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신을 탐구하는 순례자를 위한 안내서(1회)
- 작성일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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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신을 탐구하는 순례자를 위한 안내서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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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순례에 오른 이들을 위한 서론과 생략해도 좋을 몇 가지 조언
물러가라, 잡종 개들아! 길에서 비켜라, 내 햇볕에서 비켜서라. 악마의 수도사들아! 너희들은 여기 엉덩이를 흔들며 내 포도주를 고발하고 내 통에 오줌을 싸러 왔느냐?1)
안타까운 일이나 비관하지는 말기를―보통이라면 전 생애를 통틀어 몇 번 일어나지 않는 경우인 탓에, 그림자 신이 제 위로 미끄러져2) 지나갈 때면 누구나 먼저 하늘을 올려다보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그림자 신에 대한 비교적 신실한 믿음과 왕성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조차) 하늘 어디에도 해를 가릴 만한 구름은커녕 이렇다 할 비행체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뒤에야 자신이 방금 놓쳐버린 것이 다신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신비임을 깨닫는다. 만약 당신이 어느 천장 아래 있었다면, 예컨대 커튼을 친 채 환하게 불을 켜놓은 작은 골방 안이었거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인파로 가득한 한낮의 기차역 대합실에 있었다면, 그저 짧은 정전이라 생각했을지도―그랬다면 대합실의 많은 사람, 말똥한 표정으로 멈춰 서서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히 창백한 흰 빛을 뿌려대고 있는 천장의 조명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낯선 얼굴들, 당신으로 하여금 모든 내벽이 거울로만 이루어진 미로 속에 들어온 듯한 착시와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그 무수한 환영을 통해 당신은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게 되었을 수도……. 그렇게 당신도 모르게, 이렇다 할 분류명을 얻지 못해 기억의 거대한 창고 가장 깊숙한 곳에 아무렇게나 넣어둔 그저 그런 과거가 되어버린 어느 날, 당신은 이미 한 번, 어쩌면 더 많이 은총의 순간을 지나쳐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천장이 제대로 된 조명 하나 달리지 않은 다락의 얇은 나무판자였다면, 은총의 순간 당신이 손전등에 의지해 그 켜켜이 쌓인 다락의 어둠 속에서 정말로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는 그런 추억의 물건을 찾아 헤매는 중이었다면―당신은 옅은 어둠 위에 한 겹의 어둠을 더 드리운 그 불가능한 천막에 대해 짧은 경이와 호기심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그림자 신이 땅 위를 미끄러지는 속력은 가공할 정도이고, 당신이 설령 남다르게 눈치와 행동이 빠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생긴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을 즈음 그림자 신은 이미 곁을 떠났을 것이다. 운이 좋아 당신이 막막한 평야, 정말이지 막막한 탓에 저 멀리 지평선이 펼쳐진 모양만으로 지구의 형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추론인지 헛소리인지를 쏟아내며 투닥거리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마음을 진정 헤아릴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장엄한 평면 위를 가로지르는 중이었다면, 당신은 지평선 너머로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는 그림자 신의 우아한 뒤꽁무니나마 잠시 눈에 담을 수 있었을지도. 그러나 은총은 이미 떠났으리니. 당신의 손에 음속으로 주파할 수 있는 전투기의 조종간이 쥐여 있다 하더라도, 떠나간 은총을 뒤쫓으려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현대 기술은 그림자 신을 따라잡을 수 있는 속력은 발명해냈어도, 그 속력을 조금도 줄이지 않은 채 마치 냇가를 한가로이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자유분방한 궤적을 그리는 그림자 신의 움직임을 좇을 만한 능력을 개발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빛처럼 그림자 신 역시 속력이 불변한다는 특성을 가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은총은 찰나이며, 그 무엇보다 자유분방하다. 따라서 순례자여, 비관에 잠겨 고개를 숙이지 말기를. 당신의 고개 숙인 그림자가 그림자 신의 도래를 흐리도록 하지 말기를. 숙련된 순례자는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 법이다. 그들은 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어느 때, 지금으로부터 영원히 멀지도 모를 어느 때, 그림자 신이 다시 제 위를 스쳐 지나가리란 것을. 이미 지나갔거나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은총의 시간. 그림자 신이 펼쳐 보이는 끝이 없는 진리의 자락은 오로지 이미 그럴 준비가 된 자들의 몫이리니.
이 책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이들을 위해 쓰였다. 물론 당신이 충분히 숙련된 순례자라 할지라도 미리 내칠 생각은 없다. 우리는 기꺼이 자신의 순례를 되돌아보려는 겸허한 태도와 노력에 마땅히 박수갈채를 보낼 것이다. 무거운 짐을 진 순례자들이여 이 책을 펼치라, 당신의 뻣뻣해진 지혜의 쇠바퀴에 맑고 싱싱한 기름을 한 방울 떨어트려 주리니. 그러나 어디까지나 한 방울만이다. 과도한 기름은 되려 쇠바퀴의 회전을 방해할 따름이니(“적어도 세 방울! 딱 두 방울만이라도!” 하고 생떼 부리는 자들에게는 미안하다는 인사를 남긴다). 다만 당신이 충분히 조심스럽게, 먹고 바르는 약품을 고를 때처럼, 적절한 용법과 용량은 물론 성분표의 생전 처음 보는 성분명까지 일일이 구글링하며 따져볼 때와 같은 끈질김으로 이 책을 대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 순례자여, 우리는 당신을 반긴다. 이 책은 당신이 오랫동안 필요로 했던― 어쩌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절실히 필요로 했던 그 한 방울의 성수가 되리니. 물론 이것은 경전이 아니다. 알 만한 이들은 다 알 것이고, 알 만하지 않은 이들에겐 아직 알 필요 없는 일이지만, 순례자에겐 경전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혜성같이 나타났다가, 또한 혜성같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유일유이한 신, 우리의 위대한 그림자 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벽돌처럼 딱딱하고 무거운 경전이 아니다. (모든 딱딱함과 무거움에 저주를!) 덜떨어진 순례자여, 혹시나 누군가 당신의 어수룩한 낯짝을 보고 접근해 와 순례자를 위한 경전이라며 튼튼하고 촉감이 좋은 두툼한 양장본의 책을 은근슬쩍 내민다면 당장 그 거짓부렁을 뺏어 들어 그자의 머리통을 깨부숴라! (시선이 닿는 모든 이에게 딱딱함과 무거움으로부터의 해방을!) 이제 뇌수와 피로 젖은 그 거짓부렁일랑 저 수많은 골목 속 어디에든 버려두고, 우리의 책을 펼쳐라. 누구에게나 한 손에 딱 들어올 만한 콤팩트한 이 책! (혹여라도 당신이 쥐고 있는 이 책이 전혀 ‘콤팩트’하지 않더라도, 더 나아가 이 책이 도저히 ‘이 책’이라 부를 수 없는 형상을 하였더라도, 이상하게 여기지 말기를, 그것이 실제로 어떠하든, 우리는 그렇게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니. 순례자여, 결과야 어쨌든 타인의 노력을 비웃지 말지어다!) 우리는 장난스러운 아이의 발돋움에 일제히 활강하는 공원의 비둘기 떼처럼, 이 책이 멀리 또 멀리, 넓게 또 넓게 펴져 나가길 소망한다. 인세 때문은 아니다―하! 인세라니, 우리가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쏟아부은 열정을 생각하면 돈 몇 푼이란 얼마나 하찮은 대가인가! 그러니 순례자여, 우리가 당신의 순례가 순탄하기를 진심으로 빌듯, 당신 역시 이 책의 순례가 순탄하길 진심으로 빌어주기를. 당신의 머리통을 부드럽게 해준 한 방울의 성수를 다른 이들에게도 기꺼이 권하길.
