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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지평선에 닿기

  • 작성일 2016-07-01

[단편소설]



지평선에 닿기



정영수



나는 그 시기에 일어난 모든 일이 서지연이 보낸 메일에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사실상 그 메일과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일에는 그 어떤 연관 관계도 없었다. 그저 우연하게도 일이 일어난 기간이 정확히 겹쳤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드는 것뿐일 테다. 어쨌거나 서지연이 그때 내게 메일로 들려준 이야기는 내가 들어 본 중 가장 이상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 처음으로 사귄 여자였다. 같은 학교를 다닌 건 아니었고, 트위터를 통해서 알게 된 사이였는데 처음에는 멘션이나 종종 주고받으며 지내다가 갑자기 오프라인 독서 모임 같은 것을 결성하게 되면서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 원래 세 사람이서 하기로 했는데 한 사람이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빠지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둘만의 독서 모임이 된 것이다. 그녀와 나는 독서 취향에 공통점이 많았다. 우리는 일명 ‘지하생활자의 수기’형 소설이라 부를 만한 책들을 좋아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나 외젠 이오네스코의 『외로운 남자』 같은 소설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같은 작품도 거기에 해당되었다. 그렇다고 꼭 그런 작품들만 읽은 것은 아니었고 (이런 분류가 가능하다면) 수용소 (혹은 감금) 문학도 우리의 관심 분야였다. 이를테면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나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같은 것들.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처럼 ‘지하생활자의 수기’형 소설이면서 수용소 문학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런 책들을 읽고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곤 했다. 그녀는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았고 내가 다니던 학교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여대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있었다. 그래서 종종 공강 시간이면 우리는 특별한 이유가 없을 때도 만나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그녀가 다음 해면 졸업반인 것에 비해 나는 이제 대학 신입생일 뿐이었지만 그녀나 나나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서로를 대했다. 게다가 독서 말고도 음악이나 영화 등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취향이 비슷했는데 그래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결국 자연스럽게 사귀는 사이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는 일 년 정도 사귀다가 헤어졌다. 이별에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서로의 취향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아 가다가 나중에는 점차 서로의 성격이 놀라울 정도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뿐이다. 나는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야 모든 연인이 그런 이유로 만나고 또 그런 이유로 헤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연인 관계가 끝난 이후로는 다시 친구로 돌아왔다. 물론 연애를 시작하기 전과 후에 서로의 관계를 정의하는 ‘친구’라는 단어는 결코 같은 의미일 리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럭저럭 잘 지내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실제로 만나거나 하지는 않았고 가끔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정도였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까지 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국에는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그래서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조금 외로워했던 것 같다. 나라고 사정이 다른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중학교에 올라가면 초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지 않게 되었고,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중학교 친구들을, 대학교에 올라와서도……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단짝친구라는 게 있어 본 적도 없다. 애초에 단짝친구라는 걸 만들 수 없는 사람이 있지 않나?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그러니까 그때 서지연은 사실상 내 유일한 ‘친구’였던 셈이다(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하생활자의 수기’형 소설을 좋아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우리는 나름 주기적으로 이메일을 주고받았는데 그녀가 먼저 말을 걸고 내가 답을 하는 식이었다. 그녀의 메일에는 주로 최근에 읽은 책이나 영화에 관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지만 어떨 때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아무 말이나 쓰는 것 같기도 했다. 이를테면 우주는 빅뱅 이후 여전히 팽창해 가고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그렇다고 그것이 구 형태는 아니라는데,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 봐도 그것의 형태를 머릿속에 그려 볼 수가 없어, 너는 상상이 가니?…… 서구 침략이 없었다면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시민혁명을 일으켰을 나라가 어디였을까, 당연히 우리나라는 아니었겠지?…… 미국의 황무지가 얼마나 넓은지 아니? 차를 타고 한없이 달려도 똑같은 풍경만 계속 펼쳐져서 난 늘 무서웠어,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식이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공상에 가까운 생각들에 관해 나름대로 성실하게 응답해 주곤 했다. 그렇다고 늘 그런 이상한 대화만 나눈 것은 아니었고 서로 어떻게 지내는지 평범하게 안부를 묻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뜬금없이 비밀을 하나 알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세상에서 자신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그 놀라운 비밀을 오로지 내게만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무슨 대단한 이야기가 있겠어, 하는 생각에 약간 시큰둥한 기분으로 메일을 읽어 나갔는데 그것은 예상한 것보다는 훨씬 이상한 이야기였다. 이야기인즉슨 자신은 사실 서지연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서지연은 내 동생이야. 정확히 말하면 쌍둥이 동생. 