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2회)
- 작성일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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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
양수빈
3
동생과 통화를 마친 나는 졸도하듯 잠들었다 깨어났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눈만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침이 6을 가리키고 있었다. 무려 4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긴장이 풀려 그랬나? 심지어 자는 동안 꿈도 꾸지 않았다. 내가 누워 있던 침대 이불보는 객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흐트러짐 없이 깨끗했다. 기절에 가까운 잠이었다. ‘자기는 머리만 대면 자잖아.’ 내가 이렇듯 깊이 잠들 때면, 남편은 부럽다는 듯 말하곤 했다. ‘축복받은 거지.’ 나는 불면에 시달렸던 어린 시절의 보답을 지금에서야 받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조금 기이하고 불친절한 방식이지만,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휴대폰에는 남편으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가 열두 통이나 찍혀 있었다. 나는 서둘러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채 흐르기도 전에 그가 전화를 받았다. “자기 대체 어디야?” 남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머리를 흔들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미안해. 깜빡 잠들었어.” “잠들었다고? 어디서?” 나는 잠시 망설였다. 호텔 예약은 서프라이즈 이벤트였다. 이런 식으로 밝히고 싶진 않았다.
“지금 어디에 있어?” 남편이 감정을 꾹꾹 눌러 담듯 천천히 물었다. 좀처럼 들은 적 없는 목소리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호텔 객실에 있다고 털어놓았다. 예약을 말하지 않은 이유 또한. 피곤해서 침대에 잠깐 눕는다는 게 그대로 잠들어 버린 모양이라고 덧붙이자 그가 급히 전화를 끊었다. 10분쯤 지났을까. 객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거진 손가락 마디뼈가 견고한 철문에 부딪히는 소리. 똑똑똑, 똑똑똑똑. 객실 문을 열자 땀에 젖은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지친 얼굴로 나를 이리저리 돌려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어.”
“신고는 무슨. 오버하지 마.”
나는 멋쩍은 마음을 숨기기 위해 더욱 웃으며 말했다.
“나 이런 일에 트라우마 있는 거 알잖아.”
아, 그랬지. 나는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열 살 무렵, 남편은 동생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네 살 터울의 남동생을 데리고 시장에 놀러 나갔다가 생긴 일이었다. “아주 잠깐이었어. 신발 끈을 다시 묶으려고 잠깐 손을 놓았을 뿐인데…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거야.” 그 이야기를 할 때 남편은 괴로운 듯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당시 남편에겐 어머님에게 빌린 휴대폰이 있었지만, 그는 집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리는 대신 직접 동생을 찾는 쪽을 선택했다. 동생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남편은 동생의 연락을 기다리며 몇 시간 동안이나 시장 바닥을 뛰어다녔다. 하지만 끝내 동생을 찾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 앞에 도착해서도 겁에 질린 채 한참을 문고리만 잡고 있었다고 했다. 마침내 굳게 마음을 먹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 남편이 목격한 건 거실 소파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동생의 옆모습이었다. “형아, 왜 이제 와?” 동생이 막대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며 물었다. “왔니?” 동생 옆에 앉아 있던 어머님이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 어머님은 얼떨떨하게 선 남편에게 2시간 전에 경찰로부터 동생을 보호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다 알고 계셨어요?” 남편은 어머님의 차분한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래.” “그런데 왜 저한테 전화 안 하셨어요?” 어머님은 검지로 남편의 가슴팍을 꾹 눌렀다. 중심을 잃은 남편이 휘청이자, 어머님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네가 책임감이 뭔지 모르는 것 같아서. 동생을 잃어버리는 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 이제 알았지?” 어머님의 의도는 확실히 전달되었을지 모르나, 남편은 그 일로 큰 상처를 받았다. 나는 남편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었을까 싶어. 나였다면, 아이가 겪을 충격이 안타까워서라도 바로 이야기해 줬을 거야. 동생은 무사하다고, 그러니 걱정 말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한참 후에 남편은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 아이는 겁에 질린 채로 길을 헤매게 만들지 않을 거야. 절대로.”
그때가 남편이 처음 아이를 언급한 순간이었다. 5년의 결혼 생활 동안, 아이에 대한 주제가 나올 때마다 나는 은근슬쩍 그 상황을 피했다. 결혼한 직후에는 신혼을 즐기느라 바빴고, 이후에는 이사를 하느라 바빴다. 한창 회사에 다녔던 시절에는 일 핑계를 댈 수 있었고, 퇴사한 지금은 프리랜서로서 자리를 잡고 싶다고, 그것만이 현재 목표라는 말을 버릇처럼 늘어놓았다. 그때마다 남편은 내 어깨를 주무르며 응원의 말을 남겼다. 힘내, 당신이 원하는 게 내가 원하는 거야.
다만 올해는 달랐다. 어느 밤, 집에서 함께 영화를 보던 중 남편이 별안간 어쩌면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라, 하고 말했다. 무슨 기회? 나는 어리둥절해져 물었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악당으로부터 탈출한 주인공 일행이 서로를 얼싸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저런 걸 이룰 기회, 하고 남편이 말했다. “기쁨의 순간을 함께 나눌 사람을 만들 그런 기회.”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 분명해서 나는 짐짓 놀랐다.
그는 아이를 원했다. 물론 아이를 갖고 싶다고 명확히 말한 적은 없었지만, 함께 외출할 때마다 그의 시선이 어린아이들에게 오래 머무는 것을 나는 금세 알아차렸다. “자기라면 멋진 엄마가 될 거야.” 분위기에 휩쓸려 처음으로 안전장치 없는 밤을 보내고 난 뒤, 남편은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웃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그가 너무나 천진해 웃음이 나왔다.
그날 저녁은 내 계획과 다르게 흘러갔다. 나는 객실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 만큼 피로에 젖어 있었다. 그렇게 깊은 잠을 잤는데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는 게 놀라웠다. 남편은 내 안색을 살피더니, 음식을 시켜 먹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가 시킨 치킨 두 조각을 겨우 먹은 뒤 다시금 곯아떨어졌다.
