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기 있습니까(2회)
- 작성일 2026-09-29
- 댓글수 0
아직 여기 있습니까
박세회
2011년 4월 25일
잠이 오지 않는다. 나루미는 이불 속에서 한 시간쯤 뒤척이다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복도의 마루가 발밑에서 낮게 운다. 마오의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안방의 문틈도 어둡다. 부엌에 달린 작은 등을 켠다. 냉동고에서 얼음을 꺼내고 보리차를 따른다. 문을 닫자 냉장고가 부르르 몸을 떨고는 다시 조용해진다.
식탁 의자를 빼고 앉아 스탠드를 켠다. 거실 벽을 따라 쌓여 있는 신문 다발들을 본다. 노끈으로 열십자를 그리며 묶인 다발들이 낮은 것은 종아리, 높은 것은 허리께까지 온다. 안쪽의 오래된 다발들은 옅은 갈색으로 바래 있다. 나루미가 소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자란 사건의 숲. 아직 묶이지 않은 4월의 신문들이 3월 치보다 높게 쌓여 있다. 나루미는 손을 뻗어 한 무더기를 식탁 위에 내려놓고, 뒤적이며 제목들을 읽는다.
오늘 조간 1면에는 지방선거 후반전 기사가 있다. 투표율이 역대 최저라고 한다. 페이지를 넘긴다. 원전 지도. 사고 등급이 최고 단계로 올라간 뒤로 지면에는 매일 같은 지도가 실린다. 물결처럼 번져나가는 동심원. 시금치와 우유의 출하가 어느 지역까지 풀렸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표가 있다. 넘긴다. 미키마우스가 손을 흔든다. 도쿄 디즈니랜드 재개장, 부흥 골든 위크 특집. 올해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 오히려 피해 지역을 향한 응원이라는 제목 아래, 그래도 들뜬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주부의 말이 발문으로 실려 있다. 자숙이냐 소비냐를 두고 학자 두 사람이 지상 논쟁을 벌인다. 넘긴다. 프로야구는 절전 때문에 낮 경기를 늘린다고 한다. 게이코가 좋아하는 한류배우가 의연금 1억 엔을 냈다는 기사. 네컷만화, 라디오 편성표, 슈퍼의 전단지. 시금치가 싸다.
신문의 한 지면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다. 엄마의 가위가 지나간 자리. 이제는 구멍이 나는 일도 드물다. 오래전에는 스크랩북도 만드는 것 같았지만, 요즘은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끔 오려둘 뿐. 나루미는 구멍 너머로 다음 장의 활자가 비치는 것을 잠시 들여다본다.
다른 신문을 집어 든다. 피해 지역에서 온 피난민이 숙박을 거부당했다. 전학 간 학교에서 방사능 숙주 취급을 받았다. 법무성이 그런 행동은 차별이라는 성명을 냈다. 기사 아래엔 인권 옹호 위원에게 상담을 접수하는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마치 상담을 하면 차별이 없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루미는 그 번호를 잠시 들여다본다.
기사 옆에는 그보다 작은 글씨로 한 대학교수의 의견이 붙어 있다. 교수는 차별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순간 차별이 번진다며, 조심스럽게 우려하고 있다. 후쿠시마라는 지명이 사람의 이름처럼 쓰인다. 딱지가 되어간다. 나루미는 후쿠시마, 라는 한자를 눈으로 다시 짚는다. 복 복에 섬 도. 복된 섬. 인간이 붙여놓은 이름이 한없이 하찮다.
다른 신문을 집는다. 사회면 하단, 2단짜리 작은 기사에 눈이 걸린다. 행불자의 사망 인정 절차를 앞당기는 특례를 정부가 검토해야 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재해로 실종된 채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경우 통상 1년이 지나야 사망신고가 가능하다. 이 기간을 석 달로 단축한다. 사망이 인정되지 않으면 유족연금도, 생명보험도, 예금의 상속도 불가능해 남겨진 가족의 생활이 무너진다. 유족의 생활 재건을 위해. 나루미는 기사의 설명을 두 번 읽는다.
컵 안의 얼음이 자리를 바꾸며 소리를 낸다. 나루미는 기사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생각한다. 지우네는 15년째 아무것도 아니다. 죽은 사람이 아니고, 그렇다고 산 사람도 아니다. 어딘가에 살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 희망에도 기한이 있다. 재해나 침몰처럼 죽음이 거의 확실한 실종은 1년, 그 밖의 실종은 7년. 7년도 이미 오래 전에 지났다. 차라리 지우네를 실어 가는 파도를, 지우네를 쓸어 가는 땅을 누군가가 보기라도 했더라면. 호적에 지우네는 아직 그대로 있다. 나루미가 이런 사실을 안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렇게 정리된 문장으로 생각해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이달 초에 현관 우편함으로 선거 안내 엽서가 왔다. 두 장이. 한 장은 엄마 앞, 한 장은 아빠 앞. 15년 동안 나라는 선거 때마다 지우네를 부른다. 엄마는 그 엽서를 버리지 않고 찬장 위 과자 깡통에 넣는다. 깡통 속에서 지우네는 성실한 유권자다.
엄마는 오노데라에게 말했다. 이쪽은 사실 실종이 확실한 것도 아니니까요. 아니다. 사망이 확실하지 않은 것이지, 실종은 확실하다. 그때는 그 말이 어째서 이상하게 들리는지 몰랐다. 지금은 안다. 확실한 것은 나루미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것뿐. 부재. 우리는 무엇을 봤지. 나루미는 생각한다. 쥐고 있던 컵을 내려놓는다.
엉켜 있던 생각을 말로 풀고 나니 두렵다. 그러나 한번 언어가 되어 나란히 줄을 선 생각은 다시 엉키지 않는다. 안방 쪽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난다. 나루미는 숨을 멈춘다. 화장실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닫히는 소리. 다시 고요해진다. 읽던 신문을 접는다. 원래 접혀 있던 결의 반대로, 보던 기사가 보이지 않게 접어서, 무더기의 중간쯤에 밀어 넣는다. 한동안 그대로 앉아 거실의 숲을 바라본다. 네모난 구멍이 뚫린 종이들이 노끈에 묶여 허리까지 자라 있는 숲. 사망을 신고하지 않는 것도 매일의 선택이라는 것을, 나루미는 이 밤에 처음으로 생각한다. 부엌 등을 끈다.
후지모토 유키에게
모두가 야구에 열광하던 시절, 우리에게 야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숨겨야 하는 비밀 같은 것이었습니다. 야구란 민중의 정치의식을 무력화하기 위한 오락, 미국 중심 자본주의의 첨병이었으니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스크린, 스포츠, 섹스로 일컬어지는 ‘3S’는 당대 사회에 자본주의를 뿌리내리게 하는 방편으로 여겨졌습니다. 그중에서도 미 제국의 스포츠인 야구는 최악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본론을 읽고 철저한 사상 교육을 받은 저는 늘 야구로 인한 작은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반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학우였던 쿄스케 군이 고시엔에 늘 진출하던 우리 학교의 간판선수라는 것을 남몰래 자랑스러워하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다니던 니치다이산 고교의 야구팀이 센바쓰 결승에서 지던 날엔 학우들과 교실에서 중계방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마음 다른 쪽에서는 스포츠라는 것이 이렇게나 위험한 자본주의의 전략이라는 경각심도 생겼습니다. 그토록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교육해 온 저라는 사람도 고시엔 결승을 보며 눈물을 흘릴 만큼 무너져버리고 말았으니까요.
