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퍼센트 소년(1회)
- 작성일 2026-08-31
- 댓글수 0
백 퍼센트 소년
신다다
“평소에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낀 적이 있나요?”
안경을 써서 딱딱해 보이는 인상의 기자가 물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인터뷰라 손이 차갑고 목이 빳빳해질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글쎄요. 제가 그렇게까지 남들하고 다르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요.”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인터뷰를 구경하던 엄마가 맞은편에서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야, 네가 왜 안 특별해. 어릴 때 얼마나 똑똑했는데.”
엄마가 끼어들자, 기자가 입꼬리를 올려 어색하게 웃었다. 민망해서 그만두라고 하고 싶었지만, 빨리 넘어가는 게 덜 부끄러울 것 같았다.
“남들보다 제가 특별한 사람이라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지는 않아요. 누구나 다 특별한 점이 있으니까요.”
좋다. 이렇게 말하면 겸손해 보일 것이다.
“처음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받고 어땠어요?”
어땠긴요. 황당했죠. 난 이런 걸 한 적도 없는데. 침을 꿀꺽 삼켰다. 대답이 늦어지자 엄마가 더 긴장하는 것 같았다.
“무지 기뻤어요. 제가 상위 몇 퍼센트인지는 크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덕분에 부모님이 열심히 일하시는 데 집안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도덕책에 나올 것 같은 대답이었다. 집안 사정을 걱정하는 철든 딸로 보이는 게 좋겠다는 전략이었다. 원하는 답변이었는지 기자가 비로소 밝게 웃었다.
“좋은 유전자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신가요?”
웃긴 질문이다. 설문조사나 인터뷰를 할 땐 답을 유도하는 식으로 질문하면 안 된다고 사회 시간에 배웠다.
“네, 덕분에 이렇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는 비로소 함박웃음을 지었다. 늘 회사 일에 지친 엄마의 얼굴만 봐왔기에,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방금 뱉어놓고도 어쩐지 남의 말 같았다. 무난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물론 나도 한 번쯤은 잘나가보고 싶었다. 민망하니까 그런 마음은 꼭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교실 앞에 나가 박수라도 받으면 쑥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는 성격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특별해지길 바란 건 아니었다.
십만분의 일.
십만 명 중에서 무려 일 등.
우리나라에서 제일 들어가기 힘들다는 대학의 제일 들어가기 힘든 학과에 합격하는 것보다도 희박한 확률이었다. 오직 단 한 명.
내가 신청한 적도 없는 유전자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든 그 순간, 나는 졸지에 가장 특별한 애가 됐다.
*
“아, 엄마, 그만 좀 훔쳐 오라고!”
이번엔 주황색 잉어 모양 종이 등이었다. 역 근처 일식당 앞에 줄줄이 달린 걸 언뜻 본 것 같았다. 밤에 회사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서 떼 온 게 틀림없었다.
“아이, 열 마리 중에 하나 없어져도 모른다니까.”
엄마는 화려하게 꾸며진 잉어를 현관문 옆에 갖다 대었다가, 텔레비전 옆에 두었다가 했다. 내가 속이 터져서 한숨을 푹푹 쉬는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예쁘지 않니? 어디에 걸까? 텔레비전 옆은 좀 정신이 없나.”
정신은 이미 없었다. 차라리 노래방 리모컨을 들고 왔다면 술 마시고 한 실수겠거니, 싶을 거다. 어떤 날은 엄마가 낑낑거리면서 커다란 미러볼을 안고 왔다. 반사된 빛이 눈을 찌르는 게 싫어서 타협을 본 게 베란다에 걸어두는 거였다. 화장품 가게 판넬을 들쳐 메고 오기도 했다. 홍보 모델인 인기 아이돌 김저스틴의 등신대였다. 김저스틴이 사주가 끝장나게 좋다고 하니 이런 걸 집에 둬야 한다나 뭐라나.
김저스틴 씨에겐 미안하지만, 우리 집엔 더 이상 공간이 없었다. 베란다에는 이미 아빠랑 연애할 때 받았다던 커다란 곰 인형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세탁기에 들어가지도 않는 크기였다. 빨래를 걷으러 갈 때마다 거치적거렸다. 때가 탔으니 버리라고 해도, 엄마는 어떻게 아빠와의 사랑의 추억을 함부로 버리느냐고 했다. 사랑 같은 소리 하네. 허구한 날 다투기나 하면서. 베란다 한편을 당당하게 차지한 김저스틴 씨는 곰 인형 옆에서 화사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비좁은 거실에도 물건은 넘쳐 났다. 이를테면 골동품 가게에서 사 왔다고 했으나 진위는 확인되지 않는, 거대한 항아리가 있었다. 어디 개업 행사에서 가져온 화분은 물을 주지 않아 이미 말라 죽어 있었다. 산세베리아는 웬만하면 죽지도 않는다던데. 나는 큰맘 먹고 아파트 쓰레기장에 화분을 버리고 왔다. 엄마는 그 화분에 다른 꽃을 심을 계획이었다며, 다시 가지고 오라고 신경질을 냈다. 엄마랑 다투는 모습이 보기 싫었는지 아빠가 결국 들고 오기는 했지만. 물론 화분도 인형과 김저스틴 씨 옆에 그대로 있다.
그때 집에 들어온 아빠가 잉어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곤 한마디했다.
“자기야, 그거 길에 있던 거면 매연이니 먼지니 뒤집어썼을 텐데.”
“아이, 물티슈로 다 씻었지.”
물로 씻었다거나 물티슈로 닦았다고 말하는 쪽이 맞지 않나? 종이 연등을 물로 어떻게 씻는다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빠도 별로 할 말 없는 입장이다. 홈쇼핑 중독이기 때문이다. 열 박스 사둔 건강식품을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고는 했다. 그래서 우리 집 현관에는 택배 박스가 잔뜩 쌓여 있다. 거실이고 방이고, 옷도 무지 많다. 엄마 아빠는 돈도 없으면서 어디서 저렇게 수많은 옷을 사서 꾸미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싼 티 난다고 싫어했지만, 둘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우리 집이랑 안 어울린다니까?”
“주황색 예쁘잖아! 걸어두면 복이 들어온대.”
그런 걸로 복이 들어올 거면 진작 들어왔어야 한다. 부처님 오신 날이 끝나고 어디서 얻어 온 연등부터, 복을 부른다는 코끼리, 고양이, 네잎클로버 장식까지. 있던 복도 떠나갈 것 같았다. 엄마는 결국 텔레비전 옆으로 잉어등의 위치를 정했나 보다. 천장에 잉어등을 걸기 위해 식탁 의자를 밟고 올라갔고, 아빠는 혹시나 엄마가 떨어질까 걱정하며 의자를 붙들고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 위에 쓰러지듯 누웠다. 문을 닫아도 둘이 투닥대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집은 정말 발을 디딜 틈이 없다. 내 방도 비좁다. 그나마 이 침대만이 집에서 편히 누워 있을 수 있는,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다.
