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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믿음

  • 작성자 모모코
  • 작성일 2024-10-23
  • 조회수 1,129

마지막 시 쓰기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미래의 쓰기라는 과제를 내주었고


 제출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믿는 것으로 시를 쓰기

 다시 만날 때까지 계속해서 쓰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종이를 받아들고서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두며 나는

 

 내가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무수한 블록을 쏟아놓고 천천히 조립하는 아이처럼

 두리번거리며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다 아주 어둠 뿐이었지만


 저편에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이마를

 조용히 쓸고 지나갈 때


 일찍이 땅바닥 보는 법을 알아버린 스킨답서스

 그 곁에서

 식물을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던 룸메이트의 옆모습이

 흰빛처럼 쏟아져 내렸다

 

 어떻게든 식물을 죽이지 않으려 했지만 

 살리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니었던 

 너는


 화분 하나에게 최선을 다했다 마치 쏟아야 하는 몫이 있다는 듯 매일 창가로 가서 바라보았으니까


 반려식물이 시들 때마다 화훼 시장에 다녀오던 너에게


 가끔 묻고 싶었다 

 아직이냐고 


 그러니까 사랑하고 싶을 뿐이냐고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기를 소개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침이 오면 내 시끄러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서 화분을 돌보던 모습 눈을 뜨면 언제나 창문 옆에 꼿꼿하게 서 있던 너를


 속눈썹에 붙은 잠기운을 털어내지도 못한 채 쳐다보았다

 오래도록 남았던 잔상


 하얀 빛처럼 넘실거리는 옆모습을 위해 썼던 시들 가방 속에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선생님이 누구를 집요하게 기억하는 중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어째서 대답하지 못했는지


 사랑한다는 말의 범주는

 손목에서 헐렁하게 흘러내리는 머리끈 같고 


 빛속에서 

 다시 오래된 끈으로 머리를 묶은 채 걸어나가는 밤


 정류장은 아직 먼 곳에 있었지만

 아직은 낱장으로 날아다니는 시들로 묵직한 가방

 그 무게를 믿으면 

 어둠 속에서도 희미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제출하기 어려운 말들만큼 

 깊숙한 발걸음으로 나아가며


 우선 계속해서 걸어보기로 했다

 

모모코

우린 너무 아름다워서 꼭 껴안고 살아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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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는 연습

마음을 오래 쥐었다가 놓으면손금이 깊어진다는 걸 알기 전 그러니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창문을 열면 골목이 길게 쏟아졌다 넘쳐흐르는 아이들의 웃음 뒤엉켰다가 다시 흩어지는 동안 흙먼지처럼 피어오르는 즐거운 비명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 모두 모여서 길이 되었다 커튼 아래 숨어 버렸던 그때 펄럭이는 정오가 나를 휘감고 아이들의 옆으로 나를 데려다 놓을까 봐 나는 아직 아무 겉옷도 챙겨 입지 못했는데 내 겉옷은 서랍 가장 안쪽에 살고 있었다 긴 소매는 팔을 접어둔 채 잠들었고 마음에 드는 외투는 늘 계절과 맞지 않았다 쉽게 잠들고 말던 어린 날 눈을 감을 때마다 새로운 길을 상상했다 내일은 내게 어울리는 날씨가 찾아올 수 있도록 꿈을 꾸며 깊어졌다 외투의 주름이 스치는 곳에손금이 자라났고상처처럼 골목처럼 선명해져갔다 들었다가 내려놓는 일 사이에는 얼마나 많은 기분들이 손끝으로 모일까 나는 자주 굽는 어깨를 가지게 되었다 겉옷을 쥐었다 놓으면 결국 나는 놓아버린 사람 창문처럼 반쯤 열린 귓구멍 사이로 야 너도 나와 왜 안 나오는 거야 하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나는 조금씩 깊숙해졌다 그러니 그때내가 아직은 놀이터에 가지 않고 바깥으로 걷지 않고 서랍 속을 방처럼 맴돌고 있을 때 시간의 주름을 놓아주며무수히 뻗어나가는 꿈을 꾸었다

