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동그라미 그리기

  • 작성일 2026-01-01

   [편집위원 기획 – 반성, 소망, 시작]


   동그라미 그리기


최은영


   얼마 전, 김창환 님이 쓴 글을 읽었다. 책 제목이기도 한 글의 제목은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세상살이라는 게 그렇게 자로 잰 듯 떨어지지 않습니다. 좀 여유롭게 생각하세요. 제가 지금부터 동그라미를 여백이 되는대로 그려 보겠습니다. 

   마흔일곱 개를 그렸군요. 이 가운데 V를 표시한 두 개의 동그라미만 그럴듯합니다. 회사 생활이라는 것도 47일 근무 중에 이틀이 동그라면 동그란 것입니다. 너무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위에 그린 동그라미를 네모라고 하겠습니까, 세모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1)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말라는 그의 말에 위로받았고, 하루를 원으로 표현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하루하루가 동그랗게 완성되며, 시간은 마냥 직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간은 여러 개의 원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일 초, 일 분, 한 시간, 하루, 일주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일 년··· 한 해를 사는 것을 동그라미 하나 그리기라고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나는 마흔두 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셈이다. 앞으로 이 동그라미를 몇 개나 더 그릴 수 있을까. 

   끝의 끝이 되었을 때 새로운 시작이 돌아온다는 걸 연말이 오면 매번 깨닫는다. 만족하며 살았든 그렇지 않았든 새해는 거저 주어진다.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듯이. ‘새로운 동그라미를 그려 봐’ 하면서. 그러면 마흔셋이 된 나는 다시 손에 연필을 잡고서 새로운 페이지에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한다. 마흔두 개의 동그라미를 그렸지만 여전히 동그라미 그리기는 막막하고 어렵다. 언제부터 동그라미 그리기가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새 시간, 다시 주어진 기회, 새로운 삶···.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해가 시작되면 언제나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산다는 것이 버겁다는 생각을 떨쳐 내기가 어렵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삶이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시간 중에서는 가장 덜 힘든 시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견딜 만하다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십 대와 이십 대의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나는 마흔셋이 되었는데, 사는 일이 극적으로 쉬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너의 삶보다는 훨씬 더 평온하다고.

   마흔세 번째의 새해를 맞이하여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예전에는 회한도 많고 아쉬움도 많아서 ‘시간을 되돌린다면’이라는 가정을 자주하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지 않는다. 한때는 바보 같은 선택을 거듭한 어린 나를 용서하지 못하기도 했다. 너무 바보 같아서 미워질 정도의 어린 나를. 하지만 그게 그 아이의 최선이었다는 것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나니 더는 그런 내가 미워지지도 않았고, ‘시간을 되돌린다면’ 같은 가정을 하지 않게 됐다. 내 타고난 기질과 성장 배경을 이해하면서 내가 인생을 낭비했다거나 훼손했다는 식의 나를 탓하는 생각들도 옅어졌다. 이제 회한 같은 무거운 감정보다는 순간순간 드는 아쉬움 정도는 있는 것 같다.

   가령 ‘운동을 조금이라도 해서 이십 대에 목디스크가 터지지 않게 해야 했는데’ 라든지, ‘인생을 조금만 덜 진지하게 살아야 했는데’ 같은 생각 말이다. 이 또한 나의 기질과 성장 배경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문제여서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나에게 행복과 기쁨을 마음껏 허락하지 않았던 것도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린 마흔두 개의 동그라미는 이미 이 세상에 없다. 동그라미를 하나 완성한 순간, 그 동그라미는 내게서 떠나가 버린다. 언젠가 내가 죽을 때가 된다면, 나는 그 동그라미들을 단 하나도 내 품에 끌어안고 떠나지 못할 것이다. 지나간 건 지나간 것으로 받아들이고 집착하지 않는 내가 되고 싶다.

   나는 왜 나의 기쁨과 행복을 지지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자랐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한 가지. 그냥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이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가 통과해야 했던 시간에 대해서 더는 집착하면서 나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그런 문제를 회피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결핍을 결핍 그 자체로 두고서 문제로 삼지 않기로 했다는 말이다. 그때 내가 누리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내가 안전하지 못했다면 이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가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주고, 그때의 지켜지지 못했던 나를 지키면 된다. 내가 들어야 마땅했지만 듣지 못했던 말을 내게 해 주고, 내가 결코 듣지 말았어야 했던 말을 나 자신에게 더는 하지 않으면 된다.


