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을 베어물며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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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와 에어컨을 모두 끈 채로, 맞이하는 여름은 생각보다 더 덥고, 꿉꿉하다. 습기가 가득 찬 여름의 공기, 나무와 바람이 만약 신이라면, 지금, 이 날씨를 견디는 우리를 보며 신이 날 것 같다. 축축한 벽지와 눅눅한 얼굴과 몸, 그들이 원하는 게 인간의 벌이라면, 인간은 살아가면서 그 벌을 모두 맞이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사후 그들을 만난데도 나는 떳떳하다. 이번 여름은 작년 여름보다 더 한 것들을 안고 살아야 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세대에서, 사람 한 명 한 명 더 깊은 곳으로 추락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방으로 들어오는 공기가 생각보다 차갑다. 여름인데, 이런 바람은 여름과 어울리지 않지만, 바람은 바람이다. 내가 공부를 싫어하는 것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수능 대비 대신, 글만 쓰는 것도 결국 나지만, 책임은 언제나 두렵다. 그러니까, 노트북을 들고 재빨리 거실로 나가자.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손은 휴대폰을 넘기고 있다. 이 쇼츠 하나만 더 보고 공부하는 거다. 그래, 딱 하나만 더 보고. 더 더워지기 전에 공부를 해야지 하면서도, 공부를 끝없이 밀어냈다. 손에 땀이 고이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앞 골목에서 집 쪽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현재 시각 14시다. 동생 희열의 하교 시간이 점차 다가온다. 그때부터 기침이 나도 모르게 갈비뼈를 짓누르고 목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거부 반응. 오늘도 하루의 대다수를 휴대폰에 다 썼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언제나 빨리 학교를 나간다. 그러면서도 매일 학교를 빠지고 싶다고 희열이는 이야기한다. 물론, 내가 학교를 쉬기에 그 아이 입장에서는 내가 그렇게 보이겠지. 그러나 그에게도 지금 상황이 나쁘지마는 아닐 거다. 엄마, 아빠 출근해도 집에서 항상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 그래도, 내가 미워 보일 수도 있을까. 아직 어리니까, 그런 상황은 일단 내버려두고 옷이나 껴 입자. 언제부터 녹아갔는지 모르는 벽지 위에 걸린 옷을 꺼내 입으며, 인간이면서 인간 다워 보이려고 했다. 그게 방과 후가 끝난 희열과 본인의 자식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들에 대한 일종의 예의이자 안심이기에. 기침과 함께 튀어나오는 아쉬움을 감추기 위해, 홀스를 입에 물고 흰색 마스크를 입가에 걸쳤다. 이제, 날 그저 학부모 같은 청소년으로 봐 줄 수 있겠지.
오늘도, 작년 여름처럼 습기가 창문을 적셨고, 도로에는 물웅덩이가 깊게 파여 있다. 인공적으로 다시 타임 루프 한 것도 아니면서. 감기기가 아닌 기침이 작년 초 학교를 다닐 때와 비슷했다. 그러나, 딱 하나 다른 점이 있다. 나를 잡을 수 있는 타인은 없지만, 유일한 내가 나를 잡을 수 있는 것. 최대한 배에 힘을 주고, 원조 고등학교에서 열공을 하고 있을 나를 지지한 친구들과 나를 고교에서 내 쫓은 친구와 선생님의 얼굴에 대하여 올해는 어떻게 지낼지 생각한다. 그들이 결코 행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 자체가 나도 모르게 마음으로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을 미화하거나, 좋은 추억을 꺼내 되새김질하고 싶지 않다. 이 갈비뼈와 내 살결. 어쩌면 내 몸이 그들을 놓아버렸기에 이렇게 된 것일 수도 있겠지. 작년부터 이런 뻔뻔함을 가졌으면 얼마나 좋아. 그러나 지난 일은 생각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해도 계속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학생들이 우는소리, 자동차의 경적 소리까지 모두, 그때를 떠올리게 한다.
작년 초만 해도, 그들은 두려움의 대상이자, 기대의 대상이었다. 새롭게 안게 될 창가 맨 끝 줄에 있을 내 책상과 사물함 그리고 이런 나를 언제까지 견딜 수 있는 친구들과 어디까지 인도해 줄 수 있는 훌륭한 담임일지 늘 궁금했다. 중학교 3학년 담임 같은 사람이 담임이면, 친구들이 나를 내몰아도 상관없다.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고, 좋은 사람으로만 기억됐다. 그녀는 내가 하는 기침을 완전히 이해한다거나, 과한 걱정으로 나를 내비치지 않았다. 단지, 다른 친구들과 잘 섞일 수 있게끔 도와줬으니까. 그녀의 주전공인 과학의 논리성보다 더 논리적인 감정으로 나와 3학년 3반을 대했다. 그 덕분에 내가 중학교는 잘 졸업할 수 있었지. 그런 그녀가 마지막 담임이었기에 새로 만날 담임에 대하여 궁금했고, 어떤 방향으로 나를 인도할지에 대하여도 끝없는 나의 관심사였다.
