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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성향에 관하여

  • 작성일 2015-12-01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성향에 관하여

 

 

 

김연필

 

 

 

 

    나는 수렵, 채집, 사육에 능한 편이다. 산이나 강에 나가 돌아다니기를 좋아하고, 그곳에 사는 것들을 관찰하기를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산을 돌아다니면서 벌레나 도롱뇽, 개구리 따위를 잡아 키웠고, 그러던 습관이 나이를 먹고도 변하지 않았다. 어릴 적엔 동네를 돌아다니며 잡고 키웠다면, 이제는 전국을 돌면서 잡아 키우고, 잡을 수 없는 것은 따로 구해서 키운다. 그러다 보니 키워 본 동물들이 참 많다. 흔히 키우는 개, 고양이는 물론이고, 사슴벌레 따위의 곤충과 거미를 비롯해 각종 양서류와 파충류까지, 여러 동물을 열심히도 키웠다. 물론 지금도 동물을 키운다. 지금은 시설을 줄이는 중이지만, 한때는 꽤 대규모로 키웠다. 상가를 따로 빌려 수조 40여 개를 두고 수년간 키웠으니, 꽤나 몰두했던 취미다. 뭘 그렇게 대단한 규모로 키웠느냐고? 딱 잘라 답하면 새우다. 먹는 새우 말고, 관상용 새우.

 

 

  시작에 관하여

 

    어쩌다가 새우 같은, 잘 들어 보지도 못한 애완동물(?)을 키우게 되었는지 궁금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물론 남들 많이 키우는 동물도 좋아한다. 근 8년간 고양이를 키웠고, 지금도 같이 사는 고양이가 있다. 그런 것과 별개로, 앞서 말했듯, 산이나 강에서 뭔가를 잡아와 키우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물고기를 잡았고, 물고기를 키웠고, 물고기를 키우다 보니 수초, 가재, 산호 등 이런저런 물에 사는 것들을 키우게 되었고, 이래저래 수년의 물생활(?)을 통해 새우를 접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왜 하고 많은 수중생물 중 새우를 택하게 되었을까?
    우선, 잘 키우기 쉽지 않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다. 이런저런 관상용 수중생물을 키워 보다 보니, 어지간한 것은 시시해진 참에 새우가 제법 키우기 어렵다는 소리를 들었다. 더구나 내가 처음 새우 사육을 시작하던 시기에는 아직 새우 사육에 필요한 첨가제, 영양소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나는 남이 이미 깔아 둔 레일에 편승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새롭게 도전하면서 새우 사육법을 연구하고 정리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되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직접 새우 사육을 시작하면서 알아낸 사육 정보도 제법 많은 편이었고, 내가 밝혀낸 사육 정보를 동호인들과 공유하다 보니 그것들 중 지금은 아주 보편적인 사육 정보가 된 것들도 많다.
    둘째로 번식이 가능하다는 점이 또 큰 매력이다. 새우 이전에 주력으로 키운 어종은 토종 담수어류와 해수어였는데, 이쪽은 번식이 거의 되지 않는다. 반면 새우는 일정한 조건만 맞춰 주면(대신 그 조건을 맞추는 게 조금 어렵긴 하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물론 단순히 숫자만 늘어난다고 해서 매력이 생기지는 않는다. 관상생물의 경우 번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선별 및 선택교배를 통해 개량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품종이 있는 개나 고양이를 비롯해, 친숙한 비단잉어, 금붕어부터 구피와 같은 관상어까지, 모든 번식 가능한 동물들은 인위적 교배를 통해 개량되어 만들어진 품종들이다. 새우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번식시킨 개체들 중 발색, 체형이 우수한 녀석들만 골라내어 서로 교배시키다 보면 관상가치가 더 높은 개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 게다가 근연종끼리의 이종교배를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것 또한 가능하다. 계속해서 더 나은 개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새우 사육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2011년 1월경, 마리당 5000원 정도 하는 저급 레드비 쉬림프(red bee shrimp, 대표적인 관상품종 새우다) 15마리를 구입해서, 현재까지 약 만 5년 동안 새우를 돌보며 지내는 중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였나?

