순식간에 공기가 바뀌었다.
"괜찮아요. 뭐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니까. 여긴 게스트하우스예요."
"게스트하우스가 뭐예요?"
"여행자들이 묵는 숙소인데, 우린 호텔식 게스트하우스랄까? 뭐 그런 느낌이에요."
"그럼 저 숙식은…"
"일할 거죠?"
"네."
"그럼 301호에 묵어요."
그렇게 진서는 301호에 기거하며 중턱오케이의 매니저로 일하게 됐다. 주로 1층 바에서 음료나 음식을 조리하고, 투숙객 예약을 받고, 체크인 체크아웃을 돕고, 게스트하우스의 대소사를 관리했다. 그곳에서는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여름, 가을, 겨울, 8개월을 보내고 다시 빨간색 트렁크를 끌고 언덕을 내려오게 됐다고 한다.
진서는 종종 그 방에 대해 말해주곤 했다.
중턱오케이의 모든 방처럼 301호에도 복층 계단이 있었다. 계단은 좁고 가팔랐다. 계단을 오르면 아늑한 침대가 나타났다. 침대 옆 벽면엔 복층 아래까지 커다란 통창이 이어졌다. 커튼을 젖히면 저 멀리 남산타워가 보였다. 밤이면 남산타워에 달이 걸렸다. 보름마다 달은 사위었다가 차오르기를 반복했다. 마치 망고가 익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하루 일을 끝내고 침대에 누워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자면, 오빠, 뭐랄까, 뭐 세상이 그렇게 지루한 건 아니었구나 싶더라구."
그러다 진서는 잠들었고, 잠들면 주로 즐거운 꿈을 꾸었다(이를테면 명성황후를 구해내는 김옥균이 된다든지… 내가, 김옥균이 명성황후를? 이라고 하면, 그녀는, 이보쇼 꼰대 언니, 뭐 어때, 라고 대꾸했다). 때로는 어떤 미래, 아주 따뜻한 미래를 암시하는 게 분명한,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면 속절없이 잊히곤 하는 꿈들을 꾸곤 했다. 그 꿈들은 구체적으로 기억나지 않았음에도 이상한 힘이 있어서, 물컵을 놓았던 자리에 남은 엷은 물 자국처럼 진서의 마음에 두근거리는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고, 진서는 내 손을 잡고 그렇게, 말해주곤 했다.
*
심심. 앞서 말한 대로, 나는 진서가 떠난 후로 심심에 시달렸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장례식 일 년 반 이후부터.
장례식이 끝나고 나에겐 그리움과 외로움과 분노가 번갈아 찾아왔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처럼 그리움이 외로움이 분노가 순환적으로 나를 덮칠 때면, 나는 너무도 질감적이고 너무도 명징한, 그렇지만 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부조리에 시달려야 했다. 마치 나는 어느 망망한 어둠을 헤매다가 그 어둠 한구석에 뚫려 있는 핀홀로 빨려 들어가는 중인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빨려 들어갔다, 가 아니라, 빨려 들어가는 중인 느낌 말이다. 그것도 영원히. 아주 영원히 말이다.
'그런 기분'으로 새벽을 뜬눈으로 지새우는가 하면, 56시간이고 79시간이고 내리 잠만 자기도 했다. 또 어느 날은 '그런 기분'으로 이틀간 한 끼도 먹지 않다가, 돌연 하루 종일 목구멍으로 음식을 쑤셔 넣기도 했다(심지어 변기에 앉아서도 기름이 뚝뚝 흐르는 KFC 치킨을 꾸역꾸역 처먹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이상하기도 하지.
어쨌든 그런 나날 속에서도 나는 일상을 되찾기 위해 투쟁했다. 신경정신과에 가기도 했고, 친구들을 더 적극적으로 만나기도 했고, 수영장에 등록하기도 했다. 물론 신경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은 방치하다 버리기 일쑤였고, 친구들에게 내 불행을 반복해서 떠들어대는 통에 그들의 진력을 모두 고갈시키고 말았고, 당연하게도 수영장엔 일주일에 한 번 갈까 말까였다.
그럼에도 나는 점차 보편적인 삶에 반보씩 다가갔다. 결국 일 년 하고도 반, 그러니까 대략 19개월 정도가 지날 무렵부터는 생활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말하자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결국 사니까 살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심심해지기 시작한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회사에 있을 때는 괜찮았다. 주어진 일을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잘만 지나갔다. 그러나 퇴근한 뒤부터는 문제였다. 무엇을 봐도, 무엇을 먹어도, 누구를 만나도 심드렁했다. 뭐 하나 재미있는 게 없었다. 어디선가 감정은 리소스라는 말을 들었다. 즉 인간에겐 평생 쓸 감정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열정적인 사람은 아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감정의 총량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그걸 진서의 죽음에 모조리 인출했는지도 몰랐다. 나는 이제 바닥까지 박박 고갈된 게로구나, 아랄해처럼 말이지(오빠, 우리 결혼 45주년에 아랄해에 가보는 거야, 듣고 있니?), 라는 생각을 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본질은 실로 무미건조로구나. 나는 지금까지 속된 조미료 맛에 속았었구나, 이런 생각도 했다.
그날도 그랬다. 한여름이었고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맥주 네 개를 사 들고 집에 들어왔다. 집안은 후텁지근했다. 발바닥이 강화마루 바닥에 쩌억쩌억 눌어붙었다. 에어컨을 켜고 옷을 에어드레서에 넣고 샤워를 했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한참 동안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숨을 쉬었다. 수온이 높았다. 여름보다 더 뜨거웠다. 그런 고온의 물이 내 몸을 때리고 흘렀다. 그 아래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한참 뒤에 겨우 샤워를 끝내고 맥주 한 캔을 마셨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돌려놓은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정리했다. 또다시 한 캔을 마시며 켄우드 튜너로 라디오를 틀었다. 마침 이선희의 'J에게'가 흘러나왔다. 나는 조명을 낮추고 복층 계단에 앉아 세 번째 맥주를 깠다. 채 벌어지지 않은 따개 틈으로 맥주가 부글부글 올라왔다.
진서는 복층 집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오래전 '중턱오케이'에서 숙식할 때 결심했다고 했다. 당시 진서는 중턱오케이의 301호 복층 계단에 앉아, 참으로 층고 높은 실내란 낭만적이구나, 층고 높은 실내에서 위로 올라가고 아래로 내려가는 행위는 카린탑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치유적이구나, 그러니 나는 앞으로 꼭 계단이 있는 집에서 살아야겠구나, 라고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나는 평균율적인 사람답게 지독한 취향이 없었다. 그러므로 진서의 바람을 굳이 들어주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사방팔방 알아보다 우린 파주에 있는 작은 복층 아파트에서 신혼살림을 꾸렸다.
이선희의 맑은 목소리가 높은 천장까지 울려 퍼졌다. 어느덧 비가 그쳤는지 어두운 실내로 달빛이 비쳐들었다. 나는 네 번째 맥주를 마시다가 계단에서 잠들었다.