그런데 그걸 엄마도 몰라.” 그녀는 이렇게 썼다. 나는 그 글만 읽었을 때는 선뜻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녀는 꽤 긴 글을 통해 그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려주었는데 요약하자면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서지연은 앞에서 말했듯이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집은 텍사스 주의 황무지 한가운데 있는 2층짜리 저택(그녀는 그냥 집이라고 썼지만 그녀의 묘사에 따르면 그것은 거의 저택에 가까웠다)이었는데 주변에 인가도 드물었고 가장 가까운 마트에 가려 해도 차를 몰고 한 시간은 달려야 할 정도로 황량한 곳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석유 회사에서 일했는데 한번 일을 나가면 몇 주일씩 집을 비우곤 해서 그 넓은 집에 그녀와 엄마 그리고 동생까지 셋만 있을 때가 많았단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의 나이였던 두 아이가 이제 다 컸다고 생각했는지 어머니는 집에 둘만 남겨 둔 채 차를 몰고 마트에 갔고 그날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둘은 앞마당에서 같이 흙장난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보니 동생이 사라지고 없더란다. 동생은 어머니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가 하나밖에 없는 것을 보고 아무 생각 없이 그녀에게 “주연이는 어디 있니?”라고 물었고(그녀의 어머니는 보통 엄마들이 그러하듯이 자식들을 정확히 구분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이름을 부르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 또한 별 뜻 없이 자신이 주연이라고 밝히는 대신 그저 “모르겠어.”라고 대답했다. 서지연은 그 대답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꿨다고 했다. 그 말을 한 그 순간부터 그녀는 언니 서주연이 아니라 동생 서지연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동생이 영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달 후 납치범이 검거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그 여자 아이를 납치한 직후 살해했으며, 한밤중 황무지 한가운데 5피트 깊이로 구덩이를 파서 묻어버렸고 장소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서지연은 동생이 사라진 직후부터 몇 개월 동안 어린아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빠른 속도로, 너무 많고, 또 너무 복잡한 일들이 일어났다고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들락거리고, 다양한 기계들이 집 안에 들어오고,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종종 소리를 지르며 다투고(그 일이 있기 전에는 그런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는 다시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모두가 비통해하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이 사실 지연이가 아니라 주연이라고 부모님에게 이야기하는 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을 뿐더러 오히려 그런 얘기를 꺼냈다가는 호통을 들을 것만 같았단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게 그렇게나 중요하니?” 그녀는 그런 말을 들을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난 다음에는 이미 늦은 후였다고 했다. 그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에 들어올 때까지 황무지에 묻힌 동생의 이름, 서지연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또 그 이름으로 남자 친구도 사귀었고……. 그게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가 정말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중요한 문제 같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거나 나는 그 이야기를 왜 하필 지금, 내게,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 이야기를 듣고 무슨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메일이 오면 보통 며칠 안에는 답장을 보내곤 했지만 그때는 꽤 오랫동안 그렇게 하지 못했다.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마침 그때 내가 다른 일에 신경을 쓰기에는 꽤나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가족과 관련된 일인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면 그 누구에게도 별로 하고 싶지가 않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결코 서지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 속 그녀의 가족과 우리 가족은 결국 정반대의 결과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가 가족에 대해 쓰고 싶지 않은 이유를 밝혀야 할까? 사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들이 진절머리 나게 싫을 뿐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족들에게 그 어떤 애정도 느껴 본 적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남은 모든 시간을 어떻게든 그들과 부대끼며 지내야 했다. 그다지 잘 맞는 구석도 없는데 혈연으로 얽혀 있다는 이유로 무슨 짓을 해도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고통스럽게 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둘 중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고, 심지어 형과도 외모적으로나 성격적으로나 비슷한 면이 없었다(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내가 이들의 진짜 가족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언젠가는 진짜 가족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이제는 그런 드라마틱한 일이 내게 일어날 리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말았지만). 나는 머리가 채 여물기도 전인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오로지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홀로 존재하고 싶다는 열망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니까, 일단 성인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빨리 법적으로 인정받는 성인이 되고 싶었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결국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자취방을 구해 집을 나오게 되었을 때는 뛸 듯이 기뻤다. 드디어 오로지 나 혼자만의 공간에서 아무와도 연관 짓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지긋지긋한 가족으로부터의 독립! 완전한 해방! 우리 가족은 당시 안양에 살았는데 나는 일부러 집에서 먼 학교를 택했다. 어머니는 국립이고 학비도 싼 데다가 집과도 가까운 서울대에 입학하기를 기대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나는 집에서 멀고 먼 서울 서북단에 있는 연세대 영문과에 입학했고, 통학하는 데 왕복 세 시간은 걸린다는 이유로 입학식도 하기 전에 자취방부터 구했다. 