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1회)
- 작성일 2026-08-31
- 댓글수 0
해로
양수빈
모든 게 끝났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1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남편은 통화 중이었다. 조용조용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가운을 여몄다. 더위를 못 견디는 남편과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여름마다 에어컨 온도 조절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에어컨 리모컨은 어디에 뒀는지 보이질 않았다. 나는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며 침대 주변을 맴도는 남편을 보았다. 그는 낯선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그 공간에서 가장 큰 사물 주위를 빙빙 도는 버릇이 있었다.
“자기는 꼭 개 같은 구석이 있어. 개들이 그러거든. 흔적을 남기고 싶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 꼬리를 응시하며 빙빙 돌아.”
언젠가 던진 말에 남편은 “아, 강아지만큼 사랑스럽다는 뜻?”이라고 말하곤 웃었다. 예전 애인들이었다면 그 말을 듣는 순간 벌컥 화를 냈을 것이다. 지금 나를 개 취급한 거야? 그들은 비유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남편은 다른 남자들과 달랐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거나, 오기나 허세를 부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걸 품어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그와 만나는 동안 나는 여러 번 그를 시험했다. 그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그의 임계점을 확인하고 싶었다. 일부러 약속 시간에 늦었고, 기분 좋게 데이트하고 돌아온 다음 날부터 사나흘씩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가 공들여 짠 데이트 코스를 이유 없이 퇴짜 놓기도 했고,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을 하나하나 지적하기도 했다. 나는 그가 곧 참았던 화를 터뜨리며 나를 떠나거나, 어쩌면 해칠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나는 때때로 누군가 나를 해칠 순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은 내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다. 그는 내 두 손을 조심스레 감싸 쥐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괜찮아. 이유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이 내게 안정을 못 느끼는 게 중요한 거니까. 당신이 불안한 만큼 내가 사랑을 줄게.” 불안한 이유를 파헤치려 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나는 안도하면서도, 날카로운 종이에 깊게 베인 듯한 통증을 느꼈다. 당신은 영영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나는 드라이기 전원을 끄곤 남편을 돌아보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혼란한 얼굴로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남편의 손 위에 놓여 있던 건 내 휴대폰이었다. 내가 집으려 하자, 남편이 손을 뒤로 뺐다.
“뭐야?”
장난스럽게 물었지만 남편은 미동도 없었다. 나는 손을 거두고 듬성듬성 새치가 돋아난 그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뭔데 그래?”
남편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우리 부부 사이엔 비밀이 없었다. 가족끼리는 모든 걸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비밀 같은 건 애인 사이일 때나 유용했다. 나는 남편에게 거짓을 만들지 않았고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남편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웠던 일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버킷리스트에 넣어두었는지, 종종 악몽을 꾸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알았다.
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의 대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여섯 명 모두 아내와 동행했다. 처음엔 부부가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술이 들어가며 시간이 흐르고 나니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앉아 있었다. 화려하게 꾸민 여자들 틈에서 나는 안주로 시킨 아이스크림을 퍼먹었다. 그녀들은 모두 조심스러운 태도로 남편의 흉과 자랑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꼭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검은 카드를 하나 내고 나면, 반드시 흰 카드를 내야 하는 규칙의 게임. 그 우스꽝스러운 대화에 끼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것 또한 나의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친한 친구인 것처럼 떠들어대며 결국엔 내 삶이 남들의 삶보다 낫다는 사실을 증명한 뒤 안도를 느끼는 것 말이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남편이 불쑥 말을 꺼냈다.
“제일 늦게 도착했던 친구 기억나? 안경 쓰고 삐쩍 마른 놈.”
“응. 왜?”
“원래 애라면 질색하던 놈이었는데, 요새 아기를 가지려고 준비 중이라는 거야. 우리가 다 깜짝 놀라서 왜 이렇게 바뀌었냐고 물었더니 뭐라는 줄 알아?”
“나야 모르지.”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간만의 사교 활동으로 나는 몹시 피곤한 상태였다. 따뜻한 물로 씻은 뒤 침대에 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남편은 술을 한 모금도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조금 상기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심심하대. 집에 와이프랑 단둘이 있으면 할 말이 없대. 그게 말이 돼? 근데 다른 녀석들이 다 맞장구치는 거 있지. 하루에 한두 마디 겨우 할 때도 있다면서.”
남편이 라디오 볼륨을 줄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들과 앉아 있을 때, 누군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게 떠올랐다.
“내가 자기랑 수다 떠는 게 제일 재미있다고 했더니 신혼이라 그런 거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거든. 난 자기만 있으면 평생 너희들 안 만나도 될 것 같다고. 그랬더니 다들 놀라는 거 있지. 우리 같은 부부가 없다고, 너무 신기하고 부럽대.”
말을 마친 남편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는 “우리 같은 부부?” 하고 중얼거렸다. 답을 바라고 던진 말이 아니었는데, 남편이 “응. 우리는 모든 걸 공유하잖아” 하고 말했다. 나는 수줍은 듯 웃었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의 순진함에 경이와 애정을 느꼈다.
“어떤… 여자였어.”
“어떤 여자인데?”
그는 무언가 말할 듯 말 듯 입을 벙긋거리기만 했다. 나는 그의 손에서 휴대폰을 낚아챘다. 화면을 켜고 통화 기록을 눌렀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상단에 떠 있었다. 숫자 조합이 너무나 낯설었다.
“말 안 해줄 거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남편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
“자기 어머니 말이야,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지?”
“응, 그랬지.”
“친구분들과 여행을 떠났다가 어머님 아버님 모두… 그렇게 됐다고 했었잖아.”
드라이기를 원래 있던 자리에 세워두며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이기는 자꾸만 옆으로 쓰러졌다. 거치대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벌써 두 달 전이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은 내내 품절 상태였고, 다른 모델은 영 성에 차지 않았다. 남편은 혼란스러운 듯 이마를 세게 문지르다 입을 열었다.
“전화 건 사람 말이, 자기가 당신 동생이래. 어머니 부고를 알리고 싶다더라.”
“뭐?”
나는 큰 소리로 웃었다.
“와, 갑자기 동생에다 엄마까지 생겼네.”
한참을 웃다가 겨우 숨을 골랐다. 후, 후, 숨을 길게 내뱉는 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리했다. 어머니, 그 단어를 들은 순간부터 심장이 벅찰 만큼 빠르게 뛰고 있다는 걸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티 나지 않게 숨을 몰아쉬느라 남편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혼란스러워 보이는 남편을 뒤로한 채 축축이 젖은 수건을 들고 거실로 나갔다. 수건을 탁탁 털어 건조대에 널고, 빨랫감 보관함으로 사용하는 라탄 바구니에 속옷을 던져 놓았다. 잠들기 전 먹는 비타민과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을 준비하는 동안 그는 여전히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남편은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기쁠 때는 물론이거니와 화가 나거나 속상할 때도 쉬지 않고 입을 움직여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 마음에 감정을 쌓아두지 않기 위해선 반드시 발화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 반면 나는 중요한 순간에 입을 다무는 편을 선택하곤 했다. 궁지에 몰릴 것 같을 때, 내 대답으로 무언가 결정되거나 상황이 바뀔 것만 같을 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내가 모종의 이유로 침묵을 지키고 있으면 남편은 내 어깨를 끌어안고 달콤한 말들을 속삭이곤 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모든 건 지나갈 거야. 비가 그친 뒤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내리막길을 지나면 반드시 오르막길이 나오는 것처럼. 한숨 자고 나면 자기를 괴롭혔던 일을 까맣게 잊게 될 거야. 그리고 편해질 거야.
흔하고 특색 없는 말들의 향연, 기계적으로 쓰다듬는 손길. “자기는 예술을 하잖아. 예술가들은 원래 예민하대.” 끝내 그가 그 말을 꺼내면,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광고 팸플릿을 만드는 게 무슨 예술이야?”
“팸플릿 디자인도 디자인이잖아. 디자인은 예술이고. 그럼 팸플릿 디자이너인 자기도 예술가지.”
