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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은 없다

  • 작성자 옥상정원
  • 작성일 2024-12-30
  • 조회수 891

<>이라는 파일을 하나 갖고 있다그곳에서 나는 시도 수필도 소설도 일기도 아닌 무언가를 끄적인다메모장 같은 공간이다약 3년 간 그곳에 글을 써왔다올해는 자주 이용하지 않았으므로 나의 2년이 담긴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영감을 얻곤 한다나의 생각과 느낌이 담긴 공간이기 때문이다실제로 내가 글틴에 업로드한 <확신>, <J에게>, <흰 벽의 전문은 이 파일에서 나왔다세 편의 시 외에도 여러 시의 일부 연들은 이 파일에 고향을 두고 있다시를 쓸 때 어떤 시어 하나를 고민하는 일도 이 파일 속에서 한다마치 탐험하는 것처럼너무도 많은 분량에 경이로움을 느끼고 때때로 좌절하고 때때로 기뻐한다그런 식으로 내 시 쓰기는 다소 요란하지만 흥미로운 활동이 되었다.


이 파일을 지켜보면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도 가늠이 된다내가 언어를 자꾸만 분열시키고 있다면 그날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구나.’라고 생각한다내가 어떤 감각적인 문장도 없이 딱딱하고 차갑게 글을 쓰고 있다면 전혀 시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구나.’라고 생각한다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건 최근 후자의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전혀 시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구나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최근 시를 쓰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두 편 정도는 쓰고 있으나 전보다 쓰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나는 나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고 보통 시를 쓴다자아성찰에 관해서 쓰겠다고 의도한 것은 아닌데시를 쓰다보면 저절로 모든 시어가 내면을 향해있다그런데 요즘은 자아성찰을 통한 시 창작이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내가 요즘 쓰는 문장들도 시적이고 감각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철저히 논리적이고 냉철하게 쓴다습관적으로 시적인 문장을 사용하다가도 금세 문장을 고쳐버린다. 2024년에 들어서 그러한 특성이 나타난 이유를 나는 가만히 고민해보았다별 의문 없이 그 답은 바로 나올 수 있었다.


세상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릴까내가 한 명의 사람으로서 당연히 믿고 있던 어떤 상식이 무너져가고 있다그것도 처참히나는 관심이 없던 바깥 세상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이에 덩달아 내 시어들도 날카로워졌다나는 문학만큼은 온전하게 문학으로써 집필하고 싶었으므로내 언어가 날카로워지지 않았으면 했다예전처럼 나의 내면에 집중하고 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한 고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민주성이 몰락하는 현세를 가만히 관찰하면서 나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꼈다문학은 무얼 할 수 있을까문학은 무얼 해야만 할까평소에는 단순히 즐기기만 했던 문학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그래서알겠는데도대체무얼 할 수 있냐고철저히 이성적으로 스스로에게 묻는다그러나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그 답을 알기 위해 자꾸만 시를 썼으나 다소 야멸찬 작품만 나왔다또 다시 내면에 집중한다 해도특정한 날에 특정한 충격을 받고 단숨에 적어내려간 서투른 시만 나왔다성찰과 사유의 깊이로 따졌을 때 쓰레기 같은 시만 나왔다그래서 나는 시 쓰기를 보류하고 논설문이나 토론 입론서를 올해 더 많이 쓰게 되었다운명의 장난처럼 그런 글을 쓸 기회가 실제로 많아지기도 했다나는 더 이상 문장 속에 시적 수사를 넣지 않았다감각적이고 유려한 문장도 넣지 않았다통계 자료를 기반으로한 냉철한 분석과 문장들견고한 주장들을 펼쳐내곤 했다관성적으로 시적인 문장을 쓸 때면 이를 과감히 고쳐버렸다그러고 싶지 않았다정말이지 그러고 싶지 않다.


우리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했을 때, ‘왜 당신은 참여하지 않냐고 어째서 물을 수 없는 걸까왜 침묵을 종용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걸까나는 참여하지 않는 모든 것들에 대한 분노가 생겨나고 있다왜 방관하고 무시할까왜 알면서도 모른 체혹은 모르고 싶다는 의지를 끝까지 붙들고 있을까그 분노가 시에 오염되지 않기 위해 애써왔고그에 대한 결과로 나는 논설문을 쓰고 다른 방식으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목소리 내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친구의 말에 몇 번이고 화를 냈다왜 당신은 참여하지 않는가나는 오히려 역정을 내는 사람이 되었다또한 나는 스스로를 자꾸만 논리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2022년 10월 29일의 얼굴들사망한 권익위 간부공권력에 끌려가는 학생들국제도서전에서 잡혀가는 블랙리스트 문인들처단과 선포군인과 경찰우리는 모든 것을 보았음에도 누군가는 침묵하고 누군가는 외친다.

 

덕분에 내 시는 더럽혀졌습니다.

무력하고 무심한 모든 이들에 관한 혐오가 생겼습니다.

혐오 메시지가 나를 뚫고 지나갈 때 그 메신저를 공격하고 싶은 야만이 생겼습니다.

 

중립을 외치면 세상 살기가 편해진다아무렴 어때중립자가 밟는 모든 곳은 회색이고 안전하다전체가 까맣게 물들면 자연스레 까매지면 되고하얗게 물들면 또 섞여들어가면 된다유연하게또 교만하게그러나 어떤 사안에 있어 찬성 혹은 반대를 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혹은 다른 것을 차치하더라도 분명히 옳은 한 가지 길이 있을 때가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만히 기다려보라나는 중립이다하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나는 아무래도 그런 사람을 무기력한 대중이라고 부르고 싶다도무지 알고 싶지 않아하는 의지그 필사적으로 무기력한 의지...

 

왜 당신은 참여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이 고통과 무관합니까.

무관한 당신은 오늘도 무엇을 보고 느끼고 희망하고 살아갑니까.

다음은 당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더럽게 지독한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문학이 누군가를 치유할 수 있다는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아서시를 쓰든 수필을 쓰든 똑같다만약 이 모든 생각과 방향성이 좌절된다면 내가 앞으로 떳떳하게 시를 쓸 수 있을까문학이 무얼 할 수 있냐는 스스로의 물음에 솔직하게 답할 수나 있을까.


나는 현재 나의 내면에 관심이 하나도 없다나는 내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오늘도 누군가는 죽고 있다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 없이좁디 좁은 반에서 친구가 쓰러져 있는데 나머지 학생들이 본 체도 하지 않는 걸 본 기분관객이 하나 둘 쓰러지는데 화려한 무대와 꼭두각시들은 영원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영원할 거냐고분노한 이들이 암전과 동시에 문을 두드릴 것이다왜 당신은 참여하지 않냐고 물을 것이다당신과 함께 티켓을 끊은 모든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이 공연장을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이번 공연에 커튼콜은 없다두 번째 세계란 없다무대와 관중석은 하나의 공연장으로 귀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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