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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선, 서로를 먹어야 했다 -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을 읽고

  • 작성자 난바다
  • 작성일 2024-08-12
  • 조회수 3,192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구의 증명

 

사랑이란 무엇일까때때로 이런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싶었다사람들마다 사랑에 대해 물으면 그것에 대한 답변은 다 다를 테니내 멋대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었던 거일지도 모른다.


사랑이 뭘까사랑은 뭐지.


이리 물으면 네가 성숙해지면 알게 될 거야 라고 엄마는 말했지만 내가 언제 성숙해질지는 모르는 일이기에 그 때부터 무작위로 온갖 사랑을 다룬 책들을 보았다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내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나의 선호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최대한 다양한 형태를 다룬 소설을 보고자 했다소설도 안 된다면영화나 드라마혹은 수필 같은 걸로최대한 많은 사랑을 접하고자 노력했다.

<구의 증명>은 그런 과정 속에서 접한 책이었다정확히 말하자면 친구의 말을 듣고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시험이 끝난 후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같이 간 서점. <구의 증명>을 들고 있던 내게 내 친구는 뭐라고 말했던가.

사람들은 저거야말로 사랑을 말한다고 하던데난 솔직히 모르겠어뭐라 할까역겹다고 해야 하나그게 사랑이라면 사랑은 역겨운 거라고 생각이 들어.”

원래도 <구의 증명자체가 유명하니 책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딱히 읽을 생각은 없었다어린 사람이 읽기에는 심오하며 내용 자체가 유쾌한 편은 아니니 커서 읽어야 이 책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나 뭐라나나 역시 어두운 내용의 책은 취향이 아니었으므로 읽더라도 나중에 가서 읽자라는 막연한 생각만을 가진 채 그저 <구의 증명>을 지나쳐가곤 했다.

그러나 친구의 말은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만들기엔 충분했다역겨운 사랑이라니역겹다는 말과 사랑이라는 황홀적인 그 감정을 붙인 그 말은 모순적이면서도 한 편으론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구의 증명>은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길래 그 모순적인 말을 친구의 입에 담게 만든 것인가늘 소설책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말하던 친구였던 탓에 더욱 궁금했다.

그 이후로 내가 <구의 증명>을 읽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마침 내 생일은 그 당시얼마 남지 않는 시점이었으며 무슨 생일 선물이 갖고 싶냐 는 친구의 물음에 <구의 증명>이라는 책 좀 사줄 수 있어라고 내가 답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기에그렇게 내 생일 당일 날, <구의 증명>은 정말 나의 생일 선물처럼 내게 왔다공부를 해야 되니 나중 가서 읽자고 생각했던 나의 마음가짐과 달리나는 받은 그 자리에서 <구의 증명>을 다 읽어버렸다현재 시점에서는 이미 3회독을 마친 상태이다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 것은 나의 성미와 맞지 않지만 <구의 증명>은 내가 다시 한 번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아마 이 글을 쓴 후에도 한 번 읽을 계획이니어쩌면 <구의 증명>은 5번 이상 같은 책을 읽지 않겠다는 나의 철학을 깰 책일지도 모른다그만큼 <구의 증명>은 꽤나 내게 특별하게 다가온 책이었으므로이 글을 통해 <구의 증명>에 대한 나의 애정이 더 깊어지길 바란다.

 

와 은 어린 시절부터 꼭 붙어 다니던 소꿉친구였다주변에서 그런 와 에 대해 무어라 말하지만 그 둘에게는 소용없는 것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인연밑바닥을 기어가며 만난 운명이모에게 맡겨진 과 자신에게 무관심한 부모로부터 자라고 있는 ’ 어쩌면 그 둘은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인 사람들이었다.

 

괴롭다는 것은 몸이나 마음이 편하지 않고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괴로움 없는 사랑은 없다.

