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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어른이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5-12-19
  • 조회수 490

*주의: 본문에는 이물 표현이 있습니다. 식사하시면서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며칠 전, 고등학생 시절 친구를 만났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6개월 전이었지. 못 본 지 반년 동안 그와 나는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그는 2학년 1.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모두 마쳐 고3을 마주해 있고, 나는 검정고시와 수시 합격 그리고 수능을 치르는 등의 경험과 성취를 이루어 냈다. 그래, 우리 모두 올 한 해 수고했지. 또한 내년에도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온 힘을 다해 뒤척이겠지. 그런 뒤척임이 한 해 한 해 쌓이며, 우린 나이를 먹어갔다. 

그러다 보니, 금세 열아홉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청소년이 유효한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게 됐다.


일 년, 일 년 지날 때마다 몸은 매해 바뀌었다. 키와 몸무게가 늘기도 하지만, 어릴 때 좋아했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는 등 체질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특히 작년에는 그 변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평소에 즐겨 먹던 얼큰한 찌개와 매콤한 닭발을 몇 입 먹지 않았는데, 먹은 뒤에 속이 끓거나, 변을 자주 보는 등의 행위가 심해졌고, 매운 음식을 거부하게 됐다. 그렇기에 옛날에 바라보지도 않았던, 사리곰탕과 튀김우동이 제일 좋아하는 라면으로 변했다. 계속 이러다가, 이들조차 맵다고 느끼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매운 것도 못 먹는 맵질이 어른이 되는지 해가 거듭될수록 음식에 대한 걱정이 커진다.


하지만, 매운 음식과 반대로 어릴 적 못 먹었던 비빔밥은 한 해가 지날수록 고추장, 다시 먹을 수 있게 됐다. 내가 지금 껏 비빔밥을 먹지 못한 이유는 네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트라우마.


평범했던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급식으로 비빔밥을 먹었던 그날 급식이 속에서 얹혀 기절했다. 나는 태권도에 들어가자마자 출입문에서 토를 내뱉고, 나도 모르게 쓰러져 버렸다. 일종의 침묵, 어쩌면 소란스러운 환경에서의 고요만이 내 몸을 짓눌렀다. 그런 짓누름에 눈은 점점 감겼다. 어둠이다. 어렸을 때 나는 어둠을 참 무서워했는데, 그 당시에는 어둠이 무섭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편안한 휴식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어둠 속에서 쉬었을까?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구급 대원들이 있었고, 태권도 학원 원장이었던, 위층의 미술 선생님과 태권도 사범님 등 학원 관계자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그중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미술 선생님의 질문.

"희찬아, 100까지 세어볼까?"

그녀의 질문에 몇 까지 세었을까? 한 사십까지는 말했던 것 같지만, 결국 100까지 세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모르겠어요."

사실, 내가 숫자 100까지 셀 수 있는지 궁금해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내가 다시 정신을 잃지 못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찾은 거겠지. 이후 몇 가지 질문을 받은 뒤, 나는 앰뷸런스를 타고 태권도 사범님과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것이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러나, 이는 그 상황의 마지막은 아니었다.


이후, 각종 검사를 받았다. 뇌파와 CT 등 뇌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수많은 검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심박수 검사 같은 검사였다. 학교에 등교하기 전, 엄마와 병원에 들러 가슴 쪽에 기기를 붙였다. 조금은 끈적하고, 조금은 촉촉한 측정기 형태의 모양이었다.

"이거 떨어지지 않게 조심히 활동하렴."

엄마의 당부를 듣고, 학교에 등교를 했다. 역시 담임 선생님도 엄마처럼 나와 내 짝꿍 그리고 반 친구 전체에게 이야기했다.

"얘들아, 희찬이 기기 떨어지면 안 되니까 조심하렴."