* 아래는 초보 순례자들과, 이래저래 연차만 쌓았을 뿐 속알맹이는 초보 순례자와 다를 것 없는 몇몇 순례자들―예컨대 어수룩하고 덜떨어진, 젠체하고 허세를 부릴 줄만 알지 허구한 날 등쳐 먹히기 일쑤인 머저리, 먹물 좀 먹은 덕에 머릿속에 든 것은 많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분수에 맞지 않는 거대한 도서관을 헤매는 데만 한세월이라 뭐 하나 제대로 해낸 적 없는 헛똑똑이 순례자들을 위해 엄선한 조언, 그리고 그와 관련된 짧은 에피소드의 모음이다. 뭘 이런 당연한 소릴, 같은 소리가 나온대도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다음 글로 향하길. 특히나 이미 순례에 생의 태반을 바친 탓에, 지당한 만큼이나 별 영양가 없는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시간 낭비임을 깨달은 이라면―당신의 지레짐작은 정확히 42퍼센트 옳을 것이다. 부디 당신, 먹고 바르는 약품을 고르는 사람처럼 신중하기를.
1)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림자 신의 형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오로지 인간 종의 눈뿐이다(순례자에 따라 그림자 신이 인간 종이 아닌 동물에게는 물론, 우리로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도 할 수 없는 식물의 특정 기관을 통해서도 감지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의견을 구태여 부정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인간 종이므로, 인간 종이 아닌 동물과 식물의 감각이 그림자 신을 어떻게 감지하는지 증명해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림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들이 주로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것 역시 현실 세계의 모든 원칙을 초월하는 그림자 신의 관측 불가능성에 있다. 그림자 신은 형상이 아니고 존재도 아니며, 하물며 비존재도 아니다. 임시방편에 가까운, 필연적으로 지금껏 해소되지 못한 끊임없는 논쟁의 불씨 역할을 한 예의 명명(아아, 위대한 그 이름, 그림자 신!)이 자주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나, 그림자 신은 결코 ‘어둠’이 아니라는 얘기다. 인간 종의 눈이 그림자 신을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일반적으로 눈의 기능에 대해 서술할 때 언급되곤 하는 홍채나 망막, 시신경 다발 등의 특정한 작용을 통해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종의 눈은 그림자 신을 ‘볼’ 수 있다. 이 명백한 진리에 대한 증명이나 가설 중 대다수 순례자가 납득할 만한 (다소 잠정적일지언정) 합리적인 결론이 나온 적은, 애석하게도 아직 없다. 따라서 우리는 밤의 허리를 사정없이 분질러버리는 벼락의 출몰 앞에서 제 앞에 닥친 역사적 순간의 의미를 파악하기는커녕 그 기이한 것이 정말 존재했던 것인지, 바람처럼 만질 수 없으나 바위처럼 또렷한 형상을 가진, 어쩌면 그로 하여금 ‘찰나’라는 개념을 처음 상상케 했을지도 모를 그 예외적인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 채 경악과 경이 사이를 혼란스럽게 오가기 바빴던 선사 시대의 인류와 다름없는 상태에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실제로 그림자 신의 존재가 소수의 겸허한 순례자를 통해 전수되어 오다 몇 계기를 거쳐 대중의 눈과 귀에 막 들기 시작했을 무렵, 지나치게 들뜬 몇 순례자가 웅숭깊은 진리의 개벽 앞에선 본래의 의미를 상실해버리고 마는 문명의 관측 도구들, 대상의 존재를 측정하기 위해 고안된 여러 정밀한 과학적 방법론들을 이용하기 위해 종교계와 과학계는 물론 당시에는 아직 적잖은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신문사와 출판사 들, 또한 아직 누구도 그것이 모든 매체의 미래가 되리라는 사실을 의심치 않았던 몇 방송국까지 끌어모아 위대한 선지자의 반열에 오르려 시도했다가(당연하게도, 또한 다행히도 이 시도에 응한 곳은 많지 않았다), 비웃음과 멸시의 대상이 된 탓에 이후의 순례자들이 그림자 신을 탐구하기 위해 공적인 자원을 끌어모으는 것을 사실상 단념하게 했음을, 우리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다른 모든 일에서처럼 순례를 해나가는 데 있어 열정은 좋은 연료가 되어주나, 연료의 과도한 주입은 역류와 손상을 불러올 따름이다. 순례자여, 부디 믿음보다 앞서 믿으려 하지 말기를.
2) 당신이 열정에 찬 순례자일수록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다. 순례에 막 오른 이들이건 삶의 절반 이상을 이미 순례에 쏟아부은 이들이건, 그들의 준엄한 열정의 벽을 허무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온갖 핍박과 무관심이 쇠망치처럼 두들겨댄 탓에 이제 새로 균열의 무늬를 새겨넣을 공간조차 남지 않았을 그 벽을, 그처럼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끝내 무너지지만은 않은 그 완강한 벽을 넘어뜨렸던 것은 언제나 덤덤함이었다는 사실이다. 덤덤함, 그것은 무감동한 만큼이나 무자비하다. 평상시라면 거의 느끼지도 못할 만한 미약한 진동, 지진계가 구태여 기록하지 않을 수준의 진도처럼, 몸을 낮게 하고 미끄러져 오는 한 마리 작은 뱀처럼, 덤덤함은 열정의 맨발을 노린다. 이 작은 뱀의 교활함은 그 몸뚱이만큼이나 작고 유약한 송곳니에 있다. 열정이 아직 제 몸을 건사하며 지켜내고 있을 때, 다시 말해 열정의 두 발에 딱 맞는 신발이 신겨 있을 때라면 그것은 위협적이긴커녕 하찮고 앙증맞은 장난감에 불과해 보인다. 그러나 순례자들의 열정은 항시 시험받기 마련이다. 가장 악랄한 이들은 당신이 가장 지쳐 있을 때,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로부터 제 발을 지키기 위해 신발을 신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바로 그때, 당신 앞에 나타나 간악하도록 덤덤한, 냉담하기는커녕 무관심하지조차 않은 얼굴을 들이밀고는 당신의 목마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도망치지 않겠다는 듯이―아아, 당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결코 동요하지 않겠다는 듯이 활짝, 그리고 덤덤히 열린 바로 그 두 쪽의 귀! 당신의 부르튼 맨발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것은 바로 그 두 쪽의 귀다! 순례자여, 당신이 그들에게 그림자 신의 가닿을 길 없는 숭엄한 진리에 대해, 그 존재만으로 현실 세계의 모든 진리를 다시 쓰게 만드는 위대한 물결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로할 때, 그들의 덤덤한 얼굴, 메마른 대지처럼 동요의 물기라곤 한 줌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군요, 그건 꽤 흥미로운 가설이네요.”(순례자여, 설령 이때 당신이 그의 얼굴, 그 마른 대지 위를 여우비처럼 스쳐 지나가는 희미한 호기심의 기색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기뻐하지 말지어다. 뙤약볕이나 다름없는 덤덤함은 대지 위에 작은 웅덩이조차 남겨놓지 않을지니!) 그러나 더 나쁜 경우, 더욱더 나쁜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놀라워요, 만약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위대한 순교자의 얘기를 듣고 있는 셈이네요!”(열기가 피워 올린 아지랑이는 흥미 없음이라는 사막을 종종 믿음이라는 오아시스로 착각게 하고)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그런 열정에 대해 잘 알아요. 나도 한때 그런 종류의 열정을 갖고 살았죠.”(과거를 향한 동정은 매혹이 말라붙은 자리에 남은 얼룩 같은 것.) “알아요, 당신은 외로운 거예요. 당신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기름진 측은지심이 내비치는 번들거림에 속아 그것을 마시는 일이 없길.) “아아, 이토록 안타까운 우리네 인생이여!”(아아, 가뭄과 같은 비탄이여!) 