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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용 자전거

  • 작성일 2011-01-02


[기획/특집]

겨울에 쓰는 여름 이야기

이인용 자전거

편혜영


아직 아이이던 시절, 나는 아빠의 자전거에 홀딱 빠져 있었다. 은색의 커다란 몸체, 몸체를 단단히 휘감고 있는 기름때 낀 체인, 아빠가 의자에 앉혀 주어도 내게는 닿지도 않던, 내 신발만큼이나 커다란 페달, 내 작은 엉덩이에도 앉으면 불편하게 느껴졌던 터무니없이 작은 안장과 불쏘시개같이 커다란 브레이크를 갖춘, 구식 자전거였다. 동네에서 아빠 말고 그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종점 옆의 슈퍼마켓 아저씨뿐이었다.
아빠는 언제나 퇴근이 늦었지만 여름철이면 그 시간에도 자전거를 타기에 충분할 만큼 해가 남아 있어서 퇴근해 돌아와서는 씻지도 못하고,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나를 자전거에 앉혀야 했다. 나는 여름밤이면 더위를 먹은 듯 방바닥에 달라붙어 뒹굴고 있다가 아빠와 자전거를 타고 동네 마실을 다녀오고 나서야 잃었던 기력을 되찾아 단잠에 빠져들었다.
아빠 등에 매달려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여름밤이면, 흔들리는 발이 체인에 닿을까 봐 양쪽으로 다리를 쭉 벌릴 때면, 하늘을 나는 게 이런 기분일 거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아빠의 넓은 등짝을 바라보며 자전거를 타는 동안 천천히 여름 해가 저물었고 더위가 남아 있던 지표에서 시원한 공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낮 동안 폭염에 찌들어 있던 동네가 비로소 숨을 돌리는 것 같았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바깥에 나와 맥주나 막걸리를 마시던 어른들이 배낭처럼 아빠 등에 매달린 나를 쳐다보며 선량하게 웃었고, 평소에는 아이답지 않게 무뚝뚝하던 나는 연신 인사를 해대 귀여움을 받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하루 종일 곤하게 일을 하고 돌아와서 쉬지도 못하고 막내딸의 성화에 가방만 내려놓고 바로 동네 마실을 가야 했으니 즐겁기보다는 피곤했을 텐데, 아빠의 등과 페달을 밟는 발은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피곤한 아빠를 대신해 식구 중 누군가 자전거를 태워 주었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집에는 아빠 말고 그 커다란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는 자전거를 못 탔다. 자전거를 못 타는 게 유전도 아닌데, 나보다 열 살이 많은 큰언니, 여섯 살이 많은 작은언니도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집안 내력에서 유일하게 비껴 있던 오빠는 이제 막 세발자전거로 진입해서 페달이나 겨우 굴리는 정도였다. 더구나 나보다 고작 세 살 많아서 아빠가 나만 자전거를 태워 주면 질투하고 샘내는 꼬마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집에는 아빠의 자전거 말고도 오빠가 타다가 내게 물려준 네발 자전거가 있었다. 이제 막 오빠가 타기 시작한 세발자전거도 있었다. 오빠가 타는 자전거는 누르면 삐요삐요 소리를 내는 클랙슨도 있었고 앞창에는 만화 주인공도 그려져 있었으며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보조의자까지 있었지만, 시시했다. 나는 오빠의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내가 홀린 자전거는 아빠의 커다란 자전거뿐이었다. 그러니 아빠가 없다면 세상에 내가 탈 수 있는 자전거는 하나도 없었다.
아이답게 꿈도 자주 꾸고 그러는 반면 꾸었던 꿈을 잊어버리기도 하던 시절이라, 분명 아빠 등에 매달려 자전거를 타면서 언제인가는 혼자서 자전거를 타리라는 꿈도 꾸었을 거였다.
꿈이 무색하게 나는 계속 자전거 타는 것을 못 배웠다. 어렸을 때는 아빠 자전거가 아니면 타지 않으려고 해서 그랬다. 아빠의 자전거와 덩치가 비슷한 자전거에 앉을 수 있을 만큼 자랐을 때는 자전거 타는 걸 배우려고 할 때마다 사고가 났다.
한번은 친구가 보조의자를 꽉 잡아 주었는데도 친구와 함께 언덕을 굴렀다. 친구가 내게 끌려오지 않을 정도로 힘이 세거나 내가 친구를 끌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약했다면, 내가 다치건 말건 손을 놓아 버리는 의리 없는 녀석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친구는 힘은 약하지만 의리는 깊은 녀석이었다.
