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자의 메일링 –메일링 서비스를 하며 느낀 것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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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의 월간 이슬아, 문보영 시인의 일기 딜리버리. 그런 메일링 서비스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사람들에게 나의 글을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어딘가에 올려서, 불특정 다수가 나의 글을 보고 가는 것 말고. 애초부터 독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므로 그들을 위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 그건 작년 겨울에 어렴풋이 떠올린 것이었다. 언젠가, 그러니까 언젠가 해보아야지. 그런데 언제 하지? 언젠가는 해 보겠지. 그렇게.
그리고 나는 올해 초부터 여름까지 고선경 시인의 메일링 서비스를 꾸준히 신청하였다. 나는 그가 ‘럭키 슈퍼’로 등단하였을 때부터 큰 팬이었다. 웹진 ‘비유’에 실린 시편을 보고서 더욱 팬이 되었는데, 가볍고 산뜻한 어조가 지닌 위트로 무언가 핵심을 찌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능력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쓰지 못할 것 같은 시를 쓰고 있다고 해서 좋았고, 그런 시인이 갓 구운, 따끈따끈한 시와 산문을 내게 배달해준다는 건 큰 기쁨이 될 것 같았다. 2023년 초, 나는 굉장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으나 고선경 시인이 배달해준 시편들을 읽으며 어떠한 용기를 얻었다.
얘들아 문예창작과는 더 슬픈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야 게임을 더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야 계속 지고도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고선경, ‘수정과 세리’ 中
이 시는 1월의 중반 메일링으로 처음 받아보았고, 이후 고선경의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에도 수록되어 내가 자주 읽는 시가 되었다. 내가 시인이라는 꿈을 가진 이유, 굳이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겠다고 다짐한 이유, 지금 나에게 매너리즘이 들이닥친 이유를 고선경 시인의 텍스트와 함께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열과 함께 아주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시를 썼는데, 이것이 ‘래빗 헌팅’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손에 쥘 수 있다면 당도 높은 복숭아일 거야 쉽게 물러지는
손끝으로 망설임 많은 과즙이 흘러내린다 아직도 카드는 뒤집어지길 기다리고 있고
(...)
직선으로 뛰어가는 토끼 곡선으로 떨어지는 카드 잠긴 문을 열어본다
그림자의 형태는 계속해서 바뀐다 울렁거리지는 않는다
나는 무언가 막힌 것을 뚫어버리듯 이 시를 썼다. 모든 건 사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고, 나의 이야기를 막힘 없이 써내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나는 왜 이렇게 괴로워 하는 걸까. 그런 마음들로. 그리고 나는 이 시를 ‘글틴’을 비롯한 나의 블로그 등에 업로드 하였고, 운 좋게 글틴 시 부문 멘토님들께서 나의 시를 월장원으로 선정해 주셨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놀라게 된 계기는, 모 sns를 하던 중 발견한 게시글 덕분이었다. 올해 여름부터 친한 동생의 권유로 sns에 글을 올리는 계정을 만들었다. 내게는 몇백 명 정도의 구독 계정이 있었으나 그들은 대개 비공개 계정이었고, 나 또한 겁이 많아 따로 소통 창구를 마련하지 않아 사실 내게 그런 구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어느 밤, 한 구독자분께서 내게 ‘글틴’에서 본 시가 이 sns 계정에도 올라와 있다는 걸 알고 팔로우했다고 메시지를 주셨다. 짧막한 응원의 메시지였지만 나는 그게 부끄러우면서도 좋았다. 별것 없는 나의 시를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더불어 어느 날의 새벽, 추천 게시글로 나의 타임라인에 이런 글이 떠올랐다. 바로 글틴에 올라온 나의 ‘래빗 헌팅’을 캡쳐해서 올린 글이었는데, 아래 댓글 기능으로 글을 올린 사람과 그 사람의 팔로워가 ‘글틴이라면 10대가 쓴 시일 텐데 좋다’는 말을 나누고 있었다. 