기억해야 할 것은 그자의 작고 간악한 입이 당신에게, 당신의 정신적 맨발에 박아 넣은 것, 그 맹독은 아주 천천히 퍼진다는 사실이다. 당신의 몸뚱이는 곧바로 재기불능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맹독이 스며들고 나면 당신의 순례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색채를 띠게 된다. 어쩌면 당신은 그림자 신과 맞닿는 환상적인 경험에서도 이전과 같은 황홀경을 느낄 수 없음을, 혹은 황홀경 속에 낯선 이의 체온처럼 이질적인 감각이 틈입해 있음을 느끼리라. 종종 먼 기억 속의 덤덤한 얼굴과 그 얼굴의 달싹거리는 입술이 그려내는 소리 없는 어조를 떠올리게 될지도? 설령 전조가 없었다 할지라도, 당신은 끝내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래전 잠시 마주했을 뿐인 덤덤한 얼굴, 잔인한 귀와 입이 당신을 중독시켰음을. 당신의 눈 위로 덤덤함이라는 얇고 메마른 피막이 자라나고 있으며, 이 피막이 눈을 모두 덮을 때 피막은 당신의 눈 그 자체가 되고, 당신의 얼굴은 오래전 보았던 바로 그 메마른 얼굴과 똑같은 표정을 갖게 되리라는 사실을. 그렇게 많은, 어쩌면 그렇게 많지도 않은 시간이 흐른 뒤, 당신은 순례와 같은 번거로운 일들은 모두 과거로 미뤄둔 채, 어쩌면 이런저런 경험과 경력을 바탕으로, 또한 얼마간의 운을 이용해, 많고 많은 대학 중 어디선가 목구멍 정도는 간신히 축일 만한 강사 자리를 얻게 될지도(실제로 오래된 순례자 중 이미 이런 자리를 꿰차고 있는 이도 적지 않으므로). 그리하여 더 시간이 흐른 뒤엔 당신 역시, 어느 구멍으로 새어 나갔는지 당신의 과거를 전해 듣고 찾아온 젊고 열정적인 순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야기를 쏟아내는 순간에조차 아직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로 터질 듯이 부푼 그 얼굴 앞에서, 천 일하고도 하루 동안 계속될 것 같은 그의 이야기를 당장이라도 끊고 쏘아붙이듯, 혹은 타이르는 목소리로 전하고 싶은 말들, 끝내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모든 말을, 그러나 당신의 덤덤한 얼굴이 소리 없는 어조로 은근슬쩍 노래하고 있었음을 알면서도 끝내 모른 척하게 될지도. (마땅히, 이때 당신의 얼굴이 부르던 노래의 가사란: “그렇군요, 그건 꽤 흥미로운 가설이네요. 놀라워요, 만약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위대한 순교자의 얘기를 듣는 셈이겠죠?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그런 열정에 대해 잘 알아요. 나도 한때 그런 종류의 열정을 갖고 살았죠. 알아요, 당신은 외로운 거예요. 당신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아아, 이토록 안타까운 우리네 인생이여!”)
대중 영상 매체가 우리의 삶에 끼친 많고 많은 해악 중에는, 그것이 너무나도 많은 미신을 생산했다는 점 또한 있다. 뱀독을 빼내기 위해 당신의 상처에 타인의 소중한 입맞춤이 소비되게 하지 말라는 얘기다. 헌신과 굴종을, 희생정신과 섹슈얼리티를 구분할 수 없이 섞어놓으려는 그 같잖은 농간에 속지 않았다면, 이제 당신이 할 일은 한 가지다. 중독된 발이 편히 쉴 수 있도록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적절한 휴식을 취하라. (중독된 것은 발이 아니라 눈과 귀가 아니냐고? 당신, 사소한 차이에 집착하지 말라. 따지고 보면 어차피 전부 비유가 아닌가?) 중독된 열정을 위한 해독제가 개발된다면 만세를 부를 일이지만, 슬프게도 세상일이 그처럼 녹록지는 않은 법이다. 부디 당신의 순례에 건강한 날만이 계속되기를!
3) 처음 순례를 떠나는 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라면, 예외적인 몇 경우를 제외한다면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을 텐데, 순례를 떠나기 전 자신의 심장(어쩌면 위장이나 간일지도 모르는데)을 과장된 비장함의 손아귀에 내어준다는 것이리라. 비장함에 사로잡힌 이들이여, 오로지 그대들 자신만이 자신의 우스꽝스러움을 발견하지 못하리니! 이는 순례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또한 순례자의 경우 다소 치명적이다. 두 번째 조언에 암시되었듯, 순례를 순례 본래의 고됨보다 더 고되게 하는 것은 당신이 순례자라는 바로 그 사실이 당신 주변에서 끌어들이는 무수한 딴죽이다. 위대한 순례자들(이들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의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고난이, 우리 후발주자의 시대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위대한 순례자들을 방해했던 것이 빛 한 점 없는 인지적 어둠, 누구도 건너본 적 없는 길 없는 황야를 걷는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절대적인 고독이었다면, 우리 현대의 순례자들을 방해하는 것은 온갖 장사치가 달라붙어 여기저기 간판을 세우고, 위대한 순례자들이 닦아놓은 거대한 길을 조각내어 몇 개의 패키지 상품, 요컨대 무르고 썩은 부분을 일부러 아래로 숨겨놓은 채 화려한 포장 속임질을 해놓은 몇 꾸러미의 과일 바구니로 둔갑시켜버린 그 거대한, 또한 빤하디빤한 자본주의적 소란이다. 물론 일이 이렇게까지 된 데에 (첫 번째 조언에서 언급했던 한심스러운 호들갑을 포함하여) 순례자들이 저지른 몇 가지 불미스러운 사건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잊어선 곤란하다. 그러나 당신이 그저 저 이국적인 시장 속에서 먼 미래 자식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을 과장되게 떠벌릴 만한 그럴듯한 기념품을 찾기 위해 순례에 오른 것이 아니라면(만약 그랬다면 애초에 당신이 이 글을 읽을 필요도, 또한 과장된 비장함에 사로잡힐 이유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당신이라 할지라도, 이 책을 읽는 것은 말리지 않겠다. 아니,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설령 이 책이 바로 그 그럴듯한 기념품이 되어 먼 미래의 후손들에게 전달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조금도 유감스럽지 않으리! 이 책은 기쁘게 제 속내를 펼쳐 보여주리!), 부디 그 우스꽝스러운 비장함일랑 얼른 얼굴 뒤편으로 치워버려라. 지나치게 달뜬 열기 속에서 숙성되다 못해 썩은 내를 풍기기 시작한 당신의 비장함이야말로 똥파리들을 위한 축제일지니! 하지만 한 가지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어쨌든 비장함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대한 일에 동참하기 위해서 우리는 때로 어떤 촌스러움에 몸을 담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당신의 젖은 맨몸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다. 순례자들이여, 우리는 탁월한 익살꾼이 되어야 한다. 선혈과 오래된 흉터, 혹은 방심한 사이 당신의 궁둥짝 사이로 슬그머니 새어 나오는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오물마저 매끈하게 숨겨줄 수 있는 단 한 벌의 옷이 있다면, 이는 세련된 유쾌함뿐이리라. 순례자여, 혹여나 당신의 유쾌함이 너무나도 세련된 나머지 모두가 당신을 하찮은 광대, 시장통을 쑤시고 다니며 애들 푼돈이나 받아먹는 후줄근한 이야기꾼처럼 여길지라도 애석해하지 말라. 비로소 그때야말로 당신은 순례에 오를 충분한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당신은 이제 이 유행 지난 축제의 시장통을 자유자재로 들쑤시고 다닐 권리를 획득하게 되었다. 모두가 당신을 보는 순간에도 누구도 당신을 보지 못하리라. 우리가 저 환한 시장통의 뒤편, 더 깊고 웅숭깊어지는 저 그림자의 세계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혹시나 시장의 한구석에서 다른 잡동사니와 함께 헐값에 내놓아진 비밀스러운 유물을 발견했다 할지라도, 손을 뻗어선 안 된다. 진정한 비밀은 위대한 시절을 기리기 위한 마흔두 개의 축포 속에는 물론, 비밀 속에 거주하지 않으니. 순례자여, 어서 당신의 그 어쭙잖은 얼굴을 뜯어 주머니에 넣어라. 명심하라, 그림자에는 얼굴이 없다.