고등학교 1학년 교실은 내 기대와 많이 달랐다. 창가 맨 끝 자리만 내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달랐다. 운동장과 가까워 환기를 제대로 시킬 수 없었고, 먼지와 침묵은 교실에 가득했다. 수업 시간 때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는 내 기침 소리뿐이었으며, 내 상황을 미리 말해둔 담임 역시 불쾌한 표정을 삼킬 수 없었다. 그 역시 과학교사였지만 논리를 뛰어넘는 감정의 논리성을 이용하지 않았고, 단단해 보였다. 정확히는 딱딱하다는 표현이 맞겠지. 그는 웃는 소리보다 저음의 가르침 소리가 늘 더 강했다. 쉽지 않을 것 같다. 이건 음성 틱과 천식성이 함께 섞여 오는 기침인데 환경이 나를 뒷받침하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 모든 게 욕심이자 착각일 수 있겠지만, 그들이 나를 다른 이처럼 편하게 대했으면 좋겠지만, 이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모두 내신에 집중해야 하고, 수능에 집중을 해야 하니까. 내 기침은 일종의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였겠지.
그럼에도, 내 옆으로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는 늘 있었다. 강현승과 그의 무리들. 원조 고등학교 1학년 일진은 아니고,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들. 특히 현승이는 8반의 1번이자 공부도 그 무리 중에서 가장 잘하는 아이다. 그런 그가 아무러 대가 없이 나에게 다가온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최대한 조신한 발자국으로 먼지 한 톨 내 기관지에 들어가지 않게 먼저 다가왔다.
"안녕, 우리 친하게 지내자. 나는 강현승이야."
그의 손에는 포도맛 마이쮸가 들려 있었고, 포켓몬을 수집하듯 친구를 모으는 것 같았다.
"어, 난 송찬희야.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새 학기의 묘미다. 어색한 분위기, 그리고 떨리는 수많은 공기들. 나는 조심히 마이쮸를 마이 주머니에 집어 놓고, 읽던 책을 잠시 덮었다. 그가 내 자리를 벗어나길 기다리는데, 그는 쉬는 시간 동안 내 주변을 떠날 생각이 없나 보다. 현승이는 나를 보는 것인지 혹은 내가 읽고 있던 이 책을 보는지 나를 빤히 바라봤다.
"혹시 얼굴에 뭐 묻었니?"
"아니, 나도 책을 좋아하는데 이 책 시집이야? 요즘 시집 읽는 친구를 못 봐서. 나도 못 읽고 있고."
"아, 이거 김이듬 시인 시집이야."
처음이다. 내 독서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준 사람은. 그가 김이듬을 알지, 아님 윤동주와 이상 같이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만 알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이 책을 잠깐 소개했다. <투명한 것과 없는 것> 그래, 책을 좋아하니까, 나를 조금 더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
"내가 이 시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시는 <후배에게>야. 읽고 있으면 참 따뜻하더라고."
그에게 내가 사랑하는 시를 알려주며,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우린 자주 하게 됐다. 서로의 욕심 없이, 그냥 선만 잘 지키며 지냈다. 그 덕분인지 갈비뼈와 오감을 짓누르던 불안 같은 기침이 현승과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사그라든다는 착각을 했다. 또한 현승이 다가오니까, 많은 반 아이들이 창가 끝 자리를 향해 다가왔다. 국어 문학을 알려달라고, 문학 기법은 어떻게 공부하면 좋냐고. 그 덕분에 나는 국어 선생님께 찍혀서, 국어 부장까지 하게 됐다.
"정신없겠네. 앞으로 바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되겠어. "
친구들의 말처럼 국어 선생은 내 꿈이 신기하다고 말했다. 보통 소설이나 에세이 작가는 간혹 장래 희망으로 들어봤지만, 시인의 정체성이 강한 학생은 얼마 없기에. 또한 그녀의 과거 꿈은 시인이었고, 시를 쓰거나 글을 쓰는 현시대에 얼마 없는 아이들을 응원하고 싶다고, 나와 함께 문창과와 국문과 위주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쓴 시 몇 편과 내가 분석한 현대 시와 현 문단의 흐름에 대하여 정리해 와야 했다. 그러던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작시 한편을 그녀에게 보여줬다.
{ 나는 이동이 없어 동상이라 불렸다 }라는 진술로 시작된 시 <시간 무빙워크>를.
그녀는 내 시를 읽고 물어봤다. 교사가 아닌 독자로서의 궁금증이었다.
"이거 어떻게 하다가 쓰게 됐어? 혹시 기침이니?"
국어 선생님의 짐작이 맞다. 역시 독서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맞는 것 같군, 나를 잘 파악하셨다. 나는 여린 기침을 살짝 풍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는 사인이었다.
"무빙워크이건 어디서 생각했어?"
"저기 학교 근처 홈플러스에서요. 항상 아래를 보니까 이런 묘사가 가능하네요. 재밌죠."
그녀는 내 답변에 실망은 아닌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코로나 시대 이후에 기침을 하면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니, 고개를 숙이며 다니는 건데,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내 생각을 읽지는 못했겠지만, 국어 선생님은 조용히 노트북으로 타자를 쳤다. 내가 말한 답변을 적는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타자 치는 소리에 집중을 해 본다.
"음, 찬희야 너 이상 좋아하니?"
"날개랑 오감도 이상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저는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오감도 너무 난해해서."
"그래도, 이번에 오감도 15호 한 번 읽어 보렴. 너랑 잘 어울릴 것 같고 세특 쓰기 좋을 것 같아서."