반 전체가 하루 동안, 내 아픈 부분을 알게 됐다. 초등학교 1학년 어린 마음에 나를 드러낸다는 것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뿐 아니라 그들도 아직 어렸기에 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은 없었다. 다행히도. 비빔밥이 나왔을 때, 나물과 밥을 따로 받는 이유도 그 당시에는 물어보지 않았고, 해를 거듭해도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비빔밥을 먹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더 이상 물어보진 않았다. 


그렇게 영원히 비빔밥과 악연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존재가 편리함으로 바뀌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이후,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점심이었다. 엄마는 출근해야 했으며, 나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 매 끼니를 거창하게 먹을 수 없고, 그렇다고 인스턴트만 먹자니 가뜩이나 부른 살이 더 불 것 같았기에 간단한 음식을 찾아야 했다. 그러면서 국수, 볶음밥 같은 것들을 찾았다. 국수 같은 경우에는 멸치로 국물 우리고 지단만 붙이면 됐고, 볶음밥은 햄이나 야채 같은 것들을 송송 썰고 볶기만 해면됐기에 간단했다. 그러나, 이런 음식들은 모두 불 앞에 가야 하는 요리라는 것이다. 더운, 여름에는 불 앞에만 가도 열기 때문에 짜증이 났기에, 음식을 요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불 없이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을 생각했다.


그냥, 열무와 참치만 넣고 비비자. 그렇게 시작한 비빔밥이 점점 갈수록 호박나물, 깻잎순, 세발나물 등등 비벼 먹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나물을 먹으면 비벼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 이거 궁체는 아닌데 뭐예요? 비벼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서."

"토란대야."

이런 식으로 할머니께 나물 반찬의 이름을 물어보고, 싸달라고 하는 등의 행위를 여러 번 하게 됐다. 이런 거 보면, 참 다행인 것 같았다. 어른이 돼서 어떤 종류의 음식을 못 먹는다는 것은 약점이 될 수 있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는 것은 음식뿐 아니었다. 성격도 어린 시절과 많이 달라졌다. 며칠 전, 엄마와 외할머니의 통화 내용을 들었다. 내가 대전에서 혼자 잘 살 수 있을지, 대학은 잘 다닐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과 고민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할머니한테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내가 옛날의 내가 아니라고.

"엄마, 희찬이 옛날 순둥이 아니야. 완전 애늙은이 됐어. 능글맞아졌고 완전 배 째야. 이제 어머니, 아버지에게 지 의사 다 말해."

"듣던 소리 중 반갑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틀린 말은 아니다. 최근에도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음식이 나오지 않았을 때 이 말도 했으니.

"아, 명 짧은 놈은 굶어 죽겠어."

옛날 같았으면, 이런 말은커녕 그저 빤히 눈치만 보고 있었을 텐데.


내가 이렇게 변한 이유는 친할아버지의 치매 같은 선망 증세 때문인 것 같다. 2025년 4월 그는 큰 수술을 받았다. 개복 수술까지는 아니지만, 수술을 치렀으며, 며칠간 입원을 하셨다. 그 수술 때문인지, 할아버지는 지난 몇 해 간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우리 가족을 보며 "오늘 학교 쉬는 날이냐?"라고 묻거나 양도 소득세 같은 것에 대하여 묻는다. 그런 할아버지이기에 함께 사는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해도 되는 말과 해서 안 되는 말을 가리지 않고 쏟아붓는다. 그런 뒤 할아버지는 집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렇게 그들은 나와 동생이 있어도 매일 그런식으로 싸운다. 나는 그런 그들, 특히 할머니에게 한소리를 해야만 했다. 동생이 그들이 싫어하고 무서워하기 전에.

"할머니, 욕 좀 그만하셔요. 희재 방학해서 할머니 집 가도 그럴 거예요? 희재가 다 일러."

이와 같은 말을 그녀에게 조금씩 하니, 할머니 말에 "네"로만 대답했던, 내가 조금은 날카롭게, 조금은 위험하게 내 의견을 말하게 됐다. 결코 좋은 부분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덜 싸우게 하려면 이것이 최선이었기에, 나는 나의 성격을 조금씩 바꿨다.


