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풍화가 당신을 떠난 세계의 하루
- 작성자 화자
- 작성일 2025-03-25
- 좋아요 0
- 댓글수 0
- 조회수 540
"내가 너를 버렸다고 기억할 때, 그것은 사실이다. 내가 너를 버렸던 것 조차 아니라고 네가 슬프게 말할 때,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으로부터 버림 받은 것이라고 네가 생각할 때, 도대체 누가 지금 네 곁에 남아있는가?" - 『기다림 망각』 (모리스 블랑쇼, 1962)
여름의 더위가 아물지 않은 작년 초가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베르나르 뷔페 회고전을 다녀왔다. 한때는 미술학도였으나 이제는 붓을 꺾고 꽤 긴 시간 영화와 일탈을 벌여온 사람으로서,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고는 하는데, 특히 그것이 학교에서 얼핏 들어본 이름이라거나, 관념적인 이론 내부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 중에서도 베르나르 뷔페는, 근현대 국외작가를 향한 화단의 협소한 연구와 담론으로 인해, 국내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그에 대한 논의가 중단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던 작가였다. 뷔페에 대한 대부분의 글들이 이번 전시회 시기를 내외로 갑작스레 여러 지면에 발표되었다는 것과, 같은 시기 열린 뭉크 전시회의 방문객에 비해 뷔페 전시회의 객들이 눈에 띄게 적었다는 사실이 그 반증일 것이다.
더군다나 베르나르 뷔페 회고전 현판에는 대놓고 ‘피카소가 질투한’ 화가라거나 현대미술의 ‘양대산맥'을 이루는 작가라는 둥, 다소 보편적이고 신화적인 문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나로서는 쉽사리 수긍하기 어려운 수식어들이었다. 그 수식들의 부당성을 설명하기 위해선 뷔페의 작품들이 어떤 의미를 지닌 채, 어느 위치에 놓여있는지 말해보아야 할 것이다.
뷔페의 풍화
요컨대 뷔페의 그림을 본다는 것은 작가의 심상을 가장 직관적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때로는 날카롭고, 어쩔때는 정갈하며, 움푹 파여있는 감각적인 선들은 캔버스에 선을 긋고 있던 뷔페의 심상을 가늠케한다. 보다 명료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그의 작품들을 시기별로 나열해서 비교해보는 편이 더욱 효과적일 듯 하다.
(1) 청년기 1948년 (당시 뷔페 나이 20세)
(왼쪽부터) <가오리와 물통 (1948)> , <닭 (1948)>, <생선이 있는 정물(1948)>
(2) 중년기 1970년대 (당시 뷔페 나이 40세 중반)
(왼쪽부터) <생트로페, 라 퐁쉬 지구 (1972)>, <로스포르당, 소나무 뒤에서 본 성당 (1975)>, <빌랑드리 성 (1976)>
(1)은 청소년 시절에서 청년 시절까지 그린 그림들이고, (2)의 경우는 그의 작품이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중장년기의 작품들이다.
그의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여의고 뷔페 혼자 살아가야 했던 불행했던 유년시절 그린 그림들, 가령 (1) 의 작품들은 난잡한 선들이 캔버스를 뒤덮고 있고, 무미건조한 색감과 왜곡된 정물들이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이곳에 그어진 거친 선들은 마치 당시 고독과 연민에 빠져있던 뷔페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반면 그가 사회적으로 유명 화가로 떠올랐을 시기의 작품들 (2)은 대부분 초기에 비해 비교적 단조롭게 정리된 선들과 정물화같은 일반적인 색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작품들에 그어진 선들은 부동할 것처럼 단단하고 두꺼워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안정감을 느끼도록 한다. 그것은 초기에 비해 외려 산뜻하고 정갈한 감각을 불러일으켜서 이 시기 그가 심적으로 차분한 생활을 보냈다는 것을 짐작 하도록 한다. (그러나 60년대의 뷔페는 마냥 행복했던 것 같지는 않다. <광대>와 <자화상>에 무수하게 분포한 거친 선들은 뷔페가 자신의 사회적 명성과 반대되게 오히려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뷔페에게 ‘그림 그리기 행위’란 자신이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그 스스로 투명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상태와 존재를 기록하는 과정이었으며, 그의 작품들이 다양한 선들과 조화를 이루어서, 종국에 하나의 풍화를 지닌 작품이 되었을 때, 그것은 곧 뷔페의 치열한 자기존재의 성찰적 결과물에 다름 아니었다.