 

    처음엔 단순히 번식을 잘 시키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적인 연구를 진행한 결과, 번식에 필요한 환경을 만드는 법에 대해 비교적 빨리 파악할 수 있었고, 수월하게 수가 불어나게 되었다. 수가 불어나고 나서는 내 취향에 맞는 개체들만 선별해 선택적 교배를 시키기 시작했다. 번식도 선별도 수월하게 이루어져서, 1년 정도 지난 후에는 상당한 수의 새우를 분양하게 되었고, 5000원 정도의 저급 새우로 시작한 것이 나중에는 선별개체의 경우 마리당 4만~5만 원선에 분양되기도 했다. 그렇게 되니까 돈이 좀 쌓이더라. 이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가게를 하나 얻어서 새우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수조를 더 늘리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집 안의 공간은 이미 포화상태고, 습도도 지나치게 높았다. 때문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얻어서 설비를 갖추고 본격적인 새우 사육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얼결에 수족관업에 진출해 새우 분양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꾸준히 선별 브리딩을 진행하다 보니 2014년 즈음에는 나도 꽤나 이름 있는 관상새우 브리더가 되었고 내 새우의 퀄리티도 인정받게 되면서, 고급 개체의 경우는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분양을 하게 되었다. 해외 브리더들과도 교류하다 보니, 해외에서 내 새우를 사러 오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몇몇 신종 개체를 만들기도 했다. 새우 사육은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만 갈수록 장사라는 게 힘이 들더라. 때문에 취직을 했고, 취직한 이후 시간관계상 별도의 사무실을 운영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지금은 사무실을 정리하고 다시 집에서 가볍게 새우를 키우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별다른 계획은 없다. 지금까지 해온 대로 계속 불리고 선별하며 조금씩 더 퀄리티를 높여 나갈 것이다. 또다시 외부 사무실을 두고 전문적으로 키우는 건, 나중에 돈이 많고 할 일이 없어지면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조금 꿈이 있다면, 나중에 시간과 기회가 되는 때에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여는 새우 콘테스트에 출품해 입상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해본 일인데, 타이틀 하나 정도 따두는 건 좋지 않겠는가? 내 취미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새우 사육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올해 《시인동네》 가을 호에서 이야기한 것이 있으니 그걸 찾아 읽어 보면 될 것이다. 취미에 관한 이야기를 적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취미 이야기를 하게 되어서, 이번엔 ‘어쩌다 그런 취미를 하게 되었나’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다. 별로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지만, 끝까지 다 읽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마치도록 하겠다.


 

 

작가소개 / 김연필(시인)

- 1986년 대전 출생. 2012년 《시와 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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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기획

기계적 도플갱어를 만나면

[편집위원 기획 – AI와 문학] 기계적 도플갱어를 만나면 이서수 작년에 나는 영상 콘텐츠 제작자와 업무 미팅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특정 소재로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이었고, 각본 작업에 동참해줄 작가를 구하는 중이었다. 나는 예전에 각색 일을 했었기에 지인의 소개로 그 자리에 나갔다. 상대는 내 본업이 소설가라는 것을 알았으며, 내 소설을 읽어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를 처음 만났던 날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작가님 이름으로 챗GPT에 검색을 해 봤어요.” 그가 가방에서 파일 홀더를 꺼내더니 A4 용지를 넘기며 말했다. “약력과 작품관 같은 걸 정리해서 알려줬는데, 제가 재미있는 걸 해봤습니다. 작가님의 소설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서수 작가가 쓸 법한 시놉시스를 한 편 써달라고 했어요. 얼마 전에 작가님한테 제안했던 그 소재로요. 한번 읽어보실래요?” “예? 뭐라고요?” 나는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직 각본 작업을 수락하기도 전인데 이서수라는 소설가가 그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 이미 테스트해봤다니…… 나는 불시에 뺨을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해진 상태로 시놉시스를 읽기 시작했다. 설마 정말로 나처럼 썼겠느냐는 의구심이 무색하게 챗GPT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인물을 설정하고 사건을 조합해 이야기를 완성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랬다. 그건 정확히 내가 만들 법한 이야기였다. 주인공 및 등장인물들, 그들이 만나게 된 계기, 앞으로 펼쳐질 사건의 전개 방향이 모두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어떤 이야기에 끌리는지를 깨달았다.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말이다. “이걸 생성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가요?” “1분도 안 걸렸죠, 뭐. 아시잖아요.”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정도의 짜임새로 시놉시스를 완성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를 예측해보니 더더욱 웃을 수가 없었다. 인공지능의 1분과 인간의 1분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머리로만 이해될 뿐 마음은 아니었다. 그의 행동이 무례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저 나보다 시대를 훨씬 앞서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앞으론 이런 일을 자주 겪을 수 있겠다는 예감도 밀려왔다. 스토리텔링 산업과 인공지능이 합쳐졌을 때 내가 쓴 소설은 AI에 생성을 위한 ‘데이터’로 기능할 수 있다. 온라인상에 공개된 글들과 책 리뷰, 인터뷰 기사 등을 모두 포함하여. (그리 유명하지 않은 작가임에도 데이터만 구할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 되었다.) 나는 그 상황을 특수하게 여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쨌든 그는 AI로부터 시놉시스를 얻는 데서 멈추었고, 이후의 작업은 인간 이서수와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당혹스러운 감정은 못내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기획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