4) 뭘 더 훔쳐보는가? 우리 말을 듣긴 한 건가? 진정한 비밀은 비밀 속에 거주하지 않으니. 훠이훠이, 어서 떠나라. 고개를 처박은 당신의 그림자가 이 책 위에 내려앉은 사이, 그림자 신은 벌써 당신을 지나쳐 저 멀리 달아났을지도 모르는데. 순례자여, 책을 읽을 때조차 고개를 숙이지 말지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전이 아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다.
멀찍이 건너다보기
―『그림자 신을 탐구하는 순례자를 위한 안내서』 제작 과정에 대한 보고
환상에는 두 가지 양식이 있다. 첫째는 고전적인 양식으로, 이때 환상은 아득한 과거를 그 기원의 신화로 두며, 이 신화 속에서 현재는 먼 우주를 가로질러 온 항성의 빛을 옮겨 그린 밤하늘의 지도와 같다. 이를테면 집을 떠난 아이가 과묵한 어른이 되어 집으로 되돌아온다는 이야기들. 둘째는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양식으로, 여기서 환상은 도래하지 않은 미래를 그 기원의 신화로 제시하며, 이 신화 속에서 현재는 질주하는 차들로 가득한 도로 구석에 세워놓은 낡은 표지판처럼 백미러를 통해서만 발견되는 진부한 경고로 전락한다. 이를테면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지구를 떠난 이들이 끝내 우주의 심원한 암흑 속에 잠겨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들.3)
그 책은 다섯 명의 저자가 함께 썼다. 다섯 명의 저자는 적절한 토의를 거친 뒤 각자에게 배정된 장을 썼고, 별도의 서명은 넣지 않았다. 서명은 불필요하다는 것이 토의가 내놓은 첫 번째 결론이었다. 몇 가지 중대한 이유와 그리 중대하지는 않은 많은 이유로 다섯 명의 저자의 익명성은 지켜져야 했다. 다섯 명의 저자는 기한을 두고 완성한 각 장의 원고를 나눠 읽고, 몇 가지 중대하거나 중대하지는 않은 수정 사항에 대해 토의했고, 다시 기한을 정해 각자의 원고를 수정했다. 책을 찍어내고 정식적인 출판 과정을 거치기 위해선 아직 거쳐야 할 과정이 많이 남았지만, 그렇게 해서 모인 최종 원고 속에서 서술자를 지칭하는 표현(예컨대 ‘나’라든가 ‘본고의 저자’ 등)을 일괄적으로 ‘우리’로 바꿔 넣음으로써, 다섯 명의 저자는 상징적으로, 또한 실질적으로 해당 원고를 최종본으로 결정지었다. 『그림자 신을 탐구하는 순례자들을 위한 안내서』(이하 『안내서』)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렇다면 이 단락은 누가 언제 쓴 것이냐고? 정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맨 마지막에.)4)
우리가 처음부터 다섯 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최초엔 둘이었고, 계획대로라면 마흔두 명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다섯 명이 되었고, 최초에 포함되어 있었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이 다섯 명에 포함되지 않았다. 『안내서』는 오래된 프로젝트였고, 다섯 명의 우리가 실제로 원고를 집필하는 과정 역시 짧지 않았다. 우리는, 아마 다섯 명의 저자 모두, 원고를 쓰는 그 순간에조차 이 원고가 하나의 책으로 무사히 묶일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을 것이다. 원고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원고 작업을 시작한 후 우리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망가졌다. 우리는 서로 『안내서』에 대해 너무나도 다른 비전을 갖고 있었고, 하나의 비전과 다른 하나의 비전은 타협하고 융해되기보단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불화하며 서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더 많은 부침을 겪었다. 한 번은, 우리 중 한 사람이 우리에 속한 다른 한 사람으로부터 살해의 위협을 느낀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토로한 적이 있고, 이야기를 들은 우리는 모두, 그런 의심을 할 수 없는 한 사람을 제외하곤, 그가 자신의 입지와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살인마를 꾸며내고 있다고 생각했다(어쩌면 살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킨 그 자신조차! 어디까지나 그런 계획이 있었다면,의 얘기지만). 우리의 관계는 망가져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일이 그렇게 흘러가버린 뒤, 우리의 관계를 완전히 끝장내버린 『안내서』가 자신이 끝장낸 바로 그 관계를 지탱하는 척추가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제 『안내서』와 관련한 일이 아니면 서로를 만나려 하지 않았고, 『안내서』와 관련되었다 할지라도 가능한 한 약속을 미루고 그나마도 직접 만나는 것은 피했는데, 우리가 『안내서』에 대해 품고 있었던 막연한 비전(들), 우리가 우리를 갈가리 찢어발기고, 그렇게 벌어진 상처에 다시 이빨과 손톱을 쑤셔 박게 부추겼던 바로 그 비전(들)은 우리가 끝내 한자리에 모이도록, 모이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안내서』 출판을 위한 이후 과정이 마무리만 된다면 우리는 뿔뿔이 흩어질 것이며, 설령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안내서』에 대한 모든 기대가 좌초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어쩌면 그 이른 해산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갈망하는 결말일지도. 관계가 완전히 끝장난 후에도 우리는 종종 격의 없는 사이처럼, 상대방의 가장 깊숙한 속내, 다시 말해 지저분하고 역겨우며 또한 대부분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자를 한없이 하찮게 만들 뿐인―또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조금쯤 갖고 있기 마련인 그늘진 충동들에 대해 함부로 들춰내며, 서로 너무나도 잘 아는 탓에 오히려 누구와 있을 때보다 편하게 웃고 떠들 수 있는 그런 친구들처럼 지내기도 했는데, 그럴 때 우리는 예외 없이 우리 자신이 아직 『안내서』와 관련한 어떤 비전도 품기 전, 다른 많은 이처럼 그림자 신이라는 숭엄한 진리에 압도되어 빨려들 듯 순례자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나 우리는 순례자가 되지 않은 자신에 대해 상상할 순 있어도, 순례자가 되었지만 끝내 『안내서』의 저자는 되지 않은 자신에 대해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다. 우리 중 누군가는 그것이 우리가 그림자 신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진리의 무한한 휘광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생각했겠지만, 그의 믿음이 사실일지언정, 이 책이 결과적으로 증언하게 될 것이듯, 그런 그조차 자신의 믿음을 통해 상상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일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 중 누군가는 반대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림자 신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진실이란 우리가 가진 형이상학적 역량, 소위 상상력이라 불리는 그 능력이 실제로는 한없이 보잘것없다는 사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세계를 영원히 상상하지 못할 것이며, 그럼에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 세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바로 그 방식으로 우리의 바깥에 버젓이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낙관과 환멸. 믿음의 두 형식. 그것이 우리가 부침을 겪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부침 속에는 언제나 그 두 형식에 대한 모종의 논박이 섞여 들어 있었다.
처음만 해도 『안내서』는 그저 하나의 아이디어였다. 아직 우리가 아니었던 두 사람이 떠올렸던 것은 비전도, 하물며 필요도 아니었고, 그저 작은 흥미였다. 이 흥미는 물론 비전(다시 말해 ‘미래’)에 대한 것이었으나, 누구나 미래를 떠올리는 순간, 적어도 그것이 우리를 절망케 하는 종류의 미래가 아니라면, 지나치게 그늘진 미래를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히 떠올릴 수밖에 없는 약간의 빛, 미래의 윤곽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그 한 줌의 빛과 같은 흥미였다. 따라서 이 무렵 두 사람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탐구하는 것이 그림자 신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대다수의 초보 순례자가 그렇듯, 많은 순례자가 그림자 신을 그림자 신이라 부르는 이유에 대해 아주 소박한 정보와 관점을 갖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들은 모든 신화란 근본적으로 언어이며, 그것이 명확한 실재를 지칭하는 순간에도 여전히 그렇다는 사실을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따라서 시간이 흘러 『안내서』가 더는 두 사람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의 것이 아니게 되었을 뿐 아니라 두 사람 중 한 사람과는 영원히 무관한 것이 되었을 때(우리는 정확히 그 한 사람이 프로젝트에서 제외된 경위에 대해 듣지 못했고, 따라서 이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 아니었다), 나머지 한 사람에겐 자신이 『안내서』를 완성함으로써, 자신들과 같은 어리석음의 피해자가 두 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런 비전이 자리 잡게 되었다.
