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리뷰] 월간 〈읽는 극장〉 4회 - ‘춤추는 시, 시 하는 춤’

  • 작성일 2021-08-11

[리뷰]

 

 

월간 〈읽는 극장〉 4회 - ‘춤추는 시, 시 하는 춤’

 

 

 

 

아르코예술극장 개관 40주년 기념
월간 〈읽는 극장〉 4회 ‘춤추는 시, 시하는 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펼쳐지는‘무용’공연에 부치는 낭독회

 

 

 

    미술관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공간이었지요. 요즘 젊은 층에게 미술관은 사진 찍으며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의 공간입니다. 그와 달리 춤, 무용은 추는 것도 보고 감상하는 일도 여전히 어색하고 부담스럽고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관심이 없던 사람이 콘서트나 뮤지컬, 미술전시를 가는 것보다 무용 공연을 보러가는 게 더 뜬금없이 느껴지듯요. 특히 무용공연을 감상하는 일은 일부 전공자, 전문가들이 즐기는 문화예술의 영역처럼 여겨집니다. 많은 이들이 무용에 호감이 있어도 공연을 보러가는 것은 쑥스럽거나 난감해 합니다.

 

    7월 〈읽는 극장〉에서는 무용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즐기고 있는 두 시인과 함께 했습니다. 시집과 산문집을 집필하며 5년 이상 “취미발레인”으로 살고 있는 박연준 시인과, 시인이자 미술교사이며 동시에 “무용감상자”인 배수연 시인입니다. 양경언 문학평론가의 진행과 함께 춤과 시에 대한 두 작가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으며 ‘나와 우리는 무용과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를 질문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춤이든 무용 공연이든 다른 무엇이든, 무언가를 처음 접할 때 필요한 것은 아주 작고 사소한 관심이지 않나 합니다. 낯선 대상에 대해 사소하고 별 거 없는 궁금증이 생길 때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를 주저하지 않을 때, 그 낯선 대상은 나의 영역 안으로 쑥 들어옵니다

 

    배수연 시인은 무트댄스의 창시자이자 창작 한국무용 장르를 알려온 김영희 무용가의 공연을 보고 “온전히 그 공연에 훅 빨려들어가서 뿌리까지 젖는 경험”을 하며 무용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박연준 시인은 독일의 안무가 피나 바우쉬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피나〉를 보고 말없이도 감정과 마음이 온전히 전달되는 장르로서 무용을 알게 되며, 몸을 쓰는 일에 궁금증이 생겼고 어렴풋이 춤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박연준, 배수연 시인이 춤과 만난 경험은 굉장히 특별하고 대단한 계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춤을 즐기는 방법에 대한 두 시인의 답변은 그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왼쪽부터 배수연(시인), 박연준(시인), 양경언(진행자/문학평론가)

 

    “공연 전에 로비에 있으면 그 무대에 있는 무용수 분들이 아닌, 그 무용보러 친구, 선후배, 선생님, 제자들이 많이 오잖아요. 그런 무용수 분들을 많이 볼 수가 있어요. … 그렇게 로비에 있으면 무용수 분들이 정말.. 무심하게 걸친 옷이나 샌들에서도 발등의 그 느끼지는 그런 뭔가 (웃음) 그루브가 다릅니다. … 동경하는 마음이 들어서 그런지 … 로비에 있으면 그렇게 저에게 설레이고, 무용 끝나고 왁자하게 막 우르르 나왔을 때 그 느낌 있잖아요. 로비에서. 꽃다발도 들고, 그 열기가 저는 너무 좋아요. 저는 그래서 그 로비를 굉장히 기대하는..” (배수연)

 

    “공연 실황보다는 계속 무용수들이 연습하는 걸 더 많이 봐요, 연습실에서. … 저희는 글을 쓰는데 사실 시와 발레가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시는 언제나 무대 위에 올라선 언어라고 생각을 해요. … 그러니까 저는 인생이 수련이라고 생각을 하고, 제가 왜 발레를 계속 하냐 그런 것도 어려워서 계속 재미있는 거예요. … 뭔가 되게 발산하는 거 같아 보이지만 무용수들은 응집해서 갖고 있거든요. 뻗어내는데 안에 잠기지 않으면 코어가, 뻗을 수가 없는 거죠. 무너지겠죠 그쪽으로. … 사실 시도 그렇잖아요. 몇 글자 써놓지만 그냥 겉멋이 아니라 정말 뭔가 담고 있으려면, 에너지가 있으려면, 컨트롤을 많이 해야 하고..” (박연준)