꿈을 꿨다. 아니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진서가 이 계단에서 헤어핀을 잃어버린 꿈. 아니 기억. 아세테이트 소재의 버건디색 헤어핀. 그건 우리가 두 번째로 맞이한 크리스마스에 내가 사준 거였다. 진서는 그 헤어핀을 꽤 마음에 들어 해서 애지중지 보관했었다. 그걸 잃어버린 것이다. 그녀가 계단을 오르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가느다란 머리카락에서 헤어핀이 풀어졌다. 진서가 허전함에 황급히 돌아봤을 때는 이미 헤어핀이
팅팅팅, 팅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중이었다. 그녀는 허겁지겁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어디에서도 헤어핀은 보이지 않았다. 진서는 새벽까지 온 집안을 뒤졌다. 그러나 헤어핀은 흔적조차 없었다. 마치 이 세상에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야말로 증발해 버렸다. 진서는 울상이 되어 나흘간 집안을 뒤엎었다. 그걸 견디다 못한 나는, 식칼로 계단에 붙어 있는 합판을 뜯어내려는 진서의 손목을 붙잡았다.
"진서야 그만해."
"싫어."
"그냥 내가 또 사줄게."
"또 사줘봤자 그건 진짜가 아니야."
"겨우 헤어핀이잖아."
"말을 왜 그따위로 해?"
"아니, 나도 내가 사준 걸 소중히 여기는 건 고마운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집착할 필요는 없잖아."
"집착이라고?"
진서가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듯 입을 벌리다가 돌연 닫아 버렸다. 곧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러고 나서 이틀간 진서는 몸살을 앓다가 일어났고,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심심해서, 커튼을 바꿔 봤어."
그런 꿈을, 회상을 하면서 나는 계단에서 꾸벅꾸벅 졸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잠에서 깨어 이렇게 중얼거렸다.
"정말 더럽게 심심하다."
그다음 날 나는 출근하면서 지난밤을 떠올렸다. '더럽게 심심하다'라고 불쑥 말한 순간부터는 '상투적으로 심심'한 것도 '상투적으로 무료'한 것도 아니게 됐다. 마치 그 말을 무심코 내뱉은 것으로 어떤 스위치가 올려진 것처럼, 나는 이제 지독하게 심심해져 버렸다.
이전까지는 적어도 의무를 수행할 때는 심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출근길엔 심심은커녕 정신없기만 했다. 아침 지하철은 늘 빡빡했고, 미어터지는 차량 안 에서 어떻게든 아옹다옹 몸을 낑겨 넣고 출근하다 보면 심심이니 뭐니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나는 이제 인파에 짓눌리면서도 숨 쉬는 것조차 심심했고, 내 몸의 부피감, 내 몸의 무게감을 느끼는 것조차 심심했다. 어찌나 심심하던지 여름날 땀 냄새에 쩐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팔을 뻗어 손가락 끄트머리로 간신히 둥그런 손잡이를 잡은 채, 이리저리 흔들거리면서도, 심심했다. 너무도 심심해서 내 안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았고, 너무나도 텅 비어버린 나머지 시렸다. 어디가 시린지 무엇이 시린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그때의 기분은 시리다는 말이 아닌 무엇으로도 표현할 자신이 없었다. 심심이 극에 달하면 시리구나. 그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시청역에서 내려 회사에 들어설 때쯤 문득 중턱오케이에 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는 진서가 묵었던 중턱오케이 301호에.
*
다음 주 나는 중턱오케이에 갔다. 그곳은 진서의 말대로 까마득한 높이에 있었다. 명동역 3번 출구에서 아찔한 각도의 경사지 끝까지 올라가야 했다. 그날은 오래전 진서가 중턱오케이에 갔을 때처럼 비가 내렸다. 그것도 뿌옇게 흩뿌리는 비가.
언덕을 올랐다. 진서가 빨간 트렁크를 질질 끌며 올랐던 그 언덕이었다. 나는 검은 트렁크를 끌고 남색 우산을 쓰고 있었다. 나노적인 빗방울이 이리저리 흩날려 얼굴이 촉촉하게 젖었다. 무더운 날이었다. 비가 종일 내리는데도 찜통 같았다. 하늘은 흐렸고 길은 미끄러웠다. 언덕 너머 남산 타워가 선명하게 보였다.
이곳의 옛 이름은 남촌. 조선 시대 이 동네엔 가난한 선비들이 살았다고 했다. 허생전의 허생이 살던 곳도 이 언덕배기였다. 확실히 고관대작들이 거주하던 북촌이나 서촌과 달랐다. 북촌, 서촌은 비교적 널따란 평지가 있고, 언덕도 완만했다. 하지만 남촌은 누가 봐도 산을 깎아 만든 곳이었다. 말하자면 과거엔 선비들의 달동네였던 것이다.
두 개의 커다란 은행나무를 지나쳤다. 진서에 따르면 그 은행나무들은 가을이면 달빛이 내려온 것처럼 샛노란 은행잎을 맺는다고 했다. 그 노란빛에 취해 어느덧 중턱오케이에 다다른다고. 그녀의 말마따나 은행나무에 접한 급경사길을 끝까지 오르자 중턱오케이 건물이 나타났다.
처마 아래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비를 피하고 있었다. 이마에 마치 쪽진 할머니 머리처럼 두 개의 커다란 검은 무늬가 있는 고양이였다. 눈이 마주치자 고양이는 고개를 돌리며 귀찮다는 듯 무성의하게 울었다. 야옹.
나는 진서가 열었을 그 문을 밀고 들어갔다. 진서에게 듣던 대로 1층은 카페였다. 장년의 여성이 등을 돌리고 청소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가 뒤를 돌았다.
"어서 오세요."
"오늘 예약한 사람입니다."
"예약자분 성함이 김무진 고객님인가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혹시 사장님?"
"네, 맞아요."
그녀는 진서에게 들은 것과 달랐다. 진서가 묘사한 것처럼 고즈넉하고 쓸쓸한(그러니까 고르고13이라든지), 그런 묘한 느낌이 아니었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미술관 큐레이터처럼 지적이고 우아했다. 무엇보다 멋쟁이처럼 웃었다. 참으로 새하얀 건치로구나, 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계시던 사장님과 다른 분인가요?"
"예전이라면 몇 년 전인가요?"
"십 년 전쯤이요."
"아, 그때라면 이전 사장님일 거예요. 여긴 제가 삼 년 전에 인수했거든요. 그때 오셨었어요?"
"제가 아니고 제 친구가요. 여기 얘기를 종종 했었거든요."
사장은 카운터로 들어가 컴퓨터로 예약을 확인했다.
"반가워요. 우리 숙소가 꽤 괜찮았는지 몇 년 만에 재방문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종종 그때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친구가 뭐라고 하셨어요?"
"별다른 건 없고, 그냥 그 이후에 복층 집에 살고 싶어졌다고 했어요."
"복층? 아이구 어쩌나. 301호 예약하신 거 맞죠?"
"네."
"여기 제가 인수하고 개보수하면서 3층만 싹 복층을 없앴거든요."
"어?"
"혹시 예약할 때 방 사진 확인하셨어요? 저희가 사진을 꽤 자세하게 찍어서 업로드하긴 했는데."
"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분명 예약할 때 사진을 확인한 거 같은데. 그땐 분명 복층 방을 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나는 홀린 듯 내 멋대로 보고 내 멋대로 기억한 모양이다.
