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의 말
- 작성자 방백
- 작성일 202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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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에요
농담이야
농담
농담이었어요
소라는 실없는 소리를 해서 사람들을 싱겁게 만드는 게 특기였다. 그런데 어느날 소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담임 선생님이 아침부터 시끄러운 교실에 들어오며 문을 조용히 끌었을 때 난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선생님은 천천히 걸었다. 소음 속을 천천히 아주 느리게.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집에서 먹은 감기약이 아직 넘어가지 않은 채 목구멍을 차지하는 것 같아서였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화면이 확 밝아지며 메시지 창이 떴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차분하게 진정시키며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메시지를 꾹 누른다. 선생님의 입이 열린다......
-농담이야!
-소라가 토요일에 하늘나라로 갔다.
거의 동시에 두 문장은 머릿속에서 뒤섞였다. 시신경과 청각세포를 분주히 그리고 일정하게 오가던 신호가 서로 어지럽게 얽히는 것 같았다.
나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걸 간신히 참았다. 남몰래 숨을 들이마시며 메시지가 온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 그런데 이틀 전이다. 금요일 저녁, 소라와 놀고 헤어졌었다. 그날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다 나도 모르게 잠들어서 읽지 못한 문자였다. 핸드폰을 재부팅하며 알림이 중복으로 뜬 것 같았다.
그날부터 난 소라의 죽음이 왠지 재미없는 농담처럼 느껴졌다. 내가 보지 못한 소라의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었지만 학교에서 소라의 흔적은 빠르게, 조심스럽게 사라졌다. 정확히 그 속도보다 한 박자 빠르게 '소라'는 금기어가 되어있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첫날 나는 소라의 사물함 앞에 섰다. 그리고 소라가 알려준 비밀번호를 눌러 장금장치를 풀었다. 사물함 문을 연다. 안에는.. 매미가 들어있었다. 톡톡. 누군가 등을 두드린다. 소라다. 뒤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 빙긋이 웃고 있었다. 농담이야! 그리고 나는 소라의 집에 있었다. 천장에 목을 매단 소라가 힘없이 늘어져 있다. 바닥을 바라보자 농담이야! 라고...
꿈에서 깬다
소라는 농담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그 전엔 우주나 외계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모든 사람들은 소라의 말을 가볍게 웃어넘겼다. 무슨 그런 영양가 없는 소리냐며 타박할 정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웃기지는 않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애매한 말.
아침에 일어나서 곧바로 냉장고 앞에 섰다. 기분 나쁜 꿈이었다. 이제 소라는 잊어버리라고, 눈빛으로는 열망하지만 입 밖으로는 내뱉기 힘든 말. 아마 내 주변인들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냉수를 들이켠다. 나는 소라를 잊고 싶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는 잊으면 안됐다. 왜냐하면 소라가 내게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농담이라는 변명 없이. 처음으로 진솔하게 얘기했었다. 소라는 여름방학이 시작될 때까지 매미를 키워달라고 했다. 매미가 잘 살 수 있도록 지켜봐달라고 했다. 그게 금요일 저녁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새벽까지 메시지를 나누었고 소라는 한탄하듯이 어떤 활자를 전송했다.
-아 그냥 죽을까.
-왜?
-그냥ㅋㅋ
-어떻게 죽을 건데
-목 매달아서
날것인 문장에 잠시 정신이 아득해져 걱정된다는 말을 했다. 그러곤 시답잖은 걸로 떠들다가 잠든 것이었다. 소라가 남긴 마지막 활자. 스크롤을 올렸다 내리며 고민하기가 무색하게 '농담이야!'는 앞의 대화와 아무 연관이 없이 덩그렇게 보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소라가 죽고 난 뒤, 혹은 죽으면서. 나에게 자동으로 보내지도록 스스로 예약 메시지를 설정한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ㅡ
죽고싶어.
농담이야라는 말이 남들 다 아는 습관이었다면 소라에게는 나에게만 알려준 말버릇도 있었다. 죽고싶다는 말이었다.
