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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된다는 말을 열 번 하면

  • 작성일 2023-08-01

안 된다는 말을 열 번 하면

양수빈


   경고. 운행 중 정당한 사유 없이 출입문 비상개폐 핸들을 조작하면 철도안전법에 의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본다. 뚫어지게 보고 오래도록 보고 눈이 시리도록 쳐다본다. 지치지 않고 보는 것은 나의 특기였다. 나는 언제든 어디서든 그게 무엇이든 질릴 때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쳐다보는 것을 싫어했다. 네 시선이 끔찍하다고, 네가 그래서 음침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라고 대놓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날 이후로 누군가를 쳐다볼 때면 3초에 한 번씩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버릇이 생겼다. 

   다들 오해하지만,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본 적이 별로 없다. 내 눈이 보고 싶은 것을 직접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한번은 공원 나무에 묶인 강아지를 오래 지켜본 적이 있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달래기 위해 산책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천 보를 채 걷기도 전에 무릎이 쑤시고 아팠다. 부쩍 불어난 체중 탓일 것이다. 주먹을 말아 쥔 손으로 무릎을 통통 두드려 봐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육십 킬로그램에서 칠십 킬로그램이 되는 것은 어려웠지만, 칠십 킬로그램에서 팔십 킬로그램이 되기는 쉬웠다. 너무 쉬워서 이상할 정도였다. 맞은편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나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강아지를 힐긋 돌아보거나 대놓고 수군거리거나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무심히 지나치는 동안 나는 그저 강아지를 바라보았다. 흰 털이 잔뜩 엉켜 있던 강아지는 혀를 내밀고 한참을 헥헥거리다가 자리에 배를 깔고 누웠다. 여러 번 버림받아 본 솜씨, 라고 생각했다. 강아지의 주인은 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공원으로 돌아왔다. 남루한 행색의 백발노인이 느린 손길로 나무에 매인 목줄을 풀고 허리를 숙여 강아지를 품에 안았다. 강아지는 노인의 품에 안겨 얼굴을 마구 핥아댔다. 눈물로 젖어 있던 노인의 얼굴이 금세 말끔해졌다. 노인은 왼쪽 다리를 절며 천천히 멀어졌다. 나는 멀어지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의 뒷모습이 내 눈동자만큼 작게 보일 때까지 오래도록.

   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빽빽하다. 콩나물처럼 칸칸이 빼곡하게 들어찬 사람들은 플랫폼에 정차할 때마다 휘청이면서도 한 손에 든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들도 무언가를 본다. 질릴 정도로 본다. 한때는 나도 핸드폰으로 무의미한 영상을 보거나 그걸 보는 사람들을 구경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서서 오직 그 문구만을 노려본다. 핸드폰은 가방 앞주머니에 들어 있다. 센터에서 언제 전화가 올지 알 수 없어서 벨소리 음량은 늘 최대로 설정해 둔다. 가급적 전화는 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센터 선생님들의 곤란한 음성은 이제 익숙하다. 수화기 너머의 이조는 여전히 나를 찾고, 기다린다. 나는 그런 이조를 부드럽게 다독이며 안심시킨다. 괜찮아. 내가 너 없이 어딜 가겠어. 널 두곤 아무데도 안 갈 거야.

   나는 비상개폐 장치 위에 적힌 그 문장을 마스크 안으로 소리 없이 따라 읽다가 열 번쯤 반복하고 나면 마디마디 조각내 보기도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철도안전법에 의거, 2년 이하의 징역, 2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 읽으면 읽을수록 문장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정당한 사유라는 게 대체 뭐야? 철도안전법에 뭐가 적혀 있는지 알 게 뭐람. ‘이하’라는 단어는 너무 포괄적이지 않나. 애초에 정확한 수치 따위가 정해져 있기는 한 거야?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구절은 ‘2년 이하의 징역’이다. 나는 그 구절을 읽을 때마다 숨을 홉 참듯이 재빠르게 읽어내린다. 고작 문 한 번 연 거잖아. 문 한 번 연 것 가지고, 2년 이하의 징역이, 정말 맞아? 그게 맞는 거야?

   애초에 왜 하필 2년일까. 1년도 아니고, 3년도 아니고 2년. 나는 공부라면 그게 무엇이든 젬병이었으나, 숫자만은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는 교과목 중에 수학을 제일 좋아했으며 점수 또한 나쁘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를 때면 늘 암산으로 가격을 미리 계산했고 자동차 번호판에 적힌 숫자를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게 나의 유일한 취미였다. 모든 숫자에는 각각의 의미가 있지만, 특히 숫자 2는 수학적으로 가장 작은 짝수이자 가장 작은 소수라는 특징이 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했다. 홀수가 아닌 소수는 2가 유일했다. 넌 정말 별걸 다 안다. 이조가 감탄하듯 말했던 기억이 있다. 숫자는 중요해. 숫자만큼 명확한 게 없잖아. 유일하게 예측할 수 있는 건 오직 숫자뿐이야. 이조는 수학을 싫어했지만, 그보다 우연이나 운명 따위의 말을 더 싫어했기에 내가 하는 숫자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 주었다. 자신의 삶에서 우연하게 발생한 사건이 좋은 영향을 끼친 적이 없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럼 운명은 왜 싫어? 내가 물었고 이조는 어깨를 으쓱였다. 옛날에 점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무당이 그러더라고. 그냥 이런 운명인가 보다, 하고 사는 수밖에 없다고. 사람마다 타고난 운이 있는데 그건 절대 못 바꾼다고. 그런 거 공평하지 않잖아. 