 

    두 시인이 무용에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는 대단한 해석이 필요한 과정이 아니라, 온전히 두 작가의 관점과 맥락에 따라, 마음이 끌리는 대로 흘러가는 과정 그 자체였습니다. 무용 공연을 즐기는 이유는 작품의 한 가운데에도 공연장 바깥에도 무용수의 움직임 하나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이를테면 양경언 평론가는 영상으로 미리 감상한 ‘장은정 무용단’의 〈매스?게임!Vol.2〉에 대해 두 시인과 이야기 나누며, 작품을 보는 답이 꼭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무용 〈매스?게임!Vol.2〉 공연 영상 바로가기

 

    “각자 봤을 때의 감흥이나 무용수 한 사람을 굉장히 집중해서 볼 수도 있는 것이고. 아니면 전체적인 이 프레임 속에서 바라보게 되는 것도 있고 … 이 작품 같은 경우에는 음악이랄지 무대 위에서의 조명의 쓰임 이런 것도 저는 좀 인상적이었거든요. … 꼭 어려워서 겁먹기 보다는 그냥 한 번 쑥 들어가 볼 수 있는 그런 공연일 수도 있겠다..” (양경언)

 

    많은 이들이 다양한 국가를 여행하며, 음악과 함께 오른 흥에 따라 자연스럽게 춤추는 문화를 경험합니다. 우리나라는 소위 ‘흥의 민족’이라 하지만 남들 앞에서 춤을 추는 일은 오랫동안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성별과 나이, 민족과 상관없이 함께 섞여 춤을 추는 문화 속에서 부끄러움과 동시에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춤이 사실은 기분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근데 그거를 너무 어릴 때부터 눌렀던 거 같아요. 자기 마음을 표현하거나 솔직하게 말하거나 이런 걸 항상 삼가라고 배우잖아요. 근데 춤은 그걸 정말 그대로 표출해야 하는 거?” (박연준)

 

    “저도 처음 발레학원 갔을 때,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 사실 그게 처음에만 부끄럽지, 동작이 어려워서 아무도 옆에 사람을 볼 시간이 없거든요. 우리 수영장 들어가면 물속에서 옆 사람 신경 안 쓰잖아요. 그거랑 똑같은데 아무튼 장벽이 있는 거 같아요.” (박연준)

 

    사실 별 거 아니라는 박연준 시인의 말처럼 춤과 무용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화적 장벽이 낮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의 하나로써, 읽는 극장에 함께 하고 계신 많은 분들이 무용을 즐기는 각자의 방법과 포인트를 찾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렇게 무용도 무용공연도, 좀 더 광범위한 ‘춤’도 그렇게 조금 더 쉽게 우리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가져봅니다.

 

    대화는 춤의 장벽에 대한 이야기를 지나 장르로서의 춤과 무용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두 명의 시인과 함께 한 만큼, 시와 춤을 함께 연결 지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시를 쓰는 시인이자 무용을 감상하고 애정해온 배수연 시인은 무용과 시를 함께 다뤘던 공연 〈무용하는 시〉의 경험을 나눠주었습니다. 배수연 시인은 무용에 대한 애정을 바탕삼아 무용수와 작업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왔고 다원예술, 공동창작의 형식을 여러 번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무용수랑 작업을 하고 싶다 라는 형식이 먼저 선행을 하니까 작업물이 힘들게 나오고 또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배수연 시인의 시 「주머니 없는 외투」로 작업한 공연 〈무용하는 시〉는 김수진 무용가와 함께 한 공연으로, 이 공연을 통해 어떤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주머니 없는 외투」를 쓰면서 ‘아 이것은 무용이 될 수 있는 어떤 시야’라고 느꼈고.. 제가 하루는 여행지에서 건넛방에 나오는 어떤 멜로디, “띠 띠디띠 띠” 뭐 이런 거였어요. 티비 소리였는데 그걸 듣자마자 이 시의 움직임이 막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여행지에서 돌아와서 김수진 무용가한테 이 시를 보여주고 이걸로 움직임이 어떻게 만들어지면 어떨까, 그래서 좋다 재밌겠다 … 이것을 하면서 느낀 게, 아 어떤 아이디어는 그것 자체가 형식을 가지고 있구나” (배수연)