그리 세련된 집은 아니었지만 창문도 있고 주방과 방이 분리되어 있는, 나름 그럴듯한 집이었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사실상 완전한 독립이었다. 이른바 명문대에 다닌다는 것의 이점이 무엇인가? 바로 고액 과외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교육 시장의 지나친 활성화를 반대하는 내 개인적 견해와는 무관하게 나는 그 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는데, 독립을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나는 대학 합격 통지를 받자마자 과외 학생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주로 목동 쪽 아파트에 광고지를 붙였는데 운 좋게도 금방 학생 몇 명을 구할 수 있었다(아파트 1층 복도에 종이쪼가리 한 장을 붙이는 데도 관리실에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일단은 중학생 한 명과 고등학생 두 명. 그것만으로도 최소한의 생계는 꾸려 나갈 수 있었다. 개인적 신념을 배반한 대가로 나는 가족에게서의 완전한 독립이라는 실리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과 연관된 삶을 살 필요가 없었다. 라이오넬 슈라이버라는 작가의 소설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자식이 우리의 말을 따르는 건, 까놓고 말해 우리가 그 아이의 팔을 부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야.” 경제적 독립이란, 아버지나 어머니가 더 이상 내 팔을 부러뜨릴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서지연의 그 ‘이상한’ 사연이 담긴 메일을 받은 바로 다음날, 나는 내가 누리고 있던 모든 것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릴 만한 커다란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일반적인 가정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곤 하나? 아니, 이 정도 일이 일어나면 이미 일반적인 가정이라고 할 수도 없다. 지긋지긋한 우리 가족은 또다시 나의 평온하며 견고한(적어도 그렇게 믿었던) 독립적인 삶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날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그것만은 정말이지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날의 사건은 모두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것이다. 그것은 형이 ‘무언가’ 사건을 벌인 다음날의 일이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모든 일이 끝난 지금도 나는 그 사건의 진실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현장에 있던 여러 사람의 증언을 통해서 재조합된 ‘법적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형과 관련된 그 사건이 벌어진 바로 다음날, 가족들이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을 때 경찰들이 느닷없이 집에 들이닥쳤고 그들은 부모님의 눈앞에서 형에게 수갑을 채웠다. 형은 경찰서에 가서 조서를 썼고 곧바로 수감되었다.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해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흥분한 목소리로 당장 집으로 오라고 했다. “지금 어디니? 집에 당장 좀 와야겠다.” “무슨 일인데, 엄마?” “나도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다. 어쨌든 네가 당장 집으로 와야 해.” “나 지금 과외 가.” “네가 지금 뭘 하러 가고 있든 무조건 지금 곧장 집으로 와. 오면 다 알게 될 거야.” 적어도 그 순간 어머니는 내가 집으로 오는 일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런 낯설고 위험한 상황에서 모든 가족이 함께 있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니까. 나는 지하철을 갈아탄 뒤 정말 죄송하지만 수업을 미룰 수 있겠냐고 사정하는 문자를 과외 학생의 부모에게 보내야 했다. 집에 도착해서 대략적인 상황을 알게 된 나는 형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다른 집이라면 몰라도 우리 가족에게는, 안 좋은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 평소에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심심찮게 지붕이 들썩일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며 말다툼을 벌였고, 가끔 집 안의 물건들이 날아다니기도 했다. 나는 물건들이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방에 틀어박혀서 귀에 이어폰을 꽂고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볼륨을 최대로 올린 채 페이브먼트나 AC/DC 같은 음악을 들었다. 아버지는 종종 집을 나갔는데 그때마다 나는 내심 기뻐하곤 했다. 적어도 그동안은 비교적 집 안이 조용했다. 하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는데 가끔은 아버지를 대신해 형이 어머니와 언성을 높여 가며 싸웠기 때문이다. 나는 안 그랬느냐고? 물론 나라고 늘 쥐 죽은 듯이 지냈던 것은 아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겠나. 우리 가족은 도무지 상식이라고는 통하지 않는 사람들인데. 일단 말다툼이 시작되면 끝장이 날 때까지, 무언가 중요한 물건이 박살이 나든지, 누군가가 크게 상처를 입을 때까지 싸움이 계속되었다. 우리는 모진 말로 서로에게 사정없이 칼을 꽂아댔다. 상대에게 결코 완치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히고 나서야 말다툼을 멈추고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서 며칠이고 아무 말 없이 지내곤 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우리는 결코 같은 장소에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 어떤 관심사도, 가치관도, 윤리관도, 생활습관도 공유하고 있지 않은 네 사람이 그저 혈연관계라는 이유로 한 집에서 문제없이 함께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타인이니 그렇다 쳐도, 나와 형마저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비슷한 유전자와 같은 성장 환경을 지녔음에도 형과 나는 완전히 달랐다. 형이 고등학생이던 시절, 형은 집에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가끔 방문을 걸어 잠가 놓고 몇 시간을 보냈는데 방에서 담배 냄새가 새어 나오고 가끔씩 환성이나 탄식이 들리는 걸로 봐서 도박판을 벌이는 듯했다. 어머니가 집에 돌아와서 한참 동안 미친 듯이 방문을 두드리면 형은 친구들과 우르르 집을 빠져나가곤 했다. 형은 가끔 내게 꽤 비싼 물건을 아무 말 없이 던져 주곤 했다. 내게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굳이 그것의 출처를 물어보지 않고 아무 말 없이 받곤 했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아이팟 터치와 몽블랑 만년필 같은 것들은 다 그런 식으로 형에게 받은 것들이었다. 형은 어느 날에는 티셔츠의 목 부분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얼굴 한쪽이 시퍼렇게 부어서 돌아오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형과 함께 나가서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럴 때마다 어머니와 형이 밤을 보낸 곳은 병원이 아니라 경찰서였다. 