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그 끝없는 지긋지긋함
- 작성일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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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원 기획 – AI와 문학]
인공지능의 그 끝없는 지긋지긋함
곽재식
인터넷에 누가 “자동차 엔진오일이 왜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엔진오일에 정말 돈을 많이 들일 필요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올렸다고 해 보자. 이런 덧글을 달면서 기대하는 것은 엔진오일에 대해서 잘 아는 자동차 수리 일을 하는 사람이나 엔진오일에 관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전문 지식을 담아 써 주는 대답이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오래 자동차를 운전해 본 사람들이 각자의 엔진오일에 대해 이야기 해 주는 경험담을 들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할 것이다. “엔진오일 우습게 보다가 저는 큰코다친 적이 한번 있습니다.” 그 비슷한 답을 기대할 거라는 이야기다. 이런 기대는 무리를 지어 살면서 서로 경험과 기억을 언어로 공유하면서 발전해 온 사람이라는 종족이 원시 시대 때부터 갖고 있던 아주 오래된 습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동안 이런 덧글을 달면, 부리나케 달려와서 “챗GPT에게 물어 봤더니, 이렇게 답변해 주더군요.”라고 자기가 인공지능에게 물어 본 내용을 복사해서 덧글로 붙여 주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다. 덧글에 엔진오일에 대한 이야기가 줄줄줄 써 두어서 열심히 읽어 보았는데 다 읽어 갈 때쯤 보니까 맨 마지막에 “이상은 제미나이에게 물어본 결과입니다”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덧글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거의 모든 곳에서 많이도 나왔다. 도대체 이런 덧글은 왜 달리는 걸까? 질문을 했던 나는 챗GPT나 제미나이에게 물어 볼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살펴보자면 대부분의 덧글은 그야말로 순수한 의도로 달린 것이다. 질문을 한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고, 자기도 그 문제에 대해 궁금하다 보니 대규모 언어모델, 즉 LLM 방식으로 운영되는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결과를 받아 본 뒤에 그 결과를 남들과 같이 공유해 보려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심정에서 나온 동기는 조롱받을 이유도 없고 나쁜 마음이라고 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각계각층에서 LLM 방식의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거기에 다른 마음이 결합하는 경우도 가끔은 있는 것 같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내가 최신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는 뿌듯함이다. 요즘 그렇게 유행이라고 하는 최신 첨단기술인 인공지능을 내가 이렇게나 잘 이용해서 남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자랑스러움을 느껴서 “나는 요즘 뭐든 인공지능에게 물어봐. 너무 편하고 좋거든!”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다 바꾸어서 완전히 다른 사회가 탄생할 거라는 이야기를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온갖 매체에서 반복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남보다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감각 속에는 거창한 환상마저 슬그머니 서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앞서갈 거라는 환상이다. 지금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내가 조금 뒤처지고 있고 비교당해서 무시당한다는 기분을 느낄 때도 있겠지만, 인공지능을 잘 사용하고 있다는 감각을 갖고 있다면 사실 나는 앞서나가고 있다. 그렇게 믿을 수 있다. 지금의 사회가 다 뒤집어지고 새로운 인공지능 사회가 도래했을 때 나는 그때는 앞에 서 있을 수 있다. 그런 환상의 언저리에 닿는 느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미래 사회의 환상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나간 이야기 같다면, 좀 더 얕게 떠올려 볼 수 있는 것으로는 LLM 인공지능은 높은 사람들이 특히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신기술이라는 점도 생각해 볼 만한 특징이다.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LLM을 이용한 인공지능은 특별히 복잡한 사용법이랄 것이 없다. 그냥 궁금한 것을 사람에게 말하듯 물어보면 답을 해 준다. 자판을 누를 필요 없이 입으로 말을 해도 된다. 