 

    “제가“띠 띠 디디” 이 음악에 꽂혀서 그걸 계속 녹음을 하고 어떤 몸짓을 만들어봤어요. 주머니가 나오니까 주머니가 없는데 주머니에 자꾸 쓰다듬는 동작이라든가, 짧은 스텝들 왔다 갔다 하는, 약간 조바심 나는 그런 동작들이 생각이 났고. … 제가 평소에 입는 트렌치코트는 주머니가 깊었어요. 거기에 많은 물건들을 넣었어요. 작은 물건, 클립부터 시작해서 약 봉투부터… 그거를 무용수가 하나씩 하나씩 주저앉아서 꺼내서 긴 줄을 만들고 나중에는 트렌치 코트도 벗고 의상을 다 벗고 제가 낭독을 시작하는 고런 형식으로 만들어졌거든요.” (배수연)

 

    시 낭독과 함께 배수연 시인의 경험을 전해들으며 “띠 띠디띠 띠”하는 소리가 “손들은 어디까지 구겨져야 하나”하고 묻는 시가 되고, 그 시가 다시 “꾸질꾸질하고 찌질찌질한” 움직임이 되는 그 과정을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작가도 무용가도 아닌 저에게 시도 춤도 어렵게 느껴졌는데, 이 상상에서만은 즐겁게 그 과정을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어 박연준 시인은 산문 「춤, 말보다 앞선 언어」의 한 구절을 낭독해주었습니다.

 

    “말보다 더 효율적이고 강한 도구는 몸이다. 몸은 말보다 적절한 언어를 더 잘 찾는다. 말은 수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지만 몸은 웬만해선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표현을 할 때 말은 실수하거나 많은 것을 빼먹고 전달하지만, 몸은 좋아하는 정도를 거의 근사치로 표현할 수 있다. 춤은 말보다 앞선 언어다.” (박연준, 「춤, 말보다 앞선 언어」, 『소란』 중)

 

왼쪽부터 배수연(시인), 박연준(시인), 양경언(진행자/문학평론가)

 

    무용과 관련한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에게도, 무용 공연이 영 낯설고 어색한 사람에게도 춤은 무엇인지 질문하는 글입니다. 춤이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무대 위에서의 춤 말고 내 몸에서 벌어지는 모든 움직임을 박연준 시인의 글처럼 여기고 느낄 수 있다면, 춤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시를 통해서 또는 무용 공연장 앞 로비나 무용수의 힘에 대해 궁금해 하며 또는 내 몸이 나를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작은 용기를 가지고 응시해보며.

 

    그렇게 우리는 춤, 무용, 무용 공연, 그리고 다시 우리의 몸과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는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6월의 읽는 극장과 함께 한 여러분들에게도 놀이터나 노래방, 미술관 만큼 무용 공연이 편해질 수 있길, 그 시작을 위한 한 걸음을 읽는 극장과 함께 내딛을 수 있길 바래봅니다.

 

 

 

 

월간 읽는 극장 7월편 보기

 




월간 읽는극장 7월편 “작정하고‘추락’”


 

    글쓴이 : 김현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코로나와 기후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같이 잘 살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대화와 토론, 수다와 위로가 오가는 우리의 시간과 장소들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함께 춤추기를 좋아합니다.

 

 

 

월간 읽는 극장 아카이브

 

▶ 6월 읽는 극장에서 이야기 나눈 공연

 
무용 〈매스?게임!Vol.2〉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7.03-04)

 

 

 

 

 

 

 

 

박연준, 산문집 『소란』 난다

박연준, 시집 『베누스 푸디카』 창비

배수연, 시집『조이와의 키스』민음사

▶ 6월 〈읽는 극장〉에서 낭독된 문학 작품

 

 

 

 

 

