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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을 한다는 것

  • 작성자 화자
  • 작성일 2025-01-31
  • 조회수 754

올 연초 글틴 뒹굴뒹굴 게시판에서 김희수, 이형규, 강완 등 소설 게시판과 시 게시판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여러 글티너들을 필두로 ‘글틴 오픈 채팅방'이 개설되었다. 오픈 채팅방 개설소식을 확인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건 글틴을 졸업하고 어딘가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선노아였다. 1년 전 즈음 선노아와 글틴 오픈 채팅방을 만든 적 있는데, 그 채팅방은 사람이 그리 많지도 않았고, 활발한 대화가 오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한달만에 파산했다는 아픈 기억이 나를 건드린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채팅방 역시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너무나도 섯부르게 짐작하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너무 궁금하지 않나. 올해와 작년에는 셀수없이 많은 글티너들이 유입되었다. 과연 이들이 정말 과거와 같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이들은 글에 대한 열정이 있지 않을까? 이 의심을 무너뜨린건 이형규와 김희수, 강완 모두 장원 수상자였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글은 동시대 여느 작품들에 비해 고민과 생각이 유려하게 들어있다. 그래서 머뭇거리기를 멈추고 필자 역시 동시대 청소년들과 활발한 담론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오픈 채팅방에 들어갔고, 놀랍게도 그곳에서 선노아, 모모코, 조민준부터 난바다, 데카당, 방백, 눈금실린더, 송희찬 기능사 등, 반가운 이름들을 다시 보며 서로의 취향과 일상같은 사소한 것들을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문학과 예술의 책무에 대한 마냥 가볍지많은 않은 대화들을 이어나갔다. 그 중에서도 채팅방의 주를 차지하고 있던 것은 글티너들을 통한 합평과, 글틴에 대한 이야기들- 가령 한땐 멘토님들께서 뒹굴뒹굴 게시판에 자주 등장하셨다거나, 이런 글들이 있었고, 합평을 해달라거나 지금은 어느 게시판의 누구누구의 글이 좋다 같은 것들 - 이 대부분이었는데, 나 스스로 그런 대화문들을 읽어나가며 과연 청소년들에게 글틴이란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장기적이지는 않지만 비교적 꾸준히 글틴에 글을 기고해왔던 필진으로서 글틴에 글을 기고한다는 것의 의미를 상정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누군가 글틴의 수식어를 묻는다면 말하고 싶은 건 오직 한가지, ‘국내 유일 청소년 웹진’ 이라는 것이다.

‘웹진'이라는 이름 덕분인지 이 곳은 여느 공모전처럼 글을 투고했다고해서 그 글이 폐기되거나 잊혀지지 않는다. 이 곳은 우리가 글을 쓰면 그 글이 힘들게 수확한 비료처럼 밑거름이 되는 곳이고, 또 우리가 쓴 글의 질이 아무리 낮다고해도 그것을 읽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는 장소다. 뒹굴뒹굴 게시판에서는 활발한 담론들이 이루어지고 커뮤니티가 생겨난다. 이곳에선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할 수도 있고, 한해 동안 기고된 작품들을 꼽아 문학상을 상정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글틴은 청소년들이 서로의 미래를 도모하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자그마한 ‘문단’. 그 자체다. 많은 청소년 작가(혹은 작가를 지망하는 청소년)들이 등단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글틴은 우리들이 꿈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자양분을 마련해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름만 들어도 쉽게 알 수 있는 많은 이들이 글틴을 거쳐 등단했다는 사실을 어디선가 얼핏 들은 적있다. 어쩌면 글틴이야말로 우리의 꿈이 깃들어있는 곳은 아닐까.)


필자가 글틴을 처음 알게 된건 초등학교 고학년 끝발 무렵이었다. 코로나가 성행하고 있었고, 본의 아니게 격리된 상태에서 (인터넷 상의 언어를 빌려보자면)방구석 여포처럼(그러나 다소 건전한 여포랄까) 국내 대형 웹진들을 차근차근 살펴보다가 비유, 웹진 림과 문학광장의 존재여부를 알았다. 


그 중에서도 글틴은 ‘문화예술위원회’라는 어딘가 권위있어 보이는 정부산하기관이 운영하는 곳이라 이유없이 세련스러운 곳이었다. 나는 난잡하다거나 키치스러운 것, 나만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정신사나운 것’을 극히 혐오하는 본성아닌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딘가 세련된 글틴의 그 점이 좋았다. 