  • 모모코
  • 2024-08-21
초능력자의 메일링 –메일링 서비스를 하며 느낀 것

이슬아 작가의 월간 이슬아, 문보영 시인의 일기 딜리버리. 그런 메일링 서비스들을 보며, 언젠가 나도 사람들에게 나의 글을 보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어딘가에 올려서, 불특정 다수가 나의 글을 보고 가는 것 말고. 애초부터 독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으므로 그들을 위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 그건 작년 겨울에 어렴풋이 떠올린 것이었다. 언젠가, 그러니까 언젠가 해보아야지. 그런데 언제 하지? 언젠가는 해 보겠지. 그렇게. 그리고 나는 올해 초부터 여름까지 고선경 시인의 메일링 서비스를 꾸준히 신청하였다. 나는 그가 ‘럭키 슈퍼’로 등단하였을 때부터 큰 팬이었다. 웹진 ‘비유’에 실린 시편을 보고서 더욱 팬이 되었는데, 가볍고 산뜻한 어조가 지닌 위트로 무언가 핵심을 찌를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능력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평생 쓰지 못할 것 같은 시를 쓰고 있다고 해서 좋았고, 그런 시인이 갓 구운, 따끈따끈한 시와 산문을 내게 배달해준다는 건 큰 기쁨이 될 것 같았다. 2023년 초, 나는 굉장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으나 고선경 시인이 배달해준 시편들을 읽으며 어떠한 용기를 얻었다. 얘들아 문예창작과는 더 슬픈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니야 게임을 더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야 계속 지고도 다음 판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고선경, ‘수정과 세리’ 中 이 시는 1월의 중반 메일링으로 처음 받아보았고, 이후 고선경의 첫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에도 수록되어 내가 자주 읽는 시가 되었다. 내가 시인이라는 꿈을 가진 이유, 굳이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겠다고 다짐한 이유, 지금 나에게 매너리즘이 들이닥친 이유를 고선경 시인의 텍스트와 함께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열과 함께 아주 꿈을 꾸는 듯한 기분으로 시를 썼는데, 이것이 ‘래빗 헌팅’이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손에 쥘 수 있다면 당도 높은 복숭아일 거야 쉽게 물러지는손끝으로 망설임 많은 과즙이 흘러내린다 아직도 카드는 뒤집어지길 기다리고 있고 (...) 직선으로 뛰어가는 토끼 곡선으로 떨어지는 카드 잠긴 문을 열어본다그림자의 형태는 계속해서 바뀐다 울렁거리지는 않는다 나는 무언가 막힌 것을 뚫어버리듯 이 시를 썼다. 모든 건 사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고, 나의 이야기를 막힘 없이 써내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나는 왜 이렇게 괴로워 하는 걸까. 그런 마음들로. 그리고 나는 이 시를 ‘글틴’을 비롯한 나의 블로그 등에 업로드 하였고, 운 좋게 글틴 시 부문 멘토님들께서 나의 시를 월장원으로 선정해 주셨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정말로 놀라게 된 계기는, 모 sns를 하던 중 발견한 게시글 덕분이었다. 올해 여름부터 친한 동생의 권유로 sns에 글을 올리는 계정을 만들었다. 내게는 몇백 명 정도의 구독 계정이 있었으나 그들은 대개 비공개 계정이었고, 나 또한 겁이 많아 따로 소통 창구를 마련하지 않아 사실 내게 그런 구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어느 밤, 한 구독자분께서 내게 ‘글틴’에서 본 시가 이

  • 모모코
  • 2024-01-08
말할 수 없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괴물로 자라난다 –영화 ‘괴물’을 보고

*감상에 앞서, 본문에는 최신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유의 부탁드립니다.** 노래와 함께 감상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각자가 생각하는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자너부터 시작 괴물은 말야 초록색이고 이빨이 아주 커다음괴물은 말야 손톱이 길고 냄새가 나다음괴물은 말야 밝은 걸 싫어하고 검은 피를 흘려다음괴물은 말야 시끄럽게 기침을 하고 사람을 먹어 다음 괴물은 말야……괴물은 말야…… 긴 침묵이 지나고하나둘씩 눈을 떴을 때 그 애는 울고 있었다 너 왜 울어?모두가 그 애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흙을 파내려가는 뾰족한 손톱을 생각해 상처 입은 무릎을, 배고파 잠이 오지 않는 매일 밤의 뒤척임을, 빛이 머리를 관통할 때의 저린 통증을 생각해 백은선, 「진짜 괴물」 中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신작, 네가 좋아할 것 같아. 올해 여름, 일본에서 유학 중인 언니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언니는 일본에서 우선 개봉한 영화를 보고 내게 연락한 것이다. 그 메시지는 내가 생각에 잠기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란 대체 무엇일까 고민해보게 된 것이다. 나는 여러 예술 중에서도 영화와 시를 가장 사랑하는데, 아무래도 각각 카메라로, 언어로 특유의 호흡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공통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영화는 러닝타임 내로, 시는 장르적 특성으로 인해 두 작품 모두 함축과 비유가 가득 담긴다. 이로써 관객과 독자에게는 극대화된 ‘이미지’가 다가오는데,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아름다운 서사가 진하게 농축된 풍경이 보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제한된, 약 2시간이라는 시간 내에서 가장 영리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드러내는 영화이다. 단순히 강하게 주장하지 않고, ‘영리하게’ 주장하는 것이 포인트이다. 카메라의 이동, 시점, 편집과 같은 영화적 요소와 시놉시스와 대사 등 서사적 요소가 결합되어 진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만드는 영화, 그런 것이 좋다. 특히나 나는 ‘그 무엇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하여 말하는 영화가 좋다. 나는 사람의 가장 주된 원동력이 분노나 우울이기보다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감정들도 좋은 원동력이 될 수 있으나, 결국 우리가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누군가를, 또 어떤 것들에게 기꺼이 마음을 주면서 가지는 기쁨인 듯 하다. 그리하여 이 차가운 오늘날, 어쩌면 혐오와 냉소로 21세기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하여 말하려는 영화가 좋다. 나는 언니가 말한 고레에다 감독의 신작, ‘괴물’이라는 영화의 정보를 나름대로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예고편과 간략한 줄거리를 볼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었고, 이건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영화겠거니, 생각했다. 어떤 시집을 요약해보라고 했을 때면 난데없이 장황하고 난해하게 말하게 되지만, 직접 읽을 때면 무엇보다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비슷한 영화들도 있으니, 나는 직접 보는 것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3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고대하던 ‘괴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날은 시월의

  • 모모코
  • 2023-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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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다윗

    정말 아름다운 시네요.....

    • 2024-11-15 15:46:20
    위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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