바로 이런 순간이, 내가 그의 마음을 참을 수 없을 만큼 멸시하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마치 내가 스스로를 사랑하도록 도울 것을 명령받은 로봇처럼 굴 때. 나는 더 이상 예술이라는 말에 설레거나, 예술가가 되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20대가 아니었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반년 전 퇴사한 회사 경력을 이용해 이곳저곳 문을 두드리며 일감을 얻어내는 일이었다. 남편에겐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퇴사 후 아무런 일을 맡지 못해 나는 몹시 초조한 상태였다.
“그런 헛소리를 다 들어준 거야?”
“나도 처음엔 바로 끊으려고 했는데… 자기를 잘 알고 있더라고.”
“그래? 얼마나?”
나는 태연함을 가장해 웃었다. “내 정보 다 털렸나 보네.” 그는 웃지 않았다. 웃으라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기분이 상했다. 그가 웃지 않아서가 아니라 전화를 건 이가 나에 대해 많은 걸 안다고 주장하는 게 불쾌해서였다.
남편이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궁금하네. 나에 대해 뭘 얼마나 아는지.”
나는 물을 마셨다. 아주 천천히, 미지근한 물이 목구멍 안쪽으로 넘어가 식도를 타고 흐르는 게 느껴질 만큼 천천히 들이켰다. 나는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물 한 컵을 전부 비웠다.
“역시 보이스 피싱인가?”
남편이 중얼거렸다. 나는 컵 표면을 만지작거리며 “그거 아니면 뭐겠어?” 하고 대꾸했다. 그 컵은 남편이 작년 회사 송년회 때 연말 선물이랍시고 받아온 것이었다. 나는 철 수세미를 이용해 컵에 새겨진 회사 로고를 지워냈다. 희미하게 남아 있던 로고는 식기세척기에 여러 번 돌리자 완전히 사라졌다. 컵은 손잡이가 유난히 작고 색도 누리끼리해 전혀 예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자주 손이 갔다. 만만해서. 닳거나 깨질 걱정 없이 쓸 수 있다는 점이, 정확히는 닳거나 깨져도 아무렇지 않게 버릴 수 있다는 점이 그 컵의 유일한 장점이었다.
“진짜 괘씸하네.”
남편이 별안간 헛웃음을 지었다.
“뭐가?”
“죽은 사람을 이용하려고 하다니. 그 사람은 어머님을 두 번 죽인 거야.”
“사기꾼들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근데도 깜빡 속을 뻔하긴 했어. 목소리가 너무… 간절해서 꼭 진짜 같더라.”
“그게 직업이니까.”
그제야 맥이 풀린 얼굴로 허허 웃으며, 남편이 나를 향해 양팔을 벌렸다. 나는 화장대 위에 컵을 내려놓은 뒤 그의 품에 안겼다.
“듣고 화내면 안 돼.”
“무슨 말을 하려고?”
“나 사실 자기를 조금 의심했어. 전화한 사람이 너무 진지해서, 혹시 자기한테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
그는 방금 태어난 사람처럼 숨을 쉬었다. 쿵쿵쿵, 쿵쿵쿵쿵. 일정한 박자가 반복되는 음악 같기도 했다. 문득 이전에 본 영상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을 주제로 다룬 다큐멘터리였는데, 내래이터의 목소리가 소름 돋을 만큼 좋아서 기억에 남았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꽤 긴 시간 북부짧은꼬리땃쥐에 대해 설명했다. 동물의 크기가 작아질수록 심장 박동은 빨라지는데, 땃쥐의 심장은 무려 분당 700에서 800회씩 뛰었다. 내래이터는 습관처럼 “정말 놀랍군요” 같은 추임새를 넣었다. 이윽고 심장 박동이 수명과 연관된다는 가설이 이어졌다. 심박수가 빠르면 많은 활성산소가 생기고, 그것이 DNA를 공격해 노화를 촉진한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본 후로 나에겐 심장 박동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왼쪽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너무 빠르거나 불규칙하게 뛰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했다. 영상을 보기 전에는 심장이 빨리 뛰는 게 꼭 생의 증거처럼 느껴지곤 했다. 달리기를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었을 때, 공포 영화를 보거나 술을 마신 뒤 남편과 몸을 맞댈 때면 어김없이 심장이 빨리 뛰었다. 그때마다 나는 안심했다. 그 모든 시간을 겪었음에도 나는 살아 있어, 그렇게 자부했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다고 자부한 순간들이 실은 내가 죽어가는 과정이었다니.
“그래서, 엄마가 어떻게 죽었대?”
나는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사람처럼 키득대며 물었다.
“그건 모르겠어. 자세한 얘기는 자기한테 직접 전하고 싶다더라고.”
남편이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그의 손은 내 손보다 두 마디 이상 컸지만, 훨씬 부드럽고 유연했다. 무엇이든 섬세하게 매만지는 습관 덕분인 것 같았다. 아니, 이건 너무 낭만적인 생각이었다. 그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별 고생 없이 자라왔기 때문일 것이다. 시어머니를 처음 만났던 날, 그녀는 내게 당신이 얼마나 아들들을 곱게 키웠는지에 대해 늘어놓았다. “우리는 그냥, 애들이 하기 싫어하는 건 안 시켰다. 부모와 자식 간이든, 부부 사이든 그게 중요한 거야. 상대가 좋아하는 걸 해주기보단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해.”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척했지만, 실은 머릿속에 자꾸만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음악을 배우고 싶어 했던 남편을 얼마나 강하게 반대했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당시엔 서운하고 아쉬웠지만, 결과적으론 잘된 일이었다고 남편은 이야기하곤 했다. 부모의 반대가 아니었다면, 사회적으로 자리도 못 잡고 나를 만나지도 못했을 거라면서.
나는 시어머니에게 묻고 싶었다. 상대가 싫어하는 일이, 상대의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면요? 그녀는 한참 망설였겠지만, 결국엔 그래도 하면 안 돼, 하고 말했을 것이다. 시어머니는 한 번 입 밖으로 꺼낸 말을 번복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꼴사납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언젠가 나는 남편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당신에게 꼭 필요한 일이긴 해도 당신이 싫어하는 일을 누가 시킨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정말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면, 받아들일 것 같은데?”
“그게 당신을 괴롭게 만든다고 해도?”
그는 읽던 책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생각해서 하는 건데, 그걸 괴롭게 느끼면 안 되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이 전에 없이 천진해 보여서 나는 조금 놀랐다. 남편이 내게 왜 그러냐고 물은 후에야, 내가 그의 얼굴을 한참 동안 노려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신은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평생, 엄마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라는 슬프고 허망한 생각 말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나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오며 물었다.
“그런 거짓말로 어떤 사기를 치겠다는 거지?”
“글쎄. 장례 비용을 핑계로 돈을 뜯어내려고 했나?”
남편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길게 자란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그보다, 전화한 사람이 그래? 내 동생이라고?”
“응. 할 말이 있다면서, 연락 기다리겠대.”
나는 코웃음을 쳤다. 암만 기다려봤자 나는 연락할 일이 없을 텐데. 절대로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남편은 미간을 약간 찡그린 채로 나를 보며 더듬더듬 물었다.
“혹시 그 보이스 피싱범, 자기 주변 사람은 아닐까? 자기에 대해 꽤 디테일한 이야기를 했거든. 내가 전화 잘못 거신 것 같다고 하니까, 자기가 어릴 때 어느 동네에서 살았고 학교는 어딜 나왔으며 좋아했던 가수는 누구인지… 그런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더라고. 그런 건 친구가 아니면 모르잖아. 누구 짐작 가는 사람 없어?”
나는 아니, 하고 짧게 대답했다. 남편이 뒷머리를 긁적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기는 친구가 없지.” 나는 발끈한 척하며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는 잽싸게 몸을 피하며 웃었다.
우리 부부 사이엔 비밀이 없었다.
그가 그렇게 믿을 수 있도록 했다.
그 주 주말, 나는 남편을 따라 제지 박람회에 갔다. 전날 남편은 꼭 들러야 하는 부스와 처음 출품되는 제품들을 꼼꼼히 살폈다. 인터넷에 올라온 부스 도면을 인쇄해 일일이 체크해 두기까지 했다. 그렇게 볼 게 많아? 내 물음에 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에 갔을 때는 명함 돌리느라 제대로 구경도 못 했거든. 이번에 가면 좀 여유롭게 둘러보고 싶어.”