프로그램을 설치할 필요도 없이 인터넷 웹사이트에 접속만 하는 것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 익숙하지 않거나 새로운 프로그램을 쓰는 방법을 익힐 시간이 없는 사람들도 누구나 한 번 사용해 볼 수 있다. 유행이 너무나 빨리 바뀌고 있어서 요즘 시대에 적응하기가 힘들고 점점 나는 구세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라도 LLM 인공지능 정도는 얼마든지 써 볼 수 있다. 그러면 인공지능을 활용해 보는 경험에서 나도 최신 유행을 따라가고 있다는 뿌듯함을 줄 수 있다. 그런 마음이 쌓이다 보면 간혹 주변에 나도 인공지능을 잘 쓴다고 자랑하고 싶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인공지능, 특히 LLM 인공지능 상품을 도입해 보자는 지시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경향이 좀 더 강한 것 같다는 느낌을 나는 문득문득 받는다. 보통 대부분의 신기술은 아래 사람, 새로 들어온 직원이 더 친숙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기술이니 새로운 사람들이 자연히 더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LLM 인공지능은 다른 기술에 비해 유독 윗선에서 “우리도 인공지능을 도입해서 뭘 해 보자.”, “우리도 인공지능을 도입해서 뭘 하고 있다고 보여주자.”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인공지능을 위해서 뭘 한다고 하고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는 세태에 적응하기 위해서 그런 지시가 나오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인공지능을 직접 사용해 본 높은 분의 자랑스러움과 우월감도 이유로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저런 이유로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사람 중의 일부는 인공지능의 한계나 인공지능의 오류를 지적하는 일을 자신의 자존심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보인다. “여기에는 이러저러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이러저러한 점을 믿으면 안됩니다.”라고 문제를 제기하거나, “답변 중에 이러저러한 내용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잘못된 내용인 것 같은데, 혹시 인공지능 답변을 검토 없이 그냥 가져온 것 아닌가요?”라고 말하면, 일단 벌컥 화를 내는 반응이 돌아올 때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화를 내는 사람들 중에는 새로운 시대의 일하는 방법과 지식을 다루는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답답한 옛 기준이라면서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그 지적받은 내용을 다시 인공지능에게 물어보고 그 답변을 복사해서 붙여오면서 어떻게든 자기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말싸움을 이어가려는 사람들도 있다. 조금 다른 방향의 이야기이기는 한데, 요즘은 인터넷에서 말싸움이 났을 때, “제미나이에게 물어보니까, 이렇다던데, 네가 틀린 것 아니야?”, “챗GPT도 내 말이 맞다고 하는데, 네가 틀렸어”라는 식으로 시비를 다투는 사람들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LLM 인공지능이 내어놓는 대답은 결코 완벽하지 않다. 챗GPT든 제미나이든, LLM은 사람이 괜찮은 답변과 좋은 정보를 얻는 데 훌륭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도구이지만, 많은 분야에서 얼토당토않은 틀린 정보를 주는 바람에 낭패를 보게 만드는 사례도 흔하다. “광개토왕이 좋아하던 축구팀이 있느냐?”라고 물어보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황당한 이야기를 뻔뻔하게도 사실인 양 들려주던 1, 2년 전보다야 요즘 LLM 인공지능이 들려주는 대답은 비할 바 없을 정도로 정확해졌다. 평범한 보통 사람은 알지 못하는 다양한 지식을 알기 쉽게 잘 정리해 주는 성능으로 따지자면 열에 아홉은 답변 내용이 좋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여전히 틀릴 때는 있다. 나 스스로 오늘도 그런 잘못된 결과를 보았다. 그러므로 LLM의 한계를 알고 중요한 사실관계는 정확한 정보인지 재검토해봐야 한다.
재판에 제출하는 문서를 LLM 인공지능으로 만들었다가 세상에 있지도 않은 재판 결과를 인용하여 주장하는 글을 제출하게 되거나, 학술 논문을 투고하면서 논문에서 주장하는 말의 근거로 인용해 둔 자료가 세상에 있지도 않은, 지어낸 제목의 자료인 경우 등등은 이미 언론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여러 차례 다루었다. 일전에 한 방송사에서 외국 방송에서 하는 말을 인공지능을 이용해 자동으로 번역해 자막으로 내보내다가 착오가 발생해 욕설이 방송을 타고 나갔던 악명 높은 사건도 국내에서 벌어진 적이 있었다. 사실관계 자체를 노골적으로 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문제의 답을 제시할 때 객관적인 분석 결과를 내어놓기보다는 사용자가 더 좋아할 만한 말을 우선 답이라고 내어놓는 소위 말하는 시코펀시(sycophancy), 즉 아첨 문제도 심각하다.