치료도 받기 전에 형이 코뼈나 갈비뼈를 부러뜨려 놓은 피해자와 합의를 봐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유지한 채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 아닌가? 나는 형과 달리 그 어떤 사건도 일으키지 않고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흥분한 상태의 어머니에게 ‘이기적인 자식’이라든가 ‘지 가족들 다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놈’이라든가 하는 지독한 말들을 듣곤 했지만 나는 그 말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럴 때 반응을 하면 또 몇 시간은 말다툼을 벌여야 했으니까. 말다툼이라면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났다. 나는 오로지 해방의 순간을 꿈꾸며 숨죽인 채 청소년기를 보냈다. 다행인 사실은 공부가 내 적성에 꽤 잘 맞았다는 것이다. 나는 교과서를 몇 번이고 반복해 읽어서 통째로 외워버리거나, 수학 공식을 암기한 뒤 그것을 대입해 문제를 풀어내는 것을 왜들 그렇게 어려워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 좋은 성적을 받고 싶으면 책상에 더 오래 앉아 있으면 그만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성적표를 가져올 때마다 마치 다른 용무가 있는 것처럼 이모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한참 딴 얘기를 하다가 막판에는 결국 내 성적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는 이런 말을 곧잘 하곤 했다. “얘는 정말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니까.” 나도 내가 누굴 닮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남해에서 서울로 상경해 이런저런 일로 생계를 해결했고(나는 그때 아버지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며 살았는지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서른 살이 되었을 즈음 자기 앞으로 자동차정비소를 하나 차렸는데 그 시기에 시골에서 중학교를 중퇴한 뒤 서울로 올라와 구로공단에서 여공으로 일하던 어머니와 만났다고 한다. 둘 다 공부라고는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다. 형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우리 집 가풍(?)을 생각한다면 형이야말로 지극히 평범한 아들인 셈이었다. 형은 초등학생 때부터 담배를 피웠고 중학교 때 몇 번 가스관을 타고 올라가 이층이나 삼층에 있는 집을 털다가 잡힌 적이 있었던 데다가 고등학교 때는 자주 폭력 사건을 일으키곤 했다. 한번은 형에게 맞은 상대가 너무 크게 다쳐서(그 불쌍한 친구는 반년 동안 입원해야 해서 고등학교를 한 학년 더 다녀야 했다) 다툼의 원인 제공자가 누구였든 우리 쪽에서 치료비를 물어 줘야 했고 형은 정학 처분을 받았는데 그 참에 형은 아예 학교를 그만두어 버렸다. 결국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끝내 고등학교라는 엄청난 관문을 통과한 뒤 겨우 대학의 문턱에 발을 걸칠 수 있었던 것은 가족 중에 내가 유일했던 것이다.
나는 그 일, 그러니까 형이 구속된 그 일 이후 우리 가족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식사가 차려진 식탁을 앞에 두고 은색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수갑을 찬 형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경찰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그때 어머니와 아버지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얼굴을 해야 했을까. 올 것이 왔구나? 아니면 화를 냈어야 하나(그런데 무엇에 대해?). 어머니는 어쩌면 이런 진부한 대사를 내뱉었을지도 모르겠다. “얘 밥은 다 먹고 가게 해주세요.” 물어보지 않아서 형이 그 식사를 마쳤는지 그러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얼이 나간 상태였다. 어머니는 자세한 사정을 들려주기도 전에(아마 그때는 어머니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내게 이렇게 말했다. “경찰 말로는 일단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대. 네가 당장 좀 알아봐 줘. 그래도 우리 중에는 네가 제일 낫잖니?” 나는 그 말을 듣고서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느낀 막연한 불안감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이윽고 이룩해 낸 나만의 공간, 그리고 시간, 나 혼자만의 독립적 삶이 그날의 일로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무의식중에 깨달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형이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될 때까지 이 사건과 연관된 일을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얼른 변호사를 구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인터넷에서 변호사 사무소를 검색해 보았는데 조악하고 현란한 시각 효과로 가득한 홈페이지들만 나왔다. 프로필 사진을 보면 다들 그럴듯하게 생긴 젊은 변호사들이었고 각종 판례에 대한 글이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쓰인 그 수많은 승소 결과를 보고도 도무지 누구를 골라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변호사 사무소가 모여 있는 서초동에 직접 찾아갔다. 가서 대략적인 사건의 개요에 대해 설명하면 사무장이 비용을 불렀는데 가는 곳마다 부르는 금액이 천차만별이었다. 마치 보철 치료를 받으려고 치과를 돌아다니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일단 놀라운 것은 변호사를 단 한 명도 만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정식으로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에는 오로지 사무장을 통해서만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사무장들은 하나같이 기계적으로 무슨 수제 가구 견적 뽑듯 비용을 나열해 댔다. 우선 선입금 얼마, 무죄 판결은 얼마, 집행유예가 나오면 얼마, 실형 몇 년 이하면 얼마, 카드로 결제하면 추가 금액이 얼마니 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그 금액은 상상을 초월하게 비쌌는데(영문과가 아니라 법대에나 갈 걸 그랬다), 도대체 존경하는 재판장님 앞에서 몇 마디 떠들어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라고 그렇게나 많은 돈을 받는지 그때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우리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면 사무장들은 국선 변호사가 변호를 맡으면 장담하건대 이런 케이스의 경우 최소 집행유예 없이 실형 삼 년이라고 말하면서 겁을 줬다. 하지만 우리 변호사님은 실력이 좋아서 이 정도면 무죄 판결이나 적어도 집행유예는 받아낼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이런 사건은 어려운 편이 아니라고, 걱정하지 말라고도 했다. 어머니와 나는 그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안심을 했고, 수천만 원에 달하는 변호사 선임 비용을 지불했다(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살던 집을 팔아야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사무장의 말은 절반은 사실이었다. 형은 삼 년의 딱 절반인 일 년 반 동안 복역하고 출소했다.