이튿날 눈을 뜨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동생과의 통화였다. 내가 꼭 봐야 하는 게 대체 무엇일까? 나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동생이 보낸 문자메시지가 와 있었다. %가능한 시간과 날짜를 알려줘.% 나는 그 메시지에 답장하기 위해 여러 번 글자를 쳤다가, 이내 전부 지워냈다. 동생을 만나고 싶은 마음과 이대로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다. 나는 곤히 잠든 남편 옆에 앉아, 창문 밖으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둠이 걷히고 빛이 스며드는 광경을, 끝없이 반복되는 시간을 지겹게 여기기 시작했던 것이.
제지 박람회에 다녀온 후 남편에겐 새 친구가 생겼다. 두 사람은 친환경 점증제로 화장품 신소재를 만들어 낸 기업 부스에서 만났다. 남편의 새 친구는 외동딸의 선물을, 남편은 내 선물을 고르며 짧은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그 후로도 여러 부스에서 계속 마주쳤고 결국 명함까지 주고받게 되었다고 했다. 남편은 간만에 사귄 새 친구와의 연락을 즐겁게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남편보다 두 살 어린 남자로, 한 출판사에서 10년 넘게 근무 중이라고 했다. 대학 교재를 출간하는 곳이었는데, 요즘 들어 부쩍 일이 줄어드는 바람에 직원을 셋이나 해고하느라 아주 진을 뺐다고 했다. “그 사람도 종이를 좋아한대?”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대학 동창 모임을 제외하면, 남편에겐 따로 연락하는 친구가 없었다. “원래 남자끼리는 연락 자주 안 해. 그리고 나보단 자기가 더 심각하지 않아? 자기는 연락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잖아.” 남편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남편의 말대로, 나는 친구가 없었다. 전 직장 동료들과는 퇴사를 기점으로 자연스레 멀어졌고, 10여 년 전 야간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결혼 후 휴대폰 번호를 바꾸면서 연락이 끊겼다. 찾으려면 찾을 수야 있겠지만, 나는 친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관계에 불안을 느꼈다. 서로의 고민과 고통을 나누며 가까워지는 관계는 이제 지긋지긋했다. 남편은 예외였다. 남편에게 고통을 털어놓은 적은 없었지만, 나는 내가 맺어온 그 어떤 관계에서보다 그에게 강한 친밀감을 느꼈다. 엄마가 만약 이 사실을 알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 사람이 고통스러우면, 너도 고통스럽니? 네가 고통을 느끼면 그 사람도 고통을 느끼니? 나만큼 너를 사랑하니?
제지 박람회에서 돌아오고 한 달쯤 지난 무렵이었다.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이 저녁 내내 내 눈치를 살피다 친구를 초대해도 되겠느냐고 슬쩍 물어왔다.
“친구? 어떤 친구?”
“박람회에서 만난 출판사 직원, 기억나?”
물론 기억하고 있었다. 남편은 그가 꼭 한 번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어 한다고 이야기했다. 여태껏 우리가 집에 초대했던 사람은 시댁 식구들뿐이었다. 음… 나는 곤란하다는 듯 남편을 바라보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집에 초대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무엇보다 남편과 그는 만난 지 고작 한 달쯤 된 사이였다. 평소 같으면 역시 안 되겠지? 안 된다고 할게, 하고 꼬리를 내렸을 남편이 어쩐 일인지 말을 더했다.
“딸아이가 여덟 살인데, 작년에 아내랑 이혼했대. 그 후로 아이가 너무 우울해하는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좀 환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네.”
나는 속으로 ‘헛소리’라고 중얼거렸다. 여덟 살 아이가 서른여섯 살 여자와 마흔 살 남자를 만나는 게 무슨 환기가 된다는 말인가? 나는 남편의 팔을 툭 건드리며, “이상한 말인 거 알지?” 하고 물었다. 남편은 이마를 문지르며 멋쩍게 웃었다.
“남자 혼자 챙겨줘 봤자 얼마나 잘 챙겼겠어. 우리가 밥도 좀 해주고, 겸사겸사 애도 좀 봐주고 그러면 좋으니까.”
나는 절대 싫다고 대답했다. 낯선 남자도 모자라 우울증 걸린 어린아이라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남편은 부드럽게 웃으며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싫다니까?” 내 말에 그는 곤란하다는 듯 입술을 꾹 다물었다.
며칠 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남편이 다시 그 이야기를 꺼냈다.
“그 친구 딸 말이야, 요즘 많이 아프다네?”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나는 이전보다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남편은 고개를 저으며 정확히는 모른다고 대꾸했다.
“모른다니?”
“아이가 말을 아예 안 한대.”
“함구증인가?”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적 함구증이라는데, 아무래도 엄마가 그리워서 그러는 거겠지.”
문득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데려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대.” 남편이 목소리를 낮추어 이야기했다. 엿들을 사람이 없는데도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식사를 다 마칠 때쯤, 나는 그와 그의 딸을 집으로 초대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눈이 휘둥그레진 남편이 정말? 진짜 괜찮겠어? 하고 물었다. 그를 초대하지 않는 한, 남편은 앞으로 저녁 시간마다 그의 이야기를 반복할 것이 분명했다. 그럴 바엔 빨리 초대하는 게 나았다. 한편으론, 그의 딸이 궁금하기도 했다. 엄마가 떠난 뒤 알 수 없는 병을 앓는다는 아이가.
남편의 새 친구와 그의 딸은 그 주 주말 오후에 초인종을 눌렀다. 남편과 나는 점심으로 내놓을 월남쌈과 떡볶이를 준비하던 도중 그들을 맞이했다. 떡볶이는 아이를 위한 음식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현관문에 몸을 밀착해 남자가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남자와 달리, 아이는 멀뚱히 나를 올려다보기만 했다. “이모한테 인사해야지.” 남자의 말에 아이는 겨우 고개만 까딱였다. 나는 웃으며 아이가 입은 새빨간 원피스를 바라보았다. 새것인 듯 주름 하나 없이 빳빳한 원피스와 달리, 아이의 긴 머리는 엉성하게 묶여 있었다. 아이는 신발을 벗은 뒤, 그 신발을 품에 안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얘, 신발은 두고 들어가야지.” 내가 다급히 말리자, 아이는 등 뒤로 손을 뻗어 신발을 숨겼다. 아이고, 남자가 난처한 듯 중얼거렸다.