이처럼 우리는 뷔페의 그림을 통해 그의 작품에 기록되고 표현되었던 그의 상태를 살펴볼 수 있다. 영화가 마치 쇼트의 연쇄로 인해 하나의 완전한 작품이 되는 것처럼, 뷔페 역시 무수히 많은 선(감정)들을 연쇄시키며 완전한 작품/풍화를 만들어냈다.
이같은 뷔페의 작품이 지닌 풍화성은, 마르셸 뒤샹 이후 현대 미술사조의 패러다임이 작품의 전체적인 풍화/이미지가 아니라 작품 근저에 숨어든 의도로 치환된 오늘날, 그의 작품들을 더욱 희소성있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곧 뷔페의 작품이 현대미술과 다소 불확실한 거리성을 두고 있다는 것을 감각케한다.
뷔페는 언제나 추상적인 사색을 요구하던 뒤샹과는 반대로 난폭한 선들이 일구어낸 전체적인 풍화를 통해 자신의 시선과 상태를 표현해냈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은 추상화가 아니라 ‘회화’의 범주에 속해있다고 분류하는 편이 알맞을 것이다. 그 것은 뷔페가 말년에 이를수록 정물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사물을 추상화시켰던 ‘피카소’와 전혀 다른 위치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동시에, 그가 ‘현대미술’의 거장이라기 보단 오히려 근대미술(회화)과 현대미술(추상화)의 경계에서 두 미술사를 연결짓고 있던 마지막 보루라는 것을 현시한다.
뷔페와 나
전시회를 나오며 많은 관객들이 회고전 현판 앞에서 사진 찍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간혹 “피카소에 버금가는 사람이래”, “이 사람 그림 너무 아름답다, 그렇지?” 라는 식의 뷔페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부조리한 찬사들 역시 들을 수 있었다. 뷔페의 그림을 앞에 두고 아름답다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겨우 생계를 이어나가던 아이가 캔버스에 마구 그어낸 거친 선들을 보고 도대체 어떻게 “아름답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자신의 얼굴(자화상)에 스크래치를 내던 사람의 모습을 두고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떻게 형용 가능한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럴때면 동시대 미술에 대한 대중의 비평적 소비가 과거에 비해 그다지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몰려와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내 이런 식으로 관객성을 비난하고, 뷔페의 그림을 다 안다는 식으로 사고 한다는 것 자체가 비평적으로 그다지 타당한 행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 생각해보면, 사실 나 역시 뷔페의 그림을 어떻게 형용해야할지 모르는 것 같다는 의문 때문이리라. 난 뷔페를 두고 근대와 현대미술을 연결짓던 최후의 보루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것만으로 내가 그의 회고전에서 느꼈던 감흥을 설명하기엔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뷔페의 그림들을 보고 느꼈던 감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한참을 생각하다, 문득 뷔페의 작품이 건네주는 설명되지 않는 감흥이 미술을 대하는 나의 감정적인 태도로부터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미술에 대해 말할때마다 드는 싱숭생숭한 감정. 이 복잡미묘한 감정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다소 장황한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이것은 종종 오늘처럼 미술에 대한 이야기, 미술비평 미래에의 대한 근심을 걱정할 때면 돌연 나에게로 찾아온다. 그것은 미술을 기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만들어내서, 미술에 관련된 이야기를 발화 할 때마다 (매우 불필요한) 자기검열을 수행시키고는 하는데, 지금 이 순간에도 ‘붓을 꺾은지가 언젠데 이제와 누군가의 작품에 대해 왈가불가하는 건 너무 기만적이지 않은가’,하는 식으로 특정 미술작품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욕망을 일축시킨다. 그럴때면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미술을 등지고, 미술은 한참을 서있다가 나를 떠난다. 우리 관계는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미술을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 한때는 나도 미술을 사랑했다. 너무도 사랑해서, 열시간씩 의자에 앉아 선을 그었고, 손이 망가져도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바꿔 말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적어도 그 모든 것을 하기 전까지는, 나는 미술을 좋아했었다고. 나는 분명 열시간 씩 의자에 앉아 이젤에 발을 걸치고 선을 긋기 전까지만 해도 미술을 좋아했다. 다만 내가 미술을 통해 원한 건 그런게 아니었다. 따분한 정물을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는게 아니었고, 연필을 깎다 손이 망가지는 것 역시 아니었다. 하루종일을 낡은 조명에 의지한 채 미술실에 사는 건 이제 막 초등학교를 나온 아이에겐 너무 가혹하다. 그림을 그리면 항상 듣게되는 합평이란 이름의 상처. 사랑하는 것을 배우며 듣게 된 비난에 가까운 비판들은, 뜨겁게 타오르던 심장에 물을 적시고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의문을 갖게 한다. 내가 그것을 너무도 사랑해서 하게 된 일들은, 내가 그것을 너무나 끔찍이 여기도록 만들었다. 자정이 가까운 어느 깊은 밤, 미술실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저절로 알게 되었던 거 같다. 더 이상 미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그래서 그날밤 집에 돌아와 부모님 앞에서 울고불며 난장을 친 끝에, 그 끔찍한 곳으로부터 도망쳤다. 다시는 그곳에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우리의 관계를 둘러싸고 있는 어떤 감정은 갑작스레 솟아올라, 한때는 너무 사랑했던 것을 배신했다는 죄책감이 미술에 대해 함구하기를 종용하고, 동시에 무고하다는 순결 역시 솟아올라 그것에 대해 입을 열고자 하는 마음을 부추긴다. 내가 미술에 대해 언급하기를 이렇게 꺼리는 까닭은, 사랑했던 것을 배신했다는 배덕감이 미술을 향한 지식을 표출하고자 하는 지적 욕망을 잡아먹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여전히 미술에 대한 이 마음은, 조금 더 복합적인 것 같다.