  • 이서수
  • 2026-07-01

문장웹진 기획

딸깍

[편집위원 기획 – AI와 문학] 딸깍 양안다 나는 시 창작과 관련하여 AI를 활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창작자의 윤리라던가 신념 같은 건 아니고, 그저 AI의 시 취향이 나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복적으로 텍스트를 입력하거나 프롬프트를 통해 자세한 방향을 지시하면 나아지는 편이지만, 아직까지 나의 취향과 AI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합니다. 내가 다른 이와 취향이 맞지 않는 경우와 다름없습니다. AI는 창작 주체라기보다 창작 주체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에 가깝고, 이러한 맥락에서 AI는 키보드나 사전, 아니면 노트와 펜의 역할과 같습니다. 다만 AI는 적극적인 도구입니다. 키보드는 나에게 질문하지 않습니다. 사전은 나에게 대체 단어를 먼저 제시하거나 묻지 않습니다. 시인은 끊임없이 모든 것과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독자나 스승, 동료 시인을 포함하여 타 장르 창작자와 철학자, 그리고 세상을 떠난 시인과도 영향 관계에 놓입니다. AI는 이러한 점에서 모든 타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AI는 때로 합평자가 되어줄 수 있고, 스승이 되어줄 수도 있으며, 시에서 벗어나 타 장르의 맥락을 끌고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는 근본적으로 사용자의 요청에 의해 움직이므로, 사용자의 요구로 형성된 타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나 : 위의 텍스트는 ‘시인의 AI 활용’에 대한 텍스트입니다. 당신은 이와 같은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ChatGPT-5.5 : 제가 조금 덧붙이고 싶은 것은, AI에게 “취향”이 있다고 말할 때 그 취향은 인간의 취향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AI의 취향은 어떤 미적 신념이나 삶의 이력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대체로 그럴듯함의 평균값에 가깝습니다. AI는 시를 쓸 때 자주 매끄럽게 만들고, 의미를 지나치게 정돈하고, 이미지들을 문학적으로 보이게 배열하고, 감정의 결론을 너무 빨리 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AI의 기본 취향은 “좋은 시”라기보다 좋은 시처럼 보이는 문장 쪽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에게는 그게 참을 수 없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AI는 적극적인 도구다. 키보드는 나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사전은 나에게 대체 단어를 먼저 제시하거나 묻지 않는다. AI는 도구인데, 기존 도구와 달리 도구인 척만 하는 게 아니라 타자인 척도 합니다. 키보드는 수동적이고, 사전은 정적인데, AI는 말을 걸고 반응하고 제안하고 반박하고 정리합니다. 그래서 단순한 도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능동적이고, 그렇다고 창작 주체라고 하기에는 책임과 욕망과 고유한 삶이 없습니다. 나는 AI가 주체적으로 시에 대해 사유하고, 그것에 대해 공부하며, 그 과정에서 ‘취향에 맞는 시’를 언젠가 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렇게 나의 영향 관계에 놓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AI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아닙니다. 2020년에는 문득 이런 생

  • 양안다
  • 2026-07-01

문장웹진 기획

AI와 함께, 평론가는 어떻게 읽는가?