*


   상담을 몇 년 동안 받고 글을 쓰면서도 나는 어린 시절의 나와 여전히 데면데면한 상태였다. 낯을 가리는 친구의 일곱 살짜리 아이를 앞에 둔 것처럼 나는 그 애와 편안하게 이야기 나누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

   얼마 전, 독자 모임을 다녀오던 길에 우연히 가수 신승훈의 12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는 기차에 앉아서 그가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봤다. 한참 영상을 따라 보다가 눈물이 나왔는데, 내가 여전히 이 가수의 노래에 감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그러니까 삼십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내 자의로 신승훈의 노래를 찾아 듣거나 영상을 찾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가 텔레비전에 나오면 채널을 돌렸다.

   신승훈은 내가 좋아한 첫 번째 가수이자 연예인이었다. 나는 이 사람의 목소리가 좋았고 음악이 좋았다. 그냥 좋았다기보다는 이 가수의 음악이 내 마음의 깊은 곳까지 닿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가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와 어떤 면에서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고.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별로 즐거울 것 없었던 어린이였던 나는 신승훈의 노래를 들으면서 사는 게 조금은 좋아졌다.

   나는 그 마음을 다해서 신승훈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당신의 음악을 들을 때 내 마음이 어떤지에 대해서. 나는 다 쓴 편지를 부치지 않고 간직했다. 아마 어디로 부쳐야 하는지 몰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건 실수였다. 내가 숨겨 둔 편지를 찾아서 읽은 엄마는 내가 편지에 쓴 내용들을 입에 올리면서 한동안 나의 마음을 조롱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놀라울 정도로 깊은 수치심을 느꼈다.

   한동안 조롱을 받은 후에는 ‘성인 남자 가수에게 어린애가 팬레터를 썼다’는 이유로 혼났다. 내 편지를 읽었다는 암시 속에서 조롱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혼나는 게 나았지만, 나는 내가 부끄러웠다. 팬레터를 썼다는 행위보다도, 누군가를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이 잘못된 것이라고, 누군가를 좋아해서 가슴이 뛰고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느꼈다. 내 적나라한 마음을 엄마의 시선으로 다시 살펴보니 수치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때 느꼈던 수치심이 너무 커서 나는 마흔이 넘어서까지도 나도 모르게 신승훈에 관한 모든 정보를 발견한 순간 바로 넘기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마흔두 살의 그날, 나는 다시 그에 관한 정보를 넘기려다 내 행동을 의식했다. ‘아, 나 아직도 이러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라디오에서 그의 노래가 나오면 마음이 불편하고 괴로웠던 일이 떠올랐다. 그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는 걸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그의 영상을 클릭해서 다시 음악을 듣는 건 깊은 수치심을 느낀 열세 살짜리 나에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해 주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사랑으로 바라보는 건 너를 비난한 사람이 암시한 것처럼 불결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니고 조롱받아서는 안 될 소중한 마음이라고. 

   나는 그날 이후 내내 신승훈의 노래를 들었다. 지난 삼십 년 동안 듣지 못했던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열세 살의 나를 대신해서, 열아홉 살, 스물여덟 살, 서른다섯의 나를 대신해서 들었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노래를 들을 때면, 그 노래를 들었던 그때의 나 자신과 다시 만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열세 살의 나와 마흔두 살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다. 신승훈 콘서트에 가서 나는 순수한 행복을 느꼈다. 나는 이제 내게 이런 시간을 많이 선물하려 한다. 더 많은 것들을 좋아하고 싶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불결하다는 식의 믿음이 여전히 조금이라도 내 안에 남아 있다면 그 마음을 그대로 바라보고 그 마음을 미워하는 대신 누군가를,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더 키워 나가고 싶다.

   누군가 어린 내게 어둠을 줬다면, 다 자란 내가 나에게 빛을 주면 된다. 예전에는 나의 지난 시간을 잊기를 소망했다. 혹은 빨리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를, 혹은 죽어서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가기를. 하지만 삶을 해마다 그리는 동그라미 그리기라고 생각하면 죽지 않고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어린 내가 소망했으나 누리지 못했던 그 작은 따뜻함을 지금의 내가 내게 주면 된다. 