같은 이유로 대게 국내에서 열리는 공모전들은 다소 구식적인 이름과 제한적인 글제로 인해 거북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고, 그래서 글을 써도 이 공모전은 나와 색깔이 맞지 않아, 나 스스로 많이 부족해, 라는 생각으로 글을 투고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축하며 펜을 쥐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나 글틴은 아니었다. 세련스러운 이름. 글틴.

영어가 섞여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릴 뿐, 그마저도 크게 신경쓰이는건 아니었다.

이 곳에는 창작가가 마땅히 누려야할 자유가 있었다. 창작을 제한하는 주제와 형식이 없었고, 산문과 장르를 규정짓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쓴 글은 사라지지 않아도 된다. 내가 글을 삭제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언제까지나 이곳에 남아 있다. 세련스러운 곳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기쁨은 단언컨데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그 기쁨을 누리기 위해선 거친 시간을버텼텨야했다. 

내가 글틴을 알게된건 13세 때의 일이었으므로, 글틴가입 조건 중 하나인 ‘만 14세 이상’ 이라는 규정으로 인해 일년이라는 시간을 초등학교 졸업과 중학교 입학이란 싱숭생숭한 마음들, 그리고 글틴에 들어가려는 자그마한 어떤 응어리 조각으로 간절히 흘려보냈다. 글틴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한건 갑작스레 진행된 리뉴얼과 임기종료로 인해 멘토진들이 전면 교체되었을 때 부터였다. 또는 어영부영 중학교 1학년을 보내고 나서였다.


2년 동안 글틴을 사용해온 필자의 기억에 의하면 대부분의 글티너들은 글틴을 졸업할 때마다 뒹굴뒹굴 게시판에 작별인사를 하는 - 매우 무의미한/그러나 전통적인 - 관례를 치르고는 하는데, 그들의 대다수가 그곳에서 ‘글틴을 너무 늦게 안 것이 후회된다'는 푸념들을 늘어놓고는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무척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초등학교 졸업시기부터 글틴을 알고 있었고, 중학교 2학년 때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적어도 글틴에서 지낼 수 있는 영광을 비교적 풍족하게지누릴 수 있었다. 게다가 23년 여름 이틀만에 쓴 소설을 검토없이 올리고 다음달 받은 김병운 작가님의 멘토링.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의 정기(?)독자로서 그때 확인한 멘토링만큼 가슴 뛰는 것도 없었다. 열문장 남짓한 그것을 하루종일 가슴 속에 달고 살았던 거 같다. 물론 때론 장원에 눈이 팔려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도 했었지만. 

그리고 짧지만 빠른 시간이 흘렀다. 2년. 적어도 한달에 한번 글을 쓰고, 글틴에 올라오는 글들을 정독했다. 글틴에 매일같이 들어왔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만 14세 이상’ 활동가능하던 글틴 규정 앞에서 머뭇거리던 나는 ‘만 18세 이상'까지라는 문구와 점점 가까워져간다. 학교와 주변환경들이 바뀌었고 오직 글틴만이 내가 관통한 시간의 증인마냥 원래 있던 자리 그대로 놓여있다. 그래, 이젠 글틴 졸업을 눈 앞에 두고 있다.


***

문학상 언제 공지하죠

글틴 오픈챗에서 김희수가 말을 꺼내들었다. 송희찬과 나도 거기에 몇마디 거들었다. 글틴청소년문학상 수상자였던 우리는 메일을 통해 1월 16일 글틴 공지사항에 수상명단이 공개될 것이라는 고지를 받았고, 깊은 밤이 될 때까지 공지가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수상자명단과 함께 올라올 심사평을 고대하고 있었다고 보는게 더욱 옳을 것이다. 그 심사평을 읽으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깐. 그러나 자정이 가까웠고, 글은 올라오지 않았으며, 우리는 아무래도 그건 낼모래 정도에 올라오지 않겠냐고 어림짐작하며 부푼기대를 잠시 치워둔 채 잠에 들었다.  


