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사랑, 사랑
- 작성자 김희수
- 작성일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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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불우한 어린시절에서 비롯되는 고통이 아니라 나르시시즘에 빠진 인정 욕구에 가깝다. 결국 사랑받는다는 건 인정받는다는 것이라서,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데서 오는 남에 대한 무심함. 관계를 쉽게 끊어 버리려 하고 원하던 것도 쉽게 포기하는 기질. 그 보잘것없는 능력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자위하는 왜곡된 자존심.
그것들은 나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 왔다. 내가 너무 좋아서, 나를 완벽한 무언가로 보고 싶었기에, 나의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모든 것들을 삶에서 배제하고자 했다.
이런 성향이 처음 드러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사람들이 학폭이라고 부르는-대단한 사건은 아니다-몇몇 일로 정신이 피폐해져 있을 때, 나는 어린 시절을 잠식하고 있던 비대한 자아를 처음으로 목격했다.
더 어릴 때는 그것으로 인해 많은 친구들에게 고통을 줬다. 그러고도 전혀 반성한 적이 없는 나는 그 유명한 오은영 박사에게 간 적도 있다.
아무튼 6학년 때 세상에 믿을 건 나뿐이라고 생각하며 남들과 대화를 하지 않고 방구석에서 한 생각들은 나를 일종의 타락으로 이끌었다. 나를 괴롭게 하는 세상에 대한 혐오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자원봉사 같은 선행을 무조건 위선으로 여기게 된 것도 그때다. 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편지를 쓰라는 선생님의 수행평가에 폭언을 써서 제출했다. 선생님이 곧바로 분노하는 모습은 내게 더 큰 확신을 줬다. 모두 꽉 막힌 사람들이라 생각을 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나만이 그들과 다르고 열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작 꽉 막힌 것은 나였다. 그때부터 나는 타협하지 못하고 내 이득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세상을 부정하는 것은 본능이 되었고 시간은 이것을 희석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더 진해지게 만들었다. 나이가 더 들었을 때 나는 정서적인 괴물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이런 성질은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우울증을 불러왔다. 병원에서 받아본 심리 검사에서는 모든 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나의 성질을 설명했다. 어떤 것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신적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지극한 유아론자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나를 발견하고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기를 원했다. 자기애만으로 나의 능력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깊은 인정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내 생각과 고통을 인정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중학교 2학년, 내가 원하는 것이 진부하다고 생각한 사랑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망가져 있던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와 준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 또한 나처럼 망가진 사람이었다. 학업의 압박과 끓어오르는 해방욕 사이에서 그녀는 외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만남은 짧았고 나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것은 내게 단초를 줬다. 이 허무함을 채워 줄 묘약이 무언인지 슬슬 깨달아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것과 내 타락을 분리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욕구가 중학교 3학년 때에 갑자기 폭발했다. 뒤늦은 깨달음이 지금껏 몰랐던 내 설움을 깨운 것일까.
그때, 눈보다 하얀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피부도, 마음도, 미소도, 눈빛도 투명할 정도로 하얀색이었다. 혼탁한 나와는 전혀 달랐다.
내게서 염세주의를 벗겨내는 것을 처음으로 성공한 사람이기도 하다. 물론 그녀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아마 내 내면에 일어난 변화에 그녀는 큰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런 존재를 살면서 처음 본 나는 신을 만난 것처럼 너무나 서툴게 행동했고 결국은 빌어먹을 이기주의로 회귀하여 모든 것을 망쳤다. 무려 세 번이나 주어진 기회를 나는 걷어차 버렸다. 지나친 집착 탓이었다.
그녀의 곁에는 그녀처럼 하얀 사람이 섰다. 그는 나보다도 복잡한 내면을 가졌으면서도 혼탁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저열한 욕망 덩어리에 불과한 것에 삶을 낭비했기 때문에.
“미안해, 미안해….”
내가 그토록 힘들게 하고 상처준 그녀가 한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순백색의 마음은 내 우물 속 세상을 붕괴시킨 천사의 강림이었다.