 

<구의 증명

 

하지만 그 둘의 엇갈림은 고등학생에 접어들 무렵 생기기 시작한다공장에 다니던 와 그와 함께 같이 다니던 ’ 그리고 공장 직원의 아들, ‘노마’ ‘와 은 노마를 잘 챙겨주며 돌봐주지만 불의의 사고로 노마가 목숨을 잃고 난 그 이후. ‘는 방황을 하기 시작한다자신과 같이 공장에 다니는 진주의 집에서 자고 잠자리를 가지며 에 대해 신경을 쓰기는커녕 더더욱 삐뚤어진 선택만을 한다. ‘은 그런 만을 기다리다 이모의 장례식을 홀로 치르고, ‘의 설득으로 가 다시 그녀의 곁으로 돌아왔을 때. ‘의 부모는 그에게 거액의 빚을 떠넘기고 도망친다. ‘는 자신이 을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으로부터 도망치지만 불행해지더라도 같이 불행해지자는 의 말을 통해 그녀와 같이 있기로 마음을 먹는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구의 증명

 

과 는 그렇게 사채업자의 눈을 피해 도피 생활을 시작한다비록 몸이 고되고 힘들긴 했어도 그 둘은 서로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그러나 그것도 잠시. ‘의 도피 생활이 사채업자에게 걸리며 는 죽기 직전까지 그들에게 맞고 만다. ‘에게 보이는 것은 오로지 낡고 깨진 공중전화부스와 닳고 더러운 보도블록 틈새에 핀 잡초부옇고 붉은 밤하늘이나 머나먼 곳의 십자가일 뿐정작 그가 보고 싶어 하는 은 없었다.

 

길이 시작되는 곳에 고여 있는 가로등 불빛을 봤다.

눈을 감기 전까지 그것을 보았다.

저거 되게 따뜻해 보이네.

그런 생각을 했다.

담이는 저기로 오겠네.

그런 생각을 했다.

......저거 꼭 담이네.

 

<구의 증명

 

은 그런 의 전화를 받고 가 있는 곳으로 열심히 달려가지만 는 결국 을 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죽은 의 몸을 껴안고 은 이대로 가 죽었음을 알릴까아니면 같이 죽을까 고민하나 은 가 생전 그녀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서로가 살아있었음을 이 세상에 남기기 위해서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는 이가 먼저 죽는다면 너의 몸을 내가 먹겠노라고 말했고. ‘은 그런 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그렇게 은 를 먹는 것을 선택한다그녀 자신이 식인종인지변태인지인간 말종인지를 헷갈려하며 의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뜯어 삼켰다너를 따라 죽는 것이 아닌 자신을 따라 가 살게 하도록. ‘의 존재를 이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서살아서 그를 기억하기 위해서.

 

1. <구의 증명>의 제목에 대하여

 

사실 <구의 증명>을 보기 전제목에 나온 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했었다구라니내가 아는 구는 수학에서 나오는 도형인 구밖에 없었던 지라 그 도형의 구를 뜻하는 것인지 의문을 가졌었다또한 증명이라는 단어 역시 왜 구를 따라 붙었는지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구를 증명한다니그게 무슨 소리지라며. <구의 증명>의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그 제목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댔다결국 나는 <구의 증명>의 끝을 다 보고 난 후에야 내가 지금껏 해온 짓들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를 깨달았다. <구의 증명>이라는 책 제목은 <구의 증명>을 읽은 후에만 이해가 갈 수 있는 제목이었다.


사실 <구의 증명>이라는 책 제목을 보다 빨리 이해할 수 있었던 점에는 아마 내가 이를 중심으로 이 책을 접근한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게 없잖아 있을 것이다. <구의 증명>은 와 이의 시점을 교차하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기에일단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 책을 접근해 보자는 나의 무식한 방식 때문일지도 모른다그러나 나는 이를 더욱 집중하여 바라본 덕분에 이가 이 책에서 했던 모든 행동들이 <구의 증명즉 이 책 제목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구의 증명>이 사람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것에는 이가 의 몸을 은유로 먹은 것이 아닌 직접 먹은 게 가장 큰 원인이라는 점은 나 역시 인지하고 있는 바이다하지만 나는 그 행동을 통해 이가 얼마나 와 함께 이 세상에 남고 싶어 하는지어떻게든 와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지처절한 이의 행동이 더 눈에 띄었다처음 읽었을 때아무리 그래도 이가 를 먹는 선택을 했어야 했나싶어 이를 삐뚤게 바라보았지만 두 번째세 번째점점 <구의 증명>을 보면 볼수록 난 이라는 인물에 대해 더욱 사랑하게 될 뿐이었다. ‘이는 그 먹는 행위를 통해 를 사랑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그 과정들이 다소 과격하여 몇몇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에 대해선 부정은 하지 않으나 직접적이고 솔직한 이의 감정묘사와 행동을 통해 얼마나 이가 온전히 를 사랑하고 싶었는지그저 만 바라보며 살고 싶었는지. ‘이의 행동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구의 증명>은 그런 이의 행동에 대해 잘 표현한 책 제목이라고 생각한다그러니까 가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사랑을 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를 먹어야 했던 이의 사랑을 표현하는 제목. ‘이의 사랑은 이 세상에서 가 사라지도록 두는 것이 아닌 먹음으로써 자신을 따라 죽게 만드는 것.

