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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 아래

  • 작성일 2026-10-01

  보트 아래


손호영

 

  한때 나는 얀의 말대로 집 앞을 비추는 보안카메라를 설치했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해 보곤 했다. 그가 사랑해 마지않던 햇빛, 무심히 우리 집을 침범하던 빛을 나도 결국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 도시에 뿌리내렸다면, 나의 세계는 바라던 만큼 넓어졌을까? 어쩌면 우리는 아기를 낳아 키웠거나, 혹은 결혼했을지도…… 이런 생각들은 물의 파동처럼 하나의 점으로부터 사방으로 원을 그리며 뻗어 나가곤 했다.

  나는 그를 떠나며 가족 핑계를 댔다. 여기서는 영원히 가족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는 짐짓 놀라며,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나에게 너는 오래전부터 가족이었다고. 글쎄. 정말?

  찰나였지만, 얀은 정말 상처받은 것처럼 보였고, 나는 승리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지난 일들을 여러 번 되감아 보면서 나는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이었는지 원점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 그의 견고한 세계에 작은 생채기라도 낼 수 있는 존재였는지를.


*


  암스테르담 출장에 김수오를 데려간 건 박 대표 부탁 때문이었다. 그곳에 살 때부터 눈여겨보았던 로컬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와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맺으려던 참이었다. 수 개월간 메일과 화상 회의로 대략의 조건 조율이 끝난 단계여서 큰 부담은 없었다. 현지 스튜디오와 쇼룸을 돌아보는 일정까지 포함해 4박 6일 출장 계획을 보고했는데, 박 대표가 그제야 김수오에게 시킬 만한 일을 고민해 보라고 말했다.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오 년을 살다 이 년 전쯤 귀국했다. 반년 넘게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던 내게 해외 바잉과 상품 기획을 총괄하는 차장 자리를 제안하며 손을 내밀어준 게 대학 선배인 박 대표여서, 나는 그의 지시라면 가급적 따르는 편이었다.

  김수오는 박 대표 친구의 아들로 올해 스물일곱 살이었고 몇 달 전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그의 아버지는 치아 교정 전문의로 전국에 네트워크 병원이 30곳쯤 있는 치과 체인의 대표라고 했다. 잘은 몰라도 박 대표는 김수오의 아버지에게 얼마간 빚을 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불쑥 남의 사무실을 찾아와 맡겨둔 듯 자기 아들 일자리를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 그것도 정규직을, 의사라면 상식이 있는 사람일 텐데, 하고 직원들끼리 수군댔다.

  ─우리 아들이 올해 졸업하는데 패션을 하고 싶다네.

  그러면서도 아주 당당하거나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박 대표에게 전해 들으니 그 집안은 대대로 의사였는데, 김수오가 삼수를 하고서도 의대 입시에 실패했다고 했다. 메디컬 편입을 하라고 생명공학부에 보내놨더니, 학점 관리는 뒷전에 갑자기 패션MD를 하겠다고 선언해 집안이 뒤집어졌다는 것이다.

  경력직 뽑아달랬더니 낙하산 신입이 웬말이냐고 투덜대는 직원들에게 박 대표는 김수오가 비싸고 좋은 것들 많이 보고 자랐으니 감각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미감이니, 취향이니, 요즘 그런 거 없는 애들도 있어요?

  내가 말했다.

  ─말하자면 그렇단 얘기지.

  ─엑셀이나 배워 오라고 하세요.

  어려서부터 누린 문화 자본과 미적 감각이 대체로 정비례한다는 박 대표 말은 일리 있었다. 그러나 좋은 안목을 갖추는 것과 거기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은 엄연히 달랐다. 김수오의 이력서엔 그런 걸 기대할 만한 구석이 조금도 없었다. 학점은 3점 초반대, 어학 점수는 명문대 출신임을 감안하면 평균 정도였다. 그 흔하다는 인턴 경력도, 자격증도, 하다못해 SNS 주소도 없었다. 한마디로 간절함이 없었다. 이력서 사진 속 김수오는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앞으로 살짝 돌출된 듯한 그의 치아는 지나치게 가지런했고 하얀 도자기처럼 빛났다.

  ─이력서 사진에서 이렇게 활짝 웃는 사람 봤어요?

  ─라미네이트 같은데요. 완전 사기네. 아빠가 교정 전문의인데 아들은 라미?

  직원들은 그가 입사하기 전부터 미워할 구실을 찾았다.

 

  김수오가 처음 출근한 날, 우리는 대담한 컬러로 조합한 상하의와 적절하게 배치한 장신구들을 보고 패션에 관심 있다는 그의 말이 겉멋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막내 직원은 그를 어디선가 본 적 있다고 하더니, 팔로워가 7만 명쯤 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금세 찾아냈다. 수오 씨 인플루언서라며? 누군가 던진 말에 김수오는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개인 계정이라 회사에 오픈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99년생도 엠지인가?

  내가 물었다.

  ─젠지.

  말끝을 흐리는 게 나에겐 반말로 들렸다.

  애초부터 그에게 신입의 덕목 같은 걸 기대하진 않았다. 본인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우리 회사 일을 ‘경험 삼아’ ‘해보고’ 있었다. 본인이 맡은 업무의 필요나 의미 같은 걸 자꾸 판단하려 들었고, 몇 년 후 자기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했다. 그런 낙관은 든든한 배경과 젊음에서 비롯한 것이 분명해 보였는데, 남들이 보기엔 우습고 대책 없었다. 대리, 과장들은 그와 대면하는 걸 피했다.

  ─어디서부터 알려줘야 할까요. 살면서 한 번도 혼나본 적 없는 친구 같아요.

  김수오를 가르치는 건 어느새 그보다 열세 살 많은 내 몫이 되어 있었다. 

  나 역시 그가 불편했지만, 명색이 차장인데 싫은 마음을 공공연히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짜증 난다거나 피곤하다는 말을 이렇게 대신하곤 했다. 참…… 안타깝네, 안타까워. 그러다 보니 어느 날부턴 정말로 그가 안타까워졌다. 나는 그의 선생이 아니고 보호자는 더더욱 아니었는데도. 팀원들은 대체 누가 누굴 걱정하냐고 했다. 쟤 인생은 탄탄대로일걸요? 부정할 수 없었다.

 

  출장을 준비하는 내내 신경이 날카로웠다. 굳이 신입을 달고 가야겠느냐며 짜증을 냈지만, 김수오는 핑계였다. 그 도시에 돌아간 내 모습을 상상하면 마음이 볼품없이 쪼그라들었다. 가기 싫다는 말로 이 마음을 딱 잘라 말하긴 어려웠다. 생활이 쉴 틈 없이 몰아칠 때면 그 도시의 여유가 그리웠고, 그럴 때마다 내가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함께 떠올랐다.


