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뒷면
- 작성일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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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기획 – 반성, 소망, 시작]
한 해의 뒷면
최현진
첫 눈이 내린다. 나의 글쓰기 방에 난 창문으로 흰 원들이 신호등과 선로 위에 앉는 걸 본다. 눈과 바람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외투를 되살리며 종종종 걸어간다. 눈이 쌓인 지면은 세상으로부터 떠 있는 것 같다. 사물의 형체를 지우며 공백에 가까워진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공백(空白)에서 찾아온다. 이 글은 지난겨울에서 다시 첫눈이 내리는 동안의 이야기다.
아홉 살 때 ‘단감’이라는 시를 써 본 것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내 꿈은 작가였다. 2025년은 꿈을 이루며 시작했다. 나의 첫 책이 나온 것이다. 출간 이후의 삶이 책의 질량만큼 가벼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연초 문학상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아버지가 바터팽대부암이라는 희귀암 진단을 받으셨다. 시상식 가는 길이 앞으로 펼쳐질 투병과 간병의 길처럼 더디고 어려웠다. 이른 봄, 나는 희미한 감각으로 수상과 첫 책의 기쁨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최종 교정지를 만지는 날에 아버지가 누워 있는 고층 병동에서 쏟아지는 폭설을 보다가 그만 커피를 쏟고 말았다. 얼룩이 책에 인쇄되어 나올 것도 아닌데 참을 새 없이 눈물이 푹신 떨어졌다.
나는 서운했다.
내 삶에.
작가는 어떻게 가족구성원 내에서 돌봄이라는 균형을 지키며 자신의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가. 휠체어를 끌다가 메모를 하고 병실에 불이 꺼지면 노트북을 켜 타닥타닥 불씨를 지피기도 하지만 일순간에 불과하다. ‘작업을 이어 나가고 싶다’는 마음과 ‘중지해야 한다’는 갈등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병원에 도착했지만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서성거린다거나, 환자에게 무뚝뚝하게 군다 거나. 간병 일수를 줄여 보자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러기에 내 직업은 출퇴근이 따로 없는 작가이고 또한 애매한 태도가 걸림돌이었다. 수상과 첫 책의 행운이 함께 왔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쉽사리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나를 축하해 줄 때였다. 병원 앞에 뜬 부드러운 점선의 구름을 보며 사진을 찍어 두는 것이 기쁨의 전부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문학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작가가 무엇인지 충분히 숙고하지 않은 탓인지 모른다. 나는 빠져나갈 출구를 찾고 있었다.
첫 강연은 부산이었다.
책을 내고 공식적으로 들어온 첫 번째 일이었다. 식구들에게 떳떳하게 통보하고 짐을 쌌다. 얼마나 걸리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하루가 걸린다고 했다. 강연은 두 시간이었지만 부산까지 가는 데 오고 가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런데 왜 짐을 싸냐고 물어보셔서 간 김에 글을 쓰고 오겠다고 말했다. 여기서도 글을 쓸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시는 게 아버지 입장에서는 당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글을 쓸 수 없었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내가 초청받은 곳은 시외에 위치한 고등학교였다. 따뜻한 땅에서 올라온 연둣빛 들판을 거쳐 봄 멸치를 잡던 배가 묶여 있는 작은 항구와 벽돌로 쌓은 젓갈 공장을 지나서 달려간 곳에 아늑한 학교가 보였다. 그 곳에서 나는 도서부 학생들을 만났다. 청소년 독자를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긴장했는데도 학생들은 웃으면서 분위기를 풀어 주었다. 마음까지 풀린 탓일까. 나는 강연 막바지에 이르러 학생들에게 갈 수 있는 한 마음껏 도망쳐 보라고 조언했다. 물리적으로 장소를 벗어나 보는 것이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념에서 해방되어 보는 것이든, 방에서 방 밖으로 나가 보는 작은 여정이라도 가져 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건 현재 내 상황에 대한 반추였다. 아버지가 일곱 시간이나 있었던 수술실, 이틀 동안 계셨던 중환자실, 그리고 한 달 째 입원 중인 병실에서 벗어난 나는 자유로운 개체였다. 당시에는 ‘행복’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부적절한 것 같아서, 부산에 강연을 온 것이 휴식이라고 우회적으로 소감을 밝혔다.
강연이 끝난 뒤 학생들은 저마다 자신의 꿈에 대해서 들려주었고 그중에는 작가와 책방 주인이 많았다. 나는 그 학생들에게 나중에 동료로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학교를 나왔다. 마음속으로 학생들이 미래에 여는 책방에 들어갈 책을 쓰자는 새 꿈을 품기도 했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로 간 나는 곧장 글을 썼다. 책상에서는 해변의 밤을 볼 수 있었다. 둑에 앉아 주인과 나란히 달빛을 쐬고 있는 강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 실감했다. 부산에서 사흘이나 더 머물렀다. 현실로 돌아왔지만 나는 괜찮아져 있었다. 바다 앞에서 혼자 보낸 시간을 기운 삼기로 했다. 간직한다는 것은 내 안에 있던 걸 파 보고 나서야 가능한 거였다.
이후 되도록 멀리 강연을 다녔다. 창원, 광주, 순창, 강릉 등을 다니는 동안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었다. 아버지는 퇴원을 했다. 나 역시 안정을 찾은 듯했다. 기차 안에서는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말 그대로 나에게만 집중했다. 전화 달라는 친구의 메시지를 보고 강연 끝나면 해야지, 해 놓고 늦게 귀가 해 새벽잠을 길게 자는 나날이었다.