그 뒤로는 야구를 보지 않았습니다. 야구를 다시 본 것은 니혼진무라에 오고도 한참이 흐른 뒤입니다. 쓰바메호 그룹이 몇 번의 해외 치적을 쌓고 난 뒤, 수령 동지께서 저희 숙소에 위성 테레비를 설치해 주셨습니다. 그날 저희는 처음으로 컬러테레비에 나오는 야구선수들의 경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모국어로 중계까지 해주는 경기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했습니다. 처음 봤던 경기의 전황이 전부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롯데 오리온즈와 오릭스의 경기였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오릭스 쪽의 팀명이 그때 무엇이었는지는 가물가물해도, 롯데가 오리온즈였다는 것만은 분명히 기억이 납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등장하는 샤를로테에서 따온 ‘롯데’라는 이름도 문학적이라고 생각했고, 오리온즈라는 형이상학적인 이름을 야구단에 붙였다는 사실에 다시 감탄했지요. 사자나 매 같은 용맹한 동물의 이름을 붙이는 보통의 구단들과는 전혀 다른 작명이었으니까요. 훗날 롯데가 지바로 연고지를 옮기며 이름을 마린스로 바꾼 것 역시 제게는 운명 같은 일이었습니다. 많은 분이 저를 도쿄 태생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것도 사실이지만, 실은 저는 지바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한화휴제하고. 이렇게 드라마틱한 팀인 마린스에 후지모토 유키 선수가 입단했다는 사실 자체가 제게는 자못 감동이었습니다. 후지모토 상은 가고시마 고교 출신의 엘리트로, 그 시절 웬만한 고교 에이스들이 그랬듯 선발 투수에 3번 타자를 겸하던 천재였습니다. 드래프트로 닛폰햄 파이터스에 들어갈 때만 해도 그의 야구 인생이 밝게 펼쳐지리라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영웅을 만드는 것은 고난이라는 말처럼, 그에게 부상이 찾아왔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그를 지켜본 사람들이 인터넷에 남긴 글들을 나중에 찾아 읽어보니, 고시엔에서의 연속 등판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속칭 ‘슬랩’이라 불리는 이 부상은 어깨관절 안쪽 연골의 테두리가 찢어지는 병변으로, 어깨를 돌릴 때마다 깊숙한 곳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온다고 합니다. 부상과 재활, 또다시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며 야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는 막다른 골목까지 몰렸던 그가 투수가 아닌 타자로 전향한 것은 정말이지 비장한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팔을 들어 올려 던질 때마다 자극받던 부위가 문제였던 것을 생각하면, 타자로 나서면 던지는 횟수가 줄어드니 견딜 만했던 셈이지요. 타자로 전향해 시민 구단에서 뛰며 기회를 엿보던 그가 트라이아웃에 나왔을 때, 그의 야구 센스를 알아본 사람이 바로 당시 헤드코치였던 니시무라 감독입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그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그가 흘린 땀의 무게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마 그 자신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자신조차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2010년 재팬 시리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퍼시픽리그 3위로 야구 사상 최대의 하극상을 일으키며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뚫고 올라온 마린스의 위용은 대단했습니다만, 재팬 시리즈에서는 센트럴리그를 압도적으로 제패한 나고야의 강호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완패할 것이 뻔해 보였습니다. 마린스의 우승을 점친 사람은 큰 배당에 베팅한 도박꾼들뿐이었겠지요.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이 이끄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두터운 투수진을 보면 그것이 타당한 예측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리즈는 첫 경기부터 예상을 빗나갔습니다. 신인 기요타가 투지를 보여주는 솔로홈런으로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고, 마린스는 동점 상황에서 승기를 잡아 첫승을 거뒀습니다. 드래곤즈는 1차전에 에이스 요시미 가즈키를 내고도 무너졌지요. 후지모토 유키에게 기회가 온 것은 시리즈 중반의 어느 경기 7회로 기억합니다. 그는 시리즈 들어 처음으로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주자는 2, 3루. 3루의 모리타는 발이 빨라 희생플라이도 가능했지요. 한 점 뒤진 경기 막바지라 득점이 절실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러나 후지모토는 드래곤즈 불펜투수가 던진 바깥쪽 슬라이더 세 개를 전부 헛스윙하고 물러났습니다. 공이 배트에 스치지도 않았지요.
저는 아직도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던 그의 표정을 기억합니다. 후지모토는 그 뒤로 다시는 재팬 시리즈의 타석에 서지 못했습니다. 결과는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마린스는 그해 5년 만에 네 번째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팀은 시리즈에서 승리했지만, 후지모토 자신은 패배했습니다. 우승이 결정되고 선수들이 벤치에서 뛰쳐나와 뒤엉키던 순간, 카메라 한구석에 후지모토가 잡혔습니다. 더그아웃 구석에 혼자 있다가 한 박자 늦게 환호를 지르며 뛰어나가는 그의 모습을 저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이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쏟는 열기의 원 안으로 뒤늦게 걸어 들어갔지만, 그의 마음은 그 원의 밖에 남았습니다. 제 눈에는 어째서인지 그것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했는지도 모릅니다. 2007년 닛폰햄의 트레이닝 룸에서 어깨를 부여잡고 혼자 천장을 바라보던 사람이 2010년 재팬 시리즈 우승 반지를 손에 쥐게 된 것입니다. 야구는 끝내 그에게 빚을 갚았습니다. 지난 시즌 그는 마린스에서 87개의 안타를 쳐냈습니다. 주전 타자라면 형편없는 성적이지만, 주전과 벤치를 오가며 올린 것이라 생각하면 준수한 편입니다. 후지모토 유키를 주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만, 그는 제게 내일의 조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지난가을 마린스는 후지모토 선수의 트레이드를 발표했습니다. 저는 구단을 탓하지 않습니다. 구단에겐 구단의 일이 있고, 팬에게는 팬의 일이 있는 법입니다. 구단은 그를 필요로 하는 선수와 바꾸는 것이 일이고, 저는 그를 사랑하는 것이 일입니다. 자신의 재능을 남김없이 하얗게 불태운 그가 제게는 더없이 멋집니다. 감사했습니다, 후지모토 상.
그럼 또 조만간 안부를 전할 날을 기다리며
2011년 5월 2일
벚꽃이 흐드러진 니혼진무라에서 요시토모 겐페이 근언
2011년 5월 7일
나루미네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십수 명이 모여 있다. 나루미와 아케미는 아는 얼굴들이 보이면 그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자신들이 늦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이제 왔느냐는 그들의 인사가 꾸중처럼 들린다. 중의원의 지역 사무소는 텐진바시스지 상점가가 끝나는 곳에서 다리를 건너 두 블록쯤 떨어진 곳에 있다. 번화가와 번화가의 사이에 있지만, 주말에는 상점가를 벗어나 강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지난다.
