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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퍼센트 소년(2회)

  • 작성일 2026-09-30

백퍼센트 소년


신다다



 엄마 아빠는 애를 보느라 피곤해했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대출이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 테다. 검색해보니 황금캐피탈에서는 만 17세 이상, 만 20세 미만이면 보호자 동의하에 대출을 받을 수 있단다. 정확히는 보호자가 자식의 유전자 레벨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게 해주는 구조였다. 부모보다 자식의 유전자 레벨이 높게 나온 상황을 노린 상품인 듯싶었다. 유전자 레벨이 높을수록 이자를 적게 내니까. 생일이 이미 지나서 만 17세인 게 얼마나 다행이람. 

 엄마가 일찍 퇴근한 날이었다. 오랜만에 다 같이 앉아서 저녁 식사를 했다. 오늘 메뉴는 크림파스타였다. 엄마 아빠는 살갑게 구는 건 못한다. 식탁에 회나 스테이크나 김밥같이 비싸거나 품이 꽤 드는 요리가 올라오면 잘해주고 싶은 거구나, 하면 된다. 

 달라진 건 식탁에 아기 의자가 생겼다는 점이다. 엄마는 파스타를 예쁜 그릇에 담았고, 아빠는 이유식을 애 입에 넣어주었다. 원래 밥 먹이는 게 제일 힘들다던데, 애는 꿀떡꿀떡 잘도 받아먹었다.

 “네가 백 퍼센트라서 얼마나 다행이냐?”

 아빠가 애 입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면서 말했다. 

 “아니, 돈을 떠나서도 뿌듯하니까.” 

 “그래. 그리고 백 퍼센트면 다자녀 지원 같은 거 안 받아도 되잖아. 황금캐피탈 대출이 이자도 엄청 낮고, 빌릴 수 있는 한도도 높을걸.”

 엄마가 거들었다.

 “이제 우리 네 식구 화목하게 살면 돼.”

 네 식구라니. 어색했다. 애가 갑자기 이유식을 뱉었다. 아빠는 손에 묻은 걸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저거 애가 뱉은 거 아냐? 좀 더러웠다. 

 나는 갑자기 생긴 동생에게 여전히 낯을 가렸다. 계산해보면 애가 생긴 건 내가 중3 때다. 가뜩이나 한창 집에 돈이 없던 상황이었다. 그때도 엄마 아빠가 싸우는 소리를 방에서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진작에, 묶으라고, 했잖아!” 

 그땐 별생각 없이 넘어갔는데, 정관 수술을 했어야 한다고 탓하는 말이었나 보다. 화를 내면서 아빠 등을 퍽퍽 치는 엄마의 모습을 생각했다. 상상해보니 시트콤 같다. 무계획하게 애를 낳았지만 어찌어찌 기쁘게 살아가는 가족. 

 그러나 삶은 시트콤이 아니다. 뭐, 그런 집도 있겠지만 우리 집은 아니다. 파스타는 별로 맛이 없었다. 적당히 먹고 방에 들어왔다.


 인터뷰를 하게 된 사실을 애들한테 털어놓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대출 문제가 껴 있으니 함부로 말하고 다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황금캐피탈 사이트에 올라오면 애들이 알게 되는 걸까? 십만 명이 검사를 했다는 게 어느 정도 규모인지 계산해보려고 했다. 한국인이 오천만이면, 십만은 오백 명 중에 한 명이다. 꽤 유명한 회사임에는 틀림없었다. 다만 여전히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다. 

 인터뷰를 수락은 했지만 덜컥 겁이 났다. 이상한 곳일 수도 있으니까. 검색창에 황금캐피탈을 입력했다. 몇몇 블로그에 [황금캐피탈 유전자 검사 후기]가 올라와 있었다. 기업에서 보내준 봉투에 몇 가지 개인정보를 적고 서명과 함께 머리카락을 보낸다. 기간이 얼마 지나면 우편으로 결과를 알려주고, 온라인 사이트에서 더 구체적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저는 80퍼센트가 나왔어요! 나쁘지 않은 레벨이네요. 그런데 저는 왜 이런지…^^;]

 결과가 낮게 나왔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위 20퍼센트 안에 든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유전자 레벨 50퍼센트 나온 후기]라는 제목이 있어 클릭해보았다.

 [나는 항상 평범했음. 성적도 중간이고, 체력도 중간, 입맛이나 취향도 특별하지가 않음. 모든 검사 요소가 중간인 건 아닌데, 극단적으로 치우친 게 없고 대체로 중간 정도임. 어쩌면 유전자에 따르면 이런 평범함은 다 예상된 건지도.]

 이 글 작성자의 말대로라면 백 퍼센트인 나는 모든 게 특별해야 했다. 하지만 말하는 걸로 봐서는 이 사람과 내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인터뷰 날은 금세 다가왔다. 살면서 인터뷰라는 걸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괜히 긴장했다. 회사는 서울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었다. 경기도인 우리 집과 꽤나 거리가 있었다. 전화를 준 직원은 인터뷰를 회사 사무실에서 진행할 수도 있지만, 거리가 머니까 자기들이 우리 동네로 오겠다고 말했다. 

 토요일 오후, 직원이 말한 집 근처 카페로 갔다. 엄마는 내 옷을 골라줬다. 원래 입고 다니던 편한 옷들은 안중에도 없고, 엄마가 입는 셔츠를 자꾸만 이것저것 대봤다. 그리고 자기도 원피스를 입을지 한참 고민했다. 

 “블라우스가 예쁘긴 한데, 아무래도 셔츠가 단정해 보이겠지?”

 “아, 엄마. 어차피 얼굴 위주로 나올 텐데. 그리고 엄마는 사진도 안 찍는데 옷이 뭐가 중요해?”

 “그래도 잘 보여야지. 엄청 큰 회사더만. 상장도 된다던데?”

 “상장도 된대?”

 아빠는 주식 얘기에 관심을 보였다. 아마 회사가 커져서 주식을 판매한다는 뜻인 것 같다. 자기들이 인터뷰하는 것도 아니면서 엄마 아빠가 더 분주했다. 아빠는 동생을 안고 엄마와 나를 배웅했다. 

 “같이 가고 싶은데….”

 “다음에 같이 가면 되잖아.”

 아빠는 자기를 빼놓고 가서 시무룩했다.

 우리는 카페에 미리 가서 앉아 있었다. 나는 음료를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긴장이 되어 오줌이 마려워질 게 걱정되었다. 인터뷰 중간에 화장실 간다고 멈추긴 민망하니까. 곧 전화를 줬던 젊은 여자 직원과, 카메라를 든 아저씨 한 명이 카페로 들어왔다. 여자 직원은 서윤아 주임이라며 짧게 인사를 건넸다. 

 “다음번엔 집에서 하면 좋을 텐데. 그쵸?”

 “아, 우리 집이 지저분해서요.”

 “그래도 이렇게 화목한 가정을 보여주면 좋잖아요.”

 서 주임은 내 어색한 웃음을 뒤로하고, 바로 질문지를 주었다. 내 동의를 구한 뒤 녹음기를 켰다. 

 “어쩌다가 저희 유전자 검사에 참여하게 되셨나요?”

 이미 엄마 아빠랑 말을 맞춰둔 부분이었다. 