짐작할 수 있겠지만, 물론 이 비전이 우리 모두의 공감을 샀던 것은 아니다. 우리 중 어떤 이는 그것이 아주 우스운 비전이라 생각했고, 갈등이 격해졌던 어느 날엔 그 비전이야말로 『안내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안내서』로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모든 가능성을, 즉 그 비전을 제외한 모든 비전을 짓밟는 허무주의적 발상이라는 식의 비판이 인격 모독에 가까운 말들과 함께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확실히 해둬야 하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우스꽝스러운 저주의 실체라 할 수 있는데) 원고를 써나가는 과정 동안 우리 중 누구도, 다시 말해 예의 모욕을 쏟아냈던 바로 그조차, 또한 모욕을 쏟아내던 바로 그 순간에조차, (어쩌면 그 존재만으로 『안내서』의 모든 가치, 그리고 그 한 권의 책을 붙들고 있는 다른 우리의 모든 비전을 훼손할지 모를) 그 비전 또한 미래에 완성될 『안내서』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가 되리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것이 설령 『안내서』의 존재 자체를 근본적인 차원에서 부정하는 것일지언정, 『안내서』와 관련하여 우리가 이미 제시된 비전을 ‘진실로’ 부정하기 위해선 오직 스스로 『안내서』의 저자이길 포기하는 것, 혹은 더 나아가 『안내서』가 완성될 수 없도록 우리의 작업에 수작질을 거는 방법밖엔 없었다. 다시 말해 우리의 곁엔 우리가 아닌 우리, 최초엔 우리였으나, 실제로는 우리 중 단 한 사람만이 그 실체에 대해 알고 있을 뿐인, 『안내서』의 실질적인 저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라 부르기 난처하나 우리 중 누구도 그를 우리 안에 포함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죽음이었는지 배신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단순한 변심이었는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우리가 아니게 된 예의 한 사람―지금의 우리로선 입을 열지 않는 다른 한 사람의 능청스러운 침묵을 통해서밖에 그려낼 수 없는, 어쩌면 그 능청스러운 침묵의 주인조차 이미 그려낼 수 없게 되어버렸을지도 모를, 그런 검은 얼굴이 늘 그림자처럼 함께하고 있었다. 믿음의 두 형식. 최초에 『안내서』는 그 두 가지를 구분 짓지 않기 위한 한 가지 방법, 실없는 농담 같은 것이었고, 우리는 끝내 두 가지를 구분 짓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따라서 우리는 종종 놀이처럼 우리이지만 우리가 아닌 검은 얼굴에 대해 아무렇게나 떠들었다. 그가 왜 우리를 떠나게 되었는지나 그가 아직 살아 있을지에 대해. 그가 우리를 떠나게 된 데엔 누군가의 죽음, 어쩌면 그 자신의 죽음이 연루된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마치 훗날 우리가 그랬듯) 이 죽음에는 죽음 자체의 의도 외의 의도가 끼어들어 있지는 않았는지에 대해. 우리의 공상은 무책임했고, 바로 그 무책임함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공상했다. 가능한 한 황당하게, 또 잔혹하게―거기 진실이 한 줌도 섞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그러나 그러는 동안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 무책임한 허풍의 난장판 속에서 거짓을 가장한 진실이 불쑥 튀어 오를지 모른다는 기대를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닌 채로. 그러다 보면 우리는 우리가 떠들어대고 있는 이야기가 과거의 것인지 미래의 것인지―검은 얼굴이 아니라 우리가 아니게 된 우리에 대한 것인지 우리가 아니게 될 우리에 대한 것인지 종종 헷갈렸고, 그 헷갈림이 우리의 수다를 더 부추겼다. 우리는 거짓말에 중독된 아이들 같았다. 그러나 누구도 우리의 거짓말을 정정해줄 어른의 역할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누구도 그럴 권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 우리는 미쳐 있었고, 점점 더 미쳐가고 있었다. 『안내서』가 최초의 예상보다 빨리 완성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광기는 어쩌면 광기 너머에 닿았으리라.
말했다시피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우리가 『안내서』를 마무리 지을 수 있으리라 믿지 못했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가 더는 『안내서』의 원고 작업을 이어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다른 순례자 중에서 우리의 뒤를 이을 저자들을 물색할 방법에 대한 논의 역시 마쳐둔 상태였다. 당연하게도 누구도 우리와 같은 전철을 밟게 하고 싶지 않았던 예의 한 사람으로선 쉽게 용납할 수 없는 계획이었으나, 우리는 끝내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다.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우리의 논의는 대개 그렇게 도달할 수 없는 합의에 끝내 도달하는 방식으로 매듭지어졌다. 이 하나의 매듭을 무사히(?) 완성 짓기 위해 몇 개의 고리가 필요했는지, 우리의 논의가 몇 번의 공회전을 거쳐, 몇 번이나 어긋났는지에 대해 구태여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행히 이 논의, 실은 논쟁이라 부르는 게 더 적합할 그 지난한 과정 끝에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였다는 것, 그것만이 유일하게 언급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우리는 지금, 우리가 겪었던 불안에 대해 얘기하려는 것이다. 이 불안은 원고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피어났다. 요컨대 우리가 정말로 『안내서』를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다름 아닌 우리 자신에 의해!), 『안내서』의 최종본으로 결정될 원고를 눈앞에 두었을 때까지도 온전히 믿을 수 없었던 그 흐릿한 기대가, 그러나 분명히 우리의 머릿속에, 또한 심장과 폐, 쓸개와 대장 속에 분명히 자리를 틀었을 즈음이다. 불안은 기대를 양분 삼아 자라났다. 우리는 큰 혼란에 사로잡혔고(이미 한순간도 그러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수시로 발작하듯 아무에게나 분노를 쏟아냈다(그 빈도가 늘어났다). 아마 당신은 불안의 실체가 궁금하리라. 어쩌면 이를 넘어 당신은 어쩐지 우리가 이 실체를 밝히고 싶지 않아 문장을 질질 끌고 있는 것 같다는 의혹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옳다! 당신의 현명함에 갈채를! 우리를 장악한 불안의 실체란, 우습고 황당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진실을 실토할 때다! 솔직해지자. 우리는 우리가 꿈꾸었던 그 모든 비전의 결정체, 우리가 부정하고 저주하는 바로 그 끔찍한 비전과 함께 규칙도 위계도 없이 얽히고설켜 탄생한 하나의 거대한 털실 타래, 마땅히 비전의 카오스모스(chaosmos)가 되어야 할 바로 그 단 한 권의 책이, 다름 아닌 단 한 권의 책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완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도대체가 그런 황당무계한 책이 가당키나 한가? 우리는 불안했고, 혼란스러웠다. 모든 것이 정말로 시작되었다기엔 다소 이른 무렵, 『안내서』와 같은 구체적인 이름도 없이 그저 하나의 흥미로운 아이디어로 떠올랐을 뿐인 그 프로젝트에서 최초의 두 사람 중 진정으로 떨어져 나간 쪽은 누구인가? 농담을 농담이 아니게 했던 쪽은? 우리는 그제야 우리가 프로젝트의 초창기, 동료를(어쩌면 친구를? 혹은 연인을?) 잃은 이가 『안내서』의 깊숙한 곳에 매달아두었던 한 가지 비전, 이미 우리 중 한 사람에 의해 『안내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 경고되었던 예의 비전에 대해 (경고를 한 이조차) 충분히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후회에 사로잡혔다.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실패했다. 우리의 프로젝트는 최초부터, 실패를 향해 계획되었다.