나는 난해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은 참 이상한 괴짜 시인이다. 그림을 보고 시라 하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년은 나처럼 호흡기가 좋지 않았으니 이를 참고해 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 15호까진 읽지 않았으니까, 그녀의 조언을 듣고 꼭 읽어보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국어 선생님은 안경을 위로 살짝 올리며, 노트북을 챙겼다. 수업 시간이 거의 다가왔기에. 나의 쉬는 시간은 늘 이런 식이었다. 현승이랑 이야기를 하거나 국어 선생님이랑 이야기를 하는 등으로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을 나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참 좋은 사람들.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 약해지니까, 못된 기억만 떠올려야 하는데.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게 내 벌인 것처럼.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에게 이해를 바라지 않고, 도움을 청하지 않았으나 도움과 이해를 받은 죄이자 피해를. 그래도, 그들이 있기에 지금 이렇게 추락을 늦추는 거 아니겠어. 스스로 갈비뼈를 포함한 모든 몸통에 되새김질 시킨다. 학교를 다녔기에 학교의 빈자리가 커졌기 때문에.
며칠 전, 아무시 소재의 원조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묶었던, 숙소에서 화재가 일어났다고 한다. 사상자는 교직원 8명에 재학생 5명. 수학여행을 간 대부분의 학생이 마지막까지 아파했고, 그 누구도 쉽게 울고 웃지도 못했다. 이 뉴스를 봤던 나도 그랬는데. 그곳에서 살아남은 약 200여 명의 학생들은 어떤 감정일까? 짐작할 수 없다. 그 뉴스 안에는 내부자가 아니지만, 본인의 내부가 타버린 여러 학부모의 얼굴과 동료 교사들의 해탈함이 보였다. 그들 중에는 내 기침을 눈여겨 본 훈이의 부모와 경아의 부모도 있었다. 그들 역시 함께 타버린 것 같았겠지. 그래도, 천만다행인 게 내가 그곳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현승의 부모는 사이에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 보다. 잃음에 대한 불편함보다 생존했다는 안도감 그리고 아픈 자였던 내가 살아남았다는 이상한 논리의 죄책감까지 한 번에 나를 덮쳤다. 나도 그런데, 현승이는 얼마나 새까맣게 속이 타버렸을까? 남은 재 한 톨도 그에겐 상처를 입힐 수 있을 텐데. 일단, 숨을 크게 돌렸다. 전화를 걸어야 할까? 아님 전화를 걸지 말까, 고민하다가 생존은 확인하는 게 좋을 듯해서 연락을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연락하는 용기는 쉽지 않았고 결국 전화를 걸어보진 못했다. 그래, 가까이 가지 않는 게 현승이와 나 모두에게 좋을 것 같으니까. 합리화를 스스로에게 했다.
아이들이 골목길에서 내려왔다. 서로의 손을 잡고 뛰는 아이들, 부모와 함께 아이스크림 하나씩 깨물어 먹는 아이들 등 학교가 끝났다는 해방감에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러나, 몇몇 엄마들은 오존과 습기가 가득한 이 풍경을 좋아하지 않는지, 모자를 아이와 함께 머리끝까지 눌러쓴다. 나 역시 부모는 아니지만,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희열은 나를 멀리서부터 알아차리고 재빨리 뛰어오지 못한다. 모두 똑같은 검은 머리와 비슷한 복장들. 그럼에도 그는 나를 재빨리 찾아내는 재주가 있다.
오늘도 희열은 짝꿍이자, 여친인 예린과 인사하고 나에게 다가와 안길 것 같았지만, 희열은 예린과 헤어지고 난 뒤에 나를 안지 않고, 작은 물건을 내게 건넸다. 내 이름이 쓰인 작은 스노볼. 그 스노볼 안에 있는 사람은 쓰러져 있었다. 기괴했다. 겨울이 아니라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것을 알지만, 그래도 희열에게 물었다. 안심하기 위해서.
"희열아, 창의과학 수업 시간에 이거 만들었어?"
희열은 고개를 저었다. 방과후 수업도 아니고, 정규 수업도 아닐 텐데 이걸 왜 이것이 희열에게 있으며, 이 스노볼에는 왜 내 이름이 써져 있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왜 쓰러져 있는지. 모든 궁금이 한 번에 쏟아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이 동그랗게 커졌고, 희열은 이런 나를 인식하듯, 작은 손으로 내 손을 때렸다. 찰싹! 아주 경쾌한 장단이다. 그러고는 집을 향해 뛰었다.
"야, 송희열 넘어진다. 조심해라."
내가 그를 말리니 희열은 뒤돌아보며 씩 웃는다. 어린아이가 아닌, 빙의된 무당처럼 이상한 말을 짓 꺼렸다.
"누가, 원조 고 1학년 8반이었던, 송찬희에게 주라고 했어. 박용호 선생님 유품이라나? 이거 형 아니야?"
박용호가 여기서 왜 나와? 그리고 이게 박용호 유품이라는 거야? 희열의 표정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쉴 새 없는 기침과 이름에 대한 불안 때문인지 땀은 온몸을 적셨다. 나는 희열의 얼굴을 응시했다. 땀으로 얼굴이 붉게 물든 그의 표정을 끝까지 바라봤다. 장난기도 반항기도 아닌, 그의 모습. 진실이었다. 일단, 오랜만에 온 힘을 다해 희열을 향해 달려갔다. 숨이 더 빠르게 찼고, 뼈들이 조금씩 아스라 드는 것 같았다.