소라는 아낀 것이 망가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물건이나 상황 가릴 것 없이 마음을 많이 쏟았을 수록 조그만 흠집 하나에도 남들보다 크게 스트레스 받았다. 마이를 입지 않아서 처음으로 선도부에게 학생부가 그인 날이나, 청소시간에 청소를 안 해서 담임 선생님께 꾸지람을 들었을 때 그랬다.
소라는 엉엉 울었다. 숨이 가쁘고 마음이 다 헐어버릴 정도로 울었다. 나는 소라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소라는 내게 죽고싶다고 말했다. 가끔은 아끼는 것을... 잘 가꾸는 게 힘이 들 때도. 소라는 그냥 그 말을 뱉을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의 목적이 나를 듣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가 듣도록 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난 묵묵히 소라의 옆에 있었다.
죽고싶다.
죽고싶어.
죽을까
아 그냥 죽을까...
그게 간절한 진심인지 그렇게까지 진심이 아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진심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해야지만 쏟아낼 수 있는 감정이 있었던 것이었다. 소라에게는. 마음으로만 담고 있거나 머릿속으로 반복해서 떠올리기엔 벅찬 감정. 스스로의 귀에 폭언을 때리고서야 부서지고 흐트러지고 끌어모을 수 있는 감정이.
ㅡ
흰 외뿔이 반듯하게 돋은 소라의 이마, 앞머리를 내리면 잘 가려져서 괜찮다고 말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소라의 뿔을 바라보았다. 매일 각질이 벗겨져 나가듯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던 걸까. 아니면 소라가 직접 뽑은 것일까? 알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흔들리는 소라의 몸이 보였다. 이제 이 꿈에도 꽤 익숙해지고 있었다. 오늘 나는 조금 과감하게 소라의 방에 들어가려고 한다. 일단 소라부터 내리고.
부엌 의자를 끌고 와 소라의 어깨가 머리에 닿을 만큼 올라갔다. 나는 침착하게 끈을 잘랐다. 한참이 지나자 소라가 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황급히 확인해보니 다행히도 부러지거나 꺾인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뒤집어진 소라를 바른 자세로 눕히고 뿔이 났던 자리를 찾아봤다. 아무 흔적도 없었다. 이상하네? 역시 이 뿔은 원래 떨어져 나가야 하는 것이었을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라의 방문은 바로 맞은편에 있었다.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리니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소라의 방을 구경했다. 전에 봤던 것과 별 다를 게 없었다. 거울 앞은 화장품으로 어지러웠고 방바닥엔 옷가지가 널려 있긴 했지만 내 방에 비해서는 깔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조금 시선을 돌렸다. 소라의 책상에 가까이 다가갔다. 책상 위에는 끝이 조금씩 닳은 일기장이 있었다.
이 일기장에는 무슨 말이 쓰여 있을까? 이걸 읽으면 소라를 다 알 수 있게 되는 걸까?
사실 나는... 조금 우울한 상태였다. 소라를 생각할 때마다 소라가 내게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이 함께 떠올랐다. 혼자 있을 때 난 그 모든 것들의 진실과 거짓을 판단내렸다. 이건 이래서 진심이었고 이건 약간 거짓말이 포함되어 있었을 거야. 하지만 날 무기력하게 만드는 건 그런 것이 아무 의미 없다는 점이었다. 소라는 죽었으니까. 토요일에, '농담이야!'를 마지막으로 영영 떠나버렸으니까.
그래서 난 소라의 모든 말을 믿어도 되는지. 소라의 진심을 곧이곧대로 이해해도 되는지. 소라가 죽지 않았다면 영원히 존재했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소라가, 내 안에서 전혀 다른 소라로 박제된다면. 나는 그 사실이 슬펐다. 소라가 과거의 흔적들로만 남아있을 수밖엔 없다는 것. 누구든지 소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을 얹어도 소라는 결국,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 동시에 확실한 증명이 가능한 상태로 남아버린 것이었다.
ㅡ
소라는 여름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소라는 거의 모든 종류의 물리적 고통을 잘 참았다. 그런데 그런 소라는, 고통이라고 범주해야할지도 의문인 딱 한가지 고통에 익숙하지 못했고, 그것은 더위였다.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을 때, 병문안을 온 소라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픈 게 아무렇지도 않아.