마스크를 쓴 나루미는 마오가 쓴 피켓을 둘러싼 천을 벗겨낸다. 마오의 글씨는 도저히 봐줄 수 없을 만큼 엉터리인 데다가 미호 상의 이름에서 호 자 가운데 나중에 욱여넣은 가로획이 눈에 띈다. 마오는 친구와 자원봉사를 하러 간다며 시위에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이제 그녀는 시위에 영영 나오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루미는 마오처럼 굴 수 없다. 그녀는 아케미 혼자 시위에 나가게 두지 않는다. 작년 봄에도, 재작년 봄에도. 추운 계절이 끝나면 이 자리에 늘 나타나는 얼굴들 사이에서 유독 반가운 사람들이 보인다. 한 노년의 여자가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넨다. 미호 상의 어머니 키미코다. 옆에는 남편 다카시가 말없이 서 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또 여름이네요.
키미코가 아케미의 손을 잡는다.
마오 짱은?
오늘은 못 온대요. 친구랑 자원봉사를 하러 간다나요.
그래도 이 피켓은 마오가 썼어요.
나루미가 덧붙인다.
어머! 미인은 악필이라더니, 정말이네.
다카시가 웃고 있는 세 사람을 본다.
나루미는 이제 대학생티가 나네. 머리도 길었고. 시간 참 빠르지. 소학생 때 처음 본 것 같은데 이렇게나 커버리다니.
키미코가 말한다.
그때랑 속은 똑같아요.
나루미가 대답할 때, 누군가가 확성기를 켜는 소리가 들리고 짧은 하울링이 날카롭게 귓속을 파고든다. 아! 아! 테스토 테스토.
그런데 오늘은 사무실에 있대요?
아케미가 확성기의 소리를 뚫기 위해 소리친다.
있다나 봐요. 무슨 상공회의소 간담회 때문에 어제 내려온 걸 저 양반이 확인했다더라고요.
다행이네요. 오늘도 피해자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둥 하면서 악수 퍼포먼스만 하다가 가는 건 아니겠죠?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죠.
확성기를 통해 외치는 큰 소리가 들린다.
이 바보 자식들아! 북조선에 쌀이나 퍼주면 내 아들은 어떻게 데려오냐!
시작부터 기세가 대단하다. 나루미는 확성기를 쥐고 있는 남자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는 키가 작지만, 목소리는 크다. 소갈머리는 없지만, 주변머리만은 숱이 빽빽하다. 마사오다.
우리도 우리도. 내가 전단지를 가져올게요.
잠시 뒤 키미코가 종이 뭉치를 잔뜩 가지고 돌아온다. 아케미와 나루미는 그걸 받아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핀다. 나루미는 일행과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횡단보도 쪽으로 느리게 걸어간다. 횡단보도 건너 상점가 입구 쪽에는 다른 무리가 보인다. 같은 색 점퍼를 입은 대학생 서넛이 서 있고, 길목에는 태평양 해역 지진 의연금이라고 적힌 모금함이 놓여 있다.
신호를 기다리는 정장 차림의 남자에게 전단지를 건네보지만, 마스크를 쓴 남자는 나루미 쪽을 돌아보지도 않는다. 손을 옆의 여자에게로 옮긴다. 여자는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않는 채 미간을 찌푸린다. 신호가 바뀌고 길을 건넌 여자가 모금함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지갑에서 꺼낸 것을 모금함에 넣는다. 챙그랑. 대학생들이 허리를 깊이 숙이며 입을 벌린다. 감사합니다. 챙그랑, 챙그랑. 마사오의 확성기 소리가 끊기는 사이사이로 작은 동전 소리가 끼어든다.
나루미! 말을 해야지. 말을 하면서 줘야 사람들이 읽어볼 것 아냐.
또 다른 여자가 다가와 나루미의 앞으로 나선다. 마사오의 아내이자, 고스케의 어머니인 유미코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횡단 보도에 멈춰 선 다른 젊은 여자의 손에 전단지를 쥐여주며 말한다.
야마모토 미호는 아직 북조선에 살아 있습니다.
그녀가 또 다른 젊은 여자의 손에 전단지를 쥐여주며 말한다.
제 아들 고스케가 북조선에 납치당했어요. 서명 안 해줘도 좋아요. 읽어만 주세요.
그녀가 또 다른 젊은 여자의 손에 전단지를 쥐여주며 말한다.
아직 북조선에서 돌아오지 못한 국민들이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보니 아케미는 도로 건너편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납치 피해자를 잊지 말아주세요.
나루미가 마스크 안에서 작게 웅얼거리며 전단지를 쥔 손을 내밀어 본다.
아직 북조선에 있는 국민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나루미는 그다음 말을 잇지 못한다. 제 아버지가 북조선에 납치당했습니다.
젊고,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은 여자, 단정한 옷차림을 한 중년 남자를 노려야 해. 남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 말야.
유미코가 말한다. 나루미가 단정한 카디건 차림의 중년 여자에게 전단지를 내밀어 본다. 걸음을 늦춘 여자가 그것을 받아 든다. 여자의 눈이 빠르게 훑는다. 여자는 전단지를 도로 나루미의 손에 쥐여준다.
지금 이런 시국에…….
여자는 말끝을 흐리며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모금함 앞에 선 여자의 등 뒤로 대학생들이 허리를 숙인다. 챙그랑. 나루미는 되돌아온 전단지를 뭉치의 맨 아래로 밀어 넣는다. 나루미가 내민 손을 비껴간 또 다른 젊은 남자가 길을 건넌다. 걸음이 빠르다. 길 건너편에서 건너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던 아케미가 남자에게 다가간다. 아케미가 뭔가 입을 움직여 소리를 내뱉는 모습이 보인다. 전단지를 건네자 남자가 피해 돌아가려 한다. 아케미가 남자의 앞을 비스듬하게 막아선다.
남자가 아케미를 다시 피해 돌아가려다 두 사람이 부딪힌다. 그녀가 넘어진다. 남자는 뒤를 돌아보지만 아무 말 없이 가던 길을 간다. 나루미는 아케미에게 달려가 볼까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가 별일 없다는 듯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춘다. 정말 바보 같아. 나루미는 생각한다. 이 모든 게 너무 바보 같아.
마쓰이 겐이치 이 바보 자식아! 쌀을 보낸다고 내 아들이 돌아오느냐! 북조선은 우리 바다에 미사일을 보내는데, 우리는 왜 북조선에 쌀을 보내냐!
겐이치를 향해 소리치는 마사오의 목소리가 꽤 먼 곳에서도 똑똑하게 들린다. 예전의 마사오는 훨씬 대단했다. 벌써 10년 전인가? 아케미가 처음 나루미를 데리고 시위에 나온 건 그녀가 아직 소학교에 다닐 때였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모였다. 아직 노년에 접어들지 않았던 마사오는 제대로 된 중형 스피커를 실은 트럭 위에 올라 하루 종일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지르며 수백 명을 지휘했다.