"어쩌죠? 지금 복층 있는 방들은 다 차서 바꿔 드리기도 힘들거든요."
"할 수 없죠 뭐."
"그래도 만족하실 거예요. 그 방에서 보이는 풍경이 꽤 멋지거든요."
나에게 열쇠를 건네면서 그녀가 말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다가 문득 그녀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전 사장님은 어디로 가셨나요?"
"글쎄요. 제가 듣기로는 멀리 떠난다고 하셨던 거 같아요."
"먼 곳이라면?"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뭔가 아주 먼 곳으로 떠날 것 같은 눈빛이었어요."
"눈빛이요?"
"네, 그런 느낌."
방은 정갈했다. 넓진 않지만, 복층을 없애서 그런지 높은 천장까지 탁 트였고, 가구의 배치가 적절했으며, 산뜻한 원목 향이 났다. 진서의 말처럼 한쪽 벽면 전체가 통창이었다. 빗방울이 부산하게 맺힌 통창 너머로 남산타워가 보였다. 진서도 이 창문을 통해 같은 풍경을 봤을 것이다. 샛노란 달이 차오르고 사위어 가는 것을 지켜봤을 것이다.
침대에 잠깐 눕는다는 게 깜빡하고 잠이 들고 말았다.
팅팅팅, 팅.
시각 없는 꿈에서 소리만 들려왔다.
눈을 뜨자 13분 정도가 지나 있었다. 겨우 13분이라고? 나는 분명 꿈도 꾼 거 같은데 말이지. 그런데 겨우 13분이잖아. 소리만 들리는 꿈이잖아. 그러면 꿈이 아닐 수도? 창문을 내다봤다. 지나가던 서양 관광객 가족과 눈이 마주쳤다. 꼬마애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나도 손을 흔들어주고 그들이 지나가자마자 커튼을 쳤다. 이 방의 단점. 이거 완전 어항이잖아. 내부가 이렇게 훤히 들여다보이다니.
짐을 풀고 1층으로 내려갔다. 그사이 카페의 중앙 테이블엔 너덧 명의 남녀가 모여 앉아 있었다. 그들은 천 위에 종이를 오려 붙이고 펜으로 그리고 색칠하는 중이었다.
나는 사장에게 물었다.
"이 근처 맛집이 있나요? 명동교자 말고요."
"어쩌나, 명동에선 명동교자가 제일 맛있거든요. 위로 올라가면 남산 돈가스 집들이 있고요. 어디서 오셨어요?"
"파주요."
"직장은요?"
"시청역 근처예요."
"근데 명동은 잘 안 오셨나 봐요?"
"그러게요. 가끔 옷 사러 오기도 했는데, 그것도 대학 때라."
"정해진 일정은 있으세요?"
"아직 특별히 없어요. 일단 을지로까지 걸어보려고요."
"그럼 저희 쪽에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해보시는 건 어때요? 저기 테이블에 있는 분들이 하시는 건데요."
중앙 테이블을 보자 그곳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멋쩍은 미소를 띠며 고갯짓을 했다.
"다 예술하는 분들이거든요. 미술 작가랑, 만화가랑 소설가요. 저분들이랑 우리랑 함께 공공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그러자 무리 중 유럽 도자기 인형처럼 생긴 여성이 다가와서 말했다.
"저희가 이런 천에 깃발 같은 걸 만들고 있거든요. 이걸 나중에 건물 안에 쫙 걸 거예요. 혹시 지금 시간이 되시면 함께 하실래요?"
"죄송합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그녀의 제안이 썩 내키지 않았다. 나는 그저 걷고 구경하고 싶었다.
내 대답에 그녀는 민망한 듯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중턱오케이를 나와 언덕을 다시 내려갔다. 언덕 아래로 낡은 건물들이 겹겹이 펼쳐졌다. 해무가 덮인 듯 희끄무레했다.
언덕길을 내려가는 동안 빗발은 솜털처럼 가늘어졌다. 나는 우산을 접었다. 이대로 맞는 비도 기분 괜찮았다. 우선 늦은 점심으로 명동교자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김치 맛이 예전만 못한데? 이곳엔 중학생 때 어머니와 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여상을 졸업하고 서울에 취업했다. 명동에서 의류상품권을 떼다가 파는 부업을 했다. 어느 날 배구 선수와 소개팅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키가 너무 커서 택시에 타는데 소인국에 놀러 온 거인처럼 구부정하게 구겨 앉은 꼴이 마뜩잖아 다음 데이트를 거절했다고 했다. 또 뭐였더라? 그래, 서울에 함께 올라온 동창 명자한테 사기를 당해서 당시 돈 천만 원을 잃었다고 했다. 명자가 참 예뻤지. 얼굴도 뽀얗고. 그런데 그 아이가 그만 도박에 빠지지 않았겠니? 엄마가 출산했을 때 사흘 밤낮 집에 와서 미역국 끓여준 것도 명자란다. 그건 어머니의 첫 번째 출산. 내가 태어나기 14년 전. 명동교자에서 나와 명동성당을 둘러보고 청계천으로 갔다. 종종 점심을 먹고 회사 사람들끼리 청계천을 산책했다. 그런데 이곳을 이렇게 혼자 걸은 건 처음이었다. 하천을 따라 올라가 광화문에 이르렀다. 교보문고에서 문고판 추리 소설을 뒤적거리다가 '메그레 탐정 시리즈' 중 한 권을 샀다. 경복궁을 지나 서촌에 갔다. '이상의 집'을 지나쳐 '서촌그책방'이라는 작은 서점에 들렀다. 서점 사장은 내가 손에 쥔 책을 흥미롭다는 듯이 들여다보고 물었다. "그건 뭐예요?" "추리 소설이에요." "『생폴리엥에 지다』? 작가가 누구예요?" "조르주 심농이라고 하던데요." "어머, 누군지 모르고 샀나 봐요." "네, 뭐, 작가 이름이 멋있어서요." 내 대답이 재밌었는지 사장은 호호 웃었다. 그 서점에는 한국 작가의 책만 팔았다. 나는 사장 추천으로 박소란의 시집을 샀다. 시집을 내 돈 주고 구입한 건 처음이었다. 내친김에 서촌 외곽의 수성동 계곡으로 올라갔다. 가는 길에 윤동주가 하숙했다던 집을 지나쳤다. 윤동주가 겨우 다섯 달 기거했다고 하는 곳이다. 인왕산은 화강암 산이었다. 수성동 계곡물은 이 회백색 화강암 사이로 콸콸 흘렀다. 비는 어느새 멎어 있었다.
나는 반듯한 암반에 앉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추리 소설을, 시집을 읽었다. 물살이 발목을 휘감고 떠내려갔다. 물에 담긴 발보다, 발목이 더 차가웠다. 종이는 부드러웠다. 화강암 물소리가 계곡 안에서 윙윙 맴돌았다. 눈꺼풀에 차갑고 미시적인 감각이 톡톡 닿았다. 이상하구나. 분명 비는 그쳐 있었다. 비는 그쳤… 푸드덕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 하늘은 나직하게 붉었다. 그때 나는 박소란의 시집을 읽고 있었는데, 이미 한참 동안 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종이가 우글우글 젖어 있었다.