남편은 들떠 있었다. 평소 회사에서 갈증을 풀어내지 못하는 그에게 제지 박람회는 한 해의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제지 박람회는 매년 개최되는 종이 업계의 큰 행사였다. 포장지, 특수지, 인쇄지, 판지, 산업 용지…. 다양한 종이 제품과 제조 기술을 구경할 기회라고 했다. 구매 페스티벌과 신기술 발표회, 제지와 관련된 화학 물질을 전시하는 구역도 마련되어 있었다. 엄청날 거야, 남편이 말했다. “무려 500여 개의 업체가 참가할 예정이래.” 나는 흥미로운 척 호응했다. 500이든 5,000이든 흥미는 생기지 않았지만, 남편이 즐거워하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노트와 달력을 생산하는 중견 기업에 다니는 남편은 해가 갈수록 회사에 흥미를 잃고 있었다. 아직도 열정 가득한 그와 달리 회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 과장, 원래 하던 거나 제대로 하자고, 응? 그런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다며 남편은 종종 하소연했다.
제지 박람회가 개최된 곳은 서울 중심가의 한 5성급 호텔이었다. 나는 남편 몰래 객실을 예약했다. 우리 부부는 좀처럼 외박하는 일이 없었다. 여행을 떠나지 않는 이상 호텔이나 모텔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굳이 밖에서 자지 않아도 이미 웬만한 숙박비보다 비싼 전세 대출 이자를 내는 중이었다. 그렇지만 모처럼이니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라운지 바에서 와인을 마신 뒤 객실 욕조에서 남편과 함께 거품 목욕을 즐길 계획까지 세웠다. 그와 보내는 매일이 안온했지만, 우리 사이가 이따금 힘없이 늘어난 고무줄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벌써 탄력을 잃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불안해졌다. 상대의 작은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대를 떠보는 건 내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는데, 남편은 그 모든 걸 시간 낭비라고 여겼다. “사랑할 시간도 모자라잖아.” 나와 다투는 날이면 그는 습관처럼 말하곤 했다. 나는 남편을 사랑했지만, 점차 어떤 지점에 대해선 기대를 접었다. 그는 나를 아프게 할 수 없었고, 나도 그를 아프게 할 수 없었다. 나를 아프게 할 수 있었던 사람, 내가 아프게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이었다.
박람회장에 도착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입장 팔찌를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제지 박람회 같은 지루한 행사에 올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싶었는데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인파였다. 남편은 입구에서 나눠주는 팸플릿을 챙겨 내게 한 장을 주었다. 팸플릿에는 참가 부스들에 대한 설명과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뉜 전시 품목은 다채로워 보이긴 했으나 전부 내 관심 밖의 것들뿐이었다. 종이 제품과 플라스틱 기반 종이 제품, 제지 화학 물질과 펄프 및 제지 기술…. 결국엔 종이였다. 팸플릿 앞장에 적힌 ‘친환경 기술!’이라는 문장을 보며 나는 몰래 코웃음을 쳤다. 인간이 하는 일에 친환경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10분 정도 줄을 선 후에야 우리가 입장할 차례가 되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직원이 내 손목에 직접 초록색 입장 팔찌를 채워주었다. 그는 무심한 얼굴로 종이를 세게 당긴 후 접착지를 뜯어 붙였다. 손목에 딱 맞게 채워진 팔찌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할 새도 없이 남편이 나를 잡아끌었다. 그는 이번 박람회에서 셀룰로오스 미세 섬유로 만든 친환경 점증제를 선보인 기업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 점증제는 나무에서 뽑아낸 것이라 미세플라스틱 걱정이 없고 자연에 고스란히 생분해되는 게 큰 장점이라고 했다. 심지어 화장품 신소재로도 쓰일 예정이라고 했다. 이 같은 성취가 놀라운 이유는 제지 회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라고 남편은 덧붙였다. 지속 가능한 신소재 개발. 그 문장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모든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나는 남편의 말을 흘려들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을 텐데.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느라 평소 커피 마시는 시간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할 수 없게 된 게 언제부터였더라. 나는 아침뿐만 아니라 점심과 저녁에도 커피를 마셨다. 하루 평균 석 잔, 많이 마실 때는 다섯 잔까지도 마셨다. 그래야 겨우 정신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카페 있는지 보고 올게.”
“응, 다녀와.”
나는 가방 안에 쑤셔 넣었던 팸플릿을 펼쳐 보았다. 카페라고 적힌 곳은 없었지만, ‘휴식 공간’이라는 이름의 부스가 보였다. 나는 입구 반대편에 있는 휴식 공간을 향해 걸었다. 박람회장 안은 몹시 넓고, 또 더웠다. 에어컨을 틀긴 한 건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두 배로 후덥지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양손을 모은 채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갔다. 코너를 두 바퀴쯤 돌았을 때 내가 땀을 흘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겨드랑이가 축축하게 젖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나는 몸을 한층 더 웅크렸다. 사람들의 체취 사이로 온갖 종이 냄새가 섞여 불쾌한 공기층을 만들어냈다. 남편은 왜 종이 같은 걸 좋아해서는. 원망의 화살이 불쑥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결혼 전, 남편은 스스로 종이 같은 사람이 되는 게 목표라고 이야기했다. 종이 같은 사람이 뭐냐고 되묻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도화지 같은 사람’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종이가 뭐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종이는 그냥 종이일 뿐이다. 몸이 그냥 몸인 것처럼.
열접착 성능을 극대화한 포장지를 홍보하는 부스를 지나자 휴식 공간이 나타났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휴식 공간, 숲의 나무’라고 적힌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일반 부스 세 개를 합친 것처럼 넓은 공간에는 색색의 빈백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빈백에 앉은 사람들은 휴대폰을 보거나 눈을 감은 채 졸고 있었고,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내 시선을 끈 것은 푹신해 보이는 빈백도, 지쳐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도 아닌 공간 한가운데에 놓인 큰 나무였다. 삭막한 회색 공간 안에 덩그러니 놓인 나무 한 그루는 이질적으로 보였다. 나는 천천히 나무를 향해 다가갔다. 그 앞에 선 후에야, 나는 그게 진짜 나무가 아니라 나무껍질에 싸인 철골 기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내 앞으로 누군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만져보셔도 돼요.”
나는 뒷걸음질하며 얼굴의 주인을 바라보았다. 구릿빛 피부가 건강해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이 기둥을 감싼 건 진짜 나무껍질이에요. 전부 종이에 쓰이는 나무껍질이죠. 나무에 고마움을 느끼고, 나무가 내어준 종이를 소중히 여기자는 취지에 맞춰 세워진 구조물이에요. 한번 만져보세요.”
나는 고개를 흔들며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여자는 재차 권했다. “이쪽은 침엽수, 반대쪽은 활엽수 껍질을 붙여두었는데, 침엽수는 섬유가 길어서 종이가 질기고 잘 찢어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고 활엽수는 종이 표면이 매끄럽고 인쇄 품질이 좋다는 장점이 있답니다.” 여자는 말을 빠르게 내뱉었다. 이야기를 꺼낸다기보다는, 던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쉼 없이 재잘대는 높은 목소리에 미약한 두통이 느껴졌다. 하는 수 없이 손을 뻗어 나무껍질을 쓰다듬었다. 거칠고 단단한 감촉 아래 묘한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괜찮으시다면, 나무에 대해 좀 설명해 드려도 될까요?”
여자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제야 나는 여자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녀는 나보다 열 살은 족히 어려 보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수수하고 단정한 매력이 돋보였다. 그녀가 목에 건 명찰에는 ‘STAFF’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일하러 온 사람치곤 지나치게 신나 보였다. 일에 열정을 가진 지가 언제였더라? 나는 조금 아득해진 기분으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이렇게 물었다.
“고객님께서는 나무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이 아닌 듯, 그녀는 내가 채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나무를 사람에 비유하자면, 몹시 정직하고 성실한 친구라고 표현할 수 있을 거예요. 나무를 관찰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그 나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거든요. 나무의 나이테를 보면 나이를 추정할 수 있고, 나무껍질에는 병충해를 겪은 흔적이 남아요. 또 나무의 화학 성분을 분석하면, 해당 나무가 자란 지역의 기후와 토양, 오염물질에 대해서도 알 수 있죠.”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곤 숨을 골랐다.