나는 서지연에게 받은 메일에 답장을 보낼 때 앞에서 말한 모든 사실을 이야기했다. 누구에게라도 이 일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그녀 외에는 딱히 얘기할 만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부모님은 자신의 부모 형제들에게도 그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나도 딱히 주변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그녀에게는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길고 긴 답장을 썼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재앙에 대해, 지긋지긋한 가족들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한 채 의뢰인을 죄인 취급하는 재수없는 사무장들에 대해……. 나는 그녀에게 왜 갑자기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는지도 물었다. 나와 사귀는 일 년 동안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보낸 메일의 대부분은 그녀의 이야기보다 내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대체 왜 이런 재앙을 겪어야 하는지…… 단지 내가 가족이라는 이유로 형이 벌인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공동으로 짊어져야 하는지…… 아 씨발 다 치우고 이 지구상에서 진짜 좀 완벽하게 혼자가 되고 싶다! 뭐, 이런 식으로 푸념을 늘어놓은 것이다. 그렇게 메일을 쓰고 나니 그것만으로 한결 기분이 좀 나아졌다. 왠지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되는 금기사항을 누설했을 때의 후련함 같은 기분이 들었달까. 어쩌면 그녀도 그래서 내게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이 아닐까. 우리는 서로를 이런 식으로 이용하고 있는 건가. 한때는 누구보다 가까웠고 서로에 대해 잘 알지만 앞으로 만날 일은 없는 그런 사람들끼리.
일주일 넘게 학교에 가지 않고 안양에 머물다 신촌 자취방에 돌아왔더니 해결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었다. 밀린 과제들, 조별 발표에서 내가 맡은 부분, 미뤄 둔 과외 수업들, 대출하고는 반납하지 않은 책들……. 읽지도 않을 책을 한도까지 빌린 나는 반납 연체에 대한 대가로 그 학기가 거의 끝날 때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할 수 없게 되었고, 매일 목동에 가서 하루 두세 집을 돌며 수업을 해야 했으며, 그 와중에 밤을 새워 가며 리포트를 작성해야 했다. 나는 학교 수업에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고 읽고 싶은 책들이나 실컷 읽고 싶을 뿐이어서 학점이야 어떻든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장학금을 놓칠 수는 없었다. 과외를 한다고 해도 벌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독립된 생활을 유지하려면 전액 장학금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장학금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내게 일주일간, 그러니까 수강한 모든 수업을 한 번씩 결석한 것은 꽤 치명적이었다. 나는 최대한 성의껏 리포트를 작성했고 각 수업의 강사와 교수들을 찾아가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셨다고(거짓말이었지만) 구구절절 긴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꼭 거짓말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 맞고, 그것은 어머니나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형의 경우에는…… 잘 모르겠다. 형에게도 그것은 사고였을까? 아니면 그저 벌어진 일, 아니면 저지른 일일 뿐이었을까.
나는 형이 경찰서 유치장에 있을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나중에 형이 서울구치소로 이송된 후에야 형에게 면회를 갔다. 나는 작은 구멍들이 커다란 원형을 그리고 있는 두꺼운 플라스틱판을 사이에 두고 형을 마주 본 채 대화를 위해 수화기를 들었을 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랬어…… 같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있을 만해? 진짜 콩밥 나와? 같이 있는 사람들은 어때? 변호사는 만나 봤어? 같은 형식적인 소리만 했을 뿐이다. 형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어딘지 쑥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길거리에서 여자 친구와 손을 잡고 걷고 있다가 우연히 마주쳐 버렸을 때나 지을 법한 표정 같은……. 그러고는 대학에서 여자 친구는 사귀었냐며 얕게 웃으면서 농담을 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평소에 대화를 많이 나눈 편이 아니었던 우리는 몇 마디 주고받고 나자 할 말이 떨어졌고 시간이 몇 분쯤 지나자 나는 형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 게 고역스러워졌다. 그건 형도 마찬가지였는지 바쁠 텐데 가봐, 라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우리에게 허락된 면회 시간은 오 분이었고 형이 그 말을 세 번째쯤 했을 때 면회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날카로운 차임벨 소리가 울렸다. 