나는 이런 집구석에서 자랐다. 그러니까, 내가 엄마 아빠에게서 물려받은 유전자가 십만 명 중 일 등이라는 검사 결과를 쉽게 믿지 못한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
세상엔 기상천외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 평생 함께한 단짝 친구가 알고 보니 잃어버린 형제였다든가, 집에서 요강으로 쓰던 도자기가 실은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유물이었다든가. 케이블 채널에서 새벽에 방영하는 <기묘한 차트쇼 19>를 시청하면 이런 재밌는 일화들을 알 수 있다. 내가 마음의 평안을 얻는 방식이다. <여심을 훔친 역사 속 카사노바 19> 차트 같은 건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해서, 엄마 아빠가 잉어를 어디에 매다느니 마느니 하는 걸로 싸우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가족들이 자는 새벽이면 소리를 낮추고 텔레비전을 틀어놓는다. 늘 보던 휴대폰 화면이 아닌 커다란 화면을 독점하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다. 어쩐지 일탈하는 기분도 든다. 거실 소파에서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다가 흥미로운 주제가 나오면 집중해서 본다. 세계 이색 결혼식이나, 음모론, 범죄, 할리우드 커플, 불가사의 얘기가 나오는 날은 더 몰입한다.
OTT에서 제작한 자극적인 시리즈물도 많은데 굳이 이 낡은 티브이 쇼를 틀어놓기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진행자 아저씨 때문이다. 그는 사십 대 코미디언인데, 옛날에 방송사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지만 여전히 무명이다. 진행에 엄청 충실하지는 않다. 그 아저씨는 본래 행사 진행을 하던 사람인데 어쩌다 보니 여기 앉아 있다는 사담도 풀었다. 종종 허튼소리를 하는 걸 그대로 내보낸다. 그래도 나는 그 사람이 진행을 잘한다고 생각한다. 표정이 건조해서 건성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웃겨보려고 애쓰고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가끔 짠하게 느껴진다. 애들 앞에서 재미있게 말해보려 어색하게 농담하는 내 모습이 겹쳐 보여서 더 그런 것 같다. 편집도 열심히 하지 않는지 자막의 맞춤법이 틀릴 때도 있다. 이 프로그램의 매력은 제작비가 부족한지 얼레벌레 흘러간다는 것이다.
한번은 광고 중에 오줌을 누러 갔다가 1위를 놓친 적이 있다. 그날의 주제는 무척 재미있는 편에 속했다. 인지도가 낮은 방송이라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아마 <예상 못 한 황당한 인생 역전 19> 1위는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새벽에 차트쇼를 틀고 온갖 황당한, 바보 같은, 막장, 끝판왕, 믿거나 말거나, 미스터리 이야기를 보다 보면, 이렇게나 평범한 고등학생인 삶에 만족하며 편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쌍꺼풀 수술을 할 뻔했다. 아빠는 내가 열일곱 살이 되자마자 쌍수를 시켜준다 그랬다. 아빠는 집 근처 마트에 갈 때도 비비크림을 바른다. 옛날에 길에서 스트리트 패션 사이트에 올라가는 스냅 사진을 찍힌 게 지금까지도 최고 자랑이다. 눈에 줄이 생긴다고 갑자기 삶이 기가 막히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서 거절했다. 그나마 요샌 쌍꺼풀이 없는 연예인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쌍수 얘기가 사그라들었다. 그럴 돈이 있으면 그냥 용돈으로 줬으면 좋겠다.
엄마는 소싯적 인삼 아가씨 출신이었다. 여전히 인삼과 아가씨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 엄마는 그 사실을 꽤나 자랑스러워했다. 예선에 출전한 사람이 여섯 명인 건 비밀이란다. 어느 날은 엄마가 머리에 반짝이는 붙임머리를 달고 왔다. 인스타 스타들의 머리가 반짝거리는 걸 몇 번 본 적이 있었지만, 그걸 엄마가 하고 올 줄은 몰랐다.
“이게 유행이래. 너도 해줄까, 방학 동안?”
“내가 하면 웃겨. 그런 거 잘나가는 애들이나 하는 거야.”
“딸! 네가 꿀리는 게 뭐가 있어.”
하여튼 엄마 아빠는 나를 유행의 선두 주자로 만들기 위해 유난스럽게도 애를 썼다. 엄마 아빠는 공부를 잘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촌스러운 사람들은 아니다. 그러나 딸내미가 성적이 좋은 게 아니면 반장이라도 하거나 끼가 넘치거나, 뭔가 특출난 데가 하나라도 있길 바랐다.
엄마 아빠가 나 잘나가는 데 이렇게 집착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나는 같이 다닐 친구가 없어서 혼자 다녔다. 맞거나 돈을 뺏긴 건 아니다. 그저 반의 모두에게 철저히 무시당했을 뿐이다. 지금도 내가 정확히 뭘 잘못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조별 과제 때 내가 조장을 맡게 됐는데 그때 뭔가 말실수를 했는지, 하여튼 몇몇 애들이 날 아니꼽게 보는 것 같았다. 그다음부터 시작됐다.
‘아, 나 짝 장우림 됐어.’
‘진짜? 불쌍. 한 달만 참아.’
뒤에서 속삭이는 말이 귀에 꽂혔을 땐 심장이 빠르게 뛰고 눈물이 찔끔 났다. 하지만 안 들리는 척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뭐라고 따질 용기는 없었으니까. 모른 척하는 게 그나마 자존심이 덜 상하는 일이었다. 쉬는 시간이면 책상에 엎드려서 자는 시늉을 했다. 실은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그 애들이 알까? 깔깔대며 하는 실없는 농담도 학원 선생님에 대한 뒷담화도, 내가 다 듣고 있었다는 걸.
다행히도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왔고, 반 애들과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잘 웃고, 배려하고, 친절하게 대하려고 애썼다. 작은 간식을 들고 가서 애들한테 나눠주기도 했다. 그런 노력이 통했는지, 2학년이 된 이젠 그럭저럭 잘 지낸다. 그럭저럭.
그새 텔레비전에선 <기묘한 차트쇼 19>가 끝나고 광고가 나왔다. 유전자 검사 광고였다. 새벽 시간 케이블 채널에서나 겨우 보이는 광고인 걸 보면, 작은 회사인 듯했다. 광고하는 연예인도 없었지만, 깔끔한 그래픽이 눈길을 끌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당신이 질병에 걸릴 확률을 예측해보세요. 이벤트 기간에 한해, 유전자 레벨이 높은 분들은 대출 이자를 할인해드려요. 황금캐피탈 유전자 검사, 지금 받아보세요!’
어렸을 때는,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엄마 아빠를 보고 내가 친딸이 맞을까, 했다. 어릴 때 아이가 어떻게 생기는지 그려낸 동화책을 보고 물어봤다. ‘엄마, 나도 엄마 배꼽에서 태어났어? 다른 아줌마 배꼽에서 나온 거 아니야?’
<기묘한 차트쇼 19>에는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었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부모들이나, 다른 가정에 입양되었다가 수십 년 만에 서로를 찾은 쌍둥이의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주 드물어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다.
*
변기 위에 앉은 채로 팔과 다리를 쭉 늘렸다. 목도 최대한 빼서 몇 번 돌렸다. 백화점 화장실 안에 세 시간쯤 앉아 있자니 슬슬 몸이 뻐근했다. 몇 번 일어났다 앉았다, 화장실 벽을 잡은 채로 허리를 뻗었다. 오래 앉아 있는 일이 조금 지치기는 해도 이곳이 제일 편했다.
여기는 내 아지트다. 백화점 8층 화장실. 다들 아지트에 대한 로망을 갖는다. 아지트라고 해봐야 선생님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옥상, 유치원생들이 종종 지나가는 놀이터 벤치가 전부다. 그런 장소는 언제나 다른 사람이 불쑥 들어올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은 적어도, 아무도 침입할 수 없다.