  얀과 나는 여행지에서 만났다. 한 달간의 여행과 몇 달에 걸친 장거리 연애 후 그가 나에게 암스테르담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모든 과정이 이미 그렇게 되기로 정해져 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디자이너로서 유럽 생활은 오랜 로망이었고, 더 늦기 전에 커리어를 확장하고 싶기도 했다. 그때 나는 스스로 조금 특별하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대학 때까진 공부든 실기든 상위권이었는데, 다니던 회사에서는 충분히 대우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새로운 환경에서 내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퍼진 감염병은 예상 못한 변수였다. 현지 패션 회사들은 채용을 미루거나 이미 올린 공고를 거둬들였다. 파트너 체류 허가를 받은 뒤에도 일자리를 구하는 데 반년 가까이 걸렸다. 그동안 얀은 한 번도 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도 뜻밖의 재난이 선물해 준 둘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얀은 내가 자신에게 과분하다고 말한 유일한 남자였고, 나는 그 지점을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만이 나를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인정해 줄 수 있는 남자라고 여겼다. 마침내 그간의 경력을 살려 글로벌 패션 회사에 프로덕트 디벨로퍼로 취업했을 때, 얀은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조촐한 파티를 열어주었다. 착실히 커리어를 키워가며 독립적으로 생활 기반을 다져가는 나를 그는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모든 사회적 제한이 풀린 후 얀은 오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것처럼 나를 만나기 전의 생활로 복귀했다. 그는 달라진 게 없다고 했지만 내 느낌은 달랐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빠르게 줄었다. 나는 홀로서는 법을 미처 배우기도 전에 내던져진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나는 일 년 전까지 드문드문 오던 얀의 연락을 읽기만 하고 모른 체했다. 얀이 왓츠앱에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는 '언제든 다시 돌아오면 연락하라'는 거였다. 그러나 얀이 나를 보기 위해 한국에 온 적은 지금껏 없었다.

  그 도시에서 맺은 인연 가운데 꾸준히 연락을 이어가는 사람은 서너 명뿐이었다. 회사 동료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얀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딱 한 번, 그중 한 명이 '이번엔 알아야 할 것 같다'며 얀의 이야기를 꺼냈다.

  ─잠깐, 나는 듣고 싶지 않아.

  ─이해해. 하지만 나는…….

  ─고마워. 그게 뭐든, 아직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스스로 듣기를 거부해 놓고 하루하루 지날수록 궁금증이 커졌다. 죽은 것만 아니면 돼. 거기까지 퍼뜩 생각이 미쳤다. 차단했던 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다시 들어가 봤다. 그의 피드는 일 년 전쯤에 멈춰 있었지만, 댓글을 살펴보니 다행히 죽었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나는 궁금한 점을 끝까지 묻어두기로 했다.

  암스테르담에 간다고 해서 얀을 마주칠 거란 보장은 없었다. 비록 암스테르담 면적이 서울의 3분의 1 수준이고, 운하 면적을 제외하면 약 5분의 1까지 줄어든다고는 해도. 그곳이 얀이 사십 년째 살고 있는 터전이고 그를 직접 아는 사람이 수십 명, 건너 아는 사람이 수백 명,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수천 명에 달한다 해도. 그와 꼭 마주칠 거란 법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두려웠다. 누구도 나를 내쫓은 적 없는데, 혼자 물 바깥으로 튕겨 나온 기분이었다. 내가 며칠이든 암스테르담에 머무는 걸 안다면 얀은 반드시 나를 찾을 것이라고, 그때는 그렇게 믿었다.



  김수오는 인생 첫 출장을 앞두고 꽤 들떠 보였다. 해외여행이야 자주 가보았을 텐데, 회사를 대표한다고 하니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할 거라고 기대하는 모양이었다. 택시를 잡거나 식당을 예약하는 등 자잘한 심부름만 문제없이 해준다면 나로선 족했지만,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 겸 우리 편집숍 공식 인스타그램 업무를 맡겼다. 현지에서 콘텐츠를 기획해 발행까지 해보라고 했다.

  그가 입사해서 처음 맡은 업무 역시 인스타그램 채널 개편이었다. 보고서 한 번 안 써본 신입에게 벅찬 과제였지만, 일머리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경쟁사 사례 조사와 그가 제안한 디자인 톤앤매너, 콘텐츠 기획이 꽤나 그럴듯했다. 업로드 전 반드시 상사인 과장에게 확인받는 조건으로 그에게 계정 운영까지 맡겼다.

  어느 날 김수오가 내가 입은 바지의 사이즈를 묻기에 스몰이라고 답했다. 우리가 새로 바잉한 브랜드 제품이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공식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내 뒷모습 사진이 여러 장 올라왔다.

  핏 참고하세요

  남녀 공용 / 키 160cm 중반 / 사이즈S (TOP:개인소장)

  직원들의 자연스러운 착장을 올린다는 기획엔 동의했지만, 거기에 차장인 나까지 포함될 줄은 몰랐다. 나는 그를 붙잡고 여러 장 찍은 것 중 세 장을 업로드한 건지, 딱 세 장만 찍은 건지, 사진을 전부 지워줄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김수오의 태도가 너무 태연했다. 그즈음 나는 마흔이라는 나이를 과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따지고 드는 게 요즘 감각에 뒤처진 걸로 보일까 봐 신경 쓰였다. 과장이 컨펌했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대놓고 지적하는 대신 사진 속 사무실 풍경이 너무 전형적이어서 우리 샵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으니 재검토를 해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도 슬쩍 들어가 봤다. 팔로워가 7만쯤 되면 일일이 추적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 스토리도 편안히 확인했다.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꼭 해야 할 것들 추천해 주세요. 맛집 핫플 다 좋아요.' 라는 질문을 올려두고 답변을 하나하나 재공유했다. 출장이 놀러 가는 건 줄 아는가 보지. 그러면서도 나는 수십 개의 문답을 일일이 넘겨봤다. 내가 살 때만 해도 없었던 새로운 카페나 음식점, 구경할 만한 스팟들이 많이 올라와 덩달아 즐거웠다. 그러다 얀과 즐겨 찾던 편집숍, 미술관 등 익숙한 장소들이 보일 때면 마음이 돌부리에 걸린 것처럼 덜컹거렸다.

  운하에서 보트 타며 샴페인 마시기: 오 이거 굿! 꼭 해볼게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것만큼은 출장지에서 절대로 함께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얀은 늘 보트를 사고 싶어 했다. 어릴 적부터 자기만의 보트를 갖는 게 로망이었다고 했다. 돈이 충분히 모이지 않자 친한 친구와 공동소유라도 하고 싶다기에 나는 반대했다.

  ─날씨가 좋을 땐 두 사람 다 타고 싶을 텐데? 주변에 물어보니 보트를 공유하는 건 친구와 사이가 틀어지는 가장 빠른 방법이래.