그것은 미술을 관둘 때 더 이상 그림은 눈에도 두지 않을 것처럼 생각했으면서도, 이렇게 간간히 회고전과 특별전에 방문하는 것처럼, 모순적이고 역설적이며, 어딘가 뒤틀려있다. 난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형용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내가 느끼는 그 감정들은 언뜻 뷔페의 것과 비슷해보인다.
그림을 사랑하던 뷔페는 캔버스 위에 거칠고 난폭한 선들을 그어버렸다. 그 선들은 대부분 부모님의 부재, 친구의 부고, 자신의 몰락 등에 의해 더욱 강렬한 생명력을 얻었고, 그의 그림이 스타일리시해질수록 뷔페의 이름은 더욱 가치를 얻었다. 슬픔이 행복이 되는 역설. 혹은, 행복이 슬픔이 되는 역설. 이 역설은 내가 미술을 사랑해서 행위했던 행동들이 돌연 나에게 칼이 되어 돌아왔던 것처럼, 매우 모순적이다. 뷔페의 대표작 <광대>나 <자화상> 속 담겨있는 우중충한 우울함 이 바로 그것이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 역시 완전히 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뷔페의 작품과 닮아있다는 인상이 드는 까닭 또한 그래서 아닐까?
다른 이의 그림전도 아니고 굳이 뷔페 회고전에 다녀와 오래간 묵혀온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었던 건, 아마 그가 만들어낸 작품의 풍화가 표출하고 있던 심정이 나의 것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의 그림은 언젠가 내가 느끼고 있는, 그러나 저 기억 저편에서 망각하고 있던 역사적 감각을 물질적으로 소환시켜 놓았고, 그것과 직접적으로 감응하도록 했다. 그의 그림을 보고 내가 직접적으로 마주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하지만 난 뷔페의 회고전에서 겪은 이 감정적 경험들이 미술과 나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뷔페는 자신이 죽기 직전 마지막 순간까지 거친 선들을 숨기지 못했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우울한 과거와 신경적인 기억들이 뷔페를 괴롭혔고, 죽음의 순간까지도 그것은 뷔페의 곁에서 함께 했다. 이 과거와는 결코 이별할 수 없다. 발생해버린 과거는 우주가 촉발시킨 하나의 사건일지 모르겠으나, 그 과거를 특정한 순간 떠올리고 불러들이는 건 자신만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과거는 우리가 거리를 두고 해결할 수 있는 타자가 아니라, 우리의 핏줄에 토착되어 도저히 거리를 벌릴 수 없는 자신의 또 다른 마음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빠져나온 이른 오후, 초가을의 바람은 햇살에 데워지고 있었고, 난 그 햇살 속을 걸었다. 5년 전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미술을 등지고 걷고 있었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이제 우리는 그 어떤 애증으로도 묶여있지 않으니깐. 하지만 여전히 먼 과거가 불러들인 이 응어리진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 속 무겁게 가라앉아 그것을 생각하도록 한다.
요컨데 어떤 관계는 그저 과거로 남겨두어야 더욱 아름답다. 나는 미술이 내게 그런 존재이길 바란다. 그래서 언젠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관계도 부식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걸음을 옮겨나갔다. 가로수길을 가로질러 버스에 몸을 실었고, 난 그곳을 떠났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미술과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을 망각하게 될 것이고, 종국엔 풍화가 나를 떠나간 세계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미술과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오늘처럼 회화 같은 하루가 나의 곁에 함께 하고 있지만, 이 마저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르지. 그렇게 내가 기억하던 세계의 풍화는 점점 옅어질 것이다. 난 이런 하루하루가 나를 떠나는 그런 세계를, 또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게 되리라.