여기서 다소 갑작스러운 고백을 하자면 사실 난 10월에 펜을 꺾었다. 글틴에서 글을 기고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것인데,  그건 나의 자의로 인한 것이었고, 한 고집하는 성격 때문에 거의 확실한 듯 보였다. 대략 한달 정도 아무 글도 쓰지 않았고, 학업에 집중했다. 펜을 꺾은 이유는 다소 간단했는데, 내 꿈은 글을 쓰는 것과 무관했기 때문이다. 펜을 꺽기 몇 달 전 여름, 난 내가 영화를 해야만한다고 확신했다. 더군다나 내가 글을 처음 쓰게 된건 영화를 통해서였다. 영화를 설명하고 싶어서 비평을 했고,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소설을 썼다. 또한 글로 인해 상처받고 상에 눈이 멀어 스스로를 망가트리고 싶지 않았다. 글만큼 쉽게 작업할 수 있는 것도 없을 뿐 더러, 그만큼 쉽게 스스로를 좌우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월장원에 목매던 옛 시간들이 글과 거리를 두도록 선험적으로 일조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하기는 어렵겠다. 여튼, 애초부터 글밥먹고 살 생각은 추호도 없을 뿐더러, 스스로 글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써봤자 실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주지도 않고 심적으로만 힘들어지는 것 같았다. 글을 쓴다는건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욱 알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었지만 나에게 더 아름다웠던건 어디까지나 영화였다. 마지막으로 비평 게시판에 <시네필: 노숙자들의 도시와 유령의 집을 찾아서>을 기고했고, 글틴에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았다. (사실 그 해 부모님께 때를 써서 다녀온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어렵게 표를 구해 보았던 <메갈로폴리스>와 고다르의 유작 <시나리오>, 크로넨버그의 신작<더 슈라우드>, 저명한 국내 비평가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비평에 대해서 사유하는 프로젝트였던 <비평의 마음>이란 글, 단편영화 <두 사람>감독님과의 인터뷰 글을 쓰고 있있었지만, <메갈로폴리스>에 대한 비평을 쓴 기고한 것을 빼면 <시네필…>에서 끝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그 이 외 모든 글쓰기를 중단했다.)


그렇게 아무 것도 없는 일상을 보내던 겨울이었다. 두서없이 매일매일 글틴 누리집에 오는 것이 2년간 몸에 베여 하나의 습관이 되었던 탓일까, 어떤 미련이 남았는진 몰라도, 뒹굴뒹굴 게시판에 가보았다. 그곳에 오픈챗 링크가 있었다. 글 쓰는 이들이 그 채팅방에 모여있었다. 그때 나의 직접적인 감정은 어떠했나. 


글을 쓰는 청소년들은 많다. 비단 글틴에 국한되는 것 뿐 아니라 모든곳에도 적용 가능한데, 백일장과 공모전에 나가면 적어도 글틴에서 보는 학생들의 배는 쉽게 볼 수 있다. 그들 중에는 예중이나 예고에서 온 이들도 있을 것이고, 개인으로 참가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 가면 늘 글틴이 얼마나 초라하고 또 조촐한지 깨닫고는 한다. 그래서 글틴오픈챗이 만들어졌을 떄 난 반가웠던 거 같다. 우리는 조촐하지 않다는 생각. 우리는 당일 글을 쓰고 당일 헤어지는 당신들과는 다르게 친목을다질 수 있다는 생각. 조금은 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매일 아무 이유없이 글틴 누리집에 들어와 글들을 살피고, 뒹굴뒹굴 게시판을 방문하는 인터넷 유령이나 폐인이 될 것만 같았다. 오픈 채팅방에 들어가 알게된 사실로는, 대부분의 글티너들이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모두 여느 시절 무릇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매일매일 글틴에 방문해서 이유없이 글을 끄적거리거나, 다른 이들의 글을 읽기도 했고, 그렇게 아무 이유없이 글틴에 들어와 죽치고 시간을 보내며, 다시 이곳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날 이곳에 오기를 반복했다. 모두가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탓일까, 그로인해 장원이 올라오는 시기와 멘토링이 시작되는 시기에 대해 대부분의 글티너들은 거의 광적일 정도로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고, 누가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일을 뒹굴뒹굴 게시판을 통해 하소연했는지까지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한때 뒹굴뒹굴 게시판에 올렸던, 글틴 규정인‘1일 1작’이 청소년들의 자유를 해친다는 다소 삐딱하고 불평섞인 나의 목소리를 기억하기도 했다. 여튼 그런 이유들 때문에 나로서는 매우 놀라워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었다.  