  나는 정 갖고 싶다면 올해 말쯤 나와 돈을 합쳐 사자고 말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내가 모은 돈은 얀보다 서너 배 많았고, 부모님이 마련해주신 서울의 소형 평수 아파트 한 채에서 월세도 받고 있었다. 마음먹으면 내 돈만으로 보트를 살 수도 있었다. 그 말을 했을 때 그는 의기소침해 보였다. 나는 얀이 그런 걸로 주눅들지 않는 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조금 놀랐다. 얀은 보트 문제만은 네가 건드리지 말라고 차갑게 말했고, 커리어가 더 안정되면 자기 돈으로 보트를 살 거라고 했다. 나는 나에게도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무슨 마음인지 안다고, 내가 사려 깊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어느 주말, 얀의 친한 친구가 우리를 자기 가족 소유 보트에 초대했다. 거금을 들여 관리하는 고급 보트라고 했다. 얀이나 가족과 보트를 탄 적은 있었지만, 친구들과 여럿이 배에 오르는 것은 처음이었다. 거리두기가 끝나고 처음 맞는 여름이어서 나를 포함해 모두가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얀은 오는 길에 적당한 술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했고, 나는 나름의 성의를 보이려 150유로가 넘는 유명 브랜드 샴페인을 가져갔다. 그런데 병을 건네받은 그들의 표정에서 고마움보다는 당혹감과 비웃음이 읽혔다.

  ─혹시 너무 과한가?

  그중 얀과 가장 친한 친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오, 아니야. 얀에게 들었어. 신경 쓰지 마.

  ─무엇을?

  친구는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하며 얀을 봤다. 얀은 내 눈을 피하며 화제를 돌렸다. 처음에 영어로 함께 이야기하던 얀과 친구들은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더치로 대화하며 웃었다. 얀이 뒤늦게 나를 의식하고 영어로 통역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새로운 대화를 시작했다. 언어가 그런 방식으로 한 번 걸러질 때 나는 너무나 간단하고 짧게 전달되는 말들을 의심하게 됐다.

  그들은 종종 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얀의 말에 따르면 칭찬이었지만, 그 말들은 내가 모르는 새 명백히 나를 구성하게 될 터였다. 나는 거기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가만히 있든, 무어라 반박하든, 나의 반응이 동양인의 일반적인 특성으로 굳어질까 봐 신경 쓰였다.

  얀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물론 좋은 사람들이었다. 얀이 나를 처음 소개했을 때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처럼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보는 눈에는 어딘지 묘한 데가 있었다. 모두 크고 작은 일로 나를 기꺼이 도와주었는데, 언젠가부터 살짝 어색했다고 할까. 분명 날 돕고 있는데 사실은 얀을 돕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얀이 아니라면 그들이 나를 도울 이유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그들을 도울 일은 평생 없을 것처럼.

 

  그날 보트를 타고 집에 돌아온 얀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는 반대였다. 그들은 내가 사간 샴페인에 거의 손대지 않았다. 나는 아까운 마음에 혼자 그걸 홀짝대느라 취해버렸다. 배 위에서 오랜만에 이 도시를 관광객처럼 뜯어봤다. 운하를 따라 낮게 늘어선 집들, 해를 보러 길가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 나에겐 배의 모터 소리와 다를 바 없는 그들의 언어……. 얀이 없어도 이런 것들이 나에게 의미 있을까?

  집에 돌아와 얀에게 샴페인에 대해 물었더니 별것 아니라는 듯 답했다.

  ─아, 그거. 우리는 그냥 20유로짜리 프로세코 정도 있으면 되는 거였어.

  ─미리 말해주지 그랬어.

  ─이제는 알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그게 너희들 사이 문제가 됐어?

  ─그런 건 아니지만 조금, 과했다는 거지 네 말대로.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


  나와 김수오는 암스테르담행 비즈니스석에 앞뒤로 앉았다. 해외 출장을 수도 없이 다녔지만 비즈니스석은 처음이었다. 출장이 확정되자마자 김수오는 마일리지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도록 이코노미보다 40만 원 더 비싼 운임을 예매해도 되겠느냐고 박 대표에게 물었다. 마일리지는 본인 것을 쓰겠노라고 선심 쓰듯 말했다. 느닷없는 요청에 박 대표는 잠시 말문이 막힌 듯하더니, 가는 편만 그렇게 하라고 했다. 처음엔 김수오가 못마땅했는데, 막상 편안한 좌석에 몸을 누이니 나도 진작 한 번 말해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수오는 기내식도 먹지 않고 비행 내내 잤다. 반면 나는 샴페인을 두 잔이나 마시고 좌석을 침대처럼 펼쳐놓고도 잠들지 못했다. 도착지가 가까워져 올수록 기분이 어두운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스키폴 공항에 내려 익숙한 동선을 따라 수속을 밟았다. 김수오는 푹 잤더니 개운하다며 가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일들을 읊었다. 나는 피곤했지만, 그의 들뜬 기분에 기대어 조금씩 긴장을 풀었다.

  ─인스타 스토리 올렸어요. 과장님이 여기선 차장님 컨펌 받아서 올리면 된다고 했는데, 이 정도는 괜찮죠?

  ─피드는 확인받고 올려. 비즈니스석 탔다는 걸 우리 계정에 올린 건 아니지?

  ─저 그 정도 눈치는 있어요.


  도심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8시가 넘었는데 여전히 밝았다. 김수오는 마음에 드는 풍경이 생길 때마다 당연하다는 듯 나에게 사진이나 영상 촬영을 부탁했다. 개인 계정에 올릴 용도였다. 기분이 묘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카메라가 나를 향할 일이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사진 속 김수오는 자연스럽고 활기찼다. 그가 자랑하고픈 것은 돈이나 여행만이 아닌 거 같았다. 사진과 영상이 충분히 잘 나왔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쿨한 태도를 연출하는 듯도 했고, 어쩌면 정말 결과를 걱정하지 않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첫날 저녁을 먹으면서 김수오는 불쑥 대학 입시에 여러 번 실패했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그랬구나, 하며 처음 듣는 소식인 척했다.

  ─돌아보면 의사 할 생각도 없었는데 후회돼요. 지금껏 되는대로 살았는데 이 회사 들어와서 확실한 목표가 생겼어요.

  그가 말했다.

  ─브랜드 만드는 거?

  ─네. 그래서 유럽에서 몇 년쯤 살아볼까 해요. 여기도 좋고, 베를린이나 코펜하겐도 생각 중이고.

  ─무슨 비자로?

  내가 물었다. 김수오는 예상치 못한 듯 당황했다. 

  ─어, 생각 안 해봤네요. 워홀?

  나는 카페에서 손님을 응대하거나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는 김수오 모습이 상상되지 않아 피식 웃었다.

  ─일 년이 최대인 건 알지?

  내가 말했다.

  ─어떻게든 되겠죠. 아빠가 하고 싶은 거 하래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국제학교 가서 나와 살걸.

  ─나와 살면 뭐 다를 것 같니.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 역시 해외에 나오면 인생이 여러 단계 성장할 것이라 기대했던 게 떠올랐다. 예술의 토양이 탄탄한 유럽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이곳에서의 생활이 그 지점만은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다. 무엇을 보고 어디에 시간을 쓰느냐에 달렸지.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느냐도 중요하고. 나는 뒤늦게 그런 말들을 덧붙였다.

