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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얼굴

  • 작성자 방백
  • 작성일 2025-05-23
  • 조회수 565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미래의 물 빠진 청바지와 다 헤진 가죽 장화와 물방울무늬 머리핀에 대해서. 미래가 가지고 있는 여러 색의 모자와 미래의 힘 있는 춤에 대해서. 나는 미래가 걸어갈 때 미래의 등 뒤에서 장마 직전의 흙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미래가 우산을 들고 맑게 갠 하늘이 든 웅덩이를 때릴 때 물방울에서 빠져나오는 어제 저녁의 먹구름 냄새도 맡을 수 있다. 그럴 때 책상과 의자는 습기를 먹어 흐물거리고 겁먹은 우리 양말 속 애벌레가 어디로 갔는지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나는 척추를 마디마디 말아 천천히 미래의 몸을 안으면서 미래를 통해 우리 학교 바깥의 산을 볼 수 있다. 입사각과 반사각이 같은 유리벽이 낮선 동물을 비춘다. 미래가 산으로 걸어들어갈 때 나는 발걸음을 경쾌하게 통통 퉁퉁 빵빵 자동차 경적 야산으로 향하는 우리의 스텝을 막아선다 그러면 나는 소리를 가볍게 툭 차버려야지. 미래야. 미래가 방글방글 웃으면서 물 빠진 청바지를 입고 다 헤진 가죽 장화를 신은 채 탭댄스하는 영국 신사처럼 우산을 빙글빙글 휘두른다 나는 미끄러운 이면도로에 미래와 나의 둥근 모습을 조금씩 흘려두고 탁타다다닥 탁다라닥다 몸을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가드레일을 뛰어넘어 미래의 투명한 유리몸처럼 깨지기 쉽게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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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주어진 사랑, 그 이후의 삶 : 이디스 워튼의 [여름]을 읽고

로맨스를 다룬 이디스 워튼의 소설, [여름]에 대한 가장 역사적(또한 현재까지 일반적)인 해석은 이렇다. 여자 주인공인 채리티가 자신의 성적 욕망과 사랑을 마주하고 점점 성숙해지는 “성장 소설”. 1917년 미국, 아직 여성 참정권도 허용되지 않던 시기. 여성의 성적 욕망과 사랑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이 소설은 파격적이었고, “인습과 전통에 맞서 자신의 욕망을 직면하는 여성을 묘사하며 미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고 한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미묘한 불쾌함을 느꼈다. 채리티는 자신의 욕망을 직면했으나, 그 끝을 보지 못했다. 현실의 벽에 욕망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채리티는 결국 로열(이하 **후견인)과의 결혼에 만족해야 했다. 100년도 전에 발간된 소설이니, 물론 지금의 생각만큼 파격적인 전개는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현대에 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뒤표지는 이 결말을 “성장”이라고 소개한다. ‘채리티’는 기독교적 의미로 사랑을 상징한다. 이 소설을 읽은 뒤, 난 채리티가 그 이름에 걸맞은 사람이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주변 인물들과 상황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마음‘에 솔직하여 후견인의 사랑을 거절했으며, 하니와 함께 정열적인 ’사랑‘을 했다. 몸과 마음이 취약해져 후견인과의 반강제적인 결혼을 진행하기 전까지는, 채리티가 늘 ‘자신의 마음’과 ‘선택’을 계기로 하여 움직였으니, 남자들의 사랑에만 휘둘리던 당대의 수동적인 여성상을 탈피한 성격은 의미가 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더 깊이 파고들면, [여름]은 결말에서 드러나는 구조적 한계가 분명한 소설이다. 채리티는 본인의 원래 꿈이었던 자립의 가능성이 모두 사라진 후에서야, 후견인과 결혼하게 된다. 혼약의 진행마저도, 신부에게 주어지는 강제성을 묵인하는 목사와, 당사자인 후견인/채리티 단 셋뿐인 공간에서, 절망적인 상황에 몸과 정신이 취약해진 채리티가 제대로 거부할 수 없는 상태일 때 해치우듯 벌어진다. 자신이 결혼했고, 이제 돌이킬 수 없음을 인정한 뒤에야 후견인에게 안정을 느낀 채 끝나는 결말을 우리가 “성장”한 것이라고 읽을 수 있을까? 난 아닌 것 같다. 혹자는 후견인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현실을 받아들인 채리티가 성숙해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포기와 체념이었고, 그토록 갈망하던 자립이 사라진 최후의 선택지였으며, 남성의 보호 아래서만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가부장제 구조에 순응한 결말이다. 여성 참정권조차 없었을 당시에는, 단순히 여성의 성적 욕망과 사랑이라는 키워드를 당당히 드러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었겠지만, 이 소설을 현재의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결국 가부장제 안에서 사랑과 성적 욕망을 절제 당하고, 바꿀 수 없는 현실에 순응한 여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여성에게 “성장”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데에 있어 나는 잘못됨을 느꼈다. 만약

  • 방백
  • 202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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