따라서 당신이 지금 읽고 있을 이 글은 실패의 기록이다. 이 글은 장황한 비문(碑文)이며, 이 안에는 도달할 수 없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 희생된―합의되지 못한 모든 것이 잠들어 있다. 당신은 어쩌면 우리의 글을 읽으며, 당신이 꿈꾸었던 비전의, 혹은 비전과 닮은 무언가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될지도? 그러나 착각하지 말지어다! 그림자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또한, 프로젝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안내서』와 관련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설령 다른 모든 비전을 한낱 낙서 뭉치로 바꿔버리는 것이라 할지라도, 『안내서』가 제시하는 비전에 대항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안내서』를 우리의 기억에서, 모든 가능성 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리는 것뿐이다. 그러나 『안내서』는 완성되었고, 우리는 우리가 『안내서』를 포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 우리는 우리의 다른 모든 비전의 성공적인 죽음을 기리는 이 비문, 한 권의 비석을 출판할 것이고, 가능한 한 널리 더 널리 퍼트릴 것이다. 우리는 가능하다면 우리의 책이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든 나라에서 읽히길 바란다. 베스트셀러가 된다거나, 나아가 스테디셀러가 되는 것도 좋으리라. 우리는 우리가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쓰인 『안내서』가 우리 앞에 당도하는 날을 고대한다(혹시 『안내서』를 번역 출판하고 싶다면 언제든, 정식 루트를 거쳐 연락하라). 설령 그 책이 이미 우리의 『안내서』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순례자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당신, 우리를 보라!
문지방을 밟지 말 것!
앞 장에서는 어떤 내부 혹은 외부 공간(field)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배치 형태를 어떻게 다양하게 처리할 것인가, 그리고 내부를 비워놓거나 채워 넣는 등의 패턴이 형성된 공간의 시각적 질에 얼마만 한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 다루었다. 그러나 외부 공간으로 구성된 건물은 거의 없으며 대개는 기능, 인접 관계, 또는 동선으로 연관되는 많은 공간들로 구성된다.5)
짧은 이슈로조차 그림자 신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 하더라도(그렇다면 이 책을 무엇이라 생각하고 펼쳤을까? 여행 가이드북? 판타지 소설? 어쩌면 잊힌 종교에 대한 나이브한 연구서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그렇다면 완전히 헛짚은 것은 아니다), 당신은 종종 이유를 알 수 없이 사라져버리는 것들, 이를테면 양말 한쪽이나 머리끈, 혹은 고가의 무선 이어폰 한쪽이나 친구 집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부모의 성난 호출을 받고 투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던 아이까지, 우리네 삶 저변에 깔린 이 상투적이지만 치명적인 상실들이 얽힌 도시 전설에 대해서라면 한두 가지 정도 들어본 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글을 쓰는 동안 당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멍텅구리라고 생각할 것이다(실제로, 적잖이 높은 확률로,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멍텅구리일 것이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는 말라). 예컨대 우리는 당신이 앞서 나열한 사라져버리는 것들의 예시 중에 우리를 가장 곤란케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당신이 만약 (우리가 당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다소 홧김에 우리가 고민할 가치도 없는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당연히 아이의 실종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겠냐고 생각했다면, 아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 우리의 순진한 독자여, 아무리 나이브하다 하더라도 종교에 대한 연구서라 생각할 수 없는 이 글의 문체를 고려해 당신은 지금쯤 우리를 제4의 벽을 수시로 넘나드는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소설의 서술자라고, 아니면 도발적인 재간을 부리길 좋아하는 독특한 여행 가이드북의 저자라고 여기고 있을까? 아무려나 당신이 그것을 허구의 세계라 여기건 그렇지 않건, 우리의 활자들이 당신의 머릿속에 펼쳐놓을 상상의 여로가 부디 즐거운 추억으로 남기를.
따라서 지체 없이 정답을 공개하기로 하자. 나열된 예시 중 우리, 즉 순례자들을 가장 난처하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머리끈이다. 물론 당신은 곧바로 되묻고 싶을 것이다. 머리끈이 난처하다면, 왜 양말이나 고가의 무선 이어폰 한쪽은 그렇지 않은지, 사물이며 또한 작고 어디든 잘 굴러 들어간다는 점에서 다를 바 없지 않느냐고. 적어도 그런 의문이 들었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순례자이기 위한 최소한의 덕목은 갖췄다. 여전히 당신이 멍텅구리라는 사실은 변함없지만 말이다. 이유가 궁금한가? 고가의 무선 이어폰을 써본 적이 있다면 알겠지만, 그런 물건들엔 혹시나 잃어버렸을 때를 대비한 위치 추적 기능을 비롯한 방비가 되어 있기 마련이다(괜히 비싼 것은 맞지만, 또한 괜히 비싸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더 중요한 것은 양말과 고가의 무선 이어폰 사이의 공통점이다. 두 사물은 모두 제짝을 갖고 있다. 사라지기만 해도 어마무시한 손실금을 발생시키는 고가의 무선 이어폰이라면 모를까, 대개 양말 한 짝이 사라졌을 때 우리를 난감하게 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구태여 알아차리게 해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사라진 것과 짝을 맞춰야지만 제 노릇을 할 수 있는 나머지 한쪽의 양말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실종 사건이 그림자 신과 연관되어 있다면(확실히 해두자, 당연하게도 그 모든 실종이 그림자 신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장담컨대, 당장이라도 핸드폰 플래시를 켜서 세탁기 뒤쪽을 샅샅이 뒤져본다면, 당신은 거기서 그림자 신이나 우리의 책이 당신에게 펼쳐 보이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운 모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나머지 한쪽이야말로 우리의 중요한 길잡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특히나 당신의 양말이 그럴듯한 브랜드의 로고를 달고 있는, 철저히 규격화되고 주기적으로 불량 여부를 체크하는 검증된 생산 라인을 거쳐 나온 것이 아니라, 어느 시장통에서, 아니면 길거리 좌판에서 다섯 켤레씩, 열 켤레씩 되는대로 묶여 판매되던 것을 되는대로 집어 온 것이라면, 기뻐하라, 당신은 베테랑 길잡이와 함께할 기회를 얻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당장 당신의 서랍장에 처박혀 있는 그 3,000원짜리 다섯 켤레나 열 켤레 묶음의 양말들을 하나하나 비교해보시라(평소 그런 싸구려 양말은 취급하지 않는 양반이라면 구태여 신경 쓸 필요 없지만, 그럼에도 궁금하다면 지금이라도 근처 시장을 뒤져 한 묶음을 사 와도 좋다. 단돈 3,000원, 비싸 봐야 5,000원이다. 혹시라도 시장을 샅샅이 뒤져도 한 묶음에 10,000원 이상 가는 것들밖에 없다면, 당신의 고상한 삶에 감사를 드리고 그만 신경 꺼라). 분명 같은 모양으로 묶여 나온 것들임에도 다섯 켤레면 다섯 켤레, 열 켤레면 열 켤레가 제각기 미세하게나마 다른 모양을 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 사용감이 얼마 없는 경우라면 조금 낫겠지만, 당신이나 동거인의 발이 수차례 그 안을 헤집어댄 이후라면, 그 차이는 말 그대로 천차만별이리라. 당신이 그런 사사로운 차이에 무감한 사람이라면, 당신의 양말들은 이미 제각기 맞지 않는 짝과 묶여 하나의 작은 카오스를 구성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무려나 중요한 것은 당신의 그 한쪽만 남은 양말이 보기보다 많지 않은 파트너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 어쩌면 세상에 오로지 단 한 명의 파트너만을 두고 있는 지고지순한 타입일 수도 있다는 사실, 바로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사실에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가? 그렇다면 독자여, 걱정하지 말라, 우리는 친절하다. 자, 가령 실수투성이에 평생 일 처리를 제대로 해본 경험이 손에 꼽을 만한 신이 있다고 하자. 이 어수룩한 신에게 주어진 업무는 완전히 똑같은 모양의 작은 돌멩이를 무수히 양산해내는 것이다. 문제는 작은 돌멩이란 보기보다 다양한 면과 선으로 구성된 난해한 다면체라는 것이고, 그는 각각의 작은 돌멩이를 구성하고 있는 그 다양한 면과 선을 모두 똑같이 빚어내기엔 지나치게 어수룩하다는 점이다. 제 정당한 파트너를 잃은 싸구려 양말이 베테랑 길잡이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덕분이다. 상상해보시라, 우리의 신이 자신에게 주어진 바대로 하나의 작은 돌멩이를 만들고, 이와 완전히 똑같은 모양의 작은 돌멩이를 또 한 번 만들어낼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 것인지. 바로 이 확률이 당신의 베테랑 길잡이가 베테랑답지 못한 실수를 저질러 당신을 잘못된 길로 이끌 확률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다. 당신이 올바르게 추측했듯이(혹시 아니었을지도. 그렇다면 세상에, 당신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멍텅구리였구나!