   요즈음의 이조에겐 운명이나 우연 같은 말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조가 관심을 두는 것은 오직 몸을 씻고 닦는 일뿐이다. 이조는 하루에 여섯 번씩, 심할 땐 여덟 번 정도 샤워한다. 수분이 빠지고 있어. 수분이 빠지면 난 썩을 거야. 그런 말을 중얼거리며 몸을 둥글게 마는 이조의 허리를 쓰다듬는 밤이 길어지고 있었다. 이조의 피부는 늘 차가웠고 점차 건조해졌다. 틈날 때마다 닦아내고 문지른 탓에 몸 군데군데 붉은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이조야, 사람은 썩지 않아. 처음엔 그런 말로 진정시키려고 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 이조가 상처받은 얼굴을 한 뒤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은, 그렇겠지. 그런데 난 사람이 아니잖아, 해원아.


   나는 주먹을 꽉 쥐고 서서 지하철 창에 비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검은 창에 반사된 얼굴은 무표정하다. 언제나 그렇다. 남자는 늘 2-1칸에 타고, 가장 끝자리에 앉는다. 자리가 없을 때는 그 자리에 앉은 사람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린다. 무조건 그 자리에 앉아야만 한다는 남자의 강박 내지는 고집이 느껴진다. 자리가 나지 않으면 남자는 자신이 탔던 역으로 돌아오는 수고까지 감내한다. 순환 열차가 아니어도 그랬을까? 이윽고 자리가 나면 남자는 누구보다 빠른 동작으로 의자에 앉는다. 엉덩이를 깊숙이 밀어 넣고 등받이에 몸을 힘껏 기댄다. 남자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눈을 뜨지 않는다. 앞에 누가 있든 절대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겠다는 듯.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남자를 감시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방심은 금물이기에,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늘 검은색 옷을 입고 검은색 마스크를 쓴다. 모자는 쓰지 않는다. 검은색 모자는 오히려 눈에 띄는 특징이 될 때가 많으니까.

   열차는 잠실나루역에서 잠시 정차한다. 앞차와의 간격을 벌리기 위해 잠시 대기 중이라는 안내 음성이 흘러나온다. 평소보다 늦게 닫힌 문 덕분에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열차에 올라탄다. 문이 닫히기 직전 후다닥 뛰어든 남자와 여자가 숨을 고르며 내 뒤에 바짝 붙어 선다. 대박이다. 진짜 대박이다. 두 사람은 연신 대박이라는 말을 주고받는다. 가까이 붙은 여자 탓에 남자의 얼굴이 가려지고 말았다. 그러나 문제 될 것은 없다. 나는 남자가 내리는 역을 알고 있다. 남자는 늘 같은 역에서 내렸다. 남자를 감시한 3개월 동안, 남자가 다른 역에서 내리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남자가 어느 역에서 내리는지, 어떤 걸음으로 계단을 오르는지, 걸을 때 시선을 어디에 두는지 그간 하나도 빠짐없이 관찰해 왔다. 수십, 수백 번 상상해 온 일을 드디어 할 때가 됐다는 확신이 생길 만큼 긴 시간 동안.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길 수는 있지만 그날이 오늘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이유는 없다. 그저 오늘은 변수가 생겨서는 안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믿는 대로 살게 된다. 엄마가 남긴 말 중에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난 믿는다. 남자는 늘 내리던 곳에 내려서 편의점에 들렀다가 골목에 자리한 빌라촌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 순간을 기다릴 뿐이다.

   여자는 말이 많다. 남자는 핸드폰을 보느라 여자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다. 여자가 다섯 마디를 건네면 한 마디를 겨우 답하는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여자의 말과 어긋나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여자는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음을 흘리며 남자의 팔에 매달린다. 좀 더운데. 남자가 나지막이 중얼거리지만 여자는 미동도 없다. 여자는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을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점심 메뉴는 김치찜이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침이 고인다. 음식 얘기에 날카롭게 가다듬었던 신경이 무뎌지는 게 느껴진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나의 특징이자, 본능이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여자의 뒤쪽에 앉은 남자에게로 신경을 돌리기 위해 노력한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남자의 얼굴에 다시금 마음이 뾰족하게 세워졌을 때, 여자의 손등이 내 머리를 툭 친다. 정확히는 귓바퀴 윗부분이다. 여자는 나보다 더 놀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 눈빛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꾸벅 숙인다. 남자에게 무어라고 속삭인 여자가 그의 팔목을 잡고 사람들 틈을 헤쳐 옆 칸으로 옮겨간다.

   나는 여자의 마른 손등이 닿았던 부위를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린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인데. 여자의 손이 닿는 순간, 오랜 시간 건드리지 않은 스위치가 켜지고 말았다. 속이 울렁거리고 눈앞이 하얗게 점멸한다. 부숴야 해. 주먹으로 머리를 세게 내리치고 싶었지만, 혹여나 집중될 이목이 두려워 간신히 참아낸다. 대신에 나는 노선표를 올려다본다. 노선표를 보기 위해선 고개를 완전히 직각이 될 정도로 꺾어야만 했다. 하나, 둘, 셋. 세 정거장만 지나면 남자가 내릴 것이다. 그럼 나도, 내릴 수 있다. 셋 정도는 참을 수 있어. 3은 안정과 완전함을 의미하는 수니까. 그만큼 완벽한 수니까. 