고로 <구의 증명>

 

2. ‘에 대하여.

 

는 구였다책 제목을 유추할 때 들었던 수학에서나 나올법한 원형의 도형자그마한 바람에도 데굴데굴 굴러가는 구 모형처럼 는 작은 시련 하나에도 흔들거리는 아이였다솔직히 말하자면난 가 참 책임감 없는 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는 늘 이에게서 도망쳤으니까늘 자신이 힘들 때면 을 떠났으니까내가 이의 입장에 더 이입하며 보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어도 그런 의 행동들이 못내 원망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노마가 죽어 와 ’ 모두가 힘들 때에도 은 를 보러 공장에 갔었다그러나 는 공장에서 만난 진주라는 사람과 마음에도 없는 잠자리를 가지며 을 외면한다그 당시에 은 자신의 부모와 같은 존재인 이모가 죽음을 맞이하여 더욱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는 그런 을 찾아가려고 하지 않는다그의 부모가 그에게 빚을 떠넘길 때에도 자신과 같이 있으면 불행해진다는 말로 이의 존재를 부정하며 자신의 사랑조차 외면하며 그녀로부터 도망만 친다물론 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오히려 누군가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놓아주는 행위 자체가 더 성숙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하지만 나는 이 사랑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의사라고 생각한다. ‘은 와 함께 있고 싶어 했고죽더라도 그와 같이 죽고 싶어 했다그런 그녀를 두고 배려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도망만 친 행동은 결코 그녀를 위한 선택이 아닐 것이다그렇기에 난 의 죽음 그 순간까지도 에게 약간의 원망을 느꼈다. ‘는 끝까지 과 오랫동안 같이 있어주지 못한 거니까결국 만 를 쫓아다닌 셈이 된 거니까. ‘을 보고 싶어 했던 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마음이 짠해지다가도 한 편으론 는 끝까지 의 곁을 지켜주지 못하는 구나싶어 입가가 쓰게 느껴졌다. ‘는 이 늦게 왔다고 생각하고 또 이 제 곁에 있어주지 못했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난 그런 에게 말할 수 있다면 이 말 한 마디는 꼭 하고 싶었다오히려 네가 의 곁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라고. ‘이 이모의 죽음으로 힘들어 했을 때에도 ’, 너는 진주의 집에서 자고 있지 않았니 라고말해주고 싶었다그렇게 해서라도 가 자신을 향한 의 사랑을 알길 바랐다이미 알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네가 늘 도망만 치는 이 관계 속에서 끝까지 너를 따라가고 너를 기다리고자신이 무조건 불행해질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너만을 바라보았던 이 있었노라고그리고 인생에서 그런 사람 하나가 네 곁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값진 삶을 산 것이라고.

사채업자들에게 쥐어 터질 정도로 얻어맞고 코가 땡땡 부어서는손톱 깨작깨작 먹으며 피투성이의 너를 보던 이가 있는 것만으로도너의 삶은 밑바닥이 아니었노라고.

그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3. ‘에 대하여.

 

<구의 증명속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인물을 뽑으라고 하자면 나는 이 을 뽑을 것이다난 이만큼 사랑에 대해 진취적이고 솔직한 여성을 본 적이 없었다물론 내가 보는 소설들이 다 고전소설들이 대부분이라 전형적인 여성상이 등장하는 것은 이해하나 내가 본 현대 소설들을 모두 통 틀어서라도 성별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인물이 나온 소설은 별로 없었다나 역시도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그런 이의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은 어린 시절어른들의 시선에도 의 손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댔고이모를 사랑하며 그만큼이나 를 사랑하려고 노력했으며 이 책의 끝까지 그를 사랑한다. ‘을 위해서라는 명목 하나로 도망만 치던 와는 대조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와 같은 것이 있다면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 ‘는 사랑하기 때문에 도망을 선택했지만 은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쫓아가고 기다리는 것을 선택한다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구의 증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였다. ‘와 의 성격이 면밀히 드러나는 부분이 재미있으면서도 내가 이에게 감탄하게 된 계기가 된 장면이기도 했다. ‘은 늘 솔직하게 를 대한다. ‘가 이모의 장례식 때 자신의 곁을 지켜주지 않았을 때에도. ‘가 자신이 아닌 진주라는 공장 직원의 집에서 함께 자는 것을 보았을 때에도자신의 감정을 중요시 여기며 그 감정들을 에게 표현한다아마 가 늘 도망치려고 하는 것을 이 이렇게 붙잡아 주었기에 가 이와 살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일지도 모른다.