“그러니 나무는 비밀이 없는 투명한 존재인 셈이죠.”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의 해맑고 눈치 없는 직원은 끊임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그녀가 던진 질문에 고개를 들었다.
“고객님께서도 나무 같은 친구가 있으신가요? 서로의 비밀을 거리낌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졌다. 여자가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런 친구는 없다고 대답하려던 찰나, 그녀가 내 손에 작은 엽서 한 장을 쥐여주었다.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께 짧은 편지를 남겨주신 뒤 번호와 성함을 써서 내시면, 박람회 종료 후 추첨을 통해 작은 선물을 보내드려요.”
미처 거절할 새도 없었다. 내가 엽서를 받아 들자, 그녀는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 기둥 근처를 서성이는 다른 사람 쪽으로 쌩하니 가버렸다. 엽서의 뒷면에는 싱그러운 나무와 숲을 찍은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나무에 고맙고 미안하다면, 이런 엽서를 안 만드는 게 낫지 않나? 나는 엽서를 뒷주머니에 구겨 넣은 뒤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멀리 출구가 보였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박람회장을 빠져나갔다. 머릿속에는 호텔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남편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땀에 젖은 옷을 벗어 던지고 샤워하며 한숨 돌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호텔 로비로 가는 통로가 생각보다 복잡해서, 지나는 사람에게 물은 후에야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한 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조금 전 여자의 말을 곱씹었다. 비밀이 없는 투명한 존재, 서로의 비밀을 거리낌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객실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씩씩대고 있었다. 침대 위에 가방을 내팽개쳤다. 손목을 파고들던 입장 팔찌도 찢어 버렸다. 나 지금 왜 화내고 있지? 나는 나의 행동을, 감정을 이해할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나는 침대 맞은편에 놓인 2인용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뒷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엽서 모서리가 뾰족하게 나를 찔렀다. 나는 엽서 끄트머리를 잡아 꺼냈다. 갈기갈기 찢으려다 관두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건 이런 게 아니었다.
나는 묻고 싶었다. 왜 전화를 걸었냐고. 가만히 있는 나를 어째서 들쑤시는 거냐고. 나한테 아는 척하지 말고, 16년간 그랬듯 앞으로도 모르는 척 살아달라고 외치고 싶었다. 나는 내 비밀을 알리고 싶은 마음도, 남의 비밀을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나는 가방을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통화 기록에서 저장되지 않은 번호를 찾았다. 깊게 심호흡을 한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늘 지루하다고 여겼던 통화 연결음이 괜스레 서늘하게 들렸다. 곧 연결음이 멈췄다.
“여보세요?”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우뚝 멈췄다. 짧지 않은 정적이 이어졌다. 몇 초가 지났을까, 목소리가 다시금 물었다.
“언니야?”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며 그래, 하고 대답했다. 동생의 목소리는 내 기억보다도 훨씬 낮고 허스키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동생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동생은 자기 이름을 겨우 쓰는 어린아이에 불과했으니까.
“언니가 전화할 줄 알았어.”
“뭐라고?”
“엄마 말이 맞았네.”
나는 동생의 말을 자르며, 나를 어떻게, 왜 찾았느냐고 물었다. 동생의 전화로 인해 며칠 전 내가 얼마나 곤란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동생은 말이 없었다. 동생의 숨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야?”
나는 멈칫했다.
“내가 언니를 어떻게 찾았는지, 왜 찾았는지, 정말 그런 게 궁금해?”
물론 궁금했다. 하지만 가장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망설이는 사이 동생이 다시 말했다.
“주소를 보낼게. 최대한 빨리 만나자.”
“뭐? 내가 왜?”
나는 날카롭게 쏘아붙였지만, 동생은 주춤하는 기색 없이 말을 이었다.
“꼭 와줘.”
그러니까 내가 왜, 내 말을 단호하게 끊어낸 동생이 아주 천천히 덧붙였다.
“언니가 꼭 봐야 할 게 있거든. 꼭 봐야 해. 보면 알게 될 거야.”
2
나는 세 살 때부터 열여섯 살 때까지 아토피에 시달렸다. 증상이 유독 심했던 부위는 목과 팔다리였다. 팔다리에 딱딱하게 굳은 피고름 때문에 나는 걷거나 앉거나, 심지어는 눕는 일조차 편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계절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온몸이 간지러웠다. 가려움증은 밤이 되면 더욱 심해졌고, 나는 그때마다 화장실로 향했다. 몰래 문을 잠근 뒤 피부를 세게 긁어댔다. 날카롭게 다듬은 손톱이 갈라진 피부를 긁고, 긁고, 긁다 보면 기어코 피가 터졌다. 다행히도 물소리가 내 신음을 감춰주었다. 나는 흐르는 피를 찬물에 흘려보낸 뒤 뜨거운 물을 틀어 피부가 발갛게 익어가는 걸 지켜보았다. 뜨거운 물에 닿은 피부가 간지럽고 따끔거렸지만 입술을 앙다물고 견뎠다. 그래야 화장실 밖으로 나왔을 때, 아토피 부위가 유독 붉어진 이유에 대해 뜨거운 물 탓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돌이켜 보니, 엄마는 다 알고 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아, 엄마라면 분명 그랬으리라.
그즈음 엄마는 새로운 치료법을 연구 중이었다. 정오부터 두 시 사이의 햇볕을 쬐는 것―엄마는 이 시간에 태양의 빛이 가장 깨끗하며 광도 또한 높다고 주장했다―은 방학 때가 아니면 불가능했고, 매일 소금물 한 컵을 마시는 것으론 도무지 증상이 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밤이 되면 엄마는 대야 안에 펄펄 끓인 뜨거운 물과 정수를 반씩 부었다. 손을 넣어 물 온도를 확인한 뒤, 숯 한 덩이를 집어넣었다. 숯의 정화 효과를 이용하려는 목적이었다. 물에 넣어둔 숯이 충분히 젖었다 싶으면, 엄마는 가제 수건만 모아놓은 서랍에서 한 장을 꺼내 물에 적셨다. 그러곤 젖은 가제 수건으로 피 섞인 진물이 줄줄 흐르는 내 팔다리를 꼼꼼히 닦아주었다. 엄마가 백화점에서 구매한 가제 수건은 놀랄 만큼 부드러웠다. 부드러운 천이 내 팔과 다리, 오목한 오금을 스칠 때마다 나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가만히 있어.”
“그렇지만 너무 간지러워요.”
“그래도 참아.”
엄마는 경련하듯 떨리는 내 몸을 꽉 껴안은 채 침착하게 말했다.
아침이 되면 나는 소매를 손등까지 끌어 내린 채 집을 나섰다. 그 시절 내가 고통보다도 두려워했던 것은 아이들에게 소외되는 일이었다. 그래, 소외.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만큼 변화와 다름을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존재는 없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반 애들은 내가 수시로 온몸을 긁어대는 것과 손톱 끝에 묻은 핏자국을 단서로 내가 자기들과 다른 상태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넌 왜 맨날 긁어? 많이 간지러워?”
“우리 엄마가 간지러울 땐 씻어야 한댔는데.”
내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 “쟨 안 씻을걸? 쟤한테 냄새나잖아” 하고 말했다. “아니야. 나 매일 씻어.”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변명했다. 그러자 주변에서 에이, 하는 야유가 쏟아졌다. “냄새나는 거짓말쟁이.” 얇은 목소리가 귓가에 꽂혔다. 그때부터였다. 반 아이들은 내 앞을 지나갈 때마다 코를 움켜쥐는 시늉을 했다. 방귀 냄새처럼 구린내가 나면 일제히 나를 돌아보며 쟤야, 쟤, 하고 수군거렸다. 애들은 내 옆에 앉는 걸 꺼렸다. 키가 작고 마른 남자애 두 명이 특히 나를 괴롭혔다. 둘은 심심할 때마다 내 자리로 다가와 나를 놀려대곤 했다. 그 둘은 나를 ‘노숙자’라고 불렀다. 내게 냄새가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느 날 아침, 그 애들이 또 내 자리로 다가왔다.
“야, 노숙자. 오늘도 안 씻었냐?”
