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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가 끝나면(1회)

  • 작성일 2026-08-31

퍼레이드가 끝나면


이한슬



제1장. 어떤 슬픔은 국경을 넘는다


*


 기주는 예순세 살이 되도록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었다.

 비행기를 올려다본 적은 많았다. 어릴 적에 공항 근처에 살았던 기주는 귀를 가득 메우는 굉음이 들려올 때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상공으로 날아오르기 시작한 비행기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겁이 날 만큼 거대했지만, 순식간에 멀어져 작은 점이 되었다가 세상에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안에 사람들이 타고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아서 비행기가 사라진 하늘을 오래도록 응시하곤 했다.

 열세 살에 고향집을 떠난 뒤로는 하늘을 올려다볼 일이 없었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고 해야 맞았다. 폐병을 앓던 아버지가 숨을 거두자, 어머니는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 기주를 아버지의 형제들이 사는 시골집 대문 앞에 데려다주고는 떠났다. 미안하다거나 잘 지내라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았다. 성큼성큼 멀어져가는 어머니는 뒷모습마저 단호해 보여서, 어린 마음에도 어머니를 불러 세우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었다.

 친척들은 기주를 내치지는 않았지만 살갑게 품어주지도 않았다. 식탁에 한 사람 몫의 수저를 더 놓아주었을 뿐 그들은 그가 밥을 먹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학교를 마치고 나서 동네를 배회하며 밤이 깊도록 귀가하지 않아도 신경 쓰지 않았다. 혈연관계가 분명한 이들과 한 지붕 아래에서 지내면서도 자신이 그 안에 속해 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들은 기주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찾지 않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랬다.


 열여덟 살이 되자 기주는 동네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에서 건설 붐이 일던 무렵이어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쉬웠다.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현장에서 차츰 기술을 익혀서 전문 비계공으로 일하게 되면서부터 형편은 훨씬 나아졌다. 일이 있는 곳이면 어디로든 향했다. 자연스레 일거리가 있는 지역을 떠돌며 살아가게 되었다. 

기주는 일을 하면 할수록 비계공이 천직처럼 느껴졌다. 형태만 겨우 갖춘 콘크리트 건물 외벽을 따라 철골을 세우고, 난간과 발판을 조립하고 단단히 고정하는 일. 비록 건물이 완공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임시 구조물이었지만, 그 위에서 인부들이 작업하는 동안 무사히 하루를 마치도록 지켜주는 것이 자신이 맡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순간도 허투루 일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기주를 찾는 곳도 점점 늘어났다. 제 손으로 세웠던 비계들을 역순으로 해체해서 처분하고 나면 그의 일도 끝났다. 완성된 건물 안에 들어갈 일은 없었다.

 기주는 자신이 세운 구조물이 완성된 건물의 일부로 남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건 여태 그가 살아온 방식과도 비슷했다. 건설 현장들을 전전하며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졌고, 여자들과도 쉽게 어울리면서도 정착할 생각을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결혼이나 가정을 꿈꾸지도 않았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기라도 한 듯이, 애초에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삶이라고 여겼다. 늘 가장자리에서만 맴돌다가 자신의 몫을 끝내면 자취를 감추었다.

 35년 전 사귀던 여자가 임신했을 때, 아버지가 되기를 거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기주는 목돈을 건네며 아이를 지우라고 말한 뒤 여자의 곁을 떠났다. 몇 해가 지난 후, 여자가 다시 찾아와 아이를 지우지 않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미군과 결혼했고, 남편이 아이를 친자식처럼 여겨준다고도 했다. 곧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다면서 그전에 아이를 만나겠는지 묻기에 기주는 거절했다. 당시만 해도 그에게 미국은 영영 닿을 수 없을 만큼 먼 곳처럼 느껴져서, 아이와는 더 이상 인연이 없으리라고 여겼다. 가족을 원하지 않는 자신이 애매하게 아버지로 남는 것보다는 애초에 없는 사람이 되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살아오면서 그 일을 돌이켜 보면 자신이 너무 어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아니라 마음이 그랬다.

떠나기 전에 여자는 사진 한 장을 건네주었다. 초록이 우거진 풀숲을 배경으로, 커다란 해바라기가 프린트된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서너 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뒤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안야 지함 앤더슨.

 1992년 1월 25일생.

 당신이 아버지야.


 여자는 친부모의 성을 따서 한국 이름을 지었다고 말했다. “혹시 지함이가 살면서 당신을 찾으면 한 번은 도와줘.” 그 말을 끝으로 여자는 기주의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그때 받은 사진을 기주는 지갑 제일 안쪽에 넣어두었다. 굳이 꺼내보지는 않았으나 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도 않았다. 30년이 흐른 후 안야로부터 먼저 연락이 올 때까지 말이다.


 석 달 전의 일이었다. 휴대폰 화면에 1로 시작하는 국제전화번호가 처음 떴을 때 기주는 스팸인 줄 알고 받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밤중에 같은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건 순전히 잠결이어서였다. 자다 깬 터라 안경을 찾을 겨를도 없이 수신 버튼을 눌렀다. 자정이 넘어서 오는 연락은 대개 나쁜 소식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반드시 받아야 할 전화였다.

 “함기주 씨인가요?”

 휴대폰 너머에서 여자 목소리가 말했다. 그렇다고 대답하기도 전에 여자는 말을 이었다. 

 “나는 안야…… 지함이에요.”

 그 말을 들은 기주는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한국말 잘 못해요. 아빠라고…… 불러도 돼요?”

 “그래.”

 기주가 대답했다.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수화기 너머에서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기억해요?”

 기주는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안야가 왜 아버지 노릇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변명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사진을 받은 그날 이후로 안야의 존재를 잊은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

 “기억하지.”

 기주의 말에 안야가 안도한 듯 작은 소리로 웃었다.

 “다행이에요.” 

 안야는 할 말을 더 찾지 못했는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또 전화해도 돼요?”

 “그래, 언제든지.”

 전화를 끊은 뒤에도 기주는 수화기 너머에 안야가 있기라도 한 듯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휴대폰을 침대에 내려놓고도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동이 튼 후였다.

 혹시 꿈을 꾼 건가 싶어 기주는 통화 목록을 다시 살펴보았다. 안야의 연락처가 그 전에 걸려 왔던 국제전화번호와 같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번에도 받지 않았더라면 안야와 영영 엇갈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다. 귀찮다는 이유로 번호를 바꾸지 않았던 게 처음으로 잘한 일처럼 느껴졌다.


 안야에게 다시 전화가 온 건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나서였다. 이번에도 대화보다 침묵이 더 긴 통화였으나 기주에게는 수화기 너머에 안야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거긴 밤이에요?”

 “응. 그렇지.”

 “아빠는 안 자요?”

 “자다 깼어.”

 “나 때문에요?”