- 어떻게 그래?
- 쉬워. 아픔을 느끼는 상황에서 잠시 행동을 멈추면 돼. 그리고 시선을 멀리 둬 봐. 멀리... 저기 시계 바라봐.
됐어? 그다음엔 네게 가장 인상 깊은 상황을 떠올려봐. 강렬한 감정일 필요 없어. 오히려 무슨 감정인지도 알 수 없는 네가 느낀 것인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정적인 순간일수록 좋아.
이제 정신을 함께 '멀리 둬'. 그 상황의 너를 지켜본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현실의 감각보다 다른 순간의 감정에 집중하는 거야.
- 이해할 수 없어.
소라는 기대도 안 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 그럴 줄 알았어.
- 그런데 너는 뭘 떠올렸던 거야?
조금 당황했는지 눈동자가 옆으로 굴러갔다. 나는 소라가 '농담이야!'라고 이야기할 줄 알았지만 소라는 얼결에 자신없이 대답했다.
- 나? 나는... 그냥 어릴 때?
그리고 나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버스에 있을 때를 상상한다.'
풍경이 계속 바뀌는 기묘한 어둠. 버스가 도로를 달려나갈 때 이대로 어디론가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감각.
'그러면 고통은 아득해지고 정신이 묘연해진다. 이 순간의 나는 딱히 존재하지도 않고 시간은 무수한 날로 쉼없이 고정된다... 현실의 나는 동시에 존재하는 수많은 찰나의 감정에 묻히고 모든 고통이 숨죽이는 게 느껴진다.'
나는 일기장을 덮었다.
저린 것도, 맞은 것도, 부딪힌 것도. 추워서 손끝이 얼어붙는 듯한 아픔도 잘 참았지만 더위는 참을 수 없다고 했다. 더위는 고통으로부터 소라를 해방시킬 수 없는 유일한 존재였다. 소라에게 더위는 현실이었고, 그래서 소라는 여름을 싫어했다.
소라는 더위를 잘 탔다. 탈탈 회전하는 선풍기에 머리를 내밀고 땀을 식히는 소라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자살한 소라를 바닥에 내려두고 소라의 일기장을 읽다가 뜬금없이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생각하다니. 꿈이어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성적으로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열린 방문 너머로 소라를 바라봤다. 푸석하고 힘없는 머리카락이 보인다. 괜찮아. 이건 현실이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이런 일도 소라가 말한 '순간'이 되는 걸까. 이 '순간'으로 언젠가 나의 정신을 '멀리 둘' 수 있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그리고 미래의 시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지금 나는 나를 떠올리는 나를 인지할 수 있을까.
ㅡ
점심을 먹고 교실에 돌아와 점심약을 삼켰다. 희고 맨들맨들한 알약이 식도에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거북하게 내려간다. 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더니! 깔깔거리며 비웃던 소라의 목소리도 귓가에서 선명하게 어른거렸다.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기 싫다고 했다. 모든 일에서 완벽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스스로가 너무 밉고 그렇게 하나씩 생각하다보면 해야할 일이 숨 막히도록 무거워진다고 했다. '삶을 살아간다' 미래를 '유지한다'는 행위가 하루하루 힘들어서 이 눈덩이는 왜 불어나기만 하는 건지. 제발 숨 좀 쉬게 해줄 수는 없는지. 왜 하고자 하는 일은 한꺼번에 몰아서 오는 건지. 죽을 만큼 숨막혀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살지 않음으로써 삶을 이어나가는 모든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말이었다. 죽고 싶어서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게 죽을 것 같아서 살기 싫다고 무작정 중얼거리게 되었다고 했다. 