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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우리가 문학의 미래를

  • 작성일 2026-07-01

  [문장웹진 다시 읽기]


  현실의 우리가 문학의 미래를

  ― 조연정, <문학의 미래보다 현실의 우리를>(2017년 8월호 수록)


김진선


  어느 강의 시간, 교수님께서는 신입생들에게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면을 소개해 주셨다. 많이 읽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그날 이후 인터넷 즐겨찾기 목록에는 《문장웹진》이 빠지지 않고 있다. 햇수로 17년, 매달 1일이면 새로 올라온 작품들을 접했다. 나름 놓치지 않고 따라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다시 보니 아닌 일이다. 맞다, 이것은 고해성사. 나의 죄를 고합니다. 나는 장르 편식이 있어서 시를 제외한 소설, 비평, 기획 등은 대체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문장웹진 다시 읽기’ 기획은 적어도 나에게 ‘다시 읽기’가 아닌 셈이다. 그러니까 이 기획은 적어도 나에게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처음 마주한 글을 여러 번 살피고,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겨서 정말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마침내 말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시작은 2017년 8월호에 수록된 조연정의 <문학의 미래보다 현실의 우리를>이라는 비평이다. 평소 어렵다고 생각한 비평만큼은 피하거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는데, 그간의 죗값을 달게 받는 거 같다. 이 글은 윤이형 소설가가 “페미니즘에 입문한 여성 창작자”로서 고민하는 몇 가지 질문과 함께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중심으로 문학적 재현,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논의의 과정에서 《문장웹진》 2017년 4월호에 수록된 조강석의 <메시지의 전경화와 소설의 ‘실효성’-정치적·윤리적 올바름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단상>에 의문을 표하며,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는 작품들이 미학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부정적 평가에 정면으로 맞선다. 먼저, 윤이형 소설가의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 나는 앞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서사의 중심이 되는 소설을 많이 ‘써야만’ 할까?

- 앞으로 쓸 내 소설에서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순응하거나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하는 여성이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일까?

- 나는 페미니즘에 입문한 여성 창작자이기 때문에 앞으로 여성에 대한 어떤 멸시나 비하도 ‘현실 그대로’ 작품 속에 재현하면 안 되는 것일까? 꼭 필요해서 그런 식의 재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럴 경우, 반드시 거기에 내가 작가로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명시해주어야만 하는 것일까?

- 이런 고민들을 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일까, 혹은 각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성’으로서의 내가 과잉 반영되어 있는 것일까? 혹은 나는 그저 여성 트위터리안-독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일까? 그녀들을 ‘타인’으로 여길 만큼 나는 그녀들에게서 먼가?1)


  작은따옴표 안에 들어간 말(밑줄은 인용자 강조)이 유독 신경 쓰이는 것은 왜일까. 이 질문들은 의무(‘써야만’), 제약(‘안 되는’), 판단(‘비판적인’), 자기인식(‘여성’), 자기반성(‘타인’)의 과정으로 거칠게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창작의 과정에서 이 과정은 꼭 순서대로 수행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거꾸로 가볼 수도 있다. 혹 좋은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그 과정을 역순으로 경험하게 하고, 그래서 ‘나’로 하여금 쓰게 만들 수도 있다. 학창 시절 뚜렷한 장래희망이랄 게 없어서 드라마 <허준>을 보고 한의사를 꿈꾼 뒤로, 그러나 성적이 의대를 갈 정도는 아니라 점수가 가장 높았던 국어 과목에 맞춰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한 뒤로, 강의실에서 처음 기형도와 이성복을 읽은 뒤로, 내게도 재현하고 싶은/재현해야만 하는 현실의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여기서 ‘알게 된 것 같다’고 자신 없이 말한 이유가 있다. 나 스스로에게는 미덥지 않은 쓰기의 시간이 있었으니까. 