화장실에서 삐댄다고 하면, 사람들은 지저분한 화장실에서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상상할지도 모르겠다. 비데가 설치된 백화점 화장실은 검정에 가까운 남색 유광 타일과 대리석 바닥, 은은하고 노란 조명으로 인테리어되어 있었다. 화장실치고 공간도 아주 넓었다. 옷을 걸어놓을 고리도 문과 벽에 달려 있고, 변기 뒤에는 짐을 올려놓을 받침대도 있다. 라벤더 향의 자동 방향제 분사기에서는 얼마간에 한 번씩 방향제가 나와 좋은 냄새도 났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흘러나오는 연주곡은 감미로웠다. 그리고 많은 공중화장실과 다르게 칸막이 벽과 문이 바닥까지 붙어 있었다. 문을 닫으면 완전히 분리된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 정도면 방이나 다름없는 것 같다.
논술 선생님은 ‘것 같다’는 말은 절대 쓰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런 단어를 사용하면 발언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자신이 없어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세상엔 ‘것 같은’ 일이 너무 많다.
오늘 숙제를 제출하러 수빈이와 교무실에 갔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2학년이 되고 친해진 친구인 수빈이는 능청스러운 데가 있다.
“아, 쌤. 저 이거 다 만드느라 진짜 고생했어요.”
“아이고, 예쁘다.”
지나가던 학년부장 선생님이 말했다. 우리가 만들어 온 포스터가 예쁘다는 의미이기도 했겠지만, 선생님은 수빈이를 한 번 더 바라보고 눈을 맞추며 말했다. 내가 담임이라도 수빈이가 더 예쁘다. 야무지고 싹싹하니까. 담임 선생님은 웃으면서 듣고 있다가, 내가 신경 쓰였는지 덧붙였다.
“우리 예쁜이들! 둘 다 너무 잘했어.”
예쁜 게 얼굴이 예쁘다는 뜻이 아닌 걸 알면서도 괜히 민망했다. 수빈이는 교무실을 나오면서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에 뭔가를 적었다.
“뭐 적는 거야?”
“시험기간 얼마 안 남았잖아. 쌤 문제집 뭐 쓰는지.”
생각도 못 한 부분이었다. 대단한 애다. 수빈이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기란 어려운 일이다. 수빈이는 친구도 많다. 생일에는 사물함 위에 선물 쇼핑백을 쌓아두었다. 내가 준 케이크 말고도 다른 반 친구들에게서 케이크를 두 개나 더 받았다. 물론 수빈이가 그만큼 주변인을 잘 챙기기에 그렇기도 하다. 내 생일에도 예쁘게 꾸민 손편지랑, 마침 딱 필요했던 다이어리를 주었다. 누구에게 뭐가 필요한지 고민해서 일일이 챙겨주는 건 내겐 벅찬 일이다. 용돈이 부족한 탓도 있을 테다. 딸이 수빈이 같으면, 내가 부모라도 자랑하고 다닐 거다. 용돈도 조금 더 주고 싶을지도 모른다.
수빈이와 교실에 돌아가자, 노는 남자애들 몇이 사물함 앞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한 애가 요새 운동을 열심히 하는지, 졸업사진을 찍을 때 복근을 드러내겠다고 말하는 게 들렸다. 애들이 환호했다.
“한번 봐봐.”
“아이, 사진 찍을 때 딱 벗어야지.”
낄낄대며 웃던 애 중 하나가 자리로 돌아가는 수빈이를 보고 어깨를 톡 쳤다.
“김수빈. 다음 교시 뭐냐?”
“국어.”
허세가 심해서 나는 안 좋아하는 남자애였다. 걔는 몸을 돌리다가 실수로 내 어깨에 팔을 부딪쳤다.
“아, 쏘리.”
“아냐, 괜찮아.”
예의상 한 말이 아니라, 정말 괜찮다는 걸 보여주려고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근데 너 이름 뭐더라?”
그 남자애가 물었다.
“아, 장우림이야.”
애써 답을 해줬다. 학기가 시작한 지 두 달이나 됐는데. 수빈이 이름이 더 외우기 쉬웠을까. 내가 그렇게까지 존재감이 없었나. 왠지 몸에서 기운이 쭉 빠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점심시간 내내 축구를 하고 온 남자애들과 에어컨 앞에 앉아 있던 여자애들이 서로 손목을 쥐면서 투닥거렸다. 진짜 싸우는 건지 장난을 치는 건지 모르겠다. 땀과 호르몬 냄새를 풍기는 애들. 보기만 해도 후덥지근했다. 다투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엎드려서 이어폰을 꽂았다. 그러고 있으면 이 교실에 속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교실 창문의 연두색 커튼을 멍하니 바라봤다. 빤 지 오래되어 때가 타 있었다. 먼지가 잔뜩 묻은 것 같았다. 만지기 싫었다.
누가 배탈이 났는지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나가야겠다.
첫 백화점 화장실의 기억은 엄마 아빠가 싸우던 날이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우리는 백화점 식당가에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그 전에 쇼핑을 한다고 둘러보고 있는데, 엄마 아빠가 짜증스럽게 대화하는가 싶더니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나중에는 다른 손님들 몇몇이 멈춰서 구경할 정도로 크게 다퉜다. 직원은 말리지 않고 멀찍이 서서 눈치를 봤다. 아마 어른들 눈에 내가 안쓰러웠던 것 같다. 그 표정을 기억한다.
나는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조용히 화장실 표시를 따라갔다. 그때도 화장실에선 달콤한 방향제 냄새가 났다. 파우더룸이라고 쓰여 있는 공간엔 꽃으로 장식된 화려한 디자인의 소파가 있었다. 어떤 여자가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나는 그 소파에 앉았다.
배가 고팠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체감상 한 시간은 거기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흐르니까, 삼십 분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부모는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울 것 같은 기분을 추스르고 나서, 우리가 있던 매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직원은 벤치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엄마와 아빠는 지친 표정으로 떨어져 앉아 있었다. 엄마는 화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고, 아빠는 찔끔 흘린 눈물을 닦고 있다. 나는 그 사이에 끼어 앉았다.
둘은 연례행사처럼 한 번씩 크게 싸운다. 몇 달 전에도 여느 때처럼, 엄마는 클럽에 간다고 그랬다. 동네에 있는 나이트클럽이 아니고 서울에 있는 진짜 클럽이었다. 엄마 아빠보다는 내 나이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 춤을 추는. 그게 뭐가 거슬렸는지 싸우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자 소리를 지르는 건 아닐 테다. 그래도 듣기 싫다. 속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다. 목소리가 높아지다 이젠 찢어지듯 갈라진다. 시끄러워. 나도 모르게 열이 뻗쳤다. 뭐가 명치를 넘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몸이 터지기 직전까지, 손끝까지 뜨거운 찰흙이나 온천수 같은 걸 꽉꽉 채워 넣은 것 같았다. 암만 화가 나도 몸이 진짜로 폭발할 리는 없겠지만. 깊게 숨을 내쉰다. 더 빠른 속도로 차오른다. 그때 처음 생각했다. 가출하고 싶은 것 같다.
그렇다고 아무 대책 없이 가출할 수는 없다. 담임 선생님은 상담할 때 ‘우림이는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너무 애쓰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무슨 맛 핫도그를 먹을지는 막 골라도 되지만, 가출은 그런 문제가 아니다. 치즈 핫도그를 사서 맛이 없으면 그대로 버리고 감자 핫도그를 또 사도 된다. 나는 가출해서 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가출팸에 들어갈 만큼 용감하지도 않다. 통장에는 세뱃돈을 모아둔 30만 원이 전부였다.