그 부상으로 얻은 상처가 말끔히 나은 후에 또 다른 (힘이 세 보이는 덩치 큰) 친구를 오래 설득하여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러 갔다. 보이는 대로 힘은 세지만 짐작대로 끈기가 부족한 친구였다. 친구가 냉큼 자립하라며 손을 놓아 버리는 바람에 나는 지구의 중력이 작용하는 방향을 체감하며 자전거와 함께 그대로 쓰러졌다. 그러면서 체인에 다리가 감겨 신고 있던 가죽구두가 찢어졌다. 검정 가죽구두가 빨간 피를 흘리길래 놀라서 만져 보니 피는 구두가 흘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흘리는 것이었다. 피로 젖은 양말을 벗고 보니 뼈가 보일 정도로 살갗이 찢어져 있었다. 친구들은 힘의 세기에 상관없이 내게 자전거 가르쳐 주는 일을 포기했고, 의리가 깊고 끈기가 부족한 것과 상관없이 입이 싸서 여기저기 자전거 때문에 다친 일을 소문냈다. 내가 타려는 자전거를 잡아 주고 싶어 하는 친구는, 아예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는 이미 의욕을 잃었다. 자전거가 무서운 선생님도 아닌데 주눅들어 있었고, 사나운 짐승도 아닌데 겁을 먹어 버렸다.
다시 자전거를 타게 된 것은 그런 부상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어느 여름 경주 보문단지에서였다. 친구는 늘 자전거 얘기를 하지만 결코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내 앞에, 자전거를 타고 호숫가를 돌고 있는 사람들을 부럽게 바라보는 내 앞에, 자전거를 가져다주었다. 핸들과 페달, 좌석과 바퀴가 두 개씩인 이인용 자전거였다. 힘도 약하고 끈기도 없고 부상을 겁내지만 현명한 친구였다.
중심을 잡는 것은 앞에 탄 친구 몫이었다. 그런데도 핸들을 잡고 열심히 발을 굴려 페달을 밟아대니, 앞사람의 등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고 좁고 불편한 보조의자에 앉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친구의 등만 보지 않는다면) 나 홀로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었다.
여름이었고 낮의 폭염이 밤까지 간섭하고 있었다. 이인용 자전거를 타고 보문단지를 달리는 동안, 어린 시절 아빠의 등에 매달려 자전거를 탔던 때처럼, 천천히 해가 저물었고 땀이 식기에 적당한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초록으로 한껏 물든 나뭇잎이 소리없이 떨어져 내렸다.
나는 불쑥 어린 시절의 여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내 그 시절로부터 아주 멀리 떠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의 등만 잡고 있으면 되는 시기는 진작 끝났고, 나는 어떻게든 혼자 페달을 밟고 방향을 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걸, 그렇게 스스로 여름의 폭염을, 겨울의 혹한을 통과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건 뜻밖에도 나쁘지도 쓸쓸하지도 않은 기분이었다. 내가 혼자서 자전거를 못 타겠거든 이인용 자전거를 탈 수도 있다는 걸 동시에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페달을 밟아야 하고, 같은 속도로 같은 곳을 달려야 하고, 시선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별로 다르지 않은 비슷한 풍경을 바라봐야 하는 이인용 자전거가 있고, 바로 지금 나는 친구와 함께 그걸 타고 있었다.
나는 묵묵한 친구의 등을 바라보았다. 든든하지도 연약해 보이지도 않는 그 등을 보고 있자니, 성장이나 자립이라는 게 꼭 혼자서 모든 걸 다 감당하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누군가와 호흡을 맞추고 속도를 맞추고 시선을 맞추는 법을 배워 나가면 되는 것이고, 간혹 누군가의 등을 바라보거나 잡을 수 있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등을 내밀어 주면 될 것이었다. 나는 비로소 아빠의 등 뒤에 매달려 있던 아이 시절과 작별하는 기분이었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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