“죄송하지만, 그냥 안고 있게 둬도 괜찮을까요? 애가 신발에 대한 집착이 커서요. 집에서도 자기 신발은 꼭 집에 들여놓으려 하더라고요.”
아, 그러면 옷도 더러워질 텐데… 나는 도움을 요청하듯 남편을 보았으나, 남편은 식탁 위로 음식을 나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코가 둥근 메리제인 신발을 품에 든 아이의 모습이 꼭 작은 인형을 안은 것처럼 보였다. 얼굴 없는 까만 인형을 껴안은 작고 조용한 아이.
우려와 달리 식사는 평화롭게 이어졌다. 아이는 떡볶이를 먹을 때를 제외하곤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애는 아픈 게 아니라 다친 거라서 치유가 필요 없단다.# 별안간 엄마 목소리가 떠올라 흠칫 놀랐다. 나는 식사하는 동안 아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허벅지 위에 신발을 올려두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아이는 몹시 얌전하고 평범해 보였다. 식사를 마친 뒤, 아이에게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빤히 바라보다 남자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남자가 눈짓하자, 이내 아이스크림을 크게 베어 물었다. 아이는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금세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이 아이의 손목을 타고 흘렀다. 아이는 혀를 내밀어 손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아이가 아주 예쁘게 생겼어요.”
나는 남자에게 뜨거운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애 엄마를 많이 닮았어요.”
남자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이를 돌아보는 남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이는… 좀 어때요?”
나는 아이가 듣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남자가 덩달아 속삭였다.
“제 생각엔 마음의 병 같아요. 애 엄마가 떠난 후로 저렇거든요.”
“그래도 생각보단 건강해 보이는데.”
남편이 불쑥 끼어들었다. 남자는 건강하긴 하지만, 하고 말을 이었다.
“지난 1년간 딸아이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어요.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래요. 다른 말은 안 하더라도 아프면 아프다, 배고프면 배고프다 정도는 했으면 좋겠는데….”
그가 말끝을 흐리며 아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아이의 입가가 번들거렸다.
“애 엄마가 있을 땐 말을 참 잘했어요. 심심할 틈이 없었다니까요. 말도 얼마나 잘 듣는데요. 학교 공부도 알아서 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해서 늘 책상 앞에 붙어 있어요.”
“아이가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나을까?”
남편이 불쑥 물었다. 남자가 그럼요, 하고 대답했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죠. 두 분은 아이 계획 없으세요?”
그제야 나는 남편이 왜 그토록 남자를 초대하고 싶어 했는지 깨달았다. 남편은 남자를 통해 내 마음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제법 엉큼한 생각을 했네. 나는 두 남자 몰래 웃었다. 남자는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얼마나 귀여웠는지, 탄생만으로도 자신에게 얼마나 큰 행복을 주었는지 모른다고 떠들어 댔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며 아이를 힐끔거렸다. 아이는 빈 막대를 손에 쥔 채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아이가 화장실에 가고 싶나 봐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두 남자의 시선이 따라왔다.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아줌마랑 화장실 갈까?” 하고 물었다. 아이는 망설임 없이 내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나는 아이를 안방으로 이끌었다. 방문을 닫자, 아이가 나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혹시 진짜로 화장실 가고 싶었니?” 아이가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아이를 데려온 건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다.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우리 부부의 2세 계획을 늘어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게 어떤 마음인지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멀뚱히 서 있는 아이를 향해 손짓했다. 아이는 여전히 신발을 들고 있었다.
“침대에 앉으려면 신발을 내려놓아야 해.”
그러자 아이가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고집스레 닫힌 입매를 보니 어쩐지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이를 향해 다시 손을 흔들었다. “괜찮으니 그냥 앉아.” 잠시 머뭇대던 아이가 침대에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나는 엉망으로 헝클어진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레 귀 뒤로 넘겨주었다.
“네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이니?”
묵묵히 앉아 있던 아이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아프지 않은 거니?”
아이는 신발 앞코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행이구나, 하고 말했다.
“아프진 않지만, 말하고 싶지도 않은 거지?”
아이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대 앞으로 다가갔다. 화장대 서랍에는 남편이 넣어둔 사탕이 들어 있었다. 군것질을 좋아하는 남편은 사탕이나 초콜릿을 집안 곳곳에 두곤 했다. 나는 복숭아, 사과, 딸기, 수박 맛 사탕을 집어 아이에게 내밀었다.
“사탕 좋아하니? 하나만 골라보렴. 많이 먹으면 이가 썩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진짜 아플 거야.”
조심히 손을 뻗은 아이가 딸기 맛 사탕을 골라 집었다. 나는 웃으며 사탕 껍질을 까 아이의 입에 넣어주었다. 아이는 입술을 오물대며 열심히 사탕을 빨아 먹었다.
“딸기 맛이 제일 좋니?”
“병원에 가면 선생님이 사탕을 줘요.”
나는 깜짝 놀라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이의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지만, 부드럽고 영롱했다. 목소리가 예쁘네, 하고 웃으며 말하자 아이가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의사 선생님이 주는 사탕은 다 딸기 맛이에요. 전 익숙한 게 좋아요.”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아이를 나는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아이는 까드득 소리를 내며 사탕을 깨물어 먹었다.
“아줌마는 어릴 때 병원에 가본 적이 없어.”
나도 모르게 그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는 남편에게조차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고, 앞으로 사는 동안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생각이 없었다. 처음 보는 낯선 꼬맹이에게 무슨 말을 한 거지? 나는 당황했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당혹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와 달리 아이는 태연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왜요?”
나는 아이의 긴 머리카락 끝을 만지작거렸다. 아이는 내가 자기 머리를 만지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머릿속으로 말을 고르고 고르다 겨우 입을 열었다.
“엄마가… 아줌마의 엄마가 병원에 보내주지 않았어.”
“왜요?”
나는 실소를 흘렸다.
“왜냐하면, 당신 스스로 나를 치료할 수 있다고 믿었거든.”
“아줌마 엄마가 의사였어요?”
“아니. 그래서 문제였지.”
아이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우리 엄마도 그랬어요. 엄마 손은 약손이라서 다 고칠 수 있다고 했어요.”