내가 한 선택은, 그저 집구석에 덜 붙어 있는 거였다. 시간을 때우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는 법은 다양했다. 처음엔 야간자율학습을 신청했다. 휴대폰을 만지면 혼이 났고, 석식을 같이 먹을 사람도 없었다. 스터디카페에는 아는 애들이 많아서 혼자 있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도서관은 여섯 시면 닫았다. 피시방은 시끄러워서 머리가 아팠다. 돈이 들지 않고 안락한 곳을 찾았다. 백화점 화장실이었다. 여기서 휴대폰 게임도 하고, 웹소설도 읽고, 가끔 과자도 먹는다.
백화점은 여덟 시에 닫지만, 식당가는 아홉 시 반까지 영업한다. 가장 손님이 적은 6층 화장실에서 여덟 시까지 버티다가, 식당가가 있는 8층으로 옮겨서 앉아 있으면 되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천천히 걸어서 집에 들어가면 된다.
반 애들 중엔 통금이 여섯 시인 애도 있다. 걔는 부모의 과보호에 대해서 불평하지만, 괜히 쓰린 마음이 들었다. 나는 부모가 놀다가 더 늦게 들어오는 집 딸이니까. 초등학생 때는 가정통신문에 보호자 사인을 받으려고 기다리다가 잠이 드는 바람에 사인을 못 받아 가기도 했다. 덕분에 어른의 글씨체를 흉내 내는 기술만 늘었다. 가끔은 오백 원을 받고 친구들 성적표에 대리 사인도 해주었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백화점을 나섰다. 집에 들어서니 하얀 부엌 등 하나만 켜져 있어서 어두침침했다. 어두운 거실 소파에 엄마가 다리 한쪽을 끌어안고 앉아서 뭔가를 보고 있었다. 광고지였다.
“장우림. 자기 전에 유산균 두 알 먹어. 공복에 먹어야 해. 다 떨어져서 새로 사놨어.”
엄마는 현관문 열리는 소리를 듣고, 내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외쳤다. 고작 영양제 먹이는 거면서, 되게 열심히 내 건강을 챙겨주는 척한다. 그게 요리를 하는 것에 비해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영양 보충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엄마 입장에선 기술 발전을 누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람 마음이 웃긴 건, 엄마가 자꾸 이거 먹어라, 저거 먹어라, 하니까 영양제를 먹기가 싫어진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학교에서 시키는 것들도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거면 기분이 괜찮을 텐데. 자기 방은 기가 막히게 정리해서 사진 찍어 올리는 애들도 교실 청소는 싫어한다.
하지만, 어차피 성인이 될 때까지는 이 집구석에 붙어 있어야 하니까. 미지근한 물을 컵에 받았다. 엄마는 광고지를 식탁에 두고 들어갔다. 힐끗 봤다. 황금캐피탈 유전자 검사.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그거였다. 유산균 두 알을 꿀꺽, 삼켰다. 알약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 찝찝했다. 꼭 식도에 계속 걸려 있는 것만 같았다.
방에 들어왔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평소엔 그러면 잘 안 받는다. 직장인도 어른도 아닌 내게 연락처에 없는 번호에서 중요한 전화가 올 리는 없으니까. 그런데 휴대폰을 만지다가 실수로 받아버렸다. 무슨 캐피탈이 어쩌고저쩌고. 대답하지 않고 끊었다. 광고 전화인 것 같았다.
띠링. 곧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안녕하세요, 장우림 고객님. 황금캐피탈 영업부 주임 서윤아입니다. 유전자 레벨 검사에서 100퍼센트라는 결과를 받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검사 결과와 관련해 안내드릴 사항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보이스 피싱인가? 곧 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장우림 고객님 맞으시죠.”
이런 전화는 언제나 긴장된다. 쇼핑몰 고객센터 말고는 모르는 사람과 전화해본 적이 없다. 존칭을 들으면 어색하다.
“축하드려요. 저희 황금캐피탈 유전자 검사 대상자 중에 첫 번째 백 퍼센트가, 장우림 님에게서 나왔어요.”
“검사요? 저는 그런 걸 받은 기억이 없는데요.”
“저희 회사에서 댁으로 우편물을 보내드렸는데요. 혹시 못 받으셨을까요?”
“확인해볼게요.”
우리 집은 아파트 2층에 있다. 전화기를 든 채로 현관을 나서 계단을 빠르게 내려갔다. 우편함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틈새를 들여다보니 바닥에 뭔가 깔려 있었다. 입구에 손을 비집어 넣고 손끝으로 종이를 조금씩 끌어당겼다. 우편물은 ‘황금캐피탈’에서 온 거였다.
“아, 있어요.”
“확인 마치시면 내일 다시 전화드릴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서 봉투에 적힌 글씨를 찬찬히 읽어봤다. 내 이름, 우리 집 주소가 맞았다. 그리고 떠올렸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광고를.
집 현관을 열고 다시 들어가자 그새 소파에 앉아 있던 엄마가 고개를 쭉 빼고 나를 쳐다봤다. 내가 무슨 통화를 하는지 엿들은 게 틀림없다.
“어디 갔다 왔어?”
“엄마, 나 무슨 검사 받았어? 백 퍼센트라는데. 이게 뭐야?”
“네가 백 퍼센트라고?”
나는 우편물을 엄마에게 건넸다. 엄마가 못 믿겠다는 듯 눈이 동그래져서 결과지를 살폈다.
“어머, 너무 잘됐다! 제일 높은 게 백 퍼센트잖아.”
“아니!”
복식 호흡으로 배에 힘을 주고 소리를 지르자, 엄마가 당황해서 굳었다.
“백 퍼센트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내 유전자 검사를 어떻게 했냐고.”
“그게, 피 뽑아서 하는 게 아니라 머리카락이 있으면 돼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내 머리카락은 어떻게 채취했다는 건가.
“네가 빗을 쓰고 거실에 뒀더라구. 그거 한번 뜯어보자. 응?”
엄마는 우편물을 힐끗거리며 쳐다봤다. 궁금하기는 했기에 일단 우편 봉투를 뜯었다.
[장우림 님의 유전자 검사 결과입니다.
유전자 레벨: 100%
자세한 결과는 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큰 글씨로 적힌 건 그게 다였다. 배경지에는 황금캐피탈의 상징인 듯한 금색 독수리 로고가 연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다음 장에 그래프와 도표가 빼곡히 있고, 그 밑에 작은 글씨로 약관들이 쓰여 있다.
“자기야! 나와봐. 저번에 검사한 거. 얘 백 퍼센트 나왔대.”
엄마는 우편을 보고 놀라더니 아빠를 불렀다. 낮잠 자던 아빠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대답했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엄마가 짜증스럽게 문을 쾅쾅 두드리자, 아빠는 부스스한 머리로 방에서 걸어 나왔다.
“와, 뭐야. 너 그럼 상위 일 프로야? 대박.”
잠이 덜 깨서 눈을 비비던 아빠가, 엄마가 보여준 우편물을 쓱 보더니 감탄했다.
“이런 걸 왜 한 건데?”
“지금 이벤트 기간이라서 대출 이자 깎아주거든.”
“대출?”
“우림아. 지금 우리 집이 돈이 좀 필요하거든? 여기 전세 계약 다시 해야 하는데, 갑자기 전세금을 올린다네.”
“그렇다고 내 머리카락 가져다가 검사를 말도 없이 받아? 이름도 처음 듣는 회사잖아. 멋대로 유전자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찝찝해.”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 엄마 열심히 일하는 거 몰라? 이해 좀 해주지?”