순간의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줄곧 나 홀로, 나 또는 아주 가까운 몇 명의 친구만이 읽어줄 시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도 많은 이들에게, 또 멀리까지 나의 시가 가닿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의 황홀함! 내게 ‘독자’라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선연한 감각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래서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해보고 싶었다. 나의 ‘독자’가 되어준 적 있는 이들만을 위한, 오직 그들만을 생각하며 쓴 글을 선보이고 싶었다. 소수정예 느낌으로, 비밀스럽게, 복닥복닥하게, 그렇게 메일을 보내보고 싶었다. 사실 이 결심의 계기에는, 독자들이 준 마음만이 아니라 앞서 글을 배달하던 나의 선배들도 있었음을 말하고 싶다. 아주 유명하거나 어떠한 제도가 ‘인증’한 문인만이 메일링이라는 걸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여러 캠프에서 알게 된 나의 언니와 오빠들은 소설을, 시를, 감상문을, 사진을 기꺼이 배달하였고 나도 몇 번 받아보며 이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도, 무서운 일도 아니며 오직 즐거운 일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모든 시험이 끝난 후, 자유로워진 학교에서 노트북을 꺼내놓고 메일링 공지를 작성했다. 반 친구들은 오며 가며 무엇을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냐고 했는데, 나에게는 나 자신을 소개하는 게 큰 문제였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시 쓰는 사람입니다? 반갑습니다, 아무튼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영화...는 만들고 싶었는데 이제 비평만 해요? 그것도 아니면 그냥 sns 계정만 태그해놓고 저 아시죠? 이렇게 할까? 도무지 나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입니다. 시를 쓰는 **이라고 소개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럴만한 용기가 없어요. 저는 시를 주력으로 하며, 이런저런 텍스트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썼다. 진짜 솔직하게. 나는 시를 제일 좋아하긴 하는데, -할 말이 정말이지 많아서 함축과 비약이 없으면 안 된다. 진솔하게 다 이야기하다가는 늘 10,000자가, 소설은 단편 분량을 가뿐히 넘어버린다.- 사실 요즘 솔직함이 최고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서.
이 메일링 서비스는 평소 제 글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분들을 위해 시작하게 되었어요.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꾸준히 깊고 맑은 두 눈으로 글 읽어주시는 구독자분들, 본인처럼 늘 사랑스러운 평을 들려주고 가는 나의 친구들, 그 외에도 마음 보내주는 이들, 몸은 멀리에 있지만 마음만은 곁에 있다 느껴지는 사랑들.
그런 분들께 소소하게나마 저의 이야기를 보여드리고 싶어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러므로 무언가 본격적인 텍스트를 원하신다면 실망하실지도 몰라요. 그러나 저는, 여러분께 최대한 솔직하고 꾸밈없는 저를 보여드리기로 약속할 거랍니다.
그러니까, 정말 꾸밈이 없는 나.
제가 좋아하는 말 중 이런 말이 있어요. 하이데거가 한 말인데요, '언어는 존재의 집' 말이네요. 여러분은 지금 어느 언어에 기대어 계신가요?
저는 지난 시간 동안 수많은 시인들이 축조한 언어에 잠깐씩 머무르곤 했어요. 그건 저의 존재에 색을 입히는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답니다. 저는요, 제가 머물었던 시인들의 언어처럼 아름답고 단단한 집을 내어주지는 못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한 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조금은 쌀쌀하고 쓸쓸한 이 시기, 여러분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따스한 장소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다름이 아니라 활자로써요. 그곳에서 회색빛 대신 알록달록한 '나'를 찾아볼 수 있길 바라요. 마치 그림책의 낱장처럼, 동화책의 이야기처럼요.
그래서 이 메일링의 이름도 '겨울 동화'랍니다.