글틴을 하며 가장 큰 마음고생이 있다면 그건 언제나 글틴에 병적으로 집작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집착은 대게 장원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되어, 글틴에 대한 집착으로까지 이어진다. 그 집착은 멘토링을 곱씹고, 읽었던 글을 다시 읽고, 도저히 뭐가 쓰이지 않아도 계속 쓰도록 했다. 집착도 사랑이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니라 자신만의 욕망을 위한 사랑이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었다. 물론 멘토링을 곱씹으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다. 글은 원래 억지로 써서라도 끝내야 하는거다.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행한 고된 노동의 결과는 다 어디로 가는가? 힘들었던 건 바로 그 노동의 결과다. 글을 쓰지만 글틴 내부에서밖에 읽히지 않고, 썩 좋은 결과가 나오지도 않는다. 그래서 항상 부족한 것만 같다. 노력한만큼 보상을 얻지 못한다는 거. 그 사실 하나는 자신을 무너트리기에 충분하다. 이 마음고생은, 단지 나 뿐 아니라 모든 글티너들이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필자는 청소년문학상을 했다는 수상 소식을 들었던 때를 기억한다. 잠에 들기 전 무릇 그렇듯 메일함을 확인해보니 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수상을 축하한다는 메일이 와있던 것이었다. 특별상이라고 했다.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진실되게 기대하지 않았다. 우선 글틴에는 모래(molae)라는 걸출한 작가가 있었을 뿐 더러, 다소 미흡하고 거친 나의 글 보다 훨씬 더 정갈한 <구의 증명>에 대한 좋은 비평들이 있었다. 예술에 경쟁이 가당키야하겠냐만 나로서도 그 글들을 제치고 수상하는건 위선에 가까울 정도로 껄끄럽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게다가 특별상은 작년에도, 제작년에도 들어본 적 없는 상이어서 나로서는 다소 당황스러운 기분이 없잖아있었으나 이내 마음을 갈무리하고 이 작은 상이 나에게 의미하는 바를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난 글을 못쓴다. 나 스스로 어딘가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청소년 웹진에서 영화비평을 연재합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비평 게시판에 말뚝을 받은 건 맞지만, 글을 잘 쓰지는 않았다. 열심히 글 쓰기 위해 노력만 했지 결과가 좋지는 못했다. 경쟁만 가득한 세상에서는 언제나 결과만 본다. 태어나길 반골이어서인지, 난 그게 싫었다. 그래서 노력을 바라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독자에게 독서란 ‘쓰여진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쓰여지고있는 글’을 읽는 것이기 때문인데, 그건 문학을 이루고 있는 텍스트가 어디까지나 직관적으로 바라보아야하는 ‘이미지’로만 머물지 않고, 우리가 자체적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여야할 기호들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글을 읽는다는 것에는 그 글을 쓰기위해 이면지와 사투를 벌였던 타자의 노력을 이해하게되는 행위가 은연 중 내제되어있다.  

그러나 실상 대게의 문학상-또는 후보에 오르고 선정되는 식의 이벤트들-에서 그 노력의 행위는 소멸되고 결과로만 판가름하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날의 시상식이 경쟁이된 까닭이 바로 그곳에 있다. 필자가 문학상의 기대를 접게 된 주된 이유 역시 같은 연장선상에서 였다. 나의 글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보나 거칠고 투박하고 감정적이며, 때론 너무 앞서나간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비관적으로 나는 안된다고 단정짓고 본래 학생의 길, 또는 꿈꾸던 길을 걷고 있을 때 우연찮게 찾아온 행운이란 정말 극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특별상이든 장려상이든 우수상이든 대상이든, 어쨋든 누군가 그 노력을 바라봐주었을 때, 나는 세상에 대한 믿음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 노고를 바라봐준 사람이 누구일까. 난 시상식과 예심, 본심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내 글은 예심에서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투박하다는 것 정도는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을 받을 수 있었다면 그건 아무래도 단한가지 이유밖에 없지 않은가. 난 알 수 있다. 단 한 사람. 내가 글을 쓰면 항상 세밀하게 읽고 코멘트를 달아주었던 사람. 김태선 멘토님. 내가 가장 감사해야할 사람은 바로 그 분이다. 글틴 사상 갑작스레 생겨난 특별상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지만, 이 상은 멘토님들이 직접 뽑아서 주신거구나,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러니 약간도 감동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정성일 평론가에 의하면 구로사와 아키라는 언젠가 말했다고 한다.  