그녀의 선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그녀를 다치게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억지로 연을 끊었고 그 또한 상처를 주고 말았을 것이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나라는 악마를 그녀와 만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전력을 다 할 것이다.
평생을 비겁자로만 살아온 나는 ‘정상적’으로 사랑받을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나의 타락은 결핍을 충족하고자 사랑을 갈구했지만 그 방식은 집착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애정 속에 담겨 있을 때만 일시적으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지만 그 속에서도 어둠의 검은 촉수는 잔존했다.
첫 번째 사랑에서도, 두 번째 사랑에서도 구원받지 못한 것은 끝끝내 살아남은 그것 탓이었다. 달리 끊어내지 못한 내 탓이었다.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타락. 그리고 반대편에서 일말의 인간성을 유지하게 손잡아주는 사랑. 타락은 나의 집처럼 안전했지만 나를 고립시키는 도구였고, 사랑은 알 수 없는 무언가였지만 나를 그 고립에서 꺼내줄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간에게는 무조건 일관된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나이기에, 나는 그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간 자체가 아까웠다. 그래서 내 선택은 언제나 어두운 쪽이었다.
세상을 모두 부정하고 파국을 바라는 괴악한 심리상태. 나는 그것에 너무도 익숙했고 내 모든 것은 그쪽에 있다.
반면 사랑은 몇 번을 겪어도 언제나 낯선 것이어서 내가 일궈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왜곡된 집착 외에 제대로 사랑해본 적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나를 끌어당기던 어둠은, 실은 또 다른 연모의 감정이었다.
나에 대한 갈구. 나에 대한 집착. 나는 애초부터 사랑 외의 것에 삶을 맡긴 적이 없었다.
자기애에서 비롯된 모든 생각과 고민은 변명에 불과했다. 나는 나 자신과 타인 사이에서 누구를 더 사랑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나름대로 논리를 쌓아가며 세상에 대한 경멸을 키워가던 내가 이렇게 사랑에 미친 사람이었다니.
하지만 이것을 안 이상 나는 이것을 더 돌아보아야만 했다. 사랑 앞에서 나는 언제나 주저했지만, 이대로 이어질 세상에 대한 경멸은 나를 갉아먹을 뿐이었다. 나는 마침내 이 놀라운 감정을 진지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타락의 뿌리를 제거한 채로, 순수하게.
순수한 사랑. 내가 어렵게 이룩한 어두운 세계를 설렘이 단숨에 몰아냈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했다. 교감은 내가 단절했던 세상에 대한 소통을 이어줬고 헌신은 내게 살 의지를 줬다. 그 모든 과정은 사랑을 깨닫는 그 순간 1초면 충분했다.
타락. 그것은 사랑의 일종이었지만 제멋대로 자라나서 나와 주변인들까지 날카롭게 찌르는 가시나무가 되었다. 염세주의가 세상을 어둡게 물들였고 불신은 소통을 막았으며 좌절은 나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이것은 충분히 크기를 키우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두 가지 사랑은 열망이라는 공통된 특징으로 내게 섞여서 받아들여졌다. 그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된 이상 나는 타락을 잘라내야만 했다.
물론 세상 모든 걸 다 사랑하겠다는 기독교적인 박애주의로 이 글을 마칠 생각은 없다. 그건 내가 보기에 미친 사람이나 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그냥 소박한 다짐을 하나 하고 싶다. 앞으로 사랑 앞에서 변명하지 않겠노라고. 변명은 아름다운 사랑을 집착으로 잘못 자라나게 만드는 원흉이다. 나는 한 번 사랑할 때 진심을 다해 사랑할 것이고, 그 대상이 다름아닌 나라고 해도 그 마음을 세상에 대한 염오감으로 돌리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오래된 친구인 집착과 결별할 수 있다면, 상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나는 내 심장마저 깎아낼 수 있다. 불가능이라는 벽은 거짓말이라고 외치겠다.
그렇게 집착을 떨쳐낸 뒤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저 순수하게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
아아, 곁에 아무도 없음에도 내 마음을 통통 두두리는 작은 설렘.
내 볼에 키스하는, 작고 예쁜 사랑 사랑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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