  2010년대 초반, 학부 시절 남성 시인들의 시를 주로 접하면서 내 목소리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내 작품 속 화자의 시선이나 목소리가 남성적이거나 중성적인 게 어울린다고 간주했다. 얼마간 스스로 ‘여성(적)’이라는 것에 거리를 두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시는 멀어졌다. 오히려 멀어진 거리로부터 내 세계를 성역화하고 미학적으로 가다듬으려고 했다. 나는 왜 여태 의심하지 않았을까. 다른 이들의 목소리는 그렇게도 잘 의심하면서. 어떤 계기로 이를 돌파해나갔는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은 없다. 다만, 세월호와 촛불, 표절 논란과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미투’까지 삶의 위기와 문학의 위기를 엉성한 바느질 실력으로 덧대나가며 자기반성(‘타인’) → 자기인식(‘여성’) → 판단(‘비판적인’) → 제약(‘안 되는’) → 의무(‘써야만’)의 과정을 거친 것 같다. 내가 가진 목소리가 어떤 목소리로부터 이어져 오고 있었는지, 어떤 것은 잘 들리고 어떤 것은 들리지 않았는지, 내가 애써 듣지 않았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의심의 꼬리를 물고 가다 보면 내가 내고 싶은 목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을까 하면서. 내 목소리가 하나 이상일 수 있다는 것을. 마땅하다는 것을. 


  최근 생활의 걱정과 전쟁에 대한 염려를 담은 시를 썼다. 차를 끌고 다니면서 휘발유 가격이 이천 원에 육박하는 것은 처음이었고, 운전을 많이 하지 않지만 부담되는 가격인 것은 분명했으니까. 난데없이 위태로워진 이 생활의 감각을 써야만 할 것 같았다. 손가락질하며 탓하고 싶은 이들은 많지만, 그리 간단하게 끝낼 일이 아니었다. 몇 문장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이를테면 너무 정치적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메시지가 앞서 이미지나 표현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현실의 ‘나’를 괜히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화자와 내가 가까운 것은 아닐까 하는 계산으로 시가 진전되지 않는 것이었다. 일주일 정도 변비에 걸린 사람처럼 끙끙 앓으며 해법을 찾으려고 했는데, 거울을 보며 양치를 하다가 깨달음의 순간이 찾아왔다. 이 시가 촉발된 순간은 ‘나’의 생활에 있지만, 이 시는 ‘나’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련의 사태로 시작된 누군가의 이야기, 그러니까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누군가의 생활, 일상, 삶, 인생에 근거한다는 것을 말이다.


  생활, 일상, 삶, 인생이라는 단어는 한 사람의 생애에서 구분되지 않는 시간의 연속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에서 어떤 시간은 생활로 호명하고 싶기도 하고, 어떤 장면은 일상의 구석으로 두고 싶고, 어떤 삶은 앞으로 더 사는 것으로, 어떤 인생은 끊임없이 돌아보는 것으로 그려진다. 각각의 단어들을 대치해도 말은 된다. 단어의 대소경중을 구분 짓자는 것은 아니고 ‘나’의 ‘지금’이 무엇과 어울릴지, ‘우리’의 ‘지금’은 어떤 시간인지 시에서만큼은 신중하게 그 층위를 가늠해 보자는 것, 이런 단어를 다 감싸 안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거. 현실이 문학을 두드리고 문학이 현실을 두드리다 보면 서로를 통과하고 넘나드는 구멍이 계속 커지다 못해 구멍이 아니게 되는 때가 오지 않을까. 구멍이 아니라면 그 자리를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한 사람의 반짝이는 눈동자, 열린 문이나 밤낮 없는 광장, 무엇이든 세워볼 수 있는 기분 등…… 문학과 현실이, 현실과 문학이 교집합 삼은 미래가 우리 모두에게 너그러우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는데, 아니 오히려 지난 30여 년간의 여성운동이 수포로 돌아갈 만큼 여성의 생존과 실존은 다양한 방식의 위협에 노출되게 되었는데, 그러한 여성의 삶을 재현하고 고발하는 문학만은 언제나 절대적으로 진보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들 역시 미학적으로 태만한 비평가의 그것으로 비춰질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문학의 위축을 염려하는 일보다 나의 신념과 맞지 않는 현실에 분노하는 일이, 즉 여성의 부당한 삶의 조건을 고발하고 공유하는 일이 더 시급한 것으로 여겨진다.”라는 조연정의 고심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아니, 지금 더 긴요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의 우리는 계속 살아남는다.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므로 10년이 지난 지금, 이 비평의 제목인 “문학의 미래보다 현실의 우리를”에서 ‘보다’를 동사로 삼아 그 방향을 조심스레 옮겨본다. 현실의 우리가 문학의 미래를 본다.