*


   이조와 처음 대화를 나눈 것은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가정 시간 때였다. 우리는 같은 반이었지만, 1학기 때는 이조와 눈빛 한 번 섞어 본 적이 없었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시점에 전학을 온 이조는 특유의 시원시원한 성격과 선한 얼굴로 금세 반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선생님들도 이조를 예뻐했다. 이조는 뛰어나게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3등급 정도의 성적은 유지했다. 수업 시간에 졸다 걸리면, 이조는 능글맞게 웃으며 뒤에 나가서 공부하겠습니다! 하고 우렁차게 소리치곤 했다. 이조와 나는 이름으로도, 키 순서로도 겹칠 리 없는 조합이었다. 나는 일방적으로 이조를 관찰했다. 긴 다리를 크게 벌리며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이조를, 친구들과 장난치다 배를 부여잡고 웃는 이조를, 결 좋은 머리카락을 하나로 모아 묶는 이조를 남몰래 지켜보았다.

   2학기 가정 수행평가는 사과 껍질 깎기였다. 그때까지 나는 살면서 과일을 깎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과일보단 과자나 빵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집에는 과일을 나눠 먹을 사람이 없었다. 아빠와 이혼 후 엄마는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 회사를 가지 않는 주말에는 중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방 직원들 대부분이 불법체류자인 식당이었는데, 팔보채 맛만은 아주 끝내준다고 했다. 그러다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린 주방 직원 대부분이 자기들 나라로 돌아가게 된 바람에, 엄마는 맛있다고 칭찬했던 팔보채를 직접 만들게 되었다. 주방에서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이따금 홀로 나가 서빙도 하고 계산도 하고 청소까지 다 했다. 새로운 불법체류자들이 들어왔다 다시 쫓겨났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손목 관절이 고장 나고 살이 붙었다. 중국 음식은 무거운 만큼 고칼로리인가 봐. 엄마가 붕대를 둘러 감은 손으로 늘어난 뱃살을 만지작거리던 게 기억난다.

   수행평가의 채점 기준은 껍질이 끊어지지 않게 한 번에 자르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두 번, 많으면 네 번 넘게 껍질을 끊어먹었다. 완벽히 자른 아이들은 없었다. 너네 이래서 시집은 어떻게 갈래. 가정 선생은 그렇게 타박하면서도 아이들이 깎은 사과를 한 조각씩 집어 먹었다. 맛있네. 달다. 수고했어. 한 조각당 한 마디씩 내뱉으면서. 이윽고 내 차례가 됐을 때, 나는 몸이 덜덜 떨릴 만큼 긴장감에 압도당한 상태였다. 선생은 손에 든 채점표를 내려다보며 시작해, 하고 말했다. 

   나는 사과 한 알을 다 깎지 못했다. 반쯤 깎았을 때, 껍질과 함께 잘라버린 사과 조각이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위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킥킥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연습 안 했니? 하고 물었다. 나는 말없이 손안에서 갈변되어 가는 사과만 바라보았다. 여기까지 하자. 이건······ 버리는 게 좋겠다. 선생은 내 앞을 지나갔다. 이 반은 아주 공주들밖에 없구나? 선생의 말에 아이들이 야유했다. 조용, 조용. 다음 공주 시작해. 웃음기 밴 목소리와 함께 옆자리에서 사과 깎는 소리가 들렸다. 사각사각. 껍질보다 알맹이를 더 많이 잘라낸 탓에 내 사과는 앙상해 보였다. 나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손에 오래 쥐고 있던 사과는 따뜻하고 눅눅했다.

   이조랑 해원이는 집에서 연습 많이 해야겠다. 너희, 엄마가 깎아 주는 사과 먹기만 했지? 이런 불효녀들을 봤나. 모든 평가가 끝난 뒤 선생이 말했다. 부드럽게 휜 눈꼬리와 호선을 그린 입가가 농담이라고 말하고 있었으나, 나는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였다.

   저는 원래 사과 껍질 안 깎아 먹는데요. 등 뒤에서 이조의 익살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쳤나 봐, 진짜. 이조와 함께 다니는 주영과 소희가 이조의 팔뚝을 찰싹찰싹 때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불현듯 가슴이 뛰었다. 이조와 내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선생은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면서, 그럼 사과 껍질 안 깎아 먹는 이조랑 해원이가 뒷정리하고 가라, 라고 말했다. 수업 종료종이 치기 무섭게 아이들이 가정실을 빠져나갔다. 책상 위에는 아무렇게나 버리고 간 사과 껍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 자리에서 막 일어났을 때, 가정실 서랍에서 검은색 비닐봉지를 꺼낸 이조가 그 안에 사과 껍질을 버리기 시작했다. 이조가 껍질을 치우면 나는 휴지에 물을 적셔 끈적해진 책상을 닦았다. 어느새 이조는 내 자리 앞에 서 있었다. 울퉁불퉁한 모양새로 갈변된 사과 조각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재빨리 사과를 치우려는데 이조가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나는 벙찐 얼굴로 이조를 올려다보았다. 이조는 사과를 꼭꼭 씹어 먹고는 입을 크게 벌려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다 먹었다는 것을 내게 확인이라도 시켜 주듯이. 선생도 먹지 않은 사과를 이조가 먹었다는 사실에 나는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그건 뭐랄까, 존중받은 기분이었다. 이조는 남은 조각을 마저 주워 먹었다. 이조의 하얗고 정갈한 이, 날카롭지만 부드러운 눈매, 얇은 입술이 나를 보고 있었다.