“나에게는 그 상이 필요했습니다. 그건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격려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상은 작품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난 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 난 내가 틀렸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글틴을 떠나면 후회와 미련이 맴돌 거란 것은 알았다. 그 때 상이 왔다. 멘토님은 이 상을 통해 작별이 아니라 응원을 보내신 것이었다. 이미 끝난 줄 알았던 관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한때는 사랑했던 것이 나를 부를 때. 관계 속에서 꼬구라졌다가 일어나 그것에게로 달려간다. 이젠 글 안쓰기로 했는데. 정말 안쓰기로 했는데. 근데 정말 여기서 딱 멈춰버리면 너무 후회할 것만 같다. 

그곳에선 절필하겠다는 삐딱한 마음도 녹아버리고, 찌질하지만 ‘다시'라는 단어가 성큼 다가온다.  

1월에는 세 편의 비평을 기고했다. 인생이 희노애락이라고 했나. 글틴에서 그 희노애락을 다 겪었던 거 같다. 감정적인 슬픔도, 이성적인 사고도.

글틴을 떠날 때가 온다면 무척 슬퍼질 것이라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글틴캠프에서는 김희수의 입을 빌려 다소 농담 스럽고 패기있는 말을 했다. 

“내년에는 비평으로 최우수상 타고 내후년엔 대상 타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글틴을 떠날 수 없는걸까. 마지막 기회는 가버렸고, 난 이제 이곳에 있다. 

***

글틴캠프가 끝나고 오픈챗은 한동안 조용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글틴캠프에 참석하지 못한 나(와 방백, 그리고 기능사)로서는 무척 아쉬운 감정이 없잖아 있었으나, 나에겐 아직 2년이란 시간이 더 남아있었고, 무엇보다 오픈챗이 있었기 때문에 무료함을 재미나게 보낼 수 있었다. 근데 그 행복이 사라지고 있던 것이라 다소 황당스럽지 않나.

이 오픈챗의 조용함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나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 싶어하지 않고 싶었던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지껏의 인간관계로 쌓여온 무수히 많은 장력들이 외치고 있었다. 이제 끝난거라고. 이 채팅방은 가망이 없다고. 

이 후 조민준과 선노아, 김희수가 열심히 그 채팅방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아 보였으나, 실은 스무명이 넘는 곳에서 그 네 명이 떠드는게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조용했고, 재미없었으며, 무엇보다 씁쓸했다.

그렇게 서서히 오픈챗과 멀어져가려던 때에, 이렇게 끝나서는 안될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채팅방에 링크 하나와 문자 하나를 올렸다.


“아무래도 여기가 12년만인 것 같습니다만”

/board.es?mid=a30901000000&bid=0016&act=view&ord=B&list_no=24355&nPage=1&c_page= 


링크는 2013년 초반 열렸던 글틴캠프에 대한 글이었다. 뒹굴뒹굴 게시판에 게시되어있었고, 단톡방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니 캠프의 조원들은 단톡방에 들어오라는 공지 같았다. 우리가 만든 단톡방은 2025년에 개설되었으니 뒹굴뒹굴에 정식적으로 기록되서 남은 단톡은 무려 13년만이었던 셈이다. 이 13년만에 개설된 글틴의 커뮤니티가 살아진다는 건 너무 가슴아프지 않을까. 서로 막 알게된 우리가 이렇게 묻히면 글틴은 또 다시 서로가 서로를 모른 채 경쟁하는 곳으로 되돌아갈 것만 같았다. 청소년들만의 문단이 욕망으로 가득한 곳이면 무척 끔찍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 우리의 채팅방 역시 그만큼 뜻깊은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링크를 무작정 올렸던 거 같다.


그러자 하나 둘 옛 글틴의 흔적을 찾는 시도들이 시작되었다. 


모래가(molae)가 이 후 링크를 올렸다.

“첫 명예의 전당 글이네요”

/board.es?mid=a30101000000&bid=0017&act=view&ord=B&list_no=93672&nPage=47&c_page=&monthsave=Y 


강완이 링크를 올렸다

/board.es?mid=a30803000000&bid=0020&list_no=102979&act=view 


그 글들을 읽으며, 이따금 나 혼자 놀라기도 하고, 감격하기도 했는데, 특히 강완이 올렸던 링크는 나로선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떤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 링크는 김희수가 세 달 전 수필 게시판에 ‘광인 변주곡'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짧은 글로 이어져있었다. ‘이빨빠진쑥덕’이 쓰고 첫번째 문장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던 소설 ‘광인 변주곡’을 읽으면서 옛 글티너들의 흔적을 찾기를 제안하는 글이었는데, 놀라운 일은 정확히 그 글이 아니라 그 글의 댓글에 있었다.