 “제가 내년에 수능을 보거든요. 대학교 학비가 적은 돈은 아니니까,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에 광고지를 보고, 한번 해보자고 말씀드렸죠.” 

 엄마 말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동참한 것처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집안을 위해서, 다만 너무 가난해 보이지는 않게. 너무 가난해 보이지 않는 건 뭘까. 적당히만 가난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취미, 학교생활, 친구 관계에 대해서 몇 가지를 더 물어봤다. 무난하게 대답했다. 반 애들이 마음에 안 들 때도 있고 학교생활이 피곤하다는 얘긴 당연히 안 했다. 친구들 좋아요. 선생님도 잘해주시고요. 공부는 그냥저냥 나쁘지 않게 해요. 영어 수학은 학원 다니고, 나머지는 독서실에서 공부하죠. 쉴 때는 재밌는 동영상이나 웹툰도 많이 보고요. 친구들하고 예쁜 카페 가고 노래방도 가요. 


 일주일쯤 지나서, 기사가 떴다고 연락이 왔다. 점심시간이었다. 링크에 접속해보니 황금캐피탈 사이트 메인 화면에 내 사진과 함께 기사가 떠 있었다. 

 [첫 유전자 레벨 100퍼센트 고등학생, ‘부모님께 학비 보태기 위해서… 저는 평범한 학생, 모두가 특별해’ 겸손함까지 갖춰]

 평범하단 것 외엔 제대로 맞는 게 하나도 없네. 조금 웃겼다. 클릭하니까 사진이 화면 가득 떴다. 사진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어색하게 웃는 모습이 바보같이 보였다. 내가 입꼬리를 내리면서 웃는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인터뷰 내용은 실제 대화와 거의 비슷했다. 표현만 좀 더 정제되어 있었다.

 엄마 아빠는 이미 기사를 읽고 단체 톡방에서 떠드는 중이었다.

 [우리 딸~ 멋있다!]

 [근데 사진이 실물보다 좀 별로다. 왜 저런 걸 골랐지?]

 [앞으론 좀 자연스럽게 웃어봐.]

 기사가 올라오고 엄마 계좌로 수고비가 들어왔다고 했다. 엄마는 휴대폰의 입금 알림을 캡처해서 보냈다. 생각보다 많은 돈이었다.

 [우리가 좀 고생을 했잖아. 이제 다 잘되려나 봐.]

 직원이 말했던 대로, 사이트 메인에 기사가 오르고 나서 몇몇 인터넷 신문에도 기사가 올라왔다. 아빠가 열심히 검색해서 링크를 세 개쯤 보여줬다. 사진은 사이트 사진 그대로였다.

 [유행하는 유전자 검사 해보니… 내가 상위 1퍼센트?]

 [우월한 유전자, 평범한 고등학생 소녀]

 기사 내용도 별것 없고, 사이트에 올라온 걸 짧게 편집한 정도였다. 평범한 고등학생 소녀. 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 맞다. 인터뷰를 할 때도 그렇게 얘기했다. 하지만 왠지 언짢았다. 나 스스로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거랑, 남들이 평범하다고 말하는 건 좀 다르구나. 나는 평범하다는 말이 약간은 깎아내리듯이 쓰이기도 한다는 걸 알았다. 


 십 년 전에 잠깐 맛집 소개 방송의 인터뷰를 한 게 큰 자랑이던 아빠는, 내 이름으로 기사 난 게 대단하다고 칭찬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하고 다녔다. 어찌나 말하고 다녔는지, 학교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위층 아줌마도 알은체를 했다. 

 “너 그 엄청 좋은 유전자 가졌다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줌마가 말을 걸 줄 알았으면 먼저 목례라도 할걸. 일 층까지 내려가는 동안 불편한 공기가 싫었다.

 내가 진짜로 남들보다 특별한 걸까? 백 퍼센트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기는 했지만, 스스로는 잘 모르겠다. 똑똑하고 인기도 많은 수빈이보다 내가 더 우월한 유전자를 가진 걸까?

 “너 요새 자주 멍때린다.” 

 쉬는 시간, 수빈이가 막대 사탕을 물고 내 옆의 빈 의자에 와서 앉으면서 말했다. 

 “그래?” 

 “아니, 남친이 자꾸 허세를 부리는 거야.”

 수빈이는 가끔 얄밉게 굴었다. 애인도 없는 나한테 어쩌라는 건지! 다짜고짜 자기 얘기를 막 털어놓고, 적당히 대꾸해주면 가버렸다.

 “그때 나 좋아했던 학원 애 있잖아. 걔도 그렇고, 남자애들은 이상하게 바보같이 군다니까?”

 참나. 헤어지든가. 쟤는 헤어질 것도 아니면서 자꾸 연애 경험도 없는 나한테 와서 조언을 구한다. 수빈이랑 친하기는 하지만,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사생활도 있는 것이다. 나는 동생 얘기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물론 열일곱 살이나 차이 나는 동생을 보육원에 맡겼다가 파양되어 다시 데려온 사실이 쪽팔리기도 했지만. 반면 수빈이는 모든 걸 말하는 타입이다.

 “그래? 웃긴 애네.” 

 “우림. 근데 너 오늘 기분 좋아 보인다? 맨날 공부하기 싫어서 죽고 싶다더니. 요새 좀 들떠 보여.”

 그런가? 그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았다. 역시 눈치 빠른 수빈이. 

 “야, 그건 그냥 하는 말이지. 그리고 오늘 스파게티 나와서 안 죽고 싶어.”

 “그래. 수요일이 좋다니까. 그럼 이따 끝나고 치킨집 가자. 학원가에 새로 생긴 데. 이벤트로 치즈스틱 준대.”

 오늘은 왠지 그다지 얄밉지가 않았다.

 급식실에서 수요일의 별미, 스파게티를 먹고 있을 때였다. 나는 밥 먹는 속도가 느려서 수빈이가 기다려준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한지성이 내 옆에 식판을 가지고 슥 앉았다.

 “나, 너 기사 봤다.”

 걔가 말을 거는 건 처음이라 좀 놀랐다. 나도 친구들 말고는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닌 데다, 걔랑 안 친해서 딱히 대화 나눈 기억이 없었다. 

 “그럼 나 먼저 매점 가 있을까? 친구랑 얘기하고 올래?”

 한지성이 말을 거는 걸 보고, 이미 밥을 다 먹은 수빈이가 내게 말했다. 빨리 매점에 가서 줄도 서야 하는데, 좀 귀찮았을 거다. 나는 그래, 하고 손 인사를 했다.

 “근데 지성아, 너는 같이 밥 먹는 친구들 없어?”

 “오늘은 너랑 먹으려고 따로 나왔어. 다 먹었을 줄 알았는데. 아직 먹고 있어서 다행이다.”

 어색한 사이인 애가 친한 척을 하니까 불편하고 낯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한지성이 딱히 싫은 건 아닌데도 그랬다.

 “근데 기사 사진 좀, 너 안 같이 나왔더라. 아니, 나두 궁금해서 검사 한번 받아보려고 했거든. 유튜버 콩콩이 그거 검사한 거 올렸던데. 봤어?”

 내가 모른다고 하니까, 한지성은 짧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여자의 머리카락은 화려한 분홍색이었다. 영상 속의 콩콩은 검사지를 꺼내 들었다. 91%였다.

 ‘제가 누누이 말씀드렸잖아요. 공부를 안 한 거지 못한 게 아니라고.’ 