메일링의 이름을 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십 대 내내 밴드 sekai no owari의 노래를 듣고, 설리의 앨범 수록곡 중 도로시를 들으며 잠들다가, 집 근처의 그림책 전문 서점에 종종 들리고, 김희준 시인의 시를 거듭해서 읽고. 나는 그래서 동화라거나 메르헨, 그런 단어들을 사랑했고 대학에 가서는 아동 문학을 배우고 싶어 했으므로 그렇게 정했다. 5주 동안, 1주일에 한 번. 5천 원. 그러니까 회당 천 원.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사용하는 sns에 메일링을 5일 동안 홍보했고, 그동안 신청을 받았다. 결과적으로는, 놀랍게도 우리 반 학생 수와 정확히 같은 수의 사람이 내 메일링을 신청하였다. 입금자를 정리하던 와중, 문득 우리 반을 떠올렸다. 나는 늘 반의 맨 뒷자리에 앉는데, 내가 보았던 그 많은 뒤통수들. 그 뒤통수만큼 내 글을 읽어준다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마음 한구석이 데워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의 중학교 동아리 친구들, 한때 나와 함께 시를 썼으나 이제는 문학과 상관없는 길을 가고 있는 친구들이 있는 단체 카톡방에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아직 한국 문학 안 망했다. 나 따위의 글 보려고 우리 반 학생 수만큼 사람이 모였단다.’ 친구들은 연신 웃어대며 그건 참 기쁜 일이라고 해주었다.
어려웠다. 쉽지 않았으나 괴롭지는 않았다. 글 쓰는 것 자체가 내게 즐거운 일이기도 하고. 이런 걸 고민하는 게, 사실 시 쓰는데 익숙해져 버렸고, 어쩌다 산문을 쓰게 된 사람의 본질적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언젠가 읽은 비평글에서, 시란 어떠한 특성을 지닌 문학이라고 했었던 걸 기억한다. 오늘날에는 여러모로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라, 여기 적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역시 고민되는 건 하지 않는 편이 좋은 듯 하다. 그리하여 나만의 언어로 다시 이야기하자면, 시는 '단절과 부재'가 도드라지는 문학이다. 하고 싶은 말은 많고, 하지만 그걸 숨겨야 하는 장르적 특성을 지닌다. 다른 문학과는 다르게 메시지를 서사로써 '승화' 시키지 않고 '함축과 비유'로 동글동글 빚는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아무튼 주인장 마음대로 전개해버리는 게 시니까. 아무래도 이런 시를 쓰는 나에게는 독자를 위한 다정한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내가 보낸 메일링의 글 일부에도 드러나 있듯이. 원고를 쓰는 건 즐거웠다. 확실히 어렵지만, 즐거운 일이었다. 일 년 내내 주구장창 시만 써온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었고, 나 자신을 마주하는 동시에 조금 더 타인에게 곁을 내어주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나의 시에는 좀 다정함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사랑 시는 쓰는데 정작 읽는 사람은 생각을 안 하고, ‘음 이 정도 비유면 하고 싶은 말 다 알겠지’ 하면서 썼던 것 같다. 그런 깨달음과 함께, 앞으로의 창작 방향을 다시금 잡아볼 수도 있었다.
나는 대개 농담조로, 나 자신을 '시 쓰는 황한솔'로 일컫는다. 황한솔이란 유튜버 '사내뷰공업'이 선보이는 하나의 캐릭터이다. 황한솔은 그런 캐릭터다. 검은 후드를 눌러 쓰고 두꺼운 안경을 장착한, 자신만의 세계에 확실히 빠져있는 캐릭터. 그러니까 '오타쿠'. 사내뷰공업의 동영상 중에서 그런 것이 있다. 반에서 싸움이 났을 때 각각 캐릭터들의 반응 영상. 여기서 황한솔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본 만화책을 보다가, '시끄럽구만.'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해버린 다음에 반이 난장판이 되건 말건 계속해서 만화를 읽는다. 그게 딱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세계에 어떤 혼란이 와도 나는 집에서 시집만 읽다가 죽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한솔이를, 이런 나를 좋아해주는 친구들이 세상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의 SNS에서 이번 메일링으로 듣고 싶은 이야기를 조사 받았을 때, 압권이었던 것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난 '맨날 세상과 단절 되어가지고 시 이야기만 하는데 또 듣고 싶은 게 있어?' 싶으면서도 영광스러웠다. 또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할 말이 끝도 없는 게 시 쓰는 사람이자 오타쿠의 마음이니까.