문고리를 잡은 순간 아이가 말했다. 순간 그것과는 다르다고, 네가 상상할 수도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뿐이었다. 다 무용한 일이었다. 아이 또한 침대에서 내려왔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아이가 내 옷자락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
“아빠한텐 비밀이에요.”
“뭐가?”
“제가 말한 거요.”
“왜? 네가 말하면 아빠도 좋아하실 텐데.”
아이는 우물쭈물하다 간신히 말했다.
“내가 말을 안 해야, 아빠가 나를 더 사랑하니까요.”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엄마가 떠났다는 사실에 잔뜩 위축된 아이를 위로해 주고 싶다가도, 아이가 마음껏 오해하도록 내버려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 하고 짧게 답하자마자 나는 후회했다. 방 밖으로 나가자, 소파에 앉아 대화를 나누던 남편과 남자가 동시에 우리를 돌아보았다. 나는 아이의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놓으며 “아이가 졸린 것 같아요” 하고 말했다.
남자가 아이를 데리고 돌아간 뒤, 우리는 밀려오는 피로에 뒷정리도 하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웠다. 남편은 내게 방에서 아이와 뭘 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벽을 향해 돌아누우며 “하긴 뭘 해, 사탕 준 게 전부야” 하고 답했다. 남편은 아이가 입은 빨간 원피스와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칭찬했다. 말은 안 해도, 몹시 예의 바른 아이인 것 같다고도 했다. 그래, 맞아, 나는 대강 맞장구를 쳤다.
“자기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뭐가?”
등 뒤로 남편이 몸을 뒤척이는 게 느껴졌다.
“만일 우리 아이가 그 아이처럼 된다면 말이야.”
“그 아이처럼?”
나는 조용히 몸을 돌려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갑자기 말을 안 하거나 알 수 없는 병에 걸린다면.”
남편은 나를 향해 돌아누워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이목구비가 희미하게 보였다. 나는 입술만 달싹이다가,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과일을 먹지 않았다. 아니, 먹지 않았다는 표현은 너무 손쉬운 것 같다. 더 정확히는, 과일을 배척했다. 엄마가 아토피의 적이 수분이라고 굳게 믿던 때였다. 엄마는 수분 많은 과일이 내 몸에 통증을 더 유발할 거라고 말했다. 엄마는 급식에 과일이 나오면 먹지 말고 버리거나,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내게 도시락을 싸주지 않고 급식을 먹게 했다. 내가 친구들과 다르게 보이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도 그렇게 했다. “특별한 것과 특이한 건 달라. 넌 특별한 아이지만, 특이해 보여서 좋을 건 없거든. 적어도 집이 아닌 곳에선 말이야.”
나는 엄마의 명령을 잘 따랐다. 수박, 복숭아, 포도, 바나나, 오렌지… 급식에 과일이 나오면 손도 대지 않고 버렸다. 딱 한 번, 엄마의 말을 어길 뻔한 적이 있었다. 후식으로 오렌지 한 조각이 나온 날, 은색 식판에 놓인 오렌지를 빤히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혀로 핥은 것이다. 오렌지는 차가웠고 몹시 향긋했다. 나는 앞니로 오렌지를 살짝 깨물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을 뗐다. 나는 손톱을 세워 오렌지 껍질을 벗긴 뒤 알맹이는 버리고 껍질만 챙겼다. 내 손에선 종일 상큼한 오렌지 향이 났다.
“우리 딸한테 좋은 냄새가 나네.” 그날 저녁, 내 손을 잡고 킁킁대는 엄마에게 나는 학교 화장실 비누가 오렌지 향으로 바뀌었다고 둘러댔다. “너무 많이 쓰진 마. 향이 강할수록 합성 향료가 많이 들어갔다는 뜻이거든. 합성 향료는 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으니, 너는 각별히 조심해야 해. 네 몸은 몹시 예민하잖니.”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향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 그러니까 껍질이 완전히 수분을 잃고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나는 가방 안에 오렌지 껍질을 넣어 다녔다.
초등학생 때까지 나는 전형적인 ‘말 잘 듣는 착한 딸’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텔레비전에 무례한 아이들, 일탈을 일삼으며 부모에게 반항하는 아이들이 나올 때마다 그렇게 말했다. 우리 딸은 정말 착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그때마다 나는 착한 아이다운 웃음을 지었다. 잇몸이 많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만 입꼬리를 올리고, 고개를 옆으로 아주 살짝만 기울이는 웃음이 바로 착한 아이 웃음이었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착하고 얌전한 여자 주인공들의 표정을 따라 한 것이었는데, 그 웃음은 효과가 아주 좋았다. 그 웃음 한 번이면 엄마 아빠는 여전히 내가 착한 딸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 진실이었다.
내가 과일을 처음 먹은 건 열 살 때였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담임 선생이 별안간 딸기 한 상자를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담임은 우리 반 남자아이의 이름을 부르곤, 그 애의 부모님이 딸기 농사를 하시는데, 이번에 농사가 아주 잘 되어 선물로 한 박스를 보내주셨다고 이야기했다. 모두의 시선이 그 남자아이를 향했다. 남자아이는 쑥스러운 듯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귓바퀴가 딸기보다도 빨갰다. 담임은 반 아이들에게 딸기를 한 알씩 나눠주었다. 개수가 많지 않아, 한 명당 딱 한 알씩만 받을 수 있었다. “부모님께 맛있게 잘 먹었다고 전해드리렴.” 담임은 여전히 귀 끝이 붉은 남자아이에게 말을 전한 뒤, 남은 딸기 세 알을 챙겨 교무실로 내려갔다. 아이들은 시끄럽게 떠들어 대며 딸기를 씹었고, 교실 안에 싱그러운 딸기 향이 가득 퍼졌다. 나는 휴지 위에 올려둔 딸기를 손톱으로 쿡 찔렀다가, 양옆으로 굴려보았다. 콧김을 내뿜으며 딸기의 냄새를 맡았다.
작은 벌레를 보듯 딸기를 한참 내려다보는데, 뒷자리 아이가 내 등을 쿡 찔렀다.
“너 안 먹을 거면 나 주라.”