   과거는 되돌릴 수 없지만, 다시 쓸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편지에 적었다는 이유로 수치심을 건네받은 내가 그 수치심을 수치심으로 두지 않고 다시 그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바꿀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내 과거를 지우지 않고 계속해서 다시 써 나가고 싶다. 버려짐, 실패, 상처와 고통이 오로지 전형적인 방식으로만 내 안에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도록. 


*


   지난 이 년 동안 소설을 쓰지 못했다. 소설을 쓰지 않고 두 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것이다. 동그라미 두 개, 라고 생각하니 이 년간의 공백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시간 동안 나쁜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경험들을 지나가기도 했지만, 내가 겪은 어려운 일들이 완전히 나쁘기만 한 일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 전부터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허구의 세계를 내 언어로 짓는 것이 얼마나 나를 벅차게 하는 일이었는지, 내가 얼마나 이 일을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는지 새삼 느끼면서 좋아하는 마음만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국문학번역원 출장으로 도쿄 현지 행사를 가기도 했다. 4박 5일의 일정 중에 내 개인 행사도 있었는데, 도쿄에서는 7년 만의 행사였다. 그곳에서 7년 전, 나의 작은 행사에 와 준 독자들을 다시 만나기도 했다. 내 책의 번역가인 아야코 님과 쿠온 출판사의 김승복 대표님, 책거리의 이토 님과도 오랜만에 인사를 나누었다. 일상을 공유하는 분들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어제 본 것처럼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어쩐지 조금은 슬프면서도 행복했다. 내 삶에 주어진 이런 작고 따뜻한 순간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글을 쓸 수 있고, 따뜻한 순간들을 종종 마주할 수 있다는 것, 사랑하고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나의 고양이들이 여전히 건강하다는 것.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나는 지나간 것들을 소망했다.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 내가 누리지 못했던 것, 내게 허락되지 않았던 것··· 다가올 것들을 소망하기도 했다. 내가 지금 가지지 못한 것, 내가 지금 누리지 못하는 것, 내게 지금 허락되지 않는 것. 그런 소망들은 너무 무거워서 나약한 내가 오래 짊어질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그저 나와 주변 존재들의 무탈함을 소망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조차도 욕심이었다는 걸 이제 안다. 

   지금 내가 소망하는 건 여한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언제 떠나든 너무 크게 아쉬워하지 않고 미소 지으면서 떠날 수 있는 그런 가벼운 마음이다. 그리고 끌려가듯 살지 않고 하루를 살더라도 나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단순하고 단정하게 살고 싶다. 이 소망은 어렵지만 무겁지는 않다.



1) 김창환,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웅진지식하우스, 2024, 21쪽.



2025년 10월호부터 문장웹진 편집위원이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1월호에서는 2026년 새해를 맞아 시인과 소설가 등 총 4인의 작가가 참여한 신년 에세이를 소개합니다.
한 해를 떠나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4인 4색의 소회가 ‘반성, 소망, 시작’이라는 주제로 펼쳐집니다. 네 명의 작가가 연말연시에 펼쳐놓는 소회와 바람을 지켜보며,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해 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마련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기획은 <문장웹진>이 독자분들에게 전하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이자 새해 응원입니다.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기획