  우리가 찾은 식당은 암스테르담에서 성공적으로 미슐랭을 받아낸 셰프가 세컨드 브랜드로 연 캐주얼 와인바였다. 대기를 걸어두었다가 어렵게 예약한 곳이었다. 메뉴 중 백김치로 만든 스프링롤이 있었다.

  ─이런 게 다 있네. 화이트 김치가 아니라 'baek-kimchi'라고 썼어.

  내 말에 김수오는 이제 이런 건 너무 흔하다고 했다. 한국인으로 사는 게 세계적으로 힙하고 쿨해졌다고. 나는 이곳에서 내부인이 되기 위해 분투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코로나. 고 백 투 유어 홈. 입맛이 뚝 떨어졌다.

  반면 김수오는 술을 몇 잔 하면서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출장 동선을 완벽하게 짜두었으니 자기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오시면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 모습이 내심 재밌기도 해서, 서서히 말에 긴장을 푸는 걸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그러자 급기야 차장님은 해외에 나오니 마흔으로는 안 보인다는 둥, 여기서는 직급 대신 이름을 부르면 안 되냐는 둥 말을 했다.

  ─이름이 싫으시면, 누나는?

  ─뭐?

  나는 실제보다 더 과장해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을 넘지는 말라는 경고였다.

  ─어, 이거 무슨 남녀 이런 걸로 몰고 가시는 거 아니죠? 농담이에요 농담. 죄송합니다.

  나는 우리는 놀러 온 게 아니고, 회사는 대학 동아리가 아니라고 당부했다. 남자 상사였다면 이런 농담은 못 했을 것 같으면서도, 남자들은 이럴 때 후배를 적당히 귀엽게 봐주고 넘기기도 하는 건가 싶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이후 출장 기간 내내 그와 진지하게 대화할 시간이 없었다. 계약을 마친 뒤에도 대중교통으로 여러 로컬 스튜디오와 쇼룸을 돌아다니느라 바빴고, 한국 업무 시간에 맞춰 처리할 일들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첫날 실수 이후 김수오가 내내 눈치를 살피는 게 은근히 신경쓰였다. 혹시 내 반응이 과했던 건 아닌지 자꾸 곱씹게 됐다. 

  지난 나흘간 그는 내가 바란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우리가 찾은 브랜드의 최신 시즌 옷을 알맞게 챙겨 입어 자연스러운 스몰토크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중요한 미팅에선 조용히 분위기를 맞췄다. 그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계약에서 예상치 못한 소득도 있었다. 쉴 시간도 부족할 텐데 '바잉 MD 현실' 같은 인스타그램 릴스를 뚝딱 편집해 올린 걸 볼 때면 확실히 20대 에너지가 다르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주 현지인들의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영화 같다’고 말했다. 테라스에서 햇빛을 받으며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한 권 들고 강아지와 산책 가는 평범한 그림이었다. 나는 그가 촬영하는 인물들이 주로 백인이라는 걸 지적하고도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도 그런 풍경을 아름답다고 느끼던 시기가 있었던 게 기억났다. 마르고, 길쭉하고, 옷 입혀 놓으면 분위기 살지.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했었다.

  첫날 이후, 나는 개인 약속을 핑계로 저녁 시간을 대부분 혼자 보냈다. 집에서는 멀지만 얀과 종종 찾았던 레스토랑에서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파스타를 먹었다. 2년 만에 갔는데도 맛이 그대로였다. 목적지 없이 길을 걷다가, 자주 찾던 미술관 앞 벤치에서 멍하니 한 시간을 앉아 있기도 했다. 얀의 것과 비슷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내 앞을 휙휙 지나갔다. 오기 전 걱정했던 것과 달리 별다른 감상이 들지 않았다.


  귀국 전날 밤, 김수오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꼭 하고 싶은 게 있다며 두 손을 모으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차장님. 화내지 말고 들어주세요.

  ─뭔데?

  ─제가 암스테르담에서 제일 기대했던 게 뭔 줄 아세요?

  ─나는 모르지.

  ─운하에서 보트 타는 거예요.

  ─아하.

  나는 코웃음을 쳤다. 올 게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미팅도 없잖아요. 암스테르담 가는 김에 현지 트렌드 캐칭도 하고. 인사이트 많이 얻어 오라고 대표님도 그러셨고요.

  ─보트에서 무슨 트렌드와 인사이트를 얻어?

  ─보트 타기는 젊은 현지인들이 이 계절에 제일 많이 즐기는 취미입니다. 수오 님이 현지인같은 바이브를 즐기고 싶다면, 보트 타기는 아주 좋은 선택입니다. 암스테르담에는 다양한 보트 관광 옵션이 있어요.

  김수오는 어딘가에서 찾은 내용을 줄줄 읽었다.

  ─당일 예약 가능한 보트가 있을까? 관광객들이 단체로 타는 투어 상품 정도는 있겠지만.

  내가 부드럽게 반응하자 김수오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제가 한 번 찾아볼게요.

  ─오전엔 일해야 하는 거 알지?

  ─그럼요. 같이 가시는 거죠? 상황 봐서 가능하면 타는 걸로요.


  내일은 토요일이었고, 예보는 온종일 맑음이었다. 이런 주말이면 대여 보트는 일찌감치 마감되곤 했다. 배가 남아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김수오가 어떻게든 구한다면 마지막 날만큼은 원하는 걸 하게 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차장님은 보트 타보셨죠?

  김수오가 물었다.

  ─내가?

  ─네. 암스테르담에 오래 사셨다면서요.

  나는 김수오에게 이야기한 적 없었다. 김수오는 알면서도 내내 모른 체해온 것이었다. 박 대표가 무언가 귀띔해준 게 분명한데, 어디까지 이야기한 건지 알 길이 없었다.

 

*

 

  나와 얀이 살던 집은 길가를 면하고 있었다. 나는 2층집을 구하고 싶었지만 얀은 우리가 동등하게 돈을 부담해야 한다며 1층집을 고집했다. 현지인들은 바깥의 풍경과 햇빛을 집 안에 들이는 일을 무슨 의식처럼 여겼고, 얀 역시 마찬가지였다. 혼자 살게 된 이후로는 내내 1층집에만 살았다고 했다. 나는 누군가 마음먹으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지만, 얀은 너무 당연하게도 내가 적응해야 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게 우리 문화야. 너는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

  그의 말처럼 나는 거기 적응하는 것이 주류문화에 완벽히 편입하는 지름길이라도 되는 양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애썼다. 현지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아보니 창을 가리지 않는 건 남들에게 숨길 것 없이 떳떳하게 산다는 걸 드러내는 전통이라고 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떳떳해지지 않았다. 창문을 닫고 생활할 때도 자꾸 바깥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의식하게 됐다.

  어느 금요일 저녁, 얀과 나는 이른 오후부터 친구들과 술을 한잔했다. 보통은 취할 때까지 마시지 않는데, 그날은 날씨도 좋고 축하할 일이 있어 술이 과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웃옷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쓰러지듯 소파에 누웠다.