   너도 엄마 없어?

   이조는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나는 놀란 마음을 감추기 위해 침을 꿀꺽 삼킨 후, 없는 거나 다름없다고 대답했다. 그래? 그렇게 말하곤 끝이었다. 이조와 나는 소각장으로 가 사과 껍질이 담긴 비닐봉지를 불길 속으로 던졌다. 소각장에 와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금방 불이 붙어 타오르는 비닐봉지를 응시했다. 우리는 한참 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다음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지만 둘 중 누구도 이제 그만 교실로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비닐봉지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게 됐을 때, 이조가 입을 열었다. 사실 나는 맨손으로 사과를 쪼갤 수 있어. 흠칫 놀라 이조를 바라보았다. 근육질의 남자들이 힘자랑의 수단으로 사과를 쪼개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은 있었지만, 이조같이 마르고 뼈대가 가느다란 여자 아이가 그런 걸 할 수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이조는 씩 웃으며 다음에 보여줄게, 하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여기에다 뭐 태워 본 적 있어? 하고 물었다. 이조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내려다보다 너, 먼저 말도 거는구나, 하고 중얼거렸다. 머리를 긁적이던 이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종종 얘기하자. 네 목소리 듣기 좋네. 내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은 이조가 처음이었다. 내 무언가가 좋다고, 내가 무언가 좋은 것을 갖고 있다고. 이조는 알까. 내가 종종 진서에게, 주영에게, 소희에게, 윤진에게 머리를 맞는다는 것을. 그 아이들이 나를 무어라 지칭하고 어떤 방식으로 내 입을 막는지에 대해, 알았을까.


*


   더는 참지 못하고 내 머리를 세게 내리친다. 둔탁한 소리가 나고, 내 옆에 서 있던 여자가 흠칫 놀란다. 여자는 나를 힐끔대며 내게서 한 발자국 멀어진다. 사람이 많은 곳에선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하지만, 두통을 가라앉히기에 이것보다 좋은 방법은 아직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었다. 열차는 출입문 위치를 조정하겠다며 앞으로 갔다가 뒤로 물러났다가 요란스럽게도 정차했다. 반대편 문이 열리고, 그 사이로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열린 문을 확인하는 척 남자를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가 깜짝 놀란다. 남자의 자리가 비어 있다. 황급히 시선을 돌리자, 남자가 막 출입문을 건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출입문을 향해 뛴다. 문 앞에 있던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밀면서 간신히 내린다.

   남자는 유유히 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나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남자를 따라 걸음을 재촉한다. 그제야 역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잠실역이다. 남자를 따라다닌 3개월 동안 남자가 삼성역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내린 적은 처음이었다. 잠실역에는 사람이 많다. 개찰구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나는 세 명과 부딪힌다. 정확히는 그들이 나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키가 작다는 것, 성인 여성 평균에 못 미칠 정도로 많이 작다는 것은 장점보단 단점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병원에서 정식으로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최근에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147센티미터가 되지 않는다면 왜소증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 키는 141센티미터였고, 처음 만난 사람 중에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내게 힘드시겠어요, 라고 위로를 건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엄마는 자주 나를 보며 불쌍하다고 울다가 화를 냈다가 스스로의 신세를 한탄하곤 했다. 살을 빼야 키가 자라지. 엄마는 마치 내가 노력하면 살을 빼는 것뿐만 아니라 키도 자랄 수 있다는 듯이 말했다. 엄마의 바람과 달리 나는 하루가 달리 부풀었다. 팔다리와 배, 허벅지는 물론 손등과 발등에도 살이 차올랐다. 임종 직전까지 엄마는 내게 살을 빼야 한다고 당부했다. 해원아, 살을 빼라. 그리고 사람답게 살아라.

   개찰구를 빠져나간 남자는 2번 출구 쪽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남자의 뒤를 쫓는다. 하필 오늘 이런 변수가 생기다니. 변수는 좋지 않다. 수학에서 변수란 어떤 범위 안에서 여러 값으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수를 의미하지만, 현실에서는 그저 삶을 살아가는 데 마주하는 위험요소일 뿐이다.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가방끈을 세게 쥐었다 놓는다. 가방 안에 든 것을 생각한다. 지갑, 핸드폰, 여분의 마스크, 그리고 과도, 과도, 과도.

   순간 내 앞으로 교복을 입은 여자와 남자가 지나간다. 분홍색과 갈색이 섞인 체크무늬 치마, 뻣뻣한 회색 바지, 다양한 디자인의 교복이 보인다. 남자의 뒷모습을 놓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나는 주위를 살짝 둘러본다. 그제야 내가 롯데월드 앞을 지나는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동물 귀가 달린 머리띠를 쓰거나 교복을 입거나 화려한 스티커를 얼굴에 붙인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아직까지 꿈에 젖어 있는 얼굴들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얼굴들과 다른 듯 닮아 있다. 얼른 집에 가고 싶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곁을 지나간다. 지금 가고 있잖아. 누군가의 목소리도. 누구나 집에 가지만 누구나 집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제 그 사실을 안다.