<공작>
박소란
누가 울고 난 뒤인지 몰라
탁자에 놓인 한 컵 물을 보자 든 생각
눈물이 많은 사람이 제 눈물을 훔쳐 한줌 한줌 모아둔 건지도
이런 생각은 아무래도 시시하지만
눈물이라는 재료를 수집해 접고 오리고 붙이는 데 긴긴 하루를 쓰는 사람도 있겠지
서툰 손으로 색종이 공작을 하던 어린 날과 같이
물의 나라를 여행합니다
슬픔에 잠긴 여행자에게 물은 신앙이 됩니다 어째서? 아릿한 물음을 되풀이하며 잔잔히 흘러갑니다
간밤 무심코 펼친 페이지 맨 구석에 숨어 있던 문장
사진을 찍거나 밑줄을 그은 건 아니지만
어떤 물은 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녹아 물이 되듯이
그러면 나는 그 사람을 오래 간직해야 하는 생각
소복을 입고 아슬랑거리는 겨울처럼
겨울의 외딴 정류장처럼
버스는 오지 않겠지만
춥다, 말하는 사람의 곁에는 사람이 있고
마주 선 얼굴이 얼굴을 향해 입김을 후후 불고
혼자인 사람은 말하지 않겠지만, 춥다
자꾸만 춥겠지만
여행은 계속됩니다 출렁이며 흘러갑니다
탁자에 놓인 한 컵 물을 보자
지금 이 물은 어느 스산한 풍경 앞에 넋을 놓았나 하는 생각, 눈물의 주인은
더, 더, 아득히 깊은 곳을 헤매고
컵은 잠자코 있는데
혼자 놀다 혼자 지친 아이처럼
지금 내가 이 물을 다 마시면
참을 수 없이 갈증이 나서 그만
나는 색색의 날개를 가진 작은 짐승이 되려나 하는 생각
작은 짐승은 또 울면서 어디로 막 날아가겠네 하는 생각
나는 그 페이지의 귀퉁이를 잘 접었다.
*
해는 졌고, 사위는 어두웠다. 돌아올 땐 경희궁을 지나쳐 씨네큐브를 거쳐 정동교회 길로 왔다. 정확히는 정동길이 맞았다. 종종 어떤 사람들은 서울시립미술관 길이라고 하기도 했다. 진서는 정동교회에서 결혼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정동교회는 결혼 희망자를 제비뽑기로 받았다. 우린 여러 차례 추첨에 떨어졌다. 결국 종로의 어느 예식장에서 결혼하게 됐다. 그 당시 추첨하러 정동교회에 올 때마다 미술관에도 들르고 경희궁에도 들렀다. 그러니 시립미술관 길이라고 해도 될 법하고, 경희궁 길이라고 할 법도 했다. 그렇지만 진서와 나는 이 골목을 어느새 정동교회 길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마치 유럽의 어느 소도시 같았다. 붉은 인도, 붉은 담벼락, 낮은 연석, 1차로 도로. 소박한 로터리를 둘러싼 미술관과 붉은 교회가 페이드인 페이드아웃했고, 우린 이 길을 걷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 덕수궁 돌담길에 접어들면 진서는 말했다.
"오빠, 덕수궁 돌담길의 전설 알지?"
"이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데이트하는 커플은 헤어진다?"
"근데 그게 진실인 거 알아?"
"설마."
"아니야, 진짜야. 이 근처에 서울지방법원이 있잖아. 그곳에 가려면 시청역에서 내려서 이 돌담길을 지나야 하거든. 그래서 이혼하는 부부는 여길 지나간대."
"다행이다."
"뭐가?"
"그게 진실이어서."
"왜 오빠? 나랑 헤어지고 싶어?"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진실에 근거하기 때문에 오히려 허무맹랑한 저주 따윈 없는 셈이잖아. 우린 이혼하지 않을 거고, 그러면 이 예쁜 길을 마음껏 걸어도 되는 거니까."
"우리 이혼하지 않을 거야?"
"너만 원한다면?"
"오빠는 안 원해?"
"나는…"
원했다. 헤어지지 않는 것을. 하지만 진심으로 원했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상한 얘기지만, 나는 진서와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므로 내게 이별은 관념이었다. 마치 수학에서 0이나 마이너스 개념처럼 말이다. 실재하지 않는 걸 상상하고 또 상상하고 결국 가정하고서야 만든 극한의 관념, 허구, 비진실. 즉, 내 안에 진서와 헤어진다는 실재적 상상이 존재하지 않으니, 헤어지는 게 진심으로 두려울 리가 없었다.
나는 고즈넉한 로터리를 돌았다. 브론즈색 가로등을 지나칠 때마다 기둥을 탕탕 치면서. 탕탕 칠 때마다 툭툭 백열등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 로터리엔 다시 오고 싶지 않았었다. 나는 한 번 더, 천천히 로터리를 돌았다. 탕탕. 나는 그리고, 아주 천천히, 다시 한 번 로터리를 돌았다.
그때 정동교회 앞으로 한 노부부가 다가갔다. 그들은 정동교회의 뾰족한 진회색 지붕을 쳐다보며(경건하게 턱을 들고)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그들의 어깨는 젖어 있었고, 젖은 어깨에는 가로등 불빛이 내려앉아 있었고, 나는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다 그 자리를 떠났다.
탕탕
*
두 개의 은행나무를 지났다. 고양이는 나와 처음 마주친 그 자리에 엎드려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다시 봐도 이 고양이의 무늬는 절묘했다. 포마드를 바르고 참빗으로 정성껏 빗은 할머니의 쪽머리처럼.
쪽머리.
그 순간 이 표현을 전에 누군가에게 들은 기억이 났다. 그랬다. 물으나 마나였다. 나는 진서에게 들은 거였다. 10년 전 중턱오케이에서 늘 진서를 반겨주었다는 고양이. 할머니처럼 문 앞에서 마중 나와 있었다는 고양이.
사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은 대략 13살. 길고양이의 수명은 보통 2년 안팎이라고 하나, 종종 보살핌을 잘 받은 운이 좋은 개체는 10년 이상 살기도 한다. 더군다나 고양이는 영역 동물. 만약 10년 전 중턱오케이에 터를 잡았다면 지금까지도 생존할 법하다. 즉 전혀 신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말 그런 걸까?
나는 고양이를 쓰다듬기 위해 다가갔다. 쭈그려 앉아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고양이가 번쩍 눈을 뜨더니 앞발로 내 손을 툭 쳐냈다. 나는 혹시나 싶어서 이번에는 왼손을 내밀었다. 또다시 내 손을 쳐내는 고양이. 오른손, 왼손, 오른손, 왼손. 그때마다 그는 <사형도수>의 성룡처럼 툭툭툭툭 방어했다. 이 자식이…
중턱오케이에 들어서자 1층 천장엔 색색의 깃발이 쭉 늘어서 있었다. 낮의 그 예술가들이 작업한 모양이다. 어느 작품은 색연필로 슥슥 그어서, 어느 작품은 천을 오리고 꿰매서, 어느 작품은 종이를 찢어 붙여 만들었다. 정해진 형식은 없는 듯했다. 내용 역시 그랬다. 부처님을 그린 것도, 남산 타워를 그린 것도 있었다. 올림픽 아이콘이 수영하는 작품도 있었다.