이처럼 청소년 시기를 흘려 보내다 보니, 내 나이는 열아홉 살을 바라보게 됐다. 많이 변한 것 같지 않지만, 나 자신이 많이 변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2014년도부터 시작한 <신비아파트>라는 애니메이션은 내년에 10주년 영화로 우리를 마주하게 된다는 예고편을 봤다. 그 예고편을 보니, 10년 후의 이야기. 나와 함께 자란,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이 스무 살이 된 뒤 사건을 다루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은 <짱구는 못말려>의 짱구와 달리, 쑥쑥 자란 그 시절의 아이들처럼 보였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짱구처럼 평생 그 나이 때로 살아줬으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봤던 애니메이션 속 친구들이 모두 자랐다.


그러나, 평생 그 나이 그대로 어린이였던 우리에게 있어 줄 것 같던 <짱구는 못말려>의 인물들 역시 많이 바뀌었다. 맹구, 봉미선, 신형식 모두 성우의 사망과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한 것 때문에 목소리가 바뀌었다. 나의 어린 시절을 지켜주던, 친구들이 하나씩 내 주변을 떠나가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 그들도 자랐다. 그래, 이제 어른이 되고 있구나


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너무 변했고, 그대로 있을 것 같은 것들이 하나씩 떨어지고 다시 맺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사계절은 저절로 변해가며 나를 뒤척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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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온 이야기는 하고 싶은데, 발에 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 발이란 무턱대고 걸어서, 땅과 마주하는 일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아요. 이걸 굳은살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랫동안 천천히 무감각해지는 발의 이야기는 굳은살투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괜찮지만, 당신들은 괜찮겠어요? 제 발이 지나온 이야기가 약간 아플 수도 있을 거예요.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궁금하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만 눈은 조금 아플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나는 분명, 경고했다. ** 그러나 사람들은 각자의 굳은살 이야기가 뭐 그렇게 듣고 싶은지, 아니면 공감받고 싶은지 눈을 크게 뜨고 눈과 눈을 마주치며 스쳐 지난다. 사실 관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걷고 있는 길에 바람이 꽤 차갑다. 강원도 산간의 겨울은 역시 눈도 많이 내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골바람이 도시의 골바람과 다른 매서움을 가지고 있다. 작년에, 삼촌 내외와 가까운 강원도 산간으로 이사를 왔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현실에서 일종의 도피를 경험하고 싶었기에. 도시에서 살며, 들이마셨던 공기와 먼지를 이삿짐과 함께 털털 털어내고 시작한 산골 생활이라 우리 가족은 이사 가기 전까지 즐거운 것들을 상상했다. 엄마와 나의 건강 회복과 농촌에 들어가면 받을 수 있는 여러 혜택. 하지만, 시골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텃세가 심하다던데.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한 식구가 주변에 사니까, 기댈 수 있는 식구가 없었던, 도시보다는 괜찮을 것 같다는 믿음과 희망이 가득했다.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엄마와 나는 손을 잡고 소리쳤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짐들은 언제 다 풀고 정리할까. 우린 서로 웃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버릴 건 버리고, 나눌 건 나누고, 가져갈 건 가져가기 위해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였다. 어느 정도 정리가 다 됐다. 이제, 이사 가기 전, 감사했던 사람들을 찾아가는 일만 남았다. 학교 다녔을 때 쉼터가 되어준 친구. 내 휴대폰에는 그들의 이름을 이름으로 저장해 두지 않았다. 성과 이름을 같이 붙여 놓으면, 차가운 느낌이 들어서. 그들을 각각 ‘아침의 햇살’과 ‘늦 밤의 달빛’으로. 저장해 뒀다. 그들이 언제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이사 가기 전에는 연락이 왔으면 좋을 것 텐데. 나는 확신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떤 것이든 ‘할 텐데’라고 말끝을 흐리기에. 모든 일이 ‘텐데’로 끝났다. 이번에도 그렇고, 저번에도, 그 이전에도 그렇고. 확신이 없었기에, 그들에게 만나자고 했던 카톡 메시지는 다른 광고성 문자들로 인해 내려갈 공간까지 내려갔다. 그런, 나랑 반대로 엄마는 최근까지도 동생네 어린이집 학부모 모임에도 빠짐없이 잘 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사람을 만나는데 거리감이 적었다. 다만, 그만큼 한 공간에 뭉쳐 있지 않으면 그들과의 관계가 금방 흐지부지하게 끝난다는 것. 엄마는 조동모임에는 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이유겠지. 조동 친구들은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뒤, 아이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유지되는 관계