   《문장웹진 2021년 08월호》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기획

그러니까 지금부터

[문장웹진 다시 읽기] 그러니까 지금부터 ― 임솔아, (2018년 6월호 수록) 김진선 아파트 분리수거장 입구에 접이식 교자상이 버려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주인이 교자상 위에 몇 가지 반찬과 국을 내어 밥을 차려 먹었을 테지만, 이제는 엄중한 글씨체로 ‘무단 폐기물 신고 비용 관리실로 납부’라고 적힌 종이를 붙인 채 수거를 기다리면서.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느라 필요가 없어진 것일까. 멀쩡하게 생겼는데 어떤 이유로 버려진 것일지 궁금해하면서 지나쳤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 아파트 복도에서 음식 냄새가 난다. 최근에는 청국장 냄새가 연이어 났는데, 가끔 생선이나 삼겹살을 굽는 냄새도 난다. 배달 음식도 그에 못지않다. 엘리베이터에서는 특정 브랜드의 치킨 냄새가 유난히 풍기는가 하면, 특정 요일에는 피자 배달이 잦을 때가 있다. 삼백여 세대가 다 잘 먹고 잘 살려고 애쓰는 중이구나 생각하면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난다. 임솔아의 단편소설 에서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이 나온다. 지은과 수희는 어떻게 하면 비좁은 원룸 방을 알뜰하게 구획하여 지낼 수 있을지 궁리한다. 벽간 소음을 막기 위해 매트리스를 벽에 세워놓고, 침대 프레임마저 분해하려 든다. 수희는 지은과 함께 명동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편, 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신경을 쏟는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생활의 모습이겠으나 지은의 생활은 조금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은에게는 이름이 많다. 지은은 신영, 미희, 시한, 영은, 규리, 주영의 이름으로 산 적이 있다. 지하철 공공화장실 휴지걸이에서 주신영이라는 이름을 주운 뒤로 “다시 해보자. 주신영으로”라고 말하면서, 주신영으로 지냈다. 어느 날은 주영이 되어서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지은이 이름을 바꾸어 살 때마다 수희 역시 이름이 바뀌었고, 두 사람은 이름에 어울릴 만한, 그 시기에 그들이 꿈꾸는 세계의 서사를 지어냈다. 누군가는 진지하게 이거 명의도용 범죄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보자. 정말 한 번쯤은 다시 살고 싶었던 적이 없었는지. 나는 지은과 수희처럼 이름을 바꿔가면서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은 없지만, 새 삶이 필요해서 전학을 결심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안 사정으로 인해 태어나 줄곧 살던 곳을 떠나 할머니가 계신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전학을 간 셈이라 사투리가 제일 큰 난관이었다. 내가 ‘살구’라고 불러왔던 놀이는 ‘공기’라고 부르는 것이었고(이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살구라는 어여쁜 단어가 있는데!), ‘정구지’는 ‘부추’이거나 ‘꼽표’는 ‘곱하기’였던 것처럼 대화를 나누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단어들이 많았다. 억양 역시 어색하고 낯설었다. 경상도 억양은 강하고 말끝이 높은 편이라면, 전라도 억양은 폭이 크고

  • 김진선
  • 2026-08-01

문장웹진 기획

기계적 도플갱어를 만나면

[편집위원 기획 – AI와 문학] 기계적 도플갱어를 만나면 이서수 작년에 나는 영상 콘텐츠 제작자와 업무 미팅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특정 소재로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이었고, 각본 작업에 동참해줄 작가를 구하는 중이었다. 나는 예전에 각색 일을 했었기에 지인의 소개로 그 자리에 나갔다. 상대는 내 본업이 소설가라는 것을 알았으며, 내 소설을 읽어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를 처음 만났던 날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작가님 이름으로 챗GPT에 검색을 해 봤어요.” 그가 가방에서 파일 홀더를 꺼내더니 A4 용지를 넘기며 말했다. “약력과 작품관 같은 걸 정리해서 알려줬는데, 제가 재미있는 걸 해봤습니다. 작가님의 소설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서수 작가가 쓸 법한 시놉시스를 한 편 써달라고 했어요. 얼마 전에 작가님한테 제안했던 그 소재로요. 한번 읽어보실래요?” “예? 뭐라고요?” 나는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직 각본 작업을 수락하기도 전인데 이서수라는 소설가가 그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 이미 테스트해봤다니…… 나는 불시에 뺨을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해진 상태로 시놉시스를 읽기 시작했다. 설마 정말로 나처럼 썼겠느냐는 의구심이 무색하게 챗GPT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인물을 설정하고 사건을 조합해 이야기를 완성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랬다. 그건 정확히 내가 만들 법한 이야기였다. 주인공 및 등장인물들, 그들이 만나게 된 계기, 앞으로 펼쳐질 사건의 전개 방향이 모두 내가 선호하는 방식이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어떤 이야기에 끌리는지를 깨달았다.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말이다. “이걸 생성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던가요?” “1분도 안 걸렸죠, 뭐. 아시잖아요.”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정도의 짜임새로 시놉시스를 완성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를 예측해보니 더더욱 웃을 수가 없었다. 인공지능의 1분과 인간의 1분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머리로만 이해될 뿐 마음은 아니었다. 그의 행동이 무례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저 나보다 시대를 훨씬 앞서간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앞으론 이런 일을 자주 겪을 수 있겠다는 예감도 밀려왔다. 스토리텔링 산업과 인공지능이 합쳐졌을 때 내가 쓴 소설은 AI에 생성을 위한 ‘데이터’로 기능할 수 있다. 온라인상에 공개된 글들과 책 리뷰, 인터뷰 기사 등을 모두 포함하여. (그리 유명하지 않은 작가임에도 데이터만 구할 수 있다면 가능한 일이 되었다.) 나는 그 상황을 특수하게 여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쨌든 그는 AI로부터 시놉시스를 얻는 데서 멈추었고, 이후의 작업은 인간 이서수와 하겠다고 결심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당혹스러운 감정은 못내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기획 중인 프로젝트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