[문장웹진 특집좌담(비평)] 유동하는 세계, 대화하는 비평(가)들

[문장웹진 특집좌담(비평)] 유동하는 세계, 대화하는 비평(가)들 진행 : 윤재민 평론가 패널 : 이미진 평론가, 최선교 평론가, 현재 평론가 윤재민 안녕하세요. 문장웹진 9월호 비평 좌담을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사회를 맡은 문장웹진 편집위원이자 평론가 윤재민입니다. 그리고 오늘 패널로 이미진 평론가, 최선교 평론가, 현재 평론가를 모셨습니다. 사실 이렇게 세 분을 모신 이유는 전적으로 저의 사심 때문인데요. 그간 제가 글이나 활동하는 것들을 인상 깊게 보았고, 궁금했던 분들 모신 겁니다. 참석자 분들 모두 간단하게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어요. 언제 데뷔했고,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현재 평론가부터 먼저 하실까요? 현재 안녕하세요. 저는 202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 평론 부문에 당선되면서 활동을 시작한 조현재라고 합니다. ‘현재’라고 성을 떼고서 필명 아닌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교 안녕하세요. 저는 2022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안희연론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도 원고에 넣을 약력을 요청받으면 이 정도로만 저를 소개하곤해서 어떤 말을 더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미진 안녕하세요. 저는 2025년에 김기태론으로 창비 신인 평론상을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한 이미진이라고 합니다. 이제 1년이 된 것 같고, 조금씩 평론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생활인으로서 돈을 벌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윤재민 오늘 이렇게 모신 세 분. 연차가 현재 평론가가 3년, 그리고 최선교 평론가가 4년 차 정도 됐죠? 2022년도니까 4년. 그다음에 이미진 평론가 같은 경우는 1년 되셨지요? 이미진 아마 발표 기준으로는 1년이 조금 안 된 것 같습니다. 윤재민 이제 1주년 돼 가시는군요. 세 분들 모두 신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인데, 그중에서 재미있는 글 많이 쓰시고 계시거나, 그럴 거라는 믿음이 드는 분들과 대화 나눠보고 싶어서 이 자리를 마련했거든요. ‘신인 비평가’로서 가지고 계시는 여러 가지 고민이나 문제나 목표나 욕심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궁금하고요. 우리가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각자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지평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일단, 비평가로 데뷔하게 된 각자의 계기가 있을 텐데요. 최선교 평론가 먼저 말씀해 주실까요? 최선교 평론가가 된 계기를 기계적으로 기술해 보자면 국문과 대학원 수업 과제로 처음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왜 평론을 계속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제 성향 때문인 듯합니다. 어릴 때부터 어떤 것에 심취하고 매료된 상태를 무척 즐겼어요. 그리고 내가 그것에 매료되었는지 꼭 설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정확하게 내가 그것을 왜 좋아하는지, 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일이 무척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저는 시나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 2026-09-01

문장웹진 기획

소중한 것은 어디에 있지?

[문장웹진 다시 읽기] 소중한 것은 어디에 있지? ― 이민하, 「옛날 귀신」(2019년 2월호 수록) 김진선 귀신과 신의 차이를 아는가? 언젠가 시로 쓴 적 있지만, 돌아가신 나의 이모는 무속인이셨다. 어릴 적부터 자주 아팠던 이모는 신내림을 받으면 괜찮아진다는 말을 듣고 다른 세계와 통로가 되는 운명을 받아들이셨다. 멀리서 보이는 서낭기와 현관에서부터 나는 향냄새, 방 안을 채운 촛불의 온기, 정면으로 눈을 마주치기 무서운 탱화가 이모의 직업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이모는 분명 신을 모신다고 했는데, 사람들은 이모가 귀신을 본다고 했다. 이모에게 진짜 귀신을 보는지, 지금 여기에도 귀신이 있냐고 직접 물어보진 못했는데, 가끔 이모는 달라진 눈빛과 목소리로 다른 존재의 말을 전하셨다. 사실 나는 이모에게 깃든 것이 신이든 귀신이든 상관없었다. 이모가 예전보다 덜 아플 수 있다면, 그래서 할머니와 엄마가 걱정을 한시름 놓을 수 있다면, 사람들이 골목을 지나갈 때 이모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건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법당 바닥을 몇 번이고 걸레질하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신과 귀신은 우리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영적인 존재이지만, 둘을 가르는 차이는 어떤 종교와 문화적 전통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대개 신이 인간보다 높은 차원에서 우주와 삶의 질서를 다스리는 초월적 존재라면, 귀신은 생전의 삶과 죽음, 풀지 못한 미련, 한(恨)과 같은 정동에 매여 특정한 장소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다. 한국의 무속에는 산신, 칠성신, 용왕신, 성주신 등 자연이나 공간을 관장하는 다양한 신이 있고, 원귀나 객귀, 잡귀와 같이 정처 없이 떠도는 영혼들도 있다. 그러나 한번 귀신으로 떠돌기 시작했다고 해서 영원히 귀신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영혼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의 온전한 안위와 정성 들인 제사를 받고 숭배의 대상이 되면, 마침내 그 서러움을 털어내고 신격화되어 누군가를 수호하는 신의 자리에 오르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을 통과하며 읽게 된 이민하의 「옛날 귀신」에서 귀신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궁금했다. ‘옛날 귀신’이라고 하면 소복을 차려입고 검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처녀 귀신이나 쪽머리를 진 할머니 귀신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호러물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그러니까 영화관에서 호러물의 예고편이 상영되면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는 나로서는 어릴 때 가족들과 본 이 귀신의 전형이다. ‘현대’나 ‘최신’ 귀신이라면 다른 옷차림과 헤어 스타일을 하고 있으려나. 시에서 귀신은 특정한 형상을 지닌 존재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가족이 모여 사는 집에서 화자가 “커트 머리 엄마와 쌍둥이 동생과 오빠들이 납량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을 본다거나 “어른들이 마당에서 잔치를 하”는 상황에서 은연중 스산한 기운이 감지될 뿐이다. 그렇다고 귀신이 따로