 콩콩은 장난스럽게 유세를 부렸다. 부럽다는 댓글로 댓글 창이 가득 찼다.

 ‘콩콩 님은 예쁘기만 한 게 아니었네요.’ 

 ‘그럼 아프지도 않으세요?’

 ‘네. 전 살면서 입원한 적 한 번도 없어요.’ 

 백 퍼센트인 나도 입원한 적은 있는데. 어릴 때 굴을 잘못 먹고 장염에 걸려서 이 주쯤 입원한 이후로 굴을 못 먹는다. 입원이 유전자랑 상관있나? 

 ‘전 콩콩 님보다 어린데 벌써 허리가 아파요…. 너무 부러워요!’

 이 허리가 아프다는 댓글을 단 애는 유전자 레벨이 낮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짧은 영상이 금방 끝났다. 인기 유튜버가 검사 후기를 올릴 정도면 유전자 검사가 꽤나 유명해졌나 보다. 

 “신기하다. 네가 좋아하는 유튜버야?”

 어색한 티를 숨기려고 조금 과장스럽게 물었다.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아서 티가 날 것 같았다.

 “엉. 내 롤모델이거든. 이 사람은 학교에 다니는 대신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중요했대. 그래서 자퇴하고 음악 하고 유튜브도 하는데 멋있어. 집에서도 지원해주고… 반년 만에 벌써 구독자 십만이야.”

 “아하. 멋지다.”

 “근데 너는 돈 때문에 검사한 거야? 그거 뭐 대출해 준다던데.”

 한지성은 비밀스러운 얘기라는 듯이 귀에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아, 학비?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인터뷰에서는 좀 그런 식으로 말해야 되잖아. 완전 효녀 같지 않냐?”

 괜히 킥킥 웃으면서 거드름을 피웠다. 걔도 따라 웃었다.

 “무슨 유명인 보는 것 같다. 사이트 들어갔다가 네 사진 있어서 진짜 놀랐다니까.”

 한지성이랑 시답잖은 말로 떠들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우리는 매점도 같이 갔다. 수빈이는 먼저 반으로 돌아간 건지 매점에 없었다. 한지성이 아이스크림까지 사줬다. 제일 비싼 콘 아이스크림이었다. 이런 종류의 관심은 처음 받아본다. 그건 꽤나 괜찮은 기분이었다.


 약간 들뜬 채로 하교했다. 집에 오니까 애 우는 소리가 들렸다. 찢어지는 울음소리가 현실을 자각시켜줬다. 엄마는 퇴근 전이었고, 아빠는 소파에 애를 안고 누워서 졸고 있었다. 애는 현관문 소리에 놀랐는지 크게 울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빠는 놀란 듯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앉아서 애를 안고 살살 흔들었다.

 “아이고. 또 시작이네. 우림이 왔어?”

 아빠는 내가 온 걸 보고 고개를 돌렸다. 왠지 안도하는 눈치였다.

 “이유식 데우게 네가 하림이 좀 보고 있어.” 

 책가방을 방에 내려놓지도 못하고 애를 떠맡았다. 몇 번 안아봤지만 익숙해지지 않았다. 뜨끈하고 묵직했다. 내복 위로 살이 닿는데 나보다 몸이 뜨거운 것 같았다. 조그만 게 생각보다 무거웠다. 두 팔로 받치고 있었는데 불편했다. 하지만 자세를 바꾸려고 한 팔을 뺐다가 혹시 떨어뜨릴까 봐 겁났다. 

 “아빠! 나 안을 줄도 모르는데.”

 “안 안아줘도 돼. 보행기 거기 있는 거에 태우면 돼. 잠깐 왔다 갔다 해줘.”

 아빠는 부엌에서 소리를 질렀다. 하도 집에 물건이 많아서 보행기가 생긴지도 몰랐다. 우주선 같은 디자인이었다. 애를 한 팔로 끌어안고, 한 팔로 다리를 펴서 구멍에 넣으려고 애썼다. 애는 우느라 다리를 접었다 폈다 했다. 

 겨우 보행기에 앉혀놓고 거실 바닥에 앉아서 앞뒤로 끌어주었다. 애는 그제야 울음을 멈췄다. 그간 멀찍이서만 봤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애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습관인지 뭔가 말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고작 잠깐 안았다고 힘이 쫙 빠졌다.

 “아빠. 얘 이상한 냄새 나.”

 “아까 토해서 그런가? 잘 닦았는데.”

 아빠가 부엌에 선 채 뒤돌아서 말했다. 이상한 냄새가 토 냄새였다니. 내가 으, 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아도 애가 못 알아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기랑 대화하는 건 편한 일이다. 

 “야. 못난아.”

 시비를 걸면서도 보행기만 앞뒤로 움직이면 가만히 있었다. 

 “그만 울어라. 시끄럽거든.”

 애가 딸랑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막상 쥐여줬더니 손으로 퍽, 쳐버렸다. 지가 달라고 해서 줬더니. 아빠가 작은 그릇에 이유식을 담아서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안 뜨겁겠지?”

 아빠는 실리콘 수저에 이유식을 담아 후후 불면서 말했다. 

 “먹어보면 되잖아.”

 “애는 기준이 다르단 말이야.”

 으에.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이유식을 뱉었다. 턱으로 질질 흘렀다. 가만히 한숨을 쉬는 아빠 앞에서 벙긋 웃었다. 무릎을 꿇고 있던 아빠는 바닥에 털썩 앉았다. 

 “먹지 마. 먹지 마.”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빠는 애한테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방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일으키자 아빠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모른 척하고 대충 던져둔 가방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백 퍼센트면 다자녀 지원 같은 거 안 받아도 돼.’

 문득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얘는 결국 다자녀 지원 때문에 여기에 왔다. 아마도. 엄마는 파양당한 것이 속상했다고 말하지만, 분명 지원금 목적도 컸을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물어봤자 부모한테 실망하기만 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결국 이 애는 우리 집에 돈이 없었던 탓에 여기 있는 거다. 얜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이제 내 명의로 대출도 받을 수 있게 되어버렸다. 그럼 얘는 여기에 왜 있는 걸까? 

 생각하니 머리만 아파서, 그냥 침대에 털썩 누웠다. 유튜브나 봐야겠다. 사이트에는 유전자 검사 결과를 인증하는 영상이 연달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지성은 관련된 영상이 올라오면 내게 링크를 보내주었다. 몇 번 보고 나니까 알고리즘 때문에 계속 그런 영상이 떴다. 조회수가 높은 영상은 대개 유전자 레벨이 90퍼센트를 넘거나, 아예 10퍼센트 이하였다. 부럽다는 댓글, 혹은 힘내라는 댓글도 있었다.

 ‘근데 90퍼센트 이상치고는 평범하네요.’

 한 십 대 유튜버의 영상에 달린 댓글이었다. 뭐가 평범하다는 건지 궁금해서 그 사람의 다른 영상 목록도 훑어봤다. 일상 브이로그, 옷 쇼핑 후기, 먹방 등등. 콘텐츠도 특별할 건 없었다. 우리 반 친구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10퍼센트인데 나보다 훨씬 재밌게 사는 듯’

 한 여행 유튜버의 유전자 레벨 인증 영상에 달린 댓글이었다. 그런 식으로, 누군가에게는 유전자 레벨을 예상했거나 어울린다고, 누군가에게는 의외의 결과라고 댓글이 달렸다. 내 유전자 레벨을 주변인들이 예상했을까? 내가 유튜버였다면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댓글이 달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검색창에 가끔 황금캐피탈을 검색했다. 매일 새로운 기사가 나왔다. 투자, 주식과 같은 어려운 기사도 많았다. 유전자 레벨 검사는 인기가 많아져 앞으로는 한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회사가 점점 이슈가 된다는 것은 백 퍼센트인 나도 함께 이슈가 된다는 뜻이었다. 