평소라면 망설임 없이 그 애에게 딸기를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순간, 선뜻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먹을 거야, 대답하자 그 애의 얼굴이 실망감으로 물들었다. 이윽고 나는 딸기를 한입에 집어삼켰다. 향긋한 내음이 입안에 퍼지며 침이 고였다. 내가 먹어본 그 어떤 음식보다도 맛있었다. 나는 딸기 꼭지를 떼어내 휴지 위에 올려둔 뒤 조심스레 접었다. 오렌지 껍질을 간직했을 때처럼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푸릇한 꼭지에 밴 딸기 향을 맡기 위해 나는 그날 틈날 때마다 휴지를 펼쳐 냄새를 맡았다. 오렌지 껍질에 비하면 희미한 향이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오직 나만이 그 향을 맡을 수 있다는 점이.
문제가 생긴 건 하교 후 집에 도착해서였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엄마를 부르며 닫힌 방문들을 열어보았다. 엄마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나는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외출복 상태로 침대에 눕는 건 엄마가 금지한 수많은 것 중 하나였다. “밖에는 온갖 세균이 득실거려. 그러니 외출 후의 우리 몸은 세균 덩어리나 마찬가지야. 씻지 않고 침대에 눕는 건 온갖 병균을 들이겠다고 선언하는 거나 다름없어. 알겠니?”
그렇지만 나는 출장에서 돌아온 아빠가 집에 돌아온 복장 그대로 안방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눕는 광경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아빠에게 화를 내는 대신 아빠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방문을 닫아주었다. 그건 좀 불공평하지 않나? 나는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집안의 규칙이 어째서 아빠에게는 통하지 않는지. 언젠가 내가 불만을 토로했을 때, 엄마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빠는 자주 떠나시잖니. 집에 올 때만큼은 편하게 계시는 게 우리에게도 좋지 않겠어?” 나는 그게 어째서 우리에게도 좋은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엄마를 보며 나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도 아빠처럼 자주 집을 떠나면, 이 규칙들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걸까?
어쨌든 그날, 나는 침대에 누운 채 깜빡 잠이 들었다. 낮잠 또한 엄마가 금지한 것 중 하나였다. 낮에 잠을 자면, 몸이 밤이 되었다고 착각해서 호르몬이 불균형해진다는 게 그 이유였다. 엄마는 자기의 모든 말에 명확한 근거를 드는 걸 좋아했다. 대부분은 내 몸과 건강에 관한 거였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대긴 했지만, 결국 엄마가 말하는 모든 것은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나를 건강한 아이로 기르기 위해서. 병원에 가지 않고 자체적으로 치료법을 연구하는 것도, 나를 치유의 길로 이끌기 위한 일이었다.
기절하듯 잠들어 있던 나는 허벅지 부근에서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느끼곤 눈을 떴다. 치마가 말려 올라간 탓에 오른쪽 허벅지가 훤히 드러났다. 나는 상체를 세워 앉았다. 잠결에 계속 긁고 있었던 건지, 오른쪽 허벅지에 손톱자국이 나 있었다. 자세히 보니 허벅지 전체에 동그랗고 붉은 발진이 돋아나 있었다. 당혹스러운 와중에도 손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반드시 허벅지를 긁으라고 명령받은 로봇처럼 손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다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찬물이라도 끼얹을 요량이었으나, 거울을 본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눈가와 입술이 퉁퉁 부어 있었다. 입술은 평소 두께의 두 배 이상 부풀었고, 눈두덩이는 너무 두툼해져 눈동자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아토피 증상과는 확연히 달랐다. 거실로 뛰쳐나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채 울리기도 전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몸이 이상해요.” 나는 울먹이며 엄마를 불렀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내 얼굴과 허벅지를 꼼꼼히 살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얼굴과 허벅지 외에 발진이 올라온 부위는 없었다. “숨쉬기 어렵니?” 나는 울먹이며 괜찮다고 답했다. 엄마는 간지러움에 몸부림치는 나를 앉혀두고는 현관 옆 서랍장에서 몸 공부 일지를 꺼내 왔다. 오늘 날짜가 적힌 페이지가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한 엄마가 내게 설명을 요구하듯 수첩을 들이밀었다. “너무 졸려서… 깜빡 잠들어 버렸어요.” 엄마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곤 내게 오늘 먹은 것들과 만진 것들을 전부 이야기하라고 종용했다. 나는 급식에 나온 음식들을 하나씩 나열했다.
“흰밥, 콩나물국, 시금치 무침과 제육볶음을 먹었고… 길에서 전단지를 한 장 받았어요.”
“그게 끝이야?”
엄마가 내 턱을 움켜쥐고 물었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엄마는 널 고칠 수 없어.”
그럼에도 나는 망설였다.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엄마가 실망할까 봐 두려웠다. 물론, 다시는 딸기를 먹지 못하게 되는 게 두렵기도 했다. 엄마가 내 어깨를 세게 붙잡았다. “지금 이 상태가 좋은 거지, 그렇지?” 나는 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곤 아주 작은 목소리로, 힘겹게 털어놓았다. 사실 딸기 한 알을 먹었다고. “딸기?”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규칙을 어겼구나.” 나는 죄송하다고, 처음부터 먹을 작정은 아니었다고 변명했다. 잠시 골몰하던 엄마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엄마는 나를 거실 정중앙에 앉힌 뒤 엄지로 내 아랫입술을 꾹 눌러 입을 벌리게 했다. 그러곤 꼼꼼하게 입안을 살폈다. 엄마는 고개를 비스듬히 숙인 채 입천장까지 살핀 후에야 입술을 놓아주었다.
“아무래도 네가 딸기 알레르기가 있나 보다.”
“알레르기요?”
“특정 음식에 몸이 이상 반응을 보이는 현상이란다. 지금 너처럼 말이야.”
나는 알레르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그 질문을 던진 이유는, 알레르기의 사전적 정의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 내게 딸기 알레르기가 있는 건지, 그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 눈꺼풀이 둥글게 부푸는 바람에 눈두덩이가 무겁게 느껴졌다. 엄마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혀를 쭉 내밀어 보렴.”
“왜요?”
“치료를 해야 하니까.”