"모두 각자 여행하면서 겪은 인상적인 장면들이에요."
어느새 사장이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아까 그 예술가들이 한 것도 있구, 여기 투숙객들이 한 것도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깃발에 시선이 멈췄다. 커다란 망고가 하늘에 떠 있는 작품이었다. 망고'처럼' 노란 달이 아니었다. 정말로 망고가 밤하늘과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작품은 직유가 아니고 은유였다.
"그 작품 마음에 들어요?"
"네. 눈이 가는데요."
"혼자 여행 온 여성분이 만든 거예요."
"혼자?"
"네, 한국 분. 아 참, 그분이 지금 손님이 들어간 301호에 오늘 아침까지 있었어요."
"네?"
"그분이 체크아웃하고 손님이 들어오신 거예요."
나는 무심코 물었다.
"혹시 단발머리?"
"어머, 맞아요."
"키가 작고요?"
"작고요."
하나는 더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사장이 말했다.
"둘이 마주쳤을 리가 없는데, 그쵸?"
"그렇죠."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모르겠어요."
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
조르주 심농의 추리 소설을 들고 루프탑에서 맥주를 마셨다. 그곳엔 히잡을 쓴 여성 둘과 일본인 가족과 라틴계 남녀가 있었다.
나는 남산 방향의 난간에 팔을 걸쳤다. 난간은 약간 젖어 있었다. 무더운 밤이었다. 며칠 만에 하늘이 맑았다. 남산타워가 유독 선명하고 뾰족했다. 손을 뻗으면 그 끄트머리에 닿을 것만 같았다. 남산타워는 1975년에 완공됐다. 준공 중 문제가 터졌다. 타워 전망대에서 서울 전역이 들여다보인다는 거였다. 박정희가 노발대발했다. 청와대 역시 전망대 가시 범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임자, 대한민국을 끝장내려고 그르나? 전망대는 폐쇄됐다. 그 뒤 80년대에 다시 개방됐다. 바람이 불었다. 여름의 바람이라 후텁지근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끈적끈적한 피부가 상쾌해졌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밤하늘이 이토록 청명한데, 타워 뒤로 구름이 무성했다. 그래서 달이 보이지 않았다.
달이 보이지 않다니.
다시 책을 읽었다. 아니 읽으려 했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첫 페이지만 세 번째 읽는 중이었다. 중학생 때 학교에 교생이 온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자기소개할 때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우리 집 서재에 있던 해문사판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가져와 교생 앞에서 읽었다. 그녀가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어머, 추리 소설 좋아하니? 네. 오래된 책이네. 집에 많아요. 귀납법의 오류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쭈욱 그럴 것이다, 라는 문장을 믿지 못한다면 삶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걸까? 아니면 그게 바로 삶일까? 달이 보이지 않는 어느 해변에서 죽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서로의 손을 꼭 잡은 두 아이가 이안류에 휩쓸려 먼바다로 떠밀려 가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꽉 잡아, 안 보여도, 놓치지 마, 꽉. 한 움큼의 모래가 꽉 쥔 손바닥 안에서 서걱거리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손을 펴면 모래는 주르륵 흐르고, 다시 길고 긴 백사장의 일부가 되고. 뭐 그런 것들. 맥주가 미지근해졌다. 대신 더 진해졌다.
보이지 않으면, 끝인 거야.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때, 아까 통창을 사이에 두고 인사했던 서양인 가족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난간에 팔을 괴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도 아이가 두 팔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했다. 나도 책을 쥔 손을 흔들었다. 이따 잊지 말고 커튼을 쳐야겠다.
*
내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장과 마주쳤다.
"모레에 체크아웃하시죠?"
"네."
"모레 아침에 아까 그 깃발 만드는 거 또 해요. 체크아웃하기 전에 참여하셔도 좋을 거예요."
"몇 시요?"
"아홉 시요."
"생각해 볼게요."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여긴 보통 아침 식사는 몇 시부터예요?"
"여덟 시 반이요. 요금은 그때 지불하시면 되고요. 드실 거예요?"
"고민 중이에요."
"오늘은 뭐가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그렇다면 역시 하늘에 뜬 망고 아닐까? 하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
다음 날에도 비가 내렸다. 전날과 달리 나는 우산을 계속 썼다. 명동극장에서 연극을 봤다. <두 자매와 늙은 당나귀>라는 작품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두 자매가 아버지가 물려준 늙은 당나귀 때문에 다투다가 결국 살인까지 한다는 내용이었다. 자매라고 하기엔 두 여배우의 나이 차이가 많아 보였다. 조카와 이모 느낌이었다. 그런데 극이 진행되자 어느새 두 사람은 자매처럼 보였다. 그러다 무대 인사 때는 다시 조카와 이모 같았다. 다만 회색 쫄쫄이를 입고 사투리로 수다 떠는 늙은 당나귀만큼은 아무리 애써도 당나귀가 아니라 변태로 보였다. 연극을 본 김에 대학로에 가보기로 했다.
을지로입구역을 지나 종각을 지나 종로 5가를 지났다. 도중에 장충시장에 들러 육회비빔밥을 먹었다. 육회비빔밥은 예전 같은 맛이었지만, 장충시장은 예전과 달랐다. 평일임에도 외국 관광객이 북적거렸다. 오랜만에 꽈배기를 맛볼까 하다가 길게 늘어선 줄에 물러섰다.
종로에서 동숭동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보도블록은 울퉁불퉁했고 곳곳에 빗물이 고여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작은 지질조사 회사를 운영했다. 마치 두 자매의 늙은 당나귀처럼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사업이었다. 아버지는 나 역시 사업을 물려받길 바랐지만 나는 고등학생 때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20미터짜리 파이프를 땅 깊숙이 박아 지반을 분석하는 일이 왠지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다만 아버지가 종종 해주는 이야기는 재밌는 게 많았다. 이를테면 내가 걷는 이 길 같은. 오래전 이 길엔 청계천까지 흐르는 좁은 하천이 있었다고 했다. 이 하천은 이화사거리에서 혜화동로터리까지 이어진 대학천의 지류였다. 대학천은 성균관대를 둘러싼 여러 개의 구불구불한 물길(반궁천이라고 했다)이 흘러와 모여 만들어진 거라고 했다. 대학천은 당시 세느 강이라고 불렸다. 파리의 그 세느 강에서 따온 거였다. 물가엔 봄이면 샛노란 개나리가 만발했다고 했다. 노란 물결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개나리 우듬지 너머로 반가운 얼굴들이 나타나곤 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세느 강도, 반궁천도 땅속에 묻혔다. 복개천일지언정 흐르는 건 매한가지 아니냐 싶지만, 아버지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때는 서울대가 동숭동에 있었다. 그때는 지금과 많은 것이 달랐다고 했다. 이를테면 진짜 우정이 있었고, 진짜 사랑이 있었다고, 진짜 신뢰가 있었다고. 아버지는 70년대 후반 시위를 하다 다리가 부러져 일주일 입원했다. 그때 어머니와 만났다. 할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을 때는 자본주의의 개가 되지 말라고 친구가 충고하기도 했다. 왜, 있지, 명식이라고, 우리 집에 와서 맥주 먹고 자다 오줌 싼 놈 말이다. 그걸 네가 제일 먼저 알았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지 않았느냐.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성균관대 담장 옆 언덕길을 올라갔다. 진서에게 아버지의 얘기를 해준 적이 있었다.