 “응.”

 “미안해요.”

 기주는 괜찮다고 답했다. 안야가 멋쩍은 듯 웃었다.

 “아빠는 요즘 뭐 해요?”

 “일하지.”

 “무슨 일?”

 “건물 짓는 일.”

 “건축가?”

 “아니, 그건 아니고.” 기주는 한국어가 서툰 안야를 위해 비계라는 단어보다 쉬운 표현을 고민하다가 말했다. “건물을 짓는 인부들에게 필요한 구조물을 만드는 일이야.”

 “그렇군요.”

 안야는 그렇게 대답했지만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안야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전화 받아줘서 고마워요.” 안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아빠 목소리 듣고 싶었어요.”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20분 남짓한 통화였으나 기주는 몇십 년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돌아온 것만 같았다. 자신이 줄곧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안야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임에도. 아빠 목소리 듣고 싶었어요, 서툰 한국어로 말하던 안야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기주는 지갑 속에서 안야의 사진을 꺼냈다. 꺼내본 일이 거의 없었는데도 오래된 탓인지 색이 바래 있었다.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그는 벅차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주먹 쥔 손을 가슴에 대고 지그시 눌렀다.


 안야에게서 일주일에서 열흘에 한 번쯤 연락이 왔다. 기주가 오후 5시에 일이 끝난다고 알려준 뒤로는 늘 그 무렵에 전화를 걸어왔다. 특별한 용건이 있지는 않았다. 날씨는 어떤지, 무얼 먹었는지와 같은 사소한 이야기가 오갔다. 주로 안야가 이야기했고, 기주는 가만히 듣거나 질문에 대답했다. 안야는 잘 웃는 편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색한 침묵이 생기거나 한국말이 막힐 때도 소리 내어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그도 따라 웃음이 났다. 안야가 미국 뉴욕주에 있는 퀸즈에서 어릴 적 친구와 함께 살고 있으며 마일로라는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 수영을 좋아하고 미술관에서 일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안야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느냐고 물어왔다. 기주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중국 음식을 자주 먹는다고 답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아주 맛있는 중국 음식점이 있어요.”

 “그래?”

 “네, 다음에 같이 가요.” 

 안야의 말에 기주는 그러자고 답했다.

 이전과 다르지 않은 나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기주에게는 삶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마치 남은 건 종결뿐이라고 여겼던 세상에 새로운 이야기의 첫 문장이 시작된 기분이었다. 길을 걷다가 사진 속 안야만 한 어린아이들을 보거나, 여름볕을 받아 활짝 피어난 해바라기들을 지나칠 때면 기주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해바라기 원피스를 입은 안야의 사진이 생각나서였다.

 사진 속에서 볼살이 도톰한 얼굴로 웃고 있는 안야를 응시하다 보면 기주는 성인이 된 안야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해바라기처럼 꼿꼿하게 태양을 마주하는 밝고 건강한 아이일 거라는 생각만 막연히 들 뿐, 얼굴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

 온종일 안야의 연락을 기다리면서도 전화를 걸어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되기를 거부했던 자신이 먼저 연락하는 건 어쩐지 염치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안야가 연락해 주는 것만으로 고마웠고, 안야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다만 기주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상공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발견할 때면 머릿속으로 안야가 찾아오는 순간을 상상해 보았다.


 전국 곳곳에서 건물들이 앞다투어 올라가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갔다. 기주 역시 예전처럼 몸을 아끼지 않고 현장을 떠돌며 일할 나이는 아니었다. 돈이라면 충분했다. 아니, 기주의 씀씀이나 나이를 생각하면 오히려 많은 편이었다. 하루에 쓰는 돈이라고는 담배 한 갑과 두 끼 식사가 다였다. 그마저도 현장에서 식사를 제공해 줄 때가 많아서 따로 쓰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떠돌아다니는 생활에 익숙해진 탓인지 물건도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겨두었다. 유흥이나 도박 같은 일에 흥미가 있지도 않았다.

 일이 뜸해지자 기주는 공항 근처 바닷가 마을로 돌아와 지내고 있었다. 몇 해 전 인근 공사 현장에서 일할 때 알게 된 곳으로, 그때 전세로 얻어둔 작은 원룸을 그대로 두고 일이 없을 때마다 돌아오곤 했다. 개발의 흐름에서 한참 비켜난 지역이라 언제 돌아와도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기주는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러 갔다가 국제운전면허증으로 발급받을 수 있다는 직원의 말에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여권도 발급해 두었다. 당장 사용할 일은 없었지만 준비를 해두는 것만으로도 안야와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외국에서 일어난 사고 소식에 예전과 달리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사고가 발생한 지역이 미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했다. 미국 알래스카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다는 소식이나 유레카에서 총기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한참 동안 지도 앱을 들여다보며 그 일들이 안야의 세계에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고서야 기주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평소와 달리 오전 시간에 안야에게서 전화가 왔다. 설치된 비계를 점검해 달라는 현장 소장의 부탁으로 일터에 나와 있던 참이었다. 8월 초입이라 그런지 아침인데도 강렬한 여름볕에 철골들이 달아올라 있었다. 발판을 살펴보다 말고 기주는 전화를 받았다. 

 안야는 평소처럼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왔다. 하지만 기주는 안야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미국은 밤일 테니 피곤해서 그럴 수 있겠다고 여기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안야에게 최근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지만 말을 꺼내지도 못했다. 

 “오늘은 조금 힘들었어요.”

 기주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안야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는지 바로 되묻고 싶었지만 자신이 그런 것을 선뜻 물어도 될지 몰라 망설여졌다. 안야가 말을 더 해주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다음에 이야기해 줄게요.”

 얼마 후 안야가 웃으며 말했다. 웃음소리를 들으니 기주는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래, 그러자.” 

 기주가 대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기주는 틈틈이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안야에게 먼저 연락해 볼까 고민했지만 결국 전화를 걸지는 않았다.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안야가 죽었어요.”

 새벽에 자다 깨서 안야의 전화를 받았을 때 기주가 들은 말이었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기주는 얼마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묻고 싶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죽었다는 말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다만 안야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사실에 숨이 턱 막혔다.

 안야의 친구라고 밝힌 청년은 기주가 안야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장례식은 이틀 뒤라는 말을 듣고서야 자신도 참석하겠다고, 가능한 한 빨리 갈 테니 하루라도 늦춰줄 수 있는지 가까스로 물었다. 예상 밖의 대답이었는지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청년이 알겠다고 답했다. 안야의 방이 비어 있으니 숙소는 예약하지 않아도 된다고 당부한 청년은 도착 시간을 알려주면 공항으로 데리러 가겠다고 덧붙였다. 교포 특유의 억양이 배어 있었으나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난 뒤 기주는 한동안 침대에 굳은 듯 앉아 있었다. 안야의 전화를 처음 받았던 그 자리였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당장 가야 한다는 생각만을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미국은커녕 비행기를 타본 적도 없었지만,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안야의 죽음을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기주는 휴대폰으로 항공권 예매 방법을 찾아보다가 이내 포기하고 여행사 고객 센터 번호를 메모지에 적었다. 그러고는 침대에 누워 뜬눈으로 영업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동이 트기까지 시간이 유독 더디게 흘러갔다.