  • 김진선
  • 2026-09-01

문장웹진 기획

그러니까 지금부터

[문장웹진 다시 읽기] 그러니까 지금부터 ― 임솔아, (2018년 6월호 수록) 김진선 아파트 분리수거장 입구에 접이식 교자상이 버려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주인이 교자상 위에 몇 가지 반찬과 국을 내어 밥을 차려 먹었을 테지만, 이제는 엄중한 글씨체로 ‘무단 폐기물 신고 비용 관리실로 납부’라고 적힌 종이를 붙인 채 수거를 기다리면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느라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떤 이유로 버려진 것일지 궁금해하면서 지나쳤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 아파트 복도에서 음식 냄새가 난다. 최근에는 청국장 냄새가 연이어 났는데, 가끔 생선이나 삼겹살을 굽는 냄새도 난다. 배달 음식도 그에 못지않다. 엘리베이터에서는 특정 브랜드의 치킨 냄새가 유난히 풍기는가 하면, 특정 요일에는 피자 배달이 잦을 때가 있다. 삼백여 세대가 다 잘 먹고 잘 살려고 애쓰는 중이구나 생각하면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난다. 임솔아의 단편소설 에서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이 나온다. 지은과 수희는 어떻게 하면 비좁은 원룸 방을 알뜰하게 구획하여 지낼 수 있을지 궁리한다. 벽간 소음을 막기 위해 매트리스를 벽에 세워놓고, 침대 프레임마저 분해하려 든다. 수희는 지은과 함께 명동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편,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신경을 쏟는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생활의 모습이겠으나 지은의 생활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은에게는 이름이 많다. 지은은 신영, 미희, 시한, 영은, 규리, 주영의 이름으로 산 적이 있다. 지하철 공공화장실 휴지걸이에서 주신영이라는 이름을 주운 뒤로 “다시 해보자. 주신영으로”라고 말하면서, 주신영으로 지냈다. 어느 날은 주영이 되어서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지은이 이름을 바꾸어 살 때마다 수희 역시 이름이 바뀌었고, 두 사람은 이름에 어울릴 만한, 그 시기에 그들이 꿈꾸는 세계의 서사를 지어냈다. 누군가는 진지하게 이거 명의도용 범죄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보자. 정말 한 번쯤은 다시 살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지. 나는 지은과 수희처럼 이름을 바꿔가면서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은 없지만, 새 삶이 필요해서 전학을 결심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안 사정으로 인해 태어나 줄곧 살던 곳을 떠나 할머니가 계신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전학을 간 셈이라 사투리가 제일 큰 난관이었다. 내가 ‘살구’라고 불러왔던 놀이는 ‘공기’라고 부르는 것이었고(이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살구라는 어여쁜 단어가 있는데!), ‘정구지’는 ‘부추’이거나 ‘꼽표’는 ‘곱하기’였던 것처럼 대화를 나누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단어들이 많았다. 억양 역시 어색하고 낯설었다. 경상도 억양은 강하고 말끝이 높은 편이라면, 전라도 억양은 폭이 크고

  • 김진선
  • 2026-08-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세요.
  • 욕설, 비방, 혐오 표현 및 과도한 홍보성 내용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운영 정책에 위반되는 댓글은 사전 안내 없이 숨김 또는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