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위한 커튼콜
- 작성일 2026-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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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기획 – 반성, 소망, 시작]
시작을 위한 커튼콜
송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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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은 내게 변화와 도전의 해였다. 짧지 않은 학부 생활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두 번째 시집을 펴내면서 지난 이삼 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작업물과 사유들을 털어 냈다. 문화센터 등에서 시 창작 수업을 하며 학생들을 만났고, 창작촌에 입주하며 잠깐의 서울살이를 해 보기도 했다. 또 그 변화와 도전의 한 축에는 극(劇)이 있었다. 새해 첫날, 신문을 통해 첫 희곡 「탐조기」를 발표하게 되었는데, 그 직전까지도 연극에 대한 지식이라곤 소나기 오는 날 도로변에 생기는 웅덩이만큼이나 얕았던 내겐 그 일이 어떤 사건처럼, 무척 고되고 생경한 모험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희곡이 무엇인지, 연극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한 해 동안 고군분투했었다. 많은 희곡을 읽었고 많은 연극을 보았다. 한 명의 독자이자 관객으로서, 손꼽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수의 좋은 작품들을 만났다. 특히 와즈디 무아와드의 작품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음이 틀림없다(나는 『화염』을 각기 다른 극단의 낭독 공연과 무대 공연으로 한 번씩 봤고, 희곡을 여러 번 반복해 읽었다). 또 한 차례의 무대 공연과 한 번의 낭독 공연에 작가로 참여하면서,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이 가진 힘과 가치를 몸소 익혔다. 시나 소설은 작가의 머리에서 태어나, 그의 손으로 옮겨지고, 그의 품 안에서 완결된다. 희곡은 그와 다르다. 희곡의 완성은 실연(實演)을 위한 하나의 단계이며, 그것은 연출과 배우, 드라마터그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조력을 바탕으로 비로소 몸과 숨을 얻는다. 두 번의 공연 연습에 참여하면서, 나는 배우들의 호흡과 몸짓이 어떤 위력을 가지는지, 연출의 창의적인 시선이 어떻게 무대를 빛나게 하는지, 드라마터그의 예리한 질문이 어떻게 희곡의 골간을 드러내도록 이끌어주는지를 보고 배웠다. 공연으로 다시 만난 나의 희곡은 내가 생각지 못한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나를 작가가 아닌 한 명의 관객으로서 감동하고 환호하게끔 만드는, 기분 좋은 낯섦의 생기였다.
처음 신년 에세이 청탁을 받고, ‘반성, 시작, 소망’이라는 주제를 접하고 나서 자연히 지난 2025년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지나간 일상에 관해 떠올리기보다는, 내 ‘씀’이 한 해 동안 어떻게 몸을 바꾸어 왔는지를 주로 되짚은 듯하다. 이를테면 이전까지는 거의 시만 쓰고 발표해 왔던 내가, 희곡이라는 장르를 접하고 익히게 되면서 겪은 생각·언어·감각의 변화에 대해서, 또 그것이 내 시의 지형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에 대해서. ‘반성, 시작, 소망’이라는 키워드 아래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초점도 분명 그곳을 향해 있을 것이다. 이 에세이는 지난 1년간 내 변화한 내 ‘씀’에 관한 내밀한 살핌, 일종의 고백에 다름 아닐 것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기억 하나를 먼저 꺼내 본다. 지난가을 나는 연희동의 단란하고 아름다운 창작촌 작업실 안에서, 세 번째 시집의 초고를 다 쓴 바 있다. 초고는 막 원고를 묶기 시작할 적 기획했던 대로 고대의 극과 서사시, 신화의 영향이 곳곳에 반영된 장시집이 되었는데, 원고를 한 데 묶는 축으로서 가장 큰 구심력을 발휘해 준 것이 바로 희곡의 장르적 특징과 형식이었다. 초고의 마지막 장을 다 써낸 순간, 불현듯 사위가 훅, 하고 깜깜해지던 것을 나는 느꼈다. 