가 죽은 뒤, ‘를 먹기로 한 결정 역시. ‘를 사랑하는 이의 감정이 세세하게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그의 죽음이 이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고그리고 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고결국엔 그를 먹기로 하는 것은 이의 를 향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니까혹자는 이 부분에서 이의 성숙한 마음이 드러났다고 말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결국 이도 미성숙한 사람이구나싶어 오히려 이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모두가 그렇게 말하듯사랑에는 결국 이별이 찾아오길 마련이니까물론 이별이라는 것이 몸이 떨어지는 것을 말할 수도 있고, ‘와 이의 경우처럼 영구적인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그러나 과연 의 몸을 먹어서까지 함께 하려고 하는 행동을 과연 성숙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물론 아직까지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도 없고사랑이라는 그 추상적인 것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는 내가 성숙한 사랑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적어도 이가 에게 한 행동이 성숙한 사랑이 아님은 알 수 있었다이 부분에서 나는 묘하게 도 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 결국 의 죽음을 회피한 것이니까. ‘를 먹음으로써 의 무덤 그 자체가 된 것이니까이 부분에서 나는 <구의 증명>이 미성숙한 둘의 미성숙한 사랑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도 도 서로에게 미성숙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 ‘는 살아생전에그리고 은 가 죽은 다음에. ‘는 자신의 몸이 에게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그리고 은 그런 를 먹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아마 은 가 죽은 것을 보았을 때그리고 점점 말라비틀어져가는 의 몸을 먹었을 때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너와 같이 불행을 선택했으니까살아있어야지살아서 우리 둘이서 사랑도 하고 같이 불행해져야지라고.

그 말라비틀어진 손톱을 빨아먹으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책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4. <구의 증명사랑이란.

 

<구의 증명>을 읽은 후, <구의 증명>에 나오는 사랑은 역겨운 사랑이라고 평했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친구가 어땠어라고 묻자 나는 글쎄라고 말했다읽은 후에 친구가 선택했던 역겨운 사랑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구의 증명>과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어서였다나는 한참을 대답하지 않고 있다가 오히려 친구에게 너는 <구의 증명속 와 이 서로 사랑을 한 것 같냐고 물었다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니라고 답할 줄 알았다그러나 친구는 자신의 입가만 어루만지다가 말했다걔네 둘이 사랑을 한 거는 맞다고그 애들의 사랑이 옳다고 질문을 하면 아니요라고 답할 것 같은데 사랑을 한 게 맞냐는 질문에는 사랑을 나누었다고 답해야 할 것 같다고 말을 덧붙였다순간 머리가 띵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역겨운 사랑왜 친구가 역겨운이라는 형용사 뒤에 사랑을 붙였는지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알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게도 내가 보았던 모든 사랑을 다룬 매체들은 다 미성숙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예를 들어 내가 여전히 잘 보고 있는 이디스 워튼의 <여름>이나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같은 것처럼아직까지 성숙한 사랑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는 없었다어쩌면 친구가 말하는 역겨운 사랑은 미성숙한 사랑이 아닐까이런 걸 보면 성숙한 사랑 같은 건 없는 거일지도 모른다성숙한 사랑에 대한 조건은 없다는 것에도성숙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회 사상가들이나 철학가들 역시 성숙한 사랑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도우리는 사람이기에그리고 서로를 사랑하기에성숙한 사랑은 불가능한 거일지도 모른다.


친구와 카페에서 그리 이야기한 후나는 지하철을 타면서 다시 한 번 <구의 증명>을 읽었다처음에 보지 못했던 이 친구들의 사랑 가운데 미성숙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최진영 작가는 이런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진정한 사랑을 보여준다고 유명한 <구의 증명속 사랑은 미성숙한 사랑이라고그러니까 미성숙한 사랑도 진정한 사랑이 될 수 있다고우리 모두가 미성숙한 사랑을 했노라고 말했던 그 모든 경험들이 어쩌면 진정한 사랑이었노라고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구의 증명>을 읽으면서 작게 메모를 적었다.