엄마는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아, 진짜, 대체 돈이 뭐라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 눈치를 보는 엄마 아빠를 뒤로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손에 들린 우편물을 다시 노려봤다.
유전자 레벨이 높다. 아마 더 우등한 유전자를 가졌다는 의미인가 보다. 적혀 있는 사이트 주소로 접속했다. 우편물에 쓰인 코드와 이름, 생년월일을 입력하고 본인 인증을 하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검사 보고서에는 백 개가 넘는 항목이 있었다. 카페인 민감성이나 유당 불내성, 짠맛 민감도같이 이해하기 쉬운 항목부터, 비타민이나 오메가 지방산을 합성하는 능력, 운동 능력, 식욕 조절 능력, 수면의 질 같은 것들이었다. 심지어 조현병과 같은 몇 가지 정신 질환, 온갖 종류의 암이나 성인병, 알아듣기 어려운 돌연변이로 인한 질병 인자를 가졌는지 아닌지까지 알 수 있었다. 여드름이나 켈로이드 흉터 위험성, 하다못해 모기에 잘 물리는지까지.
정말로 나는 좋은 유전자를 가진 걸까. 다음 날 수업 시간 내내 그 질문에 사로잡혔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 아빠가 내게 썩 좋은 걸 물려준 것 같지 않았으니까. 돌이켜보니 나는 알레르기도, 아토피도, 비염도, 멀미도 없었다. 운동을 안 하는데도 반에서 달리기 3등은 해서 이어달리기 대표로도 종종 출전했다. 공부를 대충 하는 것치고 성적도 웬만큼 나왔다. 검사지대로라면 아마 암도 안 걸릴 것이고, 당뇨병도, 치매에 걸릴 확률도 낮을 것이다. 커피나 담배에 중독될 확률도 낮다고 한다. 여전히 결과를 완전히 신뢰해도 괜찮을지 찝찝함은 있었지만, 조금 뿌듯하기도 했다. 어쨌든 유전자 레벨이 낮은 것보단 높은 게 좋은 거겠지.
점심시간에 어제와 같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사람이 별로 없는 계단 쪽으로 뛰어갔다. 입을 가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어제 연락드렸던 황금캐피탈입니다. 우편물 확인하셨을까요?”
“네, 봤어요.”
“저희 회사에서 십만 명을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는데, 100퍼센트 만점이 나온 건 우림 님이 처음이거든요.”
십만 명 중 처음이라니! 좋은 점수가 나온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는 예상치 못했다. 그러면 내 유전자가 무려 십만분의 일인 건가.
“혹시 인터뷰가 가능하실까요?”
“무슨 인터뷰인데요?”
침을 꿀꺽 삼켰다.
“저희 기업 사이트에 올라가는 홍보용 기사예요. 인터넷 신문에도 배포가 되고요. 텔레비전 뉴스 같은 건 아니라 부담 없으실 거예요. 가능하면 부모님도 함께 집에서 인터뷰했으면 좋겠는데요.”
설명하는 여자의 높은 목소리에 예의 바른 웃음이 묻어 있었다. 나는 짐짓 긴장하지 않은 척했다.
“고민해보고 말씀드려도 되나요?”
“그럼요. 우림 님이 아직 미성년자이시니까 저희가 부담스러운 질문을 드리지는 않을 거예요. 미리 질문지도 드리고, 혹시 답하기 어려우신 경우를 대비해 간단한 답변 방향도 적혀 있어요. 편하게 참고만 하시면 돼요.”
알겠다고 대답한 뒤 통화를 마쳤다. 이만하면 충분히 어른스럽게 말한 것 같다. 이따 집에 가면 엄마 아빠한테도 의견을 물어야겠다. 선택은 내가 할 거지만, 이런 걸 바로 수락해서는 안 된다는 것쯤은 안다. 비록 내 엄마 아빠가 좀… 그렇지만, 그 정도의 상담은 해야 한다.
“가족회의를 하자.”
엄마가 저녁상 앞에서 비장하게 말했다. 가족회의는 초등학생 때나 했던 것 같다. 어쩐지, 생일에나 겨우 상에 올라오는 소갈비찜을 한다고 분주하다 싶었다.
세 가족이 다 같이 식탁에 앉은 건 오랜만의 일이다. 어색해서 갈비찜에 시선을 두고 고기를 뜯는 데 집중했다. 가족회의를 무슨 갈비찜을 먹으면서 하냐고. 엄마 아빠는 제대로 먹지도 않으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우림아. 동생이 생기면 어때?”
엄마가 갑자기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씹던 밥을 꿀꺽 삼켰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당연히 유전자 레벨이나 전세 대출에 관련된 얘기를 꺼내겠거니 하고 있었다.
“동생? 갑자기? 엄마, 임신했어?”
얼굴을 찌푸리고 물었다.
“아니, 입양 같은 건데.”
엄마의 말이 이해가 잘 안 되어서 눈만 깜빡거렸다.
“그게, 정확히는….”
아빠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가로막았다. 지금 딸 하나도 제대로 감당 못 하면서, 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한번 생각해봐.”
엄마가 말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가만히 입을 닫고 있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식기 전에 다 먹어.”
아빠는 한숨을 쉬고는, 몇 시간 동안 만들어놓은 갈비찜을 거의 먹지도 않고 일어섰다. 엄마는 평소라면 가족이 다 먹기도 전에 자리를 뜨는 건 매너가 없다고 한 소리 했을 테다. 그러나 엄마도 별말 없이 젓가락으로 밥그릇을 뒤적거릴 뿐이었다.
“갑자기 입양을 왜 한다는 건데?”
“엘리베이터 게시판 봤어?”
엄마 말에 엘리베이터에 붙어 있던 홍보지를 떠올렸다. 다자녀 전세 대출 지원. 이제 둘만 낳아도 다자녀 지원을 해준다고 떠들어대던 뉴스도 떠올랐다.
“설마 지원금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
지원금을 받겠다고 생판 모르는 애를 입양한다는 걸까? 애초에 아무한테나 입양을 하게 해주는 건가? 이런 부모라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나으니까?
“우림아. 물론 운이 좋게 황금캐피탈에서 대출 이자를 할인받을 수 있게 되기는 했지만, 그 큰돈에 붙는 이자를 매달 갚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전세금 지원도 같이 받으면 생활비도 넉넉하게 쓸 수 있어.”
동생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착잡했다. 차라리 이 나이에 늦둥이가 생긴 게 나을 뻔했다. 늦은 저녁이라 배가 고팠는데도,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엄마가 덜어놓은 고기를 그대로 남기고 일어섰다. 조용한 집 안에 의자 끄는 소리만 끼익 났다. 이 와중에 소고기가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좋은 기분으로 밥을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 먹고 나서, 소화도 좀 되고 나서 얘기를 해도 괜찮았을 텐데. 늘 이런 식이다.
열 살 때였다. 기껏 가족여행을 가서는, 육천 원 하는 솜사탕도 사주지 않았다. 그때의 기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솜사탕을 먹고 싶어서가 아니고, 서러워서 울었다. 이제는 기름값, 숙소값, 막히는 차 속에서 버틴 시간들, 이 모든 것이 비용이라는 걸 안다. 그 돈과 시간을 들이고도 육천 원이 아까워서 여행의 추억을 망친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겉옷을 소파에 걸쳐두어서 다행이었다. 옷을 가지러 방으로 들어가려면 식탁을 지나쳐야 하니까. 겉옷을 챙겨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보고 싶지 않았다.