   남자는 에스컬레이터도 타지 않고 오로지 계단을 이용한다. 검은색 슬랙스에 감춰진 다리는 적당한 근육과 지방으로 이루어져 건강한 모양새를 띠고 있을 것이다. 남자는 초등학교 내내 태권도를 배웠으며, 중·고등학교 때는 테니스를 쳤다.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아마추어 테니스 대회에도 나가 우승을 했다. 나는 그의 사진이 작게 실린 기사를 찾아 읽었다. 땀에 젖은 머리를 넘긴 채 트로피를 들고 있는 남자는 기뻐 보였다. 트로피를 든 남자의 팔, 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굵은 허벅지를 오래 노려보았다. 남자는 그 단단한 팔로 이조를 향해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쓰러진 이조의 얼굴을 밟고, 침을 뱉었다.

   이조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대낮의 대로변이었다. 이조는 10분간 홀로 방치되었다가 행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조금만 더 늦게 발견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고, 의사는 말했다. 다행히 길가에 설치된 CCTV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범인을 잡을 수 있었다. 이조가 헤어진 여자친구와 너무 닮아서, 그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우고 자기를 버려서, 여자친구의 마음을 돌릴 선물을 사느라 빚을 많이 져서, 그런데도 여자친구가 자기 곁으로 돌아오지 않아서 남자는 화가 났다고 말했다. 

   나는 이조 대신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와 싸웠다. 스무 살 무렵 엄마가 죽은 후로 이조와 나는 쭉 같이 살았고,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주자고 약속했으니까. 우리는 이제 성인이니까 서로를 책임져 줄 수 있어. 이조는 소각장에서 사과 껍질을 태우던 날처럼 멋쩍게 웃었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던 그는 막상 재판이 시작되자 태도가 돌변했다. 처음엔 합의금을 제안했다가 통하지 않자 변호사 여럿을 선임해 재판에 나타났다. 1년이 넘는 지지부진한 공방 끝에 그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살아나서 그래요. 피해자가 죽은 건 아니니까. 내가 선임한 변호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출구로 나온 남자가 거침없이 걸음을 옮긴다. 나는 숨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그의 뒤를 쫓는다.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 어둑해지기 시작한 하늘 아래 사람들이 무심한 얼굴로 길을 거닐고 있다. 남자는 사람들 틈 사이를 유연하게 빠져나간다. 나는 뚝뚝 흐르는 땀방울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남자를 따라 걷기에 바쁘다. 무릎이 시큰거리고,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종아리가 땅땅하게 땅긴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오랜 예행 끝에 내가 정한 결전의 날은, 오늘이다. 

   남자는 골목에 자리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다. 맥주와 담배를 사기 위해서다. 그는 퇴근 후면 ― 놀랍게도 남자는 회사에서 잘리지 않았다 ― 늘 맥주를 마시며 집으로 갔다. 좋아하는 만큼 술이 세지는 않은 모양으로, 맥주 한 캔을 다 마실 즈음엔 마시기 전보다 현저히 느린 속도로 비틀거리며 걸었다. 주말엔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평일엔 언제나 맥주 한 캔과 메비우스 스카이블루 한 갑을 구매해 혼자 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게 그의 루틴이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남자의 동선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친구를 만나기로 했나? 혹은 애인? 아니, 아니다. 남자는 그간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편의점 옆 골목에 몸을 숨긴 채 남자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편의점 맞은편에는 골목의 유일한 가로등이 있다. 천천히 깜빡이던 가로등이 이내 환한 빛을 내뿜는다.


   다행히 완전히 망가진 건 아니에요. 이조의 뇌 MRI 사진을 띄운 의사는 안심하라는 듯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간혹 큰 사건을 겪은 분 중에 후유증으로 과일 증후군을 앓는 경우도 많고요.

   과일 증후군이요?

   쉽게 말해 자신의 몸을 과일과 동일시하는 증상입니다. 파인애플, 배, 복숭아 등 그 종류도 다양하고요. 시간이 갈수록 몸이 썩어 간다고 느끼고, 심지어는 벌레가 생겼다고 호소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의사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덤덤해서 하마터면 그렇구나, 하고 손쉽게 납득할 뻔했다. 수술 후 사흘 만에 깨어난 이조가 어느 날, 담담한 얼굴로 사과가 되었다고 말했을 때처럼. 몸 군데군데 생긴 상처와 멍이 점차 흐려졌을 때쯤, 이조는 자신의 몸이 점점 갈라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갈라져? 어리둥절하게 되묻자, 이조가 대뜸 손을 내밀었다. 주삿바늘 자국으로 얼룩진 이조의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이조는 답답하다는 듯 여기 봐봐, 하고 손등을 꾹 눌렀다. 여기, 갈라지고 있는 거 보여? 나는 이조의 손등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이조는 연신 여기, 여기를 봐, 하고 말했으나 내 눈에 들어온 거라곤 오로지 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마른 손등뿐이었다. 내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하자, 이조는 한숨을 내쉬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이대로라면 금방 속까지 말라서 썩어버릴 거야. 이조는 얇은 병원 이불을 꽉 쥔 채 중얼거렸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내가 물었다. 흐음. 의사는 마치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손가락을 세워 책상을 두드렸다. 잠시 후 그는 좋은 비유가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현관에 자동 센서등 말입니다, 사람이 없는데도 불빛이 들어올 때가 있죠? 사람이 있어도 불이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고요. 그런 거랑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나는 모른다. 현관에 자동 센서등이 달린 집에서 살아 본 적은 있지만 전등은 늘 고장 나 있었다. 엄마는 고쳐야지, 고칠 거야, 하고 말하면서도 전등에 시선을 두는 법이 없었다. 나보다는 키가 컸지만 엄마도 150센티미터가 채 안 됐다. 우리 둘 다 저 등을 어떻게 갈겠니. 엄마는 탄식처럼 그런 말을 내뱉곤 했다. 결국 등을 갈지 못한 채로 그 집을 나왔다. 어떤 것은 바로 하지 않으면 영영 할 수 없게 된다.