주말 시위에는 다른 시민단체의 인력 지원 덕에 천 명에 가까운 인파가 모인 적도 있고, 도쿄의 총리 관저 앞에서 가두 행진을 벌인 날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달랐다. 중년 여성들이 전단지를 건네는 나루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고, 낯모르는 행인들이 아케미의 두 손을 맞잡아 주며 응원했다. 나루미의 마음도 달랐다. 그녀는 신이 나서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가슴에 한 아름의 전단지를 들고. 당시 가족회 회장이 흰 곱슬머리를 한 총리와 손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총리는 반드시 북조선에 납치된 피해자들을 고국으로 데려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정말로 북조선에서 사람들이 돌아왔다.
나루미는 아케미의 손을 잡고 갔던 하네다 공항의 오후를 기억한다. 광활한 아스팔트 위에서 그들은 누군가를 기다렸다. 비행기 한 대가 착륙했고, 한참 뒤에 그들 앞에 와 섰다. 문이 열리고 키가 큰 여자가 쭈뼛거리며 활주로에 모인 사람들을 내려다봤다. 모두가 동시에 뱉어낸 탄식이 거대한 외침처럼 퍼졌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라도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스무 해가 넘게 지났어도 커다란 눈과 살짝 휘어진 매부리코는 나루미가 여러 번 봤던 실종자 사진 속의 모습 그대로였다. 사진기자들의 손에서 플래시가 일제히 터지고, 익숙한 얼굴들이 수십 년쯤 나이 든 모습으로 하나둘 계단을 내려오자, 그들을 알아본 가족들이 뛰어가 부둥켜안으며 울었다. 타카하시 료타가 마지막으로 내렸다. 일본인 납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이름이자 실종자 가족회를 설립한 회장 타카하시 요시히로의 아들. 그가 내렸을 때는 함성이 터졌다. 그리고 지상 조업원들이 탑승용 계단을 치우기 시작했고, 비행기의 문이 닫혔다. 그날 내린 사람은 모두 다섯.
정부가 인정한 명단에 이름이 오른 실종자는 모두 열일곱이었다는 것, 그날 그 열일곱의 가족이 전부 공항에 나와 있었다는 것, 그날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은 사람들 중 일부는 이미 사망했고 나머지는 입국한 기록조차 없다며 북조선 측에서 알려왔다는 것은 나중에, 조금씩 덧붙여진 기억이다. 키미코 아줌마의 딸 미호 상도, 마사오 아저씨의 아들 고스케 상도 그날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았다.
나루미네는 그 셈의 바깥에 있었다. 지우네는 애초에 그 열일곱에 들어 있지 않았다. 데려가는 것을 본 사람이 있거나, 데려갔다는 증거를 정부가 쥐고 있는 사람만 명단에 올랐다. 파도를 본 사람이 없는 지우네는 처음부터 명단 밖이었다. 함께 오랜 시간 활동한 회원이라는 이유로 활주로까지는 들어갈 수 있었지만, 행사가 끝나자 나루미네는 곧바로 밖으로 쫓겨났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가족들도 함께였다. 어른들은 그것을 두고 쫓겨났다고 말하지 않았다. 안내되었다고 말했다. 저 사람들은 안으로 모시고, 우리는 밖으로 안내하고 말이야. 나루미는 한참 뒤에야 그렇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날 가족을 찾지 못한 회원들은 저녁을 함께 먹었다. 아케미와 나루미는 마사오의 차를 얻어 타고 도쿄 시내로 향했다. 나루미는 도쿄가 처음이었다. 수도고속도로에서 세일러문에 나오는 도쿄타워가 눈에 들어왔을 때는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러나 차 안의 공기 속에서 그 흥분을 보일 수 없다는 것쯤은 알았다.
일행은 꽤나 근사한 닭 요릿집을 찾았다. 큰 방에 열 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고, 점원이 폰즈소스에 버무린 차가운 닭 가슴살 요리를 내왔다. 그러나 나루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미호가 죽었다는 말을 믿지 않아요.
키미코가 말을 꺼냈다. 그때의 키미코는 아직 60대였고, 늘 맵시 좋고 단정한 옷을 입었다. 목소리의 피치는 높았지만, 톤은 우아했고, 큰 소리를 내는 법 없이 늘 조곤조곤 상냥한 말투를 썼다. 그러나 그날 그녀의 말투는 단호했고, 마스카라는 번져 있었다.
있잖아요. 료타를 봤다고 증언한 이철승 씨를 제가 따로 만나서 미호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창광거리의 상점에서 본 것 같다는 거예요. 너무 아름다워서 눈길이 갔다고. 북조선 사람 같지 않았다고. 그게 1996년이에요. 북조선 말로는 그 이태 뒤에 병으로 죽었다는데, 죽을 만큼 아픈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예쁠 수가 있었겠어요? 이철승 씨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요. 게다가 이철승 씨가 증언한 료타가 이렇게 돌아왔잖아요.
나도 안 믿어요.
마사오가 말했다.
쓰바메호 범인들이 있는 일본인 마을에 다녀온 것으로 유명한 마이니치의 소카베 상이 한국에 있는 탈북자를 인터뷰하러 갈 때 우리 고스케 사진을 들고 가서 그들에게 보여줬단 말입니다. 그중 하나가 평양외국어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던 선생이 사진 속의 우리 애와 똑같다고 말했어요.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요. 강단에 서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었다고요. 애초에 거짓말만 하는 국가와는 대화가 되지 않는 법입니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우리 고스케를 봤다는 사람이 있는데, 입국 기록이 없다면 일부러 기록을 하지 않은 탓이거나 기록을 조작한 거겠지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맑은 닭 국물이 보글보글 끓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육수 맛을 먼저 보시겠어요?
직원이 사람들의 앞에 국물을 떠 주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다들 눈앞에 있는 음식을 바라봤다. 점심을 먹지 못한 나루미는 배가 고팠다.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어가며 마시자 몸이 따듯해지기 시작했다. 아케미는 그마저도 마시지 않은 채 끓고 있는 국물을 바라볼 뿐이었다.
저기……. 아케미 상.
키미코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같이 찾아봐 줄게요. 돌아온 사람 중 분명히 본 사람이 있을 거야. 우리 미호 얘기도 같이 물어보고요. 가본 적은 없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평양 근처에 있다는 일본인 마을이 그리 넓지 않다고들 하잖아요.
두 명의 직원이 번갈아 가며 닭의 여러 부위를 하나씩 익혀 사람들 앞에 놓아주기 시작했다. 아케미가 물었다.
얘기를 해줄까요? 얘기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일본에 돌려보내 준 게 아닐까…….
우리가 함께 싸워온 세월이 얼만데요? 아까도 요시히로 자식이 나한테 나중에 얘기하자는 눈짓을 보내더란 말이죠. 요시히로와는 술을 매주 마실 정도로 친한데, 설마 내 아들 얘기도 못 해줄까?
마사오가 대답했다. 아무도 젓가락을 들지 않을 때 나루미는 잘 발라낸 넓적다리 살 하나를 베어 물었다. 자신이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 그 자리에서 뭔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래도 배가 고팠으니까. 아케미의 날개 살은 접시 위에서 식어가고 있었다.