무작정 걸었는데 갈 데가 없었다. 백화점은 이미 닫을 시간이었다. 내가 백화점을 가지고 있다면, 최대한 많은 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열한 시까지 영업했을 거다. 그냥 집 앞 길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눈물이 조금 났다. 눈가를 훔치니까 지나가던 사람이 흘낏거리며 쳐다봤다. 민망해서 눈물이 그쳤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식탁 위에 남은 갈비찜이 랩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역시 다 식은 걸 입에 넣을 기분은 아니었다. 거실로 눈을 돌리니 컴퓨터 화면이 켜져 있었다. 십 년은 된 데스크톱이다. 뭐라도 하고 싶어서 그 앞에 괜히 앉았다. 그리고 검색창에서 미처 지우지 못한 검색 기록을 발견했다.
‘파양 과정’
주택 청약을 위해 아이를 입양하고, 쓸모가 없어지자 파양한 이들의 기사를 읽었던 것이 어렴풋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입양도 아니고 파양 절차를 왜 찾아본 걸까? 설마, 싶었다. 지원금을 받고 나중에 파양하려고? 내 부모가 이 정도의 인간들이었나? 충격적이다. 그리고 실망스럽다. 그리고? 상처받은 것 같다. 기분을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가 뒤로 슥 다가왔다. 평소에 내가 휴대폰을 만지거나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엄마는 아닌 척 옆에서 들여다보았다. 때로는 내가 말한 적도 없는 친구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엄마는 거실을 괜히 걷는 척, 뒤에서 모니터를 지켜보았다. 신경 쓰였지만 무시했다. 검색창에 ‘입양 후 파양’을 입력했다. 이혼 시 입양했던 아이를 파양할 수 있는지 묻는 질문 글이 가장 먼저 떴다. 파양 절차에 관한 법률 상담 정보 블로그도 있었다. 내가 뭘 검색하고 있는지 굳이 숨기지 않았다.
엄마는 가만히 있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반응을 의식하느라, 관련 기사를 클릭했지만 내용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림아. 네 친동생이야.”
나는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봤다.
“내가 낳은 애라고.”
자기가 낳은 애를 왜 입양한다고 말하는 거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우리가 애를 파양하려는 게 아니고. 보냈던 애가 얼마 전에 파양당했어.”
엄마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애기를 버렸었다고?”
나는 악담을 퍼붓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못되게 말하는 게 정당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왠지 그러고 싶고, 무엇보다, 그래야 마땅할 것만 같은. 당신이 아이를 버렸다고 짚는 게 엄마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았다.
엄마는 눈썹을 팔자로 치켜뜨고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저 표정이 싫다. 불쌍한 척하는 티가 나는 게 싫다. 불쌍한 척하는 게 고작 열여덟인 내 눈에도 보인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내 엄마인 게 싫다.
“우림아. 엄마 아파서 너 할머니 집에서 지냈던 거 기억나?”
“그때 사실은 아프지도 않은데 날 속였다는 거야? 계획 없이 임신해서 애 낳고 버린다고.”
엄마는 이제 불쌍한 척을 하지도, 한숨을 쉬지도 않았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꺼진 텔레비전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화면에는 나와 엄마가 비쳤다. 좁은 집구석에 60인치 텔레비전. 소파와 텔레비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화면이 부담스럽게 컸다. 커다란 화면에 회전의자에 앉은 나와, 허리를 짚고 서 있는 엄마와, 기어이 베란다 문손잡이에 매달린 잉어등과, 웃고 있는 김저스틴 씨까지 전부 비쳤다.
“우림아. 그런 거 아니야. 아팠어. 진짜 아팠어.”
할머니랑 지내던 때를 떠올렸다. 이 년 전이었다. 할머니는 창고로 쓰던 방을 직접 깨끗이 치우고 이불을 깔아주었다. 그 육 개월은 불편했다. 남의 집에 얹혀산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국도 끓이고 반찬도 이것저것 해주셨지만, 맛에 쉬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준비물로 뭘 사야 하는지도 말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자꾸만 내가 어릴 때 어찌나 예뻤는지 얘기했다. 함께 시장에 갔더니 과일을 잘 받아먹더라. 노래를 시키면 기똥차게 해서 시장 아줌마들이 예뻐하고는 했다.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할머니가 교복을 지적해도 그러려니 했다. 할머니가 일찍 자라고 하면,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때는 새벽에 케이블 방송을 틀어둘 수도 없었다. 그런 걸 보고 있으면 할머니는 세상이 천박해졌다고 그런다. 실은 할머니가 보는 드라마가 더 심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보고는 방에 들어가라고 하지만, 할머니는 텔레비전 소리를 아주 크게 틀어놓기 때문에 다 들린다는 것을 모른다. 바닥에 깐 이불에 누워서 할머니가 보는 막장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싸우고, 화해하고, 불륜하고, 자고, 싸우기를 반복하는 걸 들으면서, 내 집안도 막장인 걸까, 생각했다.
“아프고, 돈도 없어서 그랬어. 미안해. 응? 잘 키울 자신이 없었어.”
“뭐가 미안해, 나한테?”
엄마는 거듭 사과했다. 왜 내게 미안해하는지 모르겠다. 난 어쩌면 버려질 수도 있었는데 안 버려진 애니까. 그 애가 사과받을 일이다.
걔가 보육원에 보내졌다고 하여 불행하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나 같은 사람은 부모랑 같이 살아도 좀 불행하다. 세상엔 없느니만 못한 부모도 많다. 그래도 버려지는 일은 썩 유쾌하지는 않다. 게다가 걔는 멋진 부모에게 입양될 수 있는 기회마저 빼앗겼다. 이 애는 두 번 버려진 데다가, 결국 돌아온 부모마저 이따위다. 그건 좀 불쌍하다.
어차피 다시 데려올 거라면 왜 버렸을까? 그 애는 졸지에 버려지는 일을 겪고, 유복한 가정의 자식이 되지도 못했다. 안타깝다. 그 애가 버려진 게 이상한 일이 아니고, 나를 버리지 않은 게 이상한 일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엄마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니까.
엄마는 나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반년 지나, 그해 겨울에 돌아왔다.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이었다. 아주 무거워 보이는 새까만 코트를 입고 입학식에 찾아온 엄마를 기억한다. 옷의 부피가 커서,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엄마가 꼭 닭같이 조그매 보였다.
할머니는 엄마한테 박복한 년이라고 말했다. 나는 ‘할머니, 박복한 게 뭐야?’ 그랬다. 복이 없다는 뜻이라고, 나중에 검색해 보고서야 알았다. 그래서 엄마가 그렇게 복을 부른다는 물건을 놓는 데 집착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다리를 떨고 있으면 허벅지를 짝 때리면서 복 나간다고 핀잔을 주던 게 떠올랐다.
애는 추운 날에 태어났다. 베이비 박스에 누워 있는 갓난아이를 생각한다. 엄마 아빠는 거기에 쪽지를 남겼을까? 태어난 날을 알고 있으라고, 부모가 누군지 기억하라고, 아니면 미안하다고, 이름이라도 지어봤다고. 사정이 있어서 키울 수 없다고 변명했을까?
어차피 아기들은 글을 읽을 수도 없다. 그저 살을 파고드는 바람을 느낄 뿐이다. 추운 건 안다. 추운 걸 춥다고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불쾌해서 울고 싶었을 것이다. 애는 울었을 거다. 갓난애들은 우니까. 그럼 울음소리를 듣고 금방 데리고 갔을지도 모른다.