▶  조연정「문학의 미래보다 현실의 우리를」작품 읽기



《문장웹진》은 창간 20주년을 맞아, 2025년 한 해 동안 진행한 <문장웹진 Rewind>를 <문장웹진 다시 읽기>라는 이름으로 이어 갑니다.
<문장웹진 다시 읽기>는 과거 《문장웹진》에 수록된 작품을 현재의 시선으로 다시 읽고 재조명하는 연재 기획으로, 등단 10년 이내의 젊은 작가와 평론가들이 참여합니다.
2026년 7·8·9월호는 김진선 시인과 함께합니다.



1) 조연정, <문학의 미래보다 현실의 우리를>, ≪문장웹진≫ 2017년 8월호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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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다시 읽기] 그러니까 지금부터 ― 임솔아, (2018년 6월호 수록) 김진선 아파트 분리수거장 입구에 접이식 교자상이 버려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주인이 교자상 위에 몇 가지 반찬과 국을 내어 밥을 차려 먹었을 테지만, 이제는 엄중한 글씨체로 ‘무단 폐기물 신고 비용 관리실로 납부’라고 적힌 종이를 붙인 채 수거를 기다리면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느라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떤 이유로 버려진 것일지 궁금해하면서 지나쳤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 아파트 복도에서 음식 냄새가 난다. 최근에는 청국장 냄새가 연이어 났는데, 가끔 생선이나 삼겹살을 굽는 냄새도 난다. 배달 음식도 그에 못지않다. 엘리베이터에서는 특정 브랜드의 치킨 냄새가 유난히 풍기는가 하면, 특정 요일에는 피자 배달이 잦을 때가 있다. 삼백여 세대가 다 잘 먹고 잘 살려고 애쓰는 중이구나 생각하면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난다. 임솔아의 단편소설 에서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이 나온다. 지은과 수희는 어떻게 하면 비좁은 원룸 방을 알뜰하게 구획하여 지낼 수 있을지 궁리한다. 벽간 소음을 막기 위해 매트리스를 벽에 세워놓고, 침대 프레임마저 분해하려 든다. 수희는 지은과 함께 명동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편,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신경을 쏟는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생활의 모습이겠으나 지은의 생활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은에게는 이름이 많다. 지은은 신영, 미희, 시한, 영은, 규리, 주영의 이름으로 산 적이 있다. 지하철 공공화장실 휴지걸이에서 주신영이라는 이름을 주운 뒤로 “다시 해보자. 주신영으로”라고 말하면서, 주신영으로 지냈다. 어느 날은 주영이 되어서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지은이 이름을 바꾸어 살 때마다 수희 역시 이름이 바뀌었고, 두 사람은 이름에 어울릴 만한, 그 시기에 그들이 꿈꾸는 세계의 서사를 지어냈다. 누군가는 진지하게 이거 명의도용 범죄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보자. 정말 한 번쯤은 다시 살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지. 나는 지은과 수희처럼 이름을 바꿔가면서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은 없지만, 새 삶이 필요해서 전학을 결심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안 사정으로 인해 태어나 줄곧 살던 곳을 떠나 할머니가 계신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전학을 간 셈이라 사투리가 제일 큰 난관이었다. 내가 ‘살구’라고 불러왔던 놀이는 ‘공기’라고 부르는 것이었고(이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살구라는 어여쁜 단어가 있는데!), ‘정구지’는 ‘부추’이거나 ‘꼽표’는 ‘곱하기’였던 것처럼 대화를 나누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단어들이 많았다. 억양 역시 어색하고 낯설었다. 경상도 억양은 강하고 말끝이 높은 편이라면, 전라도 억양은 폭이 크고

  • 김진선
  •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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