  세 시간쯤 잤을까. 눈앞에서 번쩍 빛나는 플래시에 소스라치며 깼다. 동시에 누군가 후다닥 밖으로 도망쳤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숨이 턱 막혀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나 쫓아가려다 소파에서 떨어지며 무릎을 찧었다. 범인을 따라 나가는 대신 안으로 다시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갔다. 그리고 급히 내 옷차림을 살폈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고, 흰색 얇은 민소매 티셔츠와 아주 짧은 속바지만 입은 채였다. 소파 위에서 나는 다리를 벌리고 있던 것 같기도 했다.

  덜덜 떨며 방에 들어가 잠든 얀을 깨웠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내 몸, 사진, 두 개뿐이었다. 침입이란 단어가 기억나지 않았다.

  ─누군가 들어왔어. 누가 내 사진을 찍었어. 나의 몸.

  나는 영어로 띄엄띄엄 말하다 나중에는 한국말로 소리쳤다. 어떤 새끼가 우리 집에 몰래 들어와서 내가 자는 걸 사진으로 찍었다고. 당장 잡아야 해. 경찰에 신고해야 해!

  얀은 내 말대로 경찰에 신고하면서도 혹시 꿈꾼 건 아니냐고 했다.

  ─내가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문 잠그는 것을 잊을 리 없는데.

  얀이 말했다.

  ─당신이 먼저 들어오고, 내가 뒤따라왔는지도 모르지. 술에 취해 실수했을지도.

  나는 무릎에 난 피를 휴지로 찍어내며 다시 한번 상황을 복기했다. 너무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했고, 쫓아 나가려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만 넘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따라 나가지 않은 것은 잘했어. 그건 잘한 일이야.

  얀이 내 양쪽 어깨를 끌어안고 달래듯 말했다.

  ─이래서 1층은 싫다고 했지.

  내가 말했다. 전통이든 문화든, 이 집은 내게 안전하지 않다고. 얀은 다시 한번 혹시 꿈일 확률이 없느냐고 물었다.

  ─꿈은 절대 아니야.

  ─혹시 창문 바깥에서 사진을 찍은 건 아닐까?

  ─집에 들어왔다고. 내가 뛰쳐나갔다니까!

  ─플래시가 터지는 바람에 너무 놀랐을 수 있어.

  얀은 거실 불을 끄고 바깥으로 나갔다. 창밖에서 집안을 향해 플래시를 터뜨렸다. 눈앞이 새하얘졌다. 분명 느낌이 아까와 달랐다. 꿈이 아니었음이 확실해졌다.

  ─음.

  얀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휴대폰을 닫았다. 나는 사진을 보여달라고 말했다.

  사진 속 나는 풀어헤친 머리를 하고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무표정이었지만 나는 그 모습이 겁에 질린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흰색 민소매 뒤로 짙은 갈색의 유륜과 젖꼭지가 적나라하게 비쳤다. 나는 그 사진이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칠 생각은 없었을 거야. 그럴 거였으면 진작 뭔가 벌였겠지. 이런 걸 바보처럼 온라인에 올릴 리도 없고.

  ─그러면 괜찮다는 거야?

  나는 기가 막혔다. 경찰은 간단한 리포트만 받아두고 더 이상 수사하지 않았다.

  얀은 나에게 우리 집 앞을 비추는 보안카메라를 설치하자고 했다. 그러면 안심이 되지 않겠느냐며. 나는 이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카메라는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아. 답은 우리가 2층이나 3층으로 이사를 가는 것뿐이야. 얀은 그 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주저했다.

  얀의 친구들과 이웃들은 어쨌든 내가 다치지 않았고 없어진 물건도 없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그들은 동네 왓츠앱 그룹에 범인의 인상착의와 함께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모두들 '쏘 크리피' 하다고 말했다. 크리피라는 단어에도 나는 진절머리가 날 것 같았다. 변태적이고 기괴한 범죄라는 단어로 내가 당한 피해를 한정 짓는 것 같았다.

  얀의 가족은 나에게 혹시 그 남자가 동양인이 아니냐고 했다. 한국의 불법 촬영 범죄들을 다룬 기사를 본 적 있다고 했다. 나는 옹호하고 싶기도, 그러고 싶지 않기도 한 이상한 감정에 휩싸이면서 아니었다고, 그 남자는 키가 1미터 90cm가 넘는 백인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쨌든 크리피하고 크레이지한 범죄라고 했다. 그러나 경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것에 나만큼 분노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나는 정착 초기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던 동양인 그룹이 아쉬워지기까지 했다.

  그날 이후 얀의 누나가 특히 세심하게 나를 살펴 주었다. 자신도 요즘 창문을 열어두고 지내는 게 신경 쓰일 때가 있다고 했다. 예전엔 괜찮았지. 그런데 요즘은 관광객들과 이민자들이 너무 많아졌잖아. 그리고 자신의 집에 돌아가서는 여전히 해가 어둑해진 뒤까지 창을 활짝 열어둔 채로 생활했다.

  내가 얀을 떠난 건 그 후로 넉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얀의 가족들과 다 같이 맥주 한잔하며 휴대폰 앨범을 넘겨보다 그 사진을 발견했다. 곧바로 지워달라고 부탁했던 사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얀은 살짝 취했지만 만취하지는 않았다. 왜 사진을 지우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얀은 그 사진이 은근히 섹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암스테르담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할 때면 이 일화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나와 얀은 결혼 대신 공동생활계약을 맺고 살았지만, 나는 그게 결혼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왔다. 처음엔 그 둘이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현지인들에겐 일반적인 단계이며 결혼과 별 차이가 없다고 얀이 말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가족이나 지인들도 내가 이혼하고 돌아온 것처럼 대했다. 박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주로 지난 5년의 시간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기를 선택했다.

 

*


  다음날 오후, 김수오와 나는 두 명이 겨우 엉덩이를 비집고 앉을 수 있는 무동력 페달보트 위에 있었다.

  처음부터 이런 걸 빌리려던 건 아니었다. 박 대표 요청으로 오전 내내 급한 일을 처리했고, 간단히 점심을 먹고 보니 오후 한 시가 넘었다. 돌아가는 비행기가 오후 여섯 시라 겨우 다섯 시간이 남아 있었다. 이쯤 되면 알아서 포기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김수오는 끈질겼다.

  ─보트를 한 시간쯤 타고, 숙소까지 30분 이동해 짐을 찾으면, 공항까지는 20분밖에 안 걸리니 비행기 타기엔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타고 싶으면 저거라도 타든지.

  나는 인도계 가족 네 명이 탄 페달보트를 턱으로 가리켰다. 아빠와 딸로 보이는 두 명이 앞 좌석에서 열심히 발을 구르고 있었다. 김수오가 저런 걸 절대 타고 싶어 할 리 없다고 생각해 건넨 제안이었다.

  ─오. 나쁘지 않은데요? 빌리는 곳이 마침 걸어서 10분이네요.