 여행사 고객 센터에 연결되자 비행기표를 어떻게 사야 하는지 물었다. 여권번호를 알려주면 대신 예약해 줄 수 있다는 직원의 말에 제일 빠른 뉴욕행 비행기표 예매를 부탁했다. 직원은 오늘 밤에 출발하는 표가 있다면서 귀국일도 알려달라고 했다. 기주는 일주일쯤 뒤라고 대충 말했다가, 더 걸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중에라도 날짜를 바꿀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직원이 날짜 변경이 가능한 항공권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요금은 더 비쌌으나 그걸로 하겠다고 말했다.

 전화를 끊은 뒤에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일하러 다닐 때 쓰는 스포츠용 가방에 옷 몇 벌과 세면도구를 넣고 나니 뭘 더 넣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집을 나섰다. 여권을 제외하면 가방 안에 든 물건들은 현장에 갈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문득 여권을 발급해 두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 쓸모를 발휘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먼저 은행에 들렀다. 창구 직원에게 미국에 가려면 얼마를 환전해야 할지 묻자 얼마나 머물 예정인지 되물어왔다. 기주는 일주일 정도라고 답한 뒤 확실하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직원은 출국 시 미화 1만 달러가 넘는 현금은 신고해야 한다고 알려주면서, 해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체크카드를 바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카드를 발급받고 현금은 5천 달러만 환전했다.

 공항에 도착한 뒤의 일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 타는 비행기인데도 사람들을 따라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출국 절차가 끝나 있었다. 문제는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이었다. 180센티미터가 훌쩍 넘는 기주에게는 앞좌석에 무릎이 닿을 정도로 자리가 좁았다. 계속 앉아만 있으려니 팔다리도 쑤셨다. 평소에는 입지 않은 정장까지 입은 터라 더 불편했다. 가방에 넣으려다가 구겨질까 봐 입고 탔는데 오히려 구김이 더 생길 것 같았다. 주변을 보니 승객들은 대부분 편한 차림이었다.

 기내식이 나올 때마다 남김없이 먹어 치웠다. 맛은 형편없었으나 기주는 평소에도 음식을 남기지 않았다. 좌석 벨트 표시등이 꺼질 때마다 승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를 걸어 다녔다. 기주도 그들을 따라 비좁은 통로를 서성였다. 사람들이 이 상태로 13시간을 버틴다는 사실이 도통 믿기지 않았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보는 건 잠깐이었지만 그 안에서의 시간은 훨씬 길고 고되다는 사실을, 그는 예순세 살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자 전화로 들었던 청년의 목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났다.

 안야가 죽었어요.

 그 말을 다시 떠올리자 높은 곳에서 발을 헛디딘 것처럼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의 질 나쁜 장난이길 바라면서도 그럴 리 없다는 것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 왜 죽었는지, 어떻게 자신에게 연락한 건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안야가 살아 있다면 모를까.

 다른 것들은 기주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


 태오는 카메라 뒤에 서 있는 일에 익숙했다. 20년 가까이 야생동물 전문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으로 살아오는 동안 렌즈를 통해 마주하는 세계는 초점을 맞춰야 할 순간과 흘려보내야 할 순간이 명확했다. 원하는 장면을 담아내기 위해 카메라의 위치를 조정하고 빛과 어둠을 조율했다. 며칠, 때로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한자리에 있어야 할 때도 있었다. 기다림도 태오에게는 일이었다. 마침내 원하는 장면이 프레임 안에 나타나면 그 움직임을 끝까지 쫓았다. 그러다 놓칠 때도 있었지만,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 대상에는 미련을 두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도 경험상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렌즈 바깥의 세상은 달랐다. 삶은 언제나 초점이 나간 화면을 마주하는 일처럼 막막했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늘 확신할 수 없었다. 매 순간 고심하며 최선이라 판단되는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정작 중요한 것들은 태오가 마주한 프레임 바깥에 남아 있는 듯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는 건 언제나 지나서였다. 삶은 늘 한 박자 늦게 선명해졌다.

 “망막색소변성증이네요. 2년 안에 시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큽니다.”

 태오는 그렇게 말하는 의사의 입 모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말은 알아들었으나 자신에게 닥친 일이라는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안경이나 하나 맞출까 하고 찾아간 동네 안과에서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했을 때, 심상치 않은 일일 수도 있겠다고 짐작은 했으나 태오의 예상보다 훨씬 더 나쁜 소식이었다.

 “증상이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

 의사의 말대로 징후는 줄곧 있었다. 언젠가부터 불 꺼진 편집실에서 촬영본을 확인할 때면 눈앞이 어둑어둑해지거나 불빛이 번져 보일 때가 있었다. 편집하다 보면 며칠씩 밤을 새우기 일쑤였으므로 태오는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서너 달 전부터 현장에서 케이블이나 장비함에 발이 걸리는 일이 잦아지더니, 몇 주 전에는 노출이 나간 것처럼 촬영한 영상 전체가 어둡게 보였다. 렌즈에 문제가 생겼나 싶어 스태프들에게 장비를 점검해 보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촬영본을 확인한 스태프들이 이상 없이 잘 보인다는 말에 태오는 이른 노안이 온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의사의 설명은 길었지만 핵심은 단순했다. 앞으로 시력은 떨어지고 시야도 좁아질 것이다. 개발 중인 신약들이 있기는 하나 아직 실험 단계이고, 수술로 해결할 수 있는 병도 아니다. 결국 실명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했다. 태오는 의사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물었다.

 “제가 카메라 촬영 일을 하는데요.”

 “진행을 조금이라도 늦추려면 눈에 무리가 되는 일은 안 하셔야 합니다.”

 의사는 당사자가 깨닫기 어려운 증상들이 있으니 다음 진료 때는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덧붙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태오는 보호자로 누구를 데려가야 할지 고민했다. 당연히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아내 지민이었다. 다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7년 전 결혼한 뒤로 줄곧 임신을 원하던 지민이 아이를 완전히 단념한 게 몇 달 전이었다. 연애할 때만 해도 태오보다 차분하고 단단해 보였던 지민은 네 번의 시험관시술과 두 번의 계류유산을 겪는 과정에서 임산부나 아기를 마주치기만 해도 얼굴이 굳거나 울먹일 만큼 마음이 여려졌다. 실명 진단을 알게 되면 지민이 자신보다 더 크게 무너질 게 분명했다. 게다가 지민은 최근에야 요리 강사 일에 복귀해서 일상으로 돌아가려 애쓰고 있었다. 그런 지민을 다시 병원에 데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시험관시술을 받기 위해 대학병원 산부인과를 드나들던 때, 지민이 병원 냄새만 맡아도 숨이 막히는 것 같다고 말했던 일도 떠올랐다.