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다), 양말이나 고가의 무선 이어폰처럼 머리끈에도 발이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 발뿐인가? 그것들에는 손도 눈도 없으며, 당신이 어서 자신을 찾으러 와주러 기다리기는커녕, 당신이라는 존재를 제 속에 기록해 보관해둘 때 써먹을 그 흔한 머리통조차 달려 있지 않다. 녀석들은 당신이 자신을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아무 문제 없이 지낼 것이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 아니, 이는 거짓말이다. 녀석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지내지’조차 않기 때문이다! (이 배은망덕할 줄도 모르는 놈들!) 바로 이게 우리 순례자들을 가장 난처하게 했던 지점이다. 위대한 순례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라 우리는 그림자 신이 하나의 세계와 다른 하나의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세계의 웜홀이라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고, 어느 하나 나사 빠지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그럼에도 이 웜홀을 건너기 위해서, 조금 더 순례자답게 말하자면 ‘그림자 신에게 삼켜지기 위해’ 우리가 시도할 만한 방법이 무엇이 있으며 개중 무엇이 비교적 안전하고 성공 확률이 높은지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즈음 되면 당신도 예상할 수 있겠지만(부디! 머리를 굴려라!), 이 방법 중에는 그것이 그림자 신에게 삼켜지기 위한 것이라는 자각 없이, 제 위로 그림자 신이 드리웠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저도 모르게 저지르기 좋은 방법 또한 무수히 많다는 점이다. 당신이 체류자가 되어버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아아, 우리는 얼마나 자애로운지!) 유명하면서도 참고가 될 만한 케이스를 한 가지 알려주도록 하겠다. 때는 1999년 12월 31일, 자정을 앞둔 시각의 서울이었다. 당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던(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맥락을 살펴보면 아마 아직 1학년이나 2학년이었던 것 같다) A 씨는 동갑내기 친구 B 씨와 함께 한 해의 마지막을 화끈하게 불태워볼 생각이었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다시 말해 종이컵 한 묶음과 소주 두 병을 검정 비닐봉지에 들고 다니며 여러 아파트 공원을 들쑤시던 중 순찰하던 경찰에게 붙잡혀버리고 만 것이다. 다행히 영 꽉 막힌 친구가 아니었던 경찰은 A 씨와 B 씨가 곧바로 해산하여 집으로 귀가한다는 조건으로 연행을 한다거나 부모를 호출하는 일은 피해주었다. 물론 경찰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그들이 갖고 있었던 소주는 압수해 공원 구석에 다 쏟아버리는 것을 잊진 않았다(당시에 공원 바닥은 지금과 달리 백이면 백 모래로 채워져 있었다). 요컨대 그것이 A 씨가 B 씨와 함께 새삼 다시 ‘뚫릴 만한 마트’를 찾아다니게 된 경위였다. B 씨의 증언에 따르면 두 사람은 당시 정말 내일 세상이 멸망할 가능성에 대해 나름대로 열렬히 토론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열기가 과도했다는 데 있다. 두 사람 중 누가 종말한다는 쪽이었고 누가 그 반대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B 씨는 A 씨가 소주를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그새 취해 헛소리를 한다며 화를 돋웠고, (아마 정말 취해 있었을) A 씨는 B 씨의 모욕적인 태도에 화를 내며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이 취하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소리쳤다. A 씨가 제시한 증명 방식은 단순했다. 그들이 다음 건널목에 다다를 때까지 A 씨 자신이 보도블록(지그재그 모양의 U자형 인더록킹 블록이 엇물리며 이어지는 80~90년대식 보도블록이었다)의 선을 밟지 않겠다는 것. 만약 한 번이라도 선을 밟는다면 자신이 취해 헛소리를 한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취한 것이 아니니 제 주장이 맞는 거라고 A 씨는 주장했다. 이 황당한 조건을 B 씨가 받아들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B 씨 역시 취해 있었다). 결과는 예상할 수 있는 형태로 났다. A 씨는 몇 걸음 떼지 못하고 비틀거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몸을 가누지 못하며 걸어가던 중, 실수로 보도블록 선을 세 번 연달아 밟았다. 중요한 것은 A 씨가 정확히 1초에 한 번씩 선을 밟았으며, 때마침 그림자 신이 A 씨의 위를 지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추정컨대 A 씨의 행동이 그림자 신을 움직일 확률은 25,000,000분의 3이었고, A 씨는 여지없이 삼켜졌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림자 신에게 삼켜지기 위해선 그것이 어떤 종류이건 ‘스스로’ 특정한 행동을 취한 대상으로 한정된다. 즉, 당신이 설령 의식하지 못한 채 어느 보도블록의 선을 정확히 1초에 한 번씩 연달아 세 번 밟는다고 해도 그림자 신이 당신을 삼키는 일은 절대로 벌어지지 않는다(A 씨의 경우, ‘보도블록의 선을 밟지 않고 걸으려던 중 실수로, 1초에 한 번씩 연달아 세 번 선을 밟은’ 것이 삼켜진 이유였다). 이해가 안 가는가? 간단히 말해 ‘스스로’ 특정한 행동을 취할 수 없는 사물의 경우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림자 신에게 삼켜져선 안 됐다는 얘기다! 물론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순례자들의 머리통을 걸쭉한 혼돈이 끓고 있는 마녀의 냄비 속에 처박기 전에도 비슷한 종류의 해명할 수 없는 문제는 있었다. 예외적인 몇 케이스를 제외한다면 단 한 치의 예외도 없이, 그것이 의도적인 것이었건 단순한 실수였건 그림자 신에게 삼켜져 반대편 세계로 넘어간 이들은 언제나 옷을 포함해 몸에 지니고 있었던 대부분의 물건과 ‘함께’ 삼켜졌기 때문이다. 이 해명 불가능한 문제가 순례자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된 것은, (이 역시 의도치 않게 삼켜진 케이스가 그 발단이었는데) 9회 말 한 점수만 내어주면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 앞서 다섯 번이나 도루를 허용한 탓에 부담감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던 투수가 순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도루를 뛸 선수가 없었던 삼루 쪽으로 공을 던진 탓에 그림자 신에게 삼켜졌을 때부터였다(이 방법이 그림자 신의 입을 열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논의의 발단은, 이미 투수의 손을 떠나 그게 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우선 본능적으로 손을 앞으로 뻗고 본 삼루수의 글러브 바로 앞까지 날아와 있었던, 예의 회전하고 있었던 야구공이 투수와 함께 삼켜졌다는 사실이었다. 당신이 이런 종류의 논의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상술한 사물들의 ‘독자적인 실종’이 그림자 신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던 당시만 해도 큰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했던(바야흐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전성기, 바보상자와 콜라의 시대, 초현실주의가 추파춥스를 위한 옷을 짜던 시대였다) 인본주의 순례자들의 온갖 기상천외한 시대착오적 발상들이 이례적인 호황을 누리는 데 이 사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물론 이도 한때였다. 얼마 안 가 순례자들의 관심은 한 야구 선수의 정신 나간 선택보다는 사라진 머리끈의 행방으로 쏠렸고, 일이 이렇게 되자 오로지 인본주의 순례자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표출하기 위해 예의 야구 선수와 야구공이 동시에 삼켜진 것은 순전히 우연이며, 어쩌면 정말로 ‘동시에’ 삼켜진 것조차 아닐지도 모른다고, 두 대상은 서로 다른 이유로 인해 삼켜졌고, 그것이 인간의 시각에서 ‘동시인 것처럼’ 관측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무리까지 생겨났다. 이들의 주장이 완전한 헛소리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분명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만 아직 어떤 순례자도 동시에, 혹은 ‘동시에’라고밖에 관측될 수 없는 순간에, 별개의 이유로 인해 그림자 신에게 삼켜지는 케이스를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자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의 주장은 분명 참일 수 있으나, 그것이 참임을 증명하기 위해선 (오로지 그들을 위해 준비된 듯한 케이스가 잘 포장된 선물 상자처럼 그들의 눈앞에 배달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이전의 인본주의 순례자들이 했던 것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온갖 기상천외한 논리의 저글링을 선보여야만 하리라. 따라서 당신이 상식적인 순례자가 되고 싶다면, 추천컨대, 인본주의 그 자체에 찬동하지는 않을지언정, 다시 말해 인본주의 순례자들이 그렇듯 그것을 ‘실존’이라거나 ‘주체와 대상’ 따위와 같은 형이상학의 낡은 부품들로 설명하진 않더라도, 그림자 신이 하나의 대상을 삼킬 때 반드시 그 대상 자체만을 삼키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어째서 삼켜진 것이 한쪽 양말을 구성하는 무수한 섬유조직이나 이 섬유조직에 특정한 무늬나 주름을 새기는 한 낱의 실, 혹은 이 모든 것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나 분자 따위가 아닌 한쪽 양말 전체인지에 대해 먼저 얘기해야만 하므로.