 케이블 방송 피디라는 사람에게서도 문자가 오고, 한 개인 방송 유튜버에게서는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았다. 연락처는 어떻게 알았는지 의문이었다. 한 번씩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휴대폰이 울려서 난처해진 이후로, 무음 모드로 바꿔두었다.

 그렇게 붕 떠 있는 기분으로 며칠을 보냈다. 나에 관한 기사가 많지는 않았지만, 한지성은 자기가 더 신나서 자꾸 찾아와 친한 체를 했다. 걔가 나를 칭찬하고 간식도 가끔 주는 게 썩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수빈이는 한지성을 약간 마음에 안 들어 했다.

 “우리 우림이 뺏어 가지 마.”

 한지성이 뒷문에서 나를 찾을 때였다. 수빈이는 팔짱을 끼면서 장난처럼 말했다. 한지성은 멋쩍게 웃었다. 순간 셋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지성이를 따라가지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수빈이는 홱 돌아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한지성이 참새처럼 쫑알거리며 떠드는데도 내내 수빈이의 뾰로통한 표정이 생각나서 집중이 안 됐다. 자리로 돌아오니까 수빈이가 내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쟤 친구 없어서 너한테 친한 척하는 거야.”

 수빈이의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과거를 세탁하려고 한 건 아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중학교 때의 일을 숨겼으니까. 수빈이가 내가 중학교 때 친구가 없었다는 걸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안 들키려면 한지성이랑 거리를 둬야 했는지도 모른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


 황금캐피탈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인터뷰를 했던 직원이었다. 자기를 서 주임이라고 부르면 된다고 했다. 

 “이번에는 회사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등교할 때 날이 흐리더라니. 결국 3교시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교실은 습하고 눅눅했다. 슬리퍼가 바닥에 미끄러져서 끽, 끽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미끄러질까 봐 발에 힘줘서 걷는 것도, 소리를 덜 내려 애쓰는 것도 싫어서 쉬는 시간에도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누구는 그새 뒤에서 양말과 운동화를 벗어서 말리고 있었다. 꿉꿉한 냄새가 났다. 비가 오는 날은 목소리도 크게 들린다. 애들이 가장 많이 자는 지루한 수업 시간 직후다. 말이 많은 애들도 조용히만 소곤거린다. 교실이 어두침침했다. 

 별걸 안 했는데도 몸이 축 처지는 날이다. 오늘은 수업도 열심히 듣지 않았다. 창문에 톡 톡 부딪히는 빗줄기를 보면서, 수빈이와 지성이가 서로 안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다 같이 친하게 지내면 되는 거 아닌가? 둘은 성격이 좀 달라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치면 나도 걔네랑 성격이 다르다. 

 날이 덥지도 않은데 습하다는 이유만으로 에어컨을 틀어놓고 소파에 누워서 영화나 한 편 보고 싶었다. 엄마는 오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에어컨을 튼다고 잔소리를 할 것이다. 집에 돌아가면 비가 그치더라도 꼭 에어컨을 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 주임은 후문 쪽 편의점이 있는 골목으로 오라고 말했다. 커다랗고 까만 승용차가 서 있었다. 엄마는 이미 차에 타고 있었다. 아빠도 같이 가고 싶어 했지만, 애를 돌봐야 해서 한 명은 남아야 했다. 서 주임은 조수석에 타고 있었고, 운전석에는 셔츠를 입은 기사가 있었다. 

 “서 주임님, 이번에도 인터뷰인가요?” 

 “가서 보시면 알게 되실 거예요.”

 서 주임은 모든 말을 과하게 높여서 말했다. 국어 선생님은 커피가 나오시는 게 얼마나 이상한 말인지 성을 내곤 했다. 그걸 알고 나니까 저런 높임말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한껏 긴장한 엄마는 자꾸 뭘 물어봤다. 조수석에 앉은 서 주임은 웃는 낯으로 비슷한 대답만 반복했다. 


 회사 건물 우측 상단에는 황금캐피탈, 이라는 글씨와 함께 금색 독수리 형태의 로고가 붙어 있었다. 서 주임은 우리를 3층 사무실로 데려갔다. 전부 흰색과 회색으로 채워진 곳이었다. 5월인데도 에어컨을 틀기 시작했는지 공기가 시원하다 못해 차가웠다. 서 주임은 우리를 안내해주고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갔다. 이번에는 어두운 양복을 입은 남자 혼자였다. 엄마 아빠보다는 조금 젊어 보였다. 높은 사람 티를 팍팍 냈다. 

 앉아 있던 남자는 우리가 들어오자 일어서면서 재킷 단추를 잠갔다. 그리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우리에게 앉으시라며 자연스럽게 손짓했다. 모든 행동이 매끄럽고 능숙했다.

 “안녕하세요. 김현우 실장입니다.” 

 미소가 근사한 사람이었다. 스킨 향 같은 것이 났다. 인공적인 냄새라고 생각했다. 자연의 향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향이었다. 포마드를 발라 넘긴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이 고정되어 있을 것 같았다. 

 엄마는 먼저 악수를 하자며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어젯밤 기선 제압을 해야 한다고 떠들더니. 엄마는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잇몸까지 드러낸 웃음이 낯간지러웠다. 실장은 자연스럽게 악수를 받았다.

 “아유, 회사가 꽤 머네요.”

 엄마가 너스레를 떨었다. 실장은 미소로 화답했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하기는 했지. 고작 차를 타고 한 시간쯤 달린 거지만. 잔뜩 긴장한 터라 금방 몸이 지쳤다.

 “본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른 신문이나 방송사에서 아마 연락받으셨을 텐데, 인터뷰 수락하거나 이미 진행하셨나요?”

 “아니요. 저희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라.”

 엄마가 대신 답했다. 실장은 내 대답을 구한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맞아요, 어떻게 답해야 할지도 모르겠고요. 왠지 겁나서요.”

 “다행이네요. 개인적인 인터뷰는 진행하지 말고, 저희 황금 그룹의 얼굴이 되어주세요.”

 실장은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서 불을 껐다. 그리고 작은 리모컨을 몇 번 만졌다. 흰 벽 위로 슬라이드 화면이 떠올랐다. 크고 각진 글씨로 적혀 있었다.

 

 ‘백 퍼센트 소년’

 

 엄마는 중얼거리듯 작게 따라 읽었다. 백 퍼센트 소년. 실장 아저씨는 우리의 의아한 반응을 구경하듯이 씩 웃으며 잠깐 서 있었다. 침묵이 무안해질 즈음이 되어서야 입을 뗐다. 

 “백 퍼센트 소년입니다.”

 “소년이요?”

 “네, 저희는 검사 대상자를 소년, 청년, 중년, 노년으로 분류합니다. 만 18세까지 소년으로 분류됩니다. 장우림 님은 저희 분류 기준상 소년에 해당하고요.” 