 

사랑은 미성숙한 것어쩌면 우리 모두가 사랑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천 년 후에도 사람이 존재할까?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구의 증명

 

<구의 증명>은 아마 내가 책을 읽으며 가장 메모를 남기고 가장 형광펜으로 줄을 그은 책이지 않을까 싶다그 정도로 <구의 증명>은 내 머릿속에 넣고 싶은 장면들과 글들이 넘치는 책이었다비록 <구의 증명>으로 사랑이라는 그 추상적인 것에 대한 정의를 내려서는 안 되지만 내게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준 것들 중 하나로 남을 책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그래서 이건 개인적인 소망이지만, ‘의 바람처럼 이 책이 천 년 후에도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천 년 후의 사람들은 우리처럼 사랑을 다룰까그 시대에는 사랑에 대한 정의가 이미 명확할까어쩌면 나처럼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것에 정의를 내리고 싶어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작자가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니까 <구의 증명>이 오래토록 남아 우리지금 이 시대 사람들의 사랑은 이러했다는 것을완벽한 것이 아닌 부족한 것이 어떨 때는 완전함을 상징한다는 것을아주 오래토록 남아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었으면 좋겠다서로 사랑하기 위해 서로를 먹고 기억해야 했던 그 사랑을자신을 그 사람의 무덤으로 삼아 함께 하고 싶어 했던 그 미성숙함을.

 

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천 년 후의 사람들 모두에게 기억될 수 있기를 조용히 소망해 본다.

 

 

언젠가 네가 죽는다면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천 년토록 살아남아 그 시간만큼 너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천만년 만만년도 죽지 않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구의 증명

 

 

 

난바다

nanbada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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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7-31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한 계절이 지나갔다』 — 대상을 환원하지 않는 시선에 대하여

이 시집을 읽기 전 내가 알고 있던 것은 많지 않았다. 시인의 집이 화재로 전소되었고, 그 이후 이 시집이 출간되었다는 정도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이 시집 역시 화재 이후의 상실과 회복을 담은 기록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화재라는 사건이 시집의 중심에 놓여 있고, 그 경험을 어떻게 견디고 지나왔는지가 주된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다.가장 먼저 읽은 것은 자서였다.> 오래도록 어둡고> 우울한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거대한 불에 휩쓸렸다> 올해 봄날은 잿더미> 암흑세계였다> 생체발광할 수 있다면> 차가운 빛을 만들 텐데> 더듬어 시를 켰다> 절벽이 보였다처음 자서를 읽었을 때는 화재를 겪은 시인의 절망과 그 이후의 다짐을 압축해 놓은 글처럼 느껴졌다. 특히 ‘시를 켰다’라는 표현은 어둠 속에서 불을 켜듯, 시를 통해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미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생체발광’이라는 표현 역시 스스로 빛을 내고 싶다는 바람 정도로 이해했고, 마지막의 ‘절벽이 보였다’는 문장은 막막한 현실을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물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왜 ‘시를 썼다’가 아니라 ‘시를 켰다’일까. 왜 절벽은 ‘보였다’에서 끝날까. 하지만 처음에는 그 표현들을 깊이 붙잡기보다, 앞으로 읽게 될 시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장을 넘겼다.1부 ― 바깥을 오래 바라보는 시선1부를 읽으며 가장 먼저 받은 인상은 시선이 바깥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시인은 사람을 관찰하고, 일상적인 풍경을 오래 바라본다. 특별하거나 극적인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평범한 장면 하나를 붙잡고 그 안에서 천천히 사유를 이어 나간다. 읽기 전에는 화재라는 사건이 시집 전체를 이끌어 갈 것이라 예상했기에 이러한 전개는 다소 의외였다. 오히려 시인은 자신이 겪은 일을 서둘러 이야기하기보다, 먼저 타인과 세계를 바라보며 자신의 시선을 가다듬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그 과정에서 나는 1부가 단순히 바깥을 관찰하는 장이 아니라, 아직 자신의 상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전 스스로를 천천히 위로하고 마음을 정돈해 가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화재를 외면한다기보다는, 그것을 곧바로 언어로 옮기기에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 과정은 어쩌면 화재라는 사건을 견디기 위해 스스로를 천천히 위로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특히나 1부의 첫 시인 「이 세상에 없는 것」은 이후의 시집을 읽는 내내 계속 떠오르는 작품이었다.> 다 소모된 것과 사라진 것의 차이는 뭘까> 모두 끝났다고 말해도 될까> 이 세상에 원래 없었던 것 같은 그것을 찾아> 나는 어딜 이토록 떠도는 것인지이 구절을 읽으며 처음에는 상실을 겪은 사람이 스스로를 다독이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소모된 것’과 ‘사라진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 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미 쓰여 없어졌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혹은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는 걸까. 시인은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이 시는 화재 이후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이