올해를 끝내며 여러 곳에서 롤링 페이퍼를 할 때, 공통적으로 들었던 소리가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사실은 아니였다’는 말이었다. 오죽했으면 누군가는 ‘문학소녀 바이브에 주춤했는데’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정말 내가 그렇게 어렵게 생겼냐는 말에 ‘너는 네가 세상을 왕따 시키는 것 같은 사람이야’라는 말이 돌아왔고. 친구들에게 다시 그럼 내가 왕따 당하는 건 아니냐고 묻자 그건 확실히 아니라는 말이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러한 말을 나누는 동안 나는 어쩐지 종종 언급하던 ‘황한솔’이라는 캐릭터가 생각났고, 이렇게 주절주절 시 이야기만 하는데 들어주겠다고 온 독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렇게 ‘**을 좋아하세요?’의 제목을 지닌 겨울 동화는, 매주 토요일마다 독자들의 메일함에 날아간다. 지금까지는 ‘무엇을 좋아하세요?’와 ‘영화를 좋아하세요?’가 발송되었다. ‘무엇’에서는 조금 긴 자기소개용 산문과 시 한 편을 보냈고, ‘영화’에서는 산문과 비평문 한 편, 시 한 편을 보냈다. 독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메일을 읽어낸다. 어떤 친구는 꼬박꼬박 시 부분의 일부를 캡쳐하여 sns ‘스토리’ 기능으로 올려주고, 어떤 언니는 꾸준히 감상평을 디엠으로 남겨주고. 어떤 작가님은 자가 출판으로 시집을 내게 되셨는데, 메일링 잘 보았다는 말과 함께 선물로 시집을 보내주셨다. 메일링을 신청받을 때, 오천 원보다 큰돈을 보내주신 분도 있었다. 정정 메일을 보내드렸다. 그분은 나의 글을 볼 때면 마음이 회복되고 사랑이 들어차는 느낌이 들어, 고마운 마음으로 조금 더 보냈다고 하셨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그런 마음을 되돌려 보내는 건 매몰차다고 생각해서 감사하다는 메일을 길게 보내드렸다. 또 다른 sns 구독자이자 나의 메일 독자는, 나의 글을 볼 때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해주셨다. 공교롭게도 두 분 모두 ‘눈물이 날 정도로’, 그런 수식어가 담긴 말을 보내주셨다. 나는 그런 메시지를 읽으며 너무나도 과분한 말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타인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는 글은 무엇일까? 나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을 떠올려 본다. 그는 ‘억지 신파’가 들어간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꼬집어서 눈물 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냐고. 나는 대체 어떤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짧은 글 한 편을 쓰게 되었다.
(...) 곱씹어 보다가 느꼈다 윤종욱 시인의 시집처럼 우리의 초능력은 우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게 주어진 초능력이 하나 더 있다면... 그건 우는 일을 뼈대로 세계를 지을 수 있다는 거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슬픈 시를 쓰려고 한 적은 없다
나의 모든 시는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랑해서 슬픈 걸까 슬퍼서 사랑하는 걸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내가 적어둔 것처럼, 정말 사람마다 초능력이 하나씩 있다면, 내게는 아무도 모르게 슬픔을 시로 만드는 능력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조차도 몰라서 그 초능력을 쓰는 방법은 모르는 것이다. 나는 줄곧 나의 글을 믿지 못했고, 의심하며 때로는 미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글에게도 아주 작은 능력, 마법 같은 초능력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언젠가 국어 선생님께 ‘저는 싫어하는 시집이 없어요. 읽다 보면 제각기 사랑할 점이 드러나거든요. 마법처럼.’ 그렇게 말했던 것처럼.