나는 그래, 형, 건강 잘 챙기고, 하고는 거의 도망치듯 면회실을 나왔다. 그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그곳을 찾지 않았다. 물론 대법원에서 열린 공판에는 매번 찾아갔다. 그것은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우리 가족 중에서 ‘가장 배운 사람으로서의 의무’였다. 그런데 대체 내가 뭘 배웠단 말인가? 이제 기껏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에서는 셰익스피어나 찰스 디킨스 같은 작가들의 원서나 떠듬떠듬 읽고 있는 애송이가 법에 대해, 세상에 대해 뭘 알 수 있을까. 어쨌든 아버지는 평소처럼 일을 나갔고 어머니를 데리고 서초동에 가는 것은 내 의무가 되었다. 나는 매 공판마다 법원을 찾았는데, 재판 과정은 지지부진했다. 몇 시간씩 다른 사람들의 공판을 지켜보며 기다리다가 형의 차례가 오면 긴장된 자세로 앉아 검사와 변호사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몇 마디 제대로 나누지도 않고 다음에 다시 심의하겠다면서 휴정을 하곤 했다. 일심에서 이심으로 넘어가고, 이심에서 삼심으로 넘어가는 데 최소 일주일에서 이삼 주가 걸리기도 했다. 결국 항소를 포함해 최종 선고가 떨어진 것은 삼 개월 정도가 지난 후였다. 이후로 형을 제외한 우리 가족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정말 일상으로 돌아온 것은 나뿐인 듯했다. 아버지는 알코올 의존증에 걸렸는지 매일 소주를 마신다는 소식이 들려왔고(물론 어머니를 통해서) 어머니는 불안과 우울 증세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것이 결정되고 나서는 금세 상황을 받아들였고 신촌으로 돌아가 대학 생활에 매진했다. 책을 읽고 엠티도 가고 기말고사도 보고……. 가끔 형은 지금 이 순간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정보가 너무 빈약했기 때문에 제대로 상상해 볼 수도 없었다. 내가 읽은 수용소 문학 같지는 않겠지.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읽어 볼까 하다가 관뒀다. 그랬다가 왠지 감상에 빠지게 될 것 같았고, 나는 별로 감상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꽤 오랫동안 그 일을 피해 왔지만 드디어 해야 할 날이 왔다. 어느 날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 형이 나를 좀 보았으면 한다는 말을 전한 것이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소식이긴 했다. 아무리 그래도 형을 한 번도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형은 형량이 확정된 후 서울구치소에서 영등포교도소로 이송되어 있었다. 나는 신촌에서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처음 가는 길이라 한 정거장 지나쳐서 내렸는데 그 바람에 걷게 된 그 동네는 서울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고 낙후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유독 더웠던 날이라 나는 그 한 정거장을 되돌아가는 것만으로도 기력을 다 소진하고 말았다. 면회인 대기실에는 에어컨도 없이 낡고 먼지가 잔뜩 낀 선풍기만 잘잘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는데 더위를 식히는 효과는 전혀 없었고 그저 구색을 갖추기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면회실 분위기도 서울구치소와는 사뭇 달랐다. 어딘지 삼엄한 느낌이랄까, 무심한 느낌이랄까. 구치소는 아직 유무죄가 확정되지 않은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라면 교도소는 유죄가 확정된 사람들이 있는 곳이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나는 문득 감방 안에는 선풍기가 있으려나, 하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래 봐야 잘잘거리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겠지. 더위를 식히는 효과는 전혀 없는. 대기실을 지나 면회실로 향하는 길에는 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매미소리가 귀가 따가울 정도로 크게 들려서 서울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지방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곳은 ‘일반적인 서울’에서 먼 곳인 것은 분명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올 일이 없는 아주 먼 곳. 나는 면회실 앞 기다란 나무의자에 앉아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형의 부탁은 간단한 것이었다. 책을 좀 가져다달라는 것이었다. “너 책 좀 읽잖아. 읽을 만한 것 좀 골라서 사다 줘. 돈은 엄마가 줄 거야.” 형은 어딘지 어른스러워진 느낌이었다. 몇 달 사이에 몸은 더 단단해진 듯했고 목소리도 낮아진 것 같았다. “그래? 재미있는 거, 아니면 의미 있는 거?” 내가 묻자 형은 아무거나, 너 읽는 거 있을 거 아냐, 라고 대답했다. 나는 처음에는 술술 쉽게 읽히는 대중소설을 가져다줄까 하다가(이를테면 『다빈치 코드』나 『연금술사』 같은 것들) 그냥 내가 읽는 것으로 갖다 주기로 했다. 나는 며칠 후 다시 그곳을 방문해 형에게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건네주었다.