  • 미빈
  • 2026-07-30
미워하지 않았다는 말은 사랑했다는 말과 같다

얼어붙은 호수의 경관은 새하얗고 텅 비어 보인다. 그러나 비었다는 것이 정말 텅 빈 것일까? 이 물음에서부터 김이듬 시인의 시집, 를 읽어볼 것이다. 여기 생활의 흔적이 남지 않은 빈 방이 하나 있다고 치자.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우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방, 혹은 생활의 흔적이 남지 않은 방을 보며 흔히 &lsquo;빈&rsquo;이라는 묘사를 붙인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lsquo;비어&rsquo; 있는 게 아니다. 사물의 관점에서 다시 방을 보았을 때, 주름 지지 않은 이불과 고요한 침대, 먼지 쌓인 책상과 마룻바닥, 잘 개어진 옷과 닫힌 옷장 등 많은 물건이 들어찬 방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처럼 일상적으로 말할 때 우리는 인간을 세계의 주체로 두고 본다. 인간은 사물과 달리 권력을 잡고 있으며, 주류라고 칭해지기 때문이다. 세상은 인간을 중심으로 인간의 언어로 설명되며, 이때 인간 아닌 &lsquo;그밖의 것&rsquo;들은 &lsquo;원래 없었던 것&rsquo; 같이 묻혀 버린다. &lsquo;그밖의 것&rsquo;들은 주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를 주류의 관점에서 해석할 때, 그 안에 남아 있던 비주류는 &lsquo;있으나 없는 것&rsquo;처럼 지워진다. 이 시집에서는 등장 인물이 &lsquo;너&rsquo;, &lsquo;나&rsquo;, &lsquo;친구&rsquo; 혹은 일상적인 직업, 화자와 가까운 특징을 지닌 인물 정도에 그치는 여타 시집들에 비해 더 다양한 사회적 위치나 직업, 특징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또한 재해의 상황들을 언급하며 그 속에서 피해를 입은 인물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고, 특정 사물과 비슷한 처지의 인물들을 연상시키도록 한다. &ldquo;폭풍&rdquo;/&ldquo;기근&rdquo;/&ldquo;역병&rdquo;/&ldquo;전쟁&rdquo;, &ldquo;동남아&rdquo;에서 온 &ldquo;가사도우미&rdquo;, &ldquo;생리대/초콜릿 바/담배/술&rdquo;과 같이 값싼 물건과 생활 필수품을 훔쳐 곧 &ldquo;감옥&rdquo;으로 &ldquo;떨어지&rdquo;게 될 &ldquo;도둑&rdquo;, &ldquo;사람&rdquo;에게 죽은 &ldquo;사람&rdquo;과 &ldquo;자기 혈육&rdquo;에게 죽은 &ldquo;가족&rdquo;과 &ldquo;마스크&rdquo;가 &ldquo;없&rdquo;어 &ldquo;승차를 거부&rdquo;당한 &ldquo;누추하게 젖은 사람&rdquo;, &ldquo;몽골인 노동자들&rdquo;, &ldquo;죽어 있&rdquo;는 &ldquo;식물&rdquo;에서 떠오르는 방치된 사람들과 &ldquo;태어났고 평범하게 성장했고 온순했으며 살해당한 소녀&rdquo;와 &ldquo;식물이 죽고 나서야&rdquo; &ldquo;그 식물의 이름을 알게 되&rdquo;는 세상의 무관심함에 놓여 있는 사람들, &ldquo;거리 곳곳의 무장군인들과 탱크&rdquo;, &ldquo;고독사&rdquo;, 태어나

  • 방백
  • 2026-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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