 소년. 나는 소년이구나. 그것도 백 퍼센트인. 

 “근데요. 대체 백 퍼센트의 기준이 뭔데요?” 

 엄마가 묻자 실장 아저씨는 책상에 놓여 있던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그제야 종이 뭉치가 거기 있었던 걸 깨달았다.

 “사이트에 들어가면 내역을 확인하실 수 있는데요.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으실 듯해서 가져왔습니다.” 

 아저씨는 엄마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무시하고, 내게 서류철을 넘겼다. 내 옆에 앉은 엄마가 목을 쭉 빼고 문서를 구경했다. 나는 천천히 종이를 넘겼다. 사이트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했는데, 영어로 유전자의 종류가 적힌 상세한 도표가 추가되어 있었다.

 “이미 해외에서는 사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질병에 대비하고 맞춤 의약 컨설팅을 하는 사업이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유전자 검사 자체가 그다지 상용화되지 않았죠. 아시겠지만, 저희는 본래 금융 회사입니다. 그러나 이제! 혁신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장 아저씨는 이제, 하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개개인에 맞추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아가 의료와 교육 분야까지 사업을 확장할 예정입니다. 저희 황금캐피탈은 황금 그룹의 계열사입니다. 현재는 캐피탈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의료 기업과도 협업 예정입니다.”

 실장 아저씨는 비밀스러운 듯 속삭였다. 

 “오성 기업 아시죠.”

 “오성 기업!” 

 엄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성 병원하고도 협업하기로 했거든요. 워낙 이미 큰 병원이지만, 환자를 다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질병의 발병 가능성을 예측하면 훨씬 효율적으로 진료와 치료를 진행할 수 있죠.”

 나도 잘 알 정도의, 우리나라 유명 대기업이다. 자동차, 건설, 식품 등등 온갖 분야의 중심에 오성 기업이 있었다. 오성 병원도 제일 큰 병원 중 하나였다.

 “맨날 건강 검진하러 미어터지는 대학 병원에서 세 시간씩 기다리는 상상을 해보세요. 익숙하시죠?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는 맞춤 검진이 가능합니다. 지금은 암 유전자 검사 하나 하는 데 수백만 원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누구든지 의료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실장은 내 앞에 있는 서류철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리고 몇 페이지를 넘기더니, ‘탈모’ 파트를 가리켰다. 

 “이를테면, 탈모의 유전율은 60퍼센트입니다. 장우림 님은 탈모 관련 유전자 10개 중 0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고서에 적힌 표에는 ‘남성 호르몬 조절 유전자’, ‘모낭 세포 파괴 유전자’ 등, 여러 유전자 이름이 한글과 영어로 적혀 있었다. 내 차트에는 모든 유전자에서 ‘안심’이라고 되어 있었다.

 “어머님, 집안에 탈모 가족력 있으신가요?”

 “아뇨, 저희 집은 나이 드셔도 다 머리숱이 많으세요. 흰머리도 잘 없고. 우림 아빠네 집안도 마찬가지예요. 시아버지도 안 벗겨지셨고.” 

 엄마가 불필요한 정보까지 떠들어서 민망했다. 괜히 실장 아저씨의 반응을 살폈다. 아저씨는 변함없이 매끈하게 웃고 있었다. 

 “역시 그러시죠? 특히 유전자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부분이라, 장우림 님은 높은 확률로 탈모에서 안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게 백 퍼센트 장담해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고 사셔도 되겠죠.” 

 엄마는 실장 아저씨의 말에 완전히 빠져들고 있었다.

 “저는 유전자 검사에서 비타민D가 낮게 나왔어요. 기본적으로 비타민D 합성 능력이 낮죠. 그래서 영양제를 챙겨 먹고 있답니다. 더 집중해야 할 부분을 알게 된 거죠.”

 실장 아저씨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자신의 신체 결점을 얘기했다. 가장 덜 비밀스럽다고 생각했을까. 비타민D 합성을 잘 못한다고 사람들이 우습게 보지는 않으니까. 큰 병에 걸릴 예정이라거나, 힘을 잘 못 쓰는 거라면 굳이 먼저 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문득 아저씨는 몇 퍼센트가 나왔는지 궁금했다. 

 “우림 학생, 저희랑 함께 가시죠.”

 함께 간다. 모호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뭘 함께 간다는 걸까. 돈을 함께 벌자? 미래를 함께하자? 

 “동의하시면 방송 섭외는 전부 저희가 진행합니다. 우림 학생이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자칫 자극적인 기사가 날 수 있어요. 아시지 않습니까. 요새 인터넷 기사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 말을 들으니 괜히 긴장되었다.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숨을 최대한 느리고 자연스럽게 쉬었다. 

 “이런 부분의 책임을 저희한테 맡기시면 됩니다.”

 “그럼 광고비는 어떻게 되나요?” 

 엄마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물었다. 김 실장 아저씨는 대답 대신 계약서를 내밀었다. 힐끗 봐서 정확히는 못 봤지만 무지 큰 금액이었다.

 “그럽시다.”

 엄마가 냉큼 대답했다.

 “우림아, 괜찮지? 응? 잘 생각해봐.”

 엄마는 내 어깨를 쿡쿡 찔렀다. 

 “부모님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동의하셔야 합니다.”

 실장 아저씨는 짐짓 단호하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눈길을 피해 책상만 보았다.

 “아유, 그럼요. 애가 원하지 않는 건 안 해요.” 

 엄마가 어색하게 웃는 얼굴로 덧붙였다. 


 실장 아저씨한테는 고민해보겠다고 말하고 나왔다. 내 딴에는 단호하게 대답하려고 한 거였다. 애들이 진지한 체하면 쉽게 웃어버리는 다른 어른들처럼, 비웃거나 귀엽게 보지 않았다. 실장 아저씨는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했고, 엄마는 조금 아쉬운 눈치였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택시 기사가 들을까 봐 우리는 말을 아꼈다. 기사는 운전을 거칠게 하는 타입이었다. 방지턱에서도 브레이크를 밟지 않아서 차가 덜컹거렸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몸도 같이 흔들렸다. 창밖을 마냥 바라보았다. 아스팔트 바닥에는 물이 고여 있었지만 비는 그친 듯했다. 차 창문에 김이 서렸다. 밖을 보려고 서려 있는 김을 손으로 지우려다가, 손이 축축해지는 게 싫어서 겉옷으로 요만큼만 지웠다. 

 ‘애가 원하지 않는 건 안 해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엄마 아빠는 필요할 때 잘 없었을 뿐, 싫은 걸 강요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니까. 비가 오는 날에 우산조차 가져다준 적이 없다. 초등학생 때는 부모님이 우산을 들고 마중 나오는 애들을 보면 부러웠다. 한번은 장맛비가 엄청 쏟아지는데, 아직 휴대폰도 없던 때라 울면서 걸어온 적이 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날은 엄마도 아빠도 비를 맞은 채 들어왔다. 그때의 나는 다른 부모들은 뉴스로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미리 우산을 챙겨주고, 그러지 못하면 차를 끌고 데리러 와서 학원까지 태워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내 부모는 본인들 우산조차 챙길 정신머리가 없는 사람이니까. 그냥 우리 가족 모두가 비를 맞는구나, 공평하구나, 하고 느꼈을 뿐이었다.