"그럼 이 아래에 물이 흐르고 있다고?"
"응, 우리가 걷는 이 길들이 모두 그 복개천 물길이랑 완벽하게 겹쳐."
그러자 진서는 대학천의 수원(水源)을 찾아가 보자고 한 적이 있다. 아버지에게 듣기론 그 수원 중 하나가 이 담장길 근처에 있었다.
나는 곧 낡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낮고 오래된 집들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서울의 여느 동네와 다르게 70년대 이전 단층집이 많았다. 골목도 역시 되는대로 형성된 것 같았다. 마치 숲속의 오솔길처럼 돌연 꺾이고, 돌연 솟았고, 종종 어깨가 간신히 통과할 정도로 좁았고, 그늘이 겹겹이 드리웠다. 그러다가 불쑥 골목 끝에 이르렀다.
그곳엔 오래된 빨래터가 있었다. 전면은 성벽이었다. 그 성벽 너머는 창경궁이라고 했다. 성벽엔 구멍이 뚫려 있고, 그 구멍으로 물이 졸졸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물은 돌로 쌓은 수조에 찰랑찰랑 고였다가 땅속에 매설된 수관으로 빠져나갔다. 그 위로 비가 내렸다.
창경궁에는 춘당지라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다고 했다. 빨래터 물은 그 연못에서 흘러온다고 했다. 예전엔 이 동네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서 빨래를 했다고. 하지만 이젠 이 빨래터는 아무도 이용하지 않았다.
빨래터 맞은편의 집은 폐가였다. 폐가는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건지 지붕 위로 풀이 우거졌다. 담장은 거무튀튀했고 삐뚜름한 철제 대문은 녹이 슬어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는 잠시 쭈그려 앉아 빨래터 안의 물이 흐르는 양태를 바라본다. 우산살을 타고 빗물이 뚝뚝 수조에 떨어진다. 수백 개의 동심원이 피어나고 진다. 내가 태어나기 전 나에겐 누나와 형이 있었다고 했다. 둘은 이란성 쌍둥이였다. 누나는 활달한 대신 화를 잘 참지 못했고, 형은 침착한 대신 세상 재미없는 성격이었다. 두 사람은 모든 걸 공유했다. 같은 침대에서 일어나, ABC초콜릿도 반으로 쪼개 먹고, 추리 소설도 함께 읽었고, 서로의 손을 하나씩 넣고 하얀 모래성을 쌓았다. 명식이 아저씨가 놀러 와서 오줌 싼 건 내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빨래터는 고요하다.
골목을 빠져나와 언덕을 내려갔다. 동숭동 로터리에 있는 동양서림에 들렀다. 이 서점엔 중학생 때 친구들과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 처음이었다. 20년이나 지났는데도 운영하고 있을 줄 몰랐다.
1층을 둘러보니 2층으로 올라가는 철제 원형 계단이 있었다. 나는 카운터 직원에게 올라가도 되냐고 물어봤다. "네, 그럼요. 2층은 위트앤시니컬이라고 다른 서점이에요." "다른 서점이 왜?" "몇 년 전부터 한 공간을 같이 쓰면서 운영하게 됐거든요." 그녀는 위트앤시니컬은 신촌에 있던 시집 전문 서점이라고 했다. 사장은 유희경이라고 유명한 시인이라고 했다.
나선의 계단을 삐걱삐걱 올라갔다. 그 수직의 터널을 통과하니 불현듯 2층이 나타났다. 작은 공간의 사면은 천장까지 시집으로 빽빽했다. 2층 카운터엔 안경을 쓴 장년의 남자가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왠지 깐깐해 보이는 모양새 때문에 그는 과민한 작가처럼 보였고, 작가가 카운터에 앉아 있다면 그는 틀림없는 유희경 시인일 거였다. 나는 그에게 남산에 관한 시를 읽고 싶다고 했다. 그런 시가 수록된 시집을 사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안경을 추켜올리며 픽 웃었다.
"남산이요? 그런 시집을 물어보는 사람은 처음인데요. 평소 시를 좀 읽으시나요?"
"아니요. 어제 한 권 샀는데, 그게 살면서 처음 산 거예요."
"누구였죠?"
"박소란이요."
"좋죠. 좋아. 잘 맞았어요?"
"좋았어요."
"잠시만요."
그러면서 그는 천천히 일어나 서가로 걸어가 "남산, 남산." 주문을 외듯 중얼거리며 시집들을 뒤적거렸다. 자세가 구부정해서 몰랐는데 사장은 키가 꽤 컸다.
"손님, 이 시는 어떠세요?"
그가 내게 어느 시집을 펼쳐서 내밀었다.
<빈사의 백수>
황인숙
남산 위에 저 서울타워
파르라니 빛나고나
바람 많이 불어서
산꼭대기 공기 맑을 테다
아, 왜 이렇게 답답하지
맑고 푸른 저 빛의 빨대를
확 휘어 당겨
빨아 들이켜고 싶고나
오늘 밤 훠이훠이
산에 올라가볼까
그런다고 내 속이
뻥 뚫릴까
나는 그 시가 꽤 마음에 들어서 바로 구입했다. 시집 제목이 좀 웃겼다. 『내 삶의 예쁜 종아리』. 나선 계단을 내려가기 전 사장에게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 꽈배기 맛있는 곳 있나요?"
"꽈배기요? 꽈배기, 꽈배기…"
시에 관해선 황당한 질문에도 여유롭던 그가, 오히려 이번엔 제법 심각하게 집중하는 게 재밌었다.
"…꽈배기, 꽈배기. 그래, 맞아. 손님, 이 근처에, 저기 로터리에서 과학고등학교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꽈배기 가게가 하나 있거든요? 거기가 제가 볼 땐 종로에서 제일 맛있습니다."
서점에서 나왔다. 꽈배기 가게에 들렀다. 한 개 천오백 원, 세 개 이천오백 원, 다섯 개 삼천오백 원이었다. 다섯 개를 먹을 일도 없고, 남은 음식을 버리기 싫어 이천오백 원짜리로 샀다. 다시 길을 돌아 마로니에공원으로 갔다. 아르코미술관 처마 아래 벤치에 앉았다. 아르코예술극장에 가본 적이 있었다. 대학 때 과제로 연극을 단체 관람했다. 당시엔 지하 극장의 계단을 빙글빙글 내려가면서 상당히 음침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렇게 앉아서 전경을 보니 운치 있었다. 마로니에공원의 건물들은 온통 붉었다. 붉은 건물들 위로 빗발이 자욱했다. 꽈배기 하나를 꺼냈다. 어디 하나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잘 튀겨진 황금빛 두 가닥. 참 가지런히도 꼬아놨구나. 그 위에 첫눈처럼 설탕이 내려앉아 있었다. 아직 따뜻했다. 한 입 베어 물었다.
공원 한가운데엔 지붕보다 높은 마로니에 나무들이 품위 있게 드리워져 있었다. 원래 마로니에 공원은 서울대 캠퍼스였다. 원래 서울대는 일제 시대엔 경성제국대학이었다.