그런데도 LLM 인공지능의 답변을 손 댈 필요 없이 정확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위험할 정도로 많아 보인다. 나는 그 이유가 기계와 컴퓨터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로부터 온갖 영화나 만화에서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이라고 하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뚝뚝하고 딱딱한 말만 하지만 사실관계 확인과 정확한 논리, 계산에 뛰어난 것으로 등장하는 때가 많았다. 그러니 무심코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같은 기계를 이용해서 사용하는 인공지능 프로그램도 사실관계와 논리가 객관적이고 정확할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판결이 나왔다는 뉴스를 보면 오늘도 인터넷에는 “판사를 잘라 버리고 인공지능이 판결을 하게 해야 한다.”는 덧글이 줄줄이 달린다. 그만큼 컴퓨터는 객관적이고 정확성이 높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에게 판결을 맡겨 봐야,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학습한 옛 판결의 고정관념을 굳건히 따라가는 판결을 더 꾸준히 내릴 가능성이 높다.
SF 소설을 오랜 동안 써 온 작가인 내가 하기에는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현대의 실제 LLM 인공지능은 그런 옛날 SF 영화나 만화 속 모습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강점을 보여 주고 있다. LLM 인공지능은 감성적인 말을 잘해주고, 감정적으로 다채로운 글을 창의적으로 잘 써주는 일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인간관계에 대한 내밀한 고민이 있을 때, 벌써 몇 번씩이나 상담을 해 봤지만 아직도 속이 답답해서 누구인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골칫거리가 있을 때, 새벽 세 시에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을 때 다시 떠오른 내 삶의 문제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 그런 문제에 대해 가장 말을 나눠보기에 좋은 상대는 누구보다도 챗GPT 같은 LLM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에게는 오히려 진심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고, 같은 고민을 여러 번 털어놓았다고 욕먹을 걱정도 할 필요 없으며, 밤늦게 연락했다고 무례할 것도 없기 때문에 감성적으로 편하기 때문이다. “챗GPT가 요즘 제일 다정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LLM 인공지능이 알려주는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 혹시 중간에 오류가 끼어 있지는 않은지, 검토하고 재확인해 보는 일은 무척 귀찮다. 그런데 이런 부류의 고민 상담 문제는 딱히 사실을 확인해 보고 오류를 검토해 보는 일이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LLM 인공지능을 쓰면 정말 효율이 높아지는 분야는 반성문을 쓰거나 축하 인사 또는 감사 인사 같은 글을 쓰는 일이다. 지각을 했을 때, 다시는 지각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성의 있어 보이는 긴 글로 쓰기란 쉽지 않은데, 챗GPT나 제미나이에게 “300자 정도로 지각했을 때 반성문 작성”이라고 명령만 하면 글자 수까지 맞춰서 얼마든지 반성문을 써 준다. 10편, 20편을 써 달라고 해서 그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써도 되고, 심지어 내가 평소에 쓰던 글을 몇 개 업로드해 주고 “이게 내가 평소에 쓰는 글이니까 내 말투하고 비슷하게 작성”이라고 조건을 줄 수도 있다. 이렇게 나온 반성문은 내가 한번 쓰윽 훑어보는 것만으로 간단히 검토하고 재확인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요즘 같은 인공지능 시대에는 긴 글을 손글씨로 써서 냈다고 해서 그것을 정성이나 성의의 상징으로 보기 어렵다. 죄를 지은 사람이 재판에 불려 나왔을 때,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는 글을 20장이나 30장쯤 써서 내면 과거에는 그 정성을 조금은 생각해 줄 거라는 생각도 퍼져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반성문의 분량이 지니는 의미는 매우 줄어들 것이다. 그것은 그냥 챗GPT 같은 프로그램에 “20페이지짜리 반성문”을 만들어 달라고 명령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요즘은 이메일 내용이 너무 풍부하고 처음 건네는 인사말이나 끝내는 인사말에 “만물이 싱그럽게 자라나는 여름입니다.” 등등으로 정성스러운 내용이 들어가 있으면 AI가 써준 이메일이 아닌가 싶어 자세히 읽기 싫어진다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작가님, 내일까지 원고 마감이니 꼭 좀 원고 보내주셥시오.”