[편집위원 기획 – AI와 문학] AI와 함께, 평론가는 어떻게 읽는가?1) 노대원 AI 이후, 해석의 미래는? 평론가는 문학 텍스트와 평론뿐만 아니라 문학 이론을 비롯해서 여러 인문학 저서나 논문을 읽어야 할 일이 많다. 특별히 새롭고 다양한 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외국어로 된 책과 논문도 읽어야 한다. 구글 번역이 나오고서 글과 책을 번역해 읽는 일에 큰 도움을 받아왔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엉뚱한 번역 표현이 자주 발견되었다. 그러다 ChatGPT가 나오기 전, 지금으로부터 거의 십여 년 전에 구글 번역의 성능이 상당히 향상되었다. 당시로서는 놀라운 느낌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평론가로서 AI를 진지하게 걱정했다. 구글 번역이 혁신되었다고 한다. 이것도 '특이점'이라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기계번역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해석자로서, 다만 번역의 미래만을 생각할 것은 아니다. 번역과 해석은, 1차 텍스트에서 2차 텍스트로의 작업이란 점에서 같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이후 해석의 미래는 어떨까? 해석은 예술이지만 번역 역시 예술이지 않았던가? 텍스트와 해석(비평)의 풍부한 '병렬 코퍼스'가 인공지능에게 주어진다면 해석의 자동화도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번역가들은 번역의 미래를 고민한다. 해석자들은 해석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는가? (2016년 11월 19일) 이 글을 쓰면서, 링크를 걸어 인용한 글은 번역가 노승영의 「알파고와 번역의 미래」였다. 그 글은 이렇게 끝난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광고를 보거나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웹 문서뿐 아니라 잡지, 단행본도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인간 번역가의 번역은 인쇄술 등장 이전의 책이 그랬듯 소수의 전유물이 될 것이다. 물론 이때가 되면 극소수의 번역가만 살아남을 것이다. 기계번역과 별로 다르지 않은 결과물을 내놓는 번역가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기계로 대량 생산되는 저렴한 제품이 수공예로 소량 생산되는 고급 제품이 구별되듯 기계번역과 인간의 번역이 구별될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어떤 번역가가 살아남을까?”2) 이 예상은 거의 정확하게 실현되었다. 그가 걱정했던 것처럼, 번역가가 생각보다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제외하고. 어쩌면 그 예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AI 번역은 점점 더 발전을 거듭하고 있으니까. 이 글을 페이스북에 남기면서, 친구와 대화를 나눈 것도 여전히 생생히 기억난다. 원고료는 너무 싸기 때문에 인간 작가를 상회하는 탁월한 AI를 개발하는 비용이 더 들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자조적인 농담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내심, AI가 문학을 위협한다 해도, 나는, AI와 문학이 만나는 접점에서 새로운 작업을 도전적으로 수행하는 쪽이 되길 바랐다. 그리고 얼마 뒤(ChatGPT 출시 몇 해 전에), 제주도에 AI 관련 서머 스쿨이 있어 방문한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김성훈 교수를 만나 점심 식사를