추천 콘텐츠
문학에서 (특히 소설의 경우) 저자가 3인칭 서술을 사용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만 최근 한국문학에서 3인칭 서술 사용의 빈도가 가시적일 정도로 줄어들었다는 인상을 받고는 한다. 특히 그러한 양상은 미디어 매체에 전면적으로 영향을 받고, ‘SNS’와 ‘알고리즘’이라는 자기 폐쇄적인 공간을 시대에 의해 수용하게 된 2030 ‘젊은 세대’ 작가들에게서 크게 발견되고 있다. 대표적인 이들만 간단히 호명해 보자면, ‘김병운’, ‘김멜라’, ‘김지연’, ‘이서수’, ‘서이제’, ‘손보미’ 등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작품(들)은 대게 소설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화자를 ‘나'라는 1인칭 단수로 설정함으로써 개인적인 이야기를 자기 폐쇄적인 공간에서 진솔하게 이끌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성에 대한 조심스러운 고민의 흔적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젊은 작가들이 1인칭 묘사를 애용하는 이유를 살펴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휴대폰이 이제 막 세상에 등장했을 때, 그들은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었거나, 혹은 대학을 전전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한때 국내 문단을 주름잡았던 7080 세대들이 민주화 운동의 전선에서 사회를 마주하고 발화와 사유를 터득했던 것처럼, ‘2030’ 젊은 작가들은 휴대폰이란 자가폐쇄적/개인적 공간에서 세상을 마주했다. 그렇기에 ‘7080’ 세대 문인들이 운동권에서 세상을 배워나가며 ‘정치 문학’이라는 하나의 시대적 흐름을 만들어냈듯, 2030 세대 문인들은 (옳은 명칭은 아니겠지만) ‘개인 문학’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1인칭 묘사는 그러한 시대적 흐름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이 사례를 긍정적으로 (또는 무감각하게) 바라보는 것은 그다지 좋은 행동이 아닌 듯하다. 시대에 따라 뒤바뀐 양상을 검토 없이 수긍하는 것은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뿐더러, 체화되지 않은 것들을 내부로 끌어들일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묘사법처럼 독자와 작품을 매개 하는 중요한 형식은 더욱 세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런 1인칭 묘사/서술에 대해 조금 더 많은 논의를 거칠 필요성을 느꼈다. 1인칭 묘사에 대해서는 풀리지 않는 논의가 하나 있다. 그것은 작품 속 ‘나’가 소설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구체화된 창조적 ‘인물'인지, 아니면 이면지 뒤에서 글을 쓰는 작가 ‘본인'인지에 대해서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지점에서 ‘당사자가 아닌 사람(작가)’이 화자가 되어 당사자 행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어쩌면 작품의 윤리를 결정적으로 판가름 지을 수도 있는 흐릿하고도 모호한 자가당착의 경계에 봉착한다. 작
- 화자
- 2025-09-11
속 유령을 찾아서 조명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세면대. 세수를 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중기에게 오래전 망각하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어떤 남자가 강압적으로 묻는다. “○○○ 어딨어?!” 중기는 떨리는 손을 허공에 뻗은 채 세면대를 벗어나 빛이 새어오는 문 틈으로 다가간다. 귓가에 울리던 폭력적인 소리는 더욱 크게 증폭된다. 과거의 소음이 현재를 장악해버린다. 김응수 감독의 1998년 영화 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불혹에 접어든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이 오래간만에 만나 시간을 보내는 내용을 담고있다. 언뜻보기에 애틋하고 향수어린 감각이 묻어있을 것 같은 줄거리이지만, 영화를 보게되면 정작 그런 것들과는 다소 거리가 먼 영화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오히려 위에서 서술한 세면대 장면을 보면 몸서리 처질 정도로 오싹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아름다워야할 이 장면이 이토록 소름돋게 다가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를 살펴 보기 위해 우선 세면대 장면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아야할 듯 싶다. 영화는 80년대 운동권에서 활동했던 학생들의 현재(90년 대)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한국을 떠나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데, 중기라는 인물은 군사독재시절 운동권으로서 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동료에 대해 자백해버려 그의 죽음에 선험적으로 일조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세면대 장면에서 모습을 드리우는 과거의 소음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잊혀지지 않는 그 죄책감(혹은 시대가 남긴 트라우마)이라는 유령적 존재가 우리의 일상에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당시대 운동권들이 겪어야했던 ‘물고문'이라는 시대적 폭력의 상흔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장면이 이토록 섬짓하게 다가오는 까닭은, 망각하고 있던 과거(를 재현시키는 소음)가 세수를 하려는 일상적인 순간에 불쑥 찾아와 현재를 장악해버렸다는 것에 있다. 