경성제국대학 시절 서울에 부임한 일본인 노교수가 몇 그루의 마로니에 나무를 이곳에 심었고, 그게 자라고 자라 지금의 울창한 나무들이 됐다고 했다. 마로니에 공원 뒤편의 언덕을 오르면 낙산공원이었다. 그곳 풍경도 절경이라고 했다. 거기도 갈까 하다가 그만뒀다. 조선 시대엔 낙산에 거주하는 건 불법이었다. 낙산 중턱에서 궁궐 내부가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꼭대기 성곽까지 인가가 빼곡했다. 집들은 이화장 뒤편으로 펼쳐져 성벽 너머 창신동 충신동까지 이어졌다.
마로니에 나무 위로 스스스스스 비가 쏟아졌다. 일곱 갈래로 갈라진 마로니에 잎사귀에서 일곱 줄기의 물이 줄줄 흘렀다. 엷은 비가 정말 지치지도 않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꽈배기를 우물우물 먹었다. 그러다 문득 빈 봉지를 내려다봤다. 설마 벌써 세 개를 다 먹었나 싶어 봉지 안을 다시 뒤졌다. 스스스스스 빗소리. 어쩌지? 위트앤시니컬 사장 말대로 정말 맛있는 꽈배기였다.
*
명동역 3번 출구로 빠져나왔을 때, 지하철에서 우산을 잃어버린 걸 깨달았다. 우산 없이 중턱오케이까지 올라갔다. 여전히 엷은 비였지만, 어제와 달리 금세 몸이 젖었다. 은행나무를 지나칠 즈음엔 눈꺼풀 위로 물줄기가 줄줄 흘렀다. 그 꼴로 중턱오케이에 들어섰더니 사장이 기겁을 했다.
"아니 왜 우산도 없이 다니세요. 여름이라도 감기 걸려요."
"그냥 맞을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우산은요?"
"지하철에 두고 내렸어요."
"잠깐만요."
사장은 안쪽에서 비닐우산 하나를 가져왔다.
"이거 가져가세요."
"괜찮아요."
"아니에요. 어차피 남는 우산이에요. 잠깐요. 한 번 고장 난 건가 보구요."
그러면서 그녀는 우산을 펼쳤다. 투명한 우산 한 면엔 커다랗게 펭수가 그려져 있었다.
"어머, 이게 뭐야. 다른 우산으로 바꿔 줄게요."
이쯤 되면 더는 괜찮다고 하기도 힘들었다.
"그냥, 그거 주세요. 저 펭수 좋아해요."
그녀에게서 우산을 건네받았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고마우면 나중에 또 오세요. 그 친구분이랑 와도 좋고요."
"친구요?"
"여기 소개해 준 친구요. 그 친구하고 오면 할인해 줄게요."
"같이 안 오면요?"
"정가."
그러면서 사장은 예의 멋쟁이 표정으로 웃었다. 그녀의 건치가 반짝였다. 그래서 그런 건가? 나도 그만 조금 웃고 말았다.
샤워를 하고 맥주를 두 캔 마셨다. 잠이 들었다. 잠이 들 무렵 문득 생각이 났다.
어느 날, 진서는 잠들기 전 말했다.
"나 말이야. 듣고 있지?"
"응."
"중학교 1학년 때, 연날리기 대회에 나간 적이 있어. 지역에서 하는 거. 뭐였더라? 구청장배였나? 아무튼."
"응."
"우리 할아버지가 연을 꽤 잘 만들었단 말이야. 듣고 있지?"
"응."
"왜 나갔는지는 기억 안 나. 어쨌든 할아버지만 믿고 있었던 건 확실해. 내가 기억하는 건 매일 할아버지한테 말이야. 오빠한테 지금 그러는 것처럼, 매일 말이야. 할아버지, 방패연으로 만들 거지? 할아버지, 나 1등 하게 해줄 거지? 할아버지, 실은 길게 해줘, 내 게 제일 높이 올라가게. 이렇게 재잘거리기만 했어."
"응."
"결국 대회 전날 할아버지의 연이 완성됐는데, 세상에 오빠, 그렇게 멋진 연은 난 처음 봤어. 우선 내 연은 보통 연보다 두 배는 컸어. 내 몸통보다 훨씬 컸어. 게다가 할아버지는 어디서 보고 왔는지, 연을 종이가 아니라 비닐랩으로 씌워서 만든 거야. 종종 학교 앞에서 비닐로 만든 연을 팔기도 하잖아? 그런 거랑 차원이 달랐어, 그건. 그 커다란 연에는 할아버지가 공들여서 깎은 대나무 살이 뻗어 있고, 그 살 위로 아주 아주 얇은 비닐이 팽팽하게 붙어 있었어. 그 연은 말이야. 마치 어느 깨끗한 계곡에 껴 있을 법한 맑은 살얼음 같았어. 나는 그걸 받고 너무 좋아서 할아버지 목을 껴안고 소리를 질렀어. 할아버지 사랑해! 정말 이렇게 말했어, 할아버지 사랑해."
"응."
"다음 날 아침에도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 하늘은 시리도록 깨끗했고, 누가 17제곱이 뭐냐고 물으면 1초도 안 돼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머릿속도 산뜻했어. 나는 할머니가 끓여준 된장찌개에 계란 프라이를 비벼 먹고는, 행여 연이 망가질까 봐 커다란 종이 박스에 넣어서 대회장인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까지 고이고이 들고 갔지 뭐야. 그런데 말이야. 오빠, 듣는 거지?"
"응."
"막상 그곳에 도착하고 나니까, 내 기분이 팍 식은 거야. 왜냐하면, 거기에 모여 있는 건 초등학생들 뿐이었거든. 딱 봐도 절반은 저학년처럼 보이는 애들이, 딱 봐도 부모님이 만들어준 연을 들고, 코를 질질 흘리면서,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서 있는 거야. 나머지 절반은 고무동력기든 과학상자든 물로켓이든 뭐든 만들기 대회라면 일단 참가하고 볼 것만 같은, 벌써 시력이 마이너스를 돌파한 것처럼 두꺼운 안경을 낀 과학 초딩들이었어. 거기에 나만, 혼자 온 중학생이었어."
"응."
"고민을 계속했어. 어떻게 하지? 이 애들 틈바구니에 껴서 해야 하나? 이 어린 애들을 이겨먹어야 하나? 내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데, 어느새 대회가 시작해 버렸어. 그래서 나도 허겁지겁 박스를 열어 연을 꺼냈지. 그때부터 이미 주변 초딩들이 와와 소리를 지르는 게 들려왔어. 아빠, 저 누나 연 좀 봐! 저렇게 큰 연도 있어? 저렇게 투명한 연도 있어? 또 다른 한편에선 과학 초딩들이 한숨을 푹푹 쉬는 소리도 들려왔어. 그들은 차마 어른들 앞이라 대놓고 못 했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거야, 씨발 반칙, 이라고."
"응."