"왜?"
희열은 내 손을 쳤다. 이런 내 질문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나를 바라봤고 입술은 나와 버렸다. 당연하다. 자신이 나를 위해 가져다준 것인데, 아직 유품과 죽음이라는 개념이 확 와닿지 않는 아이일 텐데, 그런 그에게 나의 불안함과 당황함은 어색해 보일 거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내 실수니까, 그러나 쉽게 떨어져 나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사과보다 이 스노볼의 출처가 궁금했다. 이걸 나에게 줬을 것 같은 사람을 생각하면, 현승이랑 국어 선생님뿐인데. 나는 희열의 키에 맞춰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차근차근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아가, 이거 준 사람이 안경 쓴 형아였어? 아니면 마르고 연약해 보이는 여자였어?"
그러나 희열은 쉽게 입을 열지 않고, 집을 향해 걸어가기만 했다. 내 목소리가 기침에 가려졌을까? 희열은 내 말을 뒤통수로만 들었다. 그의 뒤통수 역시 땀이 흘렀고, 여름의 잔향을 풍겼다. 그래, 나도 여름이라 소리가 잘 안 들릴 수도 있지. 워낙 물방울에 민감한 계절이니까. 그러나 물방울로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더라도 저렇게 말을 무시하면 불쾌지수와 함께 분노도 올라간다.
"야! 송희열 내 말 안 들려? 어디서 형아 말을 또 무시하니."
나도 모르게 또 그에게 성질을 내버렸다. 그가 잘못한 것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나는 더 큰 잘못을 그에게 저질렀다.
이런 내 모습에 희열의 눈가가 붉어졌다. 억울한 것이다. 그런 그였기에 희열은 도로에서 큰 소리로 나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몰라! 검은색 모자 쓰고 얼굴이 검은 일반적인 남자였어. 형은, 왜 원조 고등학교 이야기만 나오면 민감해? 나는 학교 가고 싶지 않아도 가는데. 형안 참 이상해."
불편함과 억울함의 목소리였다. 요즘들어, 희열이의 표정이 어둡던데, 아이들에게서 괴롭힘을 받는 걸까? 그런 일은 아니면 좋겠다. 그래도 그가 나에게 이렇게 대든 것은 어면히 형제 사이 상하 관계의 선을 넘었다. 학교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민감하게 반응한 내 모습이 그에게는 서운해 보일만했다. 난 희열이가 준 스노볼을 손으로 감쌌다. 이게 무엇이든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만큼은. 그래도, 만약 진짜 용호 선생님이 남긴 거라면, 왜 나에게 이런 걸 남겼는지 궁금하긴 하다. 그리고 이걸 전달해 준 이도 희열이 내 동생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마치 신이 용호 선생님과 나와 연결된 한 사람인 희열에게 이를 맡긴 것일까?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지금은 아무 생각 말고, 희열을 꽉 안아줬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말은 쉽게 꺼내지 않고, 품에 잠깐 동안 있게 했다. 그의 화가 진정될 때까지.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길가는 여전히 물웅덩이가 많고, 비는 내리지 않아도 습기가 고여있다. 이게 여름이다. 그래, 이렇게 나아가는 게 여름이겠지. 나와 희열의 관계는 생각보다 깊이 파여있다.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날에도 나는 그가 부러웠지만, 그는 나를 부러워했다. 집 안에서 하루 종일 휴대폰만 보는 내가 세상 그 무엇보다 편해 보였겠지. 나는 그가 나처럼 되길 바라진 않는다. 희열이를 더 잡은 이유는 이것 하나 때문이다.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선, 그 학교에 선배인 내가 그를 지키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들었기에. 그래도, 우리 정도면 나름 사이좋은 형제인데. 매일 집에서 장난감 가지고 놀아주고, 함께 잠을 잤는데도 이렇게까지 깊어질지 몰랐다.
희열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본인 방문을 닫았다. 한참 동안 소리가 나지 않았다. 우는 것도 같고, 노는 것도 같다. 차라리 우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집 분위기는 연속해서 들려오는 안 좋은 소식에 축축한데. 눈물로 습기를 더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래야 되는 상황이라면, 희열을 내 버려두는 게 맞는 것.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를 희열을 무시했다. 그러면서 희열이 누군가에게 받아 온 스노볼을 받다. 보고 있을수록 참 기분이 이상하다. 중앙에 있는 나무와 그 밑에 누워있는지 쓰러져 있는지 모르는 한 소년. 그리고 스노볼 밑 바닥에 쓰여 있는 붉은 글자의 내 이름. 이걸 과연 누가 보냈을까. 이런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매일 밤 들려오는 그 목소리 중 한 명인 강현승. 현승과 나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렇고 그런 친구 사이였다. 그런데 왜 계속 그 아이가 매일 밤마다 나를 억누를까? 아마도, 그 일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우리 둘의 사이가 조금 멀어진 계기도 박용호 때문이다. 박용호쌤은 일종의 사이비 종교와 비슷한 행동을 했다. 우리들의 행복을 기도해 준다는 의미로, 담임 재량 첫 시간에 이상한 행동을 했다. 당시 1학년 8반 전부에게 스노볼을 나누어 줬고, 그곳에 우리의 이름을 적고 수능까지 가지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그냥 스노볼만 가져간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 현승이를 포함한 몇 명의 친구들은 그날의 공기가 내년 수능까지 이어지길 바라며, 스스로 이름을 쓰고 그에게 전달했다. 그럼 박용호는 볕이 제일 잘 드는 창가 자리에다가 스노볼을 놔두었다. 이를 우리 반 몇몇 아이들은 노망이라는 표현으로 욕하지만, 또 다른 몇몇은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 물론, 나 역시 낭만으로 생각했지만, 마음 한 편으로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현승이는 그 스노볼 앞에 가서 매일 기도했다. 현승이는 "서울대 경영학부 갈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빌고 나는 "원조 고등학교 무사 졸업을 희망합니다."라고 매일 빌었는데. 쉽고 빠르게 우리가 빈 것은 빌어버릴 것으로 바뀌었다. 한여름. 용호 선생님이 나를 부를 때부터.