하루하루 힘이 빠진다고 했다. 완벽한 하루는 늘 있을 수 없는 거냐고 했다. 그 한마디에도 마음이 이렇게 화살을 맞은 듯 아프게 무너질 수 있는 거냐고 했다. 마음이 이렇게 가볍고 말랑말랑한 거냐고 했다. 마음이 단단하지 않은 걸까. 마음이 단단한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버린 시간들이 후회스러워서 머리를 치고 싶다고 했다. 내가 이 순간만 예민한 상황인 걸까. 분명 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전에, 그 전에를 생각하면 더 힘들어서 그때는 그게 숨막히도록 아팠는데 기대가 기대가 버겁다고 했다. 스스로에게 지운 기대가 무겁다고 했다. 과거의 내가 모든 순간 버틸 수 없게 비어 있던 과거 더 과거... 지금보다 더 어릴 적의 내가 힘들어서 힘들고 싶지 않다고 그 때에는 그게 최선일 수 없었다고 아니 있었다고 집에 있어도 집으로 가고 싶다고... 매일매일이 어떻게 그렇게 바쁜 거냐고. 내일 할 수도 없는 내일 해야 할 일을 떠올리다보면 죽고 싶었다. 당장의 일을 그만두고 놓고 회피하고 도망치면 더 커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입버릇처럼 그저 죽음으로써 모든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죽고 싶다'라는 말 뒤에 '농담이야! 하는 말처럼. '농담이야!' 뒤에 불현듯 '죽고 싶다'고도 하는 말처럼. 힘들게 산 사람도 있는데 그런 걸로도 사람은 죽고 싶어지니? 스스로의 마음을 왜곡 없이 들을 수 있는 건 스스로밖에 없는데. 그런 휩쓸린 마음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반박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 남들은 얼마나 더 그런 말을 하고 싶을까. 이런 내 모습이 또 얼마나 말 할 수 없이 한심하고 우습게만 들릴까. 해명하듯이 감정을 쏟아내는 것보다 차라리 농담처럼 가볍게 이야기할 때를 더 좋아해. 말을 덧붙이는 행위 자체에 쓸 마음이 모자라... 그래서 짧은 말이 좋았어. 별 생각 없어 보이잖아. 농담이야. 죽고 싶어. 하루를 돋우는 추임새처럼 쓰는 것 같잖아. 모든 말을 다 듣고 나를 정확히 이해한다고 믿는 상태의 사람들에게 철없이 한심한 인간의 틀로 어떤 식으로든 박히긴 싫었어. 차라리 정말 한심한 인간.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무슨 생각이나 하긴 하는지. 보고 있으면 그저 철 없기만 한 인간. 그뿐인 게 더 좋았어.
다정한 윤곽이 빙그레 웃음지었다. 나는 이 여름이 너무 뜨거운데 소라에겐 아무렇지 않나보다. 이제 소라는 언제든지 이곳을 떠날 수 있게 되었나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울컥하고 울음이 목구멍에 부딪혔다. 너. 아무런 말이라도 해봐. 너 정말 괜찮니? 이젠 덥지 않니? 매미가 시끄럽게 울기 시작했다. 가슴이 토막날 것처럼 아파왔다. 생각을 하자 생각. 행동을 멈추고, 시선과 정신은 멀리... 감정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이러면 소라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소라를 이해하고 싶은 것처럼 소라도 나를 이해하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멀리 두는 법'을 알려준 것일까? 아프다. 아팠다. 아무리 애를 써도 소라의 말대로 할 수 없었다. 매미는 7년을 땅속에서 기다리다가 여름 한 철 울고 죽는대. 그런데 어떤 매미가 기다리는 자리엔 아스팔트 도로가 깔리기도 하고, 때 이른 홍수에 모조리 휩쓸려 익사하기도 하지.…… 그래. 그런 것이었을까. 애초에 세상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던 걸까. 나는 정말 궁금해졌어. 세상은 원래 아름답지 않은 건지. 그럼 내가 생각했던 건 다 무엇이었을까. 소라가 생각한 세상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세상을 아름답지 않도록 만들고 아름답지 않은 세상에 왜 사람들은 존재할까? 숭고한 의미 없이 다들 살아가는 일을 헤치워나가듯 사는 것일까? 사람은 아름답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었던 걸까?