  지민 말고 누구와 함께 병원에 갈 수 있을지 고민하던 태오는 누나 이경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만 해도 자주 대화를 나눴다. 주로 이경에게서 전화가 왔고, 태오는 받기만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연락을 한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마주한 게 언제였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조차 이경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도 태오는 이경에게라면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겁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태오는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 부근을 매만졌다. 열 살 무렵,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골절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많이 희미해지긴 했어도 흉터가 아직 만져졌다. 부모님은 태오를 나무랐지만, 이경은 깁스를 한 태오에게 밥을 먹여주고, 씻는 걸 도와주고, 숙제까지 같이해 주었다. 돌이켜보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건강하던 시절이라 태오를 돌볼 수 있었는데도 고등학생이라 공부하느라 바빴을 이경이 자기 일처럼 나서서 태오 곁을 지켰던 것이다.

 파킨슨병으로 투병했던 어머니를 끝까지 돌본 사람도 이경이었다. 무려 16년 동안, 그건 태오가 촬영감독으로 일해온 기간보다도 더 긴 시간이었다. 이경 덕분에 태오가 춘천을 떠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온 태오와 달리 이경은 춘천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여 고향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지냈다. 어머니가 파킨슨병을 진단받은 건 태오가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머니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병도 초기였고 아버지와 이경이 함께 돌보고 있어 든든했다.

 몇 해 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이경의 몫이 되었다. 요양원에 모시는 이야기도 몇 차례 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죽는 한이 있어도 집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어머니를 이경이 외면할 리도 없었다.

 이경은 종종 전화로 어머니의 안부를 알려주었다. 태오가 해외 촬영으로 연락을 받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채팅방에 어머니의 일과나 사진을 공유했다. 컨디션이 좋아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다녀왔다는 이야기, 밥을 조금 드셨다거나 밤에 기침이 심해졌다는 이야기,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다녀왔다는 이야기까지, 이경은 어머니의 하루하루를 빠짐없이 전했다. 태오는 어머니의 소식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파킨슨병은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히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이 많아졌다.

 어머니를 돌보는 일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성실한 이경을 생각하면 마음은 더 심란해졌다. 태오가 고향집을 떠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아가는 동안, 평생 고향집을 벗어나지 못한 채 나이를 먹어가는 이경이 안타까웠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이경에게 본가를 넘기기로 했고, 매달 생활비와 병원비 이상의 돈을 보냈지만 자신이 해야 할 몫을 다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삶을 버려두고 이경 대신 어머니 곁에 남을 용기는 없었다. 마음이 복잡해질수록 점점 더 이경과 어머니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엔 언제 오니?”

 이경이 전화로 물을 때면 태오는 곧 들어간다고, 이번 촬영이 끝나면 본가에 가겠다고 말했으나 그 약속을 지키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16년이 흘러갔다. 


 어머니의 임종을 지킨 것도 이경이었다.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폐렴이 심해진 어머니는 여러 차례 고비를 넘기며 느리게 죽어갔다. 부고 소식을 들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 날들이 지난하게 이어졌다. 그사이, 태오는 자연사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해외 제작사가 기획한 동아시아 철새 이동 기록 프로젝트에 공동 촬영감독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시베리아에서 번식한 두루미가 한반도를 거쳐 월동지까지 이동하는 긴 여정을 따라가는 작업이었다. 계절에 맞춰 여러 나라를 이동하며 촬영해야 했기에 한번 합류하면 중간에 빠질 수 없었다. 태오에게도 웬만해서는 다시 오지 않을 좋은 기회였다.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에서 두루미를 촬영하던 중에 이경에게서 전화가 왔다. 태오는 점심 식사를 마친 뒤 동료와 교대하려던 참이었다.

 “태오야…….”

 이경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머니가 의식을 회복할 가망이 없다고, 이제 산소호흡기를 떼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의사가 나보고 결정하래.” 거기까지 말한 후 이경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태오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 멀리 있는 동료를 보았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이경의 흐느낌이 계속 들렸다. 태오를 기다리던 동료가 손목시계를 가리켰다. 더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내 생각에도…… 누나가 결정하면 될 것 같아.” 태오는 말을 잠시 멈추었다가 말했다. “걱정 마. 난 누나 원망 안 해.”

 이경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한 말이었지만 내뱉고 나니 괜한 말을 한 것 같았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태오는 전화가 끊어진 줄 알고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통화는 여전히 연결되어 있었다. 

 그때, 동료가 태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오는 그만 가봐야겠다고 말한 뒤에 일단 전화를 끊었다. 일이 끝나면 이경에게 다시 연락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그 다짐은 늘 그랬듯이 뒤로 밀려났다.

 어머니의 부고를 들은 건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이경이 아니라 외삼촌에게서였다. 소식을 듣자마자 귀국했는데도 태오는 입관 직전에야 가까스로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이경은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이경의 행방을 묻자, 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부모 장례에 자식이 참석하지 않는 경우도 있느냐며 웅성거리는 친척들의 말을 애써 외면하며 태오는 발인까지 마쳤다.

 장례식이 끝난 뒤 태오는 이경에게 몇 차례 더 연락했지만 여전히 닿지 않았다. 평소의 이경이라면 이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머니를 잃은 충격이 큰 모양이라고 여겼다. 태오는 마음을 추스르면 연락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날 저녁 비행기로 촬영지에 다시 돌아가야 했기에 더 깊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야 태오는 이경이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여태 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침 일찍 태오는 이경을 만나기 위해 춘천으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에 이경에게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라 그만두었다. 늘 그랬듯 이경이 먼저 연락해 오기를 기다렸으나 그사이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있었다. 몇 달 후면 어머니의 첫 기일이었다. 태오는 전화 말고 이경의 얼굴을 직접 보고 대화를 하고 싶었다.

 춘천행 기차 안에서 태오는 소속된 프로덕션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당분간 일을 쉬고 싶다고 말했다. 실명 진단을 받은 일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행히 대표는 더 묻지 않고 알겠다고 했다. 일에 미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쉬겠다니 오히려 안심이 된다며, 언제든 원할 때 돌아오라고 당부한 뒤에 전화를 끊었다.