작년 여름부터 기침의 방향은 심해지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원조 고등학교 운동장에선 비소가 발견됐다는 소식도 덩달아 들려왔다. 운동장과 마주하고 있는 우리 반은 문을 열 수 없었다. 특히 내가 있는 쪽으로는 문을 열지 못했다. 비소가 호흡기에 들어가면, 기침의 강도는 더욱더 심해질 거기에. 우리 반은 학교에 있는 거의 모든 시간 동안 에어컨을 틀어놓았다. 먼지가 많아도 땀이 내려 더워지는 것보다 날 것 같아서, 그런 판단했다. 먼지와 탁한 공기가 교실의 모든 방향으로 퍼지도록. 시원한 바람이 날카로웠다. 기관지를 할퀴고, 갈비뼈가 운동하게 만들어 내 모든 신체를 자극했다. 기침의 강도와 빈도는 교시가 흐르며 흐를수록 더 강해졌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스트레스성 이명까지 함께 동반했다. 아이들은 이런 나를 보며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의 표정을 정면으로 본 적은 없다. 아래로 바라보는 것에만 익숙해졌으니.
담임은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나를 어느 날 불렀다. 그때도, 이렇게 축축하고 습기가 가득 찬 날이었지.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너무 잘 알았다. 그러나 그에게서 "찬희야, 많이 힘들지."라는 말이 먼저 나오길 누구보다 바랐다. 하지만 실상으로 나온 말은 처음 애상했던 그 표현이었다.
"찬희야, 날이 갈수록 네 기침 때문에 친구들 표정이 안 좋아진다. 너무 안 좋게 듣지는 마라. 혹시 자퇴하지 않을래?"
"친구들 표정이 그리 안 좋은가요? "
"응. 말은 지금 안 하지만, 다들 그런 것 같아."
"선생님만 그러신 것은 아니고요?"
"당연히 아니지. 선생님은 찬희만의 담임이 아니라, 우리 반 25명 모두의 담임이니까. 그리고 그 25명 중엔 너도 있고."
그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우리 반 전체를 나에게 걸었고, 그중에는 내가 있다면 그의 답을 듣는 게 맞다. 그러나, 마치 다른 아이들도 내가 없어야 표정이 핀다는 말은 괘심했다. 어른에게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이 단어가 그를 나타내기 정확한 표현이다. 왜냐면, 나도 들었던 소리가 있었기에. 현승의 위로와 이해가 아닌, 그냥 친구 사이의 조언이 있기에.
"찬희야, 네 기침이 방해된다고 누가 그러니. 그냥 백색소음인데. 무시해."
안다. 이 말은 나를 위한 거짓말이었겠지. 부담을 주리라고 했던 목소리. 이런 현승의 마음은 나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도 유효할 텐데. 왜 하필 현승이가 그때 담임의 눈에 들어왔을까? 교무실에 들어온 현승을 용호쌤이 불렀다. 그러고는 내 앞에서 물어봤다.
"현승아, 찬희 기침을 네가 고3 수험생 때 만났으면 어땠을 것 같니?"
현승은 난처한 눈빛을 담임에게 쏘아붙였다. 그와 동시에 내 눈을 천천히 바라봤다. 나는 마스크로 가려진 입술로 들리지 않는 헛말을 했다. "괜찮아, 편하게 말해줘." 하지만, 현승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을 지려감고 생각할 뿐이었다. 다음 수업이 다가오기 전까지 버텼다. 그렇다. 그 역시 내가 고3에 만났으면 눈에 가시였겠지. 이런 내 마음을 담임은 읽었을까? 나를 보며 이야기한다.
"찬희야, 고등학교 3년 동안 우리 반 같은 아이들 만나기 쉽지 않다. 너만 상처받을 텐데, 버틸 수 있겠어?"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저음이 유독 더 독해 보였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담임에게 한마디 했다.
"자퇴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 몸 때문에 부모님과는 여러 번 상의했는데, 자퇴가 맞는 것 같네요. 최대한 빨리 서류와 숙려제 포기서 쓰겠습니다."
그러고는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런 내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는 현승과 담임의 시선이 느껴졌다. 안타까움, 동정도 아닌 그저 그런 눈빛이었다.
방과 후 교실에 있는 내 흔적을 모두 지우기 위해, 사물함과 책상 서랍 등을 정리했다. 동시에 담임 박용호가 줬던, 내 스노볼을 집에 가져가려 했다. 이런 내 모습이 현승은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실수였다. 그래, 그도 나도 같이 실수했다. 나는 내 스노볼을 들다가 옆에 있던 현승과 내 스노볼을 떨어트렸다. 빛났다. 유리가 나와 현승 사이 바닥에 떨어졌고, 우리의 실내화는 빛났다. 마치 모두 금 간 것처럼.