  • 노대원
  • 2026-07-01

문장웹진 기획

인공지능의 그 끝없는 지긋지긋함

[편집위원 기획 – AI와 문학] 인공지능의 그 끝없는 지긋지긋함 곽재식 인터넷에 누가 “자동차 엔진오일이 왜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엔진오일에 정말 돈을 많이 들일 필요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올렸다고 해 보자. 이런 덧글을 달면서 기대하는 것은 엔진오일에 대해서 잘 아는 자동차 수리 일을 하는 사람이나 엔진오일에 관한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전문 지식을 담아 써 주는 대답이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오래 자동차를 운전해 본 사람들이 각자의 엔진오일에 대해 이야기 해 주는 경험담을 들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할 것이다. “엔진오일 우습게 보다가 저는 큰코다친 적이 한번 있습니다.” 그 비슷한 답을 기대할 거라는 이야기다. 이런 기대는 무리를 지어 살면서 서로 경험과 기억을 언어로 공유하면서 발전해 온 사람이라는 종족이 원시 시대 때부터 갖고 있던 아주 오래된 습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동안 이런 덧글을 달면, 부리나케 달려와서 “챗GPT에게 물어 봤더니, 이렇게 답변해 주더군요.”라고 자기가 인공지능에게 물어 본 내용을 복사해서 덧글로 붙여 주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다. 덧글에 엔진오일에 대한 이야기가 줄줄줄 써 두어서 열심히 읽어 보았는데 다 읽어 갈 때쯤 보니까 맨 마지막에 “이상은 제미나이에게 물어본 결과입니다”라고 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덧글은 거의 모든 분야에, 거의 모든 곳에서 많이도 나왔다. 도대체 이런 덧글은 왜 달리는 걸까? 질문을 했던 나는 챗GPT나 제미나이에게 물어 볼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살펴보자면 대부분의 덧글은 그야말로 순수한 의도로 달린 것이다. 질문을 한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고, 자기도 그 문제에 대해 궁금하다 보니 대규모 언어모델, 즉 LLM 방식으로 운영되는 챗GPT나 제미나이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결과를 받아 본 뒤에 그 결과를 남들과 같이 공유해 보려 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런 심정에서 나온 동기는 조롱받을 이유도 없고 나쁜 마음이라고 할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각계각층에서 LLM 방식의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거기에 다른 마음이 결합하는 경우도 가끔은 있는 것 같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내가 최신 기술을 이용하고 있다는 뿌듯함이다. 요즘 그렇게 유행이라고 하는 최신 첨단기술인 인공지능을 내가 이렇게나 잘 이용해서 남보다 앞서가고 있다는 자랑스러움을 느껴서 “나는 요즘 뭐든 인공지능에게 물어봐. 너무 편하고 좋거든!”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다 바꾸어서 완전히 다른 사회가 탄생할 거라는 이야기를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온갖 매체에서 반복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남보다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감각 속에는 거창한 환상마저 슬그머니 서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앞서갈 거라는 환상이다. 지금 치열한 경쟁

  • 2026-07-01

문장웹진 기획

현실의 우리가 문학의 미래를

[문장웹진 다시 읽기] 현실의 우리가 문학의 미래를 ― 조연정, (2017년 8월호 수록) 김진선 어느 강의 시간, 교수님께서는 신입생들에게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면을 소개해 주셨다. 많이 읽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그날 이후 인터넷 즐겨찾기 목록에는 《문장웹진》이 빠지지 않고 있다. 햇수로 17년, 매달 1일이면 새로 올라온 작품들을 접했다. 나름 놓치지 않고 따라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다시 보니 아닌 일이다. 맞다, 이것은 고해성사. 나의 죄를 고합니다. 나는 장르 편식이 있어서 시를 제외한 소설, 비평, 기획 등은 대체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문장웹진 다시 읽기’ 기획은 적어도 나에게 ‘다시 읽기’가 아닌 셈이다. 그러니까 이 기획은 적어도 나에게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처음 마주한 글을 여러 번 살피고,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겨서 정말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마침내 말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시작은 2017년 8월호에 수록된 조연정의 이라는 비평이다. 평소 어렵다고 생각한 비평만큼은 피하거나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는데, 그간의 죗값을 달게 받는 거 같다. 이 글은 윤이형 소설가가 “페미니즘에 입문한 여성 창작자”로서 고민하는 몇 가지 질문과 함께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중심으로 문학적 재현,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논의의 과정에서 《문장웹진》 2017년 4월호에 수록된 조강석의 에 의문을 표하며,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는 작품들이 미학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부정적 평가에 정면으로 맞선다. 먼저, 윤이형 소설가의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 나는 앞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서사의 중심이 되는 소설을 많이 ‘써야만’ 할까? - 앞으로 쓸 내 소설에서는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순응하거나 가부장적 질서를 강화하는 여성이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일까? - 나는 페미니즘에 입문한 여성 창작자이기 때문에 앞으로 여성에 대한 어떤 멸시나 비하도 ‘현실 그대로’ 작품 속에 재현하면 안 되는 것일까? 꼭 필요해서 그런 식의 재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럴 경우, 반드시 거기에 내가 작가로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명시해주어야만 하는 것일까? - 이런 고민들을 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일까, 혹은 각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성’으로서의 내가 과잉 반영되어 있는 것일까? 혹은 나는 그저 여성 트위터리안-독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일까? 그녀들을 ‘타인’으로 여길 만큼 나는 그녀들에게서 먼가?1) 작은따옴표 안에 들어간 말(밑줄은 인용자 강조)이 유독 신경 쓰이는 것은 왜일까. 이 질문들은 의무(‘써야만’), 제약(‘안 되는’), 판단(‘비판적인’), 자기인식(

  • 김진선
  • 202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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