엄마는 늘 내게 말씀하신다. 베풀고 살라고. 어릴 적의 나는 그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베풀어도 상대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나는 손해만 보는 것인데. 하지만 나는 이제 알 수 있다. 내가 베풀었던 개인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베풀기’의 태도로 살다 보면 나에게도 좋은 일들이 찾아온다는 걸. 나는 다만 독자들과 즐거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 메일을 시작했지만, 정말이지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앞으로 메일 발송은 3회가 남았고, 신년 인사 손 편지 옵션을 선택한 구독자들에게 보낼 편지는 4통이 있다. 나는 총 일곱 덩어리의 텍스트를 만들면서, 독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나는 또 무엇을 배워갈 수 있을까? 그건 아주 알쏭달쏭한 일이다. 더불어 그러므로 우리의 생은 재미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음표가 그려진 매일을, 메일로 건너며 즐거움을 느껴 본다. 내가 가진 초능력을 손에 꼭 쥐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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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희찬
- 2026-05-31
대회장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누군가는 쇼팽을 쳤고 누군가는 리스트를 쳤다. 검은 정장과 색색의 드레스를 입은 학생들의 손끝은 지나치게 매끄러워 보였다. 나는 그 사이에 부자연스럽게 앉아 핫 팩만 쥐고 있었다.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들 틈에 섞인 중학교 1학년의 취미생.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 피아노 의자에 앉아 손가락 끝이 둔해질 때까지 같은 소절을 반복했고, 틀린 부분은 연필로 동그라미를 치며 다시 눌렀다. 하지만 어떤 노력은 처음부터 방향이 달랐다는 사실을 어린 나는 끝까지 인정하지 못했다. 그 무렵부터 왼손 약지 아래 안쪽 관절에 이상한 것이 만져지기 시작했다. 연습 도중 손바닥 안쪽이 약간 부풀어 오른 것 같다가도 금세 잊어버릴 정도의 감각. 말랑했을 때는 존재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손가락을 굽힐 때 아주 잠깐 이물감이 스치는 정도였고, 나는 그걸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찾아보지도 않았다. 몸이라는 것은 원래 여기저기 이유 없이 아픈 법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대회를 앞두고 있었다. 병원에 가서 혹시라도 손을 쓰지 말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그 며칠 동안의 연습량이 증발해 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방치했다. 정확히는 외면했다. 매일같이 건반을 누르며 같은 부위를 접고 펴는 동안 그 작은 덩어리는 손 안에서 조금씩 단단해졌다. 결절종은 물렁한 침묵으로 시작해 결국 뼈처럼 굳어 갔다. 손가락을 쥐었다 펼 때마다 안쪽에서 작은 구슬 하나가 관절 사이를 밀고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은 건반을 누르는 도중 유난히 이질적인 압박감이 느껴져 손을 뒤집어 보았고, 그제야 나는 거기에 무엇인가 자라나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오래 방치한 감정이 어느 순간 형태를 얻듯이. 몸 안에서 자라는 것들은 대개 소리 없이 커진다. 통증조차 늦게 도착한다. 대회는 예상대로 끝났다. 아니, 어쩌면 예상보다도 더 조용하게 지나갔다. 그 대회에서는 모두가 상을 받았다. 상의 이름만 다를 뿐이었다. 중고등부가 한데 묶여 있었고,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높은 상은 입시생들이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 생각했다. 그들은 매일 몇 시간씩 인생을 저울 위에 올려두는 사람들이었고, 또 누구보다도 절박했으며······ 나는 그저 좋아해서 피아노를 치는 애였으니까. 억울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계속 스스로에게 말했다. 어쩌면 억울하지 않다는 말을 반복하는 일 자체가 이미 가장 필사적인 자기방어였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정말 괜찮을 때는 굳이 괜찮다고 되뇌지 않으니까. 집으로 돌아온 뒤 이상하게도 손부터 보게 되었다. 트로피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왼손의 딱딱한 돌기였다. 대회를 위해 미뤄둔 것. 끝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끝나고 남은 것은 성적표 같은 상장과 더 단단해진 결절종뿐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우스워졌다. 노력이라는 건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누군가는 그
- 미빈
- 2026-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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