  뜻밖이었다. 김수오는 저것도 은근히 힙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힙함이란 게 대체 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 나흘간 운 좋게도 아는 사람을 마주치지 않았는데, 저 초라한 보트를, 그것도 한참 어린 남자와 타는 모습을 누군가 보기라도 할까 봐 신경 쓰였다.

  ─차장님, 시간이 없어요. 빨리 걸으세요.

  지금이라도 못 타겠다고 거절할까 고민하다가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페달보트 대여소 직원은 다양한 코스를 안내했다. 운하를 따라 도시를 한 바퀴 돌고 같은 장소에 배를 반납하는 시스템이었다. 경로에 따라 45분부터 2시간 코스까지 다양했는데, 우리는 이동 거리가 가장 짧은 편을 골랐다.

  직원을 따라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운하 벽을 따라 나뭇가지, 이파리 등 부유물들이 띠처럼 몰려 있었다. 막상 올라타니 배 안은 뭍에서 볼 때보다 훨씬 좁았다. 김수오와 나는 앞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우리 발밑에는 자전거와 흡사한 형태의 페달이 각각 달려있었다. 좌석 사이엔 방향을 잡는 조종간이 있었는데, 게임기 조이스틱처럼 허술해 보였다.

  시험 삼아 페달을 힘껏 밟았다. 이상할 만큼 가볍게 돌아갔지만 배는 찔끔 움직일 뿐이었다. 두 사람의 호흡이 중요한 것 같았다. 김수오와 나는 하나둘 구령을 맞춰가며 함께 페달을 밟았다. 

겨우 조금 속도가 붙었지만, 일직선으로 배를 모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출발 지점에서 몇 번을 헛돌고서야 우리보다 한참 앞서 배를 빌린 커플이 첫 번째 다리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고전하는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유럽의 햇빛은 만만한 것이 아니어서, 이대로 있다간 곧 두피가 벗겨질 듯했다.

  김수오는 이런 상황을 만든 걸 만회하려는 듯 분위기를 끌어올리려 애썼다. 액션캠을 꺼내 주절거리며 셀프 영상을 찍었다. 나로선 그게 더 거슬렸다. 시원한 곳에서 맥주나 한잔할걸. 후회에 잠겨 반복적으로 페달을 밟았다. 

  한 블록쯤 지났을까. 뒤쪽에서 시끄럽게 쿵쿵대는 음악 소리가 들렸다. 한눈에도 좋아 보이는 고급 보트가 우릴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배에는 유럽인들로 보이는 남녀 일행 다섯 명과 날렵해 보이는 개가 한 마리 있었다. 크고 선체가 높은 보트는 얀의 친구가 가지고 있던, 내가 탔던 배보다 몇 배는 비싸 보였다. 원목 무늬로 코팅된 바깥면이 번쩍거리며 빛을 반사했다. 배가 물 위에서 미끄러지다 못해 튕겨 나갈 듯했다. 나는 그 보트를 넋 놓고 올려다봤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무동력 보트는 선체가 반쯤 가라앉아 물 표면에 붙어있는 것 같았다.

  ─저 보트 바로 뒤에 붙이자. 큰 배의 물살을 타면 발 구르기 쉬울 것 같아.

  내가 말했다.

  그런데 김수오는 페달을 밟다 말고 가방을 주섬주섬 뒤졌다.

  ─개힙해요.

  그러고는 기어이 작지 않은 크기의 디지털카메라를 꺼냈다.

  ─음. 사진 찍기엔 너무 가까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말했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섬네일이랑 오프닝으로 딱이다.

  김수오가 가슴 높이까지 카메라를 든 순간, 일행이 우리를 돌아봤다. 내가 아주 잘 아는 눈빛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샴페인잔을 든 손에서 검지를 뻗어 우릴 가리켰다. 나머지 일행이 우리를 힐끔대며 폭소했다. 누군가 음악 소리를 더 키웠다. 일행 중 가장 덩치가 큰 남성이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우리 보트와 가까운 방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우리를 향해 더치로 고함치며 주먹을 쳐들었다. 그러고는 스포츠 경기에서 이긴 팀의 팬들이 환호하듯 가슴을 내밀고 포효했다. 그는 흰색 삼각 수영복만 입은, 거의 나체였다.

  ─마약 한 거 아냐?

  내가 말했다.

  남자는 맨몸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 이미지는 나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의 몸짓이었다.

  나는 본능적인 불쾌감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김수오는 오히려 그에게 소리쳤다.

  ─유가이즈 쿨.

  김수오에게는 그들의 보트와 우리 보트가 다르지 않은 듯했다.

  그는 씩 웃으며 대놓고 카메라를 더 가까이 들이댔다. 그러자 개를 안은 여성이 우리를 향해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김수오가 그제야 카메라를 내렸다. 일행 중 하나가 우리가 탄 배를 향해 더치로 욕설을 뱉었다.

  ─색감 미쳤네요.

  김수오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카메라 화면을 내 눈앞에 들이댔다.

  ─이 사람들 표정 좀 봐.

  암스테르담까지 와서, 기껏 페달 보트를 타고 조롱의 눈길을 받게 된 상황이 기가 막혔다. 더 어이없는 건 내가 잠시나마 그 배에 앉은 이들을 부러워했다는 사실이었다. 한때는 나도 저런 보트 위에 있었다. 아니, 내가 저들의 일부였던 적이 있기는 한가?

  ─그러든지 말든지요. 별것도 아닌 것들이. 샴페인도 별로 좋은 거 아니던데요.

  ─자존심 상하네.

  내가 말했다.

  ─차장님도 돈 많잖아요.

  김수오가 말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봤다.

  ─내 말은.

  이 기분을 말로는 더 설명할 수 없었다. 햇빛이 돋보기로 우리의 정수리를 겨냥하듯 강렬하게 쏟아졌다. 저들이 나름의 혹독한 겨울 끝에 탐닉하는 해도, 지금 나에겐 그저 피하고 싶은 열기였다.

 

  우리는 분명 45분 코스를 골랐는데, 지금 속도라면 한 시간 반 안에도 복귀할 수 없었다. 1미터를 움직이기 위해 두 사람이 발을 서른 번쯤 굴러야 했다. 겨우 요령을 찾아 블록 너덧 개를 통과했을 때, 배에 가지고 오른 물병은 이미 비어 버렸다. 앞으로 열 개가 넘는 블록을 더 통과해야 돌아올 수 있었다. 비행기는 놓칠 게 분명해 보였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내릴까요?

  김수오가 말했다.

  두피를 찢을 듯 날카롭게 내리꽂는 이 햇빛도 익히 알던 것인데, 나는 얀의 친구들과 함께 수영복을 입고 그늘막을 친 널찍한 전동 보트 위에서 샴페인을 마시던 그날이 다시금 그리워졌고, 그런 나에게 실망했다.

  ─이 구간은 일방통행이라 돌아가면 안 되지만, 지금은 단속이 없는 것 같으니 조심해서 돌려 보자.