그건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극의 마침표를 찍는 형식으로서의 암전이었다. 하나의 극이 살아 움직이기를 그만두고 어둠의 널따란 관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나는 방 안에서 홀로, 시를 쓰며 실감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무척이나 감사했다. 뜻밖의 기회로 극과 가까워지게 된 것이, 또 지난 한 해 동안 창작진들 바로 곁에서 (나 역시 한 명의 창작진이 되어) 공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 실로 대단한 행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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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일 자 신문, 그 특별한 지면에 내 희곡이 실린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조금 두려워졌다. 12월의 불법 계엄 사태 이후로 내 쓰기는 멈춘 상태였다. 어떤 것이 시가 될 수 있는지, 시를 향할 수 있는지, 어떤 시가 현실의 압도적인 불합리함에 대응하는 목소리로서 기능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시라고 부를 만한 텍스트라곤 단 한 자도 쓸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또 다른 ‘씀’의 길이 열린 것이다. 낯설고 어려운 길이었다. 내 희곡 등단작 「탐조기」는 24년 봄, 대학에서 희곡 창작 수업을 들을 때 썼던 것으로, 「탐조기」를 쓰고 투고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살면서 본 연극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입센이나 체호프를 비롯해 유명한 작가의 희곡 몇 편을 읽긴 했고 <오레스테이아> 같은 비극들을 좋아하긴 했지만, 실제로 공연되는 동시대 연극에 관한 정보라곤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한국연출가협회의 주관으로 「탐조기」의 공연화가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동료 작가들과 연출들을 비롯해 연극계에 몸담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 혼자만 너무 많은 걸 모르고 있다는 생각에 위축되는 한편, 그 어떤 배움이라도 얻기 위해서 그들 곁에서 끊임없이 귀를 쫑긋 세웠던 듯하다. 어쩌면 시를 쓸 수 없는 상태, 거의 증상에 가깝게 느껴지는 그 반강제적인 함묵의 입장이 나를 극에 더더욱 골몰하도록 이끌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그때 함께 작업에 참여한 동료들에게는 실로 많은 것을 배웠다. 「탐조기」를 공연화 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작품에 관해 많은 것을 이야기했는데, 대사와 지문 하나하나의 의도를 타인에게 설명하는 그 낯선 작업을 통해 나는 내 텍스트를 더욱 면밀하게 재독할 수 있었다. 극의 막바지에 이르러 조가 뱉는 대사(“아저씨 저요, 정말로 언젠가는 떠날 수 있겠죠?”)가 왜 낙관적인 뉘앙스를 가져서는 안 되는지, 훤이 읊는 하이쿠(“안착 못 하는 / 나그네 심경이여 / 고타쓰 화로”1))가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작가로서 한 번 더 고민해 보고, 이야기 나누었던 기억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연출가와 배우분들의 빛나는 의견은 희곡을 다듬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공연화된 탐조기에 두드러지는 것은 배경음악을 포함한 음향적 요소들이었는데, 희곡을 쓸 당시에는 거의 고려하지 않았던 부분이 극에 큰 정서적 울림을 덧입혀 주는 핵심 요소가 되어주었다는 점에 즐거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공연을 앞두고 연습실에서 진행한 리허설을 지켜보다가 나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탐조기」를 쓸 땐 한 번도 울적한 기분에 젖어 들지 않았었는데. 낯선 얼굴을 갖고 내 앞에 나타난 그 「탐조기」가 좋았다. 변방으로 쫓겨나다시피 떠나야 했던 이들의 연약한 목소리들이 섬세한 음악과 배우들의 몸을 만나 발화되고 있었다. 그를 통해 나는 내가 왜 이 극을 쓰기 시작했는지,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다시 실감했다.