 ‘독립적으로 키워야지.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해.’

 교내 미술 대회를 위한 포스터를 그리느라 밤을 새웠을 때였다. 엄마는 열한 살인 내가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그런 말을 했다.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실 그건 핑계고, 그냥 귀찮았을 뿐이라는 것을. 좋은 점은 내가 포스터쯤은 혼자 색칠할 줄 알고, 비를 맞아도 괜찮은 애로 컸다는 것뿐이었다. 그때 누가 봐도 부모가 다 그려준 그림을 들고 온 애가 금상을 받았다. 물감 자국이 밑그림 옆으로 삐져나온 내 그림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 김 실장인가 하는 사람, 무슨 배우 같더라. 멋있던데.”

 엄마가 푼수같이 말했다. 

 “나는 그런 스타일 느끼해서 별로야.” 

 김 실장 아저씨가 몇 퍼센트일지는 궁금해했으면서, 정작 엄마 아빠는 어떤지 물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명의로만 검사를 했을 리 없었다. 

 “엄마 아빠도 해봤지?”

 “응?”

 엄마는 모르는 척 되물었다. 엄마는 알면서 모른 척하기의 선수다. 곤란할 때면 꼭 이해하지 못한 척 시간을 번다. 난 그런 데는 소질이 없다. 하지만 엄마의 ‘알면서 모른 척하기’를 알아차리는 데는 선수가 됐다.

 “검사 말이야.”

 유전자라는 말은 꺼내지 않고 돌려 말했다. 기사 아저씨가 우리 얘기를 듣고 있는지, 운전에만 집중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럼. 했지.”

 “엄마 아빠는 몇 퍼센트야?”

 엄마는 이럴 때 대답을 하지 않는다. 나도 더 캐묻지 않았다. 그냥 유전자 레벨이 낮으니 답을 안 하겠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


 “우림이는 다른 친구들보다 현실적이네.” 

 담임선생님이 상담할 때 그랬다. 어떤 애들이 성적도 낮으면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야겠다고 고집하면 선생들은 곤란해했다. 나는 내 성적이 지금 어느 정도이고, 혹시나 운이 좋아 수시에 합격하거나 수능을 잘 보면 어느 정도까지 상향해도 괜찮은지도 알고 있었다. 대학 간판을 먼저 보고, 그 안에서 그나마 경쟁률이 낮은 학과를 노렸다. 입시를 준비하는 선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일 거다. 선생님들은 신문방송학과나 연극영화과같이 경쟁률만 높은 학과를 지망하는 걸 크게 좋아하진 않았다. 자기 반에서 몇 명이나 유명 대학을 보냈는지 신경 써야 하는 입장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내가 특별히 까다롭거나 문제 있는 애는 아니지만, 동시에 특출한 재능을 가지지도 않은 걸 열여덟에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적당히 대학교를 다니다가 남들처럼 취직하게 될 것이다. 충분히 행운 아닌가? 

 그래서 황금캐피탈 유전자 검사의 홍보 모델을 하겠다고 했다. 우리 집은 돈이 필요하고, 나도 언젠가 돈을 벌어야 하니까. 광고비를 받아서 통장에 넣어두면 나중에 집을 구할 때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비좁고 물건으로 꽉 찬 집구석은 이제 질린다. 성인이 되면 자취방을 구해서 나가서 살 것이다. 그러려면 결국 돈이 있어야 한다. 회사랑 직접 연락하지 않아도 되었다. 엄마한테 한다고 말하니까 알아서 직원한테 연락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황금캐피탈의 홍보 모델이 되었다. 첫 관문은 황금캐피탈 유튜브 계정에 업로드될 가족 인터뷰였다. 직원은 엄마에게 집을 방문하여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화했다. 이렇게 지저분한 데다 애까지 울고 있는 집구석에서 인터뷰는 정말 싫었는데! 그때부터 온 가족은 집 안의 잡동사니를 열심히 치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가뜩이나 정신없는 집에 보행기, 딸랑이, 인형, 캐릭터 매트 같은 육아 용품까지 더해져서,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다.

 애만 보면 한숨이 나왔다. 정이 붙지 않았다. 가족 인터뷰라면 동생도 출연해야 하는 건가? 열일곱 살이나 차이 나는 동생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 아빠! 잘 들어. 우리는 얘를 숨긴다.”

 나는 거실을 물걸레로 닦다가 별안간 동생을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걔는 아무것도 모르고 텔레비전에 틀어놓은 동요 영상을 보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왜?”

 싱크대에서 행주를 빨던 아빠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되물었다.

 “몰라서 물어? 내 주변에 지금 동생 생긴 거 아무도 몰라.” 

 “그래도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낫지 않니?” 

 엄마가 화분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말했다. 

 “안 돼. 쪽팔린단 말이야.”

 “동생한테 쪽팔리다니!”

 엄마가 소리쳤다. 

 “알아듣지도 못하거든. 아무튼 그렇게 해. 어디 맡기든가.”

 “맡기긴 어딜 맡겨. 어린이집도 아직 안 다니는 애를.”

 “아니, 애 잠깐 부탁할 데도 없어?” 

 “할머니도 요샌 안 만나고. 아빠는 친구 없는 거 알잖아. 엄마 친구들은 다 멀리 살고.”

 “자기도 친구 별로 없잖아! 그리고 나도 친구 있거든. 준식이.” 

 아빠는 또 이상한 포인트에 꽂혀서 발끈했다.

 여전히 완벽하게 깨끗한 집은 못 되지만, 청소를 해놓으니 전보다는 깔끔해졌다. 박스나 옷걸이 같은 쓰레기도 전부 분리수거장에 버렸다. 거실에 있던 잡다한 물건 대부분은 베란다에 때려 박아 놓았다. 물건이 많기는 하지만 발 디딜 곳은 있는 정도가 됐다. 육아 용품은 죄다 안방에 밀어 넣었다. 촬영은 한 시간 안에 끝난다고 했다. 마침 애가 낮잠 잘 시간이니까, 안방에 재워놓고 인터뷰를 하다가 애가 깬 것 같으면 아빠가 들어가서 달래기로 했다.

 인터뷰를 하기 삼십 분 전까지도 분주했다. 나는 엄마가 골라준 단정한 옷을 입었다. 아빠는 얼굴에 쿠션 퍼프를 하도 두드려서 얼굴만 하얗게 떠 있었다. 왁스를 발라 넘긴 머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둘은 얼굴이 부어 보이면 안 된다며 아침부터 한 끼도 먹지 않았다. 

 “뭘 그렇게까지 오버해?” 

 나는 남은 반찬으로 밥을 때우면서 핀잔을 줬다. 


 지난번과 같은 카메라맨 아저씨와, 리포터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방문했다. 리포터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두 사람은 거리낌없이 집을 둘러보았다.

 “집이 무지 재미있네요!”

 집이 재미있다는 건 칭찬일까? 역시 별로 좋은 말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소파에 줄줄이 앉았다. 나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엄마 아빠가 앉고, 그 옆에 리포터가 앉았다. 리포터는 카메라에 빨간 불이 켜지면 촬영에 들어가는 거라고 알려주었다. 전에 카페에서 했던 인터뷰랑 다르게 무지 떨렸다. 내가 눈을 제때 깜빡이지도 못하고 굳은 자세로 허리를 펴고 있으니까, 리포터가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에 애가 울기라도 할까 봐 신경이 곤두선 채였다. 