나는 못 들은 척 책을 꺼내 펼쳤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에게 선물 받은 동화책이었는데, 내지에 예쁜 일러스트가 가득했다. 내가 별 반응이 없자, 남자애들은 심술 난 표정으로 내 책을 빼앗아 갔다. “노숙자가 책도 읽는다!” 반 아이들은 내 쪽을 힐끔거리기만 할 뿐 별 반응이 없었다. 그때 옆자리 짝꿍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내 책을 빼앗아 간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너 노숙자한테 무슨 냄새 나는지 알아?”
“노숙자니까 노숙자 냄새 나겠지.”
남자아이는 잠시 주춤했지만 이내 허리를 곧게 펴곤 대답했다. 짝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노숙자한테는 안 씻은 냄새 나고, 얘한테는 피 냄새 나거든? 뭘 좀 알고 놀려라.”
말을 마친 짝꿍은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멀뚱히 서로를 바라보던 남자아이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얘한테 피 냄새 난다!” 이내 한 아이가 신이 난 목소리로 내질렀다. “피 냄새래요, 피 냄새래요.” 책을 가져갔던 아이가 노래하듯 말했다. 나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노숙자라는 별명은 참을 수 있었다.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노숙자도 아니었고, 안 씻는 사람도 아니었다. 나는 매일 밤 깨끗이 샤워했다. 엄마의 감독 아래, 소금물을 가득 받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구석구석 꼼꼼히 씻어냈다. 그러나 피 냄새라는 별명은 달랐다. 그건 진짜였고, 진실에는 무시하지 못할 힘이 있었다. 정말로 미약한 피 냄새가 나는 듯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남자아이들은 더욱 신이 나서 피 냄새라는 말을 복창했다.
하교 후 집에 돌아간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던 엄마가 황급히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남자애들이 나를 ‘피 냄새’라고 부른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마쳤을 때 내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엄마는 깨끗한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러곤 내 정수리와 목덜미에 코를 대고 연신 킁킁댔다.
“좋은 냄새밖에 안 나. 넌 정말 깨끗하고 향기로운 아이야.”
엄마는 땀에 젖은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덧붙였다.
“그런 멍청한 애들의 말 따위 신경 쓸 필요 없어. 걔네는 아파본 적이 없어서 그래. 지금 건강해 보이는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병에 걸리게 돼 있어. 그때가 되면 걔네는 후회할 거야. 피 냄새보다 더 심한 냄새를 풍기게 될 거야.”
나는 엄마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엄마도 아픈 적이 있었어요?”
“그럼.”
엄마의 대답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엄마가 감기에 걸린 모습조차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키가 크고 날씬한 데다 체력이 좋았다. 정류장 두 개 정도의 거리쯤은 운동 삼아 걸어 다녔으며 여덟 살이었던 나를 업고 그 길을 오갈 만큼 힘이 셌다. 그런 엄마도 아픈 적이 있었다니, 어쩐지 신이 나는 기분에 엄마의 목을 끌어안았다. 엄마도 나처럼 피 냄새를 풍기고 다닌 적이 있었던 걸까?
“어디가 아팠는데요?”
엄마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생각에 잠긴 것 같기도 했고, 아무 생각 없어 보이기도 했다. 한참 후에, 엄마는 긴 머리를 가볍게 쓸어 넘긴 후 입을 열었다.
“정말 그게 궁금하니?”
나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얘기는 다음에 하자. 일단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
내 느낌이 맞다면, 엄마는 망설이고 있었다.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피딱지가 따개비처럼 앉은 내 몸을 닦아줄 때도, 숯을 잘게 갈아 먹기 싫어하는 내게 억지로 먹일 때도 엄마의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엄마는 엄숙한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우리 약속을 어길 셈이니?” 내 몸과 건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엄마는 무서우리만치 냉정하게 굴었다. 내가 엄마의 지시를 군말 없이 따랐던 이유는 엄마가 무서워서만은 아니었다. 내가 엄마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그녀가 몹시 슬퍼했기 때문이었다.
“네가 고통스러운 만큼 엄마도 고통스러워.”
엄마가 그 말을 했던 날, 나는 처음으로 엄마의 눈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우리 집에서 가장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가 눈물을 흘리다니. 나는 마치 집안이 물에 잠기는 것을 목격한 아이처럼 두려움에 떨었다. 나는 엄마의 눈물 앞에 납작 엎드려 빌었다. “잘못했어요, 앞으로 열심히 할게요.” 엄마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뭘, 어떻게 열심히 할 건데?” 나는 엄마의 단단한 손목을 움켜쥐며 간절히 읊조렸다.
“몸 공부요. 앞으로 엄마가 시키는 대로 정말 열심히 할게요.”
16년 전 집을 나온 후, 나는 누구에게도 ‘몸 공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 만난 사람들, 야간 대학 동기들과 전 애인들, 직장 동료들… 나를 스쳐 간 모든 사람 앞에서 나는 함구했다. 종종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그간 보고 들었던 남의 이야기를 마치 내 경험인 것처럼 풀어놓았다. 다른 이의 삶을 따라 하는 것도, 그걸 마치 내 것처럼 포장하는 것도 내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집을 나오기 전에도 나는 늘 누군가를 흉내 내며 살았으니까. 집을 나오고 엄마와 연락을 끊은 후에도, 나는 종종 몸 공부가 내게 전부였던 시절을 떠올리곤 했다. 집안을 장악한 규칙과 규율에 대해서도.
몸 공부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우리 집의 가훈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 같다. 가훈을 정한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는 ‘공부’가 우리 집의 가훈이라고 했다. 교육을 통해 지식을 쌓는 의미의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를 다스리는 의미의 공부. 엄마는 이런 말도 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우리의 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머리카락 한 올도 소중히 여겨 훼손해선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몸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선, 자기 몸에 대해 잘 알아야 해. 내가 언제 아프고, 또 어떨 때 괴로운지 스스로가 알아야만 병을 막고 치유에 가까워질 수 있단다.” 나는 가려운 부위를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물었다.
“그럼 몸 공부를 하면 아토피를 없앨 수 있어요?”
“멀리 보면, 그래.”
“그게 무슨 뜻이에요?”
엄마는 몸 공부란 치유를 돕는 과정일 뿐, 치유 자체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오답 노트를 쓴다고 해서 다음 시험 때 만점을 받는 걸 보장할 순 없지만, 만점을 받는 데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만 갸웃거렸다. 허공을 응시하며 골몰하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아토피는 생각만큼 나쁜 병이 아니고, 너는 아토피 때문에 힘든 게 아니야. 몸의 균형이 무너져서 그래. 아토피는 네 몸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리는 신호일 뿐이란다. 몸이 가렵고, 피가 나고, 진물이 나는 것도 결국은 네 몸이 네 안에 쌓인 나쁜 피를 배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인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간지럽고 열이 나는 건 오히려 다행, 아니, 축복이야. 세상에는 자기가 아픈지도 모른 채 죽어가는 사람도 많거든.”
엄마는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훑었다.
“그러니까… 사실 넌 지금 아픈 것도 아니고, 치료가 필요한 상태도 아니란다. 단지 공부가 필요할 뿐이지. 엄마의 역할은 공부를 통해 네 몸이 스스로 치유할 힘을 기를 수 있게 돕는 거야. 네 몸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거든. 몸이 가진 자연적인 치유력을 이해하고 배우는 게 바로 우리가 몸 공부를 하는 이유야. 물론 완벽한 치유를 위해선 약간의 도움이 필요하지. 그래서 엄마가 너에게 맞는 치료법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 거란다.”
엄마는 여전히 영문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곤 말했다.