세상 모든 이에게는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소라야 나는 이제 그런 말에 더 이상 감동할 수 없어져 버렸어…… 그러면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어떻게 되는 거니? 네 죽음이 누군가를 꽃피울 수 있게…… 그런 죽음이었다면 조금 더 나았을까. 그런 죽음이었다면 나는 네가 태어난 이유가 꽃피우기 위함이었다고 기뻐했어야 하는 걸까…… 아니 너는 그저 죽었을 뿐인데 대체 그곳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알 수는 있는 걸까…… 세상 모든 이에게는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너는 그렇게… 쓸쓸하게 외롭게 홀로 마르다 자살해버리는, 그게 네가 태어난 이유라고 내가 말 해야 하는 걸까? 그 말이 너에게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나는 희생에도 냉소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 희생이 태어남의 목적이었던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 존재하겠니? 만약 정말 그런 세상이라면 그렇게 유지되어야만 하는 세상이라면 그 아름다운 희생의 세상은 또 얼마나 극악무도한 세상이니?
ㅡ
밧줄은 소라의 눈에 꼭 천국처럼 번쩍번쩍 빛을 내고 있었다. 남들 보기에 한심한 '회피형 인간'의 최후라고 소라는 생각했다.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고 행위 그 자체에서 벗어나 쉬고 싶었던 소라에게 모든 것을 끝내줄 가장 안락한 '집'이 소라를 위해 있는 것 같았다. 그 문을 넘어가면 무엇도 없고 그저 '더는 없을' 뿐인 '끝'이 온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몸에서 기운이 쭉 빠지고 손 들 힘도, 일어서거나 발로 의자를 박찰 힘도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소라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고개도 들 수 없었고 더는 죽음에 희망과 기대를 품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어졌다. 어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냥 쉬고 싶었다. 지독하게 지독한 고통이 끊임없이 소라를 납작하고 단단해지도록 짓눌렀다. 소라는 기운찼던 모습을 잃고 다리를 애써 끌었다. 맨발이 힘겹게 턱 턱 부딪혔다. 줄을 바로 잡기도 힘들어 머리를 살짝 집어놓고 흔들어 목이 잘 고정되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소라는 그 상태로 한참이나 가만히 서 있었다. 소라는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신을 '멀리 둔' 것처럼 모든 일이 그저 무덤덤하게. 그리고 힘겹게 진행되었다. 채칵 채칵 시곗바늘 소리가 한참을 울려퍼졌다. 그러더니 소라는 한순간 어떤 기력으로 의자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커다란 의자가 쾅 소리를 내며 멀리 날아가 넘어졌다. 마지막으로 의자를 밀어내기 위해 힘을 모은 것이었다. 소라는 버둥거리지도 않고 축 늘어졌다. 그 상태로 소라는 죽었다. 간결한 결말이었다.
ㅡ
소라의 말은 소라가 소라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매개체였다. 그리고 소라는 만족한듯이 조금 슬픈 것도 같고 피곤한 듯이 눈을 감았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서 소라는 소리를 지르고 울고 싶었다. 고막에 우는 매미를 가둔 것 같았다. 사물함에 한 마리 집어넣고 관찰해볼까. 터지지 않는 북처럼 계속 울릴까. 그 모습을 보고 싶어서 소라는 매미를 잘 보관했다. 사실 매미가 성체가 되는 여름이 언제인지. 올해인지 내년인지, 아니면 7년이나 남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또 그렇게 궁금하지는 않았다. 소라는 죽었고 나는 매미가 든 사물함을 열어보았다. 매미는 없었다. 매미는 증발하듯이 사라졌다. 나는 꿈을 꿨다. 꿈에서 소라와 내가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화가 나 재잘거리는 소라의 가슴에 소라의 뿔을 힘껏 박아넣었다. 몇 번이고 반복하자 소라의 심장 부근은 너덜너덜해졌는데도 두근거리는 근육 덩어리와 핏줄만은 형형했다. 그것을 터뜨릴 기세로 다시 한 번 뿔을 치켜들자 소라가 문득 말했다.
죽고 싶다.