"미안, 떨어트렸네. 다친 곳은 없어?"
현승에게 먼저 물어봤다. 그가 다친 곳은 없길 바랐기에. 하지만, 현승은 내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러고 약간의 중얼거림으로 말했다.
"너는 다친 곳 없어? 나 때문에."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빗자루로 남은 조각들을 쓸고, 그의 말을 무시하며 모든 흔적들을 치웠다. 기관지로 침이 들어가고, 기침은 심하게 나왔다. 이렇게 끝나면 안 된다는 신호 같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모든 것이 끝나갔다. 나는 내 책가방을 챙기고 학교를 나가려고 할 때, 현승이 마지막 말을 했다.
"아니, 피는 나지 않는데 아파."
이 말을 들은 뒤, 나는 더 이상 현승과 연락할 수 없었다. 내가 다시 연락하면 다시 핏물 없는 상처가 그를 덮칠 것 같기에. 이런 내가 현승이에게 다시 연락해도 될까? 그래도, 지금 이걸 알아내려면 연락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요 며칠 원조 고가 시끄럽기도 했고 그러니까.
그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수신음이 꽤 길게 흘러나왔다. 살아 있어야 한다. 내가 너에게 사과하고, 너를 내가 용서하기 전까지, 너는 죽어선 안된다. 이런 생각이 막 들어서 끊으려고 할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승이었다.
"안녕, 현승아. 나 작년 8반 송찬희야. 몸은 괜찮니?"
"어, 희야. 나 나쁘지 않지. 너는 괜찮아?"
"나도 나쁘지 않게 지내. 수학여행 이후 말하기 조금 그런데, 혹시 박용호쌤 기억나니?"
잠깐의 침묵이 수화기에 가득 찼다. 귀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갔고, 그의 대답을 기다리려다가 그냥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려고 운을 뗐다.
"현승아, 몸조리 잘하고, 건강해야 해. 그리고 미안. 네 피가 나를 도왔어."
그때, 현승이가 입을 다시 땠다. 그날 못 다했던 이야기, 혹은 박용호 선생님과 국어 이희선 선생님의 마지막을. 그리고 그들이 내게 남긴 것을.
"혹시, 희열이한테 잘 받았지? 네 스노볼. 용호쌤과 희선쌤이 너에게 남긴 마지막 기도야."
역시, 희열이에게 준 사람이 너였구나.
현승의 말에 따르면, 담임이 나를 떠나보낸 이유는 우리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 반이 서로에게 편하고 좋은 반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내년에 내가 받을 상처와 같은 반 아이들이 피해 본다는 생각을 최대한 덜게 하기 위해서 했던 행동이라 했다. 교사들 사이에서 내 이야기는 매 쉬는 시간 교무실에서 나왔지만, 이를 막기에는 희선쌤과 용호쌤 모두 제 힘을 다하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나를 학교 밖으로 내쫓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본인의 역할이 필요했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떨었고, 목구멍에 그날의 먼지 재가 그대로 있는 듯 골골거렸다.
"그만해. 희선 쌤은 몰라도, 용호 쌤은 아닐 거야."
"찬희야, 제발 이 이야기 믿어줘. 박용호가 이 스노볼 꼭 네게 전해달라고 마지막에 말했어. 그리고 마지막까지 우릴 구한 사람이야."
그렇다. 이번 여름에 사상자는 박용호와 이희선 덕분에 준건 맞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현승과 함께 남겨진 아이들과 그들이 다시 만든 내 스노볼을 지켰으니. 그럼 뭐 하냐, 결국 나를 인도하길 포기한 자들이라 그에 대한 벌을 받고, 나도 지금 그 벌을 받고 있는 거다. 그렇게 믿을 거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한글자 한글자 더디게 말하는 현승이의 목소리는 진실되고 담담하게 들려왔다. 그래도, 그 진실이 정답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희열이와 현승이가 내게 넘겨준 이 스노볼은 무엇보다 진짜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평소 그들의 기도. 일종의 나와 함께했던 순간들을 기억하려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 순간 벙쪘다. 이것은 곧 침묵과 침묵으로 다가왔다.
그 적막을, 현승이 마지막 말로 모두 깨졌다.
"희열이, 참 밝은 아이인 줄 알았는데 깊더라. 너 닮았어."
"나를 닮았다고?"
나는 재빨리 희열이가 닫은 방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희열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온몸에 땀띠 같은 붉은 반점을 품으며. 그리고 나를 보며 씩 웃었다. 희열의 흉터 사이로 아이 특유의 천진한 표정이 다가왔다. 스노볼 안에 쓰러져 있던 소년을 닮았어. 이목구비와 그 자리에 있는 흉터와 상처까지.
"혹시, 용호쌤이 희열이 얼굴을 알아? 어떻게 이리 똑같아?"
현승은 "음"이라는 말만 사용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고개를 저을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이 모습이 그 당시 내 모습이겠지. 아마도 그들은 내가 스노볼 나무처럼 무럭무럭 잘하길 매일 기도하면서 만든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는 희열의 몸을 꽉 안아줬다. 희열은 나를 때 놓으려고 노력하며 웃는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 두드리고 귀로는 현승이의 다독임만 받았다.