“엄마랑 같이 공부하다 보면, 언젠간 깨닫게 될 거야. 지금은 그냥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태어난 순간부터 집을 나오기 전까지, 우리 가족은 ‘복성’이라는 이름의 복도식 아파트에서 살았다. 동이 한 개뿐이라, 아파트라기보다는 꼭 연립주택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어릴 때 나의 꿈은 이사였다. 더 좋은 집으로 가고 싶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저 ‘이사’라는 행위를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챙길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하며 짐을 싸고, 방을 어떻게 꾸밀지 고민하는 그 행위가 부러웠다. 언젠가 엄마에게 우리는 왜 이사를 가지 않냐고 물었다. 엄마는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왜 이사를 해야 하니? 여기보다 좋은 집이 어디 있다고.” 당시 살던 곳은 엄마의 말처럼 좋은 집은 아니었다. 다만 시세보다 저렴하고, 이웃들이 까다롭지 않고 유순하다는 장점은 있었다. 엄마는 구옥 특유의 퀴퀴한 냄새와 어두운 분위기를 가리기 위해 청소와 정리에 심혈을 기울였다. “외관보다 중요한 건 내면이야.” 물론 엄마가 결벽증 수준으로 집안을 쓸고 닦고 정리한 이유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의 아토피, 예민한 피부, 알레르기 비염을 호전시키기 위해선 깨끗한 환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커다란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액자에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내가 함께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세 살, 아토피가 시작되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었다. 밑단에 레이스가 달린 흰 원피스를 입은 사진 속 아이는 뚱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집에 들어올 때마다, 나는 그 시절의 오동통한 팔다리와 둥근 얼굴을 쳐다보았다. 옷 아래로 드러난 몸이 새하얬다. 흰옷을 입어도 피가 배어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게 꼭 꿈만 같았다. 액자 아래에는 3단짜리 서랍장이 있었다. 서랍 안은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엄마가 정한 규칙대로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혼돈 속의 질서. 서랍을 열어볼 때마다 나는 그 말을 떠올렸다.
하교 후 집에 돌아오면, 나는 제일 먼저 손발을 깨끗이 씻은 뒤 그 서랍의 맨 위 칸을 열었다. 그건 엄마가 정한 첫 번째 규칙이었다. 서랍 안에는 작지만 두꺼운 수첩과 펜이 들어 있었다. 펜은 총 다섯 개였는데, 색깔별로 용도가 정해져 있었다. 초록색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잘한 일을 적을 때, 빨간색은 평소와 달랐던 점을 기록할 때 사용했다. 파란색과 보라색으로는 각각 반성할 점과 그날 먹은 것을 적었다. 마지막으로, 갈색 펜으로는 그날의 감정을 기록했다.
나는 ‘몸 공부 일지’라고 적힌 수첩과 펜들을 꺼내 식탁 앞에 앉았다. 두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며, 그날의 일지를 차근차근 채워가기 시작했다. 먼저 외출복에 꽂아두었던 만보기를 확인하곤 날짜 옆에 걸음 수를 적었다. 그 아래에는 급식 시간에 먹은 것과 먹지 않고 버린 것을 적었고 등교 때부터 집에 돌아오기 전까지 종일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세밀하게 적었다. 여덟 살 때까지만 해도, 나는 감정을 ‘세밀하게 적는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당시 내가 적을 수 있는 거라곤 ‘좋았다’ 내지는 ‘슬펐다’ 정도였다. 그때마다 엄마는 내게 숫자를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1부터 10까지의 숫자가 있다면, 내가 느낀 감정이 몇 번 정도에 오는 것 같은지를 고민해 보라면서. “1은 최악이고, 10은 최고라는 뜻이야.” 엄마는 이 시간을 ‘몸 복습 시간’이라고 명명했다. 몸을 치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몸의 상태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먹고 느끼고 얼마나 움직였는지를 완벽히 알아야만 한다고 했다.
일지를 거의 다 써갈 때쯤,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시장에서 사 온 것들을 식탁 위에 내려놓으며 숨을 골랐다. 엄마는 식재료를 쟁여두는 법이 없었다. 늘 하루치의 식재료만 구매했다. 내게 언제나 신선한 음식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엄마가 저녁 준비를 시작하면, 나는 책상으로 자리를 옮겨 일지를 마저 작성했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었고 식사를 마친 후엔 엄마가 즐겨 보던 드라마를 보았다. 드라마 주인공들이 비행기나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장면이 나오면 나는 아빠를 떠올렸다. 출장이 잦은 아빠는 적어도 한 달에 두 번은 반드시 집을 떠나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들은 대놓고 나를 ‘피 냄새’라고 부르며 놀리지 않았다. 물론 은밀한 무시와 수군거림은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모르는 체하며, 최대한 조용하고 얌전한 몇 아이들과 친구 비슷한 관계를 맺었다. 하교 후 교문 밖으로 나가면 우리는 마법에서 깨어난 사람들처럼, 서로 모르는 사이인 듯 쌩하니 집으로 돌아갔다. 오직 교실에서만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고 아는 체를 했다. 그건 혼자가 싫은 아이들끼리 맺은 일종의 동맹이었다.
한번은 그 아이들과 서로의 부모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늘 자기 부모를 흉보았다. 엄마는 폭군이며 아빠는 무능력하다고 말했다. 그때마다 나는 늘 “우리 아빠는 출장을 자주 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멋지다. 그럼 맨날 비행기 타는 거야? 너도 비행기 타봤어?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다들 우리 아빠를 멋지다고 생각했다. 부럽다. 나도 아빠가 집에 좀 없었으면 좋겠어. 누군가 그렇게 말하면 다들 나를 부러워했다. 그럼 돈 많이 벌겠네? 너희 집 부자야? 그런 말도 들었다. 나는 출장이 잦은 것과 돈을 많이 버는 일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으나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은 채 머쓱하게 웃었다.
머리가 좀 더 큰 후엔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출장 잦은 남자는 의심해 봐야 한대. 드라마에도 많이 나오잖아. 출장을 핑계로 내연녀를 만나러 가는 사람들 말이야. 아내랑 자식을 내팽개치고 혼자 재미있는 일을 하고 오는 남자들.” 그런 이야기를 할 때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머리를 모으고, 목소리를 낮췄다. 속삭이는 목소리에는 은밀한 경멸과 즐거움이 묻어났다. 재미있는 일이 뭔데? 간혹 이런 질문이 던져지면, 아이들은 야유를 보냈다. 그거 있잖아, 그거. 여자랑 남자가 만나면 하는 일 있잖아. 나는 내 또래 아이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에 놀랐다. 나는 한 번도 아빠를, 나의 부모를 그런 방식으로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가정 있는 남자들이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저지르는 재미있는 일, 아내와 자식을 두고 즐기는 은밀한 자유. 아빠는 그런 것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남자였다.
드라마가 끝나면 엄마는 내게 손짓했다. 나는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몸 공부 일지를 가져와 엄마에게 내밀었다. 엄마는 내가 쓴 일지를 꼼꼼히 읽었다. 그게 우리 집의, 내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두 번째 규칙이었다. 나는 엄마 옆에 앉았다. 마침내 일지를 다 읽은 엄마는 내가 쓴 문장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질문을 던졌다. 우유를 먹은 건 아니겠지? 여기 적은 것 외에 다른 군것질을 한 건 아니지? 손은 총 몇 번 닦았니? 운동장에서 뛰어놀거나 하진 않았지? 흙을 만진 적도 없고? 나는 그 모든 질문에 차분히 대답했다. 내가 답하기 가장 두려워했던 건 몸을 몇 번이나 긁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엄마는 이 문제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예민했다.
“우리 집에선, 적어도 내 앞에선 절대 거짓말해선 안 돼. 나는 네 엄마고, 네 몸을 정확히 알아야 할 의무가 있어. 그러니 절대 나한텐 거짓말하지 마. 그건 어느 상황에서도 용납할 수 없어.”
엄마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겁에 질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딸 착하다. 나직이 중얼거린 엄마가 나를 꼭 껴안아 주었다. 나는 엄마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과 별개로, 나는 아토피 환부를 긁는 일을 쉽사리 멈추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몸을 긁은 횟수만큼 내 손바닥을 때렸다. 나를 때릴 때 엄마는 절대로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다. 엄마는 활짝 펼친 오른손으로 내 손을 힘껏 내리쳤다. 나는 간신히 눈물을 삼키며 발만 동동 굴렀다. 체벌 시간이 끝나면, 내 손바닥은 물론 엄마의 손바닥도 새빨갛게 부어올랐다. 엄마는 꽁꽁 얼린 생수병을 수건으로 감싼 뒤 내 손 위에 올려주었다.
“봐. 네가 아프니까 엄마도 아파졌잖니.”
나는 연신 코를 훌쩍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나를 달래듯이 내 손을 살며시 주물러 주었다.
“네가 고통스러운 만큼 엄마도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명심하렴.”
아, 정말 그랬다. 엄마는 정말로 나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나를 무엇보다도 두렵게 만든 건 바로 그 사실이었다.