나는 혀를 길게 빼물었다. 엄마는 무감한 눈으로 혀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언제까지 해야 해요? 내가 묻자 엄마는 내가 그만해도 좋다고 할 때까지, 하고 대답했다. 5분쯤 지나자 혀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혀뿌리는 쥐가 났을 때처럼 저릿저릿했고 미처 삼키지 못한 침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방바닥에 고인 침방울을 보며 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뒤로하고는 화장실로 향했다. 솨, 물소리가 들렸다. 한참 후 화장실에서 나온 엄마가 내 혀를 입안으로 밀어 넣고는 입가에 묻은 침을 맨손으로 닦아주었다. 그러곤 나를 화장실로 데려간 뒤 옷을 벗으라고 지시했다. 내가 옷을 벗는 동안, 엄마는 욕조에 가득 찬 물에 손을 넣어 온도를 쟀다. “들어가.” 나는 욕조에 들어가 앉았다. 몸을 웅크리고는 물이 일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소매를 두어 번 접은 엄마가 내게 말했다.
“넣어.”
“뭘요?”
나는 어리둥절해져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네 머리.”
엄마는 다시금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5초면 돼. 나는 홧홧한 입술부터 꼭 감은 눈까지 천천히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엄마 몰래 딸기를 먹는 데 하루 치의 용기를 다 써버려, 이제 엄마의 말을 거역할 용기는 남아 있지 않았다. 뜨거운 온도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었다. 아니, 들려고 했다. 엄마의 손이 내 목덜미를 쥐지 않았다면 분명 고개를 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머리를 들지 못하도록 내 목을 꾹 눌렀다.
나는 입을 벌리곤 팔을 휘둘렀다. 입안으로 물이 밀려 들어오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눈앞이 새하얘지며 숨이 막혔다. 실제론 10초도 걸리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아주 긴 시간 물에 수장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곧 손을 뗀 엄마가 내 얼굴을 잡아 올렸다. 나는 급히 숨을 들이켜며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눈가에 맺힌 물 탓에 엄마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엄마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번 더 할 거야.”
엄마가 욕조 마개를 빼냈다. 물 빠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엄마는 붉게 달아오른 내 몸을 수건으로 정성껏 닦아주었다. 나는 엄마가 준비한 잠옷을 입고 거실 한복판에 앉았다. 내 등 뒤에 앉은 엄마가 젖은 머리를 말려주었다. 물속에 오래 있었던 덕분인지 가려움은 조금 옅어졌지만 여전히 입술과 눈가, 오른 허벅지가 벌겋게 부어 있었다. 엄마는 드라이기를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겨 잡으며 내 머리를 말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나는 멍하니 앉아 화장실에서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 뒤통수를 꾹 누르던 엄마의 단호한 손바닥과, 뜨거운 물이 코와 입안으로 밀려 들어오던 순간의 괴로움. 나는 고개를 살짝 꺾어 엄마를 돌아보았다. 엄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앞을 봐야지” 말하며 내 머리를 정면으로 돌려놓았다.
“좀 어때?”
엄마가 바싹 마른 내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물었다. 나는 아까보다 나아요, 하고 대답했다. 절반 정도만 진심이었다. 낮잠에서 깬 직후보다 나은 건 사실이었지만, 아까와 같은 ‘치료 과정’을 겪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엄마가 했던 그 행동이 치료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술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틀어준 영화 때문이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태어나자마자 아빠를 잃고 엄마와 단둘이 살아온 남자였다. 남편의 죽음에 죄책감을 품고 있던 그의 엄마는 틈날 때마다 차가운 물을 가득 채운 욕조 안으로 잠수했다. 코와 입을 틀어막은 그녀는 숨이 끊어질 듯 넘어가는 순간까지도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때마다 그녀의 몸을 물 밖으로 끄집어내는 사람은 그의 아들이었다. 그 탓에 아들은 물을 끔찍이도 싫어했지만, 한편으론 물에 이끌려 밤이 되면 남몰래 바다에 들어간다. 영화는 지루했고, 같은 장면이 자주 반복되었다. 영화가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 반 애들은 영화에 완전히 흥미를 잃은 채 저들끼리 속닥거리거나 책상 위에 엎드려 잠을 청했다. 수업 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영화에 집중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노려보았다. 주인공의 엄마, 그녀는 분명 스스로를 벌주고 있었다. 그녀의 행동이 체벌이라면, 엄마가 내게 했던 것 또한 체벌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순간들은 고문에 가까웠다. 나는 천천히 호흡하며 그녀가 물에 들어가는 장면, 수면 위로 기포가 올라오는 장면들을 눈에 담았다. 머릿속에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엄마에게 나를 벌하고 싶은 마음만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를 낫게 하고 싶은 간절함도 있었으리라. 이상하고 바보 같은 일이지만, 그게 바로 내가 엄마를 마음껏 원망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날 나는 영화의 결말을 보지 못했다.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맞춰 영화를 멈춘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자, 다음 시간엔 물을 주제로 그림을 그릴 거야.
엄마에게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이 공존했던 것처럼, 나 역시 엄마를 향해 상반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사랑했다. 엄마는 내 고통을 자기 것처럼 받아들이고, 그것을 없애는 데 매달렸다. 그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의 말을 믿었고, 믿었기에 따랐다. 엄마는 오직 나만을 사랑한다고 말했고, 나를 위해 살았다. 동시에 나는 엄마를 혐오했다. 엄마가 나를 병원에 데려갔으면, 의사의 진단을 한 번이라도 받게 했으면 ‘피 냄새’라는 놀림을 들을 일도, 한쪽 귀의 청력을 잃을 일도,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나가 가족과 연을 끊고 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딸, 엄마 믿지? 엄마는 너에게 해가 될 일을 절대 하지 않을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파티장에 잠옷 차림으로 내팽개쳐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치스러움이 발끝을 타고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나는 그 말에 꼼짝도 못 했다. 그저 어깨를 말아 몸을 작게 만들어 발등만 내려다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엄마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다 덧붙였다.