 생각해 보니 일을 시작한 이후로 작정하고 쉬어본 적이 없기는 했다. 아이를 갖기 위해 지민과 병원을 찾아야 하는 일정 외에는 스케줄을 조정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연휴나 주말에는 늘 집에서만 머물렀다.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은 일만으로도 충분했다. 다행히 지민은 태오의 방식에 불만을 내비치지 않았다. 연락을 잘 못하거나 촬영이 예정보다 길어져도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태오는 지민의 병원 일정만큼은 최선을 다해 맞추었다. 아이가 생기면 지금보다 일을 줄이고 가족에게 집중해야겠다고 속으로 마음먹었지만,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다.

 태오는 초록이 가득한 창밖의 세계를 응시했다. 시야의 가장자리가 약간 어둑어둑하게 보였지만 풍경을 감상하는 데에 문제는 없었다. 평소였다면 무심히 지나쳤을 여름날의 장면에서 태오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고향집까지는 역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을 가야 했다. 걸어도 20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더운 날이었지만 태오는 걷기로 했다. 고향에 온 것도 오랜만이었고, 이 길을 걸어보는 건 더 오랜만이었다. 고향집을 떠난 후에는 올 일이 있을 때면 늘 차를 타고 오갔다.

 시골이라 달라진 게 별로 없어서 그런지 길이 눈에 훤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찾아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여름 볕에 달궈진 공기는 후끈했고, 매미 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웠다. 고향집 2층 창문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는 티셔츠가 땀으로 축축했다.

 태오는 초인종을 누르고 이경이 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대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처음 보는 중년 여자였다. 이사 온 지 1년쯤 되었다는 말에 태오는 잠시 말을 잃었다.

 “전에 살던 사람은…… 어디로 갔나요?”

 여자는 태오를 잠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신데요?”

 태오는 자신은 이 집에 살던 사람의 남동생이라고, 오랜만에 찾아왔다고 얼버무렸다. “저도 이 집에 오래 살았어요.” 태오의 말에 여자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여자는 우편물을 보내주기 위해 받아둔 주소가 있으니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 서서 여자를 기다리는 동안 태오는 이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잘못 눌렀나 싶어 연락처를 확인한 뒤에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마찬가지였다. 태오는 돌연 불안감에 휩싸였다. 짙은 녹색이었던 철제 대문이 남색으로 새로 칠해졌다는 사실도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정원 한가운데 서 있던 감나무도 사라져 있었다.

 잠시 후 다시 나온 여자가 우편물을 보내기 위해 받아둔 주소와 연락처라며 메모지 한 장을 내밀었다. 태오는 종이에 적힌 이름을 확인했다. 외삼촌이었다. 태오는 곧바로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경이? 미국 갔잖아.”

 태오가 이경의 소식을 묻자 외삼촌이 대답했다. 태오는 말문이 막혔다.

 “언제요?”

 “네 엄마 보내고 한두 달쯤 지나서였나.”

 외삼촌은 이경이 전화로 가족 앨범을 맡아줄 수 있는지 물었다고 했다. 본가를 처분했다는 사실과 곧 미국으로 떠난다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다고 했다. 태오는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왜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어차피 그때는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었기에 한국에 있지도 않았다. 이경이 연락했더라도 제대로 받아주지도 못했을 터였다. 

 “너랑은 상의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구나.” 

 태오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경이 왜 미국에 간 건지 물었다. 외삼촌도 거기까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엄마도 떠났는데, 걔도 이제 지 인생 살아야지.”

 “혹시 미국 어디로 갔는지도 아세요?”

 외삼촌은 이경이 떠나기 전에 주소와 연락처를 물어두었다고 했다. “어디 있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니냐. 그래도 가족인데.”

 태오는 이경의 주소와 연락처를 문자로 보내달라고 외삼촌에게 부탁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문자가 도착했다.


 +1-201-555-0703

 233 Anderson Avenue, Fort Lee, NJ.


 태오는 구글맵에 이경의 주소를 검색해 보았다. 화면은 순식간에 한반도를 떠나 태평양과 북미 대륙을 가로질러 뉴저지의 한 지점으로 이동했다. 강 근처 지역으로, 건너편이 바로 뉴욕 맨해튼이었다.

 태오는 이경이 평생 살았던 집을 팔았다는 것도, 말도 없이 미국으로 떠났다는 것도 도통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알던 이경과는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돌이켜 보면 장례식장에서 사라진 것부터 전혀 이경답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이 이경에게 그토록 충격 이었나 보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될 것도 없었다.

 이경을 만나지 못한 채 고향을 떠나려니 아쉬운 마음에 태오는 본가 주변을 발길 닿는 대로 배회했다. 한낮인데도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문을 닫은 상가들만 군데군데 보였다. 걷다 보니 오래전의 기억들이 하나둘 되살아났다.

 사진관 앞을 지나가던 태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어릴 적 필름을 맡기러 가는 이경을 따라 몇 번 왔던 적이 있었다. 카운터 안쪽에 앉아 늘 신문을 읽던 사진관 주인의 모습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태오는 30년이 넘도록 가게가 같은 자리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사진관은 문이 잠겨 있었으나 안쪽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간판도 그대로였다. 요즘은 필름을 맡기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던 태오는 문득 이경이 쓰던 필름 카메라가 떠올랐다. Canon AE-1으로,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던 이경이 중고로 샀던 카메라였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묵직한 금속음이 울렸다. 이경이 카메라를 어떻게 처분했을지 궁금해하던 태오는 미국에 가져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예전 같았으면 틀림없이 그랬을 거라고 여겼을 테지만, 이제는 확신할 수 없었다.

 태오에게 처음 카메라를 알려준 사람도 이경이었다. 태오가 필름 카메라에 관심을 갖자 이경은 작동법을 가르쳐주었다. 매일 손질할 만큼 소중하게 여기던 카메라였는데도 선뜻 빌려주기도 했다. 어릴 때라 그런지 기억 속 이경은 유난히 어른처럼 느껴졌다. 일곱 살 어린 남동생이 귀찮을 법한데도 이경은 늘 상냥하게 대해주었다.

 이경의 방에서 현상해 온 사진들을 같이 보던 일이 떠올랐다. 버스 안 좌석들, 안개가 자욱한 동네 골목길, 늦은 밤 가로등 아래 벤치, 마을 축제가 끝난 광장에 널브러진 플라스틱 의자들. 사진 속 어디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누나, 대체 뭘 찍은 거야?”

 태오가 물음에 이경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자리.” 이경이 대답했다. “사람이 떠난 자리를 찍은 거야.”

 그 시절의 이경의 얼굴은 선명하게 떠오르는데도 어머니의 곁을 지키던 이경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언제 마지막으로 만났는지도 여전히 아리송했다. 

 태오는 이경을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더 늦기 전에, 그러니까 눈이 멀기 전에.

 태오는 휴대폰으로 뉴저지행 항공편을 검색했다.


*


 “미국에 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건장한 체구의 흑인 남자 입국심사관이 기주에게 영어로 물었다. 알아듣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문장 형태를 바꾸어 한 번 더 질문했다. “무엇이 당신을 이곳에 오도록 만들었습니까?”