‘시적인 소년’이라는 글티너가 단 댓글이었다. 아니, 한때는 글티너였던 사람이 단 댓글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 시절 글틴에서 ‘르샤마지끄’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던 글티너라고 소개하며, 무려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오늘날 반가운 이름들을 들을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더 놀라운 건, 그 분에 의하면 본인과 같은 시기 즈음에 ‘초코쏭'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했던 또 다른 옛 글티너와 결혼 하고 2세를 낳았다는 것이었는데, 나로서는 사람의 인연이 가져다주는 어떤 희망찬 감회와 회고같은 느낌의 흔적이 무척 감동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글틴을 졸업했으나 자녀를 낳고 글틴에서 돌아와 추억을 화상하는 이의 마음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르샤마지끄'가 어디서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초코송’은 어디에 있고, ‘이빨빠진쑥덕'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난 모른다. 그들은 여전히 글을 쓸까? 아니면 사회에 뒤셖여서 하루를 버텨내고 있지는 않을까? 무슨 짓을 해도 알 수 없다. 

그들은 더 이상 글틴에 없다. 그러나 내가 알 수 있는 단 한가지의 진실. 그들의 일상에는 글틴이 머물고 있다. 누군가는 글틴을 통해 인연을 만들고, 누군가는 글틴을 통해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 그들의 유년시절에서 글틴은 그들을 일구어낸 한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는 그리움과 과거가 아니라 글틴을 통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글틴은 졸업만으론 끝나지 않는다.


단톡방에 있는 28명의 글티너들 중 20명은 전부 글틴 졸업을 코 앞에 두고 있다. 이제 성인이 된 조민준은 불과 몇칠 전 모래와 모모코의 권유로 블로그를 개설했다고 한다. 그 블로그에는 스무살 글틴캠프에 대한 넉두리가 올라와있다. 그는 캠프에서의 시간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글틴을 떠납니다. 그러나 떠나겠단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의 말이 품은 의미를 곱씹는다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성작가가 되어 멘토로 돌아오겠다는 것일테다. 조민준은 정말 글틴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사람 사는 세상만큼 그 의지가 꺽이기 쉬운 곳도 없고, 또 무참히 짓밟히는 곳도 없다. 국내에는 약 만 명 가량의 사람들이 한땐 작가를 지망했거나, 또는 작가를 지망하고 있다고 한다. 신춘문예와 공모전에는 한 해마다 늘 천 편 가량되는 작품들이 투고된다. 그 중에서 극히 소수만이 뽑히고, 등단해서, 문단에 들어간다. 문단의 주류에서 자리를 잡고 활동하는 이들은 백 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흐릿하고 뿌연 미래가 우리 앞에 있다. 우리를 둘러싼 안개를 걷어내고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갈지, 또는 그곳으로부터 도망쳐버릴지는 개인의 몫이다. 난 그 안개로부터 도망쳤고, 영화라는 곳에서 유리를 걷는 심정으로 걸음걸음 내딛고 있지만, 그래도 두렵고 막막하기는 메한가지다. 

다만 확실한건, 내가 딛고있는 걸음에는 글틴이라는 동력이 존재한다는 것. 글틴이 없었으면 한참을 머뭇거리다 이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틴에는 나와 같은 이들이 곁에 있고, 또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 역시 있으며, 우리가 더 낳아지도록 도와주는 이들 또한 있다. 글틴은 어쨋든 우리가 함께했던 과거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아니, 지금의 나를 만든 현재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니,  다시는 글틴으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해도, 이미 나는 글틴에 있다. 우리는 커서도 글티너일 것이고, 다소 멀리 나아가보자면, 죽을 때까지도 글티너일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난 옛 글틴의 흔적을 찾아 공유하며, 우리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제 일인 것마냥 화상하고 우리도 저렇게 오래갔으면 좋겠다고 소원하고있던 글틴 단톡방에 이렇게 글을 남겼다. 글티너와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살아가는게 낭만적이라는 당신들에게.


우리도 170년 후엔 저렇게 되면 좋겠어요


그러자 강완이 되물었다.

"엥, 170년이요? 꿈이 크시네요"


난 답했다.