"내가 미안해."
거실에 있던, 한 아이의 스노볼에 이슬이 차오르며 빛났다. 현승과 희열은 어떤 대답도 없이 침묵만을 유지했고, 한여름에 후배와 함께 있다.
"그거면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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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어온 이야기는 하고 싶은데, 발에 관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저에게 발이란 무턱대고 걸어서, 땅과 마주하는 일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아요. 이걸 굳은살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랫동안 천천히 무감각해지는 발의 이야기는 굳은살투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괜찮지만, 당신들은 괜찮겠어요? 제 발이 지나온 이야기가 약간 아플 수도 있을 거예요.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궁금하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다만 눈은 조금 아플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나는 분명, 경고했다. ** 그러나 사람들은 각자의 굳은살 이야기가 뭐 그렇게 듣고 싶은지, 아니면 공감받고 싶은지 눈을 크게 뜨고 눈과 눈을 마주치며 스쳐 지난다. 사실 관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걷고 있는 길에 바람이 꽤 차갑다. 강원도 산간의 겨울은 역시 눈도 많이 내리고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골바람이 도시의 골바람과 다른 매서움을 가지고 있다. 작년에, 삼촌 내외와 가까운 강원도 산간으로 이사를 왔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현실에서 일종의 도피를 경험하고 싶었기에. 도시에서 살며, 들이마셨던 공기와 먼지를 이삿짐과 함께 털털 털어내고 시작한 산골 생활이라 우리 가족은 이사 가기 전까지 즐거운 것들을 상상했다. 엄마와 나의 건강 회복과 농촌에 들어가면 받을 수 있는 여러 혜택. 하지만, 시골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텃세가 심하다던데. 그래도 의지할 수 있는 한 식구가 주변에 사니까, 기댈 수 있는 식구가 없었던, 도시보다는 괜찮을 것 같다는 믿음과 희망이 가득했다. <리틀 포레스트>와 같은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엄마와 나는 손을 잡고 소리쳤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짐들은 언제 다 풀고 정리할까. 우린 서로 웃다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버릴 건 버리고, 나눌 건 나누고, 가져갈 건 가져가기 위해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였다. 어느 정도 정리가 다 됐다. 이제, 이사 가기 전, 감사했던 사람들을 찾아가는 일만 남았다. 학교 다녔을 때 쉼터가 되어준 친구. 내 휴대폰에는 그들의 이름을 이름으로 저장해 두지 않았다. 성과 이름을 같이 붙여 놓으면, 차가운 느낌이 들어서. 그들을 각각 ‘아침의 햇살’과 ‘늦 밤의 달빛’으로. 저장해 뒀다. 그들이 언제 시간이 될지 모르지만, 이사 가기 전에는 연락이 왔으면 좋을 것 텐데. 나는 확신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어떤 것이든 ‘할 텐데’라고 말끝을 흐리기에. 모든 일이 ‘텐데’로 끝났다. 이번에도 그렇고, 저번에도, 그 이전에도 그렇고. 확신이 없었기에, 그들에게 만나자고 했던 카톡 메시지는 다른 광고성 문자들로 인해 내려갈 공간까지 내려갔다. 그런, 나랑 반대로 엄마는 최근까지도 동생네 어린이집 학부모 모임에도 빠짐없이 잘 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사람을 만나는데 거리감이 적었다. 다만, 그만큼 한 공간에 뭉쳐 있지 않으면 그들과의 관계가 금방 흐지부지하게 끝난다는 것. 엄마는 조동모임에는 가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이유겠지. 조동 친구들은 산후조리원에서 나온 뒤, 아이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유지되는 관계
- 송희찬
- 2026-01-25
*주의: 본문에는 이물 표현이 있습니다. 식사하시면서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며칠 전, 고등학생 시절 친구를 만났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6개월 전이었지. 못 본 지 반년 동안 그와 나는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그는 2학년 1.2학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모두 마쳐 고3을 마주해 있고, 나는 검정고시와 수시 합격 그리고 수능을 치르는 등의 경험과 성취를 이루어 냈다. 그래, 우리 모두 올 한 해 수고했지. 또한 내년에도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온 힘을 다해 뒤척이겠지. 그런 뒤척임이 한 해 한 해 쌓이며, 우린 나이를 먹어갔다. 그러다 보니, 금세 열아홉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청소년이 유효한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게 됐다. 일 년, 일 년 지날 때마다 몸은 매해 바뀌었다. 키와 몸무게가 늘기도 하지만, 어릴 때 좋아했던, 매운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는 등 체질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특히 작년에는 그 변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평소에 즐겨 먹던 얼큰한 찌개와 매콤한 닭발을 몇 입 먹지 않았는데, 먹은 뒤에 속이 끓거나, 변을 자주 보는 등의 행위가 심해졌고, 매운 음식을 거부하게 됐다. 그렇기에 옛날에 바라보지도 않았던, 사리곰탕과 튀김우동이 제일 좋아하는 라면으로 변했다. 계속 이러다가, 이들조차 맵다고 느끼면 어떻게 해야 할지, 함께 매운 것도 못 먹는 맵질이 어른이 되는지 해가 거듭될수록 음식에 대한 걱정이 커진다. 