서지연과는 가끔이지만 끊기지 않게 메일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녀에게 재판 과정에 대해 모두 이야기했다. 그녀는 이제 주로 내 이야기에 반응하는 식의 답장을 보냈다. 그러다 한번은 나를 위로해 준답시고 그랬는지 자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또 길게 메일에 써서 보냈는데 그걸 읽어 보니 우리 가족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내가 그녀를 위로해 줘야 할 판이었다. 그녀가 보낸 메일에는 서지연의 동생이 죽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 그녀의 가족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쓰여 있었다. 그 이후에 그녀의 가족은 원래의 삶을 결코 되찾지 못했다. 서지연의 아버지는 정확히 그 일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회사를 그만두었고, 가족들은 텍사스 주 남부에 있는 휴스턴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휴스턴은 아열대 기후에 강수량도 많아 늘 하늘이 선명하고 황무지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곳이었다. 도심을 벗어나면 황무지가 아니라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다니던 석유 회사는 그때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미국 최대 기업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녀의 가족은 퇴직금만으로도 휴스턴에서 어느 정도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서지연의 말에 따르면 그곳으로 이사했을 때 부모들의 행동이 이상했다고 한다. 이사할 때 서지연의 모든 물건과 사진들, 그리고 옷가지들을 전부 버리고 모조리 새 걸로 사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예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아니, 애초에 서지연(그러니까 죽은 진짜 서지연을 말하는 것이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행동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도 원래부터 쌍둥이 자매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데 익숙해졌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부모님이, 자신이 잠들었다고 믿고 있을 때 목소리를 낮춰 말다툼을 하며 주연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을 종종 들었고, 그때마다 오히려 자기에게 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이 자신만의 상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런데 몇 년 후, 그러니까 서지연이 초등학교 사학년쯤 되었을 때 아버지는 휴스턴 외곽의 한 모텔에서 입안에 권총을 쏘아 자살했다고 한다. “입안에 권총을 쏘는 방식의 권총 자살은 의외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대. 그런데 아빠는 한 번에 성공했어. 생각해 보면 아빠는 늘 그런 식이었던 것 같아. 실수라는 걸 하는 법이 없었지.”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여전히 알 수가 없다고 했다. 그것도 동생이 죽은 지 몇 년 후에야, 그리고 자신과 어머니를 남겨 두고.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뒤 메일의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뭔지 알아? 엄마와 나는 얼마 후에 아빠의 물건을 모조리 버리고 마치 그런 사람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살았다는 거야. 참 이상하지 않니?” 나는 어쩌면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파란만장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에 비하면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일은 정말이지 지극히 평범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그래서 이번에도 한참 동안 답장을 보내지 못했다. 도무지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여름방학 동안 형을 자주 찾아갔다. 형은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재미있게 읽었다고 하고는 이것과 비슷한 것이 있으면 넣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형에게 나와 서지연이 읽은 ‘지하생활자의 수기’형 소설들을 차례차례 건네주었다. 『외로운 남자』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 같은 책들(제목 때문에 차마 『인간 실격』은 넣어 주지 못했다). 형은 어떤 것은 재미있어 했고 어떤 것은 지루하다고 했지만 대체로 마음에 들어 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수용소 문학’도 넣어 주었다. 『이것이 인간인가』와 『숨그네』, 슈피겔만의 『쥐』나 『모래의 여자』 같은 것들. 다행히 형은 수용소 문학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다.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면회 시간이 끝나곤 했기 때문에 그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형에게 주로 언제 책을 읽느냐고 물었다. 형은 아침 일찍 일어나 교도소 인근 지정 공장에 가서 일을 하고(다행히도 적긴 하지만 출소할 때 시급을 계산해서 노동에 대한 대가를 돌려준다고 했다), 운동 시간에는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보통 자유 시간인데 그때 책을 많이 읽는다고 했다. 잠이 안 올 때는 거의 없지만 혹시 그런 날이 찾아오면 밤에 읽을 때도 있다고 했다. 책 좀 읽으려고 하면 잠이 오더라고, 하고 형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거기에도 스탠드 같은 게 있어? 라고 물었는데, 형은 여기서는 밤에도 방의 불을 안 끈다고 대답했다. 한밤중, 그러니까 모두들 자는 시간에도 늘 형광등을 켜놓는단다. 보안을 위해서. 그러니까 형은 이곳에 온 뒤 반년이 넘도록 불을 끈 채 잠을 잔 적이 없었던 것이다. 형은 그곳에서의 생활에 대해 나중에도 자세히 이야기해 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 사실에 대해서는 지금도 종종 떠올리곤 한다. 불이 꺼지지 않는 방에서 고단한 몸을 누이는 사람들에 대해. 형은 “그래도 수용소보다는 나아, 『이것이 인간인가』? 와, 나 그거 읽고 유대인 아니어서 존나 다행이다 싶었잖아.”라고 웃으며 말했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서지연에게 문자 메시지가 오고 나서야 나는 내가 그녀의 메일에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고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그녀는 부탁이 있어서 연락했다고 말했다. “어딜 좀 같이 가줬으면 해.” 그녀는 그렇게 말했는데 그것이 어디냐면 어느 대학병원이었다. 거기에 그녀의 어머니가 있다고 했다. 그녀는 엄마에게 그 말을 할 생각인데, 누가 같이 있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알잖아, 나 친구 없는 거.” ‘그 말’이 무엇인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러기로 했다. 이야기 속에만 등장했던 서지연의 어머니를 한번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그 말을 들었을 때의 반응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대학로의 서울대 대학병원에 있는 암병동에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에 그녀가 설명을 해주었는데 어머니는 대장암에 걸렸고 의사 말로는 너무 늦게 발견해서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내게 주의를 줬다. “엄마 상태가 많이 안 좋아, 이상한 소리를 해도 놀라지 마.” 나는 알았다고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내가 단단히 마음을 먹은 만큼 상태가 안 좋지는 않았다. 내게 지연이 남자 친구냐면서 언뜻 미소로 보이는 표정을 띤 채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녀는 머리칼이 다 빠진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었고 마치 한참 자다가 막 일어난 사람처럼(정말로 그랬을지도 모르고)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바람이 다 빠진 듯한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지연은 어머니에게 상태가 어떤지 밥은 먹었는지 몇 마디 물어보고는 오늘은 중요한 할 말이 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입을 열기가 힘겨운지 말하라고 고갯짓으로 그녀에게 신호를 보냈다. “엄마, 나 사실 지연이 아니야, 주연이야.” 나는 힘없이 누워 있는 서지연의 어머니의 얼굴을 살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에도 그다지 변화가 없었다. 서지연은 말을 이었다. “나 지연이 아니라고. 주연이라고.” 그래도 지연의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지연은 잠시 기다리다가 쏟아내듯 말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지연이가 사라진 그날 엄마가 나한테 먼저 물어봤잖아. 주연이는 어디 갔느냐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다시 말할 틈이 없었어. 거기에서, 황무지에서 죽은 건 내가 아니고 지연이야.” 서지연은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어머니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창밖에서 매미 우는 소리가 약하게 들려오고, 맥박이 뛰고 있음을 알리는 삑삑거리는 기계음과 병실 밖에서 바퀴 달린 침대를 끌며 천천히 걷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그 어수선한 적막 속에서 한참 동안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서지연의 어머니의 표정이 천천히 바뀌었다. 그녀는 잠시 후 놀랍게도 마치 순진무구한 아기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기이한 빛으로 반짝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바람이 다 빠진 폐를 쥐어짜서 말하는 듯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주연아……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구나. 지연이가…… 도대체 누구니?”