시월에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장례를 하고 온 날 밤에 모로 누운 내 뒷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너였지? 분명 너였어. 시간을 느낄 때마다 갈증이 났다. 친구가 준 유리컵에 물을, 가우디 성당에서 사 온 초에 불을, 글 쓸 때마다 팔꿈치가 책상에 닿아 아프다는 내 말을 기억했다가 깔아준 여러 색실로 짠 테이블보, 친구가 쓴 책들, 하와이 냄새가 나는 향초, 조가비 빛깔 보석함, 사랑은 정물화로 남을 수 있는가.
다음 강연은 대전이었다. 처음으로 청소년이 아닌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이었다. 강연을 기획하신 담당 선생님과 강연 전까지 다섯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아마 선생님께서 적어 주신 다정한 편지들 때문이었을 것 같다. 강연 날 처음 얼굴을 보며 안부를 나누는 중에 불쑥 아픔이 몰려왔다. 친구 소식을 아는 선생님의 눈시울도 나와 같이 일렁였다. 책으로 만난 사이, 라고 불러도 될까. 가끔은 가족들이나 어릴 때 친구들보다 독자분들이 나를 더 들여다보고 있음을 느낀다. 그 순간이 그랬다.
깊은 가을부터는 혼자 보내는 시간보다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짝이 나를 데리고 단풍나무 숲길과 흐르는 천으로 데려갔다. 근사하고 맛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불쑥 눈물을 흘려도 짝은 오 분 안에 나를 웃게 해 주었다. 눈물 버튼과 웃음 버튼이 가까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학원 시절 만난 제자는 ‘선생님 친구분은 돌아가신 게 아니라 선생님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숨 쉬는 별이 된 것 같아요.’라고 손 편지를 보내왔다. ‘봄’이라 부르는 어린이청소년책읽기모임 동료들이 도토리가 여무는 것 같은 그림책을 들고 찾아와 조용히 나를 안아 주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는 돌봄을 받고 있었다. 더는 출구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텅 빈 바로 그 지점에서 나의 이야기가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은 곳으로 기우는 소리들을 수집하면서 말이다.
그즈음 간 곳은 완주에 있는 중학교였다. 울타리를 대신해 학교를 감싸고 있는 나무들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순간의 빛깔이었다. 아직 종소리가 울리기 전에 운동장을 걸었다. 건너다 보이는 우체국과 짧은 신호등이 만들어 주는 소음이 여기가 내가 돌아온 자리라고 알려 주는 것 같았다.
편안했다.
강연 쉬는 시간에도 학생들이 곁으로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중에서도 한 학생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언니와 열심히 채운 저금통이 있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자기들 몰래 저금통을 기부해서 서운해하니까 엄마가 눈길 위에 눈사람을 만들어 준 게 자신의 ‘스파클’이었다는 이야기였다.
눈사람이라니.
우리는 왜 녹을 걸 알면서도 눈사람을 만드는 걸까?
우리 곁에 있다 사라지는 걸 똑똑히 보았어도, 폭설이 내리면 아이들과 어른들은 손이 시리도록 눈사람을 만든다. 나는 눈사람을 만드는 일이 우리가 겨울까지 살아 낸 것을 기념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 눈사람은 녹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간을 살다가 내 안에 영원히 남는 것이라고. 완주의 학생이 만든 눈사람이 내게 남았고, 내게 온 눈사람을 독자분들에게 남겨 드리는 일처럼.
강연이 끝나자 담당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작가는 왜 이렇게 힘든 글을 쓰는 걸까? 소외되고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서 우리들도 삶의 주인공이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인 것 같다고 했지.” 사전 독서토론장에서 나왔던 이야기라고 하셨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께서는 인근 사회복지기관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미리 일러 주셨다. 걱정할 것도 더 잘해야 할 것도 없었지만 선생님의 마무리 멘트에 마음속에 불이 켜진 건 사실이다. 그때까지 내게는 글을 쓰는 ‘나’만이 있고, ‘우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기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친구와 나눈 메시지함에 들어가 보았다. 우리는 문자도 편지처럼 장문으로 주고받았기에 스크롤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올해 내 생일 날 친구가 보낸 메시지 앞에서 멈추었다. 친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절망은 힘이 없어! 내 행운 너한테 다 줄게. 잘될 거야. 사랑해!!!
방바닥에 등을 대고 가만히 누워 있다 보면 하얀 천장에 암암하게 박혀 있는 펄이 보인다. 그런데 밝은 낮에는 희미한 감각으로만 펄이 저기에 있다고 느낄 뿐이다. 궁금했다. 집주인은 왜 햇살이 잘 드는 집에 이런 마감을 했을까? 밤이 찾아오고 불을 끄면 그때는 빛이 나니까? 빛이 빛나기 위해서 많은 어둠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때로는 진실에 아플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절망에 힘이 없다고 믿는다. 행운을 다른 이에게 돌려 줄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생각하고, 믿는 것 외에 내가 받은 사랑을 설명할 방법을 모르겠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에게도 행운을 온전히 드리고 싶다. 올 한 해 나는 눈 위에서 슬픔을 느끼고 한 걸음씩 무겁게 내디뎠지만 시린 손으로 두드려 간 곳에 청소년들을 만났다. 그동안은 청소년의 시선이 향하는 곳만 따라갔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할 때에 상대의 뒷모습을 담는다. 그래 나는 안다. 청소년들의 앞면뿐만 아니라 뒷면도 함께 살피는 것이 청소년 문학가, 나의 길임을.

친구가 마지막으로 찍어 준 나
한 해가 눈에서 시작해 눈으로 끝나 간다. 창밖 공백 위에 새 것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본다. 받아쓰다 보면 봄이 온다. 분명 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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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부터 문장웹진 편집위원이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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