나는 제 발이 저려 뒷걸음질 쳤다가 소라의 표정을 바라볼 수 있었다. 소라는... 날 보고 있었다. 아니다. 소라는 시선을 '멀리 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를 통과해 정신을 소라의 기억 속 어딘가로 집어넣으며 고통을 회피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소라의 입 속에 무언가 보였다. 시커멓고 소라의 내장보다 거대한 무언가가 펄떡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밀려나올 것처럼. 다시 한 번 조각난 무언가가 툭 튀어나오려 하자 소라가 입을 열었다.
죽을래...
그러자 작은 조각은 입을 나와 사라졌고 펄떡거리던 것은 부피를 줄여 소라 속으로 스며들었다. 소라는 고통을 해소한 것처럼 표정을 풀었다.
ㅡ
오늘 또 울었어. 이상해. 살면서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울어본 적 없었는데.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조금 우습게 바라보는 입장이었는데. 의지와는 상관 없었어. 울어?라고 물어보며 놀라는 표정 때문에 나도 모르게 서러워졌어. 미안해하고 당황스러워하고
쩔쩔매며 사과하던 모습까지 생생한데 그 속내조차 의심하게 돼. 언제부터 이렇게 작아졌을까. 소라야.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작아진걸까? 소라도 울지 않았는데. 그 쓸쓸한 버스나 숨막히는 택시에서조차 결국엔 다 괜찮아졌는데. 난 영원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자라는 법을 다 잊어버린 것 같아. 소라야. 너도 그랬던 거니? 그렇게 참을 수 없게 작아진거니? 사소한 한마디에도 움츠러들게 된 거니? 늘 그런 상처를 혀 밑에 감추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는 거니? 나는 갑자기 그 애가 불쌍해지기 시작했어... 남들은 소리지르고 화내고 쾅 소리 나도록 문을 닫을 때에 카톡 프로필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를 매번 뜨도록 만드는 그 애 말이야. 정말 세상에는 참을 수 없이 이 순간과 같은 사람들이 많은 거니? 아주 작은 계기만 있어도 끝없이 숨어들고 한없이 터져나오게 되는 사람들. 스스로를 계속 의심하는 사람들. 소라야. 넌 그 사람들을 보고 있던 거니?
버드나무 가지 같은 소라의 차가운 몸뚱아리가 끄덕이듯 살랑거렸다. 토할 것 같은 기분에 고개를 떨어뜨렸다. 눈물 자국이 조끼 위로 점점이 떨어졌다.
보여주고 싶은 대로 보여줄 순 없는 것처럼, 동시에 보이고 싶은 대로 보일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 소라에겐 정말 괜찮은 일이었겠지. '농담'이 싫어져서 입 안에 넣고 꼭꼭 씹었다. 삼키고 싶었는데 삼킬 수가 없었다. 알약을 먹을 수 없다고, 새벽에 엉엉 울며 전화를 걸었던 소라가 생각나 가슴이 먹먹해졌다. 겨우 알약 그거 하나 때문에. 까먹은 셈 치고 걸러도 되는 걸. 아무것도 아닌 일로 그렇게. 툭 터지고 참을 수 없이 서러워지고... 그렇게... 그동안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왔음에도...... 아주 작은 하나에 툭 터져버리기도 하는 그런 아슬아슬한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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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백
- 2025-12-03