  • 이서수
  • 2026-07-01

문장웹진 기획

딸깍

[편집위원 기획 – AI와 문학] 딸깍 양안다 나는 시 창작과 관련하여 AI를 활용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창작자의 윤리라던가 신념 같은 건 아니고, 그저 AI의 시 취향이 나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반복적으로 텍스트를 입력하거나 프롬프트를 통해 자세한 방향을 지시하면 나아지는 편이지만, 아직까지 나의 취향과 AI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합니다. 내가 다른 이와 취향이 맞지 않는 경우와 다름없습니다. AI는 창작 주체라기보다 창작 주체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에 가깝고, 이러한 맥락에서 AI는 키보드나 사전, 아니면 노트와 펜의 역할과 같습니다. 다만 AI는 적극적인 도구입니다. 키보드는 나에게 질문하지 않습니다. 사전은 나에게 대체 단어를 먼저 제시하거나 묻지 않습니다. 시인은 끊임없이 모든 것과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독자나 스승, 동료 시인을 포함하여 타 장르 창작자와 철학자, 그리고 세상을 떠난 시인과도 영향 관계에 놓입니다. AI는 이러한 점에서 모든 타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AI는 때로 합평자가 되어줄 수 있고, 스승이 되어줄 수도 있으며, 시에서 벗어나 타 장르의 맥락을 끌고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AI는 근본적으로 사용자의 요청에 의해 움직이므로, 사용자의 요구로 형성된 타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나 : 위의 텍스트는 ‘시인의 AI 활용’에 대한 텍스트입니다. 당신은 이와 같은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ChatGPT-5.5 : 제가 조금 덧붙이고 싶은 것은, AI에게 “취향”이 있다고 말할 때 그 취향은 인간의 취향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AI의 취향은 어떤 미적 신념이나 삶의 이력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대체로 그럴듯함의 평균값에 가깝습니다. AI는 시를 쓸 때 자주 매끄럽게 만들고, 의미를 지나치게 정돈하고, 이미지들을 문학적으로 보이게 배열하고, 감정의 결론을 너무 빨리 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AI의 기본 취향은 “좋은 시”라기보다 좋은 시처럼 보이는 문장 쪽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에게는 그게 참을 수 없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이 특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AI는 적극적인 도구다. 키보드는 나에게 질문하지 않는다. 사전은 나에게 대체 단어를 먼저 제시하거나 묻지 않는다. AI는 도구인데, 기존 도구와 달리 도구인 척만 하는 게 아니라 타자인 척도 합니다. 키보드는 수동적이고, 사전은 정적인데, AI는 말을 걸고 반응하고 제안하고 반박하고 정리합니다. 그래서 단순한 도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능동적이고, 그렇다고 창작 주체라고 하기에는 책임과 욕망과 고유한 삶이 없습니다. 나는 AI가 주체적으로 시에 대해 사유하고, 그것에 대해 공부하며, 그 과정에서 ‘취향에 맞는 시’를 언젠가 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렇게 나의 영향 관계에 놓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내가 AI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아닙니다. 2020년에는 문득 이런 생

  • 양안다
  • 2026-07-01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댓글을 작성해 주세요.
  • 욕설, 비방, 혐오 표현 및 과도한 홍보성 내용은 제한될 수 있습니다.
  • 운영 정책에 위반되는 댓글은 사전 안내 없이 숨김 또는 삭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