“난 언제나 증명할 수 있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스무 살이 되고 집을 나온 후에, 나는 병원에서 알레르기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내가 딸기에 2단계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알고 계셨나요?” 나는 알고 있다고 답했다. “아쉽지만 딸기는 평생 안 드시는 게 좋겠어요. 다행히 다른 베리류 과일에는 알레르기가 없네요.” 의사의 말에 나는 알겠다고 대꾸했지만, 이따금 나 자신을 해치고 싶어질 때마다 딸기를 먹었다. 딸기 케이크, 딸기 우유, 딸기 잼, 딸기 사탕…. 그중에서도 가장 알레르기 반응이 심한 건 딸기 그 자체였다.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본연의 딸기. 딸기를 먹을 때마다 나는 묘한 짜릿함을 느꼈다. 알레르기 반응으로 혀와 입천장이 따끔거리는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엄마를 거역했다는 쾌감, 엄마의 믿음을 저버리고 끝내 엄마 곁을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휘몰아쳤다. 내가 떠남으로써, 엄마는 20년에 걸쳐 증명하고자 했던 숙원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알량한 희열은 금세 사라지고 나는 고요히 가라앉았다. 무엇보다도 나를 잠식하는 건 여전히 내가 엄마를 떠올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나는 남편이 잠든 것을 확인하곤 휴대폰을 챙겨 안방을 빠져나왔다. 불 꺼진 거실 소파에 앉아 동생에게 온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동생과 통화를 나누고, 집 주소가 적힌 문자를 받은 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그간 나는 그 주소로 찾아가지도, 동생에게 연락하지도 않았다. 지난주까진 사흘에 한 번꼴로 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나는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자동 메시지를 보내며 전화를 피했다. 동생은 재촉해서 미안하지만, 가능한 한 빨리 와줬으면 한다는 답신을 보냈다. 간절하고 예의 바른 문장들에 마음이 흐트러졌다.
그런 밤이면 나는 홀로 거실에 나와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생각했다. 동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엄마 말이 맞았네.” 엄마는 나에 대해 뭐라고 이야기했을까? 기껏 키워놨더니 집을 나가 연을 끊어버린 배은망덕한 딸? 아니면, 실패작이라고 했을지도 모르지. 그 말을 떠올린 스스로에게 나는 상처 받았다. 집을 떠난 후 나는 엄마에 관련된 모든 것을 잊으려 했다.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고시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집을 구하기 전까진 피시방이나 24시간 만화 카페에 죽치고 지냈다. 연인이 생기면 그의 집에서 머무르기도 했다. “내가 언니를 어떻게 찾았는지, 왜 찾았는지, 정말 그런 게 궁금해?” 동생은 내게 그렇게 물었다. 내가 진정 궁금해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듯 확신에 찬 말투였다. 굳게 다문 입술 새로 조소가 새어 나왔다.
동생이 보낸 집 주소는 내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지하철로 30분 정도 걸렸고, 직통 버스도 있었다. 5년 전 남편과 신혼집을 고를 때 고려해 본 동네이기도 했다. 어쩌면 동생과 내가 스쳐 지나간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여태껏 나는 동생을 기억 저편으로 옮겨둔 뒤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엄마와 아빠, 그들과 함께 살던 집. 엄마가 문고리를 빼둔 나의 작은 방이 사는 동안 불쑥 떠오른 적은 있었으나 동생만큼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 아이를 내 동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걸까? 그간 형제 관계가 어떻게 되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외동이라고 답했다. 딱 한 번, 스물두 살쯤 만취해 동생이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지만, 다행히 술자리의 모두가 취한 덕에 내 말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집을 떠났을 때, 동생은 겨우 일곱 살이었다. 동생과 내가 함께 지냈던 시간은 고작 4년이었다. 그 애는 이제 스물세 살이 되었다. 그 집에서, 엄마와 함께 자라 기어코 어른이 된 것이다. 새삼스러운 사실에 나는 약간의 경의를 느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그 아이는 엄마와 함께 살았으며, 엄마를 돌보고, 엄마의 마지막을 지켜주었다. 왜? 의구심이 들었다. 그 애는 왜 떠나지 않았을까. 엄마가 한 번 자기를 거두어 주었기 때문에, 이젠 자기가 엄마를 거두어 줄 차례가 됐다고 생각한 걸까? 어찌 됐든 딸로서 내가 해야 했던 일들을 모조리 그 아이가 대신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나는 도망쳤고 동생은 남았다. 그것은 명백한 진실이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초조해졌다.
나는 휴대폰을 켜고 동생에게 보낼 메시지를 적었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아예 몰랐으면 좋았겠으나, 동생의 존재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 이상 평화로운 일상을 되찾을 방법은 동생을 만나는 것뿐이었다. 나는 엄지에 힘을 실어 문장을 완성했다. 연락이 늦어져서 미안하다고, 바쁜 일이 조금 마무리되어 이제야 연락하게 되었다고 적었다.
그 말은 거짓이었다. 나는 마감 기한이 임박한 일을 시작조차 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건 내가 퇴사 후 반년 만에 처음 얻은 일감이었다. 프리랜서에게 마감은 목숨줄과 다름없었다. 편집 디자인 업계는 몹시 좁아서 한 다리만 건너도 모두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기한을 어겨 불성실하다는 낙인이 찍힌다면 다시 일을 얻긴 힘들 터였다. 게다가 이 일은 남편이 지인에게 부탁해 얻어낸 거였다. 그 모든 사실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음에도 나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동생은 눈치채지 못할 테지만, 나는 메시지 안에 조금의 원망을 눌러 담았다. 내가 이렇게 바쁜데도, 이렇게 정신없이 사는데도 불구하고 너의 연락을 잊지 않았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나는 동생이 보냈던 주소를 재차 확인했다. 주소 근처 카페를 찾아 동생에게 전달하며 이곳에서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동생은 1시간쯤 지나 답신을 보내왔다. %알겠어.% 잠시 후, 동생이 메시지 하나를 더 보내왔다. %언니, 늦게 자면 몸 상해. 잘 자.%
나는 약속 시간보다 2시간 일찍 카페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즈음이라, 카페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카운터에는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옮길 수 없습니다’라는 규칙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신중히 자리를 골랐다.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게 나부끼지 않으며, 단체 손님 테이블과는 멀리 떨어진 곳. 무엇보다 출입문이 잘 보이는 곳을 찾았다.