저기, 그래도 여기 계신 분들은 어쨌든 북조선에 납치됐었다는 것만은 확인하신 거네요.
아케미는 말을 이어갔다.
전 정말 모르겠어요. 이제 어떻게 어디서 누구를 만나야 어떤 이야기든 들을 수 있을지.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나루미는 들었던 넓적다리를 내려놓았다. 그 뒤로 이어진 긴 침묵 속에서 어른들의 얼굴 위로 지나간 감각들을 나루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것은 슬픔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었다. 오랜 시간 무언가를 좇다가 지친 사람들의 얼굴이 전하는 감각 혹은 감상. 전단지를 쥔 지금 나루미 얼굴에도 그것이 어려 있다.
확성기 소리가 뚝 하고 끊긴다. 나루미는 일흔을 넘긴 마사오가 있는 쪽을 돌아본다. 시위대의 물결에 소요가 일고 있다. 길 건너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횡단보도도 아닌 곳에서 길을 건너 마사오와 시위대 쪽으로 향하고 있다. 아케미도 유미코 상도 변화를 느끼고 그쪽으로 움직인다. 나루미도 그들과 함께 시위대 쪽으로 따라간다. 그들이 시위대 본진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남자는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간 뒤다. 마사오 근처에 있던 사람들로부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마사오가 확성기를 들고, 이번에는 시위대를 향해 말한다.
겐이치 바보 자식이 얘기를 좀 하자는데, 인정 실종자 가족들만 일단 들어오랍니다. 저랑 유미코, 다카시 상, 키미코 상이 먼저 들어가서 얘기를 하고 오겠습니다.
저희도 안에 들어가 있을게요. 문밖에서 기다리면 괜찮지 않나요? 이제 슬슬 저녁 시간이라 이 골목으로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요.
아케미가 외친다. 확성기를 어깨에 멘 마사오가 유미코와 함께 사무소 쪽으로 걷기 시작하고, 키미코도 다카시와 가방을 고쳐 들며 따라간다. 나루미와 아케미 그리고 몇몇 비인정 실종자 가족들이 뒤를 따른다. 사무소가 있는 건물 입구에서 아까의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일행을 멈춰 세우며 말한다.
죄송합니다. 인정 가족분들만 안으로 모시라는 지시가 있어서요. 얘기가 길어지면 곤란하거든요. 재해 대응 일정 때문에 시간을 30분밖에 못 내신다고 합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이봐요, 비서 양반. 겐이치 녀석이 하라는 대로 우리가 해야 하나?
마사오가 검은 정장의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아케미가 싸우려 드는 마사오를 만류한다.
아녜요.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 대신 얘기를 잘하고 돌아와 주세요.
차분한 목소리다.
마사오 일행이 겸연쩍어하며 사무소 안으로 들어간다. 키미코는 들어가기 전 아케미를 한 번 돌아보고 눈인사를 한다. 문이 닫힌다. 밖에 남은 사람들은 한동안 말이 없다. 문을 열고 나온 겐이치의 비서가 멋쩍은 얼굴로 말한다.
저쪽에 벤치가 있으니까요. 이제 쌀쌀해질 텐데, 편의점에서 따뜻한 거라도…….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비서가 들어가고 난 뒤 나루미는 아케미와 벤치에 앉아 사무소가 있는 층의 유리문을 바라본다. 안이 보이지 않도록 검은 선팅이 되어 있어 움직이는 형체만 어른거린다.
매번 이러네.
벤치 어디쯤에서 누군가가 나직이 중얼거린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는다.
우리가 먼저 가서 자리라도 잡고 기다릴까요?
누군가가 말한다.
역 근처 야키니쿠집에는 연기가 자욱하다. 면담을 마치고 온 마사오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메뉴판을 건네며 말한다.
오늘은 마십시다. 생맥주 큰 걸로.
유미코가 말없이 메뉴판을 집어 돌린다. 말리지 않겠다는 뜻이다. 키미코도 메뉴판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나도 마실 거야. 유미코 상, 우리 삼겹살이랑 갈비, 둘 다 시켜요. 아, 곱창도.
키미코 상이 곱창을요?
나루미가 자신도 모르게 말한다. 키미코는 나루미를 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왜? 내가 곱창은 못 먹을 것 같아 보여?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잘 먹어. 나 요즘 뭐든 잘 먹어.
그녀가 단호하게 말하고 점원을 부른다. 나루미는 아케미와 눈을 마주치지만 아케미는 담담한 얼굴이다. 주문이 끝나고 잠시 뒤 생맥주잔들이 테이블을 채운다. 마사오가 잔을 들며 말한다.
뭘 위해 마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다들 잔을 든다. 나루미도 든다. 어쨌든! 첫 모금을 들이켜고 마사오가 말한다.
겐이치가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마사오 상, 제발 바보라고 부르지 말아 달라고요. 공개적인 자리에서 선거를 앞둔 의원을 바보라고 하면 곤란하다고. 그러면서 뭐라는 줄 알아요? 온 나라가 재해복구로 힘든 시국이니 목소리도 좀 낮춰달라. 납치 문제는 때를 봐서 꺼내자. 하, 시국.
유미코가 맥주를 마시다 말고 조용히 내려놓는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그녀가 묻는다.
뭐라고 하긴. 그럼 바보짓을 하지 말라고 했죠. 쌀이나 보내고 말이야. 조선학교도 마찬가지야. 오사카 의원 중에서 겐이치 그 자식만 조선학교 편이잖아요. 착한 척은 혼자 다 하고 말이야.
나루미는 조선학교라는 말에 흠칫해 주변을 돌아본다. 마사오가 고기를 석쇠 위에 올리며 말한다. 기름이 튀기 시작하고 연기가 피어오른다.
내 아들이 그 추운 땅에 있는데, 아비가 되어서 중의원님 체면이나 따지고 있을 상황이겠냐고. 내가 뭐가 좋아서 이 나이에 확성기를 들고 서 있겠냐고.
마사오가 말하면서 고기를 뒤집는다. 손이 거칠 것 없이 능숙하다.
그런데 쌀 얘기는 자꾸 왜 하는 거예요?
조용하던 아케미가 묻는다.
쌀이요? 아 그래요 쌀. 인도적지원 재개가 협상의 물꼬를 튼다느니 뭐라느니 그런 대답을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또 얘기했죠. 쌀을 보낸다고 내 아들이 돌아오느냐, 하고.
아뇨. 마사오 상은 왜 자꾸 쌀 얘기를 하시는 거냐고요. 지금 북조선에 쌀을 보내자고 주장하는 당은 어디에도 없어요. 지금은 조선학교 지원 문제를 얘기해야죠.
날카로워진 아케미의 팔목을 나루미가 조용히 꼬집는다.
아니, 왜? 엄마 말이 맞지 않아?
아케미가 나루미를 뿌리친다. 당황스러워하는 나루미와 마사오를 보고 키미코가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말한다.
그건 아케미 상 말이 맞아요. 근데……. 그런데 쌀이 문제가 아니란 건 마사오 저 양반도 알 거야. 저 사람이 쌀 얘기를 하는 건 쌀이 진짜 문제라서가 아니라, 소리를 질러야 하니까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소리를 안 지르면 안 되는 사람이거든.