자,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이제 당신은 (이 모든 이야기를 허구라 받아들이건 그러지 않건) 우리가 어째서 제시된 예시 중 머리끈의 실종이 가장 난처한 일이라 말했는지 이해하게 되었으리라. (얘기를 너무 빙 둘러 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멍텅구리인 당신을 이끌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머리끈은 우리가 설령 그것을 되찾기 위해 그림자 신에게 삼켜지는 모험을 감행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찾던 바로 그 머리끈이 맞는지 확인해줄 수 있는 입 달린 얼굴도 파트너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당신은 이리 생각할 수도 있다. 기껏해야 머리끈 아닌가? 그것이 그림자 신에게 삼켜진 것이든 그냥 어디엔가 굴러다니고 있는 것이든 어차피 잃어버린 것이었으니 새삼 그 일이 그림자 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해서 난감할 일이 뭐가 있는가? 골 아픈 생각들이야 머리가 무겁고 시간은 남아도는 지식인 나으리들께서 어련히 하도록 두면 될 일 아닌가? 맞다. 정말 맞다. 당신이 순례자건 순례자가 아니건, 실제로 당신의 삶을 원만하게 닦아나가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보는, 잃어버린 양말 한쪽이나 머리끈이 어떻게 되는지 따위보단 당신이 어느 날 심심풀이 삼아 선을 밟지 않고 보도블록을 통과하는 놀이를 하다 우연히 정확히 1초에 한 번씩 선을 세 번 밟아버렸다는 이유로 25,000,000분의 3의 확률을 뚫고(이 가능성이 너무 희박해 보이는가? 아아, 멍텅구리 독자여, 정말 당신은 멍텅구리구나. 숙련된 순례자라면 그런 뭣 모르는 생각은 안 할 것이다. 숙련된 순례자들은 확률이 얼마나 교활한 악마인지 잘 안다), 언제 거기 다가왔는지도 모를 그림자 신에게 삼켜져 버릴지 모른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에 비해 비교적 더 적은 쓰임을 갖고 있다고 해서 어떤 정보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단언컨대 무가치한 정보란 없다! 독자여, 설령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누군가는 오늘 지구의 종말을 팔아먹는 법이다. (자본주의 만세!) 다시 말해 순례자 중에도 이 역사적인 발견, 진정한 순례자라면 그 신비롭고도 공정한 원칙 속에서 그림자 신에 대한 한없는 경외를 느껴야 마땅할 이 발견에서 제 뱃가죽을 넉넉히 늘려줄 아이디어를 발견한 이들이 있다는 얘기다. 지적인 탐구에 있어선 분명 탁월하나, 이를 위해선지 아니면 순례는 순례고 일단 입에 풀칠할 구석이 필요했던 것인지, 학위다 뭐다 이래저래 품속에 챙겨놓은 것들로 아카데미 시장 어디엔가 한쪽 발을 은근슬쩍 들이밀고 나서부터는 현실 감각 면에선 영 예전만 못한 우리의 고지식한 선배 순례자들은 이를 하찮은 괴담이나 음모론 취급하지만, 이 새로운 신비가 세간에 퍼지기 얼마 전 실제로 비밀스러운 연구가 이뤄졌고 이를 통해 그림자 신이 사물을 삼키게끔 유도하는 몇 가지 그럴듯한 방법이 고안되었으며, 아주 소수의 순례자만이 이 방법을 공유해 세계와 세계를 오가며 기록에 남지 않는 장물들을 생산해내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나의 세계에 진품인 〈아비뇽의 처녀들〉이 두 개 존재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물론 이 두 그림은 완전히 똑같은 〈아비뇽의 처녀들〉이 아닐지도 모른다(어리숙한 신의 우화를 떠올려보라). 그러나 온갖 탁월한 감정사들이 최첨단 기술을 이용해 달려든다 할지라도 이 진품일 수밖에 없는 두 개의 다른 〈아비뇽의 처녀들〉 중 무엇이 ‘진짜 진품’이라고 선언하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감정사 중 그림자 신과 순례사에 정통한 이가 있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하지만 당신,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이 이야기를 믿고 있는가? 믿고 있다면 얼마만큼이나? 과연 당신은 이 글을 읽은 후, 혹시라도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 이후 보도블록의 선을 밟지 않는 놀이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될까? (마치 부모님에게 괴담을 들은 후, 늦은 밤엔 절대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아이처럼!) 그렇다면 당신의 다짐은 당신의 위로 그림자 신이 지나가는 그 예기치 못한 순간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당신이 확률 속에 내던져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잘 구운 믿음들로 짜인 당신의 발밑, 그 현실의 무수한 선 어디선가 허구의 그림자가 입을 벌려 당신을 삼켜버리지 않도록. 당신은 오랫동안, 아니 영원히 망각과 맞설 수 있을까?
경배할지니, 그림자 신의 원칙은 놀랍도록 신비로우며 공명정대하다. 그림자 신은 당신이 왜 그런 놀이를 했는지, 왜 실패했는지 묻지 않는다. 그림자 신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림자 신은 언제나 세계 위로 빠르게 미끄러지며, 종종 삼킬 뿐이다. 그림자 신은 당신을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삼키는지도. ‘삼킨다’는 말조차 모른다. 그림자 신은 확률의 악마다.
1) 프랑수아 라블레, 『팡타그뤼엘』 제3서, 유석호 옮김, 한길사, 2006, 32쪽.
2) 이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그림자 신과 관해 얘기하고 있는 한, 모든 표현은 정확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차라리 그림자 신은 ‘정확한 표현’이라는 개념 자체를 의심케 한다 말해야 한다. 따라서 이 글에선 그림자 신이나 그와 관련한 여러 현상과 사태에 대해 서술할 때에는 사람들이 으레 사용하는, 몇 가지 검증되지 않았거나 검증할 수 없는 관용적 표현을 이용할 것이며, 해당 표현에 대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경우 각주 등을 통해 부기하기로 한다.
3) 마이클 K. 할리, 『환상과 미디어―우리를 매혹하는 놀랍고도 기이한 영상들』, 진정중 옮김, 목마와몽마, 2018, 16쪽.
4) 정정하자. 우리는 결국 이 단락을 삽입한 후 원고의 몇 군데를 더 손봤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맨 마지막에 쓰인 것, 혹은 맨 마지막에 쓰였던 것이 될 것은 바로 이 주석이다.
5) 프랜시스 D. K. 칭, 『건축의 형태·공간·규범』 제4판, 황희준·남수현·김주원 옮김, Kukje Books, 2016,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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