  내가 말했다.

  그러나 주말의 운하는 시간이 갈수록 붐볐다. 배의 방향을 바꾸는 데만 5분이 걸렸다. 나와 김수오는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며 운하의 가장자리로 붙어 지금까지의 두 세배 되는 에너지로 발을 굴렀다. 그렇게 겨우 한 블록을 역주행했을 때, 다리를 통과하기도 전에 우리 눈앞에 나타난 건 제복을 갖춰 입은 경찰들이 탄 큰 보트였다.

  경찰은 호루라기를 불면서 배를 다시 돌리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나와 김수오는 망연자실해 가만히 멈춰 있었다. 제발 경고만 하고 그냥 지나가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경찰은 너희의 얕은 수작쯤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보트 속도를 서서히 늦추며 우리를 지켜봤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끙끙대며 보트를 다시 돌렸다.

  ─잠시만 쉬자.

  ─죄송해요. 제가 괜히 배를 타자고 해서.

  나는 말하기를 멈추고 남은 힘을 짜냈다. 반환점을 돌았을 때는 완전히 기진맥진했다.

  ─비행기 따위, 취소하고 다시 끊어요.

  김수오가 말했다.

  ─말 같지 않은 소리.

  ─티켓은 제 돈으로 살게요.

  ─너는 회사가 장난 같지?

  김수오는 무슨 말이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티켓을 산다고? 복귀해서 해야 하는 업무도 네 돈으로 처리해 볼래?

  이륙까지는 세 시간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한 사람씩 쉬어 가며 발을 굴렀다. 그동안 나머지 한 사람은 배가 돌아가지 않도록 힘껏 조종간을 붙잡았다. 차장이든 사원이든 여자든 남자든, 지금 우리에겐 제한 시간 내에 운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목표만이 남아 있었다.


  그때 우리가 통과하려는 다리 위에서 나를 뚫어지게 보는 한 남자의 시선을 느꼈다. 나는 얼굴을 마주 보지 않으려 시선을 애써 정면으로만 두었다. 그가 신은 라임색 러닝화가 눈에 슬쩍 스쳤다. 남자는 몸에 딱 붙는 어두운색 반바지에 헐렁한 운동용 티셔츠를 입었고, 어깨엔 장바구니를 걸쳤다. 그는 운하 아래쪽 길에서부터 우리의 경로를 따라 천천히 걷고 있었다. 우리 보트는 얀이 즐겨 찾던 시장 근처에 있었다. 얀은 토요일마다 시장에서 야채와 꽃 한 다발을 샀다. 갓 구워 캐러멜이 흐르는 스트룹와플을 두 개 사서 하나는 바로 먹고, 나머지 하나는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저 보트를 움직이는 데 힘을 쏟았다. 지도를 펼쳐 머리를 가리고 발을 더욱 힘차게 굴러 남자가 서 있던 다리를 통과했다. 평소 운동도 안 하는데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지 나조차도 신기할 정도였다.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의대 갔겠네요.

  김수오의 농담에도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세 블록쯤 남았을 때 나는 체력적 한계에 맞닥뜨렸다. 들고 있던 지도도 실수로 물에 빠뜨렸다.

  ─이걸로 햇빛 가리세요.

  김수오는 자기 지도를 내게 건넸다.

  ─너도 써야지.

  ─저보단 차장님 얼굴이 불타고 있어서요.

  보지 않아도 내 몰골을 알 것 같았다. 우리를 지켜보던 그 남자의 시선 때문에 나는 울고 싶어졌다. 김수오만 아니었다면…… 그때 항공사에서 출발이 30분 지연된다는 연락이 왔다. 김수오는 운만 따라주면 비행기를 제때 탈 수 있겠다며 힘을 내자고 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그의 얼굴은 땀에 살짝 젖고 조금 상기됐을 뿐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이 지경인데 저놈은 왜 저렇게 멀쩡한가. 힘을 덜 쓰나? 김수오는 속도 모르고 이것도 기념이니 사진으로 남겨두자고 했다.

  ─시간 없다. 조용히 하고 발이나 굴러.

  김수오는 페달을 밟으며 내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었다. 그러나 무언가 맘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카메라 렌즈를 내 방향으로 돌렸다.

  ─차장님. 웃으세요.

  ─그만 찍어.

  ─웃어야 예뻐요.

  김수오가 말했다.

  ─하. 씨발.

  김수오는 예상치 못한 말을 듣고 잠시 멍한 얼굴이 됐다. 그러고는 대체 뭐가 문제냐며 되받아쳤다. 감정이 격해진 그는 결국 언성을 높였다.

  ─비위 맞추기 존나 힘드네. 기분 좋게 가자는 게 나빠요?

  고삐가 풀린 김수오는 참았던 말을 쏟아냈다. 회사에서나 차장이지 밖에 나가선 마주칠 일도 없는 아줌마라는 김수오 말에 나는 더 심한 말로 응수했다. 이마에서 줄줄 흘러내리는 땀마저 김수오 탓인 양 화풀이했다. 겉멋만 잔뜩 들어서. 제 힘으로 뭐 하나 이뤄본 적 없는 주제에 브랜드? 대표? 꼴값 떨지 말고 주제를 알아. 메타인지가 안 되는 거야 뭐야……. 나는 주둥이를 제어할 수 없었다.

  운하 한가운데 멈춰 서로를 향해 고함치는 우리를 주변 보트에 탄 사람들이 돌아봤다. 주말이라 운하변은 인파로 붐볐다. 산책하던 이들은 멈춰섰고, 자전거 타던 사람들도 속도를 늦추며 이쪽을 봤다. 조금 전 만났던 경찰 보트가 다시 다가왔다. 경찰이 손짓하자 우리 뒤로 줄지어 있던 배들이 하나씩 옆으로 빠져나갔다. 그들은 보트를 우리 옆에 붙이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나와 상대적으로 멀쩡해 보이는 김수오를 번갈아 봤다.

  ─괜찮습니까? 저 사람이 당신 남자친구인가요?

  ─아니에요.

  ─무슨 관계죠?

  그때 김수오가 끼어들었다.

  ─우리는 비즈니스 파트너예요.

  나는 기가 막혀 헛웃음을 쳤다.

  ─내가 그의 보스예요. 비즈니스 파트너라니.

  경찰은 미심쩍은 얼굴로, 그러나 개입할 일 아니라고 판단한 듯 어서 다시 출발하라는 간단한 주의를 주고 뱃머리를 돌렸다. 한 무리의 10대들이 길에 멈춰 서서 우리를 촬영하며 조롱했다. 그들 역시 이민자로 보였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김수오는 꺼지라고 소리치더니 그들을 향해 반대로 카메라를 들이댔다. 한 대 맞은 사람이 정당방위에 나서듯 망설임 없었다.

  ─네가 그러는 게 저 애들을 더 자극하는 거야.

  ─저도 틱톡이랑 유튜브에 올릴 거예요. 인종차별 한다고.