"갑자기 돌풍이 불었어. 내가 연을 넣어 온 박스가 데굴데굴 운동장 구석으로 날아가 버렸어. 그 운동장에 있던 초딩들과 나는 우리의 소중한 연도 날아가 버릴까 봐, 망가질까 봐 바람을 등지고 연을 품에 안았지. 하지만 내 방패연은 너무 커서 말이지, 그게 그만 바람에 떠밀려 내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던 거야. 나는 이대로 버티면 연이 부러질 것만 같더라구. 그래서 바람에 저항하지 않고 연을 품에 꼭 안은 채 천천히 조심조심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야만 했어. 그런데 그걸 보고 또 초딩들이 와와 거리는 거야. 엄마, 저 누나 연 좀 봐. 이러면서. 물론 다른 한 쪽에선 또다시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왔지."
"응."
"진행자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 여러분 지금 바람이 부니까 곧 연을 띄우겠습니다, 준비되셨나요? 나만 빼고 다들 우렁차게 대답을 했어. 자기 증명에 울고 웃는 초딩들의 전형적인 합창이 그렇듯 말이야. 호루라기가 울렸어. 우린 일제히 두 손에서 연을 놓았지. 수십 개의 연들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쭉쭉 올라갔어.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내 투명한 방패연이 창백한 겨울 하늘 위로 마치 로켓처럼 치솟는 거야. 듣고 있지 오빠?"
"응."
"나는 얼레를 잡고 안간힘을 써야 했어. 이 연이 높이 올라갈수록 그래서 어린 애들의 연이 내 아래로 축축 처질수록 나는 견딜 수 없었어. 견딜 수 없이 수치스러웠어. 그래서 두 팔에 힘을 주고 연이 너무 빨리 솟구치지 못하도록 버텼어.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이렇게 버티다가 실이 끊어질까 봐, 저 가느다란 살들이 압력을 이기다 못해 툭 부러질까 봐 무서웠어.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연이 그 누구보다 높이 올라갈 것이 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그 상승 속도를 낮추는 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던 거야."
"응."
"오른손으로 실을 잡고 있었거든? 그 실이 내 손가락을 하얗게 하얗게 파고들었어. 하얀 선이 하늘로 팽팽하게 잡아당겨지고 있었어. 그 까마득한 직선 끝에서 내 투명한 연이 푸르게 녹은 것처럼 반쯤 보이고 반쯤 보이지 않았어. 나는 필사적으로 얼레와 실을 움켜잡으면서도 혹시나 그 연이 영영 어딘가로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에, 아니 지금도 내 눈앞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건가 싶은 의심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서, 연신 하늘로, 멀리로 고개를 들어 확인해야만 했어. 그러다가 나는 문득 깨달았어."
"응."
"맞아, 나는, 나는 깨달았던 거야. 나는 할아버지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그런데도 말이야. 지난밤 나는 너무 기쁜 나머지 할아버지한테 사랑한다고 했던 거야. 그게, 나를 너무 슬프게 했어."
"응."
"난 말이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게 너무 미안했어. 그런데 오빠."
"응."
"난 지금도 뭔가 슬퍼."
그때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뭐라고 말했던 것 같다.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몰라. 그게 문제야. 왜 슬픈지 모르겠다는 거. 그게 나를 괴롭게 하는 거야, 늘."
그러면서 그녀는 나를 껴안았다.
"그리고, 오빠."
"응."
"우리 침대는 지나치게 넓어."
응.
듣고 있는 거지?
잠에서 깼다.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커튼을 열었다. 실내에 달빛이 가득 들어찼다. 창밖에서 노란 전구를 일제히 켠 것만 같았다. 하늘이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었다. 파르라니 선연한 남산 타워. 그리고 남산타워에 걸린 샛노란 보름달. 마치 탐스러운 망고가 걸린 것처럼. 문득 침대 맞은편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 위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왔다. 천천히 다가갔다. 어제처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밤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계단 위에서 앗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팅팅팅, 팅
무언가 계단을 따라 튕기듯이 내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팔을 뻗어 그것을 받아냈다.
*
잠에서 깼다.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새가 지저귀었다. 커튼을 열었다. 하늘은 먹색이었다. 아직 개려면 멀었구나. 다행히 이번에는 눈 마주칠 사람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아침 아홉 시 반이었다. 나는 대충 세수를 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중앙 테이블엔 그저께의 그 예술가들이 앉아 부지런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천을 오리고 종이를 오리고 펜으로 긋고 색칠하고. 나는 조식을 주문했다. 스크램블드에그와 핫케이크와 소시지 하나, 그리고 커피 한 잔이 나왔다. 그걸 들고 구석의 1인용 테이블에 앉았다. 핫케이크를 한 조각 뜯어 입에 넣었다. 버터와 메이플시럽이 푹신하게 몸속으로 들어왔다. 커피를 마셨다. 달콤함과 씁쓸함이 몸의 말단까지 부드럽게 퍼졌다.
예술가들이 하는 양을 지켜봤다. 다들 추억이 많은지 뚝딱뚝딱 무언가를 잘도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그저께 나에게 말을 걸었던, 그 유럽 도자기 인형 같은 미술 작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말했다.
"재밌어 보이죠?"
"네."
이렇게 대답하고는, 보나 마나 그녀가 "어때요? 함께 하실래요?"라고 제안할 것 같아, 나는 뒤로 살짝 물러섰다. 그러자 그녀 역시 알아들은 듯 멋쩍은 표정을 짓고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 위에 밤하늘의 망고 깃발이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걸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제목이 뭐예요?"
"이거요? 아마 제목이 <이것은 망고가 아니다>일 거예요."
그러고 나서 그녀는 쿡쿡 웃었다. 나는 웃진 않았다. 그저 그러하구나, 그런 제목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체크아웃을 할 때 사장이 말했다.
"저 망고 깃발 그린 손님이요."
"네."
"충전기 놓고 갔다고 아침에 연락이 왔어요. 좀 이따 가지러 온다던데요. 어때요?"
"네?"
"그분한테 지금 301호에 묵는 분이 이 깃발에 퍽 관심이 많더라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자기 올 때까지 그 손님 가지 못하게 잡아두래요."
사장이 덧붙였다.
"기다렸다가 인사하실래요?"
나는 잠깐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요."
언덕을 내려왔다. 하늘은 칙칙했다. 습도도 더위도 아주 여름적이었다. 아직은 비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사장은 내가 우산을 돌려주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또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른다는 거였다. 그리고,
"손님이 집에 뽀송뽀송하게 돌아가야, 우리 숙소에서의 마지막 기억도 뽀송뽀송할 거잖아요. 그래야 다시 올 거구요. 맞죠?"
라고 멋쟁이 건치 미소를 짓는 거였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무심코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런데 손끝에 차갑고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 그것을 꺼내 손을 펼쳤다.
버건디색 헤어핀이었다. 아세테이트 소재의. 그건 우리가 두 번째로 맞이한 크리스마스에 내가 사준 거였다. 진서는 그 헤어핀을 꽤 마음에 들어 해서 애지중지 보관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오므렸다. 아니 꽉 쥐었다. 모서리가 하얗게 하얗게 파고들었다. 지하철이 들어왔다. 40개의 출입문이 일제히 열렸다. 사람들이 나를 지나쳐 내리고 탔다. 그들은 메마른 우산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손을 꽉 쥔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감각.
나는 심심함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매일 심심했다. 대체 심심이 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 감각. 이 느낌. 이 마음. 진서야.
이것이 바로,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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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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