  • 송희찬
  • 2026-01-25
한여름을 베어물며

가습기와 에어컨을 모두 끈 채로, 맞이하는 여름은 생각보다 더 덥고, 꿉꿉하다. 습기가 가득 찬 여름의 공기, 나무와 바람이 만약 신이라면, 지금, 이 날씨를 견디는 우리를 보며 신이 날 것 같다. 축축한 벽지와 눅눅한 얼굴과 몸, 그들이 원하는 게 인간의 벌이라면, 인간은 살아가면서 그 벌을 모두 맞이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사후 그들을 만난데도 나는 떳떳하다. 이번 여름은 작년 여름보다 더 한 것들을 안고 살아야 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세대에서, 사람 한 명 한 명 더 깊은 곳으로 추락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방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생각보다 차갑다. 여름인데, 이런 바람은 여름과 어울리지 않지만, 바람은 바람이다. 내가 공부를 싫어하는 것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수능 대비 대신, 글만 쓰는 것도 결국 나지만, 책임은 언제나 두렵다. 그러니까, 노트북을 들고 재빨리 거실로 나가자.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손은 휴대폰을 넘기고 있다. 이 쇼츠 하나만 더 보고 공부하는 거다. 그래, 딱 하나만 더 보고. 더 더워지기 전에 공부를 해야지 하면서도, 공부를 끝없이 밀어냈다. 손에 땀이 고이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앞 골목에서 집 쪽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현재 시각 14시다. 동생 희열의 하교 시간이 점차 다가온다. 그때부터 기침이 나도 모르게 갈비뼈를 짓누르고 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거부 반응. 오늘도 하루의 대다수를 휴대폰에 다 썼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언제나 빨리 학교를 나간다. 그러면서도 매일 학교를 빠지고 싶다고 희열이는 이야기한다. 물론, 내가 학교를 쉬기에 그 아이 입장에서는 내가 그렇게 보이겠지. 그러나 그에게도 지금 상황이 나쁘지마는 아닐 거다. 엄마, 아빠 출근해도 집에서 항상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 그래도, 내가 미워 보일 수도 있을까. 아직 어리니까, 그런 상황은 일단 내버려두고 옷이나 껴 입자. 언제부터 녹아갔는지 모르는 벽지 위에 걸린 옷을 꺼내 입으며, 인간이면서 인간 다워 보이려고 했다. 그게 방과 후가 끝난 희열과 본인의 자식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 대한 일종의 예의이자 안심이기에. 기침과 함께 튀어나오는 아쉬움을 감추기 위해, 홀스를 입에 물고 흰색 마스크를 입가에 걸쳤다. 이제, 날 그저 학부모 같은 청소년으로 봐 줄 수 있겠지. 오늘도, 작년 여름처럼 습기가 창문을 적셨고, 도로에는 물웅덩이가 깊게 파여 있다. 인공적으로 다시 타임 루프 한 것도 아니면서. 감기기가 아닌 기침이 작년 초 학교를 다닐 때와 비슷했다. 그러나,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 나를 잡을 수 있는 타인은 없지만, 유일한 내가 나를 잡을 수 있는 것. 최대한 배에 힘을 주고, 원조 고등학교에서 열공을 하고 있을 나를 지지한 친구들과 나를 고교에서 내 쫓은 친구와 선생님의 얼굴에 대하여 올해는 어떻게 지낼지 생각한다. 그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 자체가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을 미화하거나, 좋은 추억을 꺼내 되새김질