엄마가 내게 당부한 건 또 있었다. 엄마는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밖에서 이야기해선 안 된다고 했다. 왜요? 묻는 내게 엄마는 그게 규칙이니까, 하고 대답했다. 규칙. 그 단어는 엄마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엇이었다. 그게 규칙이니까, 그게 우리 집의 법이니까.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입을 합 다물었다. 그 말에는 어떤 힘이 있었다. 감히 거부할 수도, 거스를 수도 없는 힘. 문득 의문이 든다. 엄마는 사는 동안 내게 그 무기를 몇 번이나 휘둘러 왔을까?
우리 집 거실에는 큰 창이 있었고, 그 앞에 서서 밖을 내려다보면 맞은편 작은 공원이 훤히 보였다. 본래 벤치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작은 공원이었는데, 어느 날 미끄럼틀과 그네가 설치되며 놀이터처럼 변했다. 비록 여름엔 기다란 프라이팬으로 변하는 쇠 미끄럼틀과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그네 한 개밖에 없었지만, 주변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그 공원으로 모여들었다. 물론 나는 그 공원에서 놀아본 적이 없었다. 공원에 있는 것들이 하나같이 면역력에 좋지 않다는 엄마의 판단 때문이었다. 엄마는 어디서 가져왔는지도 모를 흙과 그늘 한 점 없는 공원의 햇빛이 내 증상을 악화시킬 거라고 했다. 조악한 미끄럼틀과 그네에 대해선 더는 말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엄마는 따뜻한 차를 한입씩 마시면서 꺅꺅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들, 흙모래를 주물럭거리며 노는 아이들을 조용히 지켜보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러다 병에 걸리면, 부모는 얼마나 후회할까?”
언젠가 그 공원에서 남자아이 한 명이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한 그네를 둘이 타다가 생긴 사고였다. 다친 아이는 앉은 아이의 무릎을 밟고 서서 그네를 타다가, 강한 반동에 튕겨 나가 앞니가 부러졌다고 했다. 그날 하교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어쩐지 조금 상기된 얼굴로 내게 그 일을 알려주었다. 나는 몸 공부 일지를 작성하다가 문득 물었다.
“그럼 이제 그 애도 몸 공부를 해야 하는 거예요?”
“그게 무슨 소리니?”
“아프니까, 치유해야 하잖아요.”
아, 작게 입을 벌린 엄마가 곧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야. 그 애는 아픈 게 아니라 다친 거라서 치유가 필요 없단다.”
나는 아픈 것과 다친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 눈만 끔벅였다. 엄마는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건 그냥… 바보 같은 실수일 뿐이야.”
그해 여름방학이 끝났을 때, 옆 반에 여자애 한 명이 전학 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전학생에 별 관심이 없었다. 전학생을 보러 옆 반에 다녀온 반 아이들이 “쟤도 안 씻나 봐” 하고 웅성대기 전까지는. 쟤‘도’. 명백히 나를 겨냥한 그 말에 나는 전학생을 의식하게 되었다.
내가 소문의 전학생을 마주친 건 몇 주가 흐른 뒤였다. 옆 반과 우리 반 대항의 피구 대회가 있던 그날, 체육 선생은 대회에 참가하진 않더라도 운동장에는 나와 있으라고 지시했다. 엄마는 내게 뛰어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뛰다가 넘어져 피부에 상처라도 나면 감염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다. 나는 체육 시간마다 열외가 되어 교실을 지키거나 운동장 그늘진 구석에 앉아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내가 늘 그랬듯 교실에 있겠다고 하자, 체육 선생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런 대회 때는 함께 자리를 지켜야지. 그래야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 앉아서 친구들 응원도 좀 해주고.”
소속감이라니. 그런 건 이미 내게서 멀어진 단어였다. 첫 학기가 끝날 무렵, 내가 반에서 겉돈다는 걸 깨달은 담임이 어느 날 종례 시간에 나를 교탁 앞으로 불러낸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나를 자기 앞에 세운 뒤, 내 어깨를 단단히 부여잡았다.
“친구를 놀리는 사람은 좋은 친구가 아니라고 선생님이 말했지? 게다가 문영이한테 피 냄새가 나는 이유는, 씻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파서야. 아픈 친구를 놀리면 안 되겠지?”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를 가장 심하게 놀렸던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쟤는 병에 걸린 거예요?” 한참 뜸을 들이던 담임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 놀리면 안 된다.”
그날 이후 놀림은 서서히 잦아들었지만, 차라리 피 냄새로 불릴 때가 더 나았다 싶을 만큼 아이들은 나를 모르는 척했다. 어쩌다 시선이 마주치면, 그들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눈을 돌렸다. 피 냄새라는 별명과 얄밉게 느껴지던 경박한 웃음소리는 그렇게 사라졌다. 내가 병을 옮길까 봐 두려워하느라 아이들은 내 근처에 오지도 않았다. 나를 매개로 반 애들의 소속감이 더 강해진 것이다.
그 아이는 운동장 바깥에 심어진 나무 그늘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나와 같은 오해를 받는, 옆 반의 전학생. 어쩌면 내게 소속감을 줄지도 모르는 아이. 짧은 나뭇가지를 세워 흙바닥에 낙서를 끄적이던 전학생이 고개를 들었다. 통통한 볼살과 팔다리에 붉은 반점이 올라와 있었다. 꼭 온몸에 작은 무당벌레를 얹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반팔 체육복 아래 훤히 드러난 전학생의 맨살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나는 아이들이 보는 게 두려워 한여름에도 늘 긴팔을 입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얘는 남들이 봐도 상관없는 걸까? 전학생은 갖고 놀던 나뭇가지를 내려놓은 채 구령에 맞춰 준비 운동을 하는 아이들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기, 안녕.”
나는 수줍게 인사를 건네며 전학생 옆에 앉았다. 전학생이 고개를 까딱이자, 턱선까지 오는 짧은 단발이 가볍게 흔들렸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 걸치고 있던 카디건의 소매를 걷어 올려 전학생에게 팔을 보여주었다. 그건 나만의 인사였다. 나도 너와 같다는, 같은 고통을 공유하는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인사.
“뭐야?”
전학생은 미간을 찌푸리며 슬며시 몸을 뒤로 뺐다. 예상과 다른 반응에 나는 당황했다. 어떻게 이걸 모르지? 나는 한눈에 널 알아봤는데 말이야. 괜스레 섭섭한 마음이 밀려왔다.
“나도 너처럼 아토피가 있거든.”
“나처럼?”
전학생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나 아토피 없는데. 이건 콜린성 두드러기야.”
“콜린성 두드러기?”
“응. 밖에서 햇볕을 너무 오래 쬐거나 뛰면 생겨. 의사 선생님이 나이가 들면 저절로 없어질 거래.”
“의사 선생님? 너 병원에 다녀?”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전학생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럼 넌 안 다녀?”
“치유하기 위해선 병원을 멀리해야지.”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전학생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며 나는 엄마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엄마가 내게 밥 먹듯이 했던 말, 종일 몇 번이고 반복했던 말 중 하나는 바로 병원과 의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엄마는 현대 의학에 기대다 보면, 몸이 자연 치유력을 잃고 의존적으로 변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병원은 병을 치료하고 몸을 낫게 하는 곳이 아니라, 독한 약으로 그 증상을 잠시 억누르는 곳일 뿐이라고도 했다. “제약 회사가 의료 시스템을 조종하고 있어. 그네들은 다 장사꾼이야. 돈만 내면 불로불사도 가능하다고 할걸?” 나는 불로불사가 뭐냐고 물었다. 엄마는 음, 하고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늙지 않고 영원히 사는 거.”
말도 안 돼요. 내 말에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도 안 되지. 그래서 우리는 병원에 가지 않는 거란다. 갈 필요도 없고 말이야.”
전학생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불로불사를 믿는 거야?”
“너 이상해.”
전학생은 내게서 두 뼘 정도 멀리 떨어져 앉았다. 순간 마음이 조급해졌다. 겨우 나와 비슷한 아이를 찾았는데, 소속감도 느끼지 못한 채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사과하자, 아이는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보면서도 다시 한 뼘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체육복 바지 주머니 안에 숨겨놓았던 초콜릿을 그 애에게 건넸다. 아이는 잠시 눈을 반짝였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군것질하면 두드러기가 더 심해진다고 했어. 난 체육 시간에 더 이상 혼자 앉아 있고 싶지 않아. 빨리 나아서 애들이랑 같이 놀고 싶어.”