커피는 금방 나왔다. 태도가 묘하게 퉁명스러운 직원이 내가 앉은 자리까지 찻잔을 가져다주었다. 가격에 비해 양이 적다는 생각도 잠시, 나는 찻잔 디자인에 시선을 뺏겼다. 주먹 쥔 내 손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찻잔은 손잡이 부분에 유리로 만들어진 산딸기가 장식되어 있었다. 마찬가지로 녹색 유리로 된 딸기 넝쿨이 손잡이 전체를 꼼꼼히 감싸고 있었다. 나는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입술에 닿는 잔의 감촉이 시원했다. 카페까지 오는 동안 흘렸던 땀이 서서히 식어갔다.
나는 노트북을 펼쳐 무료 이미지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번 달까지 개업을 앞둔 개인 병원의 홍보 팸플릿을 완성해야 했다. 내게 작업을 맡긴 병원은 백반증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곳이었다. 남편의 대학 동창의 지인이 병원장이라고 했는데, 보내준 정보를 보니 30대 중반이라곤 믿기지 않는 앳된 얼굴의 여자였다. 그녀는 ‘국내 유일의 백반증 치료 병원’이라는 문구가 돋보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환자의 편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양심 병원, 따뜻하고 깔끔한 분위기의 내부 인테리어,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여 삶의 질 향상을 돕는 의료진….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들을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다음 순서는 핵심 단어를 뽑아내는 일이었다. 편리, 양심, 고통, 삶의 질. 떠오르는 대로 단어를 끼적이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카운터 쪽 벽면에 설치된 기다란 어항이 눈에 들어왔다. 자리를 고르는 데에 정신이 팔려 어항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어항에는 총 열두 마리의 물고기가 있었는데, 모두 같은 종의 열대어처럼 보였다. 나는 자유로이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항 속에서 자유라니. 나는 자유라는 단어를 적었다가 곧바로 지워냈다. 그러다 다시 적었다. 자유. 완치를 바라는 환자들에게 퍽 어울리는 단어인 듯했다.
1시간 반쯤 지났을 무렵, 나는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한 뒤 뜨거워진 노트북을 닫았다. 10년 가까이 쓴 노트북은 조금만 써도 발열이 심해졌고, 이전보다 프로그램이 멈추는 일도 잦아졌다. 디자인 작업을 하기에 여러모로 적절하진 않았지만, 나는 새 노트북 구입을 미루고 있었다. 남편이나 남편 지인의 도움 없이도 일감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업계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프리랜서가 된다면 그때 새 노트북을 사리라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뻐근해진 손목을 돌리며 무심코 앞을 보았다. 얼굴형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쇼트커트를 한 여자가 막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짙고 검은 눈썹이 눈에 띄었다. 나는 여자가 입은 검은색 블라우스와 밑단이 넓게 퍼진 부츠컷 청바지를 훑어보았다. 마른 체형에 얼굴이 작아 비율이 몹시 좋았다. 여자는 문 앞에 서서 카페 안을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목선까지 길게 늘어진 귀걸이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순간 나와 그녀의 시선이 마주쳤다. 미간을 찌푸린 그녀가 긴가민가한 얼굴로 나를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언니, 맞지?”
나는 찻잔을 꼭 쥐며 침을 꼴깍 삼켰다. 잔에 맺힌 물방울에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정말 오랜만이야, 언니.”
동생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났다. 나는 찻잔에 남은 음료를 단숨에 들이켜곤 입을 열었다.
“그래, 정말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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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우리 사이엔 비밀이 없었다. 그렇게 믿도록 했다.
- 양수빈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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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1회)해로 양수빈 모든 게 끝났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1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남편은 통화 중이었다. 조용조용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가운을 여몄다. 더위를 못 견디는 남편과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여름마다 에어컨 온도 조절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에어컨 리모컨은 어디에 뒀는지 보이질 않았다. 나는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며 침대 주변을 맴도는 남편을 보았다. 그는 낯선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그 공간에서 가장 큰 사물 주위를 빙빙 도는 버릇이 있었다. “자기는 꼭 개 같은 구석이 있어. 개들이 그러거든. 흔적을 남기고 싶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 꼬리를 응시하며 빙빙 돌아.” 언젠가 던진 말에 남편은 “아, 강아지만큼 사랑스럽다는 뜻?”이라고 말하곤 웃었다. 예전 애인들이었다면 그 말을 듣는 순간 벌컥 화를 냈을 것이다. 지금 나를 개 취급한 거야? 그들은 비유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남편은 다른 남자들과 달랐다.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거나, 오기나 허세를 부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그런 걸 품어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그와 만나는 동안 나는 여러 번 그를 시험했다. 그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그의 임계점을 확인하고 싶었다. 일부러 약속 시간에 늦었고, 기분 좋게 데이트하고 돌아온 다음 날부터 사나흘씩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가 공들여 짠 데이트 코스를 이유 없이 퇴짜 놓기도 했고,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을 하나하나 지적하기도 했다. 나는 그가 곧 참았던 화를 터뜨리며 나를 떠나거나, 어쩌면 해칠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나는 때때로 누군가 나를 해칠 순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은 내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다. 그는 내 두 손을 조심스레 감싸 쥐고는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괜찮아. 이유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이 내게 안정을 못 느끼는 게 중요한 거니까. 당신이 불안한 만큼 내가 사랑을 줄게.” 불안한 이유를 파헤치려 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나는 안도하면서도, 날카로운 종이에 깊게 베인 듯한 통증을 느꼈다. 당신은 영영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야.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나는 드라이기 전원을 끄곤 남편을 돌아보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는 마치 길을 잃은 아이처럼 혼란한 얼굴로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남편의 손 위에 놓여 있던 건 내 휴대폰이었다. 내가 집으려 하자, 남편이 손을 뒤로 뺐다. “뭐야?” 장난스럽게 물었지만 남편은 미동도 없었다. 나는 손을 거두고 듬성듬성 새치가 돋아난 그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뭔데 그래?” 남편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우리 부부 사이엔 비밀이 없었다. 가족끼리는 모든 걸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 비밀 같은 건 애인 사이일 때나 유용했다. 나는 남편에게 거짓을 만들지
- 양수빈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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