나는 그날 이후로 서지연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메일도 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녀의 메일을 받은 것은 다음 해 여름이었다. 그 메일에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쓰여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우리가 찾아간 그날 이후 두 달쯤 뒤에 죽었다고 한다. “너한테 연락을 할까 하다가 관뒀어. 어차피 장례식장에 나도 전혀 모르는 친척들밖에 없었거든.” 그녀는 별일 없이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고 곧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사실 유학은 핑계고 그냥 미국에 가고 싶어서, 라고 말했다. 미국에 가서 차를 한 대 산 뒤에 옥수수밭이 아닌 황무지를, 지평선에 닿을 때까지 달려 볼 계획이라고 했다. 언제 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라도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 알고 있어서 조금은 위안이 된다고, 고맙다고도 했다. “이제 나한테는 정말 아무도 없거든. 어린 시절부터 미국에 살아서 친척들하고도 전혀 모르고 지냈고. 그리고 알잖아, 나 친구 없는 거.” 나는 그녀의 메일을 받고 나서 생각했다. 그녀는 내가 원한 것을 가진 셈이었다. 가족들로부터의 완전한 독립. 완벽한 해방. 그것은 여러 차례 그녀가 겪은 비극을 통해 얻은 것이긴 했지만. 그녀의 가족은 하나하나 사라져 갔고, 결국 그녀는 이 세상에 오로지 그녀 홀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서지연의 메일을 받고 얼마 후 형이 출소했다. 8월 15일, 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때 우리 가족은 차를 몰고 함께 영등포교도소로 향했다. 아버지는 차에 에어컨을 최대한 세게 틀어 놓은 뒤 정문 앞에서 형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마트에서 파는 떠먹는 두부를 사자고 했는데 어머니는 그래도 전통이라는 게 있는 거라며 시장에서 막 쑤어낸 커다란 두부 한 모를 사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왔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한참 기다리고 나서야 형이 나왔다. 광복절 특별사면을 받은 죄수가 꽤 많은 모양이었다. 차례차례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형은 거의 마지막으로 나왔고, 형이 나왔을 때는 두부가 다 식어 있었다. 형은 어머니가 입에 넣어 준 두부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어머니는 굳이 그 한 모를 다 먹이려 들었다. “너 또 들어가려고 그러니? 이거 다 먹어야 다시 안 들어간다.” 형은 서너 입 더 먹긴 했지만 한 모를 다 먹지는 못했다. 아버지는 형에게 그간 고생했다며, 먹고 싶은 거 있냐고 뭐든 다 사주겠다고 했다. 형은 그냥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형이 그곳에 있는 동안 부모님은 이사를 했기 때문에 형에게는 그곳도 예전의 집이 아닌, 낯선 장소일 것이었다. 나는 형의 기분을 짐작할 수도 없었다. 형의 표정은 기묘했다. 기쁜 마음일까. 자유의 몸이 된 것은 일단은 기뻐할 만한 일이겠지만 형의 얼굴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일 년 반 사이에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모두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이십 분쯤 지났을까, 형이 다급하게 차를 세워 달라고 했다. 아버지가 갓길에 차를 대자 형은 구석에 가서 구토를 했다. 나는 형의 등을 두드려 주었고 아버지는 차 안 운전석에 앉아서, 어머니는 우리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서서, 한참 동안 구토를 하고 있는 형을 바라보았다. 나는 괜찮으냐고 물어보며 계속 형의 등을 두드렸다. 형은 너무 오랜만에 차를 타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아침도 먹지 않았는지 소화되다 만 두부 말고는 나오는 것이 없는데도 형은 좀처럼 구토를 멈추지 않았다. 형은 땀을 흘리며 계속해서 마른 구역질을 했고, 나도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했다. 차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우리 곁을 빠르게 지나쳐 갔고 햇볕은 우리 머리 위에서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우리는 형이 배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비워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햇볕 아래, 끓어오르는 길 위에 서서 형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




김희선 소설가(2013)

작가소개 / 정영수 (소설가)

- 1983년 서울 출생. 2014년 <창작과 비평> 신인소설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2016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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