   의사의 말처럼 이조의 머릿속은 고장 나 버렸다. 불이 제대로 켜졌을 때 이조는 이전과 같았다. 방을 청소하고, 출근하는 나를 웃으며 배웅해 주었다. 그러나 많은 시간 이조는 사과가 되었다. 어떤 날엔 손등이, 어느 날엔 배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고, 이제 안쪽부터 서서히 갈라지고 썩어 갈 거라며 걱정했다. 수분이 빠지면 난 끝이야. 이조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한 얼굴로 중얼거렸고, 하루 대부분을 물속에서 보냈다. 욕조가 없는 화장실에서 종일 샤워기를 틀어 놓은 채 앉아 있던 이조를 퇴근 후에야 발견한 날도 많았다. 체온이 떨어져 덜덜 떨면서도 이조는 만족스러워했다. 나는 매일 이조를 씻겨 주었다. 사고 후 짧게 자른 머리카락을 감기고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몸을 문질렀다. 팔 제대로 들어 봐. 다리 좀 펴. 고개 들고. 이조의 팔다리는 내 한 손에 잡힐 정도로 가늘었다. 이조의 허벅지를 고정하기 위해 누르거나, 팔다리가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꽉 움켜쥘 때마다 이조는 작게 신음했다. 살살 해줘. 붙잡고 있던 이조의 손목이나 발목을 놓으면, 희미하게 남은 내 손자국이 보였다. 그 모습을 잠시 내려다보다 거품이 묻은 이조의 목덜미를 문질렀다. 비쩍 마른 목덜미가 금세 벌겋게 부어올랐다. 

   샤워를 마치고 나면 이조는 점점 멍이 늘어난다며 속상해했다. 나는 이조의 어깨와 허리, 허벅지와 정강이에 얼룩처럼 생긴 멍을 더듬었다. 무릎을 세워 앉은 이조가 몸을 한껏 웅크렸다. 둥글게 말린 등 위로 도드라진 척추뼈를 따라 로션을 바르며 생각했다. 어쩔 수 없는 거야. 사과는 원래 멍이 잘 드는 과일이니까. 나는 가만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이조의 허리를 껴안고 속삭였다. 그래도 괜찮아. 썩지 않게 내가 잘 돌봐줄게.

   편의점 밖으로 나온 그는 맥주를 마시는 대신 담배를 피운다. 편의점 앞에 서서, 미세하게 점멸하는 가로등 불빛을 바라보면서. 혹여나 그가 나를 발견할까 봐 조금 더 골목 안쪽으로 몸을 숨긴다. 남자는 한 개비를 완전히 태운 후에야 다시 걸음을 옮긴다. 내 몸에서 퀴퀴한 땀 냄새가 난다. 집에 가고 싶다. 문득 떠오른 낯선 목소리를 등진 채 나도 다시 걷는다.


   한참을 걷던 남자가 우뚝 멈춰 선다. 대단지 아파트로 들어서는 초입이다. 왼쪽에는 경비실이 있고 그 옆으로 지하주차장과 통하는 입구가 보인다. 나는 열 발자국쯤 떨어진 거리에서 남자를 몰래 지켜본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은 데다 낯선 패턴으로 움직이는 남자 때문에 평소보다 몸에 힘이 들어간다. 긴장감에 솟아오른 어깨를 손으로 꾹꾹 누른다. 남자는 오른편에 조성된 화단 앞에 서서 다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문다. 화단에는 커다란 수국 여러 송이가 피어 있다.

   이전에는, 그러니까 사과가 되기 전에는 이조가 주로 나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갔다. 특히 비가 내린 다음날이면, 이조는 나무젓가락 두 쌍을 챙겨 들고 내 손을 이끌었다. 이조는 전날 내리는 비에 흙을 벗어났다가 여태 아스팔트 위에서 방황 중인 지렁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좋아했다. 기부할 여유는 없으니 이런 거라도 하는 거라고 했다. 어쨌든 지렁이는 지구에 이로운 동물이니까. 나도 이조를 따라 젓가락으로 지렁이들을 집어 올렸다. 지렁이들은 몸부림을 치며 젓가락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바보들. 살려 주는 건지도 모르고. 그 과정이 지겹고 지루해서 가끔은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오늘도 나가? 내가 귀찮은 내색을 보이면 이조는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묵묵히 나무젓가락을 챙기고 신발을 신었다. 그 한결같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자연스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됐다. 이조에겐 그런 힘이 있었다.