「탐조기」의 공연화를 지켜보는 동안 나는 희곡을, 연극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에 관해 아는 것이 여전히 협소함에도 그렇게 되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희곡이 극의 실연을 위해 쓰이는 텍스트라는 점이 좋았다. 희곡이 희곡의 형식에서 멈춰야만 했다면, 고정되었더라면, 하여 희곡을 쓰는 나 역시 시 쓰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단독 창작자로서의 자아를 가졌다면 나는 결코 극작을 통해 ‘쓰는 나’의 정체성을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희곡과 시는 모두 완성되지 않은 텍스트, 하나의 가능태이지만 그 빈칸이 성립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일상의 언어들, 지시적 기표를 재료로 시적 언어를 창조함으로써 의미의 부딪힘, 깨짐, 산란(散亂)하는 이미지, 하나의 메시지로 완결되지 않는 리듬을 빚어내는 것이 시의 존재 방식이라면, 희곡의 대사와 지문들은 하나같이 실연의 가능성을 품에 안고 잠들어 있다. 많은 경우, 희곡의 의미는 단지 텍스트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희곡 텍스트와 무대화 가능성 사이의 빈틈을, 희곡의 문학적 발화와 (아직 실연되지 않은/실연될) 실제의 발화 사이의 낙차를 떠돌고 있는 부유체에 가깝다. 바로 그 점이, 비슷하지만 다른 두 문학 장르의 비완결성이 나는 사랑스러웠다.
늦은 봄 「탐조기」 공연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이상하게도 시를 쓸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묻는다면 여전히 대답할 수 없었음에도 그랬다. 나는 그때 내가 품었던 것이 단순한 낙관이라기보다는, 내가 사랑하게 된 두 문학 장르와 닮아 있는, 쉽사리 규정할 수 없는 유동적인 가능태에 가까웠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순간의 인상이되, 손에 잡힐 듯 선연한 예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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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장막 희곡 「리암 빌」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사업 <봄 작가 겨울 무대>에 참여하면서 쓰게 된 것이다. 1월에 의뢰받고 5월 말 초고를 제출했으며, 8월에 같은 해 등단한 동료 작가들과 함께 낭독 공연을 올렸다. 9월경 출판사에 수정 원고를 넘겨 11월쯤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으니, 거의 한 해를 통으로 그 작품과 함께한 셈이다. 이 때문에 그 작품에 내가 갖는 애정도는 동 시기에 출판한 시집 『잉걸 설탕』이나, 공연 이후 쓰게 된 세 번째 시집 원고에 갖는 것과 정도가 거의 같다.
「리암 빌」 서사의 골자는 학부 때 쓴 중편소설에서 가져온 것인데, 원래부터 그 중편을 확장해 장편소설을 쓸 용의가 있었던 내게 그 작업은 단순한 개작 이상으로, 요컨대 어떤 한 시절 끝마치지 못했던 문학적 여정을 완수해 내는 일로서 의미 있었다. ‘좀비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살아남아 자신들의 방공호를 이룬 두 남자와 한 침입자에 관한 이야기’로 요약되는 「리암 빌」은, 처음에는 ‘증언’이라는 특정 형식이 반복적으로 제시되는 극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200매 분량을 썼을 즈음, 기획 초기부터 도움을 주었던 드라마터그 선생님의 조언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전면 수정했다(썼던 원고들은 몇 개의 문장을 제외하고 전부 폐기했다). 인물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입을 빌려 너무 작위적으로, 또 설명적으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장막극을 쓰면서 나는 비로소 인물들의 전사를 비롯해, 극을 이루고 있는 여러 설정들을 어떻게 읽는 이/보는 이들에게 ‘연극적으로’ 전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혔다. 희곡에서 어디까지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떤 것은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지 파악해야 했다. 무엇을 발설하고 무엇에 침묵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리암 빌」은 대폭 수정되었다. 본래 2막에 해당하는 내용을 1막으로 옮겼으며, 인물들의 ‘증언’이 반복되는 형식을 버리고 서스펜스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극의 방향을 틀었다.