 “나는 딸을 만나러 왔습니다.”

 기주는 휴대폰 메모장에 한국어 발음대로 적어둔 영어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인터넷에서 입국심사에 나올 만한 질문들을 찾아 답변을 미리 적어둔 것이었다. 정확히는 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지만 기주는 ‘장례식’이라는 영어 단어를 알지 못했다. 찾아보려고 한 적도 없었다. 딸을 보러 왔다, 그 사실만으로 기주에게 여행의 목적은 충분했다. 심사관도 더 묻지 않고 여권을 돌려주었다.

 “Enjoy your stay.”

 기주는 심사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채 여권을 챙겼다.

 입국장으로 들어서자 피부색도, 머리색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영어가 적힌 피켓을 든 채 빼곡하게 서 있었다. 다행히 ‘안야’라는 두 글자가 금세 눈에 들어왔다. 하얀 종이에 한국어 두 글자만 큼지막하게 적혀 있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기주는 피켓을 들고 있는 청년에게 다가갔다. 녹색 볼캡에 진회색 티셔츠,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은 청년은 키가 작고 복부가 두툼했다. 멀리서 보면 청소년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기주를 알아본 청년이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김요한입니다. 안야의 룸메이트예요.”

 전화로 들었던 목소리였다. 기주도 고갯짓으로 응수했다.

 가까이서 본 요한은 밝은 갈색 눈동자에 금발에 가까운 머리칼 때문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렇다고 흔히 생각하는 서양인의 얼굴과는 달랐다. 속쌍꺼풀이 있는 눈은 가로 폭이 좁았고, 코끝은 둥글었다.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한 인상이어서 기주는 괜히 마음이 놓였다. 

 기주는 가방을 들어주겠다는 요한에게 괜찮다고 말했다. 짐이 얼마 없어서 무겁지도 않았고, 어깨끈이 해진 터라 남에게 건네기도 민망했다. 

 두 사람은 공항의 야외 주차장으로 향했다. 건물을 나오자마자 뜨거운 열기 속으로 들어선 것만 같았다. 눈을 뜨기 어려울 만큼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휘발유 냄새와 아스팔트 냄새가 뒤섞인 공기는 한국의 여름과 비슷하면서도 더 건조했다.

 “오늘은 안야를 만날 수 없겠어요.”

 요한은 안치실이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고 설명했다. 기주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가 놀랐다. 대낮처럼 환해서 서너 시쯤 되었을 거라고 여겼는데 7시가 다 되어 있었다. 로밍을 한 휴대폰에 문제가 있나 싶어 기주는 요한에게 물었다.

 “지금 정확히 몇 시입니까?”

 요한은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를 내려다보더니 대답했다. “6시 47분이네요.” 믿기지 않는다는 기주의 표정을 본 요한이 웃으며 말했다.

 “여름엔 8시는 되어야 밤이 돼요. 한국은 아닌가요?” 

 요한은 집이 퀸즈의 플러싱이라는 곳에 있다면서, 멀지는 않은데 퇴근 시간이라 막힐 수 있다고 말했다. 요한의 한국말은 어딘가 어색했다. 문장 끝맺음이나 말의 리듬, 단어를 고르는 방식이 한국에서 줄곧 살아온 사람들과는 달랐다. 어른보다는 사춘기 소년의 말투처럼 느껴졌다.

 “안야와 닮으셨어요.”

 한 번도 본 적 없는 딸과 닮았다는 말에 기주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요한의 차는 빨간색 도요타 2인용 픽업트럭이었다. 겉에서 봐도 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오래된 티가 났는데 내부는 그보다 더 낡아 있었다. 시트 가죽이 삭아 갈라져 있었다. 요한이 시동을 걸자 차가 요란하게 덜덜거렸다. 

 공항을 벗어난 차가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차선마다 차들이 가득했고, 도로 양옆으로 영문 간판들과 붉은색 벽돌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기주는 미국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이 낯설고 얼떨떨했다.

 요한이 미국에 와본 적이 있는지 물었고, 기주는 처음이라고 대답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편하게 물어보라는 말에 기주는 얼마간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안야는 왜…… 죽었습니까?”

 “심장마비였어요.”

 함께 저녁을 먹은 뒤 수영하러 집을 나서는 안야가 요한이 본 마지막 모습이라고 했다. “수영장 샤워실에서 쓰러졌대요. 아무도 없어서 발견이 늦었어요.”

 기주는 요한의 말을 듣고 조금 안도했다. 혹시라도 안야가 스스로 삶을 놓아버린 게 아닐까, 미국으로 오는 내내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던 의심을 그제야 떨쳐냈다. 수영을 다닌다는 이야기는 안야에게 들어서 기주도 알고 있었다.

 “안야, 수영 정말 잘했거든요.”

 요한은 안야가 고등학생 때 학교 대표로 수영 대회에도 나갔다면서, 여름에 같이 해변에 가면 해가 질 때까지 바다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육지보다 물에 있는 게 더 잘 어울려 보였어요.” 물속을 유영하던 안야의 모습을 떠올리는지 요한의 눈빛이 쓸쓸해 보였다.

 “요한 씨는 안야의 룸메이트라고 했던 것 같은데…….”

 기주의 말에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1년 조금 넘었어요. 열두 살 때부터 친구였고요.” 요한은 얼마간 망설이다가 말했다.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데, 저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렇게 말한 이유를 기주가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참, 장례식은 내일이에요. 저랑 같이 가면 돼요.”

 그렇게 말하는 요한에게 안야의 엄마는 오지 않는지 기주가 물었다. 

 “안야 대학생 때 돌아가셨어요. 어머니도 심장마비셨어요.” 

 기주는 더 물어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화는 거기에서 끊겼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은 조금 나아가는가 싶다가도 이내 속도를 줄이기를 반복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도로 양옆으로 세워진 가로등에 일제히 불이 들어왔다. 도로의 차들도 전조등을 켰고, 건물들의 창문에도 노란 불빛이 들어왔다. 도시의 야경은 한국과 비슷해 보였다. 안야가 살아온 세계가 자신이 살아온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기주는 어쩐지 서글퍼졌다. 이내 그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야가 살아 있는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요한이 깨웠을 때야 기주는 자신이 잠깐 잠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차는 이미 대로변에 주차되어 있었다. 창밖은 캄캄했고,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인도를 비추고 있었다.