   하루는 15분 만에 지렁이 다섯 마리를 돌려보내곤 잠시 쪼그려 앉아 쉬고 있는데, 이조가 멍하니 화단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파란 수국 여러 송이가 심어진 화단이었다.

   무슨 생각해?

   이조는 대답하는 대신, 수국의 색은 토양의 산성에 따라 결정되는 거 알아? 하고 되물었다. 그러곤 토양에 산성이 많으면 청색을 띠게 되고, 반대로 산성이 적어질수록 붉은빛이 감돈다고 덧붙였다.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나는 수국의 부드러운 꽃잎을 매만지며 물었다. 토양의 산성에 따라, 뭐 그런 거. 이조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라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엄마가.

   자리에 주저앉은 이조가 지렁이를 집어 화단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지렁이는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화단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나오지 마. 나오면 죽어. 이조가 조곤조곤 속삭이며 지렁이 앞을 막아섰다. 그런데도 지렁이가 몸부림을 멈추지 않자, 이조는 젓가락을 세워 지렁이의 몸을 콱 눌렀다. 이왕 죽을 거면 집에 가서 죽으렴. 나는 척추뼈가 툭 불거진 이조의 마른 등을 쳐다보았다. 이조의 등 위에 손을 올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조는 무릎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엄마를 찾았어. 곧 만나러 갈 거야.

   그날 이조는 친모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이조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을 나갔다던 친모. 이조에게 남긴 거라곤 이조의 말린 탯줄뿐이라는 친모. 이조는 그간 얼마나 오랜 시간 은밀하게 친모를 찾아 헤맸던 것일까. 우리는 서로에게 비밀이 없다고 믿었는데, 나한테도 말하지 못할 만큼 간절했던 걸까. 이제는 친모에게 원망도 분노도 어떤 감정도 남아 있지 않다는 말은 거짓이었을까. 이조가 그녀를 따라 떠날까 봐 나는 두려웠다.

   길쭉하게 자라난 두려움은 동그랗게 말린 모양으로 줄어들었다가, 손바닥에 맞아 죽은 벌레처럼 납작해지는 등 멋대로 형태를 바꿔대며 몸속을 유영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머리를, 가슴을, 팔다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이조는 아닌 척하면서도 들떠 있었고 그런 이조의 기분을 망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이조가 영원히 나와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이 낯선 남자를, 야구방망이를, 끔찍한 우연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지. 말도 안 되지. 하지만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기울었다. 무서울 만큼 속수무책으로. 


   두 번째 담배를 비벼 끈 남자가 다시 걷는다. 나도 힘겹게 다리를 움직인다. 축축하게 젖은 겨드랑이가 느껴지지만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땀에 젖은 머리를 축 늘어뜨린 채 나는 남자를 뒤따른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일까? 정신이 몽롱해지는 기분에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남자는 다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셔츠 소매에 달린 단추를 풀어 접는다. 별안간 들려온 개 짖는 소리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춘다. 자리에 주저앉아 버티는 개의 목줄을 잡아끄는 여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제야 둘러본 주위는 온통 녹색이다. 나는 턱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땀을 훔치며 심호흡을 한다. 남자가 ‘유수지 공원’이라고 적힌 표지판을 막 지나친다. 여긴 역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진 곳일까? 나는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며 간신히 발을 내디딘다. 벤치에 앉아 물을 마시는 사람,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 자전거를 세워 두고 셀카를 찍는 사람을 지나친다. 

   지나치고, 지나치고, 지나친다.

   무서울 만큼 크게 자란 나무와 이름 모를 풀, 꽃들을 지나친다.

   남자는 언제까지 지나칠 생각일까? 관절이 약한 무릎이 연신 삐걱거리고, 금방이라도 고꾸라질 것처럼 발목이 아려 온다. 여전히 멈출 기미조차 없는 남자를 쳐다보며 한숨을 내뱉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이조가 3년 전에 좋아했던 밴드의 데뷔곡이다. 밴드가 해체하는 날 이조는 많이 울었다. 핸드폰 화면에 뜬 익숙한 번호에 급히 전화를 받는다. 

   해원아, 어디야?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다. 이조가 센터에서 돌아오는 시간에서 10분이나 지나 있다. 나는 이마를 짚은 채 잠시 숨을 고른다. 잠자코 기다리던 이조가 너 바쁘면 나 먼저 집에 갈게, 하고 말한다. 나는 이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 된다고 대답한다. 내가 데리러 갈게. 나랑 같이 가. 이조는 대답이 없다. 위험하잖아, 안 돼. 나는 다시금 힘주어 말한다. 이조는 여전히 잠잠하다. 평소 같으면 알겠다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순순히 대답했을 이조가 불쑥 혼자 갈 수 있다고 말을 뱉는다. 나는 신발 아래 우글거리는 모래를 짓이기며 다시금 안 돼, 대꾸한다. 혹시나 듣지 못했을까 싶어 여러 번 덧붙인다. 해원아, 너는······. 이조의 목소리가 서서히 줄어든다. 이번에도 안 된다고 말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어쩐 일인지 목소리는 흘러나오지 않는다. 안 된다는 말을 열 번쯤 반복하다 보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나는 입을 벙긋거리며 땀 때문에 자꾸만 손에서 미끄러지는 핸드폰을 고쳐 잡는다. 그때, 엄마를 찾았다던 이조에게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뭐였을까. 병실에 누워 눈을 감고 있던 이조에게, 사과가 되어 내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진 이조에게는?