이 과정은 초고를 완성한 이후, 연출과 배우들을 만나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그들의 조언과 아이디어, 질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예컨대 나는 리암과 빌, 두 인물이 서로를 바라보며 애정 어린 대화를 길게 나누는 장면을 보여 주는 것보다, “나는 믿어.”라는 대사 하나로 그들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연극적으로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인물의 전사는 그 전부를 제시하기보다 드러내지 않는 쪽이─그러는 한편 그의 대사, 눈빛과 몸짓을 포함한 비언어적 표현 등으로 암시하는 쪽이 낫다는 것을 상기했다. 어떻게 보면 나는 여전히 쓰는 이로서의 권위, 서사를 틀어쥔 손의 아귀힘에 갇혀서, 관객의 상상력이 연극에 참여할 여지를 줄이고 있었던 것이다. 여백의 모호함이 주는 즐거움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래 쓰던 장르─시부터가 여백의 문학, 비약의 난장(亂場)이었는데도 말이다.
나는 「리암 빌」 낭독 공연 준비를 진행하던 중에 다시 시가 써지기 시작했던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었을 거라고 믿는다. 희곡의 가능성을 배우고 동시에 그 가능성이 시와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 그 일련의 과정 끝에, 나의 시는 또다시 작동한 것이다. 그때 나는 단지 희곡을 쓰는 데에 그치지 않고, 희곡의 형식이 어떻게 시에 접목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과거의 나는 대사와 지문으로 대표되는 희곡의 가시적인 형식만을 빌려 와 시를 썼다. 그 이상을 희구하고 싶었다. 더욱 본질적인 희곡의 성질, 혹은 그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시에 옮겨 오고 싶었고 동시에 그 지난한 작업에 실패하고 싶었다(나는 예정된 실패에 뛰어드는 그 모든 작업, 삶의 궤적을 모방하는 그 움직임들이 문학적 운동에 다름 아님을 열렬히 믿는다).
그 뒤로 쓰인 나의 시란, 수많은 ‘나’들을 무대 위에 올리는 작업과 다르지 않았다. 희곡-텍스트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기능하는 가능의 공간, 무대 위에서 발화하고 변태하는 ‘나’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어쩌면 내가 이전에 천착해 왔던 시적 사유로부터 한 발짝 나아갔을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마침내 세 번째 시집의 초고를 다 썼을 무렵, 나는 24년 가을쯤,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면서 썼던 학업 계획서의 문장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중학교에 다닐 때 장래 희망 설문지에 내내 ‘시인’이라고 적었다가 삼 학년 때쯤 ‘문학가’라고 고쳐 썼던 것을 기억합니다. 시인이 되는 것을 넘어 소설이나 희곡 등을 함께 쓰고 공부하며, 종국에는 여러 장르를 자유롭게 횡단하는 작품을 만드는 이가 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 욕심은 지금도 저를 추동합니다. 다른 장르의 문학을 쓰게 만들고, 여러 장르와 형식을 경유하는 복합적 텍스트의 성립 가능성에 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그 욕망이 나를 움직이고 있구나.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내 욕망의 충실한 개로서 한 해 동안 이 낯선 길들을 달려왔어.