그 정돈 살았으면 좋겠어요 저희도 글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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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단상: 시대의 흐름 속에서 바라본 당사자성

문학에서 (특히 소설의 경우) 저자가 3인칭 서술을 사용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만 최근 한국문학에서 3인칭 서술 사용의 빈도가 가시적일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인상을 받고는 한다. 특히 그러한 양상은 미디어 매체에 전면적으로 영향을 받고, &lsquo;SNS&rsquo;와 &lsquo;알고리즘&rsquo;이라는 자기 폐쇄적인 공간을 시대에 의해 수용하게 된 2030 &lsquo;젊은 세대&rsquo; 작가들에게서 크게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인 이들만 간단히 호명해 보자면, &lsquo;김병운&rsquo;, &lsquo;김멜라&rsquo;, &lsquo;김지연&rsquo;, &lsquo;이서수&rsquo;, &lsquo;서이제&rsquo;, &lsquo;손보미&rsquo; 등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품(들)은 대게 소설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화자를 &lsquo;나'라는 1인칭 단수로 설정함으로써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기 폐쇄적인 공간에서 진솔하게 이끌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성에 대한 조심스러운 고민의 흔적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젊은 작가들이 1인칭 묘사를 애용하는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휴대폰이 이제 막 세상에 등장했을 때, 그들은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었거나, 혹은 대학을 전전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한때 국내 문단을 주름잡았던 7080 세대들이 민주화 운동의 전선에서 사회를 마주하고 발화와 사유를 터득했던 것처럼, &lsquo;2030&rsquo; 젊은 작가들은 휴대폰이란 자가폐쇄적/개인적 공간에서 세상을 마주했다. 그렇기에 &lsquo;7080&rsquo; 세대 문인들이 운동권에서 세상을 배워나가며 &lsquo;정치 문학&rsquo;이라는 하나의 시대적 흐름을 만들어냈듯, 2030 세대 문인들은 (옳은 명칭은 아니겠지만) &lsquo;개인 문학&rsquo;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1인칭 묘사는 그러한 시대적 흐름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 사례를 긍정적으로 (또는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것은 그다지 좋은 행동이 아닌 듯하다. 시대에 따라 뒤바뀐 양상을 검토 없이 수긍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뿐더러, 체화되지 않은 것들을 내부로 끌어들일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묘사법처럼 독자와 작품을 매개 하는 중요한 형식은 더욱 세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런 1인칭 묘사/서술에 대해 조금 더 많은 논의를 거칠 필요성을 느꼈다. 1인칭 묘사에 대해서는 풀리지 않는 논의가 하나 있다. 그것은 작품 속 &lsquo;나&rsquo;가 소설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구체화된 창조적 &lsquo;인물'인지, 아니면 이면지 뒤에서 글을 쓰는 작가 &lsquo;본인'인지에 대해서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지점에서 &lsquo;당사자가 아닌 사람(작가)&rsquo;이 화자가 되어 당사자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어쩌면 작품의 윤리를 결정적으로 판가름 지을 수도 있는 흐릿하고도 모호한 자가당착의 경계에 봉착한다. 작

  • 화자
  • 2025-09-11
과거의 망령과 죽음의 골짜기에서 - <고요한 인생의 흐름에서>와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를 중심으로