   전화는 어느 틈엔가 끊어져 있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리자, 우측에 자리한 녹색 철제 펜스 너머로 넓게 펼쳐진 테니스 코트가 보인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오는 남자의 얼굴도.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핀다. 기다란 네트 두 개가 나란히 놓인 테니스장에는 사람 한 명 없이 고요하다. 건강한 초록빛을 내뿜는 잔디가 어둠에 서서히 가려지고, 공원을 산책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다. 나는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옮긴 후 오른 다리에 힘을 실어 발을 내디딘다. 이마에서 흐른 땀이 시야를 방해하지만, 나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걷는다.

   10. 

   10은 모든 계산의 기본이자 십진법의 전환점이 되는 숫자. 전환점이라는 단어를 잇속으로 읊조려 본다. 지나치게 힘이 들어간 종아리가 욱신거리고 발끝이 저려 온다. 혀를 내밀어 윗입술을 핥자 꺼칠한 각질이 느껴진다. 흐트러짐 없이 일정하게 걷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한 걸음씩 디딜 때마다 머릿속으로 수를 센다. 9와 8, 그리고 7에서 6.

   어느새 남자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섯 걸음만 더 나아간다면 남자와 부딪힐 수도 있는 거리다. 나는 가방끈을 힘주어 움켜쥔다.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다리를 뻗는다. 5, 4, 3······ 나는 뒤돌거나 물러서지 않고 또 한 걸음 다가간다. 그리고 그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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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서수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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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해서
  • 2026-10-01

문장웹진 소설

보트 아래

보트 아래 손호영 한때 나는 얀의 말대로 집 앞을 비추는 보안카메라를 설치했더라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해 보곤 했다. 그가 사랑해 마지않던 햇빛, 무심히 우리 집을 침범하던 빛을 나도 결국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 도시에 뿌리내렸다면, 나의 세계는 바라던 만큼 넓어졌을까? 어쩌면 우리는 아기를 낳아 키웠거나, 혹은 결혼했을지도…… 이런 생각들은 물의 파동처럼 하나의 점으로부터 사방으로 원을 그리며 뻗어 나가곤 했다. 나는 그를 떠나며 가족 핑계를 댔다. 여기서는 영원히 가족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는 짐짓 놀라며,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나에게 너는 오래전부터 가족이었다고. 글쎄. 정말? 찰나였지만, 얀은 정말 상처받은 것처럼 보였고, 나는 승리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지난 일들을 여러 번 되감아 보면서 나는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이었는지 원점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 그의 견고한 세계에 작은 생채기라도 낼 수 있는 존재였는지를. * 암스테르담 출장에 김수오를 데려간 건 박 대표 부탁 때문이었다. 그곳에 살 때부터 눈여겨보았던 로컬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와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맺으려던 참이었다. 수 개월간 메일과 화상 회의로 대략의 조건 조율이 끝난 단계여서 큰 부담은 없었다. 현지 스튜디오와 쇼룸을 돌아보는 일정까지 포함해 4박 6일 출장 계획을 보고했는데, 박 대표가 그제야 김수오에게 시킬 만한 일을 고민해 보라고 말했다.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오 년을 살다 이 년 전쯤 귀국했다. 반년 넘게 하릴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던 내게 해외 바잉과 상품 기획을 총괄하는 차장 자리를 제안하며 손을 내밀어준 게 대학 선배인 박 대표여서, 나는 그의 지시라면 가급적 따르는 편이었다. 김수오는 박 대표 친구의 아들로 올해 스물일곱 살이었고 몇 달 전 정직원으로 채용됐다. 그의 아버지는 치아 교정 전문의로 전국에 네트워크 병원이 30곳쯤 있는 치과 체인의 대표라고 했다. 잘은 몰라도 박 대표는 김수오의 아버지에게 얼마간 빚을 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불쑥 남의 사무실을 찾아와 맡겨둔 듯 자기 아들 일자리를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 그것도 정규직을, 의사라면 상식이 있는 사람일 텐데, 하고 직원들끼리 수군댔다. ─우리 아들이 올해 졸업하는데 패션을 하고 싶다네. 그러면서도 아주 당당하거나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박 대표에게 전해 들으니 그 집안은 대대로 의사였는데, 김수오가 삼수를 하고서도 의대 입시에 실패했다고 했다. 메디컬 편입을 하라고 생명공학부에 보내놨더니, 학점 관리는 뒷전에 갑자기 패션MD를 하겠다고 선언해 집안이 뒤집어졌다는 것이다. 경력직 뽑아달랬더니 낙하산 신입이 웬말이냐고 투덜대는 직원들에게 박 대표는 김수오가 비싸고 좋은 것들 많이 보고 자랐으니 감각은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미감이니, 취향이니, 요즘 그런 거 없는 애들도 있어요? 내가 말했다. ─말하자면 그렇단 얘기지.

  • 손호영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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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조이

    재밌게 읽었습니다.

    • 2023-08-12 21:10:29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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