 곧 빨간 불이 켜지고 촬영이 시작됐다. 소파에 앉아서 몇 가지 질문에 대답했다. 부모님과의 관계, 평소 취미, 공부 비법 같은 뻔한 것들이었다. 

 “반에서 친구 관계는 어때요?” 

 그 질문을 듣는데 뜨끔했다. 그나마 수빈이랑 다니고 있지만, 그냥 그랬다.

 “좋아요. 그냥… 평범해요.”

 말하면서 알맹이 없는 대답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리포터는 내내 밝게 웃으면서 받아주었다. 

 “무슨 과에 가고 싶어요?”

 내가 무슨 전공을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 솔직히 성적에 맞춰서 제일 들어가기 쉬운 과를 쓸 것 같다. 수학을 잘 못하니까 문과 쪽으로.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제가 책 읽는 걸 좋아해서요, 국어국문학과에 지원할 수도 있고요.” 

 “얘가 어릴 때부터 그렇게 책을 열심히 읽었어요. 항상 가방에 책을 몇 권씩 들고 다녔죠.”

 엄마가 끼어들었다.

 “어머, 어머니가 정말 우림 양이 자랑스러우셨겠어요. 다들 부러워하잖아요.”

 “그럼요, 요새는 돈 내고 독서 학원도 보내는데. 우리 우림이는 그런 걱정 없었어요.”

 엄마는 리포터보다 더 어색하고 과장되게 웃으면서 나를 칭찬했다. 

 “백 퍼센트가 되고 달라진 게 있으세요?” 

 “왠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저도 모르게 들어요. 그렇지만 지금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은 공부니까, 평소처럼 거기에 집중하려고 하고… 가끔 주변에서 알아보는데 그건 좀 부담스러울 때도 있어요. 나는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닌데….”

 리포터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앉아서 하는 인터뷰가 다 끝났다. 집 전반을 둘러보면서 촬영하면 끝이라고 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 나서 참느라 죽는 줄 알았네. 역시 사람이 아침을 먹어야 돼. 그치?”

 엄마가 작게 속삭였다. 잠시 촬영을 쉬는 사이에 엄마는 부엌으로 가서 우유 반병을 꿀꺽꿀꺽 들이켰다. 나는 미처 다 치우지 못한 반짝이 원피스가 탁자 밑에 깔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엄마가 춤추러 갈 때 입는 거였다. 발을 뒤로 뻗어서 그걸 아예 밑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리포터는 내게 다가와서 몸을 기울이고 속삭였다. 

 “저희 이제 집 전반 둘러보면서 촬영할 건데, 다 소개할 필요는 없고, 그냥 본인 방 위주로요. 알아서 편집해주실 테니까. 편하게 말하면 돼요.”

 여전히 친절한 말투였지만, 촬영 때보다는 한층 낮은 목소리였다. 

 “으앙!”

 별안간 안방에서 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엄청 큰 소리는 아니었다. 아빠는 급히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쪽 방은 뭐예요? 촬영 안 하는 곳이에요?”

 아빠가 안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피디 아저씨가 내게 물었다.

 “네, 촬영은 안 하고요. 그냥 안방이에요.”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나와 리포터만 카메라 앞에 섰다.

 “우림 양 방을 우리가 같이 구경해볼 수 있나요?” 

 “여기가 제 방이에요.”

 어색하게 문가에 서서 피디 아저씨가 내 방을 카메라에 담는 모습을 쳐다봤다. 애가 안 울어야 할 텐데! 아빠가 잘 달래고 있을까? 만약 크게 울어서 애 울음소리가 들어가면 다시 찍자고 하는 것도 민폐다. 

 피디는 참고서가 쌓인 책장을 찍고, 방 벽에 붙은 포스터를 가까이서 촬영했다. 리포터가 내게 스티커를 여러 장 넣어둔 상자에 관해 물어보았다. 스티커를 잔뜩 붙여 꾸민 다이어리를 서랍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리포터는 자신이 어렸을 때도 손 글씨로 다이어리를 쓰는 게 유행이었다며 반가워했다. 

 긴장과 불안함 속에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겠다. 피디와 리포터를 배웅하고 난 뒤 몸에 힘이 쭉 빠져, 소파에 몸을 던지듯 누웠다. 

 “무슨 수능 만점자 인터뷰인 줄 알았네. 물어볼 게 그렇게 없나 봐.” 

 내가 투덜거려도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이미 진이 다 빠져서 내 옆 소파 자리에 기대어 있었다. 아빠는 지친 표정으로 안방에서 걸어 나왔다.

 “하림이 드디어 다시 잔다.”

 그래도 애가 많이 울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지친다, 진짜.” 

 피디를 내보내고서야 우리 가족은 한숨 돌렸다. 

 “라면 끓여 먹자!”

 아빠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기운 없이 소파에 늘어져 있는 우리를 위해, 아빠는 라면을 네 개 끓인 뒤 거실 탁자로 가져왔다. 물을 적게 넣고 졸이듯이 끓인 라면이었다. 계란도 딱 알맞게 반숙으로 익어서, 접시에 덜어 숟가락으로 반 가르니 노른자가 흘러나왔다. 면발은 살짝 덜 익어서 짭짤하고 쫄깃했다. 라면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며칠 후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조금 긴장했지만 수줍은, 무척 평범하고 선한 학생 같았다.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웬만큼 열심히 하고, 다이어리 꾸미기를 좋아하는. 당시에는 긴장해서 더듬거린 것 같은데, 편집해놓으니 티가 나지 않았다.

 ‘왠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저도 모르게 들어요. 그렇지만 지금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은 공부니까, 평소처럼 거기에 집중하려고 하고….’

 ‘주변에서 알아보는 게 부담스럽다’, ‘나는 별로 특별한 사람이 아닌데’, 라는 말은 편집되었다. 들떠 있는 걸 숨기지 않는, 소탈하면서도 발랄한 여학생으로 비칠 것 같았다. 중간중간 밝게 웃는 리포터의 모습과 교차편집을 해두고, 귀여운 이모티콘과 자막을 달아두어서 실제 분위기보다 훨씬 유쾌했다. 

 영상 속에서 말하고 있는 내 모습은 낯설었다. 스스로를 이렇게 영상으로 볼 일이 잘 없었다. 내 웃는 표정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영상을 보니 웃는 게 훨씬 나아 보였다. 이후에도 인터뷰할 일이 있을 텐데, 많이 웃어야겠다. 말을 얼버무리고 제대로 끝맺지 않는 버릇이 자신 없어 보인다는 것도 깨달았다. 다음번엔 더 분명하게 말을 맺어야지. 


 아침에 반으로 가고 있는데, 복도에서 갑자기 모르는 남자애가 친구 몇이랑 슥 다가왔다. 

 “야, 너 그 백 퍼센트지?”

 반말을 하는 걸 보니 우리 학년인 것 같았다.

 “응, 그런데?”

 “너 멋있더라. 악수 한 번만 해줘.” 

 얼떨떨한 기분으로 걔가 내미는 손을 맞잡고 몇 번 흔들었다. 주변에서 놀리듯이 환호했다. 얼굴이 낯익다 했더니, 작년에 옆 반 애였던 것 같다. 

 “너 작년에 3반이었나?”

 “와, 우림이가 나를 기억해주네.”