극은 욕망의 지도다. 인물들은 욕망에 추동되어 행동하며, 그 행동이 관계를 낳고 사건을 발생시킨다. 플롯의 씨실과 날실을, 수많은 갈림길과 지형을 창조한다. 어떤 욕망은 완전한 암전 이후에도 지속되고, 어떤 욕망은 잠시간의 ‘사이’에도 스르륵 휘발되어 버린다. 세 번째 시집 초고를 다 쓰고 내 몸 안에 암전을 들였던 그 순간, 나는 사라지지 않는 욕망을 느꼈다. 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무대 밖으로 하나둘 퇴장하는 데도 그치지 않는 박수 소리처럼, 경쾌한 타격음이 내 뼈 안쪽을 둥둥 찧었다. 쓰는 것이 기뻐. 쓸 수 있어서 기쁘다.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이 질긴 함묵의 천을 벗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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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고 있는 12월 중순으로 돌아오자면,
「탐조기」와 「리암 빌」, 두 개의 공연을 마무리한 일이 이제는 까마득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지금 나는 세 번째 시집의 구성을 한창 수정하는 중이다. 또 장막극을 하나 쓰는 중인데, 여러 지원을 받았던 전작과 달리 오롯이 혼자 써내야 하는 작업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희곡은 여전히 내게 아주 넓고 생경한 황무지처럼 느껴진다. 자연을 손쉽게 쥐거나 휘두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협소한 인간주의적 관점일 따름일 터다. 나는 아주 냉정한 태도로 내 한계를 판단하며, 또 내 발아래에 파묻혀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그 땅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다만 나는 내가 궁금해했으면 좋겠다. 그 땅을, 그 땅의 안팎을, 나아가 그 땅 너머와 그 땅 아닌 곳까지, 영원히 궁금해했으면. 내 안쪽의 안쪽까지 들여다보고 싶은 이 호기심의 성화가 좀처럼 꺼지지 않았으면.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소망은 그뿐이다. 다른 것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1) 마츠오 바쇼, 『바쇼의 하이쿠』, 유옥희 역, 민음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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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호부터 문장웹진 편집위원이 기획한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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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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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선
- 2026-09-01
문장웹진 기획
그러니까 지금부터[문장웹진 다시 읽기] 그러니까 지금부터 ― 임솔아, (2018년 6월호 수록) 김진선 아파트 분리수거장 입구에 접이식 교자상이 버려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주인이 교자상 위에 몇 가지 반찬과 국을 내어 밥을 차려 먹었을 테지만, 이제는 엄중한 글씨체로 ‘무단 폐기물 신고 비용 관리실로 납부’라고 적힌 종이를 붙인 채 수거를 기다리면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느라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떤 이유로 버려진 것일지 궁금해하면서 지나쳤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 아파트 복도에서 음식 냄새가 난다. 최근에는 청국장 냄새가 연이어 났는데, 가끔 생선이나 삼겹살을 굽는 냄새도 난다. 배달 음식도 그에 못지않다. 엘리베이터에서는 특정 브랜드의 치킨 냄새가 유난히 풍기는가 하면, 특정 요일에는 피자 배달이 잦을 때가 있다. 삼백여 세대가 다 잘 먹고 잘 살려고 애쓰는 중이구나 생각하면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난다. 임솔아의 단편소설 에서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이 나온다. 지은과 수희는 어떻게 하면 비좁은 원룸 방을 알뜰하게 구획하여 지낼 수 있을지 궁리한다. 벽간 소음을 막기 위해 매트리스를 벽에 세워놓고, 침대 프레임마저 분해하려 든다. 수희는 지은과 함께 명동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편,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신경을 쏟는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생활의 모습이겠으나 지은의 생활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은에게는 이름이 많다. 지은은 신영, 미희, 시한, 영은, 규리, 주영의 이름으로 산 적이 있다. 지하철 공공화장실 휴지걸이에서 주신영이라는 이름을 주운 뒤로 “다시 해보자. 주신영으로”라고 말하면서, 주신영으로 지냈다. 어느 날은 주영이 되어서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지은이 이름을 바꾸어 살 때마다 수희 역시 이름이 바뀌었고, 두 사람은 이름에 어울릴 만한, 그 시기에 그들이 꿈꾸는 세계의 서사를 지어냈다. 누군가는 진지하게 이거 명의도용 범죄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보자. 정말 한 번쯤은 다시 살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지. 나는 지은과 수희처럼 이름을 바꿔가면서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은 없지만, 새 삶이 필요해서 전학을 결심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안 사정으로 인해 태어나 줄곧 살던 곳을 떠나 할머니가 계신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전학을 간 셈이라 사투리가 제일 큰 난관이었다. 내가 ‘살구’라고 불러왔던 놀이는 ‘공기’라고 부르는 것이었고(이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살구라는 어여쁜 단어가 있는데!), ‘정구지’는 ‘부추’이거나 ‘꼽표’는 ‘곱하기’였던 것처럼 대화를 나누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단어들이 많았다. 억양 역시 어색하고 낯설었다. 경상도 억양은 강하고 말끝이 높은 편이라면, 전라도 억양은 폭이 크고
- 김진선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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