  • 송희찬
  • 2025-12-23
유령이 말해주는 삶의 이야기-권누리 <오늘부터 영원히 생일 >을 읽고

*:본문에 들어가기 전, 싱어게인3 1호(이바다).25호(강성희) 듀엣곡인 최백호의 의 가사와 멜로디를 듣고 본문을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FArnw42Z2NA?si=KEO65YTtYfJuUtk_ ㅡ 책을 덮고, 밖을 바라봤다. 눈이 내린 뒤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는 아무것도 맺지 않은 가지에 눈꽃 같은 얼음꽃을 피웠다. 또한 주변에 있는 학교 근처 무덤과 논밭을 이루는 토지 역시 제 기능을 잃은 것처럼 얼어 있었다. 위 모습은 2025년 12월에 본 필자의 동네 풍경인 동시에, 겨울마다 봤던 모습이기도 하다. 이처럼 12월은 찬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등 추위와 관련된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시기가 다가오면, 몇몇 학교에서는 겨울 방학과 졸업식이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12월이 지난 1월부터 우리는 한 살씩 더 먹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자에게 12월은 추운 겨울인 동시에 이별에 달이기도 하다. 함께 1년을 보냈던, 친구들과 교실에 이별을 고해야 하기에. 그러나 이와 반대로 새로움을 맞이하는 시작의 계절이기도 하다. 한 학년이 올라가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공간을 만나게 되기에. 이처럼 12월은 끝없는 만남과 끝없는 이별에 달이다. 이러한 시간의 성격은 권누리 시인이 쓴 시집 속 유령 같은 화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떠난 이에 대한 깊은 슬픔과 명랑한 기대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여러 인간일 수도 있는 한 인간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이는 시집의 첫 시편 에서부터, 마치 윤회를 기억하는 존재처럼 존재를 드러낸다. ㅡ 죽지 마 명령하면 안 되니 어제는 피아노를 샀어 가끔 치려고 명랑하게 창문 너머 비행기가 밥그릇은 언제나 비어 있고 천장에 달라붙은 열기가 깔깔 웃으면 이 이상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구르기 위한 언덕을 갖고 싶어 처박힐 우물도 자랑 없이 칭찬도 없이 청소기 헤드로 빨려들어가는 정오 함께 있을까 조금만 더 울어보고 ㅡ 전문-12~13p Beginner 한국어 해석으로는 초심자라는 뜻이다. 이 제목처럼 위 시의 화자는 이별의 초심자처럼 묘사된다. 떠난 이, 특히 죽은 사람에게 "죽지 마"라는 말로 붙잡아 명령하고 싶지만, 화자는 결코 명령하지 못한다. 역으로 떠난 이에게 "안 되니"라고 물어본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어제 피아노를 샀"고 창문 밖을 날고 있는 "비행기"와 자신의 빈 "밥그릇"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는 조심스럽게 타자를 붙잡고 싶은 화자의 욕망을 그려낸다. 하지만, 이는 "청소기 헤드"가 이물질을 빨아들이듯, 하루 중 제일 밝은 "정오" 즉 밝음과 관련된 것들을 빨아드리게 된다. 대표적으로 삶의 에너지, 웃음 같은 것들을. 그렇기에 타자와 화자는 함께 있으면, 서로 빛을 갉아먹을 것 같았기에, 초심자처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며 타협한다. 이런 타협은 시에서 화자가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시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타자에게 "함께 있"기를 청한다. 동시에 화자가 우는 모습으로 마무리 맺어진다. 하

  • 송희찬
  • 202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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