요컨데 오랜 시간이 흘러버린 과거는 - 우리의 기억을 통해 왜곡된 생태로 현실에 개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 그 자체로는 더 이상 현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에, ‘유령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 발생한 영화 속 사건(중기가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자백하는 사건)이 특정 쇼트를 통해 물리적인 이미지로 보여지지 않고, 오직 인물들의 언급, 또는 비명, 목소리 같은 청각(사운드)에 의해 전개되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이 유령적인 존재는 우리에게 물질적인 방식을 통해 직접적으로 다가 올 수 없다. 반면 그것이 간접적으로 우리 현실에 침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과거가 무의식 중에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마치 유령처럼 어느 순간 비물질적으로 우리의 현실에 다가온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적어도 에서 만큼은) 과거가 현재에 소환되면, 현재의 지반을 이루고 있는 무수히 많은 과거의 층위 중 하나가 현재의 표부와 뒤섞이며 현재(의 상태)는 위태롭게 변질되어 버린다. 일상적이었던 것은
- 화자
- 2025-07-14
고다르의 죽음 : 늦었지만, 이른 늦-초가을의 추도문그러니깐, 2022년 어느 늦여름이었다. 늦여름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도보에 떨어진 낙엽이 가끔씩 눈에 들고는 하는 가을의 초입에 들어서고 있었으므로 나로서는 이 시기를 무어라 단정짓기 어려운 것이었다. 수요일이었고, 몸이 아파 학교를 조퇴한 상태에서 여느날과 다름없이 영화 한 편과(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영화는 아마 테렌스 멜릭의 였을거다) 도서 한 권을 곁에 두고 하루를 여유롭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당신의 부고소식을 들었다. “누벨바그의 거장,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하다”기사가 떴다. 당신의 이름은 고다르. 어디선가 스쳐가듯 들어본 적 있었으나, 당신은 내게 어색한 사람이었고, 난 어정쩡 그날 오후를 보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조금의 시간이 지나, 2023년의 겨울 끝자락 무렵, 당신의 영화들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본 세 편의 영화. 와 , 그리고 . 당시에는 그냥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이런 영화가 다 있지, 싶은 정도. 그랬던 나는, 어느새 장 피에르 멜빌을 존경하던 당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새뮤얼 퓰러와 프리츠 랑을 사랑하던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당신이 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풀어놓기에는 너무 늦은걸까. 당신은 이 세상에 없다. 이 글이 쓰여지기 불과 얼마 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당신의 압도적인 지력으로 세계 영화사와 시네마의 의미를 탐구하는 걸작 과 를 다시 보았다. 영화를 보면 볼수록 당신에 대한 나의 마음은 싹 트는데, 내가 보지 못한 당신의 영화는 이제 과 단 두 편 뿐이다. 이제 그 마음마저 끝에 다다르고 있는 것일까.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나는 그 두 편 보기를 계속 미루고, 당신의 작품들을 여러번 돌려보고 있다.그러던 중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두 편의 영화를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목은 . 가 극장에서 상영되는 건 이번이 두번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첫번 째는 칸 영화제였다. 그곳에서 를 상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프랑스에 가려고 애썼다. 물론 가지는 못했다. 그렇게 상영일이 지났을 때, 나는 좌절했다. 미치도록 보고 싶은 영화가 바로 당신의 것이었다. 이건 내가 시네필로서 당신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그리고 반 년의 시간이 흘러 그 영화가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이번이 아니면 당신의 영화를 볼 기회는 정말 없을지도 모른다. 방학시기와 여행시기가 맞물려 운좋게도 토론토국제영화제에 갈 수 있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건, 당신의 유작이 상영되었던 상영일이 당신의 기일이었다는 것이다. 선선한 저녁이었고, 내가 당신의 부고를 들었던 날이기도 했다. 지금이 2024년이라는 것만 의식하지 않게 되어버린다면, 나는 마치 당신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경계에 우두커니 서있게 되었다. 알 수 없는 감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당신은 이 세상에 없지만, 그 누구보다 이 세상에서 강
- 화자
- 2025-03-26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선택하신 댓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