하지만, 매운 음식과 반대로 어릴 적 못 먹었던 비빔밥은 한 해가 지날수록 고추장, 다시 먹을 수 있게 됐다. 내가 지금 껏 비빔밥을 먹지 못한 이유는 네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트라우마. 평범했던 초등학교 1학년 1학기 급식으로 비빔밥을 먹었던 그날 급식이 속에서 얹혀 기절했다. 나는 태권도에 들어가자마자 출입문에서 토를 내뱉고, 나도 모르게 쓰러져 버렸다. 일종의 침묵, 어쩌면 소란스러운 환경에서의 고요만이 내 몸을 짓눌렀다. 그런 짓누름에 눈은 점점 감겼다. 어둠이다. 어렸을 때 나는 어둠을 참 무서워했는데, 그 당시에는 어둠이 무섭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편안한 휴식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얼마나 어둠 속에서 쉬었을까?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구급 대원들이 있었고, 태권도 학원 원장이었던, 위층의 미술 선생님과 태권도 사범님 등 학원 관계자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여러 질문을 했다. 그중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미술 선생님의 질문. "희찬아, 100까지 세어볼까?" 그녀의 질문에 몇 까지 세었을까? 한 사십까지는 말했던 것 같지만, 결국 100까지 세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모르겠어요." 사실, 내가 숫자 100까지 셀 수 있는지 궁금해한 것이 아니다. 아마도, 내가 다시 정신을 잃지 못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찾은 거겠지. 이후 몇 가지 질문을 받은 뒤, 나는 앰뷸런스를 타고 태권도 사범님과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것이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다. 그러나, 이는 그 상황의 마지막은 아니었다. 이후, 각종 검사를 받았다. 뇌파와 CT 등 뇌에 문
- 송희찬
- 2025-12-19
*:본문에 들어가기 전, 싱어게인3 1호(이바다).25호(강성희) 듀엣곡인 최백호의 의 가사와 멜로디를 듣고 본문을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FArnw42Z2NA?si=KEO65YTtYfJuUtk_ ㅡ 책을 덮고, 밖을 바라봤다. 눈이 내린 뒤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는 아무것도 맺지 않은 가지에 눈꽃 같은 얼음꽃을 피웠다. 또한 주변에 있는 학교 근처 무덤과 논밭을 이루는 토지 역시 제 기능을 잃은 것처럼 얼어 있었다. 위 모습은 2025년 12월에 본 필자의 동네 풍경인 동시에, 겨울마다 봤던 모습이기도 하다. 이처럼 12월은 찬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등 추위와 관련된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시기가 다가오면, 몇몇 학교에서는 겨울 방학과 졸업식이 이루어진다. 그 이유는 12월이 지난 1월부터 우리는 한 살씩 더 먹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자에게 12월은 추운 겨울인 동시에 이별에 달이기도 하다. 함께 1년을 보냈던, 친구들과 교실에 이별을 고해야 하기에. 그러나 이와 반대로 새로움을 맞이하는 시작의 계절이기도 하다. 한 학년이 올라가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공간을 만나게 되기에. 이처럼 12월은 끝없는 만남과 끝없는 이별에 달이다. 이러한 시간의 성격은 권누리 시인이 쓴 시집 속 유령 같은 화자들은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떠난 이에 대한 깊은 슬픔과 명랑한 기대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여러 인간일 수도 있는 한 인간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 이는 시집의 첫 시편 에서부터, 마치 윤회를 기억하는 존재처럼 존재를 드러낸다. ㅡ 죽지 마 명령하면 안 되니 어제는 피아노를 샀어 가끔 치려고 명랑하게 창문 너머 비행기가 밥그릇은 언제나 비어 있고 천장에 달라붙은 열기가 깔깔 웃으면 이 이상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구르기 위한 언덕을 갖고 싶어 처박힐 우물도 자랑 없이 칭찬도 없이 청소기 헤드로 빨려들어가는 정오 함께 있을까 조금만 더 울어보고 ㅡ 전문-12~13p Beginner 한국어 해석으로는 초심자라는 뜻이다. 이 제목처럼 위 시의 화자는 이별의 초심자처럼 묘사된다. 떠난 이, 특히 죽은 사람에게 "죽지 마"라는 말로 붙잡아 명령하고 싶지만, 화자는 결코 명령하지 못한다. 역으로 떠난 이에게 "안 되니"라고 물어본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어제 피아노를 샀"고 창문 밖을 날고 있는 "비행기"와 자신의 빈 "밥그릇"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이는 조심스럽게 타자를 붙잡고 싶은 화자의 욕망을 그려낸다. 하지만, 이는 "청소기 헤드"가 이물질을 빨아들이듯, 하루 중 제일 밝은 "정오" 즉 밝음과 관련된 것들을 빨아드리게 된다. 대표적으로 삶의 에너지, 웃음 같은 것들을. 그렇기에 타자와 화자는 함께 있으면, 서로 빛을 갉아먹을 것 같았기에, 초심자처럼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며 타협한다. 이런 타협은 시에서 화자가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시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타자에게 "함께 있"기를 청한다. 동시에 화자가 우는 모습으로 마무리 맺어진다. 하
- 송희찬
- 2025-12-16
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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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까지 읽은 이후로 이어보시겠어요?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희찬형님은 무슨 월장원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하셨네요 ;;;
@선 혁 ㅋㅋㅋㅋㅋㅋ
@선 혁 ㅎㅎ 저도, 공지글 보고 깜짝 놀랐어요^^;