 애들이 또 소리를 질렀다. 뒷문 앞에 서 있던 우리 반 여자애들 몇몇도 그 모습을 보고 괜히 자기들끼리 호들갑을 떨었다. 낯이 뜨거워졌다. 

 “생각보다 평범한데?”

 환호하는 애들 사이에서 누가 작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뭐가 생각보다 평범하다는 걸까. 외모, 스타일, 성격? 수업 내내 그 생각에 빠졌다.

 한국사 선생님은 애들에게 문제 풀이를 시켜놓고, 내게 쓱 다가와서 기사를 봤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너를 다른 애들하고 다르게 대할 순 없어. 네가 좋은 유전자를 가진 건 맞지만 선생님은 공평하게 대해야 하니까.”

 다르게 대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별로 친한 선생님도 아니었다.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언짢았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것도, 급식을 먹는 것도, 독서실에 가서 숙제를 하는 것도 똑같은데, 요새 하루하루가 묘하게 바빠진 기분이다. 정신이 팔려서 수업도 집중이 잘 안 되었다.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그리고 가족 단체 톡방에 공유된 기사를 보았다.


 [두 번째 백 퍼센트 소년! 최재희 군 인터뷰] 


 두 번째 백 퍼센트 소년의 인터뷰 영상이 링크에 있었다. 두 번째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내게 언제고 두 번째, 세 번째가 생겼다고 말해줘야 할 까닭은 없으니.

 내가 했던 것과 같이 집에서 인터뷰를 하는 영상이었다. 남자애는 단정히 넘겨 빗은 머리에 깔끔한 셔츠를 입고 있었다. 부모는 온화한 인상이었다. 유복한 가정인 것 같았다. 집이 깨끗하고 넓었다. 엄청 화려하지 않지만, 깔끔한 화이트 톤의 거실. 우리 집과 다르게 있을 물건만 있었다. 

 어쩌다 남의 집을 가보면, 대개 집집마다 생활의 냄새가 난다. 가끔 어둡거나 꿉꿉하기도 하고, 밥이나 덜 마른 빨래 냄새 같은 것도 나고. 어릴 때 보던 동화책 전집이나, 온갖 영양제나, 반찬통이나, 개별 포장된 김이나, 사용하지 않는 운동 기구 같은 것들. 사진관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나, 태권도복을 입고 찍은 어린 시절의 사진 같은. 하지만 두 번째 백 퍼센트 소년의 집에는 사진이 하나도 안 걸려 있었다. 모델하우스를 보듯이 깨끗했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을 것 같은 공간이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은 같은 리포터였다. 남자애는 묻는 질문에 짧게만 대답하는 것으로 보아 과묵해 보였다. 말이 많지는 않지만 수줍은 듯 웃었다. 어색하고 과하게 웃던 내 부모와 달리, 남자애의 부모님은 얼굴에 자연스러운 웃음을 띠고 있었다. 동화책 속의 화목한 가족들처럼 호호, 하고 웃는 것 같았다. 

 “우리 재희가 항상 다 잘하기는 했지.”

 “그냥 열심히 해서 그런 줄만 알았어요. 저희가 물려준 건 그런 거라고 생각했죠. 성실함. 얘는 길 다니면서도 영어 단어를 외우거든요. 무리하지 말라고 해도….”

 버스에서 영단어 외우는 애들은 유난스럽다. 얼마나 어린 나이부터 수학의 정석을 풀었는지 자랑하는 부류. 그런 애들은 별로다.

 곧 카메라는 남자애의 방을 비추었다. 역시나 깔끔했다. 부모의 취향이 담겼을 푸른 벽지에, 이불이 단정하게 정리된 침대. 그 옆의 피아노와 큰 책장. 책상 위 노트북과 공부용 스탠드. 옆에 기대어 있는 농구공과 배드민턴채. 이것저것 다 잘하는 애임이 틀림없다. 

 “방에 영어로 된 책이 많네요! 재희 군은 영어를 잘하나 봐요.”

 “잘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유학 준비 중이거든요.” 

 “우리 아들이 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요.” 

 언제나 아들을 지지하고, 기꺼이 지원해주는 부모. 단순히 학벌과 취직만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자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여유. 사춘기를 지나며 훌쩍 커버린 아들이 가끔 낯설지만, 여전히 깊이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할 테다. 화목한 가정.

 저 애는 진짜 백 퍼센트 같다. 나보다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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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퍼센트 소년 신다다 “평소에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느낀 적이 있나요?” 안경을 써서 딱딱해 보이는 인상의 기자가 물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인터뷰라 손이 차갑고 목이 빳빳해질 정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글쎄요. 제가 그렇게까지 남들하고 다르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요.”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인터뷰를 구경하던 엄마가 맞은편에서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야, 네가 왜 안 특별해. 어릴 때 얼마나 똑똑했는데.” 엄마가 끼어들자, 기자가 입꼬리를 올려 어색하게 웃었다. 민망해서 그만두라고 하고 싶었지만, 빨리 넘어가는 게 덜 부끄러울 것 같았다. “남들보다 제가 특별한 사람이라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지는 않아요. 누구나 다 특별한 점이 있으니까요.” 좋다. 이렇게 말하면 겸손해 보일 것이다. “처음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받고 어땠어요?” 어땠긴요. 황당했죠. 난 이런 걸 한 적도 없는데. 침을 꿀꺽 삼켰다. 대답이 늦어지자 엄마가 더 긴장하는 것 같았다. “무지 기뻤어요. 제가 상위 몇 퍼센트인지는 크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덕분에 부모님이 열심히 일하시는 데 집안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도덕책에 나올 것 같은 대답이었다. 집안 사정을 걱정하는 철든 딸로 보이는 게 좋겠다는 전략이었다. 원하는 답변이었는지 기자가 비로소 밝게 웃었다. “좋은 유전자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신가요?” 웃긴 질문이다. 설문조사나 인터뷰를 할 땐 답을 유도하는 식으로 질문하면 안 된다고 사회 시간에 배웠다. “네, 덕분에 이렇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는 비로소 함박웃음을 지었다. 늘 회사 일에 지친 엄마의 얼굴만 봐왔기에,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은 오랜만이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방금 뱉어놓고도 어쩐지 남의 말 같았다. 무난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물론 나도 한 번쯤은 잘나가보고 싶었다. 민망하니까 그런 마음은 꼭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교실 앞에 나가 박수라도 받으면 쑥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는 성격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특별해지길 바란 건 아니었다. 십만분의 일. 십만 명 중에서 무려 일 등. 우리나라에서 제일 들어가기 힘들다는 대학의 제일 들어가기 힘든 학과에 합격하는 것보다도 희박한 확률이었다. 오직 단 한 명. 내가 신청한 적도 없는 유전자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든 그 순간, 나는 졸지에 가장 특별한 애가 됐다. * “아, 엄마, 그만 좀 훔쳐 오라고!” 이번엔 주황색 잉어 모양 종이 등이었다. 역 근처 일식당 앞에 줄줄이 달린 걸 언뜻 본 것 같았다. 밤에 회사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서 떼 온 게 틀림없었다. “아이, 열 마리 중에 하나 없어져도 모른다니까

  • 신다다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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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퍼센트 소년

가장 평범한 소녀가 유전자 검사로 하루아침에 가장 특별한 아이가 된다.

  • 신다다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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