나는 포장지를 벗긴 초콜릿을 한입에 넣었다. 전학생이 부러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우리 엄마는 내가 몸 공부 일지를 잘 쓰면, 초콜릿을 먹도록 허락해 줘. 아주 가끔이지만.”
“몸 공부 일지? 그게 뭔데?”
“몸 공부할 때 쓰는 거잖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꾸했다.
“몸 공부가 뭔데?”
나는 입안에서 녹아 작아진 초콜릿을 혀로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전학생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순간 아차 싶었다. 규칙이 떠올랐다. 집안에서 일어난 일을 밖에서 말하지 말 것. 그렇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나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내 몸을 제대로 공부하는 거지… 너는 엄마랑 몸 공부 안 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초콜릿이 완전히 녹아 사라졌다. 나는 혓바닥에 남은 단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넌 숯가루 물도 안 먹고, 만보기도 안 차고, 소금물로 목욕도 안 하고, 매일 아침 코코넛 오일도 안 먹어?”
웩, 전학생이 구토하는 시늉을 했다. “그런 걸 왜 먹어?” 전학생은 그 대답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저 조용히 앉아 각자의 반 아이들이 서로를 향해 공을 던지고, 공에 맞은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웃음을 터뜨리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수업 끝을 알리는 종료음이 울려 퍼지자마자 전학생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쌩하니 학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울적한 기분을 안고 교실로 돌아갔다. 그렇게 전학생과의 인연은 끝인 것 같았고, 나는 무언갈 망쳤다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혼란스러운 마음이 컸다. 나는 모두가 나처럼 몸 공부를 한다고 믿어왔다. 그게 우리 집의 규칙이자, 법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우리 집만의’ 것이었다. 나는 생각에 빠져 남은 수업 내내 집중하지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학생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종례를 마치고 교실 뒷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 전학생이 서 있었다. 전학생은 나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나를? 왜?”
“너한테 줄 게 있어서.”
전학생이 내민 건 작은 튜브형 연고였다. 꽤 자주, 오래 사용한 듯 연고의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두드러기가 심해지면 바르는 연고인데, 너도 써보면 좋을 것 같아서.”
내가 망설이자, 전학생은 내 손에 억지로 연고를 쥐여주었다. 그러곤 등을 돌려 빠르게 걸어 나갔다. 그건 내가 또래 친구에게 받은 첫 번째 선물이었다. 나는 연고를 주머니 안에 소중히 넣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튜브가 찌그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걷느라 집에 도착하기까지 평소보다 긴 시간이 걸렸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거실 창밖으로 아름다운 노을이 지는 게 보였다. 엄마는 언제나 커튼을 젖혀 두었다. 햇빛에는 살균 기능이 있어, 언제든 햇볕을 쬐는 게 내게 좋다고 했다. 그날 저녁 메뉴는 야채찜과 계란말이, 그리고 미역국이었다. 해조류가 피를 맑게 해준다고 말하며 엄마는 미역을 가득 퍼주었다. 피가 맑아지면 뭐가 좋은 걸까. 조금 더 예쁜 빨간색 피를 흘릴 수 있게 되나? 나는 미역의 미끈한 식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미역이 식도 안쪽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을까 봐 걱정했다.
연고 이야기를 꺼낼지 말지 고민하느라 늦게 식사를 마쳤다. 엄마는 늘 약의 부작용을 우려했으므로, 우리 집에는 그 흔한 연고 하나 없었다. 저녁 식사 내내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유난히 조용한 내가 이상했는지 나를 힐끔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먼저 물을 수도 있었겠지만, 엄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엄마는 언제나 그랬다. 결국 내가 진실을 털어놓으리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나를 다 아는 것처럼 굴었다. 나 또한 엄마에게 영영 연고를 숨길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런 게 가능한지도 몰랐다. 엄마는 나의 가족이었고, 가족 간에는 비밀이 없어야 하는 게 우리 집의 규칙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연고를 뺏기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에게 연고를 보여주는 순간, 다시는 그 연고를 볼 수 없게 되리라는 걸 나는 알았다. 나는 미역국을 뒤적거리다 슬쩍 물었다.
“아빠는 언제 와요?”
“곧 오실 거야. 일이 빨리 끝난다면 내일쯤 도착하실 수도 있겠다.”
엄마는 보들보들한 계란말이를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식사를 마친 뒤 엄마와 나는 소파에 앉았다.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의 방영 시간이 다가왔지만, 엄마는 텔레비전 전원을 껐다. “아빠가 오시면 몰아서 봐야겠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고 싶었다. 재방송이 아니라 본방송으로. 재방송에서는 본방송에 나온 일부 장면들이 잘려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우리끼리 보면 안 돼요?” 내가 투정 부리자 엄마는 내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안 돼. 즐겁고 좋은 일을 가족 모두가 함께 나눈다는 규칙을 지켜야지.” 엄마는 내 손이 닿지 않는 거실 찬장 위에 리모컨을 올려두었다. “너무해. 학교에 가면 애들이 다 그 드라마 얘기를 할 거라고요.”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으면 네가 다른 이야기를 먼저 꺼내면 되잖아.” 엄마가 엄숙하게 말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고 나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나는 소파에 몸을 반쯤 파묻은 채 노트에 글을 적는 엄마를 힐긋거렸다. 신발장 옆 서랍장의 두 번째 칸에 두는 그 노트를, 엄마는 ‘치료 일지’라고 불렀다. 엄마는 매일 밤 내 치료 일지를 썼다. 내가 쓴 몸 공부 일지를 토대로 치료법을 연구하고 또 연구했다. 최근 엄마가 새롭게 꽂힌 치료법은 ‘몸을 건조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엄마는 내게 샤워할 때를 제외하곤 최대한 물을 만지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고 일렀다. 피부가 건조해지면 진물 또한 나오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진물 또한 수분이었으니까. 건조해진 피부에 딱지가 생길 테고, 딱지가 자연스레 떨어지고 난 후엔 건강한 새 피부가 올라올 거라고 덧붙였다. 문득 전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혀를 길게 빼며 웩, 하고 토하는 시늉을 하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왜 자꾸 보니?”
내가 엄마를 다섯 번 정도 돌아보았을 때, 엄마는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엄마의 무릎 가까이 다가갔다. 연고에 대해 털어놓을 순간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오늘 나랑 비슷한 병을 가진 친구한테 받았다고, 그 친구는 불로불사가 뭔지도 모르는 것 같았지만 병원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엄마, 다른 집도 다 몸 공부를 해요?”
생각과 달리 내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조금 놀란 듯 가뜩이나 큰 눈을 더 크게 뜬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왜 묻니?”
“그냥… 궁금해서요.”
나는 더듬대며 답했다. 엄마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노트를 툭툭 두드렸다.
“자기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당연하지.”
나는 네, 대답하고는 책가방 깊숙이 연고를 숨겨두었다. 우리 집에선, 적어도 내 앞에선 절대 거짓말해선 안 돼. 머릿속에 엄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엄마와 나는 한 몸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내가 아프면 엄마도 아팠고, 내가 슬프면 엄마도 슬펐다. 내게 거짓말이 금지됐다면, 엄마도 거짓말해선 안 됐다. 그게 공평했다. 그런데 그날 엄마의 말은 어쩐지 거짓말처럼 들렸다.
이튿날 나는 몸 공부 일지에 ‘슬프다’라고 적었다. 그걸 본 엄마는 왜 슬펐냐고,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연신 물어댔다. 나는 그저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슬픈 내용의 책을 읽었다고 대답했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해 외톨이가 된 아이의 이야기였어요.” 엄마는 그렇구나, 하고 짧게 대꾸했다. 엄마, 전학생은 몸 공부를 하지 않는대요. 몸 공부가 뭔지도 몰라요. 나는 목구멍을 타고 기어오르는 말을 애써 삼키며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내 마음을 알아차리곤 나를 안심시켜 주길 바랐으나, 엄마는 “감수성이 풍부한 건 좋은 거야”라고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