 안야의 집은 5층짜리 벽돌 건물 1층이었다. 문을 열기도 전에 안쪽에서 뭔가가 문을 세차게 긁는 소리가 들렸다. 요한이 문을 열자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뛰어나왔다. 양쪽 귀와 눈 주변은 까만 반면, 주둥이가 하얘서 도드라져 보였다. 하얀 몸에는 크고 작은 검은 얼룩들이 흩어져 있었다. 기주는 강아지를 키운다던 안야의 말을 떠올렸다. 조그마한 체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큰 편이었다. 네 발로 선 모습이 기주의 무릎 높이는 되어 보였다. 다리는 짧았으나 몸은 두껍고 단단해 보였다.

 “마일로, 인사해야지.”

 요한이 마일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마일로는 요한의 주변을 이리저리 맴돌다가 기주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냄새를 맡았다. 이내 문 쪽으로 돌아가 현관 매트 위에 주저앉았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꼬리를 여전히 흔들고 있었지만 아까보다는 느렸다.

 요한은 닫아두었던 안야의 방문을 열며 기주에게 말했다.

 “아직 아무것도 정리하지 않았어요.”

 방에는 물건이 별로 없었다. 가구라고는 책상과 침대, 옷장이 전부였는데, 모두 철제여서 그런지 꼭 기숙사 방처럼 보였다. 곳곳에 안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층층이 쌓인 책들과 벗어둔 안경, 반쯤 들어 있는 생수병이 놓여 있었고, 의자 등받이에는 얇은 회색 후드집업이 널브러지듯 걸려 있었다. 침대 위 노란색 이불은 반쯤 접힌 채였다. 옷장은 문 한쪽이 반쯤 열려 있었다.

 기주는 낯선 사람의 방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했다. 안야와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이였다.

 방 한가운데에 어정쩡하게 서 있던 기주는 침대 끄트머리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침대 프레임이 한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다는 게 느껴졌다. 일종의 직업병처럼, 비계를 세울 때 수평을 가늠하는 건 제일 중요한 일이었다. 안야는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기주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액자를 바라보았다. 안야와 그녀의 엄마가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기주는 안야의 엄마 이름을 떠올렸다. 선희, 성은 기억나지 않았다. 여자가 안야를 낳았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하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헥헥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마일로가 책상 옆에 놓인 동그란 아이보리색 쿠션에 앉아 있었다.

 “안야 방문을 계속 닫아놨더니 마일로가 들어오고 싶어 했어요. 여긴 마일로 방이기도 하니까요.” 

 요한이 기주에게 500밀리리터짜리 생수병을 건네주며 말했다. 막 냉장고에서 꺼내 왔는지 물병이 차가웠다.

 기주는 마일로를 바라보았다. 가까이서 본 마일로는 가면을 쓴 것처럼 양쪽 귀와 눈 주변이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다. 눈 사이로 줄처럼 뻗은 하얀 털이 코를 따라 주둥이까지 이어졌다. 얼굴에 비해 유난히 큰 귀가 삼각형처럼 솟아 있었다. 눈동자와 코는 유독 까맣고 동그랬다. 계속 바라보자 마일로도 기주를 힐끗거렸다.

 기주는 마일로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마일로는 귀를 까딱거리며 눈치만 볼 뿐 쿠션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냄새를 맡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남자들을 무서워해요. 저도 친해지는 데 오래 걸렸어요.”

 말을 마친 요한이 연달아 재채기를 했다. “실은 개 알러지가 심해요.” 요한이 소매를 걷어 팔 안쪽을 보여주었다. 벌레 물린 듯 붉은 반점이 곳곳에 퍼져 있었다. 

 “약 먹으면서 버티고 있어요.”

 트럭 운전기사 일을 해서 한 달에 절반은 집을 비우니까 그나마 같이 살 수 있다면서 머쓱하게 웃었다. 요한은 마일로에게 개껌을 하나 던져주고는 기주에게 멀리서 오느라 피곤할 테니 푹 쉬라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기주가 말하자 요한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버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도 그게 편해요.” 그러고는 문을 조금 열어둔 채 방에서 나갔다.

 잘 채비를 마친 기주는 안야의 침대에 누웠다. 요한의 전화를 받은 뒤로 통잠을 잔 적이 없었는데도 쉽게 잠에 들지 않았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이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창밖을 지나는 자동차들의 불빛이 천장을 계속 스치고 지나갔다. 기주는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베개에서 옅은 향기가 났다. 안야의 냄새일 터였다. 기주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서 숨을 천천히 들이마셨다가 내뱉기를 반복했다.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겼다.


 장례식은 퀸즈의 플러싱에 있는 작은 성당에서 열렸다. 장례식에 가기 전에 기주는 요한이 차려준 토스트와 계란프라이를 먹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요한은 성당에서 간단한 추도식을 마친 뒤 묘지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얘는 안 데려가나?”

 기주가 사료를 먹고 있는 마일로를 가리키며 물었다. 요한은 난감한 표정으로 얼마간 마일로를 응시했다. 

 “두고 가죠. 마일로가 알면 너무 슬퍼할 것 같아요.” 요한은 여전히 마일로에게 시선을 둔 채로 중얼거렸다. “안야라면…… 마일로가 슬픈 걸 원하지 않을 거예요.”

 집을 나서려던 기주는 요한을 보고 말을 잃었다. 요한은 하늘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미국은 원래 다른가 보다 하고 애써 넘겼다.

 성당 안은 환했다. 높은 유리 돔 천장을 통해 햇살이 한가득 들이쳤다. 느리고 부드러운 곡조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다양한 인종들이 섞여서 앉아 있었는데,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거나 간간이 웃음소리도 들렸다. 기주가 알던 장례식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도 기주뿐이었다. 사람들은 화려한 무늬의 셔츠나 원피스, 청바지처럼 차림새가 제각각이었다. 그들 사이에 있으니 하늘색 정장을 입은 요한도 딱히 어색하지 않았다. 장례식보다는 축하 자리처럼 보이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관이 있었다. 하얀 백합들이 관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고, 안야의 사진이 세워져 있었다. 멀리서도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사진 속에서 안야가 활짝 웃고 있었다.

 장례식은 요한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기주는 유족이라기보다 조문객에 가까웠다. 맨 끝줄에 앉은 그는 사람들이 일어섰다가 앉고, 목례를 할 때마다 한 박자 늦게 따라 움직였다. 요한이 영어로 추도사를 하는 동안 기주는 줄곧 안야의 사진을 응시했다. 눈매는 선희와 비슷해 보였는데, 코와 입가는 자신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이제 와 그런 걸 가늠해 보는 스스로가 우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기주는 사진 속 안야의 얼굴을 자꾸 들여다보았다. 달리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사람들이 안야의 관 앞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고인에게 인사를 하는 순서가 있다고 요한에게 들었던 기억이 났다. 관 앞에 다다른 사람들은 뭔가를 말하거나 고개를 떨구었다. 탄식하거나 흐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서로를 끌어안으며 등을 두드려주기도 했다.

 요한의 손짓에 기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야를 볼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나 더 미룰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기주는 숨을 골랐다. 금세 차례가 다가왔다. 기주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춘 채 이를 꽉 물었다.