하하하! 그렇군요.
마사오가 만화의 한 장면처럼 자기 이마를 턱 하고 치며 앞에 있는 맥주를 들이켠다.
나도 그래요. 젊었을 때는 소리를 지르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지 뭐예요. 근데 미호가 없는 세상에선 소리라도 지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예전에는 소리를 지르는 사람을 보기만 해도 목이 아팠는데 이제는 조용히 있자면 목이 간지러워요. 호호.
키미코가 작게 웃는다. 나루미는 오래전 닭 요릿집에서의 키미코를 떠올린다. 조용하고 단아했던 키미코는 지금은 바람막이 점퍼에 스니커즈를 신고 커다란 생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빈 잔을 내려놓은 키미코가 점원을 불러 맥주를 한 잔 더 시키며 말을 잇는다. 키미코의 옆에 앉은 남편 다카시는 말이 없다. 그는 읽을 수 없는 표정으로 조용히 석쇠 위의 고기들을 뒤집는다.
이제 무서운 것도 없어요. 솔직히.
키미코가 말한다. 목소리는 평온하지만, 그 안에 오래 묵어 단단해진 무언가가 있다. 나루미는 문득 혼카레부시를 떠올린다. 말랑말랑한 가다랑어로 만들었지만, 결국에는 나무보다 단단해진. 말없이 고기를 뒤집던 다카시가 집게를 내려놓고, 앞에 놓인 반쯤 남은 맥주잔을 비운다. 키미코가 말한다.
오늘 겐이치 의원이 그러더군요. 미호의 유해 감정결과는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방법에 따른 거라고. 자기가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자기더러 뭘 어쩌라는 거냐고 되묻더군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그러면 시료는 왜 버렸냐고. 내가 내 돈 주고 검사를 다시 해보겠다는데, 그것도 못 하게 시료는 왜 버렸냐고.
아케미가 묻는다.
왜 버렸대요?
절차상.
모두가 웃는다. 아케미의 웃음소리가 제법 크다. 야마모토 미호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10년쯤 전이지만, 유해가 일본으로 돌아온 건 작년이다. 오래된 유골에서 겨우 채취한 시료는 다카시와 키미코의 DNA와 99% 일치한다고 했다. 그러나 가족회의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정부는 감정결과를 근거로 미호를 사망자로 정리하려 했지만, 다카시와 키미코는 사망신고를 거부하고 있다. 미호는 아직, 적어도 서류 위에서는 살아 있다.
절차. 참 좋은 말이에요. 절차상의 문제. 일본에선 그 말 한마디면 뭐든 막을 수 있으니까.
아케미가 말한다.
저희 지우네도 드디어 북조선에서 봤다는 사람이 나왔잖아요. 내가 내 귀로 직접 들었다는데, 그 사람이 직접 정부 사람을 만나서 신분을 밝히고 증언을 해주지 않으면 절차상 납북 피해자로 인정을 못 해준다고 하잖아요.
추가로 주문한 곱창이 나온다. 키미코가 집게를 들고 손수 석쇠를 잡으려 하자 다카시가 조용히 먼저 잡는다.
마사오 상.
그가 키미코 앞에 있는 석쇠에 고기를 올리면서 말한다.
다음 달에도 집회 할 거죠?
당연하죠. 이제 매달 나오는 가족회 회원도 우리뿐이네요.
마사오가 잔을 비우고 말을 잇는다.
하기야 이렇게 집회를 하고, 피해 인정을 받는다고 애들이 돌아오기나 하겠어요? 김정일도 이제 다 죽어가는 처지에 돌려보내 줄 힘이나 있겠어요? 지 애들 앞가림이나 겨우 하는 거지. 그래도 나가는 겁니다. 자식 잃은 처지에 다 같이 힘이라도 보태고 기대면서 사는 거죠.
그럼 됐어요. 겐이치가 뭐라든 상관없어요.
키미코가 말한다. 그리고 곱창 한 점을 집어 입에 넣는다. 나루미는 잠시 가게 안을 둘러본다. 테이블마다 천장에서 내려온 은색 자바라가 주둥이를 벌리고 있다. 석쇠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퍼질 새도 없이 전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사오는 아케미네 테이블에 앉아 석쇠를 독차지하다시피 하며 고기를 굽고, 유미코는 남편인 마사오의 빈 잔을 채워주고 있다. 키미코는 맥주를 마시며 곱창을 먹는다. 아케미는 상추를 들고 정성스레 쌈을 싸고 있다. 다카시는 어느새 맥주 대신 갈색 병에 든 보리소주를 시켰다. 누가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화제가 바뀐다. 마사오가 지난달에 손자가 생겼다고 말한다. 둘째의 자식이 첫째를 더 닮아 이상하다고. 유미코가 그 애가 얼마나 잘 먹는지 모른다며 웃는다. 키미코가 그럼 고스케도 잘 먹었느냐고 물어보자 마사오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닮았네. 고스케 녀석은 먹성이 좋았지. 뭐든 아주 잘 먹었어요. 풋콩을 한 소쿠리 까먹은 적도 있으니까요.
마사오가 말을 하다 멈춘다. 유미코가 얼른 잔을 채워주고, 마사오는 받아 마신다.
나루미는 올해 대학에 들어갔나?
키미코가 묻는다.
예. 시립대학에 들어갔어요.
그럼 마셔도 되겠네?
다카시가 말없이 나루미의 잔에 맥주를 따른다. 맞은편에 앉은 아케미가 나루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맥주 같은 건 친구들과 이미 여러 번 마셨지만 아케미의 앞에서 마시는 건 처음이다. 첫 모금이 쓰고 차갑다. 눈이 시큰하다.
밤이 깊어 집에 도착한다. 아케미는 현관에서 코트를 벗다 말고 마오의 방문을 연다. 불이 꺼져 있다.
씻고 자. 엄마 먼저 씻는다.
아케미가 욕실로 들어가고, 나루미는 식탁에 앉아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낸다. 맥주 두 잔으로 데워진 몸을 보리차로 식힌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냄새가 들어온다.
다녀왔습니다.
바다 냄새인데 바다 냄새가 아니다. 바닷물에 잠긴 하수구의 냄새. 마오가 들어온다. 학교 체육복을 입고, 등에는 빵빵한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마른 회색 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장화가 든 비닐봉지를 들었다. 신고 온 스니커즈도 온통 흙투성이고 볕에 그을린 두 볼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엄마는?
목소리가 이상하리만치 밝고, 눈은 말갛다.
잘 다녀왔어?
아케미가 욕실에서 수건을 두르고 나온다. 그녀가 안방 화장대 앞으로 가서 앉자 마오가 그 뒤를 따라 들어가 떠들기 시작한다. 문 너머의 말들은 조각조각이지만, 상기된 목소리가 커서 어떤 이야기는 식탁까지 건너온다. 쓰나미가 지나간 집의 마루 밑에서 앨범이 통째로 나왔다. 흙은 무겁다. 잘 씻기지 않는다. 같은 조 아저씨들이 휴게소에서 우동을 사줬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는데 결국 터졌다.