속 유령을 찾아서 조명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세면대. 세수를 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중기에게 오래전 망각하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어떤 남자가 강압적으로 묻는다. &ldquo;○○○ 어딨어?!&rdquo; 중기는 떨리는 손을 허공에 뻗은 채 세면대를 벗어나 빛이 새어오는 문 틈으로 다가간다. 귓가에 울리던 폭력적인 소리는 더욱 크게 증폭된다. 과거의 소음이 현재를 장악해버린다. 김응수 감독의 1998년 영화 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불혹에 접어든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오래간만에 만나 시간을 보내는 내용을 담고있다. 언뜻보기에 애틋하고 향수어린 감각이 묻어있을 것 같은 줄거리이지만, 영화를 보게되면 정작 그런 것들과는 다소 거리가 먼 영화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오히려 위에서 서술한 세면대 장면을 보면 몸서리 처질 정도로 오싹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아름다워야할 이 장면이 이토록 소름돋게 다가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를 살펴 보기 위해 우선 세면대 장면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아야할 듯 싶다. 영화는 80년대 운동권에서 활동했던 학생들의 현재(90년 대)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한국을 떠나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데, 중기라는 인물은 군사독재시절 운동권으로서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동료에 대해 자백해버려 그의 죽음에 선험적으로 일조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세면대 장면에서 모습을 드리우는 과거의 소음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잊혀지지 않는 그 죄책감(혹은 시대가 남긴 트라우마)이라는 유령적 존재가 우리의 일상에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대 운동권들이 겪어야했던 &lsquo;물고문'이라는 시대적 폭력의 상흔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장면이 이토록 섬짓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망각하고 있던 과거(를 재현시키는 소음)가 세수를 하려는 일상적인 순간에 불쑥 찾아와 현재를 장악해버렸다는 것에 있다. 요컨데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 과거는 - 우리의 기억을 통해 왜곡된 생태로 현실에 개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 그 자체로는 더 이상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에, &lsquo;유령적인 존재&rsquo;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발생한 영화 속 사건(중기가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자백하는 사건)이 특정 쇼트를 통해 물리적인 이미지로 보여지지 않고, 오직 인물들의 언급, 또는 비명, 목소리 같은 청각(사운드)에 의해 전개되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이 유령적인 존재는 우리에게 물질적인 방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다가 올 수 없다. 반면 그것이 간접적으로 우리 현실에 침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과거가 무의식 중에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마치 유령처럼 어느 순간 비물질적으로 우리의 현실에 다가온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적어도 에서 만큼은) 과거가 현재에 소환되면, 현재의 지반을 이루고 있는 무수히 많은 과거의 층위 중 하나가 현재의 표부와 뒤섞이며 현재(의 상태)는 위태롭게 변질되어 버린다. 일상적이었던 것은

  • 화자
  • 2025-07-14
고다르(론): 고다르와의 대화

고다르의 죽음 : 늦었지만, 이른 늦-초가을의 추도문그러니깐, 2022년 어느 늦여름이었다. 늦여름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도보에 떨어진 낙엽이 가끔씩 눈에 들고는 하는 가을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으므로 나로서는 이 시기를 무어라 단정짓기 어려운 것이었다. 수요일이었고, 몸이 아파 학교를 조퇴한 상태에서 여느날과 다름없이 영화 한 편과(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영화는 아마 테렌스 멜릭의 였을거다) 도서 한 권을 곁에 두고 하루를 여유롭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당신의 부고소식을 들었다. “누벨바그의 거장,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하다”기사가 떴다. 당신의 이름은 고다르. 어디선가 스쳐가듯 들어본 적 있었으나, 당신은 내게 어색한 사람이었고, 난 어정쩡 그날 오후를 보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조금의 시간이 지나, 2023년의 겨울 끝자락 무렵, 당신의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본 세 편의 영화. 와 , 그리고 . 당시에는 그냥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이런 영화가 다 있지, 싶은 정도. 그랬던 나는, 어느새 장 피에르 멜빌을 존경하던 당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새뮤얼 퓰러와 프리츠 랑을 사랑하던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당신이 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풀어놓기에는 너무 늦은걸까. 당신은 이 세상에 없다. 이 글이 쓰여지기 불과 얼마 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당신의 압도적인 지력으로 세계 영화사와 시네마의 의미를 탐구하는 걸작 과 를 다시 보았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당신에 대한 나의 마음은 싹 트는데, 내가 보지 못한 당신의 영화는 이제 과 단 두 편 뿐이다. 이제 그 마음마저 끝에 다다르고 있는 것일까.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나는 그 두 편 보기를 계속 미루고, 당신의 작품들을 여러번 돌려보고 있다.그러던 중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두 편의 영화를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목은 . 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건 이번이 두번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첫번 째는 칸 영화제였다. 그곳에서 를 상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프랑스에 가려고 애썼다. 물론 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상영일이 지났을 때, 나는 좌절했다. 미치도록 보고 싶은 영화가 바로 당신의 것이었다. 이건 내가 시네필로서 당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그리고 반 년의 시간이 흘러 그 영화가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이번이 아니면 당신의 영화를 볼 기회는 정말 없을지도 모른다. 방학시기와 여행시기가 맞물려 운좋게도 토론토국제영화제에 갈 수 있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건, 당신의 유작이 상영되었던 상영일이 당신의 기일이었다는 것이다. 선선한 저녁이었고, 내가 당신의 부고를 들었던 날이기도 했다. 지금이 2024년이라는 것만 의식하지 않게 되어버린다면, 나는 마치 당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경계에 우두커니 서있게 되었다. 알 수 없는 감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당신은 이 세상에 없지만, 그 누구보다 이 세상에서 강

  • 화자
  • 20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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