이 애가 엄청 징징대고 시끄럽게 우는 아기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
나도 몰랐던 동생이 있었단 걸 알게 되고 며칠이 지났다. 냉장고에 한번 들어갔던 소고기는 다음 날 아빠가 먹었다. 엄마 아빠랑은 대화하지 않았다. 교복도 알아서 빨았다.
인터뷰는 그냥 하기로 마음먹고 엄마 아빠에게 통보하기로 했다. 그다지 의견을 묻고 싶지도 않았다. 거실 컴퓨터 앞 의자에 한쪽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는 아빠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상황에 인터뷰 일까지 알려야 하나. 그렇지만 긴장감을 안고 끙끙대는 것도 지쳤다.
“아빠. 그 유전자 검사한 거 있잖아.”
내가 먼저 말을 꺼내자 아빠는 어, 왜? 하면서도 흠칫 놀란 눈치였다. 요새는 내가 뭐라도 따질까봐 겁나는 듯했다.
“나 그냥 백 퍼센트가 아니라, 십만 명 중에 최초래.”
“뭐? 모든 사람 중에 1등이야?”
“모든 사람은 아니지. 검사받은 사람들 중에.”
내가 화내지 않고 설명하자 아빠는 안도의 한숨을 작게 뱉었다.
“와, 내 딸이 이렇게까지 우월한 유전자였다니.”
“그래서 인터뷰하자는데.”
“돈은 준대?”
“얼마 주는지는 말 안 해주고, 수고비 준다고 했어.”
그 말을 들은 아빠는 반색을 표했다.
“그래. 네가 언제 그런 기사 인터뷰를 하겠어.”
예상대로 아빠는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는 가끔 학교 화장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백화점 화장실처럼 깨끗하지도, 아늑하지도 않다. 그래도 볼일을 보고 나서 뚜껑을 닫고, 일 분이라도 더 앉아 있는다. 환풍기가 있는 가장 안쪽 칸은 바람이 들어와서 시원하다. 공기가 차서 바깥과 연결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밖에서 애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혼자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다.
학교에는 사람이 너무 많다. 친구가 없는 애들은 엎드려서 잠을 자는 척하면서 버틴다. 나는 다행히 같이 다닐 친구가 있어서, 멋쩍게 교실 뒤편 사물함 쪽을 배회하거나, 확인할 문자도 없는데 휴대폰을 만지거나, 억지로 문제집을 붙잡고 있지 않아도 되었다. 수업 시간도 억지로 들어야 하는 것 치고는 즐기는 편이다. 국어 교과서에 나온 작품들 이야기나 역사 선생님이 해주는 사담은 나름 들을 만하다.
다만 자주 지쳤다. 교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하는 것들. 모든 게 적당해서 같이 다니기 괜찮은 애가 되는 것. 소문에 뒤처지지 않는 것. 이해하지 못해도 넘어가는 수업 진도. 잘 안 맞는 애들과도 한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내내 생활하는 것.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점심시간에 아빠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너 학원 문제집 놓고 갔더라. 학교 앞이야.]
급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밖으로 나갔다. 후문에 아빠가 서 있었다. 점심시간에 운동장을 거닐거나 축구하던 애들이 힐끗거렸다. 나는 걸음을 빨리했다. 아빠가 밝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우림!”
“아빠. 학교 안 와도 된다니까….”
“너 끝나고 바로 학원 가잖아.”
맞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 아빠가 학교에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애들이 왜 이렇게 어려 보이냬.”
“그래? 어려 보이면 좋지!”
‘요샌 딸이 좋다더라.’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가 그랬단다. 할머니는 친구 중 가장 먼저 할머니가 됐다. 내 엄마 아빠는 학교에 찾아오는 학부모 중에 제일 어렸고 가장 눈에 띄었다. 아빠는 우리가 부녀 사이라는 걸 쉽게 유추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뿌듯해했다. 사실 내 학교생활에 크게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이렇게나 스타일 좋은 아버지로 보는 시선을 더 즐기는 것 같다.
학부모총회 엄마들 모임에까지 끼는 건 우리 아빠밖에 없다. 아빠는 애 엄마가 바빠서 집안 사업을 돕고 있는 자기가 나왔으며, 우림이를 잘 부탁한다고 말한다. 엄마들은 우림이 아버지는 대단하세요, 우림이가 부러워요, 하고 한마디씩 추켜세운다. 물론 그들은 아빠가 백수라는 건 모르니까 하는 소리다. 집안 사업을 돕는단 건 다 뻥이다. 편의점 알바하다가 술 취한 아저씨가 진상 부린 일로 당장 그만둘 정도의 약한 정신력의 소유자라는 걸 알면 그런 말이 안 나올 거다.
아빠는 백수인데도 별걱정은 없다. 설거지하면서 노래 부르고, 청소기 밀면서 텔레비전 보고. 집안일을 다 마치고 나면 컴퓨터 게임을 한다. 하도 철없이 살아서 백이십 살까지 살 것 같다. 나는 ‘맨날 술 담배 하면서 장수하는 할아버지 인터뷰’에 등장하는 ‘먼저 간 딸내미’가 될지도 모른다.
“아빠, 진짜 아빠같이 안 보여.”
그때 나를 은근히 따돌리던 애들도 아빠를 보고 뒤에서 그랬다. 장우림 아빠 맞아? 이상한 아저씨랑 노는 거 아니야? 아빠답다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보통의 부녀 사이론 보이지 않았나 보다. 너무 기분이 나빴다. 무엇보다 거기서 한마디도 할 수 없는 내가 제일 싫었다.
“쪽팔린다고! 나 생겨서 결혼한 거 남들이 모를 줄 알아?”
그렇게 긍정적인 아빠도, 그 말을 듣고서는 정말 상처받은 것 같았다. 그것도 모자라 대책 없이 애를 하나 더 낳아놓았냐는 말은 차마 덧붙이지 못했다. 아빠의 눈썹이 일그러지고, 눈가가 붉어졌다. 부모는 자식 앞에서 안 울려고 한다. 어른들은 애 앞에선 울음을 참으니까.
그렇게 말을 뱉어놓고 스스로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아빠는 그저 나를 위해 책을 전해주러 왔을 뿐인데. 하지만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애초에 내가 생기지 않았다면 엄마 아빠는 이렇게 살지 않았을 것만 같다. 둘은 같이 안 살았을 거다. 그러면 두 번째 아기가 생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애도 크면 그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을 낳고 후회했을지도 모른다고.
비슷한 매일이 흘러가는 동안, 동생을 기다렸다. 언제 애가 집에 들어오는지 궁금했다. 집에는 아기 침대도 없었다. 자기 방은 없더라도, 사람이 자기 침대는 가져야지. 분유는 애가 오면 살 셈인가?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별로 묻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어느 날 집에 돌아가면, 애가 누워 있겠거니 했다. 학교를 마치고 바로 돌아오는 날에는 비어 있는 안방 문을 괜히 열어보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집에, 애가 아무렇지 않게 생겨나서 자고 있을 것만 같았다.
수빈이가 주말에 놀러 가자고 그랬다. 수빈이를 좋아하지만, 일주일에 5일을 붙어 있는데도 주말까지 만나는 건 귀찮을 때가 있다. 그리고 놀러 나갈 땐 곱슬머리를 고데기로 펴고 나가야 했다. 강요하는 사람은 없지만, 수빈이가 무선 고데기로 앞머리를 펴고 렌즈를 끼고 있을 때 멀뚱히 앉아 있기는 무안하다. 옷을 뭘 입을지도 고민이었다. 역시 이번에도 엄마 옷을 입고 나가기로 했다. 엄마가 젊고 옷을 좋아하면 이런 장점이 있다.