 뽀얀 얼굴이었다.

 기주는 안야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눈을 뜬 안야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단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안야를 제대로 보고 싶었다. 안야와 눈을 마주하고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너무 늦은 일이 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그럴 수 있기를 바랐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울어본 일이 너무 까마득해서 그런지 우는 법을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한참이 지나도 기주가 움직이지 않자 요한이 다가왔다. 

 “아버님.”

 요한이 조심스럽게 그의 팔을 잡았다. “이제 가야 해요.” 기주는 힘겹게 시선을 거두고 관 앞에서 물러났다.

 안야는 성당에서 멀지 않은 묘지에 묻혔다. 땅속으로 관이 내려가고, 그 위로 흙이 뿌려졌다. 흙이 떨어질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례가 끝나자 기주는 휴대폰으로 안야가 묻힌 자리를 사진 찍었다. 딸이 머무는 곳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귀국하기 전까지 기주는 요한과 함께 안야의 물건들을 정리하기로 했다. 요한과 기주가 식탁에 마주 앉자 마일로가 식탁 주변을 한 바퀴 돌더니 요한의 발 근처에 엎드렸다. 요한은 안야의 물건들을 버려야 할 것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줄 것으로 분류해 달라고 했다. 간직하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무엇이든 챙겨도 좋다고 했다. 말하는 동안 요한은 틈틈이 식탁에 펼쳐진 종이들을 들여다보았다. 종이는 세 장이었고, 영어 필기체로 글귀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게 뭔가?”

 기주가 종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안야가 죽음을 대비해 남긴 편지예요.” 

 요한이 대답했다. 장례식장과 묘지, 부고를 알릴 사람들과 장례식에서 사용할 음악과 사진 모두 안야가 원하는 대로 했다고 말했다. 장례 비용으로 쓸 돈이 든 통장과 비밀번호, 휴대폰 잠금 번호까지도 노트에 적혀 있다고도. 장례식에 검은 옷을 입지 말라는 것도 안야의 뜻이었다. “각자 제일 좋아하는 옷을 입고 와달라고 했어요. 안야가 검은색을 싫어했거든요.”

 기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요한의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그 아이가…… 죽으려고 했던 적이 있었나?”

 기주가 묻자 요한이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얼마 후 요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원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둘 다 가족을 갑자기 잃은 경험이 있고, 이 나라에 우리의 마지막을 챙겨줄 사람도 없고요.”

 기주는 안야의 엄마가 세 번이나 재혼했다는 것도, 안야의 의붓남매는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사실도 요한에게서 전해 들었다. 안야가 복잡한 가족 관계 속에서 자랐다는 사실에 기주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남보다 못한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얼마나 사람을 외롭게 하는지 기주도 모르지 않았다.

 요한은 설명을 이어갔다.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같이 본 적이 있었어요. 어떤 사람은 유골을 우주로 보내달라고, 어떤 사람은 폭죽에 담아 하늘로 쏘아달라고 유언을 남겼어요. 장난일 줄 알았는데, 정말로 그렇게 하더라고요. 일반 사람들은 꿈도 못 꿀 만큼 비쌌지만요. 아무튼 그걸 보다가 우리도 한번 적어보기로 한 거죠. 우리의 장례식이 어땠으면 좋겠는지.”

 두 사람은 각자 원하는 장례식에 대해 적은 뒤 봉투에 넣고 밀봉한 후에 교환했다고 했다. 둘 중 누군가가 죽기 전까지는 절대로 열어보지 않기로 약속도 했다. 어디에 숨겼는지도 서로 알려주지 않았다.

 “저는 이렇게 길게 적지 않았어요.”

 식탁 위에 놓인 편지를 들여다보며 요한이 씁쓸하게 웃었다. “장난처럼 해본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둘 다 와인을 많이 마셨거든요. 하지만 안야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편지부터 떠올랐어요.”

 거기까지 말한 요한은 입을 다물었다. 

 “그럼 나한테 연락하라는 것도.”

 “네, 안야가 원했어요.”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하라고만 했지, 아버님이 오실 줄은 몰랐을 거예요.”

 얼마간 정적이 흘렀다. 

 “재미있는 친구였어요.”

 요한이 말했다. 개 알러지 때문인지 눈 주변이 붉었다. 요한의 발치에 앉아 있던 마일로는 졸린 듯 눈을 느리게 껌뻑거렸다.

 안야가 남긴 편지 마지막 장을 살펴보던 요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기주가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요한은 입술을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일로를…… 로완에게 데려다달래요.”

 요한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른 소리를 들었는지 마일로가 귀를 쫑긋거렸다.

 “로완? 그게 누군가?”

 “안야가 샌프란시스코에 살 때 만났던 사람이에요.” 요한은 편지에 시선을 둔 채 말했다. “제가 키울 상황이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안야가 이럴 줄은 몰랐어요.”

 “안야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살았었나?” 

 기주의 물음에 요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교를 샌프란시스코로 갔거든요. 졸업하고도 한동안 거기서 살았고요.” 요한은 안야가 서부의 명문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뒤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친구 중에 명문대에 들어간 건 안야뿐이라서 자랑스러웠다고 말하던 요한은, 작년 봄에 안야가 갑자기 퀸즈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에 이르자 얼굴이 묘하게 굳었다.

 “마일로도 그때 같이 왔어요.”

 기주가 로완과 마일로가 어떤 사이인지 묻자, 요한도 아는 게 없다고 했다.

 “그럼 로완이라는 사람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겠군. 마일로를 맡아줄 수 있는 상황인지 확인도 해야 하니까.”

 요한은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전 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요한은 뭔가 더 할 말이 남았는지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입을 다물었다. 기주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한번 물어봐 주겠나. 안야가 그 사람에게 마일로를 부탁한 이유가 있겠지.”

 얼마간 고민하던 요한은 결국 안야의 휴대폰을 챙겨 식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로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기음만이 이어졌다. 안야의 짐을 정리하면서 몇 번 더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대기음이 한두 번 울리자마자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갔다. 자정에 이르자 두 사람은 다음 날 다시 연락해 보기로 했다.

 잘 채비를 마친 후 불을 끄려던 기주의 시선이 문득 옷장 위에서 멈추었다. 그 높은 곳에 노란 꽃 한 송이가 꽂힌 하얀 머그잔이 놓여 있었다. 시든 꽃 머리가 아래를 향해 축 늘어져 있었다. 안야는 대체 왜 저기다 올려 둔 걸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날 밤에도 기주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가까스로 잠에 들었을 때는 악몽을 꿨다. 누군가를 불러야 했는데 입안에 모래가 가득 차 있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깨어난 뒤에도 식도에 서걱거리는 느낌이 남아 있었다.


■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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