[여성혐오: 사회학자 앨런 G. 존슨(Allan G. Johnson)에 따르면, “여성혐오란 여성을 여성이란 이유로 혐오하는 문화적 태도”이다.] 천손, 니니기노미코토가 하계에 내려온 일을 오오야마츠미는 기쁘게 여겼다. 대대로 미와 영속을 더불어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천손에게 두 딸을 시집보냈는데, 나란히 니니기의 동반자를 자처한 이들은 꽃의 신 코노하나사쿠야히메와 바위의 신 이와나가히메였다. 그러나 니니기는 둘을 모두 아내 삼는 대신 미모의 코노하나사쿠야히메만을 취하고, 이와나가히메는 추하다는 이유로 곧장 돌려보냈다. 오오야마츠미는 진노하여 니니기의 어리석은 행동을 꾸짖었다. ‘이와나가히메가 있어 바위와 같이 영원하고, 코노하나사쿠야히메가 있어 꽃과 같이 번영할 수 있기에 나는 여식을 나란히 바쳤다. 만일 둘을 함께 맞아들였다면 천손은 피고 지지 않는 영광에 싸이었을 것이다. 천손의 선택으로 후생은 눈부시게 피어나되 찰나에 쇠하여 질 운명이다.’ 이리하여 영원을 내친 천손 내리의 생은 그저 피고 지는 꽃을 닮게 되었다. 이것을 인간의 삶이 꽃처럼 덧없는 세계의 시발점이라고 한다. -* 중 도입부 일본 신화, 를 차용함 1. ’남성적 언어‘ 일부다처제란 무엇인가?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하나의 제도로까지 자리 잡고 있었던 이 구도는, 단순히 부부간의 개인적인 권력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일부다처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회에 만연한 성별 권력 격차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미 여성과 남성 사이의 권력 구도가 무너져있는 곳에서부터 이 기묘한 세계는 출발한다. 한 남성이 여러 여성을 거느릴 수 있는 일부다처제는 단순히 이것을 행하는 한 부부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균형을 무너트린다. 결혼과 동시에 부부 사이의 관계는 전혀 동등한 형태를 띠지 못하고, 성적, 경제적, 권위적인 지배권이 모두 남편에게 속하게 된다. 이때 여성은 배우자가 아닌, 남성의 재산 혹은 번식 수단으로 종속되고, 정립된 여성의 권위는, 그 사회의 모든 여성에게로 이어진다. ㅡ 에서 나오는 두 여성(꽃의 신, 바위의 신)은 천손의 동반자를 ”자처“했다고 서술된다. 하지만 오요야마츠미가 두 딸을 천손에게 “시집보“낸다는 표현과 “바친다”는 표현을 살펴보면 ”자처“라는 단어 자체가 모순적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소설은 두 딸이 아버지-남편으로 넘어가는 자리에서 가부장제 구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이 한 남성의 두 배우자로 들어가기를 ”자처“했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들의 고유한 신적 성질(꽃과 바위의 성질)은 ‘아버지가 남편에게’ ‘넘겨줄 수 있는 것’으로 설정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친다”는 표현을 통해 아버지는 두 딸
- 방백
- 2025-10-31
호수의 뉘앙스와 바다의 뉘앙스를 생각한다 - 강에 사는 물고기는 정말 아름다울 것 같지. 강하고, 강하고, 물가 가까이를 걷다 보면 펜스 너머 지나가는 자동차와 둥글고 단단한 몸체에 기대어 비스듬히 질주하는 햇빛이 있었고 모자를 쓴 남자의 이마, 꼭 잡은 우리의 손등 그림처럼 흰 선이 그어졌어 얇고 긴 다리를 박고 서 있다가 몸을 비틀며 날아가는 흰 새는 모서리같은 면이 있지 강과 한몸인 것처럼, 큰 수초의 그림자인 것처럼, 오랫동안 서 있다가 다가오는 물고기 중 한 마리를 낚아챘어 나는 그 안에서 깊이를 느끼고 절반만 꾼 꿈속처럼 영원한 감정을 느끼는 걸까 우리를 쓰다듬는 것처럼, 아닌 것처럼 한 줄기로 밀고 가는 빗금은 없는 것만 못했어 나는 형의 손을 맞잡았다가, 다시 놓았다가 불안하게 반복하면서 거리를 계속 좁히고 어제 본 꿈속에서는 강가를 찾았지 커다란 거울을 들고 가느라 눈이 부셨어 기울어지는 햇빛의 기세는 엄청났고 돌아온 흰 새는 멀뚱히 그것을 쳐다봤지 나는 거울을 결국 던져버리고 진흙으로 뛰어들며 흰 새를 껴안았어 마침내 작아지는 꿈의 환각들 아무리 때려도 날지 않는 새
- 방백
- 202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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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게 처음 올라온 순간부터 장원을 확신했습니다. 역시 맞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