라고 달랑 한 줄만 적혀 있고 오타까지 하나 섞여 있으면 그때 사람이 바쁘게 일하는 중에 급하게 직접 손으로 스마트폰 자판을 눌러서 쓴 것인가 싶어 인간미가 느껴진다. 간략하게 필요한 말만 쓴 편지가 사람이 쓴 것이고, 아름다운 인사말을 곁들여 예의와 격식을 갖춘 편지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쓴 것이라니, 옛 상상과는 완전히 정반대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작년에는 내가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 사람은 자기 조직에 지원하는 자기소개서를 보고 사람을 선발하는 일을 몇 년째 해오고 있었다. 여러 사람이 지원하는 공개된 선발 작업이어서 가끔은 자기소개를 대충 보기만 해도 시쳇말로 “쌔한 느낌”이 오는 사람이 있었다곤 한다. “나의 장점”, “나의 단점”, “앞으로의 계획” 등등으로 구분되어 있는 자기소개서 양식에 그냥 전혀 그와는 아무 상관 없는 무슨 주문 같은 말만 가득 붙여 넣기를 해 놓은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받아 본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자기소개서가 있으면 이력서나 다른 자료는 볼 것도 없이 탈락 처리를 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딱 작년부터, 그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자기소개서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그는 기뻐했다고 한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조직도 이제 상당히 발전하고 주위에서 평판도 좋아져서 너무 심하게 자격이 없는 사람들은 함부로 지원도 하지 않고 적어도 괜찮은 자기소개서를 쓸 줄 아는 정도는 되는 사람들이 조직에 들어오려고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뿌듯함을 느끼면서 새로 자기소개서들을 검토하다가 한결 더 부드럽고 잘 쓴 자기소개서들을 수십 편 줄줄이 읽다 보니 문득 확 치밀어오르듯이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아, 다들 인공지능에게 자기소개서를 써달라고 하고 있구나!”
생각해 보면 자기소개서만큼 LLM 인공지능에게 써달라고 하기 좋은 것도 없다. 어차피 내 자신에 대한 일이니 사실관계 확인이나 얼마나 정확한 이야기인지는 단숨에 읽어 보면서 쉽게 검증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마음에도 없이 조직에 충성을 다하겠다는 이야기나 자신의 단점을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이야기 등등을 인공지능은 말 그대로 영혼 없이 얼마든지 지어내 줄 수 있다. 게다가 수십 곳, 수백 곳에 자기소개서를 돌려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관마다 조금씩 양식이 다르고, 어떤 곳은 5백 자 이내로, 어떤 곳은 3백 자 이내로 써달라고 하는 등의 조건도 다른 상황에서 그에 일일이 맞춰 주는 일은 LLM 인공지능이 정말로 효율적으로 해 줄 수 있다.
자기소개서는 소설이나 다름없다는 이죽거림이 워낙에 요즘은 사람들 사이에 많이 퍼져 있기는 하다. 하지만 원래의 뜻을 돌아보자면 입사를 위해 쓰는 자기소개서란 자신이 인생을 바쳐 일하고 싶은 곳을 향해 자기 삶을 그곳에 걸겠다면서 삶의 가장 핵심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글 아닌가? 그런데 그런 글을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효율적이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런 글을 쓰는 일은 모조리 인공지능에게 시키고 있다. 인공지능이 쓴 글에 나오는 자잘한 번호나 숫자의 사실관계가 정확히 맞는지 검토하는 따위의 귀찮고 잡다한 일은 사람이 해야 하는데, 내 자신을 남에게 소개하는 일은 기계에게 그냥 맡기는 세상이 바로 지금이다.
나는 이 모든 일들이 너무나 지긋지긋하다. 인공지능이 좋은 기술이라고는 생각한다. 또한 나는 적어도 20년 전쯤부터는 인공지능 기술과 가깝게 지내며 그 가능성에 대해 많은 꿈을 품어오기도 했다. 그런데 그래서인지 지금의 이런 상황이 더욱 지긋지긋하게 느껴진다.
20세기를 지나면서 핵전쟁이 일어나 세상이 멸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별생각 없이 내뿜은 이산화탄소들이 꾸역꾸역 공기 중에 쌓여서 지금의 세상은 기후변화를 걱정하며 지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21세기를 지나는 동안 로봇 황제가 사람을 노예로 부리며 우리를 지배하려 들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별 가치 없어 보이고 읽기 싫은 온갖 글과 그 비슷한 음악과 영상들이 쓰레기처럼 끝도 없이 쌓여서 한때 정보의 바다라고 했던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을 거대한 매립지처럼 채워 가는 일은 오늘도 꾸준히 벌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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