가만있어 봐.
아케미가 약상자를 가지고 나와 마오를 식탁에 앉히고 마오의 손가락에서 일회용 반창고를 떼어낸다. 마오의 오른손 검지, 손바닥과 만나는 밑동에 잡힌 물집의 허옇게 불은 껍질이 반쯤 벗겨진 채 밀려 있고, 그 아래로 속살이 보인다.
마오는 아케미에게 손을 맡긴 채 계속 떠든다. 할머니 한 분이 고맙다고 손을 잡고 울었다. 모두가 열심이었다. 하나가 된 기분. 아케미의 손이 잠깐 멈춘다. 그리고 다시 움직인다. 연고를 바르고, 거즈를 대고, 붕대를 감은 손 위에 다시 한번 붕대를 더 감는다.
엄마, 이제 됐어.
마오가 배낭을 풀려 하자 아케미가 빼앗는다. 진흙이 묻어 굳은 양말과 목장갑, 그리고 붉은 동그라미 옆에 간바레 닛폰이라 인쇄된 수건. 수건의 뒤편에는 유성 매직으로 쓴 작은 손 글씨들이 적혀 있다.
이게 뭐야?
삽질 천재 마오 짱. 휴게소 우동 또 사줄게. 힘내라 일본, 힘내라 마오 짱. 우리는 하나. 그 아래 적혀 있는 이름들을 나루미는 처음 본다.
좋은 사람들이야.
마오가 흙이 묻은 수건을 세탁기에 넣지 않고 방에 가져다 두고는 욕실로 들어간다. 물소리가 오래 이어진다. 현관에는 아직 냄새가 남아 있다. 나루미는 장화가 든 봉지를 베란다에 내놓으려고 집어 들었다가, 그대로 내려놓는다. 봉지 바닥에 회색 가루가 곱게 가라앉아 있다.
일본인이라는 국민성
트위터라는 것이 참 무서운 것이더군요. 오래전부터 써오던 제 일기들을 수많은 사람이 여기저기 퍼 나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저희 역시 트위터 계정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확실히 해두려 합니다. ‘니혼진무라에서’(@nihonjin_mura_1970)라고 되어 있는 트위터 계정은 저희의 계정이 맞습니다. 3주쯤 전 계정을 개설하고 사진 하나를 올렸을 뿐인데, 스무 통이 넘는 직접 메일을 받았습니다. 개중에는 비난 섞인 목소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진짜 쓰바메호를 하이재킹한 사람들이 맞느냐’는 질문들이었습니다. 마린스와 후지모토의 팬들로부터 받은 응원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저도 후지모토 상의 팬입니다. 먼 곳에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보내주신 ‘찰스 롯데’(@charles_lotte)님, ‘올해도 롯데가 우승할 수 있을까요? 연속 우승이라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보내주신 ‘치바는 나의 신앙’(@chiba_believer)님께는 직접 감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트위터 계정 개설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면서는 조금 다른 양상이 펼쳐졌습니다. 온갖 욕설이 날아오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협박을 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저희를 단순히 납치범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입니다. 트위터에선 오늘도 공개적으로 저희에게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늘은 조금 돌아가는 길을 택하려 합니다.
어떤 책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읽었습니다. 세로토닌 트랜스포터를 적게 만들어내는 이른바 S형 유전자의 비율이 세계 29개국 중 일본이 가장 높다는 조사 결과였습니다.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이 세로토닌의 양은 유전적으로 결정된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세로토닌을 재흡수하게 하는 단백질인 ‘세로토닌 트랜스포터’의 양에 따라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세로토닌의 총량이 결정되지요. 세로토닌 트랜스포터를 많이 만들어내는 L형 유전자와 상대적으로 적게 만들어내는 S형 유전자의 조합, 즉 LL형, SL형, SS형 이렇게 세 가지가 세로토닌의 양을 결정하는 유전형질입니다. 이 유전형질의 비율을 조사해 봤더니 S형으로 발현되는 형질이 전체 인구의 80퍼센트를 넘는 나라는 일본뿐이었다고 합니다. 유럽계 미국인의 경우 43퍼센트에 불과했다고 하고요. 이 수치를 근거로 저자는 일본인이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회피하려는 기질, 주변 분위기에 맞춰 행동하려는 눈치 빠른 기질이 유독 강하다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잠시 책을 내려놓았습니다.
물론 이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한 주장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유전자 하나로 민족의 기질을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지나친 단순화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그 책의 논리가 맞든 틀리든, 이 가설이 묘사한 일본인의 집단주의적 모습은 제가 1970년 이전까지 살아온 사회와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낯선 것이 나타나면 불안해합니다. 불안해지면 다수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먼저 살핍니다. 다수의 반응이 확인되면 그제야 움직입니다. 그리고 다수의 반응과 다른 방향을 택한 사람은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잘려 나갑니다. 노골적인 폭력이 아닙니다.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습니다. 그저 서서히, 공기 속에 냄새가 퍼지듯, 그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치부합니다. 저는 그것이 두려웠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에 분노했습니다.
쓰바메호를 납치한 것이 옳은 일이었다고 말할 생각은 전에도, 또 지금도 없습니다. 그 비행기에 타고 있던 분들이 느꼈을 공포를, 저는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그 일을 결심했을 때 마음속에 있었던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다수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잘려 나가는 것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 분노를 조용히 삼키도록 길들여진 사회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결기.
정말 S형 유전자가 일본 사회의 꼬리 자르기 기질을 강화한 원인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두 세기 반의 에도시대가 그런 기질을 골라내고 또 골라내어 지금의 일본인을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외적의 위협도 없고, 막부의 통제 아래 모든 것이 안정된 그 긴 세월 동안, 정을 맞는 모난 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경험이 세대를 거듭하며 단단해졌는지도 모릅니다.
저희가 던진 돌이 연못에 파문을 일으켰는지도 사실 모르겠습니다. 파문은 일었겠지만 연못은 결국 다시 잠잠해졌습니다. 그것이 연못의 본성이니까요. 그래도 저희는 돌을 던졌습니다. 그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희 말고도 돌을 던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교토대학에 가면 서부 강당이라는 오래된 와식 단층 건물이 있습니다. 그 건물의 지붕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세 개의 붉은 별이 새겨져 있지요.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처음 대학 당국이 그 별에 대해 물었을 때, 별을 그린 학생들은 단순한 디자인 요소로 선택했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훗날 바다 건너의 동지 오카모토 고조1)가 이스라엘의 법정에서 이렇게 말하며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텔아비브로 향했던 우리 세 명은 죽어서 오리온의 세 별이 되자고 생각했다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그 오리온의 별들이 누구인지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이 알려지고 난 뒤에야 강당에 별을 그린 학생들은 당당하게 선언했다지요. 그것들은 오리온의 세 별이라고. 텔아비브를 향한 세 명의 전사들을 기리는 상징이라고. 저는 한참 뒤에야 그 이야기를 평양에서 전해 들었습니다. 언젠가 그 별을 제 눈으로 보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쓰바메호를 납치한 것은 1970년 3월의 일입니다. 그해 6월이면 안보 조약2)이 자동 연장될 것이었고, 그것을 막겠다며 수십만이 거리로 나올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거리를 믿지 않았습니다. 1년 전 대학의 강당들이 함락되고 동지들이 수백 명씩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이 나라에서 구호로 이룰 수 있는 것의 한계를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길은 커 보였지만, 그것이 마지막 불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아니, 알았다고 믿었습니다. 그 불이 완전히 사그라들기 전에 실질적인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결의했습니다. 구호가 아니라 행동으로, 선언이 아니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우리가 북조선을 선택한 것은 북조선의 체제를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해두고 싶습니다. 우리는 다만, 미국과 미국을 둘러싼 자본 제국주의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국가, 일본 정부가 가장 적대시하는 국가를 골랐을 뿐입니다.