우리는 만나서 사진부터 찍으러 갔다.
“머리띠 세트로 할까? 난 이거 할래.”
수빈이가 나한테 검은 고양이 머리띠를 씌워주면서 말했다. 자기 건 분홍색 토끼 캐릭터였다. 내가 이런 데 욕심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엄마를 닮았으면 왕리본이 달린 토끼를 하겠다고 싸웠을지도 모른다. 수빈이는 한참을 고민하면서 머리띠를 바꾸고 거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 나서 코인 노래방에 갔다. 거의 세 시간이나 있었다. 신기록이었다. 정확히는 두 시간 사십몇 분이긴 했는데, 다들 과장해서 자랑하는 걸 좋아하니까.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우리 토요일에 코노 가서 세 시간이나 불렀는데 목 다 쉬었다, 하고 떠들어야 한다.
밖에 나오니까 해가 쨍쨍했다. 조금 돌아가면 수빈이랑 같은 정류장에서 같이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그냥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내리는 버스를 타려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지하에 있는 코인 노래방의 미러볼이 아직도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눈이 햇빛에 적응할 때쯤 집에 도착했다.
들어가니까 엄마 아빠가 거실 바닥에 앉아 있었다. 둘은 뭔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걸 직감했다.
아. 애기가 왔구나. 애기가 왔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느릿하게 현관문을 닫는 동안 엄마 아빠는 돌아보지 않았다. 낯설었다. 잉어등이나 김저스틴 씨가 생겨도 금세 적응했는데. 이번엔 살아 있는 어린아이가 거실에 생겨버렸다. 문득 거실이 다른 공간으로 보였다. 공기가 어색했다. 텁텁한 집 냄새가 훅 끼쳤다.
타이밍이란 게 맞기 쉽지 않다. 내가 애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는 나타나지 않더니, 이제야 일상을 조금 되찾았나 싶어지니까 갑자기 이 집에 왔다. 멋지게 맞이하면 좋았을 텐데.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고. 어쨌건 첫 만남이니까.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다. 첫인상은 마주친 지 0.3초 만에 결정되고, 그건 그 이후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몸에선 땀 냄새가 났다. 얼굴엔 개기름이 번들거리고, 노래방에 너무 오래 있어서 목도 좀 쉰 것 같았다. 첫인상은 망했는지도 모른다.
가방을 소파에 두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제야 엄마 아빠가 돌아서 나를 보았다. 아빠는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만 뭐라고 말했다. 아기와 있으니 비로소 이들이 한 가족같이 보였다.
“우림아, 동생 왔어. 하림이야.”
쟤구나. 아기가 바닥에 앉아 있었다. 눈이 동그랗고 머리털이 엄청 많았다. 연두색 턱받이를 두른 채였다. 어디서 났는지 큼지막하고 알록달록한 나무 블록을 쥐고 놀고 있었다. 14개월이라길래 포대기에 싸인 작은 아이를 떠올렸다. 두 살은 생각보다 컸다. 쟤가 한 살이나 네 살이라고 했어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냈다.
“애가 침을 많이 흘리더라.”
아빠가 손수건을 들고 침을 닦아주며 말했다.
“인사해. 누나야.”
엄마가 아기의 얼굴을 보며 나를 가리켰다.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아니야. 보니까 12개월 넘으면 웬만큼 알아듣는대.”
거실에는 처음 보는 두꺼운 육아 서적이 놓여 있었다. 엄마 아빠 둘 다 살면서 오백 쪽이 넘는 책을 만져본 적도 없을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 이런 걸 읽어볼 사람은 나뿐이다. 소파에 앉아서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러면서 애를 훔쳐봤다.
왠지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기는 그제야 나를 발견하고 빽빽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애를 안아 들었다. 자세가 어색했다. 아빠는 애를 달래주려고 안절부절못했다.
“자기가 분유 좀 타 와.”
엄마가 시키자 아빠가 우유병에 분유를 타 왔다. 엄마는 내게 자꾸 물었다.
“좀 뜨거운 것 같은데. 우림아. 분유 온도 이거 맞아?”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네가 책 열심히 읽고 있으니까!”
“손목에 떨어뜨려서 미지근한지 확인하래.”
‘분유 수유의 모든 것’ 파트를 펼쳐놓고 읽었다. 아빠는 그새 자기 입에 분유를 짜 넣더니, 좀 뜨거운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엄마는 우유병을 어색하게 쥐고 분유값이 비싸다고 투덜거렸다. 확실히 애를 데려오겠다고 한 후로는 홈쇼핑 택배 상자도 눈에 띄게 줄었다. 나는 계속 육아 서적을 읽었다. ‘생후 13~15개월 키우기’ 파트를 펼쳤다.
“보통 12개월 전후로 분유를 뗀다는데?”
“뭐야, 그럼 안 먹여야 되는 거 아니야? 한 박스 사놨는데.”
“이유식이랑 같이 주면서 점점 줄이면 된대.”
이 정도도 모르는 부모라니.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다.
“대체 나는 어떻게 키웠어?”
“너? 너 알아서 컸지.”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엄마가 대답했다. 알아서 큰 게 뭐야. 식물도 물을 줘야 자라고, 물고기도 먹이를 줘야 한다. 하다못해 그릇조차 가끔 먼지라도 털어줘야 하는 법이다. 알아서 크는 애가 어디 있겠는가. 할머니가 어린 나를 키웠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까먹어서 그래. 벌써 십몇 년이 지났니. 네가 열여덟이지?”
내 나이도 헷갈리는 엄마. 그나마 맞히기라도 해서 다행이다. 열일곱이나 열아홉이냐고 했으면 황당할 뻔했다.
“엄마가 너 낳고 많이 힘들어했어. 산후우울증 때문에. 그래서 할머니가 도와주신 거야.”
아빠가 말했다.
“그럼 아빠는! 아빠는 뭐 했어!”
“똥 치웠지!”
아빠의 표정에서 억울함이 느껴졌다. 둘 다 별나긴 하지만, 엄마 성격에 냄새나는 기저귀를 제대로 갈 수 있을 리가 없다.
인터뷰니 유전자 검사니 가뜩이나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찢어지는 울음소리까지 들리니까 골치가 아팠다. 애가 계속 우니까 엄마 아빠 목소리도 잘 안 들렸다.
“당신 아까 밥 안 안쳐뒀어?”
“나보고 이유식 끓이라며.”
엄마가 시비를 걸듯이 말했다. 아빠도 무뚝뚝하게 답했다. 묘하게 신경질적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아기는 징징거리고 엄마 아빠는 쩔쩔매는 꼴을 보고 있자니 골이 땡겨서 방에 들어갔다. 저녁밥은 패스하고 일찍 자야겠다.
그 후 며칠은 애가 울어서 새벽에 가끔 깼다. 시끄럽다. 엄마 말에 따르면, 많이 안 울고 밤잠도 잘 자는 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가끔 울면 너무 시끄러웠다. 요즘 베이비 박스는 난방도 잘되어 따뜻하단다. 그리고 애가 들어오자마자 벨이 울려서 곧바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역시 내 상상력은 빈약하다. 그냥 조용한 아기여도 되었을 것이다.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