  김수오는 지지 않고 한국말로 욕설을 하며 맞받아쳤다. 한국어 욕을 이미 아는 듯한 10대들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고, 구경꾼들이 늘었다. 그건 괜찮았다. 내가 정말 견딜 수 없는 건 인파 사이에 몸을 숨겼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그 남자였다. 나를 내려다보던, 얀일지도 모르는 남자. 피할 곳이 있다면 당장 숨고 싶었다. 나는 최대한 시선을 앞으로 두면서, 그의 신발과 실루엣만으로 얀인지 아닌지 판별해 보려 애썼다.

  나는 다시 한번 김수오에게 출발하자고 간청했다. 그는 무시하고 씩씩대며 계속 영상을 찍었다. 나는 싸움에 몰두한 김수오를 내버려두고 페달을 밟았다. 발을 구르며 혼자 힘으로 방향까지 잡는 건 역부족이어서, 배는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제자리에서 빙빙 돌았다. 김수오는 급기야 의자 위에 올라섰다. 십대들은 당장 물 밖으로 나와 보라고 욕설을 뱉으며 우리를 자극했다. 오랫동안 끝나지 않을 싸움 같았다.

  ─그만해.

  김수오에게 마지막 경고를 했고, 그는 듣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몸을 일으켜 카메라를 든 김수오의 팔을 세게 잡아당겼다.

  ─어어!

  녹화 중임을 알리는 빨간 불빛이 허공에서 흔들리다 빠르게 아래로 향했다. 김수오의 손끝을 벗어난 카메라는 배 가장자리에 한 번 부딪힌 다음 보트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끝까지 카메라를 붙잡으려던 김수오 역시 중심을 잃으며 물에 빠졌다. 보트가 크게 갸우뚱했고, 안쪽까지 물이 잔뜩 들이쳤다. 나는 간신히 중심을 잡고 더러워진 발판 내부와 허벅지까지 젖어버린 바지를, 그리고 김수오를 내려다봤다.

  ─씨발!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김수오는 더러운 물을 뱉어가며 고함쳤다. 주변이 몇 초간 조용해졌다가 곧바로 웅성댔다. 그 무리는 환호했다. 김수오는 보트 가장자리를 겨우 붙잡고 매달렸다. 그가 보트 위로 올라오려고 용을 쓸 때마다 배가 뒤집힐 듯 흔들렸다. 

  나는 행인들의 시선을, 여전히 나를 향하는 카메라를 느꼈다. 그들은 함께 탄 사람을 밀어내고 이곳만은 자기에게 허락된 영토라는 듯 서 있는 동양인 여성을 보고 있었다. 나는 내리쬐는 빛 때문에 얼굴을 있는 대로 찌푸린 채 페달 보트에 비스듬히 선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남을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야 그들이 발 딛고 선 땅을 올려다보지 않게 되었다. 얀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게 등을 보이며 돌아섰고, 나는 그를 같은 높이에서 바라보았다. 남자 옆에서 방금 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이, 갈색 긴 머리를 한 여자가 그의 장바구니를 넘겨받았다.

  ─아아, 내 지갑! 카메라! 씨발!

  김수오는 누군가 던져준 부표에 매달려 보트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그런데도 내가 딛고 선 배는 물 위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는 휘청대며 가까스로 버텼다. 저들은 단단한 땅에, 나는 위태로운 보트 위에 있음을 자각하면서 오로지 중심을 잡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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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자의 기록 이서수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가 나를 데려간 곳은 엉뚱하게도 낡은 정자 앞이었다. 아버지는 육모정이 있는 그 땅을 세 조각으로 잘라 친구들과 나누어 가졌던 사실을 내게 처음 알려주었다. 사다리꼴 모양의 땅 둘레에 소나무와 중국 단풍나무, 벚나무가 띄엄띄엄 심겨 있었다. 파란 셔츠를 입은 아이가 정자 마루 끄트머리에 앉아 휴대폰 게임을 하며 발끝으로 축구공을 굴렸다. 그 모습이 무척 편안해 보여 부근에 사는 아이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세 사람이 삼분의 일씩 갖고 있어. 그러니까 이 땅의 삼분의 일이 네 몫이라고. 아버지에게 땅이 있었는지도 몰랐기에 나는 얼떨떨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게다가 내게 증여할 생각이라는 말이 더욱 놀라웠다. 아버지가 다른 가정을 만들면서 우리의 관계는 소원해진 지 오래였다. 한편으론 번듯한 건물이 아니라 낡은 정자가 지어진 땅을 물려받게 된 사실이 약간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정자 앞은 너른 공터였고 지도 앱을 통해 확인한 주변엔 초등학교와 파출소, 보습학원과 버스 정류장이 있었다. 정자를 철거하고 새 건물을 지으면 가치가 얼마나 오를지 궁금했다. 정자는 저대로 내버려 둬. 그건 지켜. 아버지가 내 속내를 읽은 듯이 말했다. 나는 미약하게 항의했다. 땅을 이렇게 놀리는 사람이 어딨어? 놀리는 게 아니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잠시 말이 없던 아버지가 입을 뗐다. 올해 우리가 자식들에게 땅을 증여하기로 다 같이 합의를 봤어. 왜 그런 결심들을 하셨는데? 그냥 때가 된 거지. 상념에 잠긴 표정을 짓던 아버지는 퍼뜩 정신을 차린 듯하더니 갑자기 일이 생겨 빨리 돌아가 봐야 한다고 말했다. 땅에 대한 설명이나 해명이 더는 없었다. 나는 의구심을 삼키고 정자와 나무를 한 프레임 안에 담아 사진을 찍었다. 그러곤 어색함을 적당히 감추며 아버지와 정자 앞에서 헤어졌다. 해마다 한두 번씩 오가던 안부 연락마저 뜸해지던 때였기에 서울로 함께 돌아갈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생전에 재산을 미리 처분하려는 아버지의 태도가 못내 마음에 걸렸던 나는 결국 한 통의 문자를 보냈다. ―아버지, 혹시 어디 아파? ―건강해.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분명 건강했던 것 같고, 나는 언젠가 그 땅에 대해 아버지와 길게 얘기할 기회가 다시 있을 줄 알았다. 3년이 훌쩍 흐르고 겨울 산행을 나선 아버지가 실족사로 세상을 뜰 줄은 까맣게 모르고서. * 부고장엔 그들이 아버지의 자식으로 되어 있었다. 내 이름이 없는 온라인 부고장을 들여다보다 장례식에 가지 않을 결심을 세웠다. 그러곤 동네 성당으로 가 나름의 작별 인사를 했다. 자식에게 지은 죄가 있긴 하지만 좋은 곳으로 가시게 해달라고 두 손 모아 빌었다. 세상을 먼저 떠난 이들의 안식을 위해 켜둔 초를 바라보다 아버지의 봉헌초도 마련해 불을 밝혀 두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친족의 도리로 그 정도는 하고 싶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새 초가 보이지 않아 나는 스스로 초가 되어 아버지 생의 일면을 조용히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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