그 의지는 여기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혁명의 씨앗을 심으려 했습니다. 동지를 늘리려 했습니다. 프라하의 거리에서, 마드리드의 광장에서, 비엔나의 골목에서, 우리와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것이 지금 일본 사회에서 납치라고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편이 무거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묻고 싶습니다. 납치란 무엇입니까. 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주권을 강탈하는 것은 납치가 아닙니까. 수십 년에 걸쳐 한반도의 사람들을 일본인으로 만들려 했던 그 역사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합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일본이라는 국가는 납치 국가입니다. 국가가 저지른 폭력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서, 그 국가에 맞서려 한 사람들의 행위에만 이름을 붙이는 것이 공정한 일일까요?
지붕 위의 세 별은 아직 그곳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비바람에 페인트의 색은 이미 바랬지만, 그래도 아직 거기 있다고. 우리도 아직 여기 있습니다. 평양 근교의 이 작은 마을에서, 대동강을 바라보며, 아직 여기 있습니다. 오카모토 고조 역시 레바논의 베이루트 교외에서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 동지들의 보살핌을 받아가며 빛나고 있습니다. 돌을 던진 사람들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그 어떤 사회보다 일본을 사랑하며
2011년 5월 11일
니혼진무라에서 요시토모 겐페이 근언
1) 오카모토 고조(岡本公三, 1947~2026). 일본 극좌 무장조직 적군파 출신의 테러리스트로 25세 때인 1972년 5월 30일 오쿠다이라 쓰요시, 야스다 야스유키와 함께 이스라엘 텔아비브 로드 공항에서 함께 총격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민간인 26명이 숨지고 80여 명이 다쳤으며, 나머지 실행범 2명은 현장에서 사망했고, 오카모토만 생존해 체포되었다.
2) 미일안전보장조약(안포). 미군의 일본 주둔을 인정하는 미일 군사동맹 조약. 1960년 개정 당시 일본을 미국의 전쟁에 끌어들인다는 반발로 사상 최대 규모의 반대 투쟁(60년 안보투쟁)이 일어났다. 개정 조약은 10년의 고정 기한을 두었고, 그 만료 시점인 1970년 6월을 앞두고 신좌익과 학생운동은 ‘70년 안보’를 재대결의 목표로 삼았으나 조약은 자동 연장됐다.
추천 콘텐츠
문장웹진 콘텐츠
아직 여기 있습니까(1회)아직 여기 있습니까 박세회 신들 중 하나가 대를 이어 집안을 허무니, 랍다코스로부터 꼬인 매듭은 풀릴 길이 없구나. - 소포클레스, 「안티고네」 中 2011년 4월 5일 나루미는 침대에서 일어나 잠옷 차림에 카디건만 걸치고 현관문을 나선다. 볕이 잘 드는 곳에선 벌써 성마른 벚꽃이 핀 계절, 이른 아침의 맨션엔 한기가 돈다. 실외용 슬리퍼를 신고 손을 비비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우편물 함을 열어 가득 찬 신문 뭉치들을 집어 든다. 그녀의 엄마 아케미는 주요 일간지 네 개와 간사이 지방지 하나를 구독한다. 그것들의 물리적인 양은 대단하다. 언젠가 한번은 하루에 오는 신문의 무게를 조리용 저울에 달아보았는데 1킬로그램이 넘었다. 다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아사히 신문 밖으로 삐죽이 나와 있는 전단지를 뽑아 든다. 역 앞 한큐 오아시스에서 참치 중뱃살을 할인 중이다. 신문 뭉치들을 카디건 앞섶에 모으고 팔짱을 낀다. 문이 열리자 한 남자가 내린다. 그녀는 남자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남자는 그녀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인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그 남자와는 이런 식으로 종종 마주치곤 하지만 대화를 나눠본 적은 거의 없다. 무역회사에 다닌다는 얘기는 아케미에게 들었고, 이름은 우편함에서 봤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엘리베이터는 8층에 다다른다. 그녀가 신문을 가져오는 이 모든 과정은 기차가 역에 서고 역을 떠나듯 자연스럽다. 현관에 들어선 그녀는 마오의 방이 있는 복도를 지나 몸을 떨며 뛰어간다. 맨발이 닿은 마룻바닥이 차다. 식탁 옆에 서서 잠시 거실을 본다. 흔하디흔한 방 세 개짜리 밭 전자 형태의 맨션인 나루미네 집의 거실은 대단하다. 누구라도 그 거실에 들어선다면 그곳이 특별한 공간이라는 걸 깨달을 것이다. 그곳엔 시간이 쌓여 있다. 한 달 치씩 노끈으로 단단하게 묶고 연월의 표식을 붙인 신문의 더미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하루 1킬로그램이 넘는 일간지 다섯 종이 한 달 치씩 묶이고, 반년 치가 넘는 묶음들이 하나의 더미를 이루고, 그렇게 모인 더미들이 지우네가 사라진 15년 동안 숲처럼 쌓였다. 더미의 높이는 대체로 비슷하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있는 해, 북조선이 유독 미사일을 많이 쏘아 올린 해에는 조금 더 높다. 그런 의미를 생각해 보면 동시대 미술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제목은 ‘사건의 무게’. 그것들은 하나하나가 나루미네 맨션의 바닥에 고목처럼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녀는 복도까지 침범한 더미들을 피해 부엌 식탁에 앉는다. 식탁 옆 바닥에는 간밤에 아케미가 묶어 표식을 붙인 지난달 치의 묶음이 아직 어느 더미에도 오르지 못한 채 놓여 있다. 다른 달의 묶음들보다 눈에 띄게 두껍다. 나루미는 빈 자리에 오늘 치 신문을 내려놓는다. 1면에는 어제보다 조금 늘어난 숫자와 그것과 비슷하게 조금 줄어든 숫자가 실려 있다. 연예면을 펼친다. 아리가또. 이미 부엌에 있던 아케미가 그녀 쪽을 돌아보지 않고 말한다. 그녀는 소분된
- 박세회
- 2026-08-31
문장웹진 콘텐츠
아직 여기 있습니까세계혁명을 꿈꾸던 청년들이 벌인 민항기 납치 사건. 무사히 지나간 줄 알았던 그 사건의 파동이 사십 년을 돌아, 한 엄마와 두 딸